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럼즈펠드

 



'''미합중국 제13, 21대 국방부 장관
도널드 헨리 럼즈펠드
Donald Henry Rumsfeld'''
<colbgcolor=#176183><colcolor=#ffc224> '''출생'''
1932년 9월 7일 (91세)
미국 일리노이 시카고
'''국적'''
[image] 미국
'''재임 기간'''
제13대 국방부 장관
1975년 11월 20일 ~ 1977년 1월 20일
제21대 국방부 장관
2001년 1월 20일 ~ 2006년 12월 18일
'''가족'''
조이스 피어슨 (결혼: 1954년~ )
'''자녀'''
슬하 3명
'''학력'''
프린스턴 대학교 (B.A.)
'''종교'''
개신교
'''최종 계급'''
미국 해군 대령
'''정당'''

'''약력'''
미국 해군 대령 (1954 ~ 1957)
일리노이 제13구 연방 하원의원 (1963~1969)
백악관 경제기획원 원장 (1969~1970)
대통령 수석보좌관 (1970~1971)
NATO 주재 미국 대사 (1973~1974)
'''미국 제13-21대 국방부 장관 (1975~1977 / 2001~2006)'''
1. 개요
2. 정계 입문
3. 문제점
4. 평가
5. 기타
6. 어록
7. 말아먹은 무기 목록
8. 매체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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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미국의 전 국방장관.
이라크전에서 수많은 실책들과 무지, 불명예들을 거하게 남겨 참전자들, 이라크 민간인과 이라크 보안군, 미군 양쪽 희생자들과 그 가족들의 불구대천의 원수로 취급받고 있다. 또한 그가 집권하는 기간동안 미군내에서 최대의 동성애자 장병 강제전역 수치를 기록했다. 젊었을 때엔 백악관 수석보좌관, 국방장관 및 다양한 공직을 거침으로써 남의 말을 잘 경청하고 확실한 업무처리에 유능했지만, 노년의 국방장관으로선 독선적이고 고집불통에다가 아프간전쟁과 이라크 전쟁을 통째로 말아먹는 행보를 보여주면서 '''미국 역사상 최악의 국방장관'''으로 등극했다.
최연소(43세, 13대)와 최고령(69~74세, 21대) 미 국방부 장관 타이틀을 동시에 가지고 있다. 1990년부터 1993년까지 제너럴 인스트러먼트(General Instrument), 즉 모토로라의 전신 사장을 맡은게 대박. 미합중국 해군 예비역 대령으로, 해군 항공대 조종사 군 경력도 있으나 소집되어 복무한 경우는 별로 없이 예비역 진급 제도만으로 진급했다.
'''2015년에 아버지 부시한테도 무시당했다.'''[1]

2. 정계 입문


일리노이주 에반스턴(Evanston)[2] 출신으로 프린스턴 대학에서 정치학을 전공했다. 국방부에 들어가서 나토에 파견 근무했고 이때 주독미군이 주둔한 독일에서 근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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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드 행정부 시절.
프린스턴대학교 해군 학군단(NROTC) 조종 장교로 임관해 1954년부터 3년간 근무 후 해군 중위로 전역했으며, 1960년대에는 본격 정계에 뛰어들었다. 딕 체니를 소재로 한 바이스에서도 묘사되기도 한다. 1962년 중간선거에서 일리노이주 하원의원으로 당선되어 1968년까지 4선에 성공했다. 딕 체니가 럼즈펠드의 보좌관으로 1964년 임용되어 정치 인생을 시작하였다. 1969년 리처드 닉슨 미국 대통령의 백악관 경제기획원 원장[3]으로 지명되어 하원의원직을 사직하게 된다. 상대방의 말을 잘 경청하는 면모를 특히 높이 평가받았다고 한다.
이후 제럴드 포드 대통령 시기에는 백악관 수석보좌관도 해봤으며, 1975년에는 43세라는 젊은 나이에 13대 국방장관을 겸직하기도 했다. 이는 안 그래도 진급이 빠른 해군 조종사의 특성을 활용하여 대령까지 올랐지만, 현역으로 복무한 것은 1954~1957년 뿐이라 나이에 비해 매우 높은 계급과 문민 신분을 모두 만족한 덕분이었다.[4] 소집되지 않은 예비군 신분은 문민으로 정의되는데에서 현역이 아니라고 간주되기 때문이다. 국방장관 재직 중 박정희핵무장을 위해 프랑스의 도움으로 플루토늄 재처리 시설을 도입하려 하자, 계획을 포기하지 않으면 한국과의 모든 관계를 끊겠다고 협박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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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란-이라크 전쟁으로 미국과 이라크가 밀월 관계를 형성하자 로널드 레이건의 특사로 사담 후세인과 만나 이란의 승리를 막기 위한 협력을 논의하기도 했다. 이 때문에 미국의 이라크 침공을 비난할 때 이 때의 영상(후세인과 럼스펠드가 포옹하는 장면도 있었다)을 비롯한 기록들을 언급하면서 네오콘의 이중성을 비판하는데 써먹기도 했다. 딕 체니와 함께 아버지 부시 정권 때 부터 네오콘의 상징이기도 했다.
그리고 26년 후인 2001년, 이번에는 아들 부시 행정부에서 68세의 나이로 제21대 국방장관에 임명되었다. 이로써 럼즈펠드는 미 국방부의 최연소, 최고령 장관 기록을 혼자서 차지하게 되었다. [5] 원래는 국방장관에 인디애나 주의 상원의원인 댄 코츠가 유력했으며 럼즈펠드는 CIA 국장으로 거론되던 사람이었으나, 콘돌리자 라이스의 강력한 추천으로 국방장관에 내정되었고 CIA 국장은 빌 클린턴 정부의 조지 테닛이 유임되었다.[6] 여러모로 대단한 관운. 그런데 현실은….

