쌍봉사
雙峯寺
1. 개요
대한불교조계종 제21교구 본사인 송광사의 말사이다. 신라 경문왕 때 철감선사(澈鑒禪師)가 산수의 수려함을 보고 창건하였다. 철감선사의 법력과 덕망이 널리 퍼지자 왕이 궁중으로 불러 스승으로 삼았다고 하며, 창건주 철감선사의 도호가 쌍봉이었으므로 사찰명을 쌍봉사라 하였다고 한다.
철감선사는 이 절에서 선문 9산의 하나인 사자산문(獅子山門)의 기초를 마련하였고, 이곳에서 그의 뒤를 이어받은 징효(澄曉)가 영월의 흥녕사(興寧寺)에서 사자산문을 개산하게 되었다.
창건 이후 퇴락한 절을 1081년(문종 35)에 혜소국사(慧昭國師)가 창건 당시의 모습대로 중건하였고, 공민왕 때 전라도 관찰사 김방(金倣)의 시주로 중창하였다. 조선시대에는 절의 땅을 면세해 주었으며, 임진왜란으로 소실된 뒤 1628년(인조 6)에 중건하였고, 1667년(현종 8)과 1724년(경종 4)에 중창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교통편으로는 화순교통 218-1번(덕흥동발 쌍봉사행)이 다니고 있으며, 하루 7번 왕복이다. 만약 쌍봉사에서 출발하는 막차를 놓쳐도 상심하지는 말자, 아직 증리발 덕흥동행 218-1번의 막차가 오후 7시20분(증리 기준)이기 때문에 7시20분 되기 전에 쌍봉사에서 출발하면 문제는 없다. 다만, 타는 정류장이 쌍봉사에서 거리가 꽤 되기 때문에 주의를 요한다. 이양면 옥리와 거리도 가깝고 바로 갈수 있는 길도 있긴 하나. 쌍봉사에서 옥리가는 버스편이 없어 버스타고 쌍봉사에서 옥리를 가려면 굳이 쌍봉사 종점, 혹은 쌍봉사 입구 정류장에서 이양행 버스를 타서 이양에서 내린 후 옥리행 차량으로 갈아타서 가야하는 방법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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쌍봉사입구 정류장의 위치, 쌍봉사에서 거리가 꽤 된다.
2. 대웅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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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4년 소실 이전의 쌍봉사 3층목탑[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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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원 이후의 쌍봉사 3층목탑(현 대웅전) 조선시대에 개조되기 이전 모습은 이 모습일 가능성이 높다고 한다.
총 높이 12m의 정방형 3층 건물인 이 대웅전은 상륜부를 제외하고는 '''우리 나라에서 3층목탑의 모습을 전하고 있는 몇 안되는''' 목탑이었으나, 1984년 4월 초에 촛불로 인한 실화로 소진되었다. 다행히 이전에 남겨둔 단면도가 있었기에 무사히 복원을 했다.
대웅전은 1962년 해체공사 때 3층 중도리에서 1690년(숙종 16)의 두번째 중건에 이어 1724년에 세번째 중건된 사실이 기록되어 있는 상량문이 나왔다. 그리고 최근까지 대웅전으로 사용되었던 3층각은 원래 대웅전 건물이 아닌 탑이었다고 전한다.
3. 화순 쌍봉사 철감선사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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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순에 2개밖에 없는 국보 중의 하나로 국보 제57호.[3]
쌍봉사에 세워져 있는 철감선사(澈鑒禪師)의 승탑으로 화강암 재질이다. 탑이 조성된 시기는 철감선사가 71세로 입적한 해인 통일신라 경문왕 8년(868년) 즈음일 것으로 추정된다. 본 승탑은 기단부터 지붕돌까지 전체가 8각으로 이루어져 있다. 아쉽게도 지붕돌 위에 있었을 머리장식은 사라지고 없지만, 전체적으로는 원형이 상당히 잘 보존되어 있다.
