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크푸르트

 




'''프랑크푸르트암마인
Frankfurt am Main
'''
[image]
'''휘장'''

'''프랑크푸르트의 위치'''
'''행정'''
'''국가'''
독일 [image]
'''시간대'''
(UTC+1/+2)
''''''
헤센
''''''
다름슈타트 현
'''인문환경'''
'''면적'''
248.31km²
'''인구'''
763,380명(2019년)
'''인구밀도'''
3,074명/km²
'''홈페이지'''

'''정치'''
'''시장'''
페터 펠트만

1. 개요
2. 인구
3. 경제
4. 학술
5. 교통
6. 한국과의 관계
7. 역사
8. 관광
8.1.1. 주요 박람회
9. 스포츠
10. 대중문화에서
11. 치안

[image]
[image][1]

1. 개요


독일 헤센 주 최대의 도시 이자 라인-마인 지역의 중심 도시. 정식 명칭은 '프랑크푸르트 암 마인'(Frankfurt am Main 또는 Frankfurt a.M.)으로, 다른 지역에 있는 동명의 프랑크푸르트 오데르와 구분하기 위해 도시 한가운데를 흐르는 마인(Main)강을 같이 붙인 명칭이다.[2]
도시 자체 인구는 76여만 명으로 독일에서 베를린, 함부르크, 뮌헨, 쾰른 다음으로 5번째지만, 광역권 인구는 독일에서 3번째로 580만 명이 넘는다.[3] 유럽에서 손꼽히는 현대적 대도시로, 런던, 파리 등 고풍스러운 옛 건축물들이 가득한 다른 유럽의 대도시들과 달리 초고층 빌딩들이 마천루를 이루고 있고 하이테크 스타일의 현대식 건축물이 가득하다. 유럽에서 러시아머큐리 시티 타워와 영국의 더 샤드 다음으로 높은 코메르츠방크 빌딩도 프랑크푸르트에 있다. 그리고 도이체방크 등 금융 회사나 보험 회사 등의 본사가 위치한 도시이기도 하다.
다만 딱히 관광할 꺼리는 적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도시의 대부분이 완파되었기 때문에 사실 오래된 건축물을 찾기 힘들다. 그나마 최근 부동산 개발의 일환(?)으로 구도심이나 궁전 등이 복원되고 있는 상황이다.

2. 인구


출신 인물로는 요한 볼프강 폰 괴테, 차두리, 엠레 찬 등이 있다. 금융 도시 답게 외국인 비율도 높은 편인데 2016년 기준 프랑크푸르트 인구의 약 28% 가량은 외국인이라고 한다. 독일 대도시 중에서는 가장 높다. 참고로 독일에서 외국인 비율이 가장 높은 도시는 오펜바흐로 33%가 외국인 인구인데, 프랑크푸르트 바로 옆의 통근권에 위치한 도시다.

3. 경제


독일의 경제 중심지이며, 런던, 파리와 함께 유럽 금융, 증권, 경제에서 빼놓으면 섭섭한 도시다. 독일 제1의 도시는 베를린이지만 서베를린은 냉전의 최전선이자 일종의 섬과 같은 지역이었고, 동베를린은 구 동독 지역에 있었던 탓에 경제력 면에서 인구만큼의 영향력을 발휘하지 못하였다. 2차 세계대전 이후 베를린에 본사를 두었던 수 많은 회사들이 바이에른 등 다른 주로 이사간 이유도 크다. 독일과 유럽의 금융 중심도시로 유럽중앙은행(ECB)과 독일연방은행이 프랑크푸르트에 있으며, 물론 도이체뵈르세(독일증권거래소)도 있다. 브렉시트가 현실화되면서 프랑크푸르트도 반사이익을 보았는데, 영국 런던의 금융업종이 더블린과 네덜란드, 파리, 프랑크푸르트 등으로 회사 인력과 자산을 이동시키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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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국 브루킹스 연구소에서 조사한 프랑크푸르트 대도시권의 경제 규모. GDP(국내총생산)가 2,269억 달러로 총 42위를 차지하였으며 1위 노르트라인-베스트팔렌에 이은 경제력을 가지고 있다.

