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카라즈카 가극단

 


'''타카라즈카 가극단'''
宝塚歌劇団(たからづかかげきだん

[image]
'''국가'''
일본
'''창단'''
1913년 7월(110주년)
'''초연'''
1914년 4월 1일(109주년)
'''본사'''
일본 효고현 다카라즈카시
'''설립자'''
코바야시 이치조
'''이사장'''
오가와 토모지
'''모회사'''
한큐 전철[1]
'''연간 관객수'''
약 277만 명(2018년)[2]
'''링크'''

1. 개요
2. 역사 및 발전과정
3. 운영 시스템
4. 다카라젠느
4.2. 젠느로서의 활동
4.3. 퇴단
5. 스타 시스템
6. 공연 시스템
7. 사건 및 사고
7.1. 카츠키 히로미 사망 사고
7.1.1. 마츠시마 미나코의 기록에 언급된 내용
7.2. 공연 관계자 코로나19 감염
7.2.1. 발생 전
7.2.2. 확진자 발생 및 감염 현황
7.2.3. 극단측의 대처
8. 여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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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일본 효고현 다카라즈카시에서 시작된, 일본의 여성 뮤지컬 극단으로, 한큐 전철의 창립자인 코바야시 이치조가 1913년 7월에 창단했다. 창단 110년이나 된 역사와 인기를 자랑하는 일본을 대표하는 극단 중 하나이며, 규모면에서도 손에 꼽을 정도로 크다.
소속 배우 전원이 '''미혼 여성'''이며, 그러므로 '''남성 역할도 여성이 맡는다'''.[3][4] 배우들은 '다카라젠느'[5], 통칭 '젠느'라고 불린다. 효고현 다카라즈카시[6]도쿄도 치요다구[7]에 각각 2,000석 이상 규모의 전용 극장을 두고 매년 9가지 작품을 1달 가량 공연한다.[8] 공연 작품의 종류가 매우 다채로운 것도 큰 특징이다. 초기에는 창가단의 형태였지만, 점차 발전하면서 가극단이 되어 현재는 뮤지컬과 레뷰 쇼를 공연하고 있다.

2. 역사 및 발전과정


원래는 다카라즈카시에 있는 온천 방문객의 증대를 위해 만든, 즉 철도 사업의 곁다리쯤 되는 공연단이었지만[9], 언젠가부터 규모가 커지기 시작해서 지금에 이르게 되었다. 다카라즈카 패밀리랜드 내 실내풀장은 당시 동절기에 수온을 높이는 기술이 부족하여 추워서 이용자 수가 줄었기에, 풀장 폐쇄 후 그 공간을 이용하여 1913년 다카라즈카 가극단의 전신인 다카라즈카 창가대가 탄생되었다.
처음엔 16명에 불과했지만, 그해 12월 4명을 추가하여 '''다카라즈카 소녀 가극 양성회'''로 개칭되었다. 이듬해인 1914년 4월부터 소녀 가극을 공연하기 시작하였으며, 서양 악기를 연주하면서 일본의 창가극이나 무용극을 공연하여 주목을 받았다. 당시 대부분의 극본은 코바야시 이치조가 직접 집필하였고, 때로는 의욕적으로 연출까지 지도했다. 그의 노력으로 온천장이 흥한 것은 물론이고, 본업인 철도 사업도 성황을 이루게 된다.
처음에는 아마추어 수준이었으나, 1919년부터 가극 단원들에게 본격적으로 노래와 춤을 교육하는 기관으로 '''다카라즈카 음악학교를 설립하면서 전문 극단으로 발전'''해 나갔다. 같은 해 1기와 2기수에 해당되는 단원들 중에 총 8명의 남학생들이 있었지만 이들은 10개월 후에 해산되었다. 이 초창기 8명의 남성 단원들은 해산된 이후 극단 내 연출가 밑 작곡가 등의 스태프로 영입되어 일했다.
초창기에 이 가극단은 "전체가 어우러져 하나가 된다"는 정신 하에, 특정 배우가 스타로 부각되지 않도록 애썼다. 그러나 1920년대 후반부터 가부키를 연상시키는 에로틱한 요소의 도입과 더불어, 다카라즈카 배우들이 남자 역을 맡은 '오토코야쿠'와 여자 역을 맡은 '무스메야쿠'로 나뉘어졌다. 남자 역을 맡은 배우들이 인기를 끌기 시작하자 창립자 코바야시는 남자부(男子部)를 1945년 11월에 재설립해 남성 배우를 극단에 다시 영입했다. 1947년까지 총 13명의 남학생들이 입학해 각 기수별로 준비했으나 기존에 있던 여성 단원들과 팬들이 반발했던 탓에 본 공연에는 오르지 못했고 참여할 수 있었던 파트는 백코러스가 전부였다. 그 이후에 또 다시 살아났던 남자부는 몇 번의 협연을 하였으나 1951년에 공연한 우미인(虞美人)의 성공으로 여성만으로도 레벨이 높은 연극을 만들 수 있다는 것이 확인되었기 때문에 1954년 3월에 해산되었다. 그렇기에 현재까지 극단의 단원 전원이 여성이다.[10]. 이렇기 때문에 남성역을 하는 여성 배우가 필요한 특성상 이 극단에는 키가 큰 여성이 상당히 많다.
이후 '''1940년부터 현재 명칭인 다카라즈카 가극단이라는 이름을 사용'''하기 시작했다. TV의 보급으로 일시 인기가 하락하며 잠시 쇠퇴기가 있기도 했지만 1974년 이케다 리요코의 만화를 원작으로 한 뮤지컬 베르사이유의 장미와 동명의 헐리웃 영화를 바탕으로 제작한 창작 뮤지컬인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를 비롯한 히트작들을 무대에 올리며 부흥하여 오늘날에 이른다.[11]
2014년에 극단 창단 '''100주년'''을 맞았다.

