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마고 하루히사
[image]
尼子晴久
(1514 ~ 1561)
일본 전국시대의 다이묘. 이즈모 아마고 가문 당주. 아마고 마사히사의 적남. 아마고 츠네히사의 손자.
마사히사가 아요성을 공격했다가 전사했고 1518년에 관례를 했으며, 1531년에 아마고 츠네히사에게 반항한 엔야 오키히사에게 가담한 장인 야마노우치 나오미치를 공격하는 것에 참전했다. 1538년에 조부 츠네히사가 은거하면서 가독을 상속받아 오우치의 세력 하에 둔 이와미 은광을 빼앗고 하리마국의 아카마츠 하루마사를 공격해 승리했으며, 1539년에 타츠노성을 함락해 그 위세를 하리마국까지 확대했다.
막부에서는 이시야마 혼간지와 대립해 오우치, 아마고 등에게 구원, 상락 요청 등을 했는데, 아시카가 요시하루의 입경을 명분으로 오우치 포위망을 구축하면서 아키의 다케다 가문과 연락을 취하고 빈고국의 미야 가문, 시부카와 가문 등을 종속시키는 등 오우치 가문을 압박했다. 미키성의 벳쇼 나리하루를 공격했고 벳쇼 가문이 아마고에게 붙어 아카마츠 하루마사를 사카이로 도망가게 만든다.
하루히사는 상경하려고 했지만 오우치 포위망의 중심인 오토모 요시아키가 오우치 요시타카와 화목하면서 포위망이 와해되자 이즈모로 철수했으며, 아시카가 요시하루가 아마고 가문의 하리마 진출을 경계해 오우치 가문에게 아마고 가문에 대한 공격을 요청해 오우치 가문이 아키의 다케다 노부자네를 공격하자 하루히사는 원병을 파견했지만 사토카나야마성이 함락되고 노부자네는 일시적으로 와카사로 도망갔고 이로 인해 오우치 가문과는 표면상으로는 화해 관계였지만 완전히 파탄난다.
아마고 가문은 세력 확대를 했지만 아키국 방면에서 모리 모토나리가 세력을 확장하기 시작했는데, 1540년에 모리 가문의 요시다고리야마성을 공격했지만 패했고 1541년에 츠네히사의 죽음으로 아마고 가문 휘하에 있던 영주들이 오우치 가문에게 돌아서는 상황이 벌어졌다. 아시카가 요시하루로부터 晴의 글자를 받아 아키히사(詮久)에서 하루히사(晴久)로 개명했으며, 미마사카국의 미우라 가문, 나카무라 가문 등을 공격했고 1542년에 오우치, 모리의 연합 공격으로 갓산토다성을 공격당해 1차 갓산토다 성 전투가 일어났지만 승리했고 오우치 가문에 가담한 아마고 키요히사 등을 숙청했다.
1543년에 오우치 가문에게 빼앗긴 이와미국을 공격해 이와미 은광을 탈환했으며, 1544년에 이나바국의 야마나 히사미치를 공격해 편입시켰지만 야마나 스케토요의 공격으로 히사미치가 패하자 이나바국에서 철수했다. 1548년에는 미마사카국의 미우라 가문을 편입시켰고 모리 가문을 공격해 아키국, 빈고국 등을 공략했으며, 1551년에 우라카미 무네카게에게 승리했고 이즈모국, 호키국, 미마사카국, 이나바국, 비젠국, 빗츄국, 빈고국 등 총 8개국의 수호를 겸임해 아마고 가문의 전성기를 이룬다.
1552년에는 빈고의 에다 가문을 아마고 가문 쪽으로 돌아서게 했고 1553년 3월에는 미마사카국의 동부로 진출해 요격한 우라가미 무네카게, 고토 카츠모토 등을 격퇴하고 텐진야마성까지 진출해 하리마의 카고가와까지 진격했지만 에다 가문이 모리 가문을 중심으로 한 오우치 가문의 제후국들이 그 틈을 타 공격한 것을 알고 군을 되돌렸다.
