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 살람 보카치오 98호 침몰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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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 페리선들과 비교해볼 때 '''비정상적으로 높은 높이'''에 주목하라.
MS al-Salam Boccaccio 98
1. 개요
2006년 2월 3일 이집트서 발생한 침몰 사고다.
2. 알 살람 보카치오 98호
배 길이가 118m, 폭 24m의 11,800톤인 카페리 여객선이다. 다만 이상하게 배의 높이가 피라미드같이 높은 것을 알 수 있는데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지금 이 두 배가 같은 선박으로 보이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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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1년 보카치오호로 항해하던 때.
알 살람 보카치오는 원래 1971년 이탈리아의 핀칸티에리 조선소에서 건조되어 보카치오라는 이름으로 오랜 기간 항해했다. 이때는 문제가 없었다. 유럽 지중해를 운행하는 카페리로써 사고 하나 없이 관리도 잘 되어가며 운영했기에 침몰사고나 경미한 사고도 없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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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조된 모습(후면). 원래와 비교해 보면 높이가 이상하게 높다.
그러나 1991년 탑승인원수를 1000명에서 1300명대로 늘려보려고 갑판 수를 2층 더 올렸다. 당연히 갑판이 높아져서 무게중심도 변하기에 배가 뒤뚱거릴 수 밖에 없었으나, 그래도 이때까지는 사정이 나쁘진 않았고 배의 상태도 이상이 딱히 없었으며 안전규정도 지켜가며 조심조심 운영했기에 잘만 운영하면 연안 페리선으로 잘 쓰다 급변침이 일어날거 같거나 위험하다 싶으면 퇴역시키면 그만이었다.
그러다가 1998년 이집트에서 이 배를 인수해가면서 사정이 점차 나빠지기 시작했다. 가뜩이나 91년 개조 때 높아져서 뒤뚱거리는 배에 과적수송을 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 배는 메카에 순례하러 가는 무슬림들을 태울 때도 자주 쓰였는데 이런 상황도 그렇고 승객들을 과거 보카치오호로 운영할 때보다 성의없이 운영하기 시작했다. 원래 1000명 가까이 하던 배를 개조해서 1300명만 태우고 갔을 때는 문제가 없었으나 평소 이집트에서 운영할 당시 정식 정원(승객 수용 수)은 1000명도 1300명도 아닌 2500명 이상이었다. 이 기사의 아랫부분 문단 참고 저 정도면 도냐 파즈호 침몰 사고나 르 줄라호 침몰사고와도 같은 전형적인 가축수송이다(...).
가뜩이나 91년도에 마개조했을 때도 고작 300명 늘어난 1300명이었고 정원이 다 차는 순간 딱 잘라버렸는데, 이집트에서 평상시 2500명으로 운영을 한 게 사실이라면 이집트로 가기 전에 또 내부 객실설비를 뜯어버리거나 하는 등 더 손을 봤다는 말이 된다. 본래 개조 전 1000명의 최고 3배 가까운 2500~3000명 정도를 태우고 다녔다고 한다.[1] 팔리기 전에 가뜩이나 높이 개조되어 이탈리아에서도 불안불안 했지만 그래도 이탈리아는 처음에 계획해뒀던 1300명만 제한적으로 채우고 정원이 다 차면 칼같이 승선을 차단하면서 그나마 조심조심 운항했는데, 이집트로 팔려가고 나서는 높아진 높이에다가 있는 사람 없는 사람 전부 집어넣은 셈이다. 그 외에 기계적인 면에서의 관리도 이탈리아 본토에서 관리할 때보다 훨씬 무성의했다고 한다. 사고 때 화재가 일어난 것과, 화재가 일어났는데도 제대로 대처 못 한 것도 보면...
후술할 사고 당시만 해도 승객 수 자체는 1414명이었으나 이전동안 그보다 더 많은 2000명 넘는 승객 수를 꾸역꾸역 채우고 굴려왔으므로 노후화는 더 심했을 것이다. 안 그래도 노후된 배에 화재까지 나고 결국 배가 중심을 잃어 기울어버린 셈.
게다가 이집트가 아닌 배에 대한 규정이 좀 느슨한 파나마에 등록된다거나 하는 등 여러모로 안 좋은 과정을 거쳐가며 규정들을 은밀하기 피해갔다. 그 외에도 운전자가 직접 차량을 운전해 선박에 오르고 내리는 구조로 차량이 들고 나는 것을 용이하게 하기 위해 외부에 대형 덮개를 설치했다. 문제는 이런 유형의 배는 물이 조금만 들어와도 흔들리기 쉬웠고, 1994년 에스토니아호 침몰 사고 이후 강화된 안전기준을 충족시키지 못해 유럽해역에서 퇴출됐다.
