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프레트 폰 리히트호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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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프레트 폰 리히트호펜[1]
Manfred von Richthofen[3]
1892년 5월 2일 ~ 1918년 4월 21일(향년 25세)
1. 개요
2. 생애와 죽음
3. 기타
4. 대중문화 속의 붉은 남작
5. 관련항목


1. 개요


"내가 날고 있는 고도보다 낮게 날고 있는 적기가 후방기총좌가 없는 단좌기라면, 거의 죽은 목숨이나 다름 없었다."

제1차 세계 대전 당시 독일 육군 항공대에이스. 1918년 4월 21일 격추당할 때까지의 총 격추수 80으로 1차대전 에이스 중 1위. 이후 영국에서의 연구를 통해 73기의 격추기록을 확인했다. 미확인 격추까지 합치면 100기가 넘으리라는 이야기도 있다. 그리고 저 기록의 대부분은 독일 제국이 하늘에서 밀리던 시기에 쌓은 것들이다. 제2차 세계 대전 독일 에이스들의 3자릿수 기록에 비하면 별 것 아닌 것처럼 보일지 몰라도, 당시에는 전쟁에 투입된 비행기가 많지 않았으며 광학 조준기나 자동 추적 장치도 없이 그야말로 순수하게 인간의 감각만으로 격추해야 했다는 것을 감안하면 저 기록은 전설이 되고도 남는다.[4]
타고다닌 전투기를 항상 빨갛게 칠하고 다녀서 붉은 남작('''Der Rote Baron''')이라는 별명이 붙었다. 그중에서도 가장 유명한 것은 포커 삼엽기. 리히트호펜의 이름은 대전기간 내내 연합군과 독일군 양쪽에서 칭송받았다. 픽션에 등장하는 '''붉은 기체의 에이스 파일럿'''은 십중팔구 리히트호펜이 모티브다. 아이러니하게도 1차대전 당시 프랑스 조종사들 사이에서는 "붉은 남작"이라는 멋진 애칭이 아니라 "빨간 두건(Le Petit Rouge)"이라는 귀여운 별명으로 불렸다고 한다. 사실 붉은 남작이란 별명도 영국 조종사들이 붙인 것이고, 독일에서는 "붉은 전투조종사(Der Rote Kampfflieger)"라는 애칭이 쓰였다.

2. 생애와 죽음


슐레지엔 지방 브레슬라우[5] 근교에서 귀족(남작) 가문의 아들로 태어났다. 열한 살이 되자 다른 프로이센 귀족 아이들처럼 소년 군사학교에 들어가 군사 교육을 받게 된다. 군사학교를 졸업한 뒤에는 황실 육군학교에 입학하여 더 수준 높은 교육을 받게 된다.
황실 제1기병대의 육군 기병장교로 군생활을 시작했으나 시대는 이미 기병의 황혼을 가져온 기관총이 대세였다. 동부전선에 배치됐지만 곧 부대가 전멸, 기병으로 전장에 참전했는데 식료품만 나르는 신세로 전락했다고 하면서 병과전환을 신청, 항공장교로 전과해 정찰기 승무원으로 배치됐다. 처음에는 정찰기 뒷좌석의 후방기총으로 적 항공기를 잡아보고는, 삘 받아서 전투기 조종사를 지원한다. 이때 뵐케의 금언으로 유명한 오스발트 뵐케의 광팬이 되었는데, 마침 뵐케는 기존의 정찰이나 폭격 임무는 배제하고 순수하게 제공 전투를 전문으로 하는 새로운 비행대 야스타11을 창설하려고 하고 있었다. 리히트호펜은 우연히 뵐케를 만나 여기에 발탁되어 격전이 벌어지던 서부전선으로 이동하게 된다.
그리고 무시무시한 킬수를 쌓아올렸고 뵐케 사후에는 우수한 항공부대 지휘관으로 복무, 국민적인 영웅이 되어 자서전도 출판할 정도로 명성을 쌓는다. 이 자서전은 초창기의 공중전에 대해 리히트호펜 본인이 간소하게나마 이론을 정립해 놓은 책으로, 당시에는 물론 이후에도 전세계 전투기 조종사들의 필독서가 된다. 2차 세계대전 에이스들 상당수가 이 책을 읽고 하늘의 길을 택했다는 후문이 있다.
