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하오
1. 소개
중국의 前 탁구 선수이며, 마린, 왕리친과 함께 1990년대와 2000년대를 지배하던 트로이카 중 한 명이다.
2. 플레이 스타일
펜홀더 특유의 강력한 포핸드[1] 와 유일무이한 이면 타법을 통한 양핸드드라이브가 주 전략이다. 대부분 펜홀더 선수의 경우 탈인간급 순간 풋워크와 포핸드 파워드라이브에 대부분을 투자한다는 점과 대비된다. 또한 근력을 바탕으로 폭발적으로 힘을 사용하는 임팩트보다는 부드러운 힘의 이용과 체중이동, 정석적인 랠리 운영으로 플레이한다는 것도 펜홀더 선수로서는 특이한 점이다.
이면 백핸드는 위력, 자세, 컨트롤 모두 일품이다. 장지커급의 백핸드를 가진 선수를 제외하고는 백핸드만으로 쉐이크핸드 선수에게 주도권을 쉽게 가져간다는 사실이 모든 것을 알려준다. 기존 류궈량과 마린의 경우 보조무기로써의 성격이 강했던 이면타법을 양면 러버 중펜의 과도기 시절[2] 에 이렇게까지 발전시킨 것이 믿기지 않을 정도이다. 다시 말하지만, 재능과 노력으로 이루어진 왕하오의 최고의 업적 중 하나이다. 또한 수비수 킬러 중 하나로 유명하다. 중국풍 타법과 중펜의 강력한 포핸드를 바탕으로 수비수에게 까다로운 공을 주는 동시에, 왕하오의 완벽한 완급 조절 능력으로 수비수가 공략할 기회조차 주지 않는다. 현재 수비수 킬러 중펜 포지션은 쉬신이 물려받았다.
기술 면에서 뚜렷한 약점이 없는 탁구선수로 평가받는다. 실제로 마룽 이전엔 탁구에서 가장 안정적인 공격수였다고 할 수 있다. 실수 비중이 정말 엄청나게 적으며, 플레이를 보다 보면 도대체 어떻게 저렇게까지 양핸드 드라이브를 위력적이면서도 꾸준히 안정적으로 넣을 수 있는지 의문일 따름이다. 이 안정성은 그의 탁구에 적절한 신체 특히 그의 강한 하체와 코어, 좋은 몸통 힘과 그 힘을 이용하는 능력, 그리고 그만의 특출난 감각에서부터 나온다. 그렇다고 단순히 드라이브의 파워와 안정성만 좋았던 게 아니라 탁구지능과 각종 잡기술도 매우 뛰어난 선수였다. 애초에 백핸드 플릭을 세계에서 가장 잘한다고 일찍부터 평가받던 선수가 왕하오였다. 짧은 터치 플레이와 볼의 위치선정능력도 훌륭하다. 이렇듯 뚜렷한 약점이 없어서인지 왕하오는 절대다수의 선수들을 상대로 상대전적상 우위이며, 그 마룽을 상대로 가장 상대전적이 좋은 선수가 왕하오다. 상대전적이 엇비슷한 왕리친, 마린(탁구), 마룽을 제외하면 거의 모든 선수를 상대로 압도적으로 승률 차이가 날 정도로 뛰어난 전적의 보유자이다. 유일하게 왕하오를 상대로 매우 뛰어난 전적을 보유한 선수는 천적인 장지커 선수이다. 유독 장지커만 만나면 평소엔 안하던 실수를 하는 왕하오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다. [3]
3. 사용 용구
전면 네오스카라인 3 블루스펀지, 후면 브라이스 백색폰지로 튜닝된 스라이버[4] , 블레이드는 DHS 허리케인 하오 시리즈를 사용한다.[5] 당시 공의 직경이 커지고 스피드글루가 금지되면서 점점 블레이드의 반발력이 높은 용품을 찾은 듯하다.[6]
4. 수상 기록
5. 기타
- 지금이야 탁구 얼빠 하면 장지커가 떠오르지만 한창 젊을 때의 왕하오도 축구 선수 이동국을 닮았다는 말을 들으며 제법 잘 생겼다는 말을 많이 들었다. 이동국도 이름을 중국식으로 읽은 동궈라는 별명이 있다.
- 먹는 걸 좋아하는지 스트레스를 먹는 걸로 푸는지 체중조절에 문제를 종종 겪었다. 원래는 60kg 정도의 날씬했던 몸이 최대 195근(중국의 1근=500g)까지 나가기도 했을 정도. 한국의 탁구 팬도 사인 받으러 경기 보러 갔다가 옷 갈아입는 왕하오의 뱃살에 놀랐다는 말을 했을 정도였다. 아무래도 대스타 선수인지라 왕하오의 몸매나 체중도 화젯거리라 몇 키로가 됐다느니, 이번 다이어트로 얼마나 뺐냐느냐 따위가 종종 기사에 실리곤 했다. 다이어트로 너무 압박 받으면 폼이 떨어지기도 해서 완급조절을 해야 한다는 말이 나오기도 했다. 2012년 런던 올림픽 전 훈련장면의 취재 장면에서도 웃통을 까고 땀을 짤 수 있을 정도로 훈련하는데도 상체를 본 기자가 ‘그렇게 훈련하는데도 살이 좀 되시네요’ 한 마디 했었다. 왕하오도 카메라로 요 윗부분만 찍으라고 농담했을 정도다. 그래도 적어도 대회 나갈 때엔 비만 수준으로 관리를 못 한 건 아니고 탁구가 극한으로 날씬함을 추구해야만 하는 종목은 아니다보니[7] 크게 문제가 되지는 않았다. 은퇴하고 결혼한 얼마 뒤 2015년엔 오랜 라이벌인 유승민 선수와 오랜만에 게스트 대결을 하긴 했는데, 둘 다 본격 불은 몸매로 등장해 훈훈한 장면을 연출하기도 했다.
