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슈턴 카터
1. 개요
미국의 25대 국방장관. 2015년 2월 17일에 정식 취임했다.
미군에서 복무한 적은 없다. 클린턴 행정부 2기에서 국방장관을 지낸 20대 윌리엄 코언 장관 이후 13년만에 나온, 완전 민간인 출신 장관이다.[1]
2. 생애
펜실베니아 필라델피아 출신으로 예일 대학교를 졸업했고 학위는 중세역사학과 물리학으로 받았다. 로즈 장학금[2] 으로 옥스퍼드 대학교에 진학해 공부했다. 물리학자로 스타워즈(...) 연구를 하다가[3] 클린턴 정부 1기에서 국제안보정책부차관(Assistant Secretary of Defense for International Security Policy)로 국방부에 들어갔다. 그후 버락 오바마 행정부에서 다시 등용되어 군수차관(Undersecretary of Defense for Acquisition, Technology and Logistics)을 지냈고 이어서 국방 부장관(United States Deputy Secretary of Defense)도 지냈다. 이후 로버트 워크에게 부장관을 물려주고 공직을 떠났는데, 2014년에 척 헤이글 국방장관이 사임하자 후임자로 지명되었다.[4][5]
위의 이력을 요약하자면, 전형적인 기술통 출신의 국방관료라고 할 수 있다.
북핵 문제 등에서 북폭을 주장했고, 대북강경책이자 한반도통으로 꼽힌다. 이 점에서 클린턴 행정부 시절인 1990년대에 재직했던 윌리엄 페리 전 장관과 비교된다.[6] 실제로 카터는 클린턴 행정부 시절 국제안보정책 담당 국방차관보로 당시 장관이었던 페리를 보좌했고, 1990년대 말에는 역시 페리와 함께 <예방적 방위정책>(Preventive Defense)이라는 저서를 출간한 바 있다.
조지프 던퍼드의 합참의장 인선을 적극 추진해 성사했다.
그의 주장으로 2016년 1월부터 DEVGRU 등 미군의 모든 병과가 여군에 개방됐다.
3. 기타
NBC 레이트 나이트 쇼에 출연하였는데, 오바마 대통령부터 북한의 김정은까지 농담으로 화제가 되었다.#
[1] 21대 도널드 럼즈펠드는 해군 대령, 22대 로버트 게이츠는 공군 소위, 23대 리언 패네타는 육군 중위, 24대 척 헤이글은 육군 병장 출신이다.[2] 영국의 식민주의자 세실 로즈의 돈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장학금.[3] MIT에서 연구원으로 근무할 시절 SDI가 상호확증파괴 양극체제를 대체하기에는 기술적으로 많이 부족하다고 레이건 행정부를 비판하기도 했다.[4] 당초 정책통으로 알려진 미셸 플루노이 전 정책담당 국방차관이 '미국 최초의 여성 국방장관'을 기치로 유력 후보로 거론되었지만, 본인이 사양하여 무산되었다.[5] 사실 척 헤이글 국방장관 인선 당시에도 후보군으로 거론되긴 했으나 정치권 쪽에 연줄이 없다는 이유로 밀려난 적이 있다.[6] 페리 역시 1970년대 연구개발 담당 관료로 미 국방부에서 경력을 시작했고, 스텔스 기술 등의 첨단무기 개발에 주도적 역할을 했던 기술통 출신이다. 1차 북핵위기때 영변 핵시설 공습을 검토했지만, 북한의 군사보복뿐만 아니라 방사능 유출 위험때문에 포기한 바 있었다. 이후 1998년 북한의 대포동 1호 시험발사 직후 미국의 대북정책 조정관으로 임명되었는데, 김대중 당시 대통령의 강력한 설득을 수용하여 북한에 대한 군사적 압박보다는 점진적 관계개선을 우선하는 '페리 프로세스'를 작성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