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니스트 시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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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니스트 톰슨 시튼(Ernest Thompson Seton)
(1860년 8월 14일 ~ 1946년 10월 23일)
1. 개요
2. 생애
3. 기타


1. 개요


"지구는 사람만이 사는 별이 아닙니다. 그리고 자연은 사람이 없어도 존재할 수 있지만 사람은 자연이 없다면 존재할 수가 없습니다."

동물보호론자들의 대선배이자 동물학자이자 화가. 시튼 동물기의 저자로 유명하다.
또한 1910년 미국에서 최초의 보이스카우트 협회를 만들고 최초의 치프 스카우트(스카우트 지도자)였다는 것만으로도 유명하다.

2. 생애


영국 북부 잉글랜드 더럼 주의 사우스실즈에서 태어났다.[1] 아버지가 해운업자로 12척의 상선을 가졌는데 공교롭게도 같은 시기에 상선 한 척이 해적에게 당하고, 두 척은 폭풍으로 침몰하는 사고를 겪으면서 큰 피해를 봐서 1866년 온 식구를 데리고 캐나다로 이주하여 소년 시절을 캐나다 남부의 삼림지대의 자연 속에서 동물을 관찰하며 보냈다고 한다. 어릴 때부터 아메리카 원주민들하고 많은 교류를 쌓아 자연의 흐름을 배웠으며, 당시로서는 백인으로 드물게 미국 및 여러 나라 원주민 보호정책 및 차별금지를 부르짖고 동물보호구역의 확대 및 자연개발을 막으려고 노력한 사람이다. 캐나다에 있는 차스카 호수도 잠깐동안이지만 친하게 지냈던 원주민 사냥꾼 차스카(딱 한번 만나서 자연에 대한 위대함을 이야기하고 헤어진 뒤로 다시는 만날 수 없었다고 한다.)와의 우정을 생각하며 호수 이름을 지은 바 있다.
단 북극권 지역을 여행했을 때는 그곳 원주민들을 경멸했는데 돈을 주고 일꾼으로 고용한 원주민들이 게으름을 피우고 식량을 낭비했기 때문이다. 그래도 양심적이고 뛰어난 원주민들에 대해서는 칭찬하고 존경하는걸 마다하지 않았다.
시튼 동물기에서 늑대로보를 잡기 위해 상당히 치사한 방법(시튼 동물기 문서 참고)을 사용한 것도, 로보를 잡기 위해 근처 농장주들이 늑대를 닥치는 대로 학살했기에 이를 막기 위해 한 것. 사냥 이후 로보와 블랑카의 털가죽을 벗긴 것은 평생을 동물과 자연을 중요시했던 시튼의 생애를 볼때, 과시가 아니라 다른 의미로 해석할 수도 있다. 로보와 블랑카가 잡혔다는 증거를 남겨야 하는데 털가죽이 가장 확실한 증거로 남을 수 있다. 만약 단순히 말로 두 늑대가 잡혔다고 해도 믿지 않을 사람들에게 수많은 다른 늑대들이 사냥을 당할 수 있기 때문에 늑대들을 보호하기 위해 불가피한 선택을 했을 수 있다.[2] 이 부분은 2019년 2월 3일자 신비한 TV 서프라이즈에서 다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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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가이기도 했으므로 동물을 직접 그려 삽화를 넣었는데, 경험에 근거한 섬세한 묘사가 상당히 인상적이다. 동물학자이다 보니 동물이 안나오는 그림은 거의 찾아보기 어려운 것도 특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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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의 그림 '늑대들의 업적'[3]
그러다가 '''늑대가 사람의 두개골을 물어뜯으면서 포효'''하는 그림인 <늑대들의 업적 Triumph[4] of the Wolves>로 당시의 인간중심주의 대중들에게 "어찌 만물의 영장인 인간이 동물에게 데꿀멍할 수 있냐?"라며 까였다. 그러나 시튼은 이 그림을 자랑스러워하면서 사람도 결국은 많은 피조물 중 하나일 뿐이라고 주장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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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에도 가서 여러 동물을 연구하고 싶어했지만 미국 시민권을 도무지 받을 수가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숲을 밀어서 목축 농장을 확대하는 것을 반대하고 원주민 보호구역 확대를 주장하며 미국 기득권자에게 찍혀버렸기 때문이었다. 결국 1932년 72살 때, 그것도 세계 대공황 여파로 엉망이 된 상황에서 미국 시민권을 얻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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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3년 뉴멕시코산타페에서 고작 10km 남쪽으로 떨어진 곳에 그의 마을 공동체인 시튼 빌리지를 지었고, 거기서 죽었다. 뉴멕시코 주의 사적지(Historical Marker)로 등재된 곳이기도 하다.