독일이 하늘과 지상에서 모두 한계에 달했던 1918년 봄, 평소처럼 출격했다가 그대로 돌아오지 않았다. 출격 전에 엽서에 싸인해 달라고 부탁한 정비사한테 "혹시 내가 안 돌아올까봐 걱정돼서 그래요?" 라는 장난스러운 질문을 날렸다고 한다.
리히트호펜은 기체 피격에 의한 추락사가 아닌 총상으로 사망했다. 리히트호펜은 총에 맞고 의식불명이 되어 전투기와 함께 추락 직전까지 갔으나 다시 깨어나 평지에 착륙한다. 그리고 몇 분 뒤 과다 출혈로 사망했다. 비행기와 함께 추락해 형체도 남지 않았던 다른 조종사에 비해 깔끔하게(?) 죽었다고 볼 수 있다. 그리고 그의 비행기는 거의 멀쩡했던지라 기념품 사냥꾼들이 부품을 다 뜯어갔다고 한다.[6]
이렇게 기체가 조각나서 사라져 버린 탓에 리히트호펜을 격추시킨 것이 누군지 확실치 않다. 왜냐하면 워낙에 리히트호펜이 유명하다 보니 미 육군 및 영국 육군 에이스들이 서로들 자신이 격추했다고 주장했기 때문이다. 덕분에 영국과 미국 언론은 죽은 붉은 남작만 더 유명해진다고 이들을 비아냥거렸다. 영국 육군에서는 최종적으로 캐나다 출신의 에이스 '''로이 브라운'''이 리히트호펜을 격추했다고 발표했지만, 브라운의 총 격추 전과는 딱 10기다. 물론 이것도 적은건 아니고, 또 공중전에서 절대는 없겠지만 별로 신뢰성이 없어보인다.
결국 대전 당시에는 확실하게 누구인지 확정되지 못한 채로 되려 붉은 남작만 더 유명해지고 정작 리히트호펜과 마지막으로 교전했던 이들은 대부분 묻혔다. 훗날 시신을 다시 파내 부검한 결과, 적기에게 격추된 것이 아니라 대공 기관총탄이 아래에서 위로 관통한 것이 사인임이 밝혀졌다. 영문위키에 따르면 당시 지상에 있던 병력들은 호주군 4사단이었는데, 붉은 남작의 비행기를 보고 루이스 경기관총, 빅커스 기관총, 심지어 리-엔필드까지 동원하여 전력으로 대공사격을 하였다고 한다. 문제는 위의 무기들이 전부 .303 브리티시 탄을 썼기 때문에 누가 쏜 대공 기관총탄에 맞은 건지 모르게 되었다. 다만 Geoffrey Miller라는 의사와(1998년) 2004년 영국 Channel 4에서 방영한 A Secret History 시리즈의 부검 결과에 따르면 붉은 남작이 총탄에 맞은 방향 등을 고려해 볼 때, 붉은 남작의 사망에 결정타를 먹인 사람은 경험 많은 대공 기관총 사수였던 세드릭 폽킨 하사일 가능성이 가장 높다는 결론을 내렸다. 그 이유로 붉은 남작이 우측에서 날아온 탄환에 맞았는데, 당시 우측에서 쏜 유일한 기관총 사수가[7] 폽킨이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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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 당시 리히트호펜의 인지도는 전선의 군인들 사이에서 뿐만 아니라 전국적인 아이돌 수준이었다. 금발의 미남이라 여성들에게도 인기가 많았으며, 모든 독일 국민들이 리히트호펜의 사인을 받고 싶어했다. 1925년에 리히트호펜의 유해가 독일로 돌아왔는데 전국에 조기가 게양됐고 장례 행렬 뒤로는 베를린이 생긴 이래 가장 긴 줄이 만들어졌다. 리히트호펜이 베를린 군인묘지에 묻힐 때 첫 삽을 뜬 사람은 파울 폰 힌덴부르크 독일 대통령이었다.