- 올림픽 3연속 은메달을 차지하며 탁구계의 콩라인에 자리잡았다.[8] . 또한 왕하오, 왕리친, 마린 트로이카는 각각 한 부문에서 금메달을 따지 못하여 그랜드슬램 재패에 실패했다.
- 중펜의 혁신가로 널리 이름을 알린 왕하오지만, 정작 중펜을 선택한 것을 매우 후회하는 듯하다. 쉐이크핸드로 생활을 했다면 선수 수명도 더 길고 실력도 더 좋았을 것이라고. 하지만 역사에서 만약이란 없는 법이다.
- 은퇴 전엔 지구대표라고까지 불리며 롱런 중인 마룽의 천적 중 하나로 유명했으며, 마룽을 수많은 중요한 고비에서 꺾으며 좌절을 안겨준 바 있다. 단순 승률 대비로만 보면 마룽과의 전적이 적으면서 어찌어찌 이긴 다른 선수가 더 좋을 수 있지만 세계 최정상의 기량인데다가 같은 나라의 선배 국대 선수로서 국내 대결에서도 무수히 마주쳤어야 할 대상임을 생각해 보면 가장 마룽을 괴롭혀 준 선수라 할 수 있다.
- 많은 사람들이 왕하오가 과연 자식에게 쉐이크와 중펜 중 어떤 라켓을 쥐어줄 지 궁굼해 했지만, 자기 자식에게는 탁구채를 아예 쥐어주지 않고 싶다고 선언했다.[9]
[1] 백핸드를 너무 잘해서 묻힌 감이 있지만 왕하오의 포핸드는 가공할 만한 위력이 나온다. 다만 포핸드에만 집중한 다른 펜홀더 선수들에 비해 약할 뿐이다.[2] 스웨덴에게 대패한 이후 중국 탁구 연구가들과 선수들에 의해 백핸드 개발이 크게 이루어졌다[3] 취소선이 그어졌지만 실제로 그러했다. 최중요 경기에서 장지커 상대로만 패배하지 않았더라면 왕하오의 기록은 세계선수권 3회 우승, 올림픽 1회 우승, 월드컵 4회 우승이라는 전무후무한 커리어가 나온다. (본래는 세계선수권 1회 우승 2회 준우승, 올림픽 3회 준우승, 월드컵 3회 우승 3회 준우승.) 2004년 아테네 올림픽 결승전에서 유승민에게, 2008년 베이징 올림픽 결승전에서 마린에게 패배해 금메달 획득에 2번 실패한 걸 감안하여도 이견의 여지 없이 역대 최고 수준의 커리어다. 심지어 아시안게임, 아시안 챔피언쉽 부문에서도 왕하오가 장지커는 물론 왕리친과 마린에 비해서도 더욱 많은 우승횟수를 보유했다. 하지만, 역사에 만약이란 없는 법이다. [4] 후처리 금지 이후 스라이버만한 감각의 러버를 찾지 못한 듯하다. 스피드글루잉의 효과는 부스터로 대체한 것으로 보인다[5] 본인은 허리케인 킹과 유사한 외관의 n656특주를 사용하였다[6] 왕리친과 마룽도 비슷한 용품 행보를 걸어왔다.[7] 우승을 밥 먹듯이 한 탁구마녀 덩야핑도 작달만한 키에 그렇게 날씬한 체형이 아니었고, 유명한 남자선수 왕타오는 164cm 80kg이라는 일반인 기준으로도 상당히 뚱뚱한 배불뚝이 체형이었다.[8] 각각 유승민, 마린, 장지커에게 패했다. 그리고 장지커는 최단기 그랜드슬램을 달성했다.[9] 물론 자식이 정 하고 싶다고 한다면 그 결정을 존중하겠다고. 지금까지의 정상급 선수들의 자녀들은 탁구에 흥미를 가져 2세대 탁구선수가 되는 경우가 드물었다. 왕하오의 아들로서 짊어지게 될 부담감을 생각해도 선수생활은 굳이 하지 않는 것이 좋을 수 있다. 참고로 여성 챔피언인 장이닝은 탁구에서 공을 치는 건 언제든 할 수 있을 정도로 즐겁지만 선수로서 신체를 단련하는 것은 아주 고된 일이라고 밝힌 바 있으며 자식이 프로 선수가 되고 싶다고 한다면 중국이 아닌 홍콩 팀에 들어가게 하겠다고 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