3. 운영 시스템



사업적인 면에서는, 원래 철도 사업의 부대 사업 격으로 세워진 가극단이었기 때문에[12] 지금까지도 한큐 전철이 직영하고 있으며, '한큐 전철 창유(創遊) 사업 본부 가극 사업부'가 운영하고 있으며, 따라서 가극단원들 역시 한큐 전철의 직원 신분이다.
극단은 6개의 조로 구성이 되어 있는데, 꽃, 달, 눈, 별, 우주를 뜻하는 화조(花組/하나구미), 월조(月組/츠키구미), 설조(雪組/유키구미), 성조(星組/호시구미), 주조(宙組/소라구미)에 특별 베테랑 그룹인 전과(專科/센카)까지 합쳐서 6개 조다. 화조의 역사가 가장 오래되었고 주조가 가장 나중에 생겨났다. 전과의 경우 보통 재단 경력이 20년 이상인 원로급 배우들이 소속되어 있으며[13] 나이대는 대략 적으면 30대 중후반, 많으면 '''환갑'''을 넘어간다.[14] 해당 소속 여역들 중 한명이자 주로 일본물(日本物) 무용극 위주로 활동하는 마츠모토 유리(松本悠里) 한명을 제외한 다른 배우들 대부분은 주로 중노년 역을 주로 맡는다.
특정 구미 선호를 타파하기 위해 고안. 5개조가 교대로 공연을 하며 각 조마다 각자의 특색이 있어 소속된 연기자들이 거기에 맞추어 연기를 한다. 하지만 최근에는 각 조 간의 차이가 과거만큼 선명하게 다르진 않다. 보통 춤의 화조, 연기의 월조, 일본물의 설조 등등의 특색이 있었는데, 최근에는 이것보단 톱스타의 개성에 더 많이 좌우되는 편. 물론 그렇다고 해서 조 구분이 무의미하다는 뜻은 아니다. 가령 설조같은 경우 오차를 허용하지 않는 칼군무가 유명하다.
극단의 규모는 400여 명의 연기자, 프로듀서, 각본가, 연출가, 음악가[15]와 의상 디자이너, 무대미술 디자이너, 35명의 전속 오케스트라(다카라즈카 관현악단), 도구 담당, 의상 제작, 무대장치 운영, 영업 담당 등의 스텝진을 포함하여 900여명이 넘는다. 극단 전용의 대형 극장도 두 군데를 보유하고 있는데, 본거지인 다카라즈카에 있는 다카라즈카 대극장(2,550석)과 도쿄 도 지요다 구의 도쿄 다카라즈카 극장(2,069석)이다[16]. 이외에도 특별공연 때 임시로 도쿄 신주쿠의 일본 청년관(닛폰 세이넨칸), 오사카의 우메다 예술극장을 자주 대관해 사용하며, 지방 순회 때는 후쿠오카의 하카타자와 나고야의 주니치 극장에서도 공연한다.
다카라즈카 가극단의 정신은 '''깨끗하고 바르고 아름답게'''의 표어로 알려져 있다. 다카라즈카 가극단의 설립자인 코바야시 이치조가 설립 시 "밝고, 깨끗하고, 바르고 아름답게, 이것을 모토로 하는 우리의 예술은 즉 고상한 오락본위에 기초로 하는 국민극이다."라고 언급한 것에서 유래한다. 이 정신에 걸맞게 '스미레 코드'라는 암묵의 룰이 있는데, 관객의 '꿈'을 손상시킬 수 있는 요소들을 공개하지 않으며, 팬들도 찾지 않는다. 예를 들면 젠느들의 본명, 나이, 사생활 등. 또한 이 코드에 의해 공연에서의 소위 퇴폐적인 장면이나 러브신은 모조리 짤리거나 순화시켰다. 물론 해외 라이센스 뮤지컬도 예외는 없었으나, 시간이 흐름에 따라 공연 쪽의 자체 검열은 많이 풀린 듯. 그러나 젠느 관련 사항은 여전히 금기이다.

4. 다카라젠느


앞에서도 설명했듯 극단 소속의 배우는 통칭 '다카라젠느(약칭 젠느)'라 불리며 전원 미혼 여성이다.[17] 남성 역할은 '남역'(男役/오토코야쿠), 여성 역할을 '아가씨 역' 또는 '여역'(娘役/무스메야쿠)라 부른다.
극단의 메인 시스템이자 상징이라고 할 수 있는 남역 젠느는 남자다운 몸가짐과 발성을 가지도록 훈련받으며 머리카락도 단발로 짧게 자른다. 이의 영향으로 남역들은 퇴단하기 전까지는 반쯤 남자처럼 살아가고, 퇴단 이후에도 많으면 10여년간 해왔던 행동과 버릇이 직업병으로 남기도 한다고도 종종 언급된다. 이런 만큼 주로 극의 흐름이 남역 중심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다카라즈카만의 특징이기도 한데, '''엘리자벳과 같이 원작에서 여성이 큰 비중을 차지하는 작품을 각색할 시 주연 혹은 조연 남역을 띄워주기 위해 일부러 필요 이상으로 비중을 높이고 원작파괴를 한다'''.
이와도 비슷하게, 여역 젠느는 아름답고 이상적인 아가씨를 연기하는데, '''좋게 말하면 조강지처 내지는 현모양처, 나쁘게 말하면 정형적으로 굳어진 수동적인 여성'''의 이미지를 자주 연출한다. 이와 반대되는 여성스러우면서도 남자 못지않은 적극성을 보여주는 배역의 예시 중 하나로 스칼렛 오하라가 있다. 그러나 스칼렛 오하라와 오스칼 역은 신인공연을 제외한 대부분의 공연에서는 남역 젠느가 담당한다.

4.1. 다카라즈카 음악학교




4.2. 젠느로서의 활동


음악학교 졸업 후 입단 시에는, 이듬해 1월 1일에 입단생 전원이 다카라즈카 대극장에서 정월 인사를 하고, 3-4월쯤에 대극장에서 공연하는 조의 공연에 출연함으로써 초무대를 밟는다. 이후 입단생들은 새내기 배우로서 '연1년(硏1年)'이 되며, 보통 5월달에 조 배속을 받는다. 화조(花組/하나구미), 월조(月組/쓰키구미), 설조(雪組/유키구미), 성조(星組/호시구미), 주조(宙組/소라구미) 5개조 중 한 곳에 소속된다. 하지만 재단 중 주연배우 취임이나 내부 인사 사정으로 인해 '구미가에(조 이동)'를 하는 경우도 있다.
연 1~7년 사이의 학생들은 모두 하급생(下級生), 그 이후부터는 상급생(上級生)이라 불리게 된다. 무대 연출가 및 안무가들은 이 생도들에게 선생님(先生)이라고 불린다.
음악학교에서도 혹독한 고생과 노력을 했지만 입단 후에도 '''성적이 절대적'''이다. 입단 1년, 3년, 5년째에 시험이 있으며 5년째의 성적이 평생을 결정한다. 퇴단 후에도 성적순에서 완전히 자유로울 순 없다고 한다.
음악학교 생도 시절에도 가능하지만, 재단 중에 남역에서 여역으로 전향하는 젠느들도 더러 있다. 개중에는 전향 후 '''주연배우로 취임'''하는 경우도 있다.
젠느로 활동하면서 실력, 인기, 스타성 등을 인정받아 꿈의 지위인 '주연배우(톱스타)'로 취임하기도 한다. 한 조에 오래 재단했거나 연차가 많은 경우 '조장'이나 '부조장'이 되기도 한다. 자세한 내용은 아래 '스타 시스템' 항목을 참고.

4.3. 퇴단


퇴단은 '졸업'이라고 하며, 이유는 다른 분야로의 진출, 결혼, 건강악화, 스트레스 등 여러 가지이다.
톱스타나 톱 여역이 퇴단할 경우 그들만을 위한 본공연이 상연되며 다카라즈카 대극장 및 도쿄 극장의 마지막 공연 하루 전인 전락, 당일인 천추락 때 '사요나라 쇼'를 가진다. 사요나라 쇼는 퇴단공연 및 그전에 임했던 공연 중에서 가장 기억에 남을 만한 특별한 노래와 댄스들로 구성된다. 니방테일 때 퇴단하는 경우나, 그 조에 오래 소속해 다양한 활동을 했던 배우도 더러는 사요나라 쇼를 선보인다.
퇴단 후에는 주로 뮤지컬, 연극 분야로 진출하며 탤런트, 영화배우로 활동하기도 한다.[18] 물론 외부 활동을 접고 결혼하여 평범한 가정을 꾸리고 사는 경우도 많다.
다카라즈카는 위에서 설명한 배우나 가수 같은 연예인은 물론이고 여성 정치인, 교육자, 사업가를 여럿 배출했으며 각계각층에서 활발히 활동하고 있다. 가장 주된 활동 분야인 연예계의 경우 아마미 유키, 스즈카제 마요, 단 레이, 쿠로키 히토미, 다이치 마오가 다카라즈카 출신 배우로 잘 알려져 있다. 이름만 들어도 알 만한, 쟁쟁한 인기 여배우인 이 다섯 사람은 모두 다카라즈카의 주연배우를 지냈다. 그 외에도 마야 미키, 마코토 츠바사 등이 TV에서 활약 중이다. 참고로 전 일본 총리 하토야마 유키오의 부인 미유키 역시 다카라젠느 출신. Sound Horizon 7지평 객원 보컬에 참여한 것으로 유명한 아야노 카나미[19], 리브 문의 메인보컬 아카네 리브(생도 시절 예명 카미즈키 아카네)도 이 극단 출신이다.
참고로 다카라젠느 출신 중에 유일한 개그우먼이 있는데, 일본 최대 연예기획사인 요시모토 흥업 소속의 센도 카호(仙堂花歩, 본명 하야시 마이)이다. 입학하기도 어렵다는 다카라즈카 음악학교를 수석졸업하고 다카라즈카 가극단에 수석입단한 인재였으나, 코미디라는 새로운 분야에 도전해 보고 싶어서 퇴단하고, 요시모토 공채 오디션을 다시 봐서 합격하였다. 댄스 스튜디오 대표강사 일과 병행하면서 코미디언 일을 하고 있는 중.
앞서 설명한 배우나 가수 외에도 성우로 전향하는 경우도 있다. 대표적인 인물이 모리 나나코이다.

