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마나카 시카노스케
[image]
칠난팔고를 달라고 달에 비는 모습을 묘사한 동상.
山中鹿介
일본 전국시대의 무장이다. 하극상의 시대 가운데 의리의 전형같은 인물로 산음지방의 기린아라 불렸다.
본명은 야마나카 유키모리(山中幸盛)이나, 통칭인 시카노스케(鹿之介)쪽이 유명하여 이 쪽으로 많이 불린다. 그외, 鹿助, 鹿介, 鹿之助등으로도 표기된다.(발음 자체는 모두 시카노스케이다)
사슴뿔, 초생달 장식의 투구와 전설의 명검인 명도 삼일월이 트레이드 마크이다.
시카노스케가 성인식을 했을 쯤에 주군이던 아마고 가는 모리 모토나리가 이끄는 모리 가문에 의해 쥬고쿠 지방의 패권을 거의 다 잃게 된다. 이에 시카노스케가 '원하노니 초생달(삼일월)이여, 내게 칠난팔고를 달라'라고 빌었다는 일화가 유명하다.
아마고 10용사의 일원으로 끝까지 모리 가문과 싸웠지만 중과부적, 결국 패배하고 시카노스케도 사로잡히는 몸이 되고 말았다. 그러나, 설사를 빙자하여 뒷간을 무려 백번이 넘게 들락거리다 보초의 눈을 피해 탈출에 성공, 교토에 아마고 가의 핏줄이 남아있다는 소문 하나를 의지하여 교토로 향한다.
이 때, 수도권은 이미 노부나가가 장악한 후였는데, 시카노스케는 교토에서 주군인 아마고가의 정보를 수집하는 한편, 교양을 바탕으로 명사들과 교류하고, 무예를 과시하여 교토에서 이름난 강자를 쓰러뜨리며 주목을 끌기 시작한다.
얼마 가지않아 옛날 '신구도 사건'[2] 으로 몰살당한 아마고 사네히사의 자식이 출가하여 중이 된 것을 알게 되어, 그를 찾아가 설득하여 옹립하였으며 노부나가를 직접 만나 아마고 가 재흥을 허락받게 된다.
병사를 다시 긁어모은 시카노스케는 모리가의 선봉을 무너뜨리고 하리마에 진출하는데 성공한다. 이 때, 모리가를 섬기는 마스다가의 시나가와 다이젠이라는 강자는 스스로를 '늑대'라 칭하고 있었는데, 시카노스케에게 일기토를 도전했고, 시카노스케는 사투끝에 다이젠을 죽였다. 이 때, '사슴이 늑대를 물리쳤다'고 외쳤다는 것으로 유명하다. 이후 하시바 히데요시 산하로 오다 가문의 대 모리 전선 최전방 코우즈키 성을 지키도록 명을 받았다. 그러나 모리 데루모토가 코바야카와 다카카게, 킷카와 모토하루 등의 모리군 3만을 보내 성을 포위하였다.
하지만, 이 때 노부나가 포위망이 결성되어 오다 가문도 힘들게 되는 바람에, 후속 부대가 도착하지 않았다. 하시바 히데요시(후의 도요토미 히데요시)에게 구원을 요청하였지만, 노부나가의 '하리마는 포기하라'는 전령에 하시바 군도 오지 않았고, 결국 시카노스케의 군대는 고립무원에 빠졌다.
모리 가문은 '아마고 가쓰히사[3] 의 할복'을 조건으로 항복을 권고하였고, 시카노스케는 '이미 패배가 결정되었고, 가문의 재흥은 힘들게 되었지만 이렇게 된 이상 모리 가문을 쳐서 오랜 세월의 원한이라도 갚겠다'고 말했다. 그러자 가쓰히사는 '어차피 중으로 변변치 못하게 살던 나를 다이묘로까지 올려준 것은 시카노스케의 덕이다.'라며 기꺼이 배를 갈랐다.
이하 아마고가의 가신들은 죄다 모리 가문의 포로가 되고, 시카노스케도 항복하고 사로잡힌다. 살아남아 어떻게든 다시 아마고 가를 재흥하고자 기회를 엿보고자 하였으나, 시카노스케의 집념을 두려워한 킷카와 모토하루가 자객을 파견하여 호송 도중에 물가에서 기습을 당해 죽었다.