3. 문제점


젊은 시절에는 명석하고 상대의 말을 경청하는 면모로 호평받았지만, 60줄에 접어든 2000년대 이후에는 주변 조언을 잘 듣지 않는 고집쟁이라는 악평과[7] 함께 추진 업무에서 구설수가 연잇는 불운을 겪었다. 미국-아프가니스탄 전쟁에 집중해야 할 상황에 이라크전까지 전쟁 범위를 넓혀 국가 재정에 악영향을 미쳤으며, 더불어 국방 예산 악화의 여파로 각종 신무기 계획이 취소-연기된다.
사실, 럼즈펠드는 전쟁 예산 절감을 위해 민간군사기업들을 정책 차원에서 적극 활용, 2003년 이라크 전쟁에서 이라크의 수도 바그다드를 45일만에 함락시키기도 하였다. 하지만, 이런 용병 회사들은 전장이 아닌 '''고지 함락 이후의 전후조처'''에는 예산 측면에서 적합하지 않았으며, 설상가상으로 현지 주민들의 끈질긴 저항으로 인한 추가 병력 투입에 국방예산이 소요되는 악재가 발생한다.[8] + 여기에 결정적으로 '''본인 임기때 오사마 빈 라덴을 2번이나 놓쳐''' 세평이 매우 나빠졌다.[9]
미군 항목에 나와있는 최근의 다양한 문제들은 럼즈펠드 역시도 한 몫 단단히 책임이 있다.
럼즈펠드는 미군이 너무 둔하고 느리면서 예산은 많이 먹는 군대라고 생각했고, 정예화된 소규모 부대에 기동성을 줘서 적은 병력으로 넓은 전장을 통제하는 방식의 전투를 선호하는 사람이었다. 거기다 신자유주의자 답게 '''군의 완벽한 민영화'''를 생각하고 있었다[10]. 럼즈펠드의 사상은 미군에 존재하던 기존의 거대한 보급, 지원체계를 줄이고 꼭 필요한 전투병력만 유사시 해외 어디로든지 빠르게 긴급투사하는 능력을 키운다는 것으로, 아이디어 자체는 아주 나쁜 것은 아니다. 소위 군살을 깎아내고 지상군은 꼭 필요한 정보수집과 전자전 능력, 그리고 실시간 지휘통신체계와 긴급투사용 소수정예 전투병만 보유하면 되며, 부족한 화력은 정밀유도병기로 무장한 공군과 해군 항공모함 전투단으로 해결하면 된다는 것이 럼스펠드의 구상이었다. 이에 따라서 군살이라고 간주된 많은 부분이 민영화, 아웃소싱되면서 럼스펠드 재임기간 동안 민간군사기업 분야가 대폭 성장하였다. [11]
실제로 미군은 걸프전 때에 비해 훨씬 적은 규모의 병력으로 사담 후세인의 이라크군을 삽시간에 무너뜨리는 것까진 잘 해냈다. 실제로 후세인을 무너뜨린 순간에는 희대의 전략가설이 있었을 정도였다.
문제는 그렇게 해서 '''전쟁에 이긴 뒤를 전혀 생각치 않았다'''는 점으로, 통칭 '바그다드 경주'(Race to Baghdad)라고 불린 이 발상에 대해선 뒤에서도 언급되지만 시작부터 반대 여론이 많았는데, 특히 전투 다음에 따라오는 지역점령 작전과 치안유지에서 럼즈펠드가 깎아낸 바로 그 ''''군살'에 해당하는 치안유지 병력이 없어서 망한 것이다.''' 도심지역의 게릴라전에서 MLRS나 공군을 부를 수는 없는 노릇이고, E-8 같은 것들도 험비 타고 다니는 보병 순찰대에겐 별 도움이 안 된다. 그리고 총들고 다니는 병사 개개인이 커버할 수 있는 영역은 예나 지금이나 별반 차이가 없다. 단기적인 전투는 특수부대와 공군만으로 할 수 있지만, 점령은 결국 '''보병이 적의 영토를 군화발로 밟아야 끝나는 것'''인데(다른 해결책도 있는데, 핵으로 덮어버리는 것이다. 당연히 불가능), 럼즈펠드는 그걸 무시했다. 럼스펠드는 장기적인 치안유지와 국가재건 즉 '''"안정화를 위해서는 대규모(약 4~50만 명)의 점령군 주둔병들이 장기간에 걸쳐서 직접 주둔해야 한다"'''는 미군 장성들의 건의를 구시대적 사고방식이라고 공개적으로 비웃었다. 그리고 이것은 뼈아픈 현실로 다가왔다. 애초에 국무부의 외교협상능력도 거지같았는데 현지의 언어와 문화, 정서, 종교, 생활관습, 정치적 세력관계 등을 깡그리 무시하고 그저 우리 미군 킹왕짱... 들어가기만 하면 후세인의 압제에 시달리던 이라크인들이 자유의 해방자 미군을 쌍수를 들어 환영할 것이다란 망상에 빠져서 세밀한 장기점령 준비는 아예 하지도 않았다.[12] 전후 재건은 이라크 석유판 돈으로 미국 기업에 아웃소싱주면 되고, 이라크 망명자들 모아서 임시정부 만들고 총선만 하면 단기간에 친미정권을 중동 한복판에 세워서 미국식 민주주의 정착시킬 수 있다는게 럼스펠드와 네오콘의 생각이었다.
그런데 럼스펠드가 세운 이런 전쟁방식은 현대 미군의 대세가 되어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기 때문에, 어느 면에서는 선구적인 업적이라고도 볼 수 있다. 필요병력 50만을 10만으로 줄인 대신 10만의 민간군사기업의 보조를 받고 1만 대가 넘는 드론을 활용하는 전투는 럼스펠드때는 두 곳의 전장에서 모두 이기기 위한 수단이었지만, 지금에 와서 미국의 대외 전쟁은 좋든 싫든 이것 외의 방법을 상상할 수 없게 되었다. '신자유주의'라는 딱지를 붙여서 그렇지, 예비군 팍팍 동원하면 국민이 좋아할 나라가 없고, PMC 사상자는 군인이 아니므로 대서특필되지도 않는 데다가(용병은 수백명이 죽어도 남의 집 자식이니 알바 아니고, 대민범죄를 저질러도 우린 몰라요 에붸붸붸 할 수 있는 등, 하청의 장점이 있다), 어느 나라나 핵심 전투병과가 아닌 지원업무의 민간 하청과 병력을 대신하는 기술장비와 드론 활용은 대세가 되어 가고 있기 때문이다. 중국은 물론이고 심지어 중동의 무장세력까지도, 소수의 조직원이 다수의 현지 민간인을 활용하고 저가 드론을 정찰과 공격에 최대한 활용하는 데 있어서는 비슷하다.
어쨌든 드넓은 점령지역의 안정화를 위해서는 결국 주둔 병력을 왕창 밀어넣거나 아니면 현지인력의 도움을 받아야 했는데…. 이라크에 파병된 미군 병력은 얼마 없고, 미군의 보조역할을 할 수 있던 이라크군과 경찰을 점령 직후에 믿을 수 없다면서 해산시켜버렸다. 게다가 이라크와 이슬람에 대해서 교육받지 못한 미군의 對현지인 친화성이란 건 그야말로 최악이고, 점령 초기에 온갖 병크들을 있는 대로 다 친지라… 망했어요. 게다가 국방장관 재임 중에 줄여 없앤 군의 보급이나 복지 등은 전부 민간군사기업아웃소싱으로 돌렸는데, 이는 이라크 점령 기간동안 벌어진 민간업체의 부조리, 도덕성 해이와 부패 등에 직면 하여도 군과 정부가 이들을 쳐낼 권한이 없어진다는 황당한 사태도 벌어졌다. 이 부분은 민간군사기업 항목에 잘나와있다. [13]
럼즈펠드가 저런 생각을 한 데는 아이러니하게도 걸프전의 성공이 영향을 줬다. '''그러면서 베트남전의 교훈은 다 까먹었다.''' 걸프전은 점령이 배제되었던 전쟁이었는데, 점령전인 이라크전을 동일하게 생각한 것 자체가 큰 실수다.[14] 사실 아버지 부시는 걸프전때 이라크군을 무력화 시키고도 후세인 정부를 끌어내리진 않고 멈출 줄 아는 수완의 보유자였던 반면, 아들 부시는 무작정 악의 축 후세인을 죽이겠다는 다소 유치한 선악관을 가진 인물이었던 것도 두 전쟁 양상 차이의 큰 이유 중 하나였다. 이라크전을 망친 정치적 책임은 결국 군 최고통수권자인 대통령인 아들 부시가 훨씬 더 크다. 그리고 대통령의 결정이 어떤 결과를 불러들일 것인지 예상하고 그 결정은 위험하니 수정하자고 조언하거나, 그대로 실행할거면 어떻게 대비해야 하는지에 대한 책임이 국방장관이었던 럼스펠드에게 있었던 것. 결국 국방 전문가로써의 안목이 매우 부족했다고 볼 수 있다.
그리고 그들이 고려하지 않았던 전략적인 문제. 지금 시리아가 소수 시아파가 다수 수니파를 억누르고 집권하고 있듯이, 당시 이라크는 소수 수니파가 다수 시아파를 억누르고 집권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 이라크의 수니파 정권을 없애버리고 민주적인 투표를 한다면, 아직 부족주의에서 벗어나지 못한 이라크 국민이 다수결로 시아파 정부를 만들 것이고 그 정부는 자연스럽게 미국이 제일 싫어하는 반미,친이란 성향을 가질 것은 예상된 것이었다. 후세인 정권을 무너뜨린 후 미국이 다양한 일을 했지만 결국 그걸 막지는 못했다.
'''잘못된 전략은 절대로 기술적인 우위로 보완할 수 없다'''는 걸 보여준 장본인이다. 미군이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에서 삽질하는 건 이 사람 덕이 크다. 전쟁을 결정한 미 정부 자체도 문제지만, 잘못된 전략으로 인해 많은 수의 미군이 타지에서 죽어나갔다.

