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방(풍종호)

 


1. 개요
2. 행적
3. 무공


1. 개요


풍종호의 무협소설에도 거지들의 단체로 '''개방(丐幇)'''이 등장한다. 최초의 방주이자 시조는 '''사구신협(蛇拘神俠)'''으로, 개방 내에서는 '''사구신개(蛇拘神丐)''' 또는 '''용호신개(龍虎神丐)'''라고 불린다. 그런데 시조 이후로 개방은 방주가 나오지 않아 분열되어 사대호법으로 나누어진다.[1] 그 세월이 1,000여 년으로··· 『지존록(至尊錄)』에 와서야 아직 어린 나이로 나오는 무영신룡(無影神龍) 한비가 지도부인 궁가문을 세우며 분열되었던 개방을 통일한다. 이로써 후대에도 꾸준히 방주들이 이어지게 된다.
더구나 한비가 반룡권(盤龍拳)이라는 절세(絶世)의 기학까지 남겨줘 개방은 힘과 세력을 갖추면서 무림에서 점차 주역으로 떠오른다. 『일대마도(一代魔刀)』에서는 천하제일방으로 불리기 시작하여 『광혼록(狂魂錄)』에서 그 비중이 매우 커진다. 『화정냉월(花情冷月)』에 이르러서는 방주가 천하제일인으로 공인받으며, 정의를 지키는 최후의 보루 역할[2]을 맡고 있다. 정도(正道)의 대문파들인 신주제파(神州諸派)가 세외(世外)에서 지내느라 속세에 그리 간섭을 하지 않는다면, 개방은 구성원들 자체가 속세에 사는 거지라서 그런가 의협 활동을 중시한다. 이런 열혈의개(熱血義丐)의 전통은 계속 이어져 『녹림대제전(綠林大帝傳)』에서도 드러난다.