이 사건은 사실상, 노부나가가 시카노스케를 살해하도록 방치하였던 바, 히데요시는 이를 애석해하며 노부나가의 장남인 노부타다에게 '주군의 명성에 흠집이 나게 되었다'면서 통탄하였다는 일화가 있다.
NHK 드라마에서도 자주 나오지만 '''너무 교과서적인 히어로 이미지'''가 발목을 잡는지 대개는 단역 정도의 비중으로 그친다. 《모리 모토나리》에서는 그 유명한 '사슴이 늑대를 잡았다!' 에피소드가 재현되지만 아마고 가문이 바로 망해버리고 부흥 얘기는 주인공의 사후 얘기라서 곧바로 퇴장. 군사 간베에에서는 초중반 나름 비중있게 나오는데, 단정한 미남이었던 것으로 유명한 인물이건만 구레나룻이 북실북실한 마초 아저씨로 등장한다.간베에 앞에서 창을 바람개비처럼 돌리며 멋진 활약을 보여주지만 역사대로 비운의 최후를 맞이한다.
야마나카 시카노스케(전국 바사라) 항목 참조.
노부나가의 야망 혁신에서는 본명인 야마나카 유키모리로 등장한다. 통솔 74에 무용 85로 명성에 비하면 조금 낮은 듯한 능력치지만, 기본 보유 가보인 명도 미카즈키 무네치카(三日月宗近)[4] 가 1등급 가보라서 무용을 10이나 올려주는데다가 족경계 최고 전법인 창차를 부가전법으로 달고 있어서 게임 초반부터 쓰기 좋은 무장. 다만 이 게임에 단 4명밖에 없는 의리 100의 무장이라 다른 가문 소속이라면 등용하기가 좀 어렵다. 노부나가의 야망 창조 에서는 초승달이 함께하는 멋드러진 일러스트를 포함, 77/91/66/30 이라는 높은 무력치로 아마고 가문의 전투 산림꾼 임을 몸소 증명해준다. 하지만 옆동네가 모리가문인것이 함정.. 무력91은 창조 내 초기 무력 20위권 안에 드는 상위권이며 통솔/무력/지력 이 전부 20까지 성장한다고 가정했을 때 97/111/86 이라는 후덜덜한 파괴자로 변신한다!! 특기에는 그의 비운적 삶을 반영하듯 버젓이 '불운'(적에게 잡히기 쉬움)이 초기부터 붙어 있으니 전투시 패주를 조심하고 나중에 행운 특기를 얻어 불운 특기를 꼭 업그레이드 시켜두도록 하자. 노부나가의 야망 대지에서는 무용이 미친듯이 상향되어서 무려 97을 기록, 1위인 군신의 100과 공동 2위의 일본 제일의 무사, 화실겸비의 용사의 99, 4위인 서국무쌍의 98에 이어 얘 만큼은 아니더라도 함께 상향된 스즈키 시게히데와 동위인 공동 5위다..
전국란스의 야마나카 코지카는 바로 이 인물에서 모티브를 따왔다.
태합입지전 5에서는 초승달에 기도하는 전용 이벤트가 있으며, 제법 미남으로 등장한다. 스탯 분배는 노부나가의 야망 시리즈와 대동소이 하지만 통무지정매 이외의 적성이 처참한 수준이라 이 캐릭터로 플레이 하려면 여기저기서 수업을 많이 들어두는 것이 필수. 부하로 부려먹으려 해도 제 스탯을 살리려면 적성수치부터 키워야 해서 장기수업을 보내는 것은 반쯤 필수다. 한편 이식판 시나리오인 '몽환의 장'에서는 다이묘로 나오는데[5] 본인의 성격과[6] 훌륭한 장수진[7] 이 맞물려 주변 세력들을 흡수하여[8] 동쪽의 패왕이 되기 일쑤이다.
전국무쌍 3 엠파이어즈에서는 모리 모토나리이벤트에서 야마나카 시카노스케에 관련된 내용이 나온다. 덕분에 후속작에서 시카노스케의 참전을 점치는 사람이 많았으나...
