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하시야(유다)
기원전 841년
남유다 왕국의 6대 국왕. 한국 천주교 성경에서는 아하즈야라고 한다.
북이스라엘의 아하시야와는 동명이인으로, 여호사밧 왕의 아들인 여호람의 후임이며, 이스라엘 아합 왕의 딸 아달리야와 여호람의 사이에서 태어난 막내아들이었다. 아합과 여호사밧이 생전에 사돈지간이었기 때문에 이루어진 관계. 재위기간은 달랑 1년.(...)
이스라엘의 요람(여호람) 왕의 제안으로 동맹을 결성하여 라못(시리아)의 하사엘을 쳤으나 원정은 실패하고, 요람 왕은 부상을 입었으며 본인은 목숨만 건져 돌아왔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예후의 역성혁명이 일어나, 요람 왕은 그 자리에서 도망치려다 화살을 맞고 사망, 아하시야 본인은 도주하다 결국 체포되어 사망했다.
이 부분에서 열왕기하와 역대하의 기록이 약간 나뉜다. 열왕기하에서는 아하시야가 도망치자 예후가 쫓아 공격해 부상을 입히고, 아하시야는 부상을 입고도 끝까지 도망치다가 결국 므깃도에서 죽었다고 기록하는데, 역대하에서는 혁명이 일어나자 사마리아에 숨었다가 발각되어 예후에게 끌려가 죽었다고 기록한다.
일단 결론부터 얘기해서 두 기록은 서로 일치하는 기록이다. 정리하자면, 우선 시리아 원정에 실패해 이스르엘에서 요양 중이던 요람에게 아하시야가 문병을 왔고, 그 때 예후가 요람을 찾아가 살해하였는데, 거기서 아하시야가 근처의 므깃도로 도주하여 숨어있다가 예후 반란군에게 검거된 것. '이스르엘'이라는 명칭이 당시 근처 성이었던 '이스르엘 성' 뿐 아니라 북이스라엘 전체를 아우르는 명칭으로도 병용되었기 때문에 발생한 혼란이다.
이후 유다의 왕위는 아하시야의 어머니이자 아합의 딸 아달리야가 차지한다. 그러나 아달리야는 오므리 왕조의 마지막 왕이 되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