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
[clearfix]
1. 개요
'''기독교'''(그리스도교)는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과 행적을 본받아 따르며, 그를 인류를 구원한 메시아로 따르는 아브라함 계통의 종교이다.
경전은 신약과 구약으로 구성된 성경이다. 전 세계에 약 24억명[3] 의 신자 수를 지니고 있으며, 사실상 현생 인류에게 가장 큰 영향력을 가지는 종교이기도 하다.[4] 또한 이슬람교, 힌두교, 불교와 함께 세계 4대 종교 중 하나로 여겨진다.
그리스도교는 유대교에서 따르는 계시의 전통과 역사성을 계승하였다. 때문에 학술적으로 유대교, 기독교와 나중에 발생한 이슬람까지 포함한 세 종교를 아브라함 계통의 종교로서 표현한다. 하지만 일부 개신교 신학과 상당수 기독교 종파의 전통주의, 근본주의 신학에서는 학술적 견해와는 달리, 이슬람에 대해 아브라함 계통의 계시종교에 속하지 않는다고 간주한다.[5]
유대교와의 차이는, 기독교는 예수 그리스도를 신으로 보고 신약성경을 정경(하느님으로부터 영감을 받아 쓴 책)으로 인정하지만, 유대교는 소수의 메시아주의 분파를 제외하면 예수를 신으로 인정하지 않는다는 점에 있다. 때문에 유대교 경전인 타나크가 기독교 기준에서의 '구약성경'으로 불리는 것 역시 인정하지 않으며 히브리 성경의 권위를 매우 높게 보고 신약성경의 가치를 인정하지 않는다.
이슬람과의 차이는, 예수 그리스도를 성부, 성령과 다른 위격을 가질지언정 본성에서는 동일한 유일신으로 본다는 점이다. 이를 삼위일체라 한다.[6] 삼위일체 교리에 따라 하느님과 동일 본질을 가진 한 예수를 신으로 믿는 경우가 많지만, 모든 기독교 종파가 삼위일체 교리를 따르는 것은 아니다. 이슬람에선 예수를 신이 아닌 수많은 예언자 중 하나로만 보며 예수보단 그 수많은 예언자 중 최후의 예언자인 무함마드를 더 중시한다. 똑같이 유일신교를 택하며 소위 하나님(하느님)이라는 존재를 믿는다는 점에서 공통점이 있지만 기독교가 유대교, 이슬람교와 다른 가장 큰 차이는 예수 그리스도를 어떻게 보느냐 하는 시각과 어떻게 인정하느냐 하는 관점이다.[7]
2. 명칭
- 8.2 명칭의 문제 단락 참조.
'기독교'라는 단어는 그리스도의 한자 음역인 기리사독(基利斯督)에서 유래하였다. 개화기 문헌에는 예수 그리스도를 '야소기독'이라고 부르는 것을 볼 수 있다.[8]
흔히 일어나는 착각으로, '개신교'를 '기독교'라고 하며 천주교(가톨릭 교회)는 '기독교'가 아닌 다른 종교인 줄 알고 있는 사람들이 상당히 많다. 이는 잘못된 오해다.
한국과 중국에서 이렇게 '기독교'가 '개신교'만을 지칭하는 경향이 있다. 그래서 '''개신교'''인들이 한 일을 '''기독교'''인들이 했다고 뭉개어 표현하는 경우가 많아, 반드시 주의가 필요하다. 기독교에 해당하는 각 종파들끼리 차이가 크며, 개신교 분류에서도 분파에 따라 분위기가 매우 다른 경우가 있으니 구분하여 써야 할 것이다.
앞에서 설명했듯이 기독교(그리스도교)라는 공통분모 아래서 천주교(가톨릭)와 개신교, 정교회 등의 '종파'가 나뉘어진 것이므로, '''"개신교가 기독교이며 천주교는 기독교가 아니다"라는 식의 주장은 크게 잘못된 사실'''이다.
기독교(그리스도교)는 개신교, 천주교(가톨릭), 동방 정교회, 오리엔트 정교회, 네스토리우스파 교회 등 예수를 믿는 종교 모두를 아우르는 전체집합의 개념이다.