모리 모토나리 맹세의 세 화살에서도 등장. 얼굴 변화가 있는 캐릭터중 하나다. 그 유명한 달에게 시련을 달라는 장면은 연인과의 이별 후 '''비가 내리는 도중 말 위에서 선 채로 칼을 빼들고 얘기한다.''' 모리 가문이 서국을 완전 장악한 뒤에도 굴복하지 않고 싸우게 되고[9] 이후 모토나리가 죽을때까지 승부가 나지 않아 테루모토로 주인공이 바뀐 뒤에나 결판을 내게된다. 복수에 대한 집념이 강해서 안고쿠지 에케이나 시노(시카노스케의 연인)가 설득을 해도 듣지 않고 계속 싸워나간다. 하지만 본작에선 오다 가문의 지원은 어디까지나 모리 가문의 힘을 재보려는 오다 노부나가와 하시바 히데요시의 술책이었기 때문에... 정말 끈질길 정도로 모리 가문에게 덤비며 킷카와 모토하루와는 라이벌 기믹이 있다. 정말 질릴 정도로 모리 가문에게 덤벼오는데, 결국 패배하고 항복한듯 보였으나 시카노스케가 쉽게 굴복할리 없다고 판단한 가신들이 닌자를 보내 살해한다. 사실 시카노스케도 모리에게 무릎꿇을 생각은 전혀 없었기 때문에 딱히 실책이라 할수는 없다. 결국 시카노스케의 연인인 시노만 애만 딸린 상태로 혼자가 되어버렸다[스포일러] 모리 가문이 적으로 나오는 오다 노부나가전이나 결전 3에서 우군이다.
전국무장을 여체화한 2차 창작물에서는 '칠난팔고' 때문인지 M 속성을 달고 나오는 경우도 있다.
특히 오다 노부나의 야망에 등장하는 시카노스케가 대표적이다.
아카츠키 전광전기의 주인공인 아카츠키의 전투 시작 시의 대사 하나는 시카노스케의 사세구에서, 다른 하나는 기도문에서 따 왔다.
모략과 배신이 난무하던 전국시대에서 죽을 때까지 자신의 주군인 아마고 가문을 배신하지 않았고, 아마고 가가 궤멸된 후에도 아마고 가의 부흥을 위해 노력했다는 점 덕분에 메이지 시대 이후 '무사도의 정신적 지주'로서 교과서에 실린 적 있고, 태평양 전쟁 시절에는 시카노스케의 일화가 국가에 대한 충성을 강조하는 프로파간다에 악용되기도 하였다.
아들인 고노이케 나오부미(고노이케 신로쿠라고도 함, 원래 이름은 야마나카 유키모토)는 시카노스케의 죽음 후 무사를 그만두고 상인이 되어 오사카에서 청주 장사로 떼돈을 벌어 고노이케 재벌의 시조가 된다[10] . 오사카 근방에서 고노이케란 이름이 붙은 곳들은 대체적으로 이쪽의 영향이다.
칠난팔고를 달라고 달에 비는 모습을 묘사한 동상.
山中鹿介
'''제게 칠난팔고(七難八苦)[1]
를 주소서.'''(我に七難八苦を与えたまえ)-아마고 가의 부흥을 위하여 빌었다는 기도.
1. 개요
일본 전국시대의 무장이다. 하극상의 시대 가운데 의리의 전형같은 인물로 산음지방의 기린아라 불렸다.
본명은 야마나카 유키모리(山中幸盛)이나, 통칭인 시카노스케(鹿之介)쪽이 유명하여 이 쪽으로 많이 불린다. 그외, 鹿助, 鹿介, 鹿之助등으로도 표기된다.(발음 자체는 모두 시카노스케이다)
사슴뿔, 초생달 장식의 투구와 전설의 명검인 명도 삼일월이 트레이드 마크이다.
2. 생애
시카노스케가 성인식을 했을 쯤에 주군이던 아마고 가는 모리 모토나리가 이끄는 모리 가문에 의해 쥬고쿠 지방의 패권을 거의 다 잃게 된다. 이에 시카노스케가 '원하노니 초생달(삼일월)이여, 내게 칠난팔고를 달라'라고 빌었다는 일화가 유명하다.
아마고 10용사의 일원으로 끝까지 모리 가문과 싸웠지만 중과부적, 결국 패배하고 시카노스케도 사로잡히는 몸이 되고 말았다. 그러나, 설사를 빙자하여 뒷간을 무려 백번이 넘게 들락거리다 보초의 눈을 피해 탈출에 성공, 교토에 아마고 가의 핏줄이 남아있다는 소문 하나를 의지하여 교토로 향한다.