5. 스타 시스템


현재의 톱 스타 시스템은 1980년대에 확립되었다. 이 시스템은 오직 다카라즈카에만 있는, 극단의 아이덴티티이기도 하다.[20]
전과를 제외한 5개조는 조장, 부조장, 조원 그리고 톱스타 콤비로 구성된다.
톱스타는 그야말로 그 조의 얼굴이자 간판으로 티켓 판매를 좌우하는 주요 인물.'주연남역'(主演男役), 통칭 '톱스타'(トップスター)라 불리며, 각 공연의 주역을 맡는다. 이에 따라 각본은 톱스타에 맞춰서 작성된다[21]. 톱스타의 상대역인 여자 역할의 배우는 '주연여역'(主演娘役), 통칭 '톱 여역'(トップ娘役)이라 불린다. 각 공연의 히로인 역할은 이 톱 여역의 배우가 맡는다[22]. 퇴단할 때까지 대극장 공연 및 기타 중요 소극장 공연의 주연은 이들의 몫이다.
보통 '노선'이라 하여 하급생 때부터 신인공연과 기타 소극장 공연의 주연을 맡아 커리어를 쌓으며 두각을 나타내는데 대개 음악학교 졸업 공연인 문화제부터 입단 초중기에 주목도가 높은 생도가 주로 노선을 밟는데, 실력으로 노선을 밟는 경우도 있지만 성적이 낮음에도 불구하고 외모나 주목도로 노선을 밟는 경우도 있다.
주연남역은 통상 연12-15년에 취임[23]하며 주연여역은 딱히 연수에 구애받지 않지 않는다고 하지만 주연남역에 비해서 많이 연수가 적은 경우가 대다수이다.
대개 톱스타를 짧게는 2년 이상, 길게는 5년 정도 맡으며 이후에는 퇴단해서 드라마에 출연하거나 연극/뮤지컬 무대에 선다. 톱스타를 맡으면 그 이후의 '''연예 활동은 거의 보장받았다'''고 해도 좋을 정도. 스타는 그 용모, 스타성, 인기가 중요한 요소이며, 실력이 있다고 해서 반드시 스타가 된다는 보장은 없다. 입단 당시에는 성적도 낮고 하급 레벨이었으나 노력을 거듭하며 인기를 얻어 톱스타로 승진하게 된 배우들도 있다.
톱스타 밑으로 2번수, 3번수 등 역할이 붙여지나, 톱스타 외에는 명확하게 고정된 지위가 아니므로 변동되기도 한다. 2순위 남역배우는 2번수, 니방테로 불린다. 공연에서는 주인공 다음으로 중요한 역할을 맡으며, 기타 소극장 공연에서 주연을 맡기도 한다.
니방테를 준톱(준톱스타)라고 부르는 걸로 착각하는 경우가 많지만 '''니방테와 준톱은 엄연히 다르며 니방테를 준톱으로 호칭하는 건 톱스타와 톱스타 팬에게 굉장히 불쾌한 일'''이다. 다카라즈카 톱스타 시스템이 확립된 이후, '준톱'이 존재했던 시기는 류 마사키 톱 시절 아스미 리오가 유일하다. 이 마저도 다카라즈카 팬들 사이에서는 흑역사이기 때문에, '''니방테를 준톱이라고 부르지 않도록 주의하자'''.[24] 특히 트위터에서 활동하는 한국 팬들이 니방테를 준톱이라고 잘못 부르는 사람이 매우 많은데, 잘못된 언급이며 실례이므로 삼가야 한다. 애당초 '''니방테를 준톱이라고 부른다는 건, 현재 톱스타를 반쪽짜리 스타로 여긴다는 뜻이다.''' 본고장인 일본에서도 팬들이 니방테를 준톱이라 부르는 일은 없다.
각 조(구미)에는 간부급인 '조장'(組長)과 부조장(副組長)이 있다. 가장 높은 기수의 상급생이 보통 맡는 조장은 조 전체의 총괄, 관리를 맡거나 공사면에 걸쳐 각 조의 단원들을 돌보는 역할을 한다. 부조장은 조장을 도와 조의 총괄 관리를 담당하며, 조장에게 사고가 있을 때 그 직무를 대신한다.

