얀오베 발드네르

 

'''이름'''
얀오베 발드네르(Jan-Ove Waldner)[1]
'''국적'''
스웨덴[image]
'''출생'''
1965년 10월 3일(59세), 스웨덴 스톡홀름
'''종목'''
탁구
'''신체'''
179cm, 82kg
'''그립'''
오른손,셰이크핸드
'''특기'''
드라이브
'''별명'''
'''테이블 위의 녹색 여우'''[2]
스웨덴의 탁구 영웅
현대 탁구계의 거인
1. 소개
2. 선수 경력
3. 플레이 스타일
4. 수상 기록


1. 소개


'''역대 최고의 탁구 선수 중 한명이자''' '''유일무이한 비 중국인 그랜드 슬램 달성자'''
'''탁구 올림픽 정식 종목 채택 이후 유일무이한 유럽 금메달리스트'''
스웨덴의 전설적인 탁구 선수로 국내의 탁구 팬 뿐만 아닌 전세계의 탁구 팬들이 알고 있는 세계적인 선수로 2004 아테네 올림픽에도 출전하여 국내에도 그의 경기가 중계된 적 있다. 전성기에서 내려와 노장의 길을 걷던 그를 아테네 올림픽 탁구 4강전[3] 당시 해설자가 소개하기를 "중국 탁구가 지배하기 전까지 왕좌를 지키던 선수이다. 또한 현재의 중국 탁구에 도전 가능한 유일한 서양인 선수"로 소개될 정도로 실력이 출중한 선수이다.
탁구 역사상 가장 꾸준한 선수 중 한 명이다. 실제로 "가장 꾸준했던 원탑급" 선수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발트너와 비슷한 정도로 롱런한 선수는 같은 스웨덴 출신 동료인 요르겐 페르손, 크로아티아의 조란 프리모락, 벨기에의 장 미셸 세이브 등이 있지만, 발트너의 커리어는 이들보다 훨씬 뛰어나다. 1983년에 세계선수권 단체전 은메달을 획득한 양반이 20여 년이 지난 2002년에도 세계랭킹 TOP 10 안, 최고 7위까지 올라갔다. 물론 2000년 이전엔 랭킹 1등을 찍었던 선수였다. 후술할 커리어를 살펴보면 이 선수가 얼마나 말이 안 되는 정도로 꾸준한 선수였는지 알 수 있다.
여기에다 여타 각종 대회 우승횟수까지 더하면 정말 무시무시한 기록이 나온다. 탁구역사에서 이 정도로 오랜 기간 동안 정상급이었던 선수는 중국의 왕리친, 마린,왕하오 그리고 마룽을 빼면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4][5] 단순히 눈에 보이는 년도로만 계산해 봐도, 1983년에 세계선수권 단체전 준우승을 했는데 무려 '''17년'''이 지난 2000년 세계선수권 단체전에서 우승을 차지한 것이다, 그것도 결승전은 류궈량과 공링후이가 있던 중국을 상대로 말이다. 참으로 무시무시한 기록이 아닐 수 없다.
프로 데뷔 후 29년이 지난 2010년에 발트너는 1982년생 선수인 파 게렐을 상대로 커리어 통산 9번째 스웨덴선수권 우승을 차지했다.