3.1. 테러와의 전쟁


2001년 9.11 테러 당시 테러와의 전쟁에 손쉽게 동의하여 세계평화를 위협으로 빠뜨렸다. 전쟁으로 수백만명이 죽을수도 있는데도 불구하고 너무 손쉽게 동의하여 미국의 현재 논란이 되고 있는 의료보험같은 경제권, 사회 안녕과 국민 만족도도 나락에 떨어뜨렸다.

3.2. 무능


인물도 상당히 개막장스러운데 전쟁이 수행되는 중인데도 전략적 목표에 대해 설정하기는 커녕 '''전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도 몰랐다'''는 증언이 관계자들 입에서 공공연히 나왔다. 특히 미국-아프가니스탄 전쟁의 목적인 오사마 빈 라덴 체포도 '''지원 요청을 거부해서 다 잡은 걸 놓치는''' 상황까지 만들어버렸다.
남오세티야 전쟁때, 딕 체니처럼 이 기회에 러시아를 확실히 무너뜨리자며 '''러시아와 싸우자'''고 건의했다가 부시에게 '''"그것만은 안된다."'''며 즉각 거부당했다. 럼즈펠드의 소속인 공화당 의원 대다수도 '''"세계 질서를 말아먹으려고 작정했냐 이 미친새끼야?"'''며 그를 비판하며 전쟁의 시작에 반대해 결국 취소되었다. 아무리 미국이 러시아와 비교해서 압도적인 경제력과 국방비여도, 미국을 능가하는 전략무기를 보유했던 소련의 후신인 러시아를 공격하는 건 3차 세계대전을 일으켜보자는 수준의 이야기다. 재래식 전력은 몰라도 핵전력에선 미국이나 러시아나 '지구를 태워버릴' 만큼을 가졌으므로, 미국이 러시아보다 우위에 있는 부문들에서 싸우는 대신 서로 동등한 부문에서 싸워보자고 자처한 것..
더군다나 그때 당시 남오세티야에 전쟁을 시작한 측은 당시 UN 평화 유지군으로 배치된 러시아군이 아니라 선제 포격을 한 조지아군에 의한 것이였기에 만약 남오세티야 전쟁을 빌미로 미군이 러시아군을 공격하려 조지아에 배치되었다면 명분도 없는 베트남 전쟁을 또 벌일 수도 있었다. 전쟁 발발의 이유와 전쟁을 시작한 측이 어디인지도 모른 채 무작정 '''"어차피 러시아는 소련 붕괴된 이후로 남의 땅 욕심낼 상황이 아니니 조지아에서 적당히 뭉개고 버텨주면 알아서 겁 먹어 나가주겠지"'''식의 생각에 입각하여 전쟁을 시작하려한 것은 그저 모든 상황은 압도적 물리력에 의해서 해결된다는 오만한 발상에서 나오는, 국방장관이란 양반의 뇌에서 나올 만한 생각이 아니다.
미국의 과거 잘나가던 호황기 시절의 과대한 군사구조는 지금의 세계적 경제위기에선 버티기 어렵기에 과다한 프로젝트들을 잘라내 군살을 덜어낸 것은 분명 비용절감이란 측면에서 무시할수 없는 성과라는 반론이 있지만 그 프로젝트들을 중도 포기함으로 인해 나온 예산들은 정작 이라크 전쟁에서 날려버렸다.
믿기지 않겠지만 부시 재임 시절엔 멍청이 부시를 뒤에서 조종하는 흑막이라는 음모론이 돌기도 했다. 그러나 결론은 둘 다 멍청이인 것으로 밝혀졌다. 게다가 조지 W. 부시 재임기간동안 누구나 다 인정하는 천조국의 진정한 끝판대장부통령 자리에 앉아 있었다는 것을 알기에 농담조차 못 되는 썰이다.