1554년에 아마고 구니히사를 비롯한 신구토를 제거했고 1557년에 오우치 가문이 멸망하자 이와미국으로 진격해 이와미 은광을 장악했으며, 1558년에 모리 가문이 이와미 동부를 공격해 오가사와라 나가타카의 누큐우성이 공격당하자 구원하기 위해 출진했지만 호우로 인해 강의 물이 불어나 건너지 못했다. 결국 1559년 8월에 오가사와라는 모리에게 항복하였고, 모토나리는 기세를 몰아 이와미 은광 수비의 요충지인 야마부키성을 공격했지만 성주 혼조 츠네미츠의 항전과 하루히사의 증원에 의하여 패퇴하였다. 이렇게 하여 이와미 은광에 대한 영유권을 확고히 한 하루히사는 1560년에 모리 측에 있던 미무라 이에치카와 교전하여 그를 패퇴시키는 등 활발한 활동을 계속하였지만, 1561년에 갓산토다 성에서 급사하였다.
하루히사의 급사 이후 아마고는 급속도로 쇠퇴하였고, 결국 모리에 의하여 무너지게 된다. 아마고씨의 마지막 당주인 아들 요시히사는 아마고씨 멸망 후 되도록 모리 가문에 거스르지 않으며 조용하게 일생을 보낸 덕에 아마고씨는 후일 본성인 사사키씨로 개명하여 자손을 남기고, 야마나카 시카노스케등의 충성파 가신을 중심으로 과거에 하루히사에게 주살당한 구니히사 측의 후손을 옹립한 아마고씨 부흥운동이 일어나지만 이쪽은 결국 모리에게 패배하면서 센고쿠 다이묘로서의 아마고 가문은 완전히 소멸한다.
일반적으로 모리 모토나리에게 휘둘려 아마고 가문을 지탱하던 신구토를 괴멸하고 이후 아마고 가문의 몰락을 초래했다고 평가 받지만, 현실은 할아버지에 이어 아마고 가문의 전성기를 유지한 인물, 논란이 되는 신구토 역시 아마고 가문에 충성을 바치던 집단이 전혀 아니였기에 숙청은 결국 필연적이였고, 신구토 숙청 이후에도 아마고 가문은 여전히 강력했다. 그 증거가 바로 이와미 은광으로, 모리 가문이 어떻게든 주코쿠의 돈줄이였던 이와미 은광을 차지하려고 노력했지만, 하루히사 생전에는 이러한 시도는 모조리 실패했다.
그러나 하루히사 사후에는 아마고 가문이 너무 급속도로 몰락해버렸기에 비판을 피하기 힘든 점 도 있다. 다만 이 문제는 하루히사만의 잘못이 아니라 아마고 가문의 고질적인 문제였다. 아마고 가문은 전통적인 주코구의 강자였던 오우치 가문과 패권을 다툴 정도로 너무 급속도로 고속 성장했기에, 지지 기반이 너무나도 취약했다. 그랬기에 나름 재능이 있던 츠네히사, 하루히사 생전에는 어떻게든 굴러갔지만, 하루히사 사후, 능력있는 가주가 사라지면서 결국 버티지 못하고 몰락한 셈.
가문의 최대 판도를 구축했으나 미디어 매체에서 저평가되는 경향이 있다는 점에서는 도카이의 전국무장인 이마가와 요시모토와 이미지가 겹치는 부분이 있다. 그나마 요시모토는 일본 역사에서 제일 인기 많은 인물 중 한 명인 오다 노부나가의 적수로 등장할 뿐만 아니라 그 외 전국무장 중 유명한 편에 속하는 다케다 신겐, 호조 우지야스와도 큰 연관이 있는 인물이다 보니 어느 정도 인지도가 있고 이후로 오면서 점차 재평가되는 추세인데, 아마고 하루히사는 인지도 자체가 그리 높은 편은 아니라서 안습.
1997년작 <모리 모토나리>에서 등장. 단순하고 격정적인 성격으로 인해 모략가인 할아버지 츠네히사에게 늘 혼이 난다. 할아버지가 죽은 후에는 아버지를 뛰어넘으려는 집착 때문에 갈수록 편협하고 피해망상적인 모습을 보이다가 이런 멘탈을 노린 모토나리의 계략에 빠져서 가문 내의 무신집단인 신구토(신궁당)의 리더 아마고 구니히사를 의심해 끔살하기까지 한다.[1] 근데 이런 짓을 저지르고도 아버지의 끔살을 목격해서 원한을 품은 구니히사의 딸을 계속 아내로 두는 실수를 저지르고, 결국 원한을 잊지 못한 구니히사의 딸에게 독살당하게 된다.[2] 암군으로 묘사되지만 호조 우지마사처럼 실제로는 아버지에 못미치는 못난 아들은커녕 그 나름대로 가문의 최대 판도를 달성한 군주이며, 신구토와의 내부갈등도 모토나리의 계략은커녕 다 이유가 있는 숙청이었다는 것이 실제 역사와의 차이점.