6. 공연 시스템


다카라즈카의 공연은 1월 1일부터 시작하여 1년에 총 9회의 공연을 올리게 되며, 한 공연기간은 보통 30일 정도가 소요된다. 관객수는 연평균 200만명이 가까우며, 극장 가동률은 평균 90%가 넘는다. 2018년에는 관객 동원이 약 277만명으로 역대 최고를 기록했고 가동률도 다카라즈카 대극장에서는 102.8%, 도쿄 다카라즈카 극장은 101.8%로 신기록을 달성했다.
  • 본공연
다카라즈카 대극장과 도쿄 다카라즈카 극장에서 톱스타 콤비를 주연으로 상연되는 공연. 대극장 공연을 그대로 도쿄에서도 계속한다. 기간은 각각 약 1달 정도.
  • 신인공연
본공연의 레퍼토리를 가져와 하급생 젠느들로만 대극장/도쿄극장 공연 기간 중 각각 1번씩 공연한다. 본공연의 절반 정도의 인원이 참여하기에 삭제되거나 축소되는 장면들이 많다. 보통 연 5-7년 정도의 남역들이 주연을 맡고[25], 여역은 보통 남역들과 연차가 비슷하다.
이외에도 다카라즈카 바우홀, 우메다 예술극장, 일본 청년관, 주니치 극장, 하카타 극장 등에서 중·소규모 공연이 상시 진행되며, 전국 투어 공연도 간간히 있다.
매년 말에 열리는 특별공연인 다카라즈카 스페셜, 남역 젠느[26]이 주연으로 공연하는 디너쇼와 콘서트, 톱여역이 공연하는 뮤직 살롱 등이 있다.
공연은 아니지만 10년에 1번[27], 현역 다카라젠느 전원과 음악학교 생도가 참여하는 '다카라즈카 대운동회'[28][29]라는 행사도 열린다.
일반적으로 공연은 톱스타의 개연 안내 멘트로 시작되며 1시간 40분 정도의 연극 중심의 1막과 30분 휴연 이후 2막으로 1시간 정도의 음악과 댄스가 중심이 되는 '레뷰(レビュー)'로 구성된다[30].
레뷰의 마지막[31]에 피날레 공연이 진행되는데, 니방테의 메인 테마곡 독창, 톱스타 독무 및 독창, 로켓[32] 등으로 구성된다[33]. 그중에서도 단연 백미는 '''남역 군무'''. 톱스타를 필두로 남역 젠느들이 다같이 의상[34]을 맞추어 입고 대계단[35]에서 음악에 맞춰 질서정연한 군무를 선보이는 모습은 가히 압권이다. 남역군무 후 마지막에 진행되는 톱스타 콤비의 듀엣댄스도 피날레에 빠질 수 없는 요소 중 하나이다.
듀엣댄스 후에는 바로 퍼레이드가 이어지는데, 한 젠느가 대계단 중앙에서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며 공연 주요 넘버 몇 소절을 독창하면서 퍼레이드의 시작을 알린다[36]. 배역의 중요도 또는 기수에 따라 순서대로 대계단을 내려와 관객에게 인사한다[37]. 단역/조연의 경우 양 옆에서 서너명씩 내려오고, 비중있는 조연들부터는 중앙부에서 공연 넘버의 일부를 부르며 내려와 제자리에 선다. 보통 중앙부에서 내려오는 순서는 '비중있는 조연들-3번수 남역-2번수 남역-톱 여역-톱스타' 순이다. 2번수과 톱 여역, 톱스타는 등 뒤에 큰 날개를 착용하는데[38] 2번수 톱 여역의 날개는 상대적으로 작고 수수한 편. 톱스타의 것은 앞의 두 젠느의 것과 달리 크고 화려하다[39].
톱스타 인사 후에는 다함께 공연 주제가를 부르면서 톱콤비, 2번수, 기타 비중있는 조연들이 은교[40]로 나아가 다시 관객에게 인사한다. 그리고 양 옆의 젠느들과 서로 인사한 후 다시 무대 안쪽으로 돌아와 중앙의 톱스타 주위에 모두 서서 손을 흔들며 인사하는 것을 끝으로 무대의 막을 내린다. 공연 첫날이나 마지막 날(천추락) 등 특별한 날에는 몇 번씩 막을 걷었다 내리면서 관객에게 감사의 말을 전한다.
공연 작품들은 대개 뮤지컬의 형태로 공연하지만 장르를 가리지 않는다.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41][42]' '몬테크리스토 백작' 같은 소설부터 영화 '오션스 일레븐', 만화 '베르사이유의 장미', '메이의 집사', '백작영애', '루팡 3세', 게임 '역전재판', '왕가를 위한 노래[43]' 등을 창작 뮤지컬로 제작해 공연했으며, 뮤지컬 '엘리자벳', '팬텀', '스칼렛 핌퍼넬' 같은 해외 뮤지컬은 물론 'boxman'같은 창작 시대극도 공연하는 등 소재가 매우 다양하다. 다카라즈카 붐이 식어 위기에 처했을 무렵에는 베르사이유의 장미를 뮤지컬로 만들어 공연해 공전의 히트를 기록했으며, 이후 다카라즈카 가극단의 대표 레퍼토리가 되었다[44]. 그러나 정작 원작만화는 다카라즈카 극단의 남성역할 배우에게 영향을 받았다고[45][46]. 이야기가 워낙 방대해서 오스칼 편, 오스칼과 앙드레[47], 페르젠 편, 페르젠과 마리 앙투아네트편, 외전 편 등으로 나누어 따로 공연한다[48]. 명실상부 다카라즈카의 대표작으로서 화려한 의상과 노래, 규모가 볼만하다. 하도 남역 중심으로 극이 진행되다보니, 오스칼과 앙드레는 그렇다쳐도 원작의 진 주인공이나 마찬가지인 마리 앙투아네트의 비중은 점점 갈수록 페르젠에 밀려 줄어들고 있다.
2005년에 성조가 '마리 앙투아네트와 페르젠 편'으로 내한공연을 하기도 했다.
2009년에는 한류붐을 타고 태왕사신기를 각색 밑 제작해 공연했다. 공식홈페이지
최근 다카라즈카에서 공연한 가장 충격적인 공연은 하나구미의 '전국 바사라-사나다 유키무라 편-'. 톱여역을 위한 오리지널 여주인공 배역도 추가했다. 다카라즈카의 강점인 원작에 충실한 높은 퀄리티의 캐릭터 재현도 + 젠느들의 명연기로 호평 속에 종연했다고.
다카라즈카만의 특이한 점이라 하면, 일부 소극장 공연, 저작권에 저촉되는 작품을 제외한 거의 모든 공연을 DVD로 발매한다는 것이다[49]. 천추락 등의 기념할만한 공연, 예전 공연의 재방송, 기타 오리지널 프로그램 등은 극단 전용 CS채널인 TAKARAZUKA SKY STAGE를 통해 방송한다. 공연 외의 프로그램은 WOWOW 등에서 방송되기도 한다. 엄격했던 예전에는 젠느들의 외부방송 출연이 거의 없었다고 하는데, 시대가 시대인지라 현재에는 아라시니 시야가레나 SMAPXSMAP 등의 토크쇼에 가끔씩 젠느들이 출연하곤 한다.
참고로 1996년에 뮤지컬 '엘리자벳'을 일본에서 초연했으며, 주연인 토트 역을 맡았던 당시 유키구미 톱스타 '이치로 마키'는 이 공연으로 퇴단한 후 2000년에 토호 극단의 엘리자벳 공연에서 히로인 엘리자벳 폰 비텔스바흐역을 맡았다[50][51]. '엘리자벳'과 관련하여 재미있는 기록이 있는데, 츠키구미 톱스타 출신의 세나 준은 엘리자벳, 토트, 루키니 3개의 역을 모두 연기[52]해본 세계 유일의 연기자다.
스칼렛 핌퍼넬의 경우, 프랭크 와일드혼[53]이 브로드웨이에 올렸을 땐 큰 반응이 없었는데, 다카라즈카에서 각색해 올린 뒤 대히트를 쳤다. 원작자인 와일드혼이 당시 이 공연의 주연을 맡은 성조 톱스타 아란 케이의 목소리에 맞춰 '한조각의 용기'라는 곡을 새로 작곡했다고 한다.
블랙잭도 뮤지컬로 만들어 공연한 적이 있다. 정말 못하는 공연이 없다 OTL. 일본의 인기 드라마 시리즈 '파트너(相棒)'도 뮤지컬화 되었다. 주연이며 다카라즈카의 광팬으로 유명한 오이카와 미츠히로는 '이때 만큼은 내가 남자인게 분하다'는 코멘트를 하기도 했다고.
2012년 드디어 은하영웅전설도 무대화하였다. 무대사진을 보면 정말 '일본''여성'이 맞나 싶을 정도로 원작과의 싱크로율이 높다.
2015년 1월 1일, 다카라즈카 101주년을 맞이하여 일본의 국민만화 루팡 3세도 다카라즈카 오리지널 스토리로 무대화되어 호평 받았다. 각본의 경우 루팡 3세의 세계관과 다카라즈카 세계관을 잘 융합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배우들 역시 원작자인 몽키 펀치가 극찬할 정도의 싱크로율과 열연을 자랑했다. 유명 개그맨 치하라 주니어도 첫 관극을 갔다온 후 라디오에서 극찬. 루팡의 명대사들을 여성이 하는데도 위화감이 없이 재미있었다고.[54]