4. 학술


또한 프랑크푸르트는 독일 학술의 중심 도시인데, 사회학으로 유명한 프랑크푸르트 학파가 발생했던 곳이다. 그리고 세계에서 제일 큰 책 박람회도 이 곳에서 열리고, 독일국립도서관도 이 곳에 있다.
괴테의 이름을 딴 요한 볼프강 괴테 프랑크푸르트 암 마인 대학이 여기에 있다.
막스 플랑크 연구소가 다섯 군데 있는데 다음과 같다.

5. 교통


프랑크푸르트 중앙역은 시내에 위치하며, 함부르크-슈투트가르트, 뒤스부르크-뮌헨 철도 축이 가로지르는 교통의 요지이다. 1880년에 완공되고 1924년에 확장된 중앙역 건물도 그 형태가 그대로 보존되어있다. 다른 주요 역으로는 프랑크푸르트 동역과 프랑크푸르트 남역, 프랑크푸르트 암마인 국제공항 역이 있다.
남서쪽에 프랑크푸르트 암마인 국제공항이 있어 유럽의 허브 역할을 한다. 사실 프랑크푸르트 암 마인을 방문하게 되는 한국인들은 대부분 이 공항 때문에 방문하게 된다. 루프트한자의 허브중 하나로서 기능하고 있고 아시아나와 대한항공의 직항도 있다
지하철은 9개 노선이 운행 중. 노면전차 차량을 지하 구간으로 운행하는 걸 지하철이라고 부르는 식이라(Stadtbahn) 지하철이 외곽에선 도로로 달리는 모습을 볼 수 있다. 다만 도심구간은 2~3개 노선이 터널을 공유하는 방식이라 수도권 지하철과는 형태가 상당히 다르다. 프랑크푸르트 도심 여행시 참고할 것.

6. 한국과의 관계


대한민국 총영사관이 있으며, 헤센 주 외에도 바덴뷔르템베르크, 바이에른을 관할한다. 한국인도 많이 산다. 인천에서는 독일로 갈 때 베를린 가는 항공편이 아예 없고 루프트한자가 단독으로 다니는 뮌헨행을 제외하면 대부분 프랑크푸르트로 들어오고, 삼성그룹, LG그룹, 현대자동차기아자동차를 비롯해서 수많은 기업들이 진출해 있다. 대신 프랑크푸르트 관내의 땅값과 세금 때문에 프랑크푸르트 근처 에쉬본에 있다. 2016년 9월 5일에는 이하넥스가 암 마인 북동쪽의 브루흐쾨벨에 배송대행 센터를 차렸다.
한국 최대의 대기업 삼성의 역사에서도 중요한 의미를 갖는 곳이다. 1993년 이건희 당시 회장이 신경영 선언을 한 곳이며, 이를 계기로 삼성이 국내 최대 기업을 넘어서 세계 정상급의 기업으로 도약하는 전환점이 마련되었다. 일각에서는 이 신경영 선언을 프랑크푸르트 선언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그래서 삼성을 연구하는 이들이나 임원들이 이 도시를 성지순례 하듯히 찾고 있다.

