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와
1. 개요
瓦(기와 와)
주로 건축물 지붕에 올려 지붕을 덮는 데 쓰이는 건축 재료.
원래 용도는 지붕을 덮어 눈과 비가 실내에 유입되는 것을 막고, 이전에 사용되던 초가집 등이 지붕이 몇 년이면 썩어버려 자주 갈아줘야 하던 것을 반영구적인 기와로 대체하는 실용적 용도였다. 이후 건축술이 발달하면서 건물을 아름답게 치장하는 용도로도 쓰여 다양한 형태의 기와가 발달한다.
기와를 올린 집을 기와집이라고 한다.
2. 어원
기와의 옛 한글 명칭은 '디새'이다. 디새가 구개음화하여 '지새'가 되고 반치음으로 변화했다 탈락하면서 '지애'가 되었다. 현재의 '기와'는 '지'가 역구개음화하고 '애'가 한자음 와(瓦)에 이끌려 변화했다는 설과 한자어 개와(蓋瓦)에서 유래했다는 설이 있다. 개와(蓋瓦)는 맨 위에 덮는 기와를 뜻하기도 하고, 또는 산스크리트어로 'kapala(머리)'의 음역어라는 설도 있다. 오늘날 일본어로 기와를 부르는 카와라(かわら) 역시 이 음의 차용이라는 주장이다.
3. 역사
전세계에서 흔히 발견되는 건축재료로 서양에선 고대 그리스시기부터 사용되었다. 중국의 경우 주나라부터 사용되어 전국시대를 거쳐 진한 시대 무렵에 매우 발전하였으며 한국에서는 낙랑군의 영향을 받아 기와를 사용하기 시작하였다.[1] 이후 삼국시대엔 고구려, 백제, 신라 삼국 모두 각국의 특색을 지닌 기와들을 사용하였고 신라의 얼굴무늬 수막새나 백제의 연화무늬 기와등이 알려져 있다.
기와 하면 A4용지만한 크기를 떠올리기 쉽지만, 고대에는 귀족적, 불교적 문화로 건축물의 규모가 크고 호화로웠던 만큼 기와도 굉장히 큰 유물이 많다. 그 예시가 국립경주박물관에 전시된 황룡사의 거대한 치미 기와가 있으며 남한산성 행궁지에서 발견된 같은 신라시대 대형 숫키와의 경우 길이 63cm,두께 6cm 무게 17.8kg까지 나가는 어마무시한 물건도 있는데 내구력 테스트에서 무려 550kg를 버티는 가공할 내구성을 보여줬다
그래도 조선시대까지는 짚이나 나무판자에 비하면 일일이 손으로 만드는 특성상 고급 건축 재료로 꼽혔고, 이 때문에 기와집은 비단옷과 함께 부잣집의 상징으로 꼽히기도 했다.
기와의 수명은 이전 테크인 초가집의 볏짚보다야 넘사벽으로 길지만 어쨌든 건축물 본체보다는 훨씬 짧기 때문에 종종 교체해줘야 했고, 대량으로 제작되기 때문에 한 시대의 양식을 민감하게 반영한다. 따라서 출토되는 옛 기와 유물은 건축물의 역사를 알아볼 때 큰 도움이 되기도 한다.
4. 형태
일반적으로 기와 지붕은 암키와(평기와)와 수키와(둥근 기와)로 이어 덮은 후, 처마 끝을 막새나 와당이라는 기와를 사용하여 마무리한다. 이때 암키와의 마무리는 암막새, 수키와의 마무리는 수막새라고 부른다. 물론 경우에 따라 막새 등은 생략되는 경우도 있으며 조선시대 일반 주택의 경우 막새를 생략하는 경우가 대다수였다. 일반적으로 지붕은 산자 위에 진흙을 이겨 얇게 편 다음, 위, 아래로 암키와를 걸치고 좌우의 이음매에 수키와를 덮는다.
흙이나 시멘트 따위를 구워 만든 재료가 주로 쓰이나 돌로 만든 기와와 금속제 기와도 있으며, 유약을 바른 도자기 기와[2] 도 있다. 그리스 신전에는 대리석 기와가 사용되었다. 그 외에 나무 널판이나 얇은 점판암을 기와로 사용한 너와집/돌너와집, 나무의 껍질을 기와처럼 사용한 굴피집도 있다.
현대의 한국에선 아파트나 다세대 주택, 복합 주택이 증가함에 따라 사용도가 줄긴 했지만 그래도 많이 사용되는 건축재료로서 60~70년대 산업화 시기 이후로는 주로 공장제 기와를 사용하고 있다. 이는 대부분의 문화재 수리에도 적용되어서 2010년에 새로 복원한 광화문의 경우도 기계 기와를 사용하여 지붕을 올렸다. 2000년대 들어선 기존의 광물질 기와를 대신한 가벼운 플라스틱/금속제 기와가 많이 보급되어 민간주택에 사용되고 있다. 한편 수제 기와는 공장제 기와가 성행하면서 쇠퇴했으나 수제 기와의 가벼움이나 색채, 튼튼함등이 최근들어 다시 주목받고 있고 무형문화재로도 지정되었다. 숭례문 복원 당시 수제 기와를 올렸다는 얘기가 화제가 되기도 했었다. 일부 아파트 및 다세대 주택에선 지붕의 마감재 겸 장식재로 기와를 사용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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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권도 등 무술에서 격파에 주로 쓰이는 물건 중 하나이기도 하다. 적당히 납작하고 깨지기도 쉽지만, 몇장이 겹쳐지면서 단숨에 격파하기가 힘들어지기 때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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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 소모품으로 편하게 쓸만한 물건은 아닌지라 플라스틱으로 두 파트를 끼워서 쓰는 대체품이 있다. 동네 태권도장에서 흔히 볼 수 있다.
