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용철

 


'''대한민국의 독립운동가'''
'''심용철'''
'''沈容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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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or=#fff><colbgcolor=#0047a0> '''출생'''
1914년 10월 23일
함경북도 길주군 장백면 합포리
<color=#fff> '''사망'''
2001년 4월 21일
중국 지린성
<color=#fff> '''묘소'''
국립대전현충원 독립유공자 묘역
<color=#fff> '''상훈'''
건국훈장 애족장
1. 개요
2. 생애


1. 개요


한국의 독립운동가. 200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수여받았다. 독립유공자 심용해의 동생이다.

2. 생애


심용철은 1914년 10월 23일 함경북도 길주군 장백면 합포리에서 태어났다. 그는 일찍이 아나키즘 사상에 심취하여 친형인 심용해와 함께 일본 제국주의 타도에 나섰다. 1931년 9월, 그는 형과 함께 정화암, 유자명, 유기석, 원심창 등이 조직한 남화한인청년연맹에 가담했다. 남화안인청년연맹은 1931년 11월 별동조직으로 상해에 흑색공포단(黑色恐怖團)을 결성하여 일제 고관 암살, 일제 관공서 파괴, 부일배 처단 등 구체적인 항일 의열투쟁을 전개하였다.
1933년 흑색공포단원인 이강훈, 백정기 등은 주중일본공사 유길명(有吉明)의 암살을 기도하였으나 뜻을 이루지 못하였다. 이외에도 흑색공포단에서는 일본영사관의 밀정인 이종홍(李鍾洪), 상해 조선인거류민회의 고문으로 친일파인 이용로(李容魯)를 사살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1937년 중일전쟁의 발발로 동지들이 체포되고 활동에 제약을 받게 되자 그는 정화암 등과 함께 중국 복건성(福建省) 천주(泉州)로 이동하여 평민중학교(平民中學校)의 교사로 후진 양성에 주력하였다. 그후 1945년 안휘성(安徽省) 무림(茂林)에 본부를 둔 한족동맹(韓族同盟)의 비서로 선임되어 유기석 등과 함께 적지구(敵地區)에서 한인 청년들의 초모공작을 전개하였다.
이후 지린성에서 조용히 지내다 200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수여받았고, 2001년 4월 21일에 사망했다. 사후 그의 유해는 2002년 국내로 봉환되어 국립대전현충원 독립유공자 묘역에 안장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