되려 리히트호펜을 격추시켰다는 로이 브라운(1893~1944)은 그다지 행복한 삶을 살지 못했다. 그는 살아 생전 자신이 붉은 남작을 격추했다고 자랑했지만 자국인 캐나다와 영국에서 조차 별로 믿는 사람이 없었다고 한다. 게다가 1차대전 말기에는 병에 걸리거나 공중전 도중 부상을 당해 치료받기도 하면서 격추 수가 적은 탓에 "저런 이가 붉은 남작, 그 괴물을 격추했다고?" 라며 전세계적으로 사람들이 못 미더워했던 걸 본인도 무척 스트레스를 받았다. 오죽하면 리히트호펜이 엄청난 장례식을 치루던 걸 전해듣고 "그 놈은 죽어서 전설이 되었지만 나는 살아서 잊혀진 지 오래이다." 라고 한탄했던 바 있다. 30대 초반 일찍 군을 예편하여 공인회계사로 벌어먹으며 살아가다가 작은 항공업체 간부로 일하기도 했지만 이름을 알리진 못했다. 2차대전이 터지자 징집연령을 훨씬 넘긴 나이로 공군에 지원했지만 나이가 많다고(46) 거부[8]당한 그는 1941년 시의원 선거에도 출마했으나 낙선했고 은둔하여 시골 농장에서 지내다가 심장마비로 세상을 떠났다. 세월이 훨씬 지나서 2010년대에서야 고향에서 에이스라며 재평가도 하고 기념비라든지 여러가지로 알리고 있지만 고향을 떠나면 여전히 아는 사람이 거의 없다. 오히려 1차대전 2번째 에이스인 캐나다인 빌리 비숍이 리히트호펜을 격추시켰다는 이야기를 믿는 사람들이 많다. 빌리 비숍은 격추 수가 72대였으며 중장 계급까지 오른 유명인이다. 캐나다에서 역사교육 중 1차대전때 꼭 가르치는 인물이며 그의 이름을 딴 공항도 있다. 오죽하면 동맹국에 레드 바론이 있으면 협상국에는 빌리 비숍이 있다고 할 정도였다.
다만 빌리 비숍이 격추 현장에 있었는지는 제대로 레퍼런스가 필요할 수 있다. 빌리 비숍의 활약을 서술한 영문위키 기록을 인용하면 빌리 비숍이 1917년 4월 30일에 붉은 남작과 그의 비행대 야스타 11과 조우했고, 그들과의 대결에서 생환했다는 사실은 확실하지만, 붉은 남작의 사망 현장에 있었다고는 언급하지 않는다.[9] 붉은 남작의 사망 때 그와 싸웠던 조종사 둘은 위에 언급한 로이 브라운과 그의 친구인 윌프리드"웝" 메이 대위라고 언급되어 있다. 처음에는 영국군과 독일군이 도그파이팅을 벌이고 있었는데, 당시 초보 파일럿이었던 메이 대위는 위에서 빙빙 돌며 관전하다가 (역시 초보자라 같은 짓을 하던) 볼프람 폰 리히트호펜을 노리고 공격했다.[10] 자신의 사촌동생인 볼프람이 위기에 처한 것을 보고 붉은 남작이 싸움에 끼어들어 볼프람은 무사히 도주했다. 이에 메이는 도주하고 붉은 남작이 뒤를 쫓는 와중에 이를 보고 메이의 친구였던 로이 브라운이 합세했고, (아마 붉은 남작에게 결정타였을) 호주군 4사단까지 대공사격으로 가세하여 난장판이 벌어진 것이다.