이 때, 수도권은 이미 노부나가가 장악한 후였는데, 시카노스케는 교토에서 주군인 아마고가의 정보를 수집하는 한편, 교양을 바탕으로 명사들과 교류하고, 무예를 과시하여 교토에서 이름난 강자를 쓰러뜨리며 주목을 끌기 시작한다.
얼마 가지않아 옛날 '신구도 사건'[2] 으로 몰살당한 아마고 사네히사의 자식이 출가하여 중이 된 것을 알게 되어, 그를 찾아가 설득하여 옹립하였으며 노부나가를 직접 만나 아마고 가 재흥을 허락받게 된다.
병사를 다시 긁어모은 시카노스케는 모리가의 선봉을 무너뜨리고 하리마에 진출하는데 성공한다. 이 때, 모리가를 섬기는 마스다가의 시나가와 다이젠이라는 강자는 스스로를 '늑대'라 칭하고 있었는데, 시카노스케에게 일기토를 도전했고, 시카노스케는 사투끝에 다이젠을 죽였다. 이 때, '사슴이 늑대를 물리쳤다'고 외쳤다는 것으로 유명하다. 이후 하시바 히데요시 산하로 오다 가문의 대 모리 전선 최전방 코우즈키 성을 지키도록 명을 받았다. 그러나 모리 데루모토가 코바야카와 다카카게, 킷카와 모토하루 등의 모리군 3만을 보내 성을 포위하였다.
하지만, 이 때 노부나가 포위망이 결성되어 오다 가문도 힘들게 되는 바람에, 후속 부대가 도착하지 않았다. 하시바 히데요시(후의 도요토미 히데요시)에게 구원을 요청하였지만, 노부나가의 '하리마는 포기하라'는 전령에 하시바 군도 오지 않았고, 결국 시카노스케의 군대는 고립무원에 빠졌다.
모리 가문은 '아마고 가쓰히사[3] 의 할복'을 조건으로 항복을 권고하였고, 시카노스케는 '이미 패배가 결정되었고, 가문의 재흥은 힘들게 되었지만 이렇게 된 이상 모리 가문을 쳐서 오랜 세월의 원한이라도 갚겠다'고 말했다. 그러자 가쓰히사는 '어차피 중으로 변변치 못하게 살던 나를 다이묘로까지 올려준 것은 시카노스케의 덕이다.'라며 기꺼이 배를 갈랐다.
이하 아마고가의 가신들은 죄다 모리 가문의 포로가 되고, 시카노스케도 항복하고 사로잡힌다. 살아남아 어떻게든 다시 아마고 가를 재흥하고자 기회를 엿보고자 하였으나, 시카노스케의 집념을 두려워한 킷카와 모토하루가 자객을 파견하여 호송 도중에 물가에서 기습을 당해 죽었다.
이 사건은 사실상, 노부나가가 시카노스케를 살해하도록 방치하였던 바, 히데요시는 이를 애석해하며 노부나가의 장남인 노부타다에게 '주군의 명성에 흠집이 나게 되었다'면서 통탄하였다는 일화가 있다.
3. 창작물에서
3.1. 영상물
NHK 드라마에서도 자주 나오지만 '''너무 교과서적인 히어로 이미지'''가 발목을 잡는지 대개는 단역 정도의 비중으로 그친다. 《모리 모토나리》에서는 그 유명한 '사슴이 늑대를 잡았다!' 에피소드가 재현되지만 아마고 가문이 바로 망해버리고 부흥 얘기는 주인공의 사후 얘기라서 곧바로 퇴장. 군사 간베에에서는 초중반 나름 비중있게 나오는데, 단정한 미남이었던 것으로 유명한 인물이건만 구레나룻이 북실북실한 마초 아저씨로 등장한다.간베에 앞에서 창을 바람개비처럼 돌리며 멋진 활약을 보여주지만 역사대로 비운의 최후를 맞이한다.
3.2. 전국 바사라 시리즈
야마나카 시카노스케(전국 바사라) 항목 참조.