개신교에서 자신들을 호칭할 때는 폭넓게 기독교라고 하지만, 천주교에서 자신들을 호칭할때는 천주교(가톨릭 교회)라고 정확하게 말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또 한국에서는 개신교 단체들이 국내 기독교 교세를 따질땐 천주교의 교세까지 합쳐가지고 천만이 넘는다고 주장하는 반면, 정작 현실에서는 기독교의 패권을 놓고 천주교를 적대시하는 교파들이 많은데다 반가톨릭 정서가 심한 몇몇 교파들에서는 '''천주교는 기독교가 아니다'''라는 극단적인 주장을 하기 때문이다.[9]한국에서 이런 혼동이 유독 심하긴 하나, 외국에서도 헷갈려 하는 사람들이 있다. 한국의 개신교 문화의 근원이라 할 수 있는 미국이나, 어느 정도 세속화되긴 했어도 개신교가 문화적 기반 노릇을 했던 영국, 네덜란드, 북유럽 등에서도 자신들의 종교를 헷갈려 한다.
따라서 '기독교=개신교'로 오해하고 있는 사람들을 염두에 두고, 기독교의 본래 의미를 명확히 하는 목적일 때는 음차한 한자어보다 '그리스도교'나 '크리스트교'로 풀어서 표기한다. 특히, 종교적 중립을 중시해야 하는 교과서에서 이렇게 많이 쓰고 있다. 보통 세속의 교과서에서는 '''크리스트교'''라는 명칭이 주로 쓰인다.
또 '기독'(基督)이라는 어휘가 '기독교'라는 단어 외 다른 단어에 사용할 땐 어색해지는 경우가 많아서, '메시아(그리스도)로 오신 예수를 믿는 종교'라는 의미가 더 확실히 와닿는 '그리스도교'를 더 선호하는 신자들도 있다.[13]
3. 교리
기독교의 교리는 신자의 구원을 위함이다. 따라서 기독교의 교리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구원이란 무엇인지를 이해해야 한다. 기독교에서 구원이란 예수를 믿고 따름으로써 지옥에 떨어질 운명에서 벗어나 천국에서 영원한 삶을 누리는 것을 말한다. 기독교 신학적 관점에서, 모든 사람은 죄로 향하는 본성을 갖고 태어나며, 스스로의 힘으로는 이를 벗어나지 못하여 현세의 삶에서는 죄많은 삶으로 인해 고통받고, 사후에는 지옥에 떨어질 운명이다.[14][15][16] 인간의 부족한 능력만으로 그 죗값을 다 치르는 것은 불가능하다. 이러한 운명에서 벗어나 구원을 받고 천국으로 가기 위해서는 하느님의 도움과 죄의 용서를 받아야만 한다.
기독교 교리에서 죄의 용서는 다음과 같은 방식으로 이루어진다. 죄의 대가는 사후의 영원한 지옥벌이다.[17][18] 그러나 하느님은 인류를 사랑하시어, 인류가 지옥벌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외아들인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내려보내 수난과 죽음을 당함으로써 모든 인류의 죄값을 대신 치르도록 하였다.[19] 따라서 죄값은 이미 전부 치러졌으나, 모든 인류가 자동으로 구원받게 된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위와 같은 내용을 알지 못하거나 받아들이지 못하는 사람은 하느님과의 관계를 회복하지 못하여, 여전히 지옥에 갈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리스도를 구원자로 믿음으로써, 인간의 죄로 인해 단절되었던 하느님과의 관계가 회복되어야만 구원을 받을 수 있다. 신자가 진정한 믿음을 가지게 되면, 하느님의 은총의 도움으로 그리스도가 가르친 계명을 실천함으로 따르는 삶의 자세, 죄의 포기, 선한 마음가짐 등의 선행이 뒤따르게 된다. 이렇게 1.예수를 믿고 2. 예수의 가르침을 따르는 삶을 살 때 사람은 죄를 용서받으며 구원받아 사후에 천국에 갈 수 있다.[20] 예수의 제자들은 이러한 기쁜 사실인 '''복음'''을 예수의 행적과 삶, 그리고 이를 계승한 교회, 성경의 가르침을 통해 온 세상에 전파되도록 하였다.