혁신까지는 그야말로 능력치가 안 좋았지만 천도에서부터 재평가를 받아 그럭저럭 B급 무장이 되었다. 창조 pk에서는 업데이트로 아마고 가 전국전이 생기며 약간 날카로운 인상의 청년으로 변경되었다. 어떻게 보면 모리 모토나리 맹세의 세 화살에 등장했을 때의 일러스트를 창조 일러스트 스타일에 맞게 어레인지한 듯한 느낌.
플레이어블 세력은 아니지만 아마고 가문의 당주로 등장. 제작진의 한자 실력의 한계인지 아마'''코'''로 나와 있지만 수정되지 않고 있다. 초기에는 모리를 짓누르고 추고쿠의 패자가 되는 경우가 많았지만[3] 가문의 흥망에 랜덤성이 강해지는 패치 이후로 강세가 많이 죽었다.
전국 바사라 3과 전국 바사라 3 연에서 플레이 불가능한 적 지방 영주로 등장한다. 성우는 카와무라 타쿠오. 북미판 성우는 데이비드 로지(David Lodge).[4] 속성은 바람. 일인칭은 오레.
호칭은 일망천야(一望千夜). 혼자서 유난히 튀는 핫핑크색 옷차림에 얼핏 보면 여성으로 착각할 수 있는 미남형인 얼굴 때문인지 지방 영주 치고는 인기 투표 순위가 꽤 높은 편이다. 실제로 외모도 그렇고 옷 색깔 때문에 여성일거라고 생각했다가 건장한 청년의 목소리가 나오는 순간 깼다(...) 는 반응도 있다.
그가 등장하는 맵인 갓산토다성 사구전은 온통 모래로 이루어진 사막이다. 아마고 하루히사가 거의 시작하자마자 보스로 나오는데 몇 대 때리면 위협을 느끼고는 모래 속으로 숨어 버린다. 이후에 모래가 움직이는 곳에 가까이 가면 다시 나타나기 때문에 해치울 수 있지만 시간을 끌면 다시 모래 속으로 도망가서 다른 진으로 이동한다. 혹은 맵상의 진을 모조리 점령하면 숨겨진 동굴이 나타나고 그 안에서 싸우게 되는데 이렇게 동굴 속으로 몰아넣으면 더 이상 도망가지 못한다.
저 숨겨진 동굴을 찾아내는 것이 특별 은상 조건 중 하나다. 그리고 다른 조건은 아마고 하루히사가 3번 도망치기 전에 격파하는 것인데, 첫 도망시에는 무조건 처음 마주친 곳 바로 북쪽의 진으로 도망간다. 즉, 그 진을 가장 나중에 점령하는 것을 목표로 모든 진을 제압한다면 두 개의 특별 은상 달성이 확정된다.
지방 영주이기 때문에 상대하는데 크게 어렵지는 않지만 고난이도일 때는 그가 사용하는 바람 기술을 조심해야 한다.
이유는 알 수 없지만 이 갓산토다성 사구전 맵을 플레이할 때 진행이 툭툭 끊기는 지연 현상이 유난히 심하다.
시작하자마자 보스가 나와 1차전을 치르고 그 지점에서 북쪽으로 조금만 더 가면 2차전을 치러서 격파할 수 있다는 사실 때문에 노대미지 클리어 관련 샌드백 신세가 되었다(...) 3편에서 노대미지 클리어로 얻는 자원 노가다를 하고자 할 때는 당연히 1순위로 선택되는 맵이며, 3연에서 슈퍼 스타일리쉬 트로피[5] 를 공략할 때도 가장 좋은 시작점이다.
3편의 지방 영주 중에서는 상당히 인기가 있었던 모양인지 전국 바사라 4에서도 유일하게 이름이 언급되고 그의 후계자급 인물인 야마나카 시카노스케가 플레이어블 캐릭터로 등장한다. 시카노스케가 전국을 돌아다니는 목적이 바로 자신의 주군 하루히사를 찾기 위한 것이다. 아쉽게도 하루히사 본인의 등장은 없지만, 시카노스케와 싸우는 맵인 이즈모 시라가성은 전작의 갓산토다성 사구전과 마찬가지로 사막 배경인데다 하루히사와 똑같은 핑크색 옷차림의 아마고 10용사가 등장한다.