7. 사건 및 사고



7.1. 카츠키 히로미 사망 사고


1958년 4월 1일 <봄의 춤, 꽃속의 아이들>의 공연 도중 여역 배우 카츠키 히로미(香月弘美, 1936.8.21~1958.4.1)[55]가 향년 21세로 무대기구의 회전축에 휘말려 사고사 했다.
정확한 사고 시기는 공연 제12장 '트럼프의 나라'로 연인 사이인 하트6(남역)과 하트7(여역)이 트럼프 나라 왕과 여왕의 분노가 담긴 살인 광선을 맞고 리프트를 통해 무대 밑으로 가라 앉는 장면이었다. 당시 하트7 역을 맡았던 히나츠 유리(日夏有里)가 감기로 휴연하여 3월 31일 낮 공연부터 카즈키가 대역을 맡았다. 상대역은 초등학교부터 동급생이었던 마츠시마 미나코(松島三那子).
무대 아래로 사라지는 연출을 할때 드레스 자락이 무대 리프팅 기구에 끼였던 것이 큰 원인이었는데, 이 드레스 자락을 넓게 퍼지게 하기 위해 안에 입고 있던 후프 스커트(hoop skirt)의 스틸 벨트가 허리를 조이면서 말그대로 '''상반신과 하반신이 절단되어''' 그 자리에서 즉사했다. 이는 불과 10여초 만에 일어난 사고였다고 하며, 당시 사망 진단서에 따르면 절단된 하반신 아래로 오른발이 오그라지고, 왼쪽 무릎 밑이 골절되어 있었다고 한다. 물론 상반신은 멀쩡했고, 말 그대로 허리가 잘려 죽었다.[56] 이때 상대역이었던 마츠시마는 한동안 PTSD로 고생했다.[57]
그 이후로 무대 기구마다 안전장치를 설치하고 의상에 쓰이는 금속 재질은 모두 대나무 등 부서지기 쉬운 재질로 바뀌었다. 워낙 끔찍한 사고인데다 오래되어서 다카라즈카 내에서는 물론이고 팬들 사이에서도 언급이 안되고 있는 상황이다.

7.1.1. 마츠시마 미나코의 기록에 언급된 내용


마츠시마의 회상에 따르면 3월 31일 공연과 4월 1일 낮 공연 때까지는 아무 문제없이 공연을 마쳤다. 하지만 저녁 공연인 오후 6시 25분경에 사건이 일어난 것. 사건이 일어난 장면은 왕의 대사인 "버튼을 눌러라"[58]와 함께 끽끽 소리가 나고, 동시에 연인 남녀(하트 6,7)는 관객을 향해 서로 부둥켜 안고 괴로워하는 표정으로 객석에서 가장 가까운 리프트(가로 약 1m가로 세로 약 3m)로 넘어가 무대 밑으로 퇴장하는 내용이었다. 당시 객석 기준으로 하트 6이 왼쪽, 하트7이 오른쪽이었고 남역은 몸에 착 달라붙는 스타킹 의상, 여역인 카츠키는 후프스커트를 받쳐입은 드레스 의상이었다.
마츠시마는 트럼프의 나라 장면이 끝난 뒤 바로 다음 장면에 출연해야 했기에 하야가와리[59]를 위해 객석에서 모습이 보이지 않을 때 즈음 바로 바닥으로 뛰어 내려가 하야가와리실로 달려갔다. 세 발자국쯤 달려갔을 때 등 뒤에서 "그만!"이라는 소리와 함께 바스락거리는 소리, 뭔가가 튀는 소리가 나는 것이 들려 뒤를 돌아보니 밀랍 인형처럼 무표정한 카즈키의 얼굴과 의상의 붉은 천이 리프트에 끼어 도는 것이 보였다. 마츠시마가 리프트에서 뛰어내리고 단 1초만에 생긴 일이었고, 카츠키와 '''같이 퇴장한 바로 직후에 상황을 목격'''했다.
카츠키의 드레스에는 드레스 자락을 넓게 펼치기 위한 후프스커트 허리부분에 2cm, 두께 1mm의 스틸 벨트가 부착되어 있었고, 허리 아래와 무릎 위치, 드레스 끝자락 3곳에 지름 약 60cm, 70cm, 1m의 고리가 장착되어 있었다. 카츠키는 드레스의 옷자락이 리프트에 끼면서 스틸 벨트와 무대를 받쳐주는 철제 지주 사이에 발이 끼인 채 끌려들어간 것이었다. 이때 스틸 벨트가 허리를 조여 몸이 두 동강 난 채 즉사한 것. 하지만 상반신을 제외한 절단부와 하반신이 모두 의상 드레스로 덮여있었기에 마츠시마는 카즈키가 즉사했던 것을 알 수 없었다.
다음 장면도 있었기에 빠르게 옷을 갈아입으러 갈 수밖에 없었던 마츠시마는, 가던 길을 계속 가면서도 당황한 채로 "멈춰! 멈춰!"라고 소리를 질렀다. 그리고 의상을 갈아입고 있을 때 카츠키의 사망 소식을 들은 마츠시마는 곧바로 그 이후의 기억을 잃었다. 주위 사람들에 의하면 카츠키의 이름을 큰 소리로 부르거나 "내가 대신 죽을 걸 그랬다"고 외치며 날뛰는 등 반쯤 미쳐버렸다고 한다.
이후 마츠시마는 <즈카아가씨의 아메리카 일기(ヅカむすめのアメリカ日記)>라는 책을 출판했는데, 이 책에는 다카라즈카의 미국 공연에 대한 이야기가 주로 실려있으며, 뒷부분에는 카츠키 히로미 사망 사건에 대한 회상이 쓰여있다. 마츠시마가 해당 책을 출판한 주요 이유가 사고 회상이라고 언급했는데, 이후 주연급을 맡길 정도로 장래가 촉망되었던 마츠시마에 관한 기사나 무대 사진이 발견되지 않았다. 그렇게 1969년 예명을 마츠시마 카요코(松島加代子)로 바꾸고 같은 해 11월 퇴단하였다.

7.2. 공연 관계자 코로나19 감염



7.2.1. 발생 전


2020년 4월 일본에서의 코로나19 사태 급증으로 인해 모든 조, 모든 공연의 공연들이 무기한 연기되면서 다카라즈카 가극단 106기생의 초무대부터 퇴단자의 퇴단 예정일, 조이동 생도의 조이동일 등 모든 행사들 또한 무기한으로 연기되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졌다. 다카라즈카 가극단의 공연 특성상 한 조의 공연에 출연자와 스태프를 포함하여 150명 이상의 인원이 동원되기에 감염에 대해 주의를 기울일 필요성이 있다. 하지만 이러한 상황은 전쟁 이후 처음이기에 퇴단자의 경우 향후 활동 계획을 전면 수정해야 하는 상황이고 중지되는 공연의 신인공연에서 주연을 맡은 생도들 또한 언제 본인이 해당 작품으로 신인공연 무대를 설 수 있을지 알 수 없게 되었다.[60]
2020년 6월 26일 공연 일정 재조정이 발표되면서 화조외 성조의 공연이 가장 먼저 시행되게 되었다. 대극장 공연인 화조는 공연 일부에서 연출을 변경하여 인원 수를 조정하고 축소 상연을 하되, 신인공연은 그대로 상영하기로 했다. 도쿄극장 공연인 성조의 경우 전일정 출연자, A일정 출연자, B일정 출연자로 나누어 정해진 일정에 일부 생도만 출연하는 것으로 결정되었다.
그렇게 7월 17일부터 공연이 다시 시작되었다. 106기생의 초무대인 월조공연과 그 이후에 예정되어 있었던 주조 공연까지는 올해 안에는 상연할 예정임을 발표했기에 그래서 104기생의 첫 신인공연 주연, 유즈카 레이의 오히로메는 가능할 전망이며 7월 이후 예정되어있던 모든 공연이 취소되어 설조 톱스타인 노조미 후우토와 톱여역인 마아야 키호의 퇴단 공연이 약 6개월 밀렸다.
여담으로 1918년 11월 5일 3기생 여역 우지 아사코(宇治朝子)가 당시 유행했던 스페인 독감에 감염되어 향년 18세에 사망한 전례가 있다.