3.3. 성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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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네딕토 16세와 맞먹을 듯한 다크 포스의 위엄!
그런데다가 국방부와 다른 부서간의 협조도 원활하게 이뤄지지 않았다. 뒤에서 언급되지만 아무리 미국 정보기관들이 상호견제를 기본으로 한다고 해도 CIA와는 아예 척을 졌고, 게다가 자기가 듣고 싶지 않은 정보에 대해서는 듣지 않는 외고집이었다. 부시 정권 시기와 테러와의 전쟁을 다룬 책들에서 묘사되는 럼즈펠드는 국방부를 자기 나와바리처럼 여기고 다른 부서들은 들러리처럼 다루고 국방부가 전면에서 모든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것을 원했다. 이런 문제는 대외첩보를 담당하는 정보조직들을 비롯한 국토안보부와 미국 대외 정책을 담당하는 국무부와의 관계 악화를 불러왔고 당연히 국방부의 협조도 개판이었다.
물론 국방부의 자체 첩보능력을 향상시킨 것은 나쁜 판단은 아니고 필요한 일이다. 하지만 문제는 동기부터가 럼즈펠드 개인의 CIA에 대한 지나친 불신에서 시작된 것이었고, 이렇게 얻은 정보를 다른 조직과 공유하여 협조하기 보다는 다른 부처들에게 엿을 먹일 음모에 써먹는 한심함을 보여 줬다(...). 이렇게 대외첩보 분야와 외교와 같은 정치적 분야까지 비전문조직인[15] 국방부가 다 독점하려 한 결과, 이라크는 현지 사정도 모르는 한심한 낙하산들에 의해 악화되어 결국 큰 성과도 얻지 못하고, 납세자들의 돈만 날리고, 국방부는 베트남 전쟁 실패 이후 최고로 비난을 받는 처지가 되어 철군하기에 이른다.
단, 위의 악평과는 별개로, 빌 클린턴 정부 이래 정보기관의 역할이 여러 모로 못해졌고[16] 그것이 결정적으로 표면화된 것이 9.11 테러부터 아프간 전장, 이라크 전쟁까지라는 평가가 있어서 이 부분을 럼스펠드 개인의 성향에 넘기는 것은 옳지 않다. 이라크 전쟁의 전단이 되었다는 정보부터가 제대로 정보기관단계에서 검증되었다면 올라갈 수 없는 것이었다.[17]
럼즈펠드는 이라크전 개시 전에는 이라크 점령에는 병력이 최소 수십만이[18] 필요하며 이들 대부분은 '''전후 이라크 치안유지'''를 위해 필요하다며 작전 수정을 건의한 당시 미 육군참모총장이었던 에릭 신세키를 비롯한 육군 장성들을 자르거나 무시하고 자기 말 잘 듣는 장군들만 데리고 전쟁한 결과, 잘린 사람들 예상한대로 됐다(이라크 치안유지 실패와 장기화). 나중에 콘돌리자 라이스의 강력한 주장으로 이라크 군대를 해산하지 않고 치안 유지에 써먹자는 주장에는 동의했으나, 밑에도 나와 있듯이 전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조금도 몰랐던 판이라 이라크 군대가 죄다 총들고 집에 가는걸 구경만 했다.(...) 나중에 군대가 해산되었단 소식에 불같이 화를 냈다지만 그거 통제도 못한 자기 책임이지 뭐...
결국 그동안 해온 게 쌓이고 쌓여 상황을 악화시켰고 대대적인 해임 요구가 빗발쳤다. 2006년 중간선거에서 민주당이 이기자 가장 먼저 한 것이 럼즈펠드 해임 결의였다. 이때엔 딕 체니도 럼즈펠드를 감싸주질 않았고, 결국 이로 인해 국방장관을 사퇴했다. 참고로 부시는 럼즈펠드의 사퇴를 매우 아쉬워했다고. 만약 이때 안 물러났으면 76세까지 해먹을 뻔했다.

국방장관 해임 후 군악대의 환송 퍼레이드 영상. 부시 대통령과 딕 체니의 표정이 찝찝해보이는 건 기분탓이 아니다.
미군이 이라크 포로들을 잔혹하게 대우한 아부 그라이브 사건이 터지자 두 번이나 사직을 요청했으나, 부시는 사직을 요청하는 걸보니 역시 책임감이 대단한 인물이니 럼즈펠드에게 남아달라고 간곡히 부탁하여 장관직을 계속하였다.
저렇게 럼즈펠드를 옹호하던 조지 워커 부시도, 자서전에서는 솔직히 말해서 남의 말을 귓등으로도 듣지 않았다고 깠다. 그리고 럼즈펠드를 지지했던 콘돌리자 라이스도 남의 부서에 자꾸 간섭과 월권을 일삼아서 아주 환장할 지경이었다고 회고록에서 한탄했다.
혹자는 '''조지 워커 부시 - 딕 체니 - 도널드 럼즈펠드 라인이 수년간 미국을 엉망으로 통치하고도 멸망하지 않은 것이 미국의 국력이 정신나갈 정도로 강대하다는 것을 증명한다'''고 말했다.(...)