3. 기타


리히트호펜 자신을 비롯해 부하들까지 온갖 원색들을 사용해 화려하게 칠한 항공기를 타고 다녀서, 리히트호펜의 부대는 '''날아다니는 서커스단(Flying Circus)'''이라고 불렸다.[11] 이는 리히트호펜의 부대가 일종의 전술 예비대로서 열차를 사용해 위급한 전선마다 급파되는 임무를 맡았기 때문이기도 하다. 형형색색의 복엽기들이 열차 화물칸에 줄지어 늘어선 모습이 마치 순회공연을 다니는 서커스단 같아서 붙은 이름. 붉은 남작 본인이 직접 여러 부대를 돌아다니며 선발해 온 에이스들로 득실댔기에 그 전과는 무시무시했다. 참고로 리히트호펜 전사 후 이 부대를 지휘한 건 다름 아닌 헤르만 괴링.
활약상을 보면 적어도 중령 이상은 달아야 했지만 계급은 계속 대위였는데, 아버지가 예비역 소령이어서 그걸 넘어설 수 없었다고 한다. 대신 훈장을 푸짐하게 받은 편.
리히트호펜의 동생 로타어[12][13]와 사촌동생 볼프람도 유능한 파일럿 겸 지휘관으로 명망 높았으며[14] 사촌동생 볼프람제2차 세계 대전 동안 사촌형의 이름이 붙은 리히트호펜 비행대의 지휘관이었다. 루프트바페의 일원으로 스페인 내전에서 독일측 지원군이었던 콘도르 군단을 지휘, 게르니카 폭격을 비롯해서 스페인 여러 동네를 개박살내고 공군 원수로까지 승진해서 이후 유럽 여러 곳을 폭격으로 개박살냈다.
이 전투비행대는 2차대전 기간은 물론 현 독일 공군까지 이어져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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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히트호펜은 입대하기 전에 사냥이 취미였는데 공중전 또한 사냥의 연장선으로 보았다고 한다. 그래서 그런지 리히트호펜은 자신이 격추시킨 전투기들의 잔해로 자신의 숙소를 꾸미는 악취미가 있었다. 얼핏 보면 자신의 훌륭한 전투 기술을 증명할 수 있는 멋진 방이지만 희생자들과 협상국 조종사들의 입장에서 생각해보면...[15][16] 그리고 그는 비록 영웅이지만, 뼛속까지 군국주의자인 인물이었다.[17]
한 번은 격추당해서 독일 쪽의 포로가 된 영국 조종사가 리히트호펜을 보고 여자가 아니어서 매우 놀란 일화가 있다고 한다. 그 이유는 영국군 전투기 조종사들 사이에선 전투기에 붉은색 페인트를 칠하고 날아다니는 걸로 보아하니 붉은 알바트로스 전투기의 조종사는 잔 다르크 같은 여성 조종사일 것이라는 소문 때문이었다고.[18]

4. 대중문화 속의 붉은 남작


  • 2차 대전을 배경으로 한 전략 게임 Hearts of Iron IIHearts of Iron IV의 모드 중, 1차 세계 대전에서 독일이 이겼을 경우를 상정한 가상 역사 모드, 카이저라이히: 대전의 유산에서는 독일 장관진 중 특수 장관[19] 중 한명으로 나오며 채용 시 전투기와 요격기 생산, 및 전술에 도움을 준다. 묘한 것은 원판의 헤르만 괴링은 강철의 기사라는 별명과 함께 전술폭격기, 급강하폭격기에 도움을 주는데 카이저 라이히에서 헤르만 괴링은 독일 장관진으로 나오지 않는 대신에 중앙 아프리카 전체를 통틀어서 지배하는 총독 각하가 되셨다. 말인즉슨 리히트호펜보다 출세했다.[20]
  • 미야자키 하야오 작품 붉은 돼지의 모티브이기도 하다. 작중 마르코 파곳(포르고)의 전투기가 붉은 기체이다. 다만 성향은 정 반대라는 것이 함정.
  • 미국헤비메탈 밴드 아이스드 어스의 2004년 앨범 "Glorious burden" 의 수록곡 중 "Red baron / blue max"라는 곡이 바로 붉은 남작(red baron)을 그린 곡이다.
  • 스웨덴 헤비메탈 그룹인 Sabaton에서도 "The red baron"으로 발매되었다[21]
  • 피너츠에도 자주 언급된다. 스누피가 "1차대전 에이스 놀이"를 할 때의 메인 라이벌.
