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스미 리오
1. 개요
다카라즈카 가극단 화조에 소속된 배우로 톱스타다. 애칭은 미리오 , 사유미시, 미리링 등이있다. 매력으로는 가창력이나 연기력 등이 있다.
2. 약력
2001년 다카라즈카 음악학교에 89기생으로 입학. 동기로는 유메사키 네네(전 성조 톱여역), 노조미 후우토, 나나미 히로키 등이 있다.
2003년 다카라즈카 가극단에 입단, 입단 때의 성적은 49명중 8등이었다.
츠키구미 공연 『꽃의 다카라즈카 풍토기 / 시뇨르 돈 후앙』(花の宝塚風土記/シニョール・ドン ファン)에서 초무대를 하고 5월 22일 츠키구미에 배속되었다. 같은해, 『장미 봉인』(薔薇の封印) 신인공연에서 처음으로 노래장면을 받았다.
2008년 바우워크숍 『호프만이야기』(ホフマン物語)에서 바우홀 첫주연을 맡았다. 같은해에 『ME AND MY GIRL』 본공연에서는 당시 주조연 여역인 재클린 칼스톤 역을 연기했고 신인공연에서는 첫 주연을 맡았다.
2009년 『엘리자벳』 에서 루돌프역과 슈테판을 역바꿈으로 피로했으며 신인공연에서는 주역인 토드를 연기했고 그해 극단에서 신인상을 받았다.
2010년『THE SCARET PIMPERNEL』에서는 쇼블랑역 와 아르망역을 류 마사키(당시 츠키구미 톱스타)와 역바꿈으로 연기했다.
2011년 극단의 2010년도 상으로 노력상을 수상했다. 같은해에 『앨리스의 연인 -Alice in Underground Wonderland-』(アリスの恋人)에서 처음으로 바우홀 단독주연.
2012년 4월 23일 류 마사키의 츠키구미 톱스타 취임과 함께 이례적으로 준 톱스타[4] 에 취임하여 『로미오와 줄리엣』(ロミオとジュリエット)에서는 로미오와 티볼트 2개의역을, 『베르사유의 장미-오스칼과 앙드레편』(ベルサイユのばら-オスカルとアンドレ編)에서는 오스칼과 앙드레를 류 마사키와 역바꿈으로 연기했다.
2013년 1월부터 마츠이스미토모 비자카드 이미지캐릭터로 선정된다. 같은해 3월 25일에 화조로 조바꿈을 명령받았다. 제21회 요미우리연극대상 중간심사회 여배우상 베스트 5에베르사유의 장미-오스칼과 앙드레편 으로 노미네이트되었다. 같은해에 극단의 2012년도상으로 우수상을 수상.
2014년 5월 12일, 란쥬 토무가 퇴단함에따라 화조의 톱스타에 취임. 다카라즈카 대극장에서 피로하는 첫 공연은 극단의 대표 엘리자벳. 상대역(톱여역)은 전임에 이어서 란노 하나가 맡았다. 란노 하나의 퇴단 후 콤비를 이룬 여역은 카노 마리아.
2015년 8월 제2회 대만공연『베르사유의 장미-페르젠과 마리 앙투아네트 편 / 다카라즈카환상곡』(ベルサイユのばら -フェルゼンとマリーアントワネット編/『宝塚幻想曲)에서 주연. 같은해, 시즈오카시 관광친선대사로 취임. 같은해『신겐지모노가타리』(新源氏物語)라는 작품이 호연되어 2015년도 문화청 예술제상·연극 부문 간사이 참가 공연부에서 신인상을 수상했다.
2016년 4월, 2008년때 신인공연에서 첫 주연을 맡았던 ME AND MY GIRL을 톱이되어 다시 주연을 맡게되었다.
3. 주요 출연 무대
4. 여담
- 1살부터 수영을 배워서 초등학교에 입학할때까지 계속했다. 이후 3살부터 발레를 그리고 4살부터는 피아노를 배웠다.
- 중학교 3학년 여름방학 때 발레교실의 친구로부터 빌린 마코토 츠바사 주연의 월조 공연
의 비디오를 보고 다카라즈카 가극단에 빠져 비디오를 본 다음 날 가족 여행으로 방문한 홍콩에서는 다카라즈카 가극단의 생각이 머리에서 떠나지 않아 밥이 넘어가지 않을 정도였다고 한다. - 부모님에게 다카라즈카 음악학교에 지원하겠다고 말했으나 외동딸이 부모를 떠나 예술의 세계에 들어가는 것을 엄청 반대했다고 한다. 그래서 사흘동안 낮과 밤을 가리지 않고 방에서 통곡을 했고 마지막에는 열이 나서 누운 모습을 부모님께서 보시고는 수험을 허락해주셨다고 한다.
- 라디오 프로그램인 <비바! 타카라젠느>의 시청자 선물에 응모한 결과 표가 당첨되었고 수험 직전에 엄마와 함께 본 월조 공연 <젠다 성의 포로 / 재즈 마니아>가 다카라즈카 가극단의 첫 관극이었다.
- 섬유 유연제를 좋아해서 여러 종류를 가지고있기 때문에 지나가던 사람에게서 나는 섬유 유연제의 향기를 맡고 어떤 섬유 유연제인지 알 수 있다고 한다.
- 예명은 밝은 미래로 향하는 느낌으로 가족과 함께 생각해 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