4. 평가


벤 리치는 책 스컹크 웍스에서 "이놈은 신무기 얘기만 하면 보청기의 건전지가 나간 것처럼 행동했다"고 폭풍 디스했다.[19]
문제는 이렇게 나가리 된 병기들이 바로 정규전이 벌어질 경우, 미군이 다른 나라 군대들보다 더 우월한 위치에 서게 해줄, 기술적으로 한 세대 넘어선 장비들의 개발 계획이었다는 것이다. 대표적으로, 2000년대 초 까지만 해도 전 세계에서 스텔스 전투기를 갖고 있는 나라는 미국이 유일했고, 스텔스 공격헬기니 최첨단 구축함이니는 당분간 필요 없어질 것 같아 보였겠으나, 이로 부터 10년 뒤를 살펴보면 이미 중국, 러시아 등의 나라들이 죄다 스텔스 전투기 개발에 큰 성과를 거두고 있다. 향후에도 미군이 기술적 우위를 가지려면 앞으로의 10년 후를 예상하고 지금 보다 더 진보한 군사장비를 가져야 하는데, 2010년대 중반 기준으로 미군의 신장비 개발계획은 F-35 정도를 제외하면 죄다 고만고만한 수준이다.
대한민국 육방부하고는 반대로 기술발전을 저해하는 공돌이의 적.
그나마 미군에 네트워크 중심전 개념을 적극 도입하여 정착시킨 큰 공로는 있다. 물론 당시 럼즈펠드는 더 이상의 비용대비 효용성을 볼수 없을거라고 본 하이엔드 신무기들에 부을 돈을 현존 전력의 네트워크화를 통해 훨씬 더 적은 돈으로 효율을 극대화하는 식으로 더 나은 결과를 만들수 있을 거라고 봤고, 걸프전 이후 미군의 예산 과다지출 추세에 대한 해결책이라고 보기도 했다. 그런데 어차피 네트워크 중심전은 위에서 뭐라고 하거나 말거나 계속하고 있던 거라서...
사실 럼즈펠드만 걸고 넘어지는건 좀 억울한 일이니까 쓰자면, 럼즈펠드 본인은 위에 쓰인대로 신무기에 돈을 붓는 것보다 현존 장비의 비용대비 효율극대화를 추구했고, '''이론대로라면''' 미군은 그의 개편 하에 돈을 예전보다 적게 쓰면서도 어디든 투입될 수 있는 고효율 경무장 신속대응군으로 개편되었어야 했다. 그런데 여기에는 함정이 두 개 있었는데, 딕 체니는 군수행정분야에 대한 민영화를 통한 정치/경제적 부담 경감을 원했고, '''부시후세인을 조져 버리길 원했다.'''[20] 문제는 셋 중에서 한 명만 있었다면 미국에게 별 부담이 아니었겠지만 '''현실은 셋 다 미군을 좌지우지하고 있었다(...)''' 당연히 스트라이커 여단같은 경무장 기동부대는 원래 생각도 안하던 양대 전선의 장기간 점령전에 투입되어 IED에 엿을 번번히 먹고 있었고, 미군과 거래한 기업들이 예산을 다 털어갔다(...).

5. 기타


  • 부시 정권 초기 중앙일보 주말판에서 "강한 남자가 섹시하다"라는 헤드라인 기사를 낸 적이 있는데 이때 1면 대부분을 차지한 사진의 모델이 럼즈펠드였다. 물론 이때는 부시 집권 초였으니 아무도 사태가 막장으로 갈지는 모르고 있었다.
  • 조상이 독일계인데 독일어 발음으로 성씨인 룸스펠트를 쓰는 독일 사람들이 "너 성좀 바꿔라, 사람들이 우리 보고 욕한다!"라고 비난하기도 했다. 이라크 전쟁 당시 독일에선 룸스펠트 성을 가진 이들이 모욕이라고 분노했었다. 럼즈펠드가 독일에 근무할 당시 룸스펠트 성을 가진 사람들이 럼즈펠드를 초대해 성대한 파티를 열어주고 자랑스러운 일가로 선전한 것에 비하면 격세지감.
  • 9.11 테러 당시 럼즈펠드도 펜타곤에 있었고 충돌 당시 다른 구역에 있었기 때문에 간신히 살아날 수 있었다. 이후 여객기의 충돌로 아수라장이 된 현장 수습을 했다. 이때 럼즈펠드가 다른 사람들과 함께 직접 들것을 들고 시신이나 부상자들을 나르는 모습은 테러 당시의 충공깽스런 상황을 설명하는 예시로 다큐에 자주 등장한다. 당연한 행동을 한 거지만서도 당시 한국에서 이 행동에 감명받기도 했었다.

  • 국방장관 퇴임 이후의 사건이긴 하지만 길리어드 사이언스라는 제약회사의 대주주인데, 2009년 인플루엔자 범유행, 즉 인플루엔자 A의 치료약 타미플루의 특허권을 가진 회사라는게 뒤늦게 알려져 음모론이 살짝 제기되기도… 위의 스트라이커 관련 주식이나 모토로라 사장 건도 그렇고 돈 버는 데에는 능력이 나쁘진, 아니 꽤 좋은 모양인가보다. 거기에 길리아드 사이언스는 코로나 19 대유행에도 시의적절하게 렘데시비르라는 치료제 신약을 신속하게 출시하여 판데믹 상황마다 연타석 홈런을 날려대며 인류에 기여하고 있는지라 장기적 안목에서도 그의 선구안은 대단했다고 볼 수 있다.
  • 한국과 관련있는 일화라면 "늘 한반도 문제를 생각한다"라는 의미로 집무실 책상 유리 밑에 남북이 극명한 한반도의 야간 위성사진을 깔아 놓았다는 이야기가 있다.

6. 어록


Every CIA success is a DoD failure.

CIA가 거두는 성공 하나하나가 바로 우리 국방부의 실패요.

론 서스킨드(Ron Suskind), 1퍼센트 독트린(''The One Percent Doctrine'') (2006)책 소개

럼즈펠드는 랭글리(CIA의 본부가 있는 곳이자 CIA의 이명)를 싫어하다 못해 원수로 삼았는지 CIA의 작전에 하나하나 태클을 걸거나 지원요청을 무시했으며, 심지어 그중에는 빈 라덴을 원래보다 몇년을 일찍 잡을 수 있었던 상황도 있었다.

'''Freedom's untidy''', and free people are free to make mistakes and commit crimes and do bad things.

'''자유는 어수선한 것이다.''' 그리고 자유로운 사람들은 실수도 범죄도 악행도 자유롭게 저지를 수 있다.

2003년 4월 12일, 미국 국방부 언론 브리핑에서

물론 자유가 있는 나라가 독재로 신음하는 나라보다 어수선할 수 있는 것은 사실이므로 틀린 대답은 아니다. 저 대답이 '''군대와 경찰이 소멸되어서 치안유지력이 사라진 이라크 전체에서 벌어지고 있는 약탈에 어떻게 대처할 것이냐는 질문의 대답이 아니였다면 말이다.'''

'''You're thinking of Europe as Germany and France. I don't. I think that's old Europe.''' If you look at the entire Nato Europe today, the centre of gravity is shifting to the east and there are a lot of new members. Germany has been a problem, and France has been a problem. (중략) But you look at vast numbers of other countries in Europe. They're not with France and Germany on this, they're with the United States.

'''당신은 유럽에 독일과 프랑스만 있다고 생각하시는군요. 아닙니다. 제 생각에 그들은 낡은 유럽입니다.''' 오늘날 나토에 가입한 유럽 (국가)을 살펴보면 무게중심이 동쪽으로 이동하고 있고, 새로운 회원국이 많습니다. 독일이 문제였고 프랑스가 문제였습니다. (중략) 수많은 다른 유럽 국가들을 살펴보면 그들은 프랑스와 독일이 아닌 미국 편에 있습니다.