  • 스타워즈 캐넌에도 붉은 남작을 모티프로 한 캐릭터가 있다. 스타워즈 저항군의 악역 에릭 본레그로, 타이 인터셉터의 개량형인 타이 바론을 전용기로 타고 다닌다. 순티르 펠의 도장이 붉은 선만 그어진 얌전한 모습인 데 반해, 본레그의 타이 바론은 기존 기체에서 회색이던 부분을 전부 붉은색으로 칠하고 있다.
  • 만화 코르토 말테제에도 등장한다. 말테제의 친구이자 호주군인 크렘이 꼬뜨뉘를 퍼마시고 취한 채 갈긴 총에 맞고 끔살당한다. 크렘 역시 그대로 차에 들어가 퍼자다가 헤르만 괴링의 폭격에 전사한다.
  • 비행 시뮬레이션 및 플라이트 슈팅 게임 중 제1차 세계 대전 항공전을 다루는 게임에서는 반드시 나온다. 다른 모든 캐릭터가 가상인물이어도 붉은 남작은 보통 그대로 나온다. 더 멀리 갈 것도 없이 1980년아타리가 제작한 극초창기 아케이드 유명 게임 중 '붉은 남작'이라는 제목의 플라이트 슈팅 게임이 있는데 벡터 그래픽 사용으로 당시로서는 그럭저럭 3D적인 감각을 구현했다. 물론 주인공이 몰고가는 자기(自機)도 그때 그 시절의 전투기처럼 나온다. 90년대에는 다이나믹스에서 개발하고 시에라가 유통한 PC용 시뮬레이션 게임 Red Baron이 출시되었다. 당시에 그걸 동서게임채널에서 정식발매했고 매뉴얼이 대략 200쪽 이상이었는데 엄청난 고퀄리티의 매뉴얼이었다. 일부는 아직도 보관중이라고 한다.[22]
  • 전략게임 엠파이어 어스의 독일 캠페인의 1차 대전 미션들에서 주인공으로 등장하는데, 파일럿 복장에 권총을 쏘는 보병 유닛과 "레드 바론"이라는 이름의 전폭기 유닛 두 가지가 있다. 특히 명성대로 붉은 칠을 한 레드 바론은 다른 전투기 유닛들이 체력 500대를 왔다갔다하는 사이 혼자 5000이라는 정신나간 체력을 자랑한다. 공격력도 다른 전폭기나 전투기의 2~3배. 덤으로 번역명이 "만프레드 폰 리히트호펜"과 "만프레드 폰 리크토폰(?)"을 왔다갔다 하는데, 원래 엠파이어 어스 한글화가 좀 개판이다.
  • 리히트호펜을 다룬 영화는 1차 대전이 끝나고 얼마 뒤부터 나오기 시작해서 현대까지도 여러 번 만들어졌다. 일단 1930년 하워드 휴즈가 만든 지옥의 천사들에서부터 나온다. 최종 보스인데다 주인공(영국군)들은 결국 못 이긴다.
로저 코먼 같은 경우는 1971년작 <폰 리히트호펜과 브라운 Von Richthofen and Brown>
1994년작 <공포 비행 Revenge of the Red Baron>[23]
이렇게 2차례나 리히트호펜을 소재로 영화를 찍었다.
가장 최근작은 2008년작 <레드 바론(Der Rote Baron)>이다. 독일과 영국의 합작 영화로, 간호장교와의 로맨스를 통해 반전영웅적인 면모를 부각시켰다.[24][25][26]
2011년 1월 한국에서도 살짝 개봉했다. 에너미 엣 더 게이트조지프 파인스(로이 브라운 역), 바스터즈의 틸 슈바이거(베르너 포스 역), 300(영화), 사라 코너 연대기 등의 레나 헤디 같이 국내에도 친숙한 얼굴의 배우가 여럿 출연했지만 소재가 워낙 마이너해서 소리소문 없이 묻혀버렸다.

