스탠리 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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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21년 11월 25일 ~ 2020년 5월 26일
  • 영어: Stanley Ho
  • 간체자:何鸿燊
  • 정체자:何鴻燊
  • 한국 한자음: 하홍신
  • 한어 병음:Hé Hóngshēn
  • 홍콩 언어학 학회 월어 병음 방안: Ho4 Hung4 San1
1. 개요
2. 생애
3. 미디어


1. 개요


마카오카지노 재벌로, 포브스에 따르면, 그는 10억 달러로 추정되는 자산과 함께, 2009년에 세계에서 가장 부유한 사람들 중 701위를 차지했다. 다만 일설로는 워낙 차명재산이 많아서 실제로는 그것보다 훨씬 많다고 한다. 그는 홍콩과 마카오에 많은 재산을 소유하고 있으며, 엔터테인먼트, 관광, 해운, 부동산, 항공 교통을 포함하는 다양한 사업에 참여 중이다. 2020년 5월 26일 98세의 나이로 타계했다. 기사 1 기사 2

2. 생애


1921년 홍콩에서 태어났다. 할아버지가 네덜란드 태생 유대인이었으며, 집안 자체가 명문가였고, 조부가 돈을 많이 벌어 들였기 때문에 어렸을 때는 전형적인 놀기 좋아하는 부자집 아들내미로 살았지만 중학생이 될 무렵에 아버지가 빚까지 얻어서 주식 투자하다가 거금을 날리는 바람에 한순간에 바닥 인생을 경험하게 되었다. 아버지는 베트남으로 도망쳤고, 절망한 두 형이 자살했으며 어머니는 먹고살려고 전당포를 전전했다. 호는 어려운 상황 속에서 치과의사 친척을 찾아 나섰다가 문전박대를 당하거나 버스를 탔는데 돈이 위폐라 버스에서 내리는 경험을 통해 세상 물정을 깨달으면서 열심히 공부해서 홍콩 대학에 입학했다. 하지만 중일전쟁의 전란이 홍콩까지 미치면서 마카오로 떠났고, 일본계 무역 회사에 취직했다. 하지만 운 좋게도 사장에 눈에 든 호는 뛰어난 업무 능력 덕택에 사장의 총애를 받았으며 목숨을 걸고 사치품을 수입하는 일을 잘 수행했기 때문에 초고속 승진을 거듭해서 취직 2년 만에 최고 경영자가 되었으며 10여 년 만에 이전의 부유한 삶을 누릴 수 있게 되었다.
이후로 자체적으로 건설사를 차렸고, 전후 복구와 함께 엄청난 수익을 거두지만 마카오 갱들이 노골적으로 견제를 날리면서 1953년에 홍콩으로 떠났고, 홍콩에서도 부동산 투자를 통해 엄청난 돈을 벌었다. 1961년에 헨리 폭과 손을 잡고 카지노 독점 운영권을 따냈고 1970년에 레스보아 카지노 호텔을 개장했다. 때마침 대만과 홍콩, 싱가포르 모두 고도 성장을 누리고 있을 때라 마카오에서 거액을 탕진할 손님들의 수가 매년 늘어나고 있었고, 중국도 개혁개방에 나서면서 중국 고위층들도 마카오 카지노에 들락날락 거리기 시작했는데, 이 때문에 엄청나게 승승장구해서 2001년 카지노 시장 개방 이전까지 마카오 세금의 절반 이상을 냈을 정도로 대성황을 이루었고, 이렇게 번 돈으로 레스토랑 등 다른 사업까지 확장하는 데 성공한다.
다만 이 때문에 마카오 내 공직자들이나 상당수 기업 임원들은 스탠리 호에게 찍소리를 못했다고 한다. 스탠리 호가 독점권을 쥔 상태에서 도박을 접고 다른 일을 하면 마카오 정부로 들어오는 세금이 팍 줄어드니까. 그래서 마카오가 스탠리 호의 사설도시라는 말이나 '마카오의 낮을 지배 하는 것은 포르투갈이지만 마카오의 밤을 지배 하는 것은 스탠리 호이다', '마카오에서 돈을 쓰면 50%는 스탠리 호에게 간다' 라는 우스갯소리가 많이 나돌기도 했다. 진짜 리즈시절에는 스탠리 호는 '''마카오의 황제'''라고 불렸다. 이 당시에 나온 홍콩 만화 등에서는 스탠리 '''폐하'''로 쓰여 있다. 다만 모든 사업이 성공할 정도의 운을 지녔던 것은 아니라서 파키스탄과 이란에 투자를 했다가 쓴맛을 보기도 했다.