7. 역사


독일 왕국의 수도로, 신성 로마 제국의 황제 선거가 열리는 도시였다. 다만 독일 왕국이나 신성로마제국의 '수도'는 황제가 있는 곳이 곧 수도였기 때문에 늘 시도때도 없이 바뀌어 그 자체로서 의미가 크진 않다. 황제 선거는 쾰른이나 레겐스부르크, 아우구스부르크에서도 열렸다. 빈 회의 이후에는 독일 연방의 4개 자유시(함부르크, 브레멘, 뤼베크, 프랑크푸르트 암 마인) 중 하나가 되었다. 프랑크푸르트는 프로이센-오스트리아 전쟁으로 프로이센에 점령당하면서 신설된 헤센-나사우 주에 강제통합되며, 뤼베크는 1937년 히틀러에 의해 슐레스비히-홀슈타인주에 강제합병당하며 각각 자유시의 지위를 잃었다.
1848년 혁명 때에는 독일 국민 의회의 개최지가 되었다. 이 때의 역사적 상징성 때문에 독일 자유주의의 본산처럼 여겨지기도 해서, 서독 정부 수립 당시 수도 후보 중에서 가장 독보적인 후보였다. 전쟁 이전부터 이미 경제 중심지로 기능하고 있었으며 서독의 중심부에 위치하고 있다는 장점도 있었다. 주도(프랑크푸르트가 있는 헤센 주의 주도는 근처의 비스바덴)가 아니라는 점도 작용했다. 또한 연합군 점령하 독일의 미군 관할 지역의 수도 역할을 한 적이 있어서 행정 중심지로서의 자격 또한 충분했다. 실제로 프랑크푸르트에 독일 의회로 사용할 건물도 지었고 프랑크푸르트 시민들도 내심 기대하였으나, 동서독 국경에서 매우 가깝다는 안보상의 문제가 있었던 데다 서독의 초대 총리이자 국부인 콘라트 아데나워자기 고향과 가까운 을 수도로 밀었고, 다른 정치인들 또한 프랑크푸르트를 수도로 정할 경우 "프랑크푸르트가 서독의 공식 수도라는 이미지가 굳어져 베를린으로의 환원이 힘들어지게 되며 국민들의 통일에 대한 지지도가 낮아질 것"이라는 이유로 반대하고 나서 결국 본이 수도로 결정되었다. 본을 수도로 정하면서 서독 정부는 추가로 9500만 마르크를 지출해야 했다.
그 후 1990년 독일 통일 당시에도 프로이센, 독일 제국나치 독일의 수도였던 베를린 대신 프랑크푸르트를 통일 독일의 수도로 정하자는 주장이 있었으나, 지지를 받지 못했다.[4]
연도별 정리 [5]
  • 794년 최초로 문서 기록에 등장
  • 1220년 제국자유도시 지위 획득
  • 1330년 두 번째 정기시 개최권 획득
  • 1356년 <금인칙서>에서 황제 선출 도시로 선포
  • 1562년 황제 대관식의 장소로서의 전통이 시작됨
  • 1843년 최초의 증권거래소 창설
  • 1848년 바울 교회에서 독일 최초의 민주적 의회인 프랑크푸르트 국민 의회 소집
  • 1914년 프랑크푸르트 대학 개교
  • 1948년 독일연방은행의 전신인 독일중앙은행의 창설
  • 1998년 유럽중앙은행 설립.

독일의 패전 직후 1945년, 폐허가 된 프랑크푸르트
냉전 시대에는 세계에서 가장 위험한 도시이자 세계 제일의 전략적 요충지로 꼽히기도 했다. 헤센 주 북동쪽의 튀링겐과의 경계선부터 프랑크푸르트까지의 저지대 계곡 지역을 두 갈래로 관통하면 단숨에 서독을 반으로 쪼개고 미군의 증원기지 2곳(라인-마인 공군기지와 프랑크푸르트 공항)을 지나 프랑스로 진격할 수 있는 루트였다. 이를 두 갈래 루트가 시작되는 마을인 풀다의 이름을 따서 풀다 갭(Fulda Gap)이라고 한다. 3차 세계대전이 일어난다면 틀림없이 소련군 주력군의 진격로 중 하나가 될 것이 유력했다. 당시 상정되던 루트 3개는 1. 북독일 평원루트, 2. 풀다 갭, 3(이쪽은 만일의 루트). 오스트리아 다뉴브 강가를 따라가는 루트였다. 한 때 나토군의 주력 군대는 물론 핵무기까지 배치되었고 미-소 간에 관계 악화 뉴스만 나면 초긴장상태였다고... 물론 냉전 시대가 끝나고 난 뒤에는 전략적 중요성을 잃어버리고 그저 냉전을 추억(...)하는 사람들의 관광지나 되었다고 한다.