극 중 후에 선데이 모리가 하루히사를 '''사랑의 낙원'''으로 끌어들였다고 한다. 즉, 모리에게 납치당한 후 자비교의 신자가 되어버린 것이다(...) '''포엠'''이라는 세례명은 덤이다.
[image]
확장팩인 전국 바사라 4 황에서 드디어 등장한다. 하지만 플레이어블이라거나 스토리에 관여하는 무장은 아니고 단지 룰렛 효과가 "천화"일 때 일정 확률로 45초간 적 무장, 정확히 말하면 샌드백(...)으로 등장했다가 사라진다. 정식 명칭은 포엠 아마고, 자비교에 세뇌된 아마고 하루히사이다. 3편에서처럼 땅 속으로 들어갔다 나왔다 하는데, 나타났을 때 공격을 먹이는데 성공하면 천화 메달을 얻게 되고 연속으로 성공할수록 더욱 많은 메달을 획득할 수 있다. 처음에는 한 방에 5개로 시작하지만 계속 성공하면 150개까지 올라가고 그 이상으로는 올라가지 않는다. 움직임이 그리 빠르지도 않고 밖에 나온 상태로도 꽤 오랫동안 머물기 때문에 공격하는 것 자체는 쉽다. 주변에 방해 요소만 없다면 이 녀석에게 천화 메달을 수백개 뜯어내는 것은 일도 아니며 운이 좋으면 1000개를 넘게 뜯어낼 수도 있다. 연속 공격에 잘 성공한다면 오히려 천화의 다른 효과인 메달병보다도 훨씬 많은 메달을 뜯어낼 수 있을 정도이다.
하지만 계속 쫓아다니며 때려야 하는 것이 번거롭다보니 난전중에 등장하면 대부분 무시하고 지나가게 된다. 그리고 이유는 불명확하지만 가끔 이 놈이 한참동안 튀어나오지 않고 엄청나게 멀리 도망간다거나 직각 모양의 코너에 오랫동안 끼어있을 때가 있는데, 그렇게 되면 시간에서 손해를 보기 때문에 이 녀석에게 메달을 뜯어내던 중이었다면 꽤나 빡친다(...) 반대로 도망다니는게 아니라 플레이어 주변에서만 나왔다 들어갔다 할 때도 있으며 이 때는 도망가는 아마고를 쫓아다닐 필요도 없고 시간상으로도 이득이라 메달을 많이 뜯어내기 좋다. 어떤 패턴으로 나오는지는 랜덤인듯 하다.
룰렛의 효과 중에서는 그다지 환영받지 못하지만, 그래도 1초가 아까운 상황에서 게임을 늘어지게 하거나 플레이어에게 해를 끼치거나 방해하지 않기 때문에 그 말도 많고 탈도 많은 폭탄병처럼 폭탄(...) 취급을 받지는 않는다. 오히려 정신없이 바쁠 때는 룰렛을 돌렸을 때 차라리 이 녀석이 나오면 마음이 편할 때도 있다. 참고로 메달 획득을 위한 이벤트성으로 등장하기 때문에 격파는 불가능하며, 심지어 모든 적을 한 방에 보내는 나오에 카네츠구로 때려도 죽지 않는다. 그래도 어쨌든 적 유닛으로 취급되기 때문인지 어이없게도 주먹밥을 던지는 적 병사가 아마고에게도 주먹밥을 던져서 회복시키려고 하기도 한다.
아마고는 바닥의 재질에 상관없이 어디든 파고 들어갈 수 있다. 돌이든 나무든 상관없이... 심지어 시즈가타케 오다첨병진공에서 나오는 인간 다리도 타고 다닌다.(!)
그런데 그를 애타게 찾고 있는 시카노스케도 하루히사를 보고 별 반응을 나타내지 않으며 심지어 시카노스케가 보스로 나오는 스테이지에 출현해도 누구 하나 알아보는 사람이 없다. 어차피 가면 하나만 쓰면 완전히 못 알아보는 사람도 많은 세계이니 그러려니 하자.
尼子晴久
(1514 ~ 1561)
1. 개요
일본 전국시대의 다이묘. 이즈모 아마고 가문 당주. 아마고 마사히사의 적남. 아마고 츠네히사의 손자.
2. 생애
마사히사가 아요성을 공격했다가 전사했고 1518년에 관례를 했으며, 1531년에 아마고 츠네히사에게 반항한 엔야 오키히사에게 가담한 장인 야마노우치 나오미치를 공격하는 것에 참전했다. 1538년에 조부 츠네히사가 은거하면서 가독을 상속받아 오우치의 세력 하에 둔 이와미 은광을 빼앗고 하리마국의 아카마츠 하루마사를 공격해 승리했으며, 1539년에 타츠노성을 함락해 그 위세를 하리마국까지 확대했다.