7.2.2. 확진자 발생 및 감염 현황


'''극단 내 감염 상황''' (2020.08.15 기준)
'''화조'''
13명(생도 9명 / 스태프 4명)
'''월조'''
-
'''설조'''
1명(생도 1명)
'''성조'''
1명(관계자 1명)
'''주조'''
-
'''전과'''
-
2020년 8월 4일 화조 다카라즈카 대극장 공연 <하이라카 씨가 간다> 공연이 중단됨이 공지되며 극장 관계자가 코로나바이러스-19에 감염된 사실이 알려졌다. 극단측은 화조의 생도 A가 2일 미각 이상을 보여 검사 후 4일 양성 판정을 받았으며 생도 B 또한 같은 날 검사 후 양성 판정을 받았다. 생도 C는 3일 검사를 받아 양성 판정을 받았는데 C의 경우 무증상 감염이었으며, 극장 직원 D는 7월 29일 발열 증상으로 감기 진단을 받았으나 8월 2일 검사에서 양성 판정을 받았다고 전했다. 이후 8월 7일 확진자 11명(생도 8명, 스태프 4명)이 확진됨을 알리며 다카라즈카 대극장 및 도쿄 극장의 공연을 중단하게 되었다.
8월 7일에는 도쿄 극장에서 공연 중이던 성조의 공연 관계자가 무증상 양성 판정을 받아 8월 20일까지 공연 중지를 발표했다.[61] 또한 8월 8일에는 설조의 생도 1명이 무증상 확진 판정을 받았다.
8월 15일 극단 측에서 화조 다카라즈카 대극장 공연에 대해서는, 공연 관계자 전원을 대상으로 PCR 검사를 실시했다고 밝혔다. 이때 8월 7일 시점에서 음성이 나오고 자가 격리중인 생도 1명이 컨디션 불량을 호소하여 다시 PCR 검사를 실시하였는데, 양성 판정을 받았다.

7.2.3. 극단측의 대처


극단 측에서는 확산 방지를 위하여 '''자발적인 PCR검사'''를 진행하였고 최다 확진자가 발생한 화조의 경우 관계자 전원을 대상으로 검사를 진행했다. 공연 진행에 관한 조정 사항은 아래 내용 참고.
  • 화조 - 다카라즈카 대극장 공연 <하이카라씨가 간다>
    • 8월 2일~4일, 극장 관계자의 컨디션 불량 호소로 인해 공연 휴연.
    • 8월 4일, 확진자 발생으로 당분간 공연 중단 발표.
    • 8월 7일, 8월 16일까지의 공연 일정 중단 발표.
    • 8월 14일, 8월 31일까지의 공연 일정 중단 발표 및 신인공연, 스테이지 토크 대체 일정 실시 보류.
  • 설조 - 우메다극장 메인홀 공연 <불꽃의 볼레로 / Music Revolution!-New Spirit->
    • 8월 14일, 확진자 발생으로 티켓 일반 판매 및 8월 25일까지의 공연 일정 보류 발표.
  • 성조 - 도쿄 다카라즈카 극장 공연 <현요의 계곡 ~신성강림~ / Ray -별의 광선->
    • 8월 7일, 확진자 발생으로 당분간 공연 중단 발표.

8. 여담


  • 단원 전원이 여성이고 남자역과 여자역을 나누어 연기한다는 점, 엄격한 교육 과정과 선후배간의 깊은 유대로 인해 이들이 레즈비언일 것이라는 오해를 하거나 백합물을 떠올리며 환상에 빠지는 사람들도 있지만, 이들도 결국 평범한 여성일 뿐이다. 인간인 이상 단원 중 동성애자가 없지는 않겠지만 상기한 이유만으로 동성애자 양성소쯤으로 치부하는 것은 말이 안 된다는 이야기.
  • 남역과 여역의 구분은 오직 하나뿐이다. 그래서 다카라즈카 가극단에 입단하기 위해 입학해야 하는 학교인 다카라즈카 음악학교에서는 고의로 173cm이상의 여학생을 일부 선발한다. 남역과 여역을 구분하는 기준이 되는 키는 168cm이지만 166~169cm 정도에서 남역과 여역을 겸하는 경우도 있다. 이에 따라 키에 대한 스펙트럼이 매우 넓어서 150cm에서 180cm 이상도 선발하며 102기 생 중 오오쿠스 테라는 키가 180cm이다. 또한 연습시(비공연시)[62] 남역과 여역은 헤어스타일만 다른데 속칭 '승무원 머리'를 하고 있으면 여역, 남자같은 헤어스타일을 하고 있으면 남역이다.
남역과 여역의 헤어스타일 예시(102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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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키 다이야(侑輝 大弥)
스즈미나 나츠키(鈴美梛 なつ紀)
남역/173cm
여역/163cm
  • 일본인, 특히 일본 여성의 평균신장이 많이 낮은 편에 속하는 탓에 남역 배우에 대해 굉장히 아쉬워하며 갈망하고 있다. 그래서 키가 큰 여자를 엄청나게 선호하는데 키 180cm 이상에 다른 응시자와 비교해서 특출나게 떨어지지만 않는다면 어지간하면 붙여주려고 애를 쓴다. 한마디로 키가 큰게 다카라즈카 음악학교 프리패스권이 된다는 것. 다만 180cm 이상의 여성은 일본 뿐만이 아니라 아시아권 나라를 통틀어도 상대적으로 적은 케이스고,[63] 실제로 102기 생 중에서 오오쿠스 테라가 키 180cm인데 키 180cm 이상의 생도는 몇 개의 기수 정도에서 단 1명밖에 안 나올 정도로 희귀하다. 때문에 극단 차원에서 엄청 귀중하게 여긴다.
  • 배우 숫자는 360명[64] 가량 되지만 이를 보조하는 스텝은 1,000명에 달한다. 그만큼 준비가 많고 어렵다.
  • 의상이 매우 화려하다. 내부에 전문 의상팀을 두고 공연에 쓰이는 의상, 장신구 등의 소품은 공장이나 외주제작을 거의 맡기지 않고 직접 수작업으로 제작하는데 그 디테일은 놀랍도록 정교하고 아름답다. 작은 큐빅 하나의 디테일도 놓치지 않는다고. 다카라즈카의 타이트한 공연 스케줄을 생각하면 아무리 재탕하는 의상이 있다고 해도 연 9회 본공연에 이런저런 소극장 공연, 기타 스페셜 공연들 의상을 다 챙기려면 꽤나 바쁠 듯하다.
참고로 대극장에는 이 의상들과 가발 일부를 체험할 수 있는 사진촬영 스튜디오인 살롱 드 다카라즈카가 있는데, 전화 및 인터넷 예약제. 가발과 의상만 착용/촬영하는 쇼트스테이지(ショートステージ)와 화장까지 포함해서 분장/촬영하는 메이크 스테이지(メイクステージ)로 나뉘어져있다. 다만 메이크 스테이지는 여성 손님 한정으로만 예약 및 이용가능하다.
  • 작품의 폭이 상당히 넓다. 고전적인 작품들도 있지만 루팡 3세, 은하영웅전설 등 애니메이션이 원작인 작품도 있다. 창립 95주년 기념작으로 태왕사신기를 공연하기도 했다. 연출의 말에 의하면 작품을 선택할 때 한국 공연도 많이 참고한다고 한다.
  • 종종 한국의 여성국극과 비교되기도 하지만, 여성국극의 경우에는 창립멤버가 1948년 당시 국악원에서 여성들만이 떨어져 나온 "여성국악동호회"라서 국악식의 창가와 전통 소재를 사용하는 것이 기본이지만, 다카라즈카의 경우에는 위에 나온 레퍼토리를 보면 알겠지만 애니메이션, 게임 등 별의별 소재를 다 끌어다 쓰고 있으며, 음악도 브라스 반주를 기본으로 하는 완전 서양식 공연이라 그 알맹이는 전혀 다르다. 둘 사이의 규모면에서도 넘사벽의 차이가 난다. 규모 문제는 상술했듯이 타카라즈카의 모 기업이 한큐 전철인 데다가 여성국극 같은 경우에는 기존 소규모의 극단이 여러 개로 갈라졌다.
  • 게임 사쿠라 대전의 주인공들이 평시에 소속되어 있는 제국 가극단의 모티브이기도 하며, 실제로 다카라즈카의 배우들은 5개조+특별조로 나누어서 각기 활동을 하고 있어 이 점을 사쿠라 대전이 따왔다.
  • 애니메이션 포켓몬스터 베스트위시 100화에 나온 화원 가극단도 타카라즈카의 판박이다. 날아라 호빵맨의 '츠키노시라타마 씨' 또한 타카라즈카를 모티브로 한 캐릭터로, 화려한 뮤지컬 무대와 남장 기믹 등을 가지고 있다. 히나코 노트에서 언급된 스즈란 극단도 다카라즈카를 모티브로 했다.
  • 2002년 7월부터 극장 중계와 공연 정보를 중심으로 한 전문 채널 'TAKARAZUKA SKY STAGE'가 방송되고 있다.
  • 덕후의 나라인 일본이니만큼 다카라즈카 오덕들도 상당수 있다. 극단의 특성상 여성이 압도적으로 많다. 학생부터 중년까지 범위가 상당한데다가 활동력도 대단해 본토에서는 알아주는 덕후집단들 중 하나. 대를 이어 다카라즈카 팬인 집도 있다. 톱스타의 은퇴 공연을 볼 때 객석에서 단체로 우는 경우는 예삿일이다. 기간 한정으로 판매하는 특정 공연과 관련된 만쥬를 냉동 보관해 모으기도 하고 오키나와에서 공연을 보러 오는 경우도 수두룩하다. 일본의 대표 미인 배우 키타가와 케이코가 다카라즈카의 엄청난 팬이라 전국 투어 원정까지 다닌다고 알려져 있으며, 일본 아이돌 AKB48의 멤버 출신 배우 와타나베 마유노기자카46의 멤버 노죠 아미 역시 다카라즈카의 엄청난 팬으로 유명하다.
  • 아키히토 덴노의 차남 후미히토 친왕의 친어머니가 다카라즈카 가극단의 여배우라는 소문도 있다. 사실 미치코 상황후의 친아들이 아니라 서자라는 설[65]. 우스운 것은 후미히토 친왕 역시 다카라즈카 가극단의 여배우와 내연 관계라는 소문이 돌았다. 그런 소문이 도는 와중에 후미히토 친왕은 아내 키코 비와 함께 100주년 기념 공연에 참석하여 빈축을 사기도 했다.
  • 영화 배급사인 도호 주식회사는 도쿄(京)와 다카라즈카(塚)의 앞 글자를 따서 지어졌다.