현대 한국의 문화재 건축에선 기와에 흰색 회칠을 하여 고정시키는 경우가 많다. 잘 모르는 일반인들은 그게 시멘트로 바른 것으로 오해하는데 시멘트가 아니라 회칠마감이다.[3] 이렇게 용마루나 막새 등에 흰 회반죽을 칠하면 단순히 기와를 쌓아 만드는 것보다 바람에 더 강하다는 장점이 있으나 사람에 따라 지저분하게 보일수도 있다. 다만 이러한 지붕의 마감은 취향의 영역이기도 해서 오늘날에는 흰 회칠을 더 선호하는 경우도 있다. 일단 일일히 기와 쌓는 것보다 편한 것도 있고. 물론 찾아보면 회칠 마감을 하지 않은 건축물들도 꽤 찾아볼수 있다.
터키와 그리스에서는 아직도 전통적인 기와를 덮는 집들이 많이 있다. 이 기와는 현지 점토에 산화철이 다수 포함되어 있기 때문에 보통은 빨간색을 띄며, 기와를 덮는 방식은 한국에 비해 단순한 편으로 한국에서 암키와라고 부르는 평기와만 덮는데, 아랫단은 볼록한 부분이 아랫쪽을 향하게 덮고 윗단은 볼록한 부분이 위쪽을 향하게 하고 덮으며 막새는 쓰지 않는다.[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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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와를 깐 터키식 아파트의 모습 (앙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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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근대 일본의 동와(銅瓦)*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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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와집에 덮는 너와 모습도 있다.*
일본의 경우 근세시대부터 이렇게 구리로 된 기와를 사용하였는데, 이유는 겨울에 유약을 바르지 않은 흙기와가 물을 흡수하여 동파하는 것을 막기 위해서 사용한 것이다. 다만 현대 금속기와처럼 금속으로 기와를 만들어 지붕에 올리는 간편하고 가벼운 게 아니라, 나무로 지붕을 만든 뒤 최대한 빈틈없이 일일히 사람이 손으로 구리판으로 감싼 것. 보덕암의 구리를 씌운 기둥과 비슷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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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식으로.*
때문에 품이 많이 들고 복잡한데다, 예나 지금이나 구리 자체가 귀한 금속인지라 평민들은 엄두도 내지 못했고 상대적으로 재산이 풍족한 절이나 신사, 권력자들이 아니면 꿈도 꾸지 못했다. 일본에서 이걸 처음 쓴 사람이 도쿠가와 이에야스고, 시기도 일본을 손아귀에 완전히 쥐고, 조선과 다시 교류를 시작하던 1607~1608년도라니 말 다한 거 아니겠는가.[5]
5. 관련 문서
- : 특유의 휘어진 디자인으로 붙여진 별명이 갤럭시 기와이다. [image]
- 기와 명칭 중 여와, 부와라는 용어가 있는데, 이는 기와제조공장에서 쓰이는 용어일뿐, 실제 학계에서 쓰이는 용어가 아니다. 여와는 암키와, 부와는 수키와로 명명되며, 여막새, 부막새 또한 암막새, 수막새로 불린다. 또한 작고(그림 2번째줄 3번째)가 아니라 착고(着高)이며, 망악(그림 2번째줄/4번째 줄 4번째)이 아니라 망와(望瓦)이다. 물론 망와라는 기와가 따로 있는 것은 아니며, 암막새가 지붕마루 끝에 위치하면 망와라고 칭한다. 초장, 도툼또한 학계용어가 아니다.
- 귀면와
- 기와집
- 너와집
- : 극중 주요 사건이 시작되는 계기가 다름아닌 기와 몇 장(...)이다.
- 얼굴무늬 수막새
- 잡상
- 청기와
- 청와대: 푸른 기와 집이라는 뜻을 지니고 있다.
- 치미
- 히와다부키
[1] 낙랑군이 들어왔던 시기 평양지역과 다른 지역을 비교해 보면, 당시 한반도와 주변지역은 초가나 너와 지붕을 얹은 움집이나 귀틀집(통나무를 井자 모양으로 쌓아 만든 오두막), 혹은 고상식 가옥(원두막에 문과 벽을 단 모습이다.)에 살았고 심지어 마한의 경우 토실(땅굴을 파고 출입구 쪽에만 움집을 지어 비바람을 막은 집)생활을 하고 있었지만 평양 지역은 번듯한 기와집을 짓고 살고 있었다.[2] 고려의 청자기와 등이 이에 속한다.[3] 회반죽도 넓은 의미의 시멘트에는 들어가긴 한다. 석회가루와 물, 고운 흙, 느릅나무 접착제, 잘게 찢은 한지 등을 섞어 만드는데, 석회와 석고가루를 주성분으로 만든 초기 이집트 시멘트랑 비슷하다.[4] 다만 이러한 붉은색 기와를 올린 가옥은 터키나 그리스말고도 유럽의 상당수 지역에도 있는 편으로 대체로 중부유럽과 이탈리아와 스페인, 포르투갈과 같은 남부유럽에도 제법 많은 편이다.[5] 참조 사이트 링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