2. 선수 경력



현역시절 다큐멘터리
주니어 시절 당시 중국선수들의 인해전술에 많이 밀렸지만, 24세 이후 전성기를 맞이하게 되면서 상대전적으로 밀리는 일은 아예 없었다.심지어 중국선수들도 발드네르에게 1번 혹은 2번밖에 이기지 못했고 압도적으로 밀렸으니 말 다했다. 의외로 김택수 선수는 발드네르를 상대로 11승 12패로 가장 우수한 전적을 가지고 있다.[6]
전성기에는 중국이고 뭐고 압도적으로 씹어먹었으며, 은퇴한 지금도 현재 최강국인 중국에서 인기가 많다. 중국에선 그의 이름을 따 애칭으로 라오와(老瓦)라고도 불리며, 차세대 에이스인 마룽과 이벤트 시합을 가지기도 했다.
1992 바르셀로나 올림픽 남자 단식에서 금메달, 2000 시드니 올림픽에선 중국의 공링후이 선수에게 패해 은메달을 획득한다. 전성기가 지나고도 2004 아테네 올림픽을 마지막으로 출전하였는데, 쟁쟁한 우승후보이자 유승민에게도 약하지 않은 티모 볼과 마린을 잡고 올라와 4강전에서 유승민 선수에게 패배하였다. 결과적으로 유승민은 결승 단 한 번에서만 중국 선수를 접하게 되어 부담이 크게 줄게 된다. 결국 천적인 왕하오를 기적적으로 잡아낸 유승민이 금메달을 획득하였고, 발드네르는 숨은 공신이었다. 다만 본인은 동메달 결정전에서 중국의 왕리친 선수에게 패함으로써 메달 획득에 실패했다.
2007년 선수로서 은퇴하였고 간단하게 검색하면 그의 은퇴 기사가 뜨는데 위키백과 쪽에서는 아직도 현역이고 2010년 스웨덴선수권 남자 단식에서 우승했다는 기록이 나온다.
2014년, 세계 탁구연맹(ITTF)에서 탁구계의 전설적인 노장들을 모아놓고 주최한 '레전드 토너먼트'에서 50이 다된 나이에도 불구하고 화려한 블록과 코너 곳곳을 노리는 공격을 보여주며 장-미셸 세브를 꺾고 우승하였다.
한국시간 기준 2016년 2월 12일자로 그의 소속 팀 스파르바겐과 상대 팀 BK 레코르드 단체전에서 은퇴경기를 마지막으로 라켓을 내려놓았다. 단식으로 출전한 그는 상대 선수 안드레아스 퇴른크비스트에게 세트스코어 3-1로 패했지만, 경기가 끝난 후 많은 관중에게 끊임없는 기립박수를 받았다.

3. 플레이 스타일


셰이크 핸드 플레이어로서 훌륭한 방어와 동시에 매우 영리하면서도 강력한 공격으로 상대를 공략하는 스타일이다. 전성기에는 민첩함과 빠른 동체 시력이 합쳐져서 아주 쉽고 간단하게 상대의 공격을 막아내어 "진짜 고수" 느낌이 나는 스타일을 가졌다. 아주 간단하게 득점하고 아무렇지 않다는 듯이 다시 경기에 임해서 더욱 멋이 나는 선수이다. 하이라이트 영상을 보면 발드네르는 가만히 있는데 상대방은 좌로 우로 열심히 뛰어다니다가 결국 실점하는 걸 볼 수 있다.
매우 변칙적인 포핸드로도 유명하다. 방향전환과 구질의 변화를 자유자재로 선택해서 조절하는 데 능해 예측이 불가능한 공격을 구사했다. 이는 그의 세계 최고 수준의 서브와 최고의 탁구 지능과 결합되어 수많은 상대 선수들을 난감하게 만들었다. 본인이 스스로 평가하기를 발트너는 자신의 최대 강점을 "게임을 읽는 능력" 이라고 밝혔고, 전술(Tactics) 면에선 자신이 최고라고 생각한다고 한다.
한마디로 전성기때는 공격과 수비와 지능이 모두 뛰어난데 서브도 답이 없고, 플레이는 변칙적이면서도 본인은 게임 내내 침착함을 유지해 얄밉기까지 한, 그야말로 상대하기 매우 골치아픈 선수였다고 할 수 있다.