막부에서는 이시야마 혼간지와 대립해 오우치, 아마고 등에게 구원, 상락 요청 등을 했는데, 아시카가 요시하루의 입경을 명분으로 오우치 포위망을 구축하면서 아키의 다케다 가문과 연락을 취하고 빈고국의 미야 가문, 시부카와 가문 등을 종속시키는 등 오우치 가문을 압박했다. 미키성의 벳쇼 나리하루를 공격했고 벳쇼 가문이 아마고에게 붙어 아카마츠 하루마사를 사카이로 도망가게 만든다.
하루히사는 상경하려고 했지만 오우치 포위망의 중심인 오토모 요시아키가 오우치 요시타카와 화목하면서 포위망이 와해되자 이즈모로 철수했으며, 아시카가 요시하루가 아마고 가문의 하리마 진출을 경계해 오우치 가문에게 아마고 가문에 대한 공격을 요청해 오우치 가문이 아키의 다케다 노부자네를 공격하자 하루히사는 원병을 파견했지만 사토카나야마성이 함락되고 노부자네는 일시적으로 와카사로 도망갔고 이로 인해 오우치 가문과는 표면상으로는 화해 관계였지만 완전히 파탄난다.
아마고 가문은 세력 확대를 했지만 아키국 방면에서 모리 모토나리가 세력을 확장하기 시작했는데, 1540년에 모리 가문의 요시다고리야마성을 공격했지만 패했고 1541년에 츠네히사의 죽음으로 아마고 가문 휘하에 있던 영주들이 오우치 가문에게 돌아서는 상황이 벌어졌다. 아시카가 요시하루로부터 晴의 글자를 받아 아키히사(詮久)에서 하루히사(晴久)로 개명했으며, 미마사카국의 미우라 가문, 나카무라 가문 등을 공격했고 1542년에 오우치, 모리의 연합 공격으로 갓산토다성을 공격당해 1차 갓산토다 성 전투가 일어났지만 승리했고 오우치 가문에 가담한 아마고 키요히사 등을 숙청했다.
1543년에 오우치 가문에게 빼앗긴 이와미국을 공격해 이와미 은광을 탈환했으며, 1544년에 이나바국의 야마나 히사미치를 공격해 편입시켰지만 야마나 스케토요의 공격으로 히사미치가 패하자 이나바국에서 철수했다. 1548년에는 미마사카국의 미우라 가문을 편입시켰고 모리 가문을 공격해 아키국, 빈고국 등을 공략했으며, 1551년에 우라카미 무네카게에게 승리했고 이즈모국, 호키국, 미마사카국, 이나바국, 비젠국, 빗츄국, 빈고국 등 총 8개국의 수호를 겸임해 아마고 가문의 전성기를 이룬다.
1552년에는 빈고의 에다 가문을 아마고 가문 쪽으로 돌아서게 했고 1553년 3월에는 미마사카국의 동부로 진출해 요격한 우라가미 무네카게, 고토 카츠모토 등을 격퇴하고 텐진야마성까지 진출해 하리마의 카고가와까지 진격했지만 에다 가문이 모리 가문을 중심으로 한 오우치 가문의 제후국들이 그 틈을 타 공격한 것을 알고 군을 되돌렸다.
1554년에 아마고 구니히사를 비롯한 신구토를 제거했고 1557년에 오우치 가문이 멸망하자 이와미국으로 진격해 이와미 은광을 장악했으며, 1558년에 모리 가문이 이와미 동부를 공격해 오가사와라 나가타카의 누큐우성이 공격당하자 구원하기 위해 출진했지만 호우로 인해 강의 물이 불어나 건너지 못했다. 결국 1559년 8월에 오가사와라는 모리에게 항복하였고, 모토나리는 기세를 몰아 이와미 은광 수비의 요충지인 야마부키성을 공격했지만 성주 혼조 츠네미츠의 항전과 하루히사의 증원에 의하여 패퇴하였다. 이렇게 하여 이와미 은광에 대한 영유권을 확고히 한 하루히사는 1560년에 모리 측에 있던 미무라 이에치카와 교전하여 그를 패퇴시키는 등 활발한 활동을 계속하였지만, 1561년에 갓산토다 성에서 급사하였다.