2003년 1월 22일, 미국 국방부 언론 브리핑에서 네덜란드 기자가 독일 및 프랑스가 이라크 전쟁 반대 방침을 밝힌 것에 대해 묻자 출처

이 발언으로 인해 독일과 프랑스가 발칵 뒤집혔고 국무장관 콜린 파월은 겨우 이들을 설득할 판이었는데 럼즈펠드가 완전히 판을 뒤집어 놨다고 길길이 날뛰었다. 국무부는 "럼즈펠드가 국방부 일이나 잘하지 왜 남의 일에 사사건건 간섭이냐"고 이를 갈았고 미국의 언론들은 부시 행정부에서 내란이 일어났다고 연일 대서특필하였다. 정작 럼즈펠드를 추천한 콘돌리자 라이스도 남의 일에 사사건건 간섭해서 아주 돌아버릴 판이었다고 회고한 바가 있다. 하지만 부시는 공산당의 지배를 받아봐서 독재 무서운 줄 아는 동유럽의 의견이 중요하다고 럼즈펠드를 혼자서 지지했다. 안습.
이 발언은 독일과 프랑스에서 유명해져서, 2003년 2월에 있었던 안보리에서 프랑스 외무장관이 "우리는 여러 내전, 혁명, 세계대전을 겪은 낡은 나라니까 전쟁에 반대한다"는 발언을 한 바 있으며, 러시아도 비슷한 발언을 했다. 2005년 들어 미국과 유럽의 관계가 개선된 이후 럼즈펠드는 당시 미국-유럽 국방장관 회담에서 해당 발언에 대해 "아, 그건 낡은 럼즈펠드였습니다"(Oh, that was the old Rumsfeld)라며 자조하기도 했다.

"그 빌어먹을 놈을 간신히 내쫓았는데, 다시 들여오면 앞으로 영영 쫓아낼 수 없을거요."(SR-71의 재취역을 반대하며 한 말)


The absence of evidence is not the evidence of absence.

'''"증거가 없다는 것이 꼭 없다는 증거라고는 할 수 없다."'''

2002년 6월 6일, 브뤼셀 NATO 본부에서 행한 언론 브리핑에서 출처

영어권의 유명한 격언 중 하나이다. 순수하게 논리적으로 따지면 맞는 말인데, 현실정치의 차원에서는 완벽한 헛소리다. 법이 무죄추정의 원칙을 따르는 것처럼, 정책의 집행 역시 현실적 증거에 기반해야 하는 것이 당연하다. 증거를 물을 때는 현재 그것을 가지고 있는지를 물어보는게 보통이지 "나중에 나올 가능성" 이라는 대답을 들으려 하는게 아니다.

하지만 역시 횡설수설의 최고봉은 이녀석일 것이다.

Reports that say that something hasn't happened are always interesting to me, because as we know, There are '''known knowns'''; ''there are things we know we know''. We also know there are '''known unknowns'''; ''that is to say we know there are some things we do not know''. But there are also '''unknown unknowns''' – ''the ones we don't know we don't know''.#

(이라크와 테러리스트간의) 연관이 없다는 보고를 들으면 항상 흥미롭습니다. 왜냐하면 이미 우리가 알고 있다시피, ''우리가 알고 있는 것을 알고 있는 것들이 있다''는, '''알고 있음을 알고 있는 것'''들이 있기 때문이죠. 우리는 또한 ''우리가 우리는 모르는 무언가가 존재함을 알고 있다는 것을 의미''하는 '''알지 못한다는 것을 알고 있는 것'''들이 있음을 압니다. 그러나, 세상에는 또한 ''우리가 모른다는 것을 모르는 것들'' - '''알지 못한다는 것을 알지 못하는 것들'''이 있습니다.

2002년 2월 12일, 미국 국방부 언론 브리핑에서 출처

말이 꼬여서 이해가 안되는가? 한자를 써서 번역해보면…

(이라크와 테러리스트간의) 연관이 없다는 보고를 들으면 항상 흥미롭습니다. 왜냐하면 이미 우리가 알고 있다시피, ''우리가 알고 있는 것을 알고 있는 것들이 있다''는, '''인지하고 있음을 인지하고 있는 것'''들이 있기 때문이죠. 우리는 또한 ''우리가 우리는 모르는 무언가가 존재함을 알고 있다는 것을 의미''하는 '''인지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인지하고 있는 것'''들이 있음을 압니다. 그러나, 세상에는 또한 ''우리가 모른다는 것을 모르는 것들'' - '''인지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조차 인지하지 못하는 것들'''이 있습니다.