  • 다카라즈카 가극단을 다룬 다큐멘터리. 2003년 이전에 제작된 다큐멘터리라 지금은 폐장된 놀이공원 패밀리랜드도 나온다.


[1] 한큐 전철 창유사업본부 가극사업부가 운영하고 있다. 즉, 다카라즈카 가극단은 한큐 전철의 분할회사나 자회사 형태가 아닌 본사가 직접 관할하는 직할조직이다.[2] 역대 신기록. 가동률 다카라즈카 대극장 102.8%, 도쿄 다카라즈카 극장 101.8%.[3] 이것 때문에 선발 과정에서 키 173cm 이상의 여성을 일정 비율로 선발한다.[4] 남성 배우만 있기 때문에 여성 역할도 남성이 소화하는 가부키와는 반대.[5] 다카라즈카 + '파리지앵(파리지엔느)'의 합성어. 표기는 タカラジェンヌ.[6] 다카라즈카 대극장.[7] 도쿄 다카라즈카 극장.[8] 중극장의 다카라즈카 바우홀(다카라즈카시)도 소유하고있다. [9] 사실 한큐 전철이 취한 발전 전략이 이거였다. '''연선에 대중을 끌어들일 만한 시설을 짓는다''' - '''그 시설 이용객이 자사 철도 노선을 이용하도록 유도한다'''. 그리고 이 전략은 상당히 효과를 보게 되어 가극단도 철도 노선도 모두 성공하게 되었다. 이후로는 다른 사철들도 한큐 벤치마킹을 많이 했다. 같은 간사이의 한신 전기철도(코시엔역한신 코시엔 구장)부터 도쿄의 경우에는 세이부 철도(세이부 유원지 및 세이부 돔), 도부 철도(도쿄 스카이트리 및 도부동물공원 등) 등의 사례가 있다.[10] 공식 남성 단원까지는 아니지만 가부키 배우이자 전통무용가인 4대 하나야기 쥬스케(四代目花柳壽輔)가 2012년에 별세한 카스가노 야치요(春日野八千代)의 대역으로 2014년 100주년 기념식 공연에 출연했다.[11] 그 영향으로 현재 오스칼마리 앙투아네트, 스칼렛 오하라레트 버틀러는 거의 다카라즈카하면 떠올리는 마스코트나 다름없는 존재나 마찬가지다.[12] 일본의 사철들은 보통 선로를 건설한 뒤, 연선에 각종 시설들과 택지지구를 개발하여 이들 시설의 이용료나 주택의 분양 수익을 얻음과 동시에, 철도의 이용객 향상까지 이끌어내는 방식으로 성장해왔다. 특히 타카라즈카 가극단을 설립한 한큐 전철은 이 방식으로 특히 크게 성장한 회사다.[13] 최근에는 재단 경력 20년 이하의 배우들이 전과로 조이동하는 경우가 잦아졌다. 보통 14년차 이상의 남역들로, 하급생 시절 톱스타 노선을 달렸지만 톱스타 후보에서 밀린, 그러나 인기는 꽤 많은 젠느 중 전과로 이동하는 경우가 있다.[14] 카스가노 야치요(春日野八千代)를 그 예로 들 수 있다. 본명 이시이 요시코(石井吉子)로 1915년 생이며, 2012년 8월 29일에 만 97세의 나이로 별세하기 전까지 다카라즈카에서 활동했다.[15] 과거의 전속 작곡가로 유명한 인물을 꼽자면 테라다 타키오, 요시자키 켄지 등. 7~90년대 다카라즈카 공연의 음악은 대부분 이들에 의해 만들어졌다.[16] NHK 홍백가합전은 도쿄 시부야에 NHK 홀이 세워지기 직전인 1972년(제23회)까지 이곳에서 녹화 및 생방송되었으며, 2000년에 리모델링 및 증축을 거쳐 오늘날에 이른다.[17] 과거 이화여대의 금혼학칙처럼 조혼으로 부터 배우들을 권리를 지키기 위해 제정된것이 그 유래로, 퇴단 전 활동기간에는 교제는 허락하지만 결혼은 불허한다.[18] 퇴단한 후에도 일반적으로 남자배우가 맡는 배역을 공연하는 배우들의 사례가 가끔 있다.[19] 무려 '''톱 여역''' 출신이다. 이러한 후덜덜한 경력 때문인지, 콘서트 영상에서 CD를 씹어먹은 수준의 라이브를 선보여 팬들을 감탄하게 했다.[20] 하지만 현재에는 오사카의 가극단인 OSK일본 가극단이나 나가사키현의 가극단인 가극 더 레뷰 하우스텐보스에서도 어느정도 사용하고 있다.[21] 이는 라이선스 뮤지컬이라 해도 예외는 없다. 대표적인 예가 '엘리자벳'.[22] 예외로 톱스타가 히로인 역할을 맡을 때가 있는데, 예를 들자면 엘리자벳스칼렛 오하라 역이 있다.[23] 아마미 유키는 예외로 입단 6년 반 만에 주연남역에 취임했다.[24] 이 시절 류 마사키가 극단에게 당한 수모를 생각하면, 니방테를 준톱이라고 함부로 부를 수 없다.[25] 연 7년 이하의 하급생 남역 팬들은 자신의 젠느가 신인공연 주연을 맡을지에 대해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그도 그럴 수 밖에 없는 게, 톱스타가 되려면 몇 가지 조건을 갖춰야 하는데, 그 중 하나가 신공 주연 여부다. 신공 주연 경험이 없으면 나중에 인기가 갑자기 많아져도 톱이 될 수 없다. 다카라즈카 역사상 예외는 딱 1명으로 신공연차 뒤에 믿을 수 없을 만큼의 인기 급증+어른들의 사정으로 탑이 되었다. 하지만 이 경우도 구색을 맞추기 위해 신공과 비슷한 공연의 주연을 시킨 뒤에 톱에 올랐다. 이런 예외는 앞으로도 없을 경우라, 연7이전에 신공 주연이 없는 남역이라면 톱의 꿈은 바이바이.[26] 주로 톱스타나 2번수[27] 그래서 운동회 한 번 하면 방송사 카메라들이 총출동한다. 운동회 다음날 아침 정보방송에는 다카라즈카 대운동회 이야기가 꼭 나올 정도.[28] 우승 상금이 어마어마하다. 