하루히사의 급사 이후 아마고는 급속도로 쇠퇴하였고, 결국 모리에 의하여 무너지게 된다. 아마고씨의 마지막 당주인 아들 요시히사는 아마고씨 멸망 후 되도록 모리 가문에 거스르지 않으며 조용하게 일생을 보낸 덕에 아마고씨는 후일 본성인 사사키씨로 개명하여 자손을 남기고, 야마나카 시카노스케등의 충성파 가신을 중심으로 과거에 하루히사에게 주살당한 구니히사 측의 후손을 옹립한 아마고씨 부흥운동이 일어나지만 이쪽은 결국 모리에게 패배하면서 센고쿠 다이묘로서의 아마고 가문은 완전히 소멸한다.
일반적으로 모리 모토나리에게 휘둘려 아마고 가문을 지탱하던 신구토를 괴멸하고 이후 아마고 가문의 몰락을 초래했다고 평가 받지만, 현실은 할아버지에 이어 아마고 가문의 전성기를 유지한 인물, 논란이 되는 신구토 역시 아마고 가문에 충성을 바치던 집단이 전혀 아니였기에 숙청은 결국 필연적이였고, 신구토 숙청 이후에도 아마고 가문은 여전히 강력했다. 그 증거가 바로 이와미 은광으로, 모리 가문이 어떻게든 주코쿠의 돈줄이였던 이와미 은광을 차지하려고 노력했지만, 하루히사 생전에는 이러한 시도는 모조리 실패했다.
그러나 하루히사 사후에는 아마고 가문이 너무 급속도로 몰락해버렸기에 비판을 피하기 힘든 점 도 있다. 다만 이 문제는 하루히사만의 잘못이 아니라 아마고 가문의 고질적인 문제였다. 아마고 가문은 전통적인 주코구의 강자였던 오우치 가문과 패권을 다툴 정도로 너무 급속도로 고속 성장했기에, 지지 기반이 너무나도 취약했다. 그랬기에 나름 재능이 있던 츠네히사, 하루히사 생전에는 어떻게든 굴러갔지만, 하루히사 사후, 능력있는 가주가 사라지면서 결국 버티지 못하고 몰락한 셈.
3. 창작물에서
가문의 최대 판도를 구축했으나 미디어 매체에서 저평가되는 경향이 있다는 점에서는 도카이의 전국무장인 이마가와 요시모토와 이미지가 겹치는 부분이 있다. 그나마 요시모토는 일본 역사에서 제일 인기 많은 인물 중 한 명인 오다 노부나가의 적수로 등장할 뿐만 아니라 그 외 전국무장 중 유명한 편에 속하는 다케다 신겐, 호조 우지야스와도 큰 연관이 있는 인물이다 보니 어느 정도 인지도가 있고 이후로 오면서 점차 재평가되는 추세인데, 아마고 하루히사는 인지도 자체가 그리 높은 편은 아니라서 안습.
3.1. NHK 드라마
1997년작 <모리 모토나리>에서 등장. 단순하고 격정적인 성격으로 인해 모략가인 할아버지 츠네히사에게 늘 혼이 난다. 할아버지가 죽은 후에는 아버지를 뛰어넘으려는 집착 때문에 갈수록 편협하고 피해망상적인 모습을 보이다가 이런 멘탈을 노린 모토나리의 계략에 빠져서 가문 내의 무신집단인 신구토(신궁당)의 리더 아마고 구니히사를 의심해 끔살하기까지 한다.[1] 근데 이런 짓을 저지르고도 아버지의 끔살을 목격해서 원한을 품은 구니히사의 딸을 계속 아내로 두는 실수를 저지르고, 결국 원한을 잊지 못한 구니히사의 딸에게 독살당하게 된다.[2] 암군으로 묘사되지만 호조 우지마사처럼 실제로는 아버지에 못미치는 못난 아들은커녕 그 나름대로 가문의 최대 판도를 달성한 군주이며, 신구토와의 내부갈등도 모토나리의 계략은커녕 다 이유가 있는 숙청이었다는 것이 실제 역사와의 차이점.
3.2. 노부나가의 야망
혁신까지는 그야말로 능력치가 안 좋았지만 천도에서부터 재평가를 받아 그럭저럭 B급 무장이 되었다. 창조 pk에서는 업데이트로 아마고 가 전국전이 생기며 약간 날카로운 인상의 청년으로 변경되었다. 어떻게 보면 모리 모토나리 맹세의 세 화살에 등장했을 때의 일러스트를 창조 일러스트 스타일에 맞게 어레인지한 듯한 느낌.