4. 수상 기록


탁구의 그랜드슬램(올림픽, 세계선수권, 월드컵)[7]을 세운 5명의 남자 선수[8] 중 유일한 비중국인 선수다. 여담으로 발드네르는 그랜드 슬램을 달성한 다른 2명의 중국인 류궈량과 콩링후이를 상대로 전적이 더 우월하다.
올림픽
금메달
1992 바르셀로나
단식
은메달
2000 시드니
단식
세계선수권
금메달
1989 도르트문트
단체전[9]
금메달
1989 도르트문트
단식
금메달
1991 지바
단체전
금메달
1993 예테보리
단체전
금메달
1997 맨체스터
단식[10]
금메달
2000 쿠알라룸푸르
단체전
은메달
1983 도쿄
단체전
은메달
1985 예테보리
단체전
은메달
1987 뉴델리
단체전
은메달
1987 뉴델리
단식
은메달
1991 지바
단식
은메달
1995 톈진
단체전
은메달
1997 맨체스터
남자 복식
동메달
1993 예테보리
단식
동메달
1999 에인트호번
단식
동메달
2001 오사카
단체전
유럽선수권
금메달
1982 부다페스트
단식
금메달
1986 프라하
단체전
금메달
1986 프라하
단식
금메달
1988 파리
단체전
금메달
1988 파리
남자 복식
금메달
1990 예테보리
단체전
금메달
1992 슈투트가르트
단체전
금메달
1996 브라티슬라바
단체전
금메달
1996 브라티슬라바
혼합 복식
금메달
1996 브라티슬라바
남자 복식
금메달
2002 자그레브
단체전
은메달
1984 모스크바
남자 복식
은메달
1994 버밍엄
단체전
은메달
1994 버밍엄
단식
동메달
1984 모스크바
단체전
동메달
1984 모스크바
남자 복식
동메달
1998 에인트호번
단체전
동메달
2000 브레멘
단식
월드컵(단식)
금메달
1990 지바
단식
은메달
1983 바르바도스
단식
은메달
1996 님스
단식
동메달
1991 바르셀로나
단식
월드컵(단체전)
금메달
1990 치바
단체전
은메달
1991 쿠알라룸푸르
단체전
은메달
1994 님스
단체전
[1] 한국 탁구 팬들에게는 발트너라는 이름으로 더 잘 알려져 있다. 위키를 제외하면 발드네르라는 이름보다는 발트너로 표기하는 경우가 압도적으로 많다.[2] 단순히 강력하거나 빠르기만 한 것이 아니라 매우 기발하고 영리한 플레이를 해서 붙은 별명이다.[3] 상대는 유승민 선수였다.[4] 이 중국 선수 4명도 20년 이상을 활동하지는 않았다.[5] 조란 프리모락, 장 미셸 세이브, 블라디미르 삼소노프, 티모 볼 등이 어느 정도 근접한 꾸준함을 보여왔지만, 메이저 대회 커리어에서 심하게 차이가 많이 나기 때문에 비교가 힘들다. 애초에 발트너는 "랭킹이 높은 상위권의 선수" 정도가 아니라 세계선수권을 포함한 "대부분의 대회에서 우승 혹은 준우승을 하는" '''1등'''의 선수였다. 많은 레전드 탁구선수들이 결국 중국을 완전히 넘지는 못했지만, 발트너와 페르손은 그 중국을 꺾고 꽤나 오랜 기간 동안 기어코 스웨덴을 탁구 최강국으로 만들었었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6] 김택수가 전성기 시절때는 4번을 제외하면 나머지 경기는 거의 다 이겼다.[7] 공식적인 그랜드 슬램은 아니나 실질적으로는 저 3개의 대회가 가장 크므로 저렇게들 편히 부른다.[8] 다른 선수는 중국의 류궈량, 콩링후이, 장지커, 마룽이다.[9] 당시 최강국 중국을 상대로 5-0으로 이겼다.[10] 한 세트도 내주지 않고 우승했다고 한다. 당시 상대인 조란 프리모라츠, 장-필리프 가티앙, 블라디미르 삼소노프 등이 10위권 내 선수들이라는 것을 감안한다면 한 세트도 내주지 않았다는 것은 대단한 기록이다. 또한 전설의 21:0 경기도 이 대회에서 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