3. 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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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스로 원주민 이름으로 "검은 늑대"(Black Wolf)라고 지었고 그 이름과 함께 늑대 발 모양의 사인을 고집했다고 한다.
<인디언의 복음>이란 책을 써서 기독교가 얼마나 미국 원주민을 학살했는지, 그들의 위대한 문화를 파괴했는지 통렬히 비판했다. 주요 내용을 보면

17세기의 기독교 골수주의자 묘비에 나타나는 전형적인 기록이 바로 이렇다. 그중 하나인 '린 S. 러브'라는 자의 묘비명에 자랑하듯이 올라온 글귀이다.

"한평생 그는 주께서 그의 손에 부치신 인디언 98명을 죽였다. 그는 삶이 끝나 그의 본향에서 주의 팔에 안겨 잠들기 전에 100명을 채우길 바랐다." ( <인디언의 복음>, p. 132)

시튼이 19살이 되자 그의 아버지는 그가 성장하는 데 들어간 식비, 의류비, 교육비 등등을 계산한 용지를 들이밀면서 모두 갚으라고 했다고 한다. 시튼은 일단 독립하여 타지를 전전했으나 돈은 쉽게 모이지 않았으며 다시 집에 돌아가 얼마간 살았으나 아버지의 독촉이 시작되자 다시 나가 몇 년이 흘러 결국 다 갚을 수가 있었다고 한다. [5]
콩고에서 대학살을 저지른 레오폴드 2세늑대가 눈 배설물보다 못한 놈이라면서 혹평했다. 학살도 학살이지만, 다이아몬드와 자원을 캐내고자 콩고의 자연들을 마구 뒤엎어버렸으니 더더욱 시튼으로서는 이가 갈리고 단단히 화가 났을 것이다. 사실 시튼은 레오폴드 2세 말고도 숲을 개간하고 야생 동물들을 사냥하고 농장을 만들게 허락하던 미국 정치인들이나 유럽의 정치인들도 쓰레기라며 분노하고 비난했었다.

[1] 1974년에 타인 위어주가 생기면서 타인 위어 주 소속이 되었다.[2] 실제로 야생동물에 의한 피해가 발생했을 때 해당 동물의 전문가가 직접 나서서 처리하는 경우가 흔하다. 습성을 잘 파악하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사람들이 피해를 막기 위해 다른 개체들까지 마구잡이로 죽이는 걸 방지하기 위해 피해를 준 해당 개체만 신속히 제거해야 하기 때문이다. 벵골 호랑이 전문가이자 보호론자인 랄지 무파니야트 싱 박사도 식인 호랑이를 직접 사살한 전력이 있다.[3] 문제가 되는 부분의 는 혐오물일 수 있으므로 링크로 처리한다.[4] 큰 업적, 환희, 대승리, 대성공, 승리의 기쁨 등으로 번역된다. 마음에 드는 것으로 골라잡자[5] 이런 건 성인이 된 이후에 가급적 빠른 시기에 독립을 생각하는 미국의 문화를 생각해도 상당히 드문 편이다. 자녀가 성인이 될 때까지 양육하는 것은 부모의 의무이기 때문에 청구할 이유가 없다. 성인이 된 이후에는 부모에게 생활비를 지불하면서 사는 경우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