2014년에 열린 100주년 대운동회의 우승팀에는 상금 100만엔이 걸려있었다.[29] 재능 많은 무대인들답게, 대운동회에서 벌어지는 입장 퍼레이드+응원전도 볼거리가 많다.[30] 해외 라이센스 뮤지컬(엘리자벳 등)이나 상연시간이 긴 작품은 '레뷰'를 생략하고 1막-인터미션-2막 체제로 진행한다.[31] 레뷰가 없을 경우 2막이 끝난 직후[32] 하급생들이 단체로 줄을 맞춰 다리를 차올리며 추는 군무. 우리나라에서는 킥라인이라고 한다.[33] 상기한 3가지 장면의 경우 레뷰가 있는 공연에서는 로켓만 레뷰 중반부쯤에 삽입되고 나머지는 생략한다.[34] 주로 다카라즈카 남역의 상징인 흑연미[35] 피날레 때 사용되는 큰 계단[36] 이를 에뜨와르(エトーワル)라 하는데, 가창력의 실력자들이 맡는다. 톱스타는 아니지만 이 역을 맡는 것을 목표로 하는 젠느들도 많다.[37] 이때는 단역부터 톱스타까지 모두가 '샹샹'이라 불리는 작은 장식물을 손에 들고 내려온다. 긴 리본이 달리거나, 봉 형태로 두 손에 잡기도 하는 등 종류가 다양하며 보통 공연의 테마에 맞게 디자인된다. 예를 들면 '엘리자벳' 공연에는 합스부르크가의 문장, '베르사이유의 장미'는 장미 꽃다발 모양의 샹샹이 사용된다.[38] 그나마도 레뷰가 없으면 2번수와 톱 여역은 날개가 생략되는게 부지기수. 톱스타는 거의 모든 공연에서 날개를 착용한다. 단 '베르사이유의 장미'나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등의 작품은 제외.[39] 그리고 그만큼 무겁다. 실제로 '''타조 깃털을 사용'''한다고. 톱스타 용은 15~20kg 정도라고 한다. (거의 완전군장 수준) 다카라즈카 톱스타 출신 배우들이 TV 예능에 출연할 때 단골로 쓰는 네타.[40] 무대 전면 오케스트라 석 앞에 설치된 좁은 길 모양의 무대[41] 실제 공연은 원작소설이 아니라 동명의 헐리우드 영화의 영향을 받아 만들어졌고, 몇몇 의상 디자인과 대사를 영화에서 차용했다.[42] 신인공연을 제외하면 역대 스칼렛 배우들의 대부분은 주로 톱스타들이 맡아왔다.[43] 오페라 '아이다를 원작으로 제작된 뮤지컬.[44] 다만 제작 초기에는 다카라즈카 쪽 높으신 분들의 무관심 밑 무시와 원작의 분위기를 훼손시킬까 우려한 원작 팬들의 반발이 있었는데, 심한 경우에는 제작진 측에 '''면도날'''이 협박편지와 함께 전달되는 등의 일이 있었다고 한다. 참고[45] 그 증거는 볼것도 없이 오스칼이다.[46] 베르사유의 장미의 원작자 이케다 리요코는 소녀 시절 다카라즈카 음악학교 시험을 보았으나 떨어졌다고 한다.[47] 2001년 버전을 제외하면 앙드레가 베르나르와의 대결에서 눈에 부상을 잃고 오스칼이 위병대로 전입하는 시점에서 줄거리가 전개된다.[48] 초판 공연 한정으로 '앙드레와 오스칼 편'이 있었는데, 다른 버전에서는 없는 오스칼의 드레스 차림이 초반부에 나오며, 로잘리의 비중도 작지 않았다.[49] 다만 이전부터 팬들로부터 인기있었던 몇몇 공연은 블루레이판이 발매되었는데, 2014년 10월 현재 공연중인 화조의 '엘리자벳' 공연부터는 DVD와 블루레이 2가지 종류로 발매한다고 한다.[50] 이후 토호극단 버전 엘리자벳 공연의 엘리자벳 역은 지금까지도 다카라즈카의 톱스타 출신 배우들이 맡고 있다.[51] 토호버전 엘리자벳을 공연할당시 죽음 역할이었던 배우 우치노세이요와 결혼했다.[52] 루키니는 2002년 화조 버전에서, 엘리자벳은 2005년 월조, 그리고 토트는 2009년 월조에서 연기했다. 퇴단 후에는 토호버전 엘리자벳에서 엘리자벳을 다시 연기했다.[53] 2014년 소라구미 출신이자, 역대 최장기 집권 톱스타였던 와오 요우카와 결혼했다.[54] https://youtu.be/m6vGrCdWZHo.[55] 41기생으로, 1954년에 화조 소속으로서 여배우로 데뷔했다. 당시 동기생 성적으로 51명 중 17등을 했으며 장래가 상당히 촉망되었다.[56] 다만 잘려나간 허리와 하반신은 긴 드레스 자락에 모두 가려졌기 때문에 당시 처참한 모습을 알아볼수 없었다고 한다.[57] 두 사람은 초등학교와 중학교를 함께한 동급생이었기에 그 충격은 더욱 클 수 밖에 없었다.[58] 원문은 ボタンじゃ![59] 다음 장면을 위해 빠르게 의상을 갈아입는 것.[60] 화조와 월조의 경우 미하네 아이, 키요라 하류와 같이 104기생이 생애 첫 히로인으로 발탁된 작품이 무기한 연기되었기에 더욱 안타까운 상황이 되었고 특히 화조는 톱 스타 취임 후 대극장에서의 첫 공연이 예정되어 있던 유즈카 레이의 대극장 오히로메 공연이 무기한 연기된 상황이다.[61] 공연 관계자가 극단 생도인지 스태프인지는 밝혀지지 않았다.[62] 공연을 할 경우에는 해당 배역에 맞게 헤어스타일을 수정한다.[63] 당장에 일본보다 평균신장이 높은 우리나라만 해도 여성의 키가 160대 후반이면 큰 키로 쳐준다.[64] 5개 조에서 각 조당 70 ~ 80명 사이의 인원이 존재[65] 여동생 구로다 사야코에게도 같은 소문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