3. 사고 과정
당시 알 살람 보카치오 98호(이하 알 살람 호)는 승객 1318명과 승무원 96명 등 모두 1414명을 태우고 2일 오후 7시 (현지시간) 2월 2일 6시 30분, 사우디아라비아의 두바흐항을 출발해 8시간 뒤에 서남쪽으로 약 192킬로미터 떨어진 이집트의 사파가항에 도착할 예정이었다. 승객들은 대부분 사우디에서 일하다가 주말을 맞아 이집트로 귀환하는 노동자들과 사우디에서 일하는 가족을 만나고 돌아가는 사람 등 이집트의 서민들이었다. 사고 여객선에는 이집트인이 1200명, 사우디아라비아인 99명, 시리아인 3명, 수단인 2명, 캐나다인 1명이 타고 있었으며, 승객들 중 일부는 노동자로 당시 메카에서 성지순례를 한 뒤 돌아오는 중이었다.
그런데 두바흐항에서 20~30마일 정도 갔을 때쯤 220여 대의 차가 있는 화물칸에서 화재가 발생했다. 선장은 화재를 보고 받자 회항을 생각했고, 승무원들은 화재를 끄려고 급하게 물을 뿌렸다. 승무원들은 작업 후 화재가 끝났다 착각했고, 선장은 이를 보고 받은 후 확인도 안 한 채로 다시 출발했다. 당시 화재로 겁에 질린 몇몇 승객이 구명조끼를 착용하기도 했으나 승무원들은 "승객들에게 겁을 줘선 안 된다."면서 '''구명조끼를 입지 못하게 했고''' 심지어는 겁을 먹어 안절부절해 하는 승객을 '''감금했다는 증언'''도 나왔다.
화재 때문에 몇몇 승객은 겁에 질려 회항하자 했지만 승무원들은 불이 꺼졌으니 걱정 말라 했지만, 첫 화재 후 3~4시간 정도 후 이집트 후르가다로부터 30마일가량 떨어진 지점서 불길이 다시 살아났다. 강풍과 파도 때문에 소화기가 안 먹히는 가운데 겁에 질린 승객들은 화재 방향 반대편으로 이동했다. 승무원들은 급하게 물을 뿌렸으나 배수구가 막힌 상황에서 배에 물이 고였고, 설상가상으로 승객들이 불을 피해 한쪽으로 대피해 배는 더 기울기 시작했다. 결국 배는 기울어진 채로 2시간 항해하다 이후 5분 만에 사파가 항서 64km 떨어진 홍해에서 '''침몰했다'''.
이 와중에 선장이란 인간은 제일 먼저 탈출했고 승무원들은 구명보트 준비 사용법을 탑승객에게 알려주지 않아 대피가 늦어졌다.
4. 구조
사고가 발생하고 10시간 후 구조선이 출동해 100여 명을 구조했으나 침몰 사고 발생이 너무 늦게 알려지는 바람에 구조 활동이 지연됐고 사고 해상의 악천후로 인해 구조작업이 제대로 이뤄지지 못해 구조되지 못한 승객 대부분이 사망했다.
선박 소유주 알-살암 해상운송이 예정시간에 도착한다는 전문을 보내고 소식이 끊긴 배에 문제가 생겼다 판단한 시각은 3일 오전 5시. 그 후 홍해항만청에 선박실종을 보고했으며, 인근서 운항하던 자사 선박 `세인트 캐서린`에게 `알-살람`한테 가서 확인을 지시했다. 캐서린 호는 구명보트에 탄 승무원 1명과 통화에 성공해 알 -살람호의 침몰을 확인했다. 3일 오전에는 8시에 구조헬기와 군함정을 급파해, 10시에 생존자 10여 명을 구조했다.
영국 해군은 이집트 당국의 구조ㆍ수색 작업을 돕기 위해 홍해 상에서 작전 중이던 전함 `불워크호'를 사고 해역으로 긴급히 이동토록 조치했으나 이집트는 함정과 헬기의 재난 구조 지원을 거절했다.
5. 결과
안타깝게도 생존자는 400여 명에 불과했고, 1018명은 그대로 목숨을 잃었다.
선주 맘두 이스마일(상원 의원)은 영국으로 도피하여 책임을 회피해 버렸다. 심지어 '''지금도 멀쩡히 활동 중.'''[2] 당시 안전장비 제대로 갖춰지지 않았던 걸로 드러나 직원 6명이 직무유기 혐의 등으로 기소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