8. 관광


구시가지(Altstadt)의 80년대 초 복원한 중세, 르네상스 풍의 시청사, 그 주위의 유서 깊은 저택들이 유명하다. 지금도 구시가지의 복원사업이 진행되고 있으며, 괴테 숙모의 집을 복원한다고 한다.
마인 강 건너편에 슈테델 미술관이 유명하다. 파리, 런던의 우주급 미술관보다는 작지만, 의외로 중세부터 현대 미술까지의 방대한 컬렉션을 자랑한다. 단지 입장료가 비싸다. 성인 입장료가 14유로. 학생은 12유로니 학생증을 지참하자!
베를린 자연사 박물관 다음으로 독일에서 가장 규모가 큰 젠켄베르크 자연사박물관도 명소중 하나다. 티라노사우루스, 디플로도쿠스, 이구아노돈, 오비랍토르, 스테고사우루스, 트리케라톱스, 파라사우롤로푸스, 플라테오사우루스 등등 유명한 공룡 화석들을 전시, 소장하고 있는데 공룡 덕후라면 꼭 가볼만한 곳 중 하나다.
마천루들 중에 마인 타워(Main Tower)가 있는데 거기서 입장료를 내고 옥상층까지 갈수가 있다. 옥상에서 프랑크푸르트 전경을 볼 수 있다.
시내 중앙의 바로크풍의 건물인 Hauptwache(중앙경비초소)를 기준으로 스타일이 다르다. 중앙경비초소의 뒷편의 괴테거리는 루이뷔통, 지미추, 프라다, 에르메스 등의 고급 부티크들이 있다. 중앙경비초소의 앞편에는 백화점, H&M, ZARA, 풋락커, 에스프리처럼 현대적인 가게들이 있다. 최근에 새로 생긴 쇼핑몰 MYZeil에는 홀리스터 매장이 입점되어 있는데, 가게 안으로 들어가려는 시민들의 긴 줄이 장관을 이룬다...는 옛날 얘기고, 안 그래도 유행이 지난데다가 이미지까지 추락한 홀리스터 사정상 현재는 매장안에 사람 찾기나 하면 다행이다(...)

8.1. 박람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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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세 프랑크푸르트.
프랑크푸르트는 '''박람회 도시'''로도 유명하다. 메세 프랑크푸르트(프랑크푸르트 전시장)은 전시장 업계 세계 3위의 크기로 유명하다. 1년 내내 여러 분야의 박람회가 끊이지 않는다. 특히 위에서 언급했듯 책 박람회(Frankfurter Buchmesse)도 유명하고 프랑크푸르트 모터쇼도 상당히 유명하다. 처음에 베를린에서 열렸으나 1951년 이후 현재의 프랑크푸르트에서 열리며, 1989년까지 프랑크푸르트에서 상용차까지 전시했으나 1991년에 이를 나눠서 승용차 모터쇼를 홀수년에, 상용차 모터쇼를 짝수년에 하노버에서 열게 되었다. 약어는 IAA. 그래서 일반 관광객보다는 사업 출장 차 오는 비즈니스 여행객이 월등하게 많은 도시이다.
프랑크푸르트를 여행할 때 가장 조심해야 할 것이 '박람회 기간'여부이다. 전술했듯 유럽 경제의 중심이자 세계적인 박람회 도시이기에, 메세 프랑크푸르트에서 박람회가 개최되는 기간 중에는 숙박비가 평소의 3배 이상으로 폭등한다. 옥토버페스트 맥주축제 기간 중의 뮌헨바이에른 지역 일대의 숙박료가 폭발하는 것과 같은 이치. 토요코인 프랑크푸르트 중앙역점의 예를 들면, 평소 컴포트싱글룸의 가격이 55.10유로이지만, 박람회 전날 또는 중형급 박람회 개최 당일에는 93.10유로, 인기 박람회 개최 당일에는 무려 150.10유로까지 숙박요금이 치솟는다. 여행 시 각별한 주의 필요.

8.1.1. 주요 박람회



9. 스포츠


독일 축구 연맹, 도이체 푸스발 리가, 리가페르반트의 본사가 위치해 있다.
유명한 축구팀인 아인트라흐트 프랑크푸르트가 이 곳을 연고로 삼고 있으며, 레기오날리가 남서부 지구에 소속된 FSV 프랑크푸르트 또한 이 곳에 위치해 있다. 인구가 많은 동네인 만큼 관중 동원력도 뛰어난 편. 차범근이 이 팀의 레전드이며 프랑크푸르트의 지하철 Willy-Brandt-Platz역에는 아인트라흐트의 레전드 11이 승강장에 랩핑되어 있는데 차범근이 가장 잘 보이는 곳에 당당히 랩핑되어 있다. 아직도 프랑크푸르트 사람들은 차범근을 기억하고 있으며 차범근이 경기장에 나타나면 서포터즈들이 엄청난 환대와 환호를 해주고 있다. 인기가 어느 정도냐면 배성재가 '프랑크푸르트 시장 출마하셔도 될 거 같아요~,라고 할 정도. 당시 방송이든 다른 방송이든 차범근의 인지도는 여전히 높은 것을 알 수 있다. 이런 차범근의 기운을 받았는지 2006 독일 월드컵 당시 대표팀이 원정 월드컵 사상 첫 승을 따내는 위업을 이곳에서 달성했다.
‘스카이라이너스 (Skyliners)‘란 이름의 농구팀도 있다. 현재는 프랑크푸르트 공항의 스폰서를 받고 있어 ‘프라포트 스카이라이너스 (Fraport Skyliners)‘란 이름으로 불린다.