이후 마카오 반환 이후로도 독점계약이 끝나는 시기가 다가오면서 카지노 사업 독점권을 유지하려고 했지만 마카오를 좌지우지 할 수 있다고 해도 스탠리 호 자신의 힘으로 공산당을 컨트룰 하는 것은 당연히 가능하지 않았기 때문에 카지노 시장이 개방되었고, 카지노 시장 개방으로 다른 카지노 업체들이 많이 들어오면서 영향력이 줄어들었다. 하지만 중국의 경제성장으로 카지노에서 돈을 탕진하는 여행객들이 많이 늘었기도 했고, 이름값이 헛된 것은 아니라서 위기 상황 속에서 카지노 호텔을 추가로 개설할 정도로 여전히 장사를 잘하고 있으며, 마카오 국제공항 지분의 33%를 스탠리 호가 소유하는 회사가 소유하고 있을 정도로 영향력도 일정 부분 유지하고 있다. 마카오 세금의 60%를 냈던 전성기만은 못하지만 여전히 스탠리 호 회사가 마카오 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높다.
다만 한편으로는 악평을 듣기도 한다. 아무리 밑바닥을 경험한 다음에 기업가로써는 대성한 인물이기는 해도 대놓고 구린내가 펄펄나는 도박으로 돈을 벌다 보니 애초부터 좋은 평을 듣기는 만무하기는 하다. 사실 사업이 마냥 깨끗하지 않았다는 얘기나 보도도 여러 번 나오기도 했다.
스탠리 호는 상당수의 재산을 차명으로 보유하고 있어서, 스탠리 호의 사치수준 대비 포브스 등에 나타나는 재산이 매우 적게 나타난다. 아무래도 업종이 도박이다 보니 뒷세계 삼합회와 유착도 강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반면 홍콩의 재신 리카싱은 삼합회와 사이가 안 좋다.
당연하다면 당연하지만 도박을 통해 거금을 벌어들였으면서 막상 자신은 도박을 안 한다.[1] 한번은 친구가 카지노에 가려고 하자 카지노에 가서 도박 하면 카지노가 승리한다는 발언을 하면서까지 말렸을 정도. 다만 여자들이 많이 꼬였고, 본인도 여색을 마다하지 않았다. 젊었을 때 엄청난 미남이고 돈도 많기 때문에 여자들이 정말로 많이 꼬였고, 수많은 미녀들과 많은 염문을 뿌렸다.
부인이 네 명이며 17명의 자녀를 뒀다. 하지만 스탠리 호가 잘생긴 외모에 부자라는 점 때문에 수많은 여자와 만났는데도, 4명 밖에 없는 게 용하다는 것이 사람들의 반응으로, 그래도 워낙 돈이 많으니 가정사에 문제가 생기지는 않았고, 2009년부터 2011년에 유산을 공평하게 나눠주면서 별 탈 없이 지내는 모양.. 이었으나 아니나 다를까 자식들 사이에 경영권, 재산 싸움으로 말년은 복잡하게 지냈다.
2018년에 공식적으로 은퇴하면서 카지노 사업을 장남에게 물려줬다.
2019년 10월 30일에 첫 손자를 보았으며, 며느리에게 1억 위안(한화 165억)을 주었다. 이 며느리는 빅토리아 시크릿 모델 출신이다. #
2020년 5월 26일 노환으로 사망했다.관련기사

3. 미디어


90년대에 나오고 한국에서도 홍콩 만화를 주로 정발하던 천하제일 코믹스에서 90년대 중순에 정발된 바 있던 홍콩 만화 <바이오맨>에선 스탠리 창이라는 카지노 도박 산업왕이 나온다. 악의 축으로서 범죄자들을 명령에 따르는 무기로 만드는 미치광이 과학자들을 몰래 거액으로 후원하던 인물. 이 만화에서는 자기의 비리나 여러가질 비난하는 이들을 그 명령으로 움직이는 인간 흉기로 끔살시켜버린다. 이름도 그렇지만 실제로 얼굴만 약간 다르게 그렸다 뿐이지, 상당수 비슷하게 그린 것부터가 스탠리 호가 모델임을 알 수 있다. 이런 만화가 나오는거 보면 그닥 평판이 좋진 않은 모양.(...) 아무래도 애초에 카지노라는 산업 특성이 좋은 평을 받긴 좀 그렇다.

[1] 위험한 것을 다루는 사업의 경우 그 위험성을 알기 때문에 사업하는 당사자는 장사만 하지 그 위험한 것을 하려 하지 않는다. 이는 프로 마약상들도 마찬가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