이래도 이해가 안 된다면…'''당신은 정상이다(…).''' 뭐, 최대한 간단히 설명하자면 어떤 것은 알고 있음을 알고 있고(즉, 그냥 알고있고) 다른 것은 모른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즉, 뭔지는 모르지만 그런 것이 있다는 것은 알고 있지만) 또 다른 것은 그걸 모른다는 것도 모른다(즉 세상에 그런 게 있는지 없는지도 모른다) 정도가 되겠다.
도식으로 표현하자면, 직접 다음과 같이 그려보면 된다. 원을 하나 그리고, 그 원을 반으로 나눈 후, 한 쪽에는 '아는 것'이라 쓰고, 다른 한 쪽에는 '모르는 것'이라고 써 보시라. 그리고 아는 것 전체에 색칠을 하면, '''이 색칠한 것이 'known knowns'가 된다.''' 그리고 색칠이 안 된 '모르는 것'이라 써진 반원을 다시 반으로 나누시라. 그 4분원 한 쪽에는 '인지하는 것'이라 쓰고, 다른 쪽에는 '인지하지 못하는 것'이라고 쓴 뒤 그 '인지하는 것'에 색칠을 하면 '''이건 '알지는 못하지만 인지는 하는 것'이 되고, 이게 바로 known unknowns이다.''' 그리고 이제 아직 색칠이 안된 마지막 4분원이 바로 ''''알지도 못하고 인지도 못 하는 것', 바로 이것이 unknown unknowns이다.''' 아는 것이라 써진 반원은 왜 한 번 더 나누지 않았냐고? 인지를 못 하는 데 알고 있는게 존재할 수 있나?[21]
아무튼 도널드 럼즈펠드의 발언을 최대한 간결하게 표현하면 다음과 같다. "여러분은 세상에 알고 있는 것과 모르고 있는 것 두 가지가 있다고 여기겠지만, 실제로는 모르고 있는 것에도 '''모른다는 것은 인지하고 있는 것도 있지만 모른다는 것조차 인지하지 못하고 있는 것도 있다.'''" 정도가 된다. 이걸 '''겁나게 꼬아서 알아듣기 힘들게 말한 거다.'''
이라크와 테러리스트 사이에 연관이 있느냐는 질문에 대해서 못 찾았는데, 있을수도 있 는데 잘 모르겠다는 대답을 늘이고 꼬고 비튼 거다. 내용 자체는 '''증거를 못 찾았다는 것이 꼭 증거가 없다는 증거라고는 할 수 없다''' 하고 똑같다. 따라서 당연히, 순수하게 논리적으로 개념을 가지고 장난친다면 틀린 이야기는 아니지만 현실정치인으로써 정책을 입안하고 실행하는 입장이라면, 더구나 그 정책이 다른 것도 아닌 전쟁이라는 점까지 생각하면 해당 발언은 매우 위험하고 무책임하다. 말을 돌리고자 했을 의도가 농후한 말이다. 굳이 요약하면 "지금 우리한테 알려진건 전부가 아니고, 진실은 우리가 모른다는 그곳에 있다! 라는 변명이다.
여하간 "영국 쉬운 영어 캠페인"(The British Plain English Campaign)이라는 단체는 이에 럼즈펠드에게 "Foot in Mouth"(가장 어이 없는 말실수 상. 의역하면 "발로 말했냐")[22]상을 주었다. 심사위원은 "우리는 우리가 그가 뭐라고 말했는지 안다고 생각하지만, 우리가 그걸 진짜로 아는지는 잘 알지 못합니다.(We think we know what he means, but we don't know if we really know)"(…)라고 비꼬았다.[23]
의외로 슬라보이 지제크장하준은 (저서 '그들이 말하지 않는 23가지'에서) 럼즈펠드의 발언에 대해 "저 말은 미래의 불확실성과 인간의 한계를 잘 나타낸 말"이라고 평가하고 있다. 장하준은 영국의 쉬운 영어 캠페인이 럼즈펠드의 말을 희화화했다고 비판했다. 반면 지제크는 '인지하고 있음을 인지하지 못하는 것들'을 추가로 고려되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말 자체로는 하이데거 같은 느낌이긴 하다.
이라크와 테러리스트간의 연관이 있느냐는 질문에 한 대화. 럼즈펠드가 전달하려는 뜻은 아는 것도 있고 모르는 것도 있다는 것이었다.
다큐멘터리 감독인 에롤 모리스가 이 문장을 따와서 럼즈펠드를 인터뷰한 다큐멘터리를 만들었다. 당연히 비꼬는 의도로, 럼즈펠드 본인이 등장해 직접 저 문장을 시전해주기도 한다 (...)

7. 말아먹은 무기 목록


  • XM2001 크루세이더 자주포
  • RAH-66 코만치
  • SR-71 - 이 경우는 개발취소나 퇴역처분이 아니라, 퇴역한 것을 재취역시키려던 것을 막은 경우.
  • M8 AGS
  • XM-29 OICW 기타 등등 랜드워리어 플랜 전체[24]
  • EFV

8. 매체에서


영화 바이스에서 스티브 카렐이 맡아서 열연하였다. 시종일관 저급한 섹드립을 쳐대며 자기 할 말만 고집하는 다소 예의 없고 멍청한(...) 성격으로 나온다.[25]