10. 대중문화에서


심시티 4를 하는 사람들은 잘 알만한 건물인 현대 유럽 스타일의 사무직 빌딩 중 '허트 기업 본사'의 모델인 독일의 은행 Commerzbank 빌딩이 프랑크푸르트에 있다.링크참조
대항해시대 온라인에서는 신성로마제국의 도시로 등장한다. 그런데 이름이 프랑크''프루트'' 로 잘못 표기되어있다(...)
알프스의 소녀 하이디에서도 등장한다. 오히려 차범근보다도 이쪽을 통해 프랑크푸르트를 알게 된 사람이 제법 되는 편.

11. 치안


독일 남부에 사는 교민들 말에 의하면 치안이 가장 안 좋은 동네로 소문이 났다고 한다(...) 실제로 여행자 입장(특히 여성)으로 봐도 독일의 타 도시와는 다르게 썩 좋아 보이진 않는데 프랑크푸르트 중앙역[6]과 마천루 사이에 500미터 가량 되는 거리가 있는데 이 거리에 성매매 업소, 도박장, 오물, 술집, '''약냄새''', 취객 등이 뒤엉켜 실로 불안해 보이는 풍경을 자랑한다.[7] 다행히 이 업소 집결지만 벗어나면 여타 독일 도시들과 다를 것 없이 안전하다. 여성 혼자 야간에는 이 쪽을 안 다니는편이 좋다.
주로 Kaiserhofstrasse, Willy-Brandt Platz에서 코메르츠방크 타워까지의 거리가 홍등가이고, 새벽에는 이민자들이 중앙역으로 향하는 관광객들을 향해 폭약과 폭죽으로 장난을 치기도 한다. 또, 사거리의 성인용품점이 주요 순찰 구역이다.
[1] 이 사진들은 프랑크푸르트에서 찍은 것이 아니라 프랑크푸르트 옆동네인 오펜바흐 암 마인에서 찍은 사진이다.[2] 마찬가지로 프랑크푸르트 오더는 오더강(Oder)을 같이 붙인 명칭이다. 독일에서는 동명의 도시들을 구분할 때에 강이나 주변에 있는 호수 이름을 같이 붙여 준다. 21세기 국제적 위상에서 프랑크푸르트 암 마인이 압도적이기 때문에 독일에서는 프랑크푸르트라고만 해도 다들 이 도시를 의미하지만, 프랑크푸르트 (오데르)가 있는 브란덴부르크 주나 그 가까이에 있는 베를린에서는 암 마인이나 안 데어 오데르를 붙여서 표현해 주는 것이 혼동을 줄일 수 있다.[3] 쾰른과 뒤셀도르프가 너무 가까이 붙어있기 때문에 쾰른의 광역권을 매우 협소하게 잡은 탓이기도 하다. 애초에 노르트라인베스트팔렌 주에서는 도시들이 워낙에 밀집해있는 터라 라인-루어 지역을 하나로 묶어버리면 베를린보다 인구가 많은 메갈로폴리스다.[4] 그 이유는 독일의 기원이 프로이센이기 때문이다. 프로이센의 중심지 베를린을 수도로 남겨두되, 다른 지역들(뮌헨, 프랑크푸르트 암 마인, 에어프루트, 본, 함부르크 등)에 주요 기능들을 분산시킴으로써 '''수도는 상징으로 남는 지방 분권의 연방제'''를 유지할 수 있게 되었다. 만일 베를린을 수도에서 해제한다면 결국 이는 과거와의 단절을 뜻하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프로이센-독일 제국-독일 연방 공화국으로 이어지는 메커니즘을 설명할 수 없게 된다. 프로이센 중심주의라고 비난할 게 아니라 역사적 맥락에 비추어 바라보아야 할 사안이라는 것이다.[5] 출처도서 - 도시로 보는 유럽통합사 : 영원의 도시 로마에서 EU의 수도 브뤼셀까지[6] 정확히는 중앙역 정문.[7] 특히나 밤에는 Polizei(경찰)도 많이 돌아다니는 것을 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