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사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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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중국 수말당초의 군웅으로, 단명정권인 양양(梁梁)의 유일한 군주이다.
2. 생애
양사도(梁師都)는 하주(夏州) 삭방(朔方) 출신으로, 집안이 대대로 하주의 호족이었다. 양사도는 수나라에서 응양낭장(鷹揚郎將)을 지냈지만, 수나라 말에 파직되었다. 이때 수나라는 양제의 잇따른 실책으로 인해, 민중의 불만이 폭발하여 반란이 각지에서 일어나고 있었다. 양사도는 대업 13년(617년)에 비밀리에 무리 수천을 모아 군승 당종(唐宗)[1] 을 죽이고, 반란을 일으켰다. 양사도는 스스로 대승상을 칭하여 동돌궐과 연합하였다. 한때 수나라의 장수인 장세륭이 양사도를 공격하였지만, 도리어 장세륭은 양사도에게 패배하였다.
장세륭을 물리친 양사도는 스스로 황제를 참칭하여 국호를 양(梁)으로 하고 영륭(永隆) 연호를 선포하였다. 동돌궐의 가한이었던 시필가한은 양사도를 대도비가가한(大度毗伽可汗)으로 부르며 우대하였고 그와 회담을 하려고 했지만 중도에 사망하였다. 한편 유무주가 패배했다는 소식이 전해진 이후 양사도의 군중에는 혼란이 일어났다. 양사도는 부하인 장거(張舉)와 유민(劉旻)이 당나라에 항복한 것이 두려워 육계람을 처라가한에게 파견하여 신하가 될 것을 요청하였고, 처라가한은 이를 받아들였다.
처라가한에게 신종한 이후 양사도는 참소를 믿고 자신에게 항복해온 이를 죽여서 내부에 동요가 일어났다. 양사도는 동돌궐의 지원을 받아 당나라를 막아내고 있었다. 한편 626년 당나라 내부에서는 진왕 이세민이 현무문의 변을 일으켜 이건성과 이원길을 제거하고 스스로 황제로 즉위하였으니, 이가 제2대 황제인 태종이다. 이후 양사도와 동돌궐 내부의 동요, 그리고 태종의 즉위로 양사도의 세력은 복잡하게 돌아가기 시작한다.
628년, 태종은 시소와 설만균을 파견하여 양사도를 토벌하도록 하였다. 이때 돌궐의 힐리가한이 양사도를 구원하러 왔지만, 도리어 시소에게 패배하였다. 전세가 점점 양사도에게 불리하게 돌아가던 와중에, 양사도는 결국 사촌형제인 양락인(梁洛仁)에게 살해당했다. 양락인은 양사도의 목을 가지고 시소에게 항복하였으며, 우효위대장군으로 임명되고 삭방군공으로 책봉되었다. 양사도의 죽음을 끝으로, 수말당초의 혼란상은 막을 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