본 승탑은 대단히 화려한 부조들이 새겨져 있는데, 기단부부터 탑신, 지붕돌까지 하나하나 섬세하며 화려한 조각들을 새겨놨다. 팔각형의 기단에는 8마리의 사자와 구름, 연꽃, 불교에서 말하는 극락조인 가릉빈가가 새겨져 있다. 사리가 모셔진 탑신은 매 모서리마다 기둥이 새겨져 있고 기둥 사이의 각 면마다는 문과 사천왕, 비천상 등이 조각되어 있다. 역시 팔각으로 된 지붕돌도 그 묘사 정도가 대단한데, 기와 사이의 기왓골도 하나하나 표현해 놨고 기와의 끝에는 막새기와도 하나하나 만들어놨는데 심지어 막새기와의 문양까지도 모두 조각해놨다. 지붕의 기와 묘사에만 그치는 것이 아니라 처마에는 서까래까지도 만들어놨다. 이렇게나 디테일들을 사실적으로 표현해놔서 본 승탑은 신라시대 건축물의 지붕을 연구하는데 있어서도 큰 도움이 되는 자료이기도 하다.
화순 쌍봉사 철감선사탑은 신라 시대에 만들어진 승탑 가운데 원형을 가장 잘 보존하고 있는 편이며, 그 원형도 대단히 섬세한 조형 수준을 유감없이 발휘하고 있다는 점에서 그 가치는 대단히 높다. 또한 이 뿐만 아니라 현전하는 모든 승탑 중에서도 가장 아름답고 빼어난 걸작 중 하나로 평가받는다.
3.1. 바깥고리
- 한국어 위키백과 : 화순 쌍봉사 철감선사탑
- 한국민족문화대백과 : 화순 쌍봉사 철감선사탑
- 향토문화전자대전 : 화순 쌍봉사 철감 선사 탑
- 미술백과 : 쌍봉사철감선사탑
- 답사여행의 길잡이 5 - 전남 : 쌍봉사 철감선사탑
- 두산백과 : 쌍봉사 철감선사탑
3.2. 국보 제57호
쌍봉사(雙峰寺)에 세워져 있는 철감선사의 탑이다. 철감선사는 통일신라시대의 승려로, 28세 때 중국 당나라로 들어가 불교를 공부하였다. 문성왕 9년(847) 범일국사(梵日國師)와 함께 돌아와 풍악산에 머무르면서 도를 닦았으며, 경문왕대에 이 곳 화순지역의 아름다운 산수에 이끌려 절을 짓게 되는데, ‘쌍봉’인 그의 호를 따서 ‘쌍봉사’라 이름하였다. 경문왕 8년(868) 71세로 이 절에서 입적하니, 왕은 ‘철감’이라는 시호를 내리어 탑과 비를 세우도록 하였다.
탑은 전체가 8각으로 이루어진 일반적인 모습이며, 대부분 잘 남아 있으나 아쉽게도 꼭대기의 머리장식은 없어진 상태이다. 탑의 무게를 지탱하고 있는 기단(基壇)은 밑돌·가운데돌·윗돌의 세 부분으로 갖추어져 있으며, 특히 밑돌과 윗돌의 장식이 눈에 띄게 화려하다. 2단으로 마련된 밑돌은 마치 여덟마리의 사자가 구름위에 앉아 있는 모습으로, 저마다 다른 자세를 취하고 있으면서도 시선은 앞을 똑바로 쳐다보고 있어 흥미롭다. 윗돌 역시 2단으로 두어 아래에는 연꽃무늬를 두르고, 윗단에는 불교의 낙원에 산다는 극락조인 가릉빈가(伽陵頻迦)가 악기를 타는 모습을 도드라지게 새겨두었다. 사리가 모셔진 탑신(塔身)은 몸돌의 여덟 모서리마다 둥근 기둥모양을 새기고, 각 면마다 문짝모양, 사천왕상(四天王像), 비천상(飛天像) 등을 아름답게 조각해 두었다. 지붕돌에는 특히 최고조에 달한 조각 솜씨가 유감없이 발휘되어 있어서, 낙수면에는 기왓골이 깊게 패여 있고, 각 기와의 끝에는 막새기와가 표현되어 있으며, 처마에는 서까래까지 사실적으로 표현되어 있다.
탑을 만든 시기는 선사가 입적한 해인 통일신라 경문왕 8년(868) 즈음일 것으로 추정된다. 조각 하나하나를 조심스럽게 다듬은 석공의 정성이 고스란히 전해져 오는 작품으로, 당시에 만들어진 탑 가운데 최대의 걸작품이라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