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종운
1. 개요
한국의 독립운동가. 1990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받았다.
2. 생애
안종운은 1883년 9월 27일 충청남도 논산군 논산면 주천리에서 태어났다. 그는 1915년 7월 조선국권회복단(朝鮮國權恢復團)의 일부 인사들과 풍기광복단(豊基光復團)이 제휴하여 결성한 대한광복회(大韓光復會)에 가입하여 항일활동을 수행했다. 그러던 1918년 대한광복회 조직이 노출되어 다수의 동지들이 체포되자, 그는 몸을 숨기고 있었다. 1919년 3.1 운동이 발발하고 상하이에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수립되자, 그는 음력 8~9월경 우재룡, 소진형·권영만 등과 함께 자신의 집에 모여 전국의 부호들을 대상으로 군자금을 모집하여 임시정부를 지원할 것을 협의했다.
이에 따라 임시정부 및 독립군정서 명의의 군자금 모집 요구장 19통을 작성하여 논산군의 부호들에게 발송했으며, 자신은 논산의 부호인 재엽(金在燁)·김유현(金裕鉉)으로부터 거액의 군자금을 수령하여 임시정부 요원 김규일(金圭一)에게 전달했다. 이후 군자금 모집을 더욱 적극적으로 실시하기 위해 1920년 음력 2월 동지인 장응규를 상하이에 파견했다. 장응규는 국내에 주비단(籌備團)을 조직할 것을 의뢰받고 귀국하여 동년 음력 6월 서울 연지동 경신학교 교정에서 심영택을 단장으로 주비단을 결성했는데, 이때 안종운은 주비단의 부사령장을 맡았다.
안종운은 장응규로부터 임시정부 발행 공채증권 5천원분을 교부받고 이중 2천원 분을 조경준(趙景俊)에게, 나머지 3천원분을 이종근(李鍾根)에게 교부·매각하여 독립운동 자금으로 조달하고자 했다. 그러나 공채증권의 매각이 여의치 않자 무력을 동원하기 위해 폭탄 제조와 입수에 힘썼다. 그러나 주비단 조직이 발각되는 바람에 경찰에 체포되었고, 경성복심법원에서 징역 6년을 선고받고 옥고를 치렀다. 이후 서울로 상경해 그곳에서 조용히 지내다가 1948년 10월 30일에 사망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77년 안종운에게 건국포장을 추서했고 1990년에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했다. 그리고 1994년에 국립대전현충원 독립유공자 묘역에 그의 유해를 안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