21세기에 나온 영화인만큼 보다시피 전투신의 연출은 나무랄데 없다만, 국내 개봉판은 어째서인지 군데군데 전투신을 재편집해서 흐름이 잘 안 맞는 부분이 있으므로 DVD를 구입하려던 사람들은 다시 한번 생각해보는 것이 좋을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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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그 오브 레전드 코르키의 스킨 중 붉은 남작 스킨이 있다.

5. 관련항목



[1] 외래어 표기법을 원칙대로 적용하면 '폰리히트호펜'이 되지만 '리히트호펜'으로 널리 알려져 있어서 관용적 예외가 인정된다.[2] "임멜만 턴"의 그 임멜만이다.[3] 사진에서 목에 걸린 훈장은 그 유명한 블루 맥스(Blue Max). 이 훈장의 정식명칭은 Orden Pour le Merite로 1740년 프로이센의 프리드리히 대왕이 제정했던 최고의 무공훈장이다. 이 훈장은 전시에 최고의 용기와 전공을 세운 군인들에게 수여되었다. 조종사로서는 오스발트 뵐케와 막스 임멜만[2]이 동시에 최초 수상의 영예를 차지했으며 이후 만프레트 폰 리히트호펜은 3번째로 수상하였다. 1차대전 중 총 81명의 에이스들이 이 훈장을 수상했다. 그 중에는 헤르만 괴링도 있다.[4] 전후 영국의 군사학 분석 결과 2차대전기 전투기들의 교환비와 1차대전기 교환비, 전투방식의 구도 분석 등을 해 본 결과 이 사람이 2차대전기에 복무했다면 '''457기'''를 격추시킨 기록과 같은 것이라고 계산되었다. 참고로 2차대전기 최고 에이스 에리히 하르트만이 352기이다. 즉 만프레트가 2차대전에 등장했다면 에리히 하르트만을 '''100기''' 넘게 뛰어넘었으리라는 것(...).[5]폴란드 브로츠와프.[6] 디스커버리 채널 자료를 인용한 영문위키 기록에 의하면 비행기를 발견한 호주군 4사단 병사들이 우르르 몰려갔는데, 당시 첫 목격자 중 하나인 의무병 Ted Smout 하사의 증언에 따르면 발견 당시 붉은 남작은 살아 있었다. 그러나 곧 kaputt(독일어로 "망가진" 이라는 뜻)이 포함된 문장을 남기고 바로 사망했다고 한다. 그 외 나머지 단어는 독일어라서 아무도 못 알아들었다. Smout 하사는 붉은 남작의 장화와 철십자 훈장을 가져갈까 고민했지만, 이내 마음을 고쳐먹고 건드리지 않았다고 한다.[7] 나머지는 리-엔필드 사격이었을 것이다.[8] 1차 대전 이후 군에 남은 또래 인물들은 이미 별을 달거나 그 직전까지 가 있었다. 영국 본토 항공전 당시 그룹 지휘관을 본다면 13그룹 지휘관 리처드 사울: 1891년생, 11그룹 지휘관 키스 파크와 12그룹 지휘관 트래퍼드 리맬러리 : 1892년생, 10그룹 지휘관 퀸틴 브랜드 : 1893년생이다. 로이 브라운보다 1~2살 많은 이들이 공군 소장까지 진급한 상태였으니 1894년생 인물들이 무난히 진급했다면 대령~준장 정도까지 진급했을 것이다.[9] 그래도 이 정도면 사실상 무승부이므로 그의 뛰어난 능력을 볼 수 있다.[10] 사실 볼프람이란 걸 알고 노린 것은 아니고, 볼프람이(초짜니깐, 만프레트의 명령으로) 위로 빠져서 관전하는 것을 보고 같은 초짜라고 판단해 공격한 것이라고 한다.[11] 영국의 유명 코미디 그룹 몬티 파이선이 제작한 몬티 파이선의 날아다니는 서커스는 이를 딴 것이다.[12] 그냥 유능한 파일럿 수준이 아니라 40기를 격추했다. 