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용해
1. 개요
한국의 독립운동가. 1996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받았다. 독립유공자 심용철의 형이다.
2. 생애
심용해는 1904년 4월 18일 함경북도 길주군 장백면 합포리에서 태어났다. 그는 1919년 고향을 떠나 친척의 도움으로 연길현에 위치한 도립이중(道立二中)학교에 입학하였다. 그러던 1919년 3월 국내에서 만세운동이 전개되었다는 소식이 간도지역에도 전해졌다. 이에 간도지역에 있던 민족지도자들은 3월 13일 용정에서 만세운동을 전개하기로 하였다. 3월 13일 독립축하회가 끝나자 명동학교 학생 충렬대가 앞장서서 북을 치고 나팔을 부는 가운데 시위행진에 들어갔다. 심용해는 이때 유서(柳絮)·박관해(朴觀海) 등과 함께 충렬대에 참가하여 선두에 서서 적극적으로 활동하였다.
1923년, 심용해는 중학교를 졸업한 후 장춘의'대동일보(大同日報)'기자가 되었다. 1924년에는 베이징으로 가서 아나키즘 계열의 신문인'국풍일보(國風日報)'의 편집자가 되었다. 이후 아나키즘에 뜻을 둔 그는 1925년 경 아나키스트 유서의 소개로 베이징에 있는 한인 독립운동가들과 교류를 가졌다. 그리고 그해 겨울 동지들과 함께 '고려청년'을 출판하였다.
이후 북경 법정대학(法政大學) 정경학부에 입학하였으며, 1928년 여름 간도 한인사회의 실태를 조사하여 '연변조사실록(延邊調査實錄)'을 저술하였다. 그는 이 책에서 연변이 앞으로 나아갈 길은 민족특별자치구를 설치하는 것이라고 주장하였다. 1929년 가을 활동 거점을 만주로 옮겨 연길의 도태부(道台府)에서 근무하면서 중국어 양성소를 만들어 한인들에게 중국어를 교육시켰다. 또한 가난한 재만동포들을 도와주었으며, 토지소송에 대하여 상담해 주기도 하였다.
그러나 1930년 4월 4일 오전 1시 용정의 자택에서 괴한들에 의해 피살되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6년 심용해에게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