3.3. 토탈 워: 쇼군2
플레이어블 세력은 아니지만 아마고 가문의 당주로 등장. 제작진의 한자 실력의 한계인지 아마'''코'''로 나와 있지만 수정되지 않고 있다. 초기에는 모리를 짓누르고 추고쿠의 패자가 되는 경우가 많았지만[3] 가문의 흥망에 랜덤성이 강해지는 패치 이후로 강세가 많이 죽었다.
3.4. 전국 바사라 시리즈
전국 바사라 3과 전국 바사라 3 연에서 플레이 불가능한 적 지방 영주로 등장한다. 성우는 카와무라 타쿠오. 북미판 성우는 데이비드 로지(David Lodge).[4] 속성은 바람. 일인칭은 오레.
호칭은 일망천야(一望千夜). 혼자서 유난히 튀는 핫핑크색 옷차림에 얼핏 보면 여성으로 착각할 수 있는 미남형인 얼굴 때문인지 지방 영주 치고는 인기 투표 순위가 꽤 높은 편이다. 실제로 외모도 그렇고 옷 색깔 때문에 여성일거라고 생각했다가 건장한 청년의 목소리가 나오는 순간 깼다(...) 는 반응도 있다.
그가 등장하는 맵인 갓산토다성 사구전은 온통 모래로 이루어진 사막이다. 아마고 하루히사가 거의 시작하자마자 보스로 나오는데 몇 대 때리면 위협을 느끼고는 모래 속으로 숨어 버린다. 이후에 모래가 움직이는 곳에 가까이 가면 다시 나타나기 때문에 해치울 수 있지만 시간을 끌면 다시 모래 속으로 도망가서 다른 진으로 이동한다. 혹은 맵상의 진을 모조리 점령하면 숨겨진 동굴이 나타나고 그 안에서 싸우게 되는데 이렇게 동굴 속으로 몰아넣으면 더 이상 도망가지 못한다.
저 숨겨진 동굴을 찾아내는 것이 특별 은상 조건 중 하나다. 그리고 다른 조건은 아마고 하루히사가 3번 도망치기 전에 격파하는 것인데, 첫 도망시에는 무조건 처음 마주친 곳 바로 북쪽의 진으로 도망간다. 즉, 그 진을 가장 나중에 점령하는 것을 목표로 모든 진을 제압한다면 두 개의 특별 은상 달성이 확정된다.
지방 영주이기 때문에 상대하는데 크게 어렵지는 않지만 고난이도일 때는 그가 사용하는 바람 기술을 조심해야 한다.
이유는 알 수 없지만 이 갓산토다성 사구전 맵을 플레이할 때 진행이 툭툭 끊기는 지연 현상이 유난히 심하다.
시작하자마자 보스가 나와 1차전을 치르고 그 지점에서 북쪽으로 조금만 더 가면 2차전을 치러서 격파할 수 있다는 사실 때문에 노대미지 클리어 관련 샌드백 신세가 되었다(...) 3편에서 노대미지 클리어로 얻는 자원 노가다를 하고자 할 때는 당연히 1순위로 선택되는 맵이며, 3연에서 슈퍼 스타일리쉬 트로피[5] 를 공략할 때도 가장 좋은 시작점이다.
3편의 지방 영주 중에서는 상당히 인기가 있었던 모양인지 전국 바사라 4에서도 유일하게 이름이 언급되고 그의 후계자급 인물인 야마나카 시카노스케가 플레이어블 캐릭터로 등장한다. 시카노스케가 전국을 돌아다니는 목적이 바로 자신의 주군 하루히사를 찾기 위한 것이다. 아쉽게도 하루히사 본인의 등장은 없지만, 시카노스케와 싸우는 맵인 이즈모 시라가성은 전작의 갓산토다성 사구전과 마찬가지로 사막 배경인데다 하루히사와 똑같은 핑크색 옷차림의 아마고 10용사가 등장한다.
극 중 후에 선데이 모리가 하루히사를 '''사랑의 낙원'''으로 끌어들였다고 한다. 즉, 모리에게 납치당한 후 자비교의 신자가 되어버린 것이다(...) '''포엠'''이라는 세례명은 덤이다.