특히 영국군 최고의 에이스인 알버트 볼을 격추한 것으로도 유명하다. 형이 워낙에 유명해서 묻히는 감이 있지만 이 사람도 괴물인 건 마찬가지이다.[13] 로타어는 전쟁이 끝난 지 4년 후에 베를린에서 함부르크로 비행 중 엔진 고장으로 추락해 사망했다.[14] 단, 볼프람은 1차 세계대전이 끝날 때까지는 초보 파일럿이었고, 위에도 서술되어 있지만 만프레트의 사망 현장에서 도움이 되지 못했다. 볼프람 문서에도 나와있지만 그는 전간기 때 파일럿으로서의 실력을 쌓았다.[15] 당시 독일군 조종사들은 대부분 귀족 출신이었기에 이런 행동을 당연하게 생각했을지도 모른다.[16] 재미있게도 그가 죽은 뒤 그의 삼엽기는 다른 연합군 조종사들이 기념품으로 갖겠답시고 갈가리 찢어 놓았다.[17] 하지만 이건 어찌보면 당연했던 게 제국의 전신이었던 프로이센 자체가 군국주의적인데다 당시 제국은 빌헬름 2세가 즉위하고 사회 분위기가 더 군국주의적으로 변했기 때문이다. 바로 그 전제군주제 국가의 귀족이 오죽할까.[18] 그러나 현실은 당시 독일 제국은 타 유럽 그 어떤 나라보다도 여성을 천시하였고, 여성이 군에 복무하는 것을 엄격히 금지하였다. 즉, 독일 제국군에는 여군이 없었음은 당연하고 여성은 오로지 종군 간호사 정도로밖에 군과 접촉할 수 없었다. 심지어 간호장교들도 죄다 남자였던 나라가 독일 제국이다.[19] 일반 장관진은 다른 설명없이 능력치만 나오지만 특수 장관은 배경 설명과, 특수 능력치가 덧붙여진다.[20] 단, 헤르만 괴링이 살이 퉁퉁 찌는 발단이 된 사건은 이 모드에서는 일어나지 않았으므로 1936년의 본인 사진이 게임 내에서는 나오지 않는다.[21] 임페라토르 롬 갤러리에서 만든 역사적 배경과 가사내용이 들어간 뮤직비디오.[22] 해외에선 e스포츠가 생기기 이전인 90년도에 이 게임으로 소규모 대회가 개최되기도 했다.[23] (위의 스쿠비 두 에피소드와 비슷하게) 붉은 남작의 유령이 현대의 포커 삼엽기 장난감에 빙의되어 자신을 격추한 파일럿을 찾아 복수하려 한다는 황당한 내용(코먼 영화에서 괴작이자 졸작으로 평가). 물론 그 상대방은 이미 할아버지(티파니에서 아침을에서 일본인으로 나온 백인 배우 미키 루니(1920~2014)가 맡았다)가 되어 있다. 유령이라 그런지 최신 항공기도 문제없이 격추해댄다. 영미권에서 리히트호펜이 얼마나 전설적인 아이콘인지 잘 보여주는 한가지 예이다. TV 아역 배우 출신인 토비 맥과이어의 영화 배우 데뷔 초기작이기도 하다(다만 포스터에 나온 꼬마는 토비 맥과이어가 아니다). 참고로 공포 비행은 국내 비디오 제목이다.[24] 다만 잊지 말아야 할 것이, 실제의 리히트호펜은 반전사상을 가진 사람이 아니라는 점이다. 자서전에도 전쟁에 대한 내용에 있어선 그때 당시 대부분의 독일 귀족과 같은 생각을 가졌음을 알 수 있다.[25] 덤으로 이 간호장교에 대해서는 전후 어떻게 살았는지에 대해 전해지는 것이 없다. 사진이 있는 걸 보면 실존인물이긴 한 모양.[26] 본작에서는 1916년에 격추된 로이 브라운을 리히트호펜과 동료들이 구조해서 목숨을 구했고, 이후 그와 우정을 나눈다는 설정이 붙었다. 영화 중에 공중전을 벌인 후 둘 다 퍼지려고 하는 전투기를 공터에 불시착시키고 술을 나눠 마시면서 노가리를 까고 각자 갈 길 가는 장면도 있다. 결말에서는 간호장교와 로이 브라운이 리히트호펜을 조문하러 가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