3.3. 노부나가의 야망 시리즈
노부나가의 야망 혁신에서는 본명인 야마나카 유키모리로 등장한다. 통솔 74에 무용 85로 명성에 비하면 조금 낮은 듯한 능력치지만, 기본 보유 가보인 명도 미카즈키 무네치카(三日月宗近)[4] 가 1등급 가보라서 무용을 10이나 올려주는데다가 족경계 최고 전법인 창차를 부가전법으로 달고 있어서 게임 초반부터 쓰기 좋은 무장. 다만 이 게임에 단 4명밖에 없는 의리 100의 무장이라 다른 가문 소속이라면 등용하기가 좀 어렵다. 노부나가의 야망 창조 에서는 초승달이 함께하는 멋드러진 일러스트를 포함, 77/91/66/30 이라는 높은 무력치로 아마고 가문의 전투 산림꾼 임을 몸소 증명해준다. 하지만 옆동네가 모리가문인것이 함정.. 무력91은 창조 내 초기 무력 20위권 안에 드는 상위권이며 통솔/무력/지력 이 전부 20까지 성장한다고 가정했을 때 97/111/86 이라는 후덜덜한 파괴자로 변신한다!! 특기에는 그의 비운적 삶을 반영하듯 버젓이 '불운'(적에게 잡히기 쉬움)이 초기부터 붙어 있으니 전투시 패주를 조심하고 나중에 행운 특기를 얻어 불운 특기를 꼭 업그레이드 시켜두도록 하자. 노부나가의 야망 대지에서는 무용이 미친듯이 상향되어서 무려 97을 기록, 1위인 군신의 100과 공동 2위의 일본 제일의 무사, 화실겸비의 용사의 99, 4위인 서국무쌍의 98에 이어 얘 만큼은 아니더라도 함께 상향된 스즈키 시게히데와 동위인 공동 5위다..
3.4. 그 외의 창작물
전국란스의 야마나카 코지카는 바로 이 인물에서 모티브를 따왔다.
태합입지전 5에서는 초승달에 기도하는 전용 이벤트가 있으며, 제법 미남으로 등장한다. 스탯 분배는 노부나가의 야망 시리즈와 대동소이 하지만 통무지정매 이외의 적성이 처참한 수준이라 이 캐릭터로 플레이 하려면 여기저기서 수업을 많이 들어두는 것이 필수. 부하로 부려먹으려 해도 제 스탯을 살리려면 적성수치부터 키워야 해서 장기수업을 보내는 것은 반쯤 필수다. 한편 이식판 시나리오인 '몽환의 장'에서는 다이묘로 나오는데[5] 본인의 성격과[6] 훌륭한 장수진[7] 이 맞물려 주변 세력들을 흡수하여[8] 동쪽의 패왕이 되기 일쑤이다.
전국무쌍 3 엠파이어즈에서는 모리 모토나리이벤트에서 야마나카 시카노스케에 관련된 내용이 나온다. 덕분에 후속작에서 시카노스케의 참전을 점치는 사람이 많았으나...
모리 모토나리 맹세의 세 화살에서도 등장. 얼굴 변화가 있는 캐릭터중 하나다. 그 유명한 달에게 시련을 달라는 장면은 연인과의 이별 후 '''비가 내리는 도중 말 위에서 선 채로 칼을 빼들고 얘기한다.''' 모리 가문이 서국을 완전 장악한 뒤에도 굴복하지 않고 싸우게 되고[9] 이후 모토나리가 죽을때까지 승부가 나지 않아 테루모토로 주인공이 바뀐 뒤에나 결판을 내게된다. 복수에 대한 집념이 강해서 안고쿠지 에케이나 시노(시카노스케의 연인)가 설득을 해도 듣지 않고 계속 싸워나간다. 하지만 본작에선 오다 가문의 지원은 어디까지나 모리 가문의 힘을 재보려는 오다 노부나가와 하시바 히데요시의 술책이었기 때문에... 정말 끈질길 정도로 모리 가문에게 덤비며 킷카와 모토하루와는 라이벌 기믹이 있다. 정말 질릴 정도로 모리 가문에게 덤벼오는데, 결국 패배하고 항복한듯 보였으나 시카노스케가 쉽게 굴복할리 없다고 판단한 가신들이 닌자를 보내 살해한다. 사실 시카노스케도 모리에게 무릎꿇을 생각은 전혀 없었기 때문에 딱히 실책이라 할수는 없다. 결국 시카노스케의 연인인 시노만 애만 딸린 상태로 혼자가 되어버렸다[스포일러] 모리 가문이 적으로 나오는 오다 노부나가전이나 결전 3에서 우군이다.
전국무장을 여체화한 2차 창작물에서는 '칠난팔고' 때문인지 M 속성을 달고 나오는 경우도 있다.
특히 오다 노부나의 야망에 등장하는 시카노스케가 대표적이다.