[image]
확장팩인 전국 바사라 4 황에서 드디어 등장한다. 하지만 플레이어블이라거나 스토리에 관여하는 무장은 아니고 단지 룰렛 효과가 "천화"일 때 일정 확률로 45초간 적 무장, 정확히 말하면 샌드백(...)으로 등장했다가 사라진다. 정식 명칭은 포엠 아마고, 자비교에 세뇌된 아마고 하루히사이다. 3편에서처럼 땅 속으로 들어갔다 나왔다 하는데, 나타났을 때 공격을 먹이는데 성공하면 천화 메달을 얻게 되고 연속으로 성공할수록 더욱 많은 메달을 획득할 수 있다. 처음에는 한 방에 5개로 시작하지만 계속 성공하면 150개까지 올라가고 그 이상으로는 올라가지 않는다. 움직임이 그리 빠르지도 않고 밖에 나온 상태로도 꽤 오랫동안 머물기 때문에 공격하는 것 자체는 쉽다. 주변에 방해 요소만 없다면 이 녀석에게 천화 메달을 수백개 뜯어내는 것은 일도 아니며 운이 좋으면 1000개를 넘게 뜯어낼 수도 있다. 연속 공격에 잘 성공한다면 오히려 천화의 다른 효과인 메달병보다도 훨씬 많은 메달을 뜯어낼 수 있을 정도이다.
하지만 계속 쫓아다니며 때려야 하는 것이 번거롭다보니 난전중에 등장하면 대부분 무시하고 지나가게 된다. 그리고 이유는 불명확하지만 가끔 이 놈이 한참동안 튀어나오지 않고 엄청나게 멀리 도망간다거나 직각 모양의 코너에 오랫동안 끼어있을 때가 있는데, 그렇게 되면 시간에서 손해를 보기 때문에 이 녀석에게 메달을 뜯어내던 중이었다면 꽤나 빡친다(...) 반대로 도망다니는게 아니라 플레이어 주변에서만 나왔다 들어갔다 할 때도 있으며 이 때는 도망가는 아마고를 쫓아다닐 필요도 없고 시간상으로도 이득이라 메달을 많이 뜯어내기 좋다. 어떤 패턴으로 나오는지는 랜덤인듯 하다.
룰렛의 효과 중에서는 그다지 환영받지 못하지만, 그래도 1초가 아까운 상황에서 게임을 늘어지게 하거나 플레이어에게 해를 끼치거나 방해하지 않기 때문에 그 말도 많고 탈도 많은 폭탄병처럼 폭탄(...) 취급을 받지는 않는다. 오히려 정신없이 바쁠 때는 룰렛을 돌렸을 때 차라리 이 녀석이 나오면 마음이 편할 때도 있다. 참고로 메달 획득을 위한 이벤트성으로 등장하기 때문에 격파는 불가능하며, 심지어 모든 적을 한 방에 보내는 나오에 카네츠구로 때려도 죽지 않는다. 그래도 어쨌든 적 유닛으로 취급되기 때문인지 어이없게도 주먹밥을 던지는 적 병사가 아마고에게도 주먹밥을 던져서 회복시키려고 하기도 한다.
아마고는 바닥의 재질에 상관없이 어디든 파고 들어갈 수 있다. 돌이든 나무든 상관없이... 심지어 시즈가타케 오다첨병진공에서 나오는 인간 다리도 타고 다닌다.(!)
그런데 그를 애타게 찾고 있는 시카노스케도 하루히사를 보고 별 반응을 나타내지 않으며 심지어 시카노스케가 보스로 나오는 스테이지에 출현해도 누구 하나 알아보는 사람이 없다. 어차피 가면 하나만 쓰면 완전히 못 알아보는 사람도 많은 세계이니 그러려니 하자.
[1] 작중 많은 인물들이 아버지와의 갈등으로 고민하는 것이 드라마의 한 중심축이기도 하다. 모리 모토나리의 아들인 타카모토는 명장 중의 명장인 아버지를 뛰어넘지 못해 자학적이고 유약한 성격으로 자라게 되고, 오우치 요시타카는 아버지 요시오키의 기대와 정반대로 허무주의와 향락에 빠져버린다.[2] 실제로는 구니히사의 딸은 신구토 숙청 이전에 사망했다.[3] 모리 가문의 종특이 육상전에 도움이 되지 않고 비중이 낮은 해상유닛에 몰려 있는데다가 해상유닛에 보너스가 있다는 이유만으로 아무 이점도 없이 배를 스팸하는 멍청한 AI 탓에 벌어진 일로 보인다.[4] 나루토의 지라이야 성우.[5] 바사라 난이도 천하 통일에서 최소 1회 노대미지 클리어 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