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승원
1. 개요
한국의 독립운동가, 장로회 목사.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받았다.
2. 생애
안승원은 1872년 6월 23일 평안북도 의주군 모지면에서 태어났다. 그는 일찍이 기독교에 입교했고 1898년에 자신의 친구이자 훗날 민족대표 33인 중 한 사람이 될 유여대를 전도했다. 1910년 평양장로회신학교를 졸업한 후 대한예수교장로회 독노회에서 목사 안수를 받았다. 1919년 3.1 운동이 발 무렵, 그는 친구 유여대와 긴밀히 연락하면서 의주 일대에서 독립만세시위를 주도했다. 이후 4월에 아들 안병선(安秉善)과 김병조, 장덕로(張德櫓), 이원익(李元益), 조상섭(趙尙燮) 등과 함께 상하이로 망명했다.
상하이에 도착한 안승원은 대한민국 임시정부 조직에 참여했고 4월 23일 상하이에서 열린 제2회 대한민국 임시정부 임시의정원 의회에 의원으로 참석했으며, 5월 1일에는 손정도 등과 함께 '대한국예수교회 대표자' 이름으로 <만국예수교우에게>란 호소문을 작성, 여운형에게 맡겨 미국에서 개최된 만국장로연합회에 전달했다. 이후 1919년 9월 1일로 계획된 신의주 독립만세시위를 지휘하기 위해 8월 3일에 비밀서류를 휴대하고 귀향하여 용산교회에 들어갔다. 그러나 거사는 이뤄지지 못했고, 1920년 3월 2일 경찰에 체포되어 자강경찰서로 호송되어 심한 고문을 받은 뒤 1심에서 징역 2년을 선고받고 평양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르다가 1922년에 만기 출소했다.
안승원은 출옥 후 자신이 시무하는 용산교회에서 목회활동을 수행하면서 만주에서 독립운동을 하는 아들 안병선을 지원했다. 그러나 만년에 고문의 후유증으로 심장병에 걸려 1941년 9월 10일 맏아들 안병한(安秉翰)이 운영하는 의주군 복음서관에서 사망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83년 안승원에게 대통령표창을 추서했고, 1990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