아카츠키 전광전기의 주인공인 아카츠키의 전투 시작 시의 대사 하나는 시카노스케의 사세구에서, 다른 하나는 기도문에서 따 왔다.
4. 기타
모략과 배신이 난무하던 전국시대에서 죽을 때까지 자신의 주군인 아마고 가문을 배신하지 않았고, 아마고 가가 궤멸된 후에도 아마고 가의 부흥을 위해 노력했다는 점 덕분에 메이지 시대 이후 '무사도의 정신적 지주'로서 교과서에 실린 적 있고, 태평양 전쟁 시절에는 시카노스케의 일화가 국가에 대한 충성을 강조하는 프로파간다에 악용되기도 하였다.
아들인 고노이케 나오부미(고노이케 신로쿠라고도 함, 원래 이름은 야마나카 유키모토)는 시카노스케의 죽음 후 무사를 그만두고 상인이 되어 오사카에서 청주 장사로 떼돈을 벌어 고노이케 재벌의 시조가 된다[10] . 오사카 근방에서 고노이케란 이름이 붙은 곳들은 대체적으로 이쪽의 영향이다.
[1] 불교 용어. 일곱 가지 재난과 여덟 가지의 괴로움을 뜻한다.[2] 아마고 하루히사는 본래 신구도(진궁당)라는 친위대를 두고 있었는데, 하루히사가 어느 날 신구도가 자신을 배신하려 한다며 신구도를 모조리 붙잡아 처형시켰다. 이에 대해 모리 모토나리의 계략에 하루히사가 넘어가서 하루히사가 신구도를 숙청했다는 설이 있었으나 오늘날에는 모토나리의 모략과 관계없이 하루히사가 독단적인 판단으로 신구도를 숙청했다는 것이 정설이다.[3] 위에 서술된 아마고 사네히사의 자식이다. 야마나카 시카노스케 등의 설득으로 환속하면서 이름을 가쓰히사로 정했다.[4] 실제로는 유키모리가 쓴 검이 천하오검의 하나인 미카즈키 무네치카가 아닐 가능성이 높다. 유키모리가 미카즈키(三日月)라고 불린 검을 썼다는 전승과 한게츠마루(半月丸)라 불린 무네치카(宗近)의 검을 패용했다는 기록 등이 혼동된 것으로 보인다. 실제 미카즈키 무네치카는 아시카가 요시테루가 가지고 있던 것을 미요시 3인중이 에이로쿠의 변 당시 빼앗고, 이후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손에 들어가게 된다.[5] 본가의 군웅집결과는 달리, 역사상 세력이 아니라 일정한 컨셉으로 다이묘가 배치되어 있다. 시카노스케는 '산(山)'.[6] 야망은 40대로 낮은 편이지만 성격이 상당히 공격적이다(보통/대담/경솔).[7] 일단 야마가타 마사카게와 야마모토 간스케가 있고, '산'이라는 글자가 들어가는 성씨가 많아선지 숫자도 그럭저럭 된다.[8] 다들 세력이 고만고만하다. 특히 '만(万)' 컨셉의 '이치만다 아키자네' 세력의 경우 장수가 '''본인 하나뿐'''이다.[9] 갓산 토다 점령 이후 나오는 컷씬에서 모토나리가 감회에 젖어 지난 나날을 추억하는데 포로중에 시카노스케가 없다는 모토하루의 보고에 안색이 싹 변한다. 시카노스케를 위험하게 본 모토나리는 모략을 써서 그를 꾀어내려 하고 이를 본 테루모토는 저러면 아마고나 오우치와 다를게 뭐냐고 충격을 받는다.[스포일러] 이후 시카노스케와 '''똑같이 생긴''' 아들(심지어는 게임상에서 이름도 같다..)이 최종장에서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원군으로 등장한다. 시노마저 죽어버리자 홀로 모리 가문에 대한 원한을 키웠고 이후 스님으로 변장하여 모토하루를 암살하려 하는등 끝까지 모리에 대한 증오를 보여준다. 결국엔 이 아들마저도 모리 군에게 죽고 마는데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이 모습을 보더니 괜히 병력을 나누어줬다고 짜증을 낸다. 결국 부자가 전국 3영걸들에게 이용만 당한 셈이다.[10] 에도시대때만 해도 고노이케는 미쓰이, 스미토모를 능가하는 거상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