2. 행적


개방은 『경혼기(驚魂記)』와 『호접몽(胡蝶夢)』을 제외하고, 작가의 모든 무협소설에 등장한다. 아래는 『지존록』을 기준으로 개방의 행적을 간략히 정리한 것이다.
  • 《1,000여 년 전》 사구신협(蛇拘神俠) 이후 사대호법 체제로 개방 분열: 무주천년(無主千年)의 시기.
  • 《240여 년 전》 개방주로 키워내려던 사대호법의 공동전인이 있었지만, 군마천루(群魔天樓)의 유적에서 남궁가의 탕마대와 함께 싸우다 사천황(邪天皇)의 직계에게 죽는다.
  • 지존록 여전히 사대호법으로 분열되어 있다. 서방호법 협개(俠丐) 종이도는 어둠 속에서 모종의 음모를 꾸미는 섭혼루(攝魂樓)를 눈치채 대항하려 강호만사통(江湖萬事通) 만가휘와 협력해 호정회(護正會)를 조직한다. 하지만 이미 호정회의 인원 중 태반이 배신한 뒤라 섭혼루에 독(毒)과 협박으로 남은 인원들도 모조리 빼앗기고 만다. 얼떨결에 취걸개(醉乞丐)가 쌍마(雙魔)와 함께 행동하며 섭혼루에 대적한다. 수십여 년 뒤 무영신룡(無影神龍)이 궁가문을 중심으로 개방을 1,000여 년 만에 통일하여 방주가 된다.
  • 430여 년 후 방주 쌍면신개(雙面神丐)와 그의 제자 설개(舌丐) 고량이 나온다. 그들은 40년 전 귀문이십팔숙(鬼門二十八宿)을 이끌었던 사심귀도(邪心鬼刀)의 후예인 연적심, 위지관만박왕(萬博王)이 이끄는 신기루(蜃氣樓)의 싸움을 주의깊게 지켜본다.
  • 500여 년 후 방주는 신취자(神醉子) 용소백으로, 스승이 『일대마도』의 고량이다. 혈선교(血仙敎)가 또 나타나 음모를 꾸미고 있으나, 맹룡회(猛龍會)가 있어서인지 개방에서는 크게 관여하지 않는다. 그저 소주(蘇州) 분타주 궁수재(窮秀才) 종무득만이 비호도(飛虎刀) 육풍목의 꼬드김에 넘어가 조수인의 일행에 합류했다가 혈선교(血仙敎)의 흉계를 막는 데 본의 아니게 가담한다. 용소백은 다음 대 방주로 종무득을 선택한다. 그는 절대 받아들일 수 없다며 바락바락 대들었는데도 용소백이 보쌈까지 하는 통에 마수를 벗어나지 못한다. 결국, 광혼신마(狂魂神魔) 조수인과의 친분 때문에 장로들에게 떠밀리듯 방주를 맡을 수밖에 없었다. 세월이 지나 그는 비천신개(飛天神丐)라 불리게 된다.
  • 800여 년 후 천하제일고수 풍개(瘋丐)가 방주이며, 십장로가 광인십걸(狂人十傑)이다. 방주는 골칫덩이 장로들을 이끌어 패악질을 부리는 사악한 무리를 징벌하러 천하를 종횡하느라 골머리를 썩이고 있다. 황하(黃河)의 백룡문(白龍門), 감숙(申肅)과 대막(大漢)에 걸쳐 크게 위세를 떨치던 철기사풍대(鐵騎政風家), 천산협로(天山城路)를 근거지로 하는 비익문(飛雲門), 호남(湖南)에서도 남쪽에서 시작하여 귀주(貴州), 사천(四川), 운남(雲南)에 이르기까지 성성(星星)이 패를 길들여 다니면서 자칭 신원문(神德門)이라 부르던 문파를 개방에서 쳐부순다. 그리고 백룡문과 청룡단(靑龍團)의 배후였던 마해(魔海)까지 먼 바다로 나가 철해(鐵海)와 동맹을 맺어 붕괴시킨다. 그 후 방주와 장로들은 중원으로 돌아와 미호아(美狐兒) 임천생과 냉혈도(冷血刀) 봉무진을 도와 뒤에서 사악한 짓거리로 세력을 넓히던 성무장(聖武莊)을 무너뜨린다.
  • 900여 년 후 당대 방주는 무정신개(無情神丐) 백무흔이고, 전대 방주가 『화정냉월』의 임천생이었다. 광인십걸 중 아직 살아있는 3명이 등장해 『화정냉월』에서 약 100년의 세월이 지났음을 알 수 있다. 백무흔은 우연히 녹림의 고수 왕삼구를 만난다. 천하에서도 보기 힘든 무위(武威)와 불분명한 목적으로 세상에 어떠한 여파를 끼칠지 알 수 없던 그를 백무흔은 곁에서 지켜본다. 그 와중에 장문인의 병신 같은 성격에 울화통이 터져 문중을 박차고 나온 청성파(靑城派)의 대장로 태대노인(太大老人)을 개방의 태장로로 영입한다. 황당하게도 태대노인은 강제로 한 가지 일을 왕삼구에게 맡길 생각으로 그인 척 가장하여 녹림왕(綠林王)으로서 위세를 부린다.[3] 사람을 모아 세력을 부풀려 왕삼구에게 떠넘길 생각이었는데, 왕삼구는 거들떠보지도 않고 자취를 감춰버린다.
  • 1,000여 년 후 장로인 완롱자(玩弄子) 상노개[4]는 백제성(白帝城)에 머물며 심심풀이로 사호표국의 소공자인 궁비에게 박호금룡수(縛虎擒龍手)를 가르쳐 골탕을 먹이고 있었다. 그러던 차에 청성육검협(靑城六劍俠)의 뒤를 잇는 일곱 번째 검호(劍豪) 도운연과 100년 전의 녹림왕의 무공을 익히고 있는 도마(刀魔) 태사경을 만난다. 그는 도운연의 화술에 말려들어 태사경이 성장할 수 있도록 적당한 적수를 주선하는 후견인 역할을 맡아 비무여행을 이끈다. 중간에 태장로인 태대노인이 나타나 태사경에게 건곤일기공(乾坤一炁功)이 깨어날 수 있도록 도와준 다음, 데리고 지난 세월을 묻어둔 청성파 운리관으로 돌아간다. 한편 개방의 다른 대장로 마고추는 동정호(洞庭湖)의 가릉관(嘉陵館)에서 점쟁이로 지내고 있었다. 오랜만에 장강비원(長江飛猿) 안연후독수옹(禿樹翁)이 구연화의 일로 정보를 얻기 위해 그를 찾아온다. 이때 희귀한 홍랑(紅狼)의 인연자인 금모하가 동행하고 있어서 인연이 닿는다. 이를 계기로 마고추와 궁립은 나중에 금모하가 배 위에서 영호란에게 당할뻔한 것을 구해준다. 또한, 궁립은 신검(神劍)을 마련하고자 금모하가 녹림을 여행하는 것을 안내역으로 도와준다.

3. 무공


  • 반룡권(盤龍拳)
  • 발풍척(拔風尺): 검경풍인(劍勁風刃)의 정점에 이르렀다고 평가받는 검법(劍法)이다. 궁가문에서 비장하고 있어 『광혼록』에서 한검객(閑劍客) 문평이 익히고 있다. 그러나 반룡권의 제이부에 이르면 사용할 수도 있다는 음공(陰功) 난운권(亂雲拳)이 상극에 가까워 그는 이것을 사용한 조수인에게 패배한다.
[1] 이때도 방대한 세력은 대단했는지 사대호법 중 한 명이라도 대문파의 주인과 동등한 대접을 받을 수 있었다고 한다.[2] 구천회(九天會) → 신기루(蜃氣樓) → 맹룡회(猛龍會) → 개방으로 이어진다.[3] 왕삼구인 척 하고 있으면, 발끈한 그가 찾아올 줄 알았다. 그래서 청성파 장문인 호호도인(好好道人)을 두드려 패게 할 생각이었다.[4] 광인십걸이 바로 윗대로, 그들의 생사는 불명이다. 어린 제자들을 뱀의 목구멍에 넣는 놀이를 한 것이 방주에게 들통나 두 배분 낮춰서 재입문 당하는 벌을 받아 완롱자의 바로 윗대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