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브레히트 1세

 


'''Albrecht I'''
'''가문'''
합스부르크 가문
'''생몰년도'''
1255년 7월 ~ 1308년 5월 1일 (52세)
'''출생지'''
자유제국도시 라인펠덴
'''사망지'''
오스트리아 빈디슈
재위
기간
'''신성 로마 제국로마왕'''
1298년 7월 27일 – 1308년 5월 1일
'''오스트리아슈타이어마르크 공작'''
1282년 12월 27일 – 1308년 5월 1일
1. 개요
2. 상세


1. 개요


신성 로마 제국독일 왕.

2. 상세


합스부르크 가문 출신으로 첫 독일왕(대관 받지 않은 황제)이 된 루돌프 1세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1282년 선황 루돌프 1세는 아들 알브레히트 1세와 루돌프 2세에게 오스트리아슈타이어마르크를 각각 물려줬다. 1283년 라인펠덴 조약에서 루돌프 1세는 알브레히트에게 정권을 맡겼다. 그 당시 루돌프 2세는 합스부르크의 영지인 포어더외스터라이히에서 보상받고 있었다. 알브레히트 1세는 자신의 예속기사들과 함께 지방 귀족들의 저항을 진압하고 공령에서 대성공을 거두는 등 잘 통치하고 있었다.
하지만 루돌프 1세는 알브레히트에게 독일 왕의 자리를 안전하게 물려줄 수가 없었다. 보헤미아 왕이며 전대 왕 오타카르 2세의 아들인 벤첼 2세가 반대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1290년에 헝가리라디슬라우스 4세가 암살당해 알브레히트를 헝가리 왕위 계승자로 만드려는 계획도 실패했다. 1291년 루돌프 1세가 죽자 선제후들은 알브레히트 1세의 힘과 그의 세습 영지가 완성되는 것을 두려워해 나사우 백작 아돌프를 다음 독일 왕으로 선출하였다. 다음에 슈타이어마르크에서 봉기가 일어나 알브레히트는 그의 적수가 가진 통치권을 인정하고 에 갇혀 있어야 했다.
하지만 알브레히트 1세는 왕위에 대한 욕망을 버리지 않아 결국 1298년 독일 왕으로 선출되었다. 아돌프튀링겐마이센에서 자신의 힘을 키우려고 하자 그의 행동에 질린 제후들이 벤첼 2세를 필두로 하여 알브레히트를 왕으로 선출한 것이다. 두 왕은 괼하임 전투에서 마주쳐 결국 아돌프가 패배하고 죽었다. 알브레히트 1세는 영향력이 큰 제후들에게 광범위한 약속을 하고 안전하게 지원을 얻어내 1298년 7월 프랑크푸르트에서 왕으로 선출되었고 8월 아헨 대성당에서 왕관을 받았다.
알브레히트 1세는 근엄했지만 자신의 이익에 관련되지 않은 공정성에 대한 날카로운 감각을 갖추고 있었다. 독일 왕 가운데 현실적인 지성을 소유한 사람이 거의 없었다. 그는 도시를 격려했고 사적인 전쟁에 대항해 포고를 내리는 것으로 만족하지 않고 칙령을 집행하기 위해 제후들과 동맹을 맺었다. 농노들은 이 근엄한 군주를 친구로 맞았고 알브레히트는 경멸당하고 박해받는 유태인을 보호했다. 스위즈 주들에 대한 탄압과 잔인함에 대한 이야기는 16세기까지 나타나지 않았고 지금은 전설로 여겨진다.
알브레히트는 유럽 문제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을 탐지했다.
1308년 3월 1일, 슈바벤의 빈디슈에서 반란이 일어나 이를 진입하는 도중에 조카인 요한 공작에게 암살당했다. 이유는 알브레히트 1세가 요한의 영지를 뺐고 돌려주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요한 공작은 이로 인해 존속살해자란 악명을 얻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