[1] 하기사 자기 아들을 잘못 보좌하여 망쳐놓을 대로 망쳐놓은 작자이자 악의 축인데 싫어할 만도 하다....[2] 명문 노스웨스턴 대학교 소재지이다.[3] 한국에도 경제기획원이 있었다. 다만 한국의 경제기획원은 사실상 예산처였다. 하지만 미국의 백악관 경제기획원은 한국과는 성격이 달라서, 미군이나 공무원 유공자 및 그 가족에 대한 특별 사회보장제도 예산이 제대로 집행되는지 연방에서 각 주 정부를 감독하고 수혜자 및 비수혜자를 구분하는 관청이었다. 심지어 그 시작은 린든 B. 존슨때 '위대한 사회' 정책에서 '가난과의 전쟁'(War on Poverty)을 기치로 내걸었을 정도. 미국의 해당 기능은 보건사회복지부제대군인부1981년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에 의해 이관되어, 경제기획원은 폐지되었다.[4] D.C. 에 있는 662대잠전대와 731대잠전대에서 복무하며 S2F를 조종하였다. 1975년에 국방부에 근무하기위해 즉응예비군으로 소속변경 후에 1989년에는 대령으로 퇴역하였다.[5] 사실 럼즈펠드는 당시에 공직 전면에 나왔던 상황은 아니었다. 걸프전은 콜린 파월 합참의장노먼 슈워츠코프 중부사령관이 지휘했으며, 럼즈펠드는 당시 상대적으로 한직인 자문직과 앞서 말한 모토로라 사장직을 맡고 있었다.[6] 이때 약간의 논란이 있었는데 럼즈펠드가 아버지 부시가 제럴드 포드의 부통령이 되지 못하도록 로비를 했다는 설이 제기되었는데 입증이 되지 않았고 조지 워커 부시는 능력이 중요하지 그런 과거사가 무슨 문제냐고 대수롭잖게 넘겨서 무마되었다. 그런데 정작 장관이 되고 나선...[7] 아버지 부시가(조지 H. W. 부시) 2015년 출간한 자서전에서 "(럼즈펠드를) 가까이서 접해본 적이 없지만 인간적인 면모나 다른 사람의 생각이 뭔지 헤아리는 능력이 없는 형편없는 사람"이라 혹평하기도 했다.[8] 미국 보수주의자들은 작은 정부가 미덕이라는 발상인데 그러자면 국가가 과대한 국가 지출을 해서는 안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 당연히 국방비의 과대지출 역시 죄악으로 보는 것은 당연한 일. [9] 첫 번째는 CIA가 위치파악까지 다 해놓고 전투부대만 보내면 잡을수 있다고 애걸복걸을 하는데도 외면하여 놓쳤고, 두 번째는 프레데터 UAV가 빈 라덴 포착에 성공해 그 자리에서 미사일만 발사하면 됐는데 '''미사일 발사권을 지닌 상급자와 연락이 안 돼서''' 놓쳤다. 후자야 본인과는 상관없는 불운이었다지만 전자는 지금도 럼즈펠드 최악의 병크중 하나로 손꼽힌다. 음모론으로는 빈라덴이 살아서 어그로를 끌어줘야 예산이건 추가 침공이건 할 수 있어서 방생해줬다는 설도 있다.[10] 앞에서도 언급한 것이지만 이들에게 정부의 간섭은 '절대 있어서도 안 되고 허용해서도 안 되는 죄악' 그 자체다. 그러니 국가가 보유한다는 것도 안되는 일이다. '''돈 들어 가니까.'''[11] 잘보면 1980년대 GE잭 웰치가 선도적으로 유행시킨 기업 구조조정과 유사하다. 수익이 떨어지는 비주력분야는 매각하고, 비핵심적 업무는 아웃소싱하며, 소수 인력의 핵심분야에만 자원을 집중한다는 리스트럭처링(Restructuring)으로 방만한 기업규모를 줄여서 단기적 수익을 극대화한다는 전략이다. 실제 럼스펠드의 구상대로 개조된 미군은 이라크 침공이란 단기적 작전에선 놀랄만한 효율을 보여주었지만, 그 뒤의 장기적 점령에선 처참하게 실패하였다.[12] 전쟁 초기엔 이 말이 맞았다. 워낙 후세인의 압제가 혹독했던지라 바그다드 점령 직후 이라크인들이 미군을 쌍수들고 환영하는 장면이 대서특필되었다. 즉, 민심도 초기엔 상당히 유리했기 때문에 전후처리만 잘했더라면 전쟁을 성공적으로 끝낼 기회가 있었건만, 럼스펠드의 무능은 그 기회를 날려먹었다는 것.[13] 대표적인 것인 이라크 전쟁에서 병참의 주계약자인 핼리버튼이다. 전후 재건사업 과정에 이들의 부정부패와 막장 일처리는 그야말로 상상을 초월하였으며, 이라크가 지금처럼 헬게이트가 된데에는 이들이 상당한 지분을 가지고 있다. 문제는 애초에 계약기간이 사실상 무기한이라서, 미국 정부는 아무런 권한이 없다. 대충 요약해보면 철조망치는 작업을 하청->하청->하청, 짬밥 요리하는 것도 하청->하청, 청소하는 것도 하청->하청 하는 식인데, 철조망은 엉망이요 밥은 안나오고 청소부도 없는 상황인데 돈은 나가고 책임소재는 아몰랑...대충 그런 상황.[14] 걸프전은 "형제 아랍국가를 다른 형제국가가 침략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다"는 공동의 의식이 깔려 다른 아랍국가들과의 협조가 비교적 원만하게 이뤄진 반면, 이라크전은 순수한 점령전이라 아랍국가들의 호응도 얻지 못했고, 결론적으로는 이라크 내의 종파분쟁을 더 악화시킴으로서 전후의 치안문제에 큰 타격을 준 것 뿐이다.[15] 제 아무리 미군이 다른 나라에 군정 경험이 많다 해도 국무부와 정치, 행정분야에서의 전문성은 떨어질 수 밖에 없고, 이런 부분은 당연히 국무부의 적극적인 협조가 필요하다. 그런데 럼즈펠드는 이런 기본 상식도 지키지 않았다.[16] 그 중 하나가 지도갱신을 안 해서 유고 내전에서 중국대사관을 오폭한 것.[17] 미군이 이라크를 공격하기를 바란 망명자들이 조작한 정보를 영미의 정보기관들이 검증없이 받아들인 것, 그리고 우다이가 수입한 자재가 우라늄 원심분리기용이 아니라 재래식 무기용이었다는 것 등.[18] 최소가 40만 이상이었고, 50만은 넘어야 한다는 의견이 대부분이었다. 참고로 이라크 점령 따윈 꿈도 꾸지 않았던 걸프전 당시 동원되었던 미군의 수가 60만이 훌쩍 넘었다.[19] 당장 미국이 개발한 수많은 대표적 신무기들인 줌왈트급 구축함, F-22전투기, RAH-66공격헬기, 전열화학포, A-12 어벤저 2 함재 공격기, XM2001 크루세이더 차세대 자주포 체계, EFV 차세대 상륙장갑차 m1그리즐리 공병전차같은 현 미군 무기들의 대체무장들이 이 양반때문에 시망의 구렁텅이로 들어섰다. [20] 오사마 빈 라덴에 대해 언급하지 않는 이유는 '''테러와의 전쟁이었던 아프간전'''은 그 수장이 좋든 싫든 미국을 상징하는 마천루 빌딩에 여객기를 때려박은 미친놈의 대장이자, 무슬림 극단주의자의 아이콘이기도 했기 때문에, 이 전쟁만큼은 미국 국민들의 자존심이 걸린 문제로 불계승, 항복승 이런게 아니라 무조건 빈 라덴의 모가지를 따 복수하지 않는 한 끝날 수가 없는 전쟁이었다. 이걸 알았으면 럼즈펠드 지시로 빈 라덴의 모가지를 땄다라는 전공만으로 이전까지의 병크를 다 덮을 수도 있었다. 문제는 럼즈펠드는 빈 라덴을 죽일 기회가 두 번이나 있었지만 한 번은 자기 무능으로 놓쳐서, 다른 한 번은 말 그대로 불운으로 놓치고 그 미국을 상대로 10년이나 도주에 성공했다. 결국 그걸 못한 과실은 오바마가 가져갔으며, 그 사건으로 트럼프가 오바마에 결정타를 맞고 2012년 공화당 경선에서 낙마하게 된다. [21] 이에 대해서는 이런 관점도 있다.[22] 그들이 말하지 않는 23가지에서는 횡설수설상이라 번역했다.[23] 참고로 2등은 "동성결혼은 남성여성의 결혼이어야 합니다"(…)라고 한 아놀드 슈워제네거였다.[24] 그나마 랜드 워리어는 2008년 다시 부활했다. 하지만 스트라이커를 노드로 네트워크화된 미래 하차보병들이란 개념은 미군에게 군용 타블렛 PC와 스마트폰이 보급되면서 아무래도 상관없는 이야기가 되었다. 현재는 2032년을 목표로 퓨처 포스 워리어로 이행된 상태.[25] 전반적으로 영화가 공화당 정권을 비꼬는 면이 강하다. 조지 W. 부시는 딕 체니의 입을 빌려 '아버지의 인정을 받으려 하는' 모자란 사람으로 나오고, 헨리 키신저는 몇초 등장하지도 않고 딕 체니에게 털린 뒤 백악관에서 쫓겨나는게 역할의 전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