믿고 따른다는 것의 의미를 다시한번 설명하자면 다음과 같다. 죄를 용서받기 위해서는 하느님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따른다는 것을 고백하고, 이 믿음을 통해서 죄악의 삶을 청산하고 새로운 회개의 삶을 실천해야만 한다. 하느님이 예수님을 보내 자신을 구원하셨음을 믿고, 하느님이 성경과 교리를 통해 명령한 계명을 따르는 삶을 살고자 노력하면 그 하느님의 은총(=예수님의 도움, 성령의 작용)에 힘입어 구원받을 수 있다는 것이다. 이로써 인간은 하느님의 자녀가 되어 새 삶을 살아갈 은총의 원동력을 얻게 되며, 이를 통해 현세에서는 하느님의 뜻에 맞는 삶을 살아감으로써 하늘의 기쁨을 누리고, 사후에는 지옥행을 면하고 천국에서 영생을 누리게 된다는 것이다.[21] 이것이 주류 기독교의 핵심 교리이다.
또한, 단순히 믿음 이후의 삶 뿐만 아니라, 인간이 기독교의 믿음을 가지게 되는 시작, 즉 그리스도인이 되기로 결심하는 과정 역시 하느님의 은총의 결과이다.[22] 또한 하느님은 모든 인류의 구원을 바라시며, 모든 사람들이 은총을 통해 믿음을 갖고 구원받기를 바라지만 인간은 원죄(악한 경향)에 물든 자유의지에 때문에 하느님을 거부하는 경우도 많아 실질적으로 모든 인류가 하느님을 받아들이는 건 아니며, 동시에 이 세상은 여전히 원죄에 의해 초래된 죄와 악이 상당히 퍼져 있다는 것, 또한 진정한 그리스도인이라면 원죄의 악한 성향을 극복하려 노력하고 죄와 악, 하느님에 대한 불신을 피해 믿음을 지켜야 구원받을 수 있다는 것을 믿는다.
이어서, 하느님이 성경과 교리를 통해 명령하신 계명 중 가장 대표적인 것은 "서로 사랑하라"이다. 이는 물론 절대 에로스적 사랑이 아니라, 정신적, 온정적인 박애정신인 아가페적 사랑이다. 예수는 성경에서 여러 번에 걸쳐 사랑을 실천할 것을 직접 강조하였다. 단순히 가족과 친구를 아끼라고 한 것이 아니고,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네 원수를 사랑하고 그를 위하여 기도하여라"라고 하였다. 누가 이웃인가 하는 질문에는 선한 사마리아인의 비유를 들어, 삶에서 마주치는 모든 사람을, 전혀 모르는 사람이더라도, 자기와 한 몸인 것처럼, 예수 본인을 직접 만난 것처럼 대하라고 가르쳤다. 즉, 온 인류를 사랑하라고 가르친 것이다. 예수는 이러한 가르침을 따르고 실천하는 사람만을 훗날 천국에서 자신의 제자로 대할 것이라고 직접적으로 이야기하였다.[23] 이 때문에 기독교는 전 세계적으로 '사랑의 종교'로 알려져있다. 만약 이러한 사랑의 계명을 실제로는 믿고 따르지 않으면서 예수를 따른다고 자처하는 사람 또는 교파가 혹시 있다면 그것은 기독교가 아니라 사이비이다. 사랑의 실천이 따라오지 않는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은 거짓 믿음이다.
단, 여기서 정말 조심해야 할 점이 있는데 기독교적 사랑이란, '''다른 사람들이 어떤 위치에 있던지, 어떤 행동을 하던지간에 무작정, 무제한적인 관용을 베푸는 식의 사랑을 하라는 것이 아니다.''' 예를 들어, 죄에 빠져 헤어나오지 못하고 있는 사람이나 죄를 짓고 다니면서도 양심이 무뎌져버려 그것이 죄인지조차 모르는 사람들이 주변에 있다고 하자. 이 경우에 '사랑'이나 기독교 외적인 세속적 가치관을 내세워 이들의 죄의 상태를 침묵하거나 죄인들의 죄짓는 행위를 묵인/옹호하는 것은 절대로 사랑이 아니라는 뜻이다. 진정 기독교적 사랑을 실천하는 신자라면, 그것이 죄라는 것을 보편적 교리에 입각하여 지적하고, 또한 죄인들을 죄에서 벗어나게끔 기도하고, 실제적으로도 도와주는 사람이 진정한 사랑을 실천하는 사람이다.
또, 선행과 사랑의 강조는 인간의 노력을 통한 사랑의 실천만으로 온전한 구원을 얻을 수 있다는 의미가 아니라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인류는 여전히 원죄를 갖고 태어나며, 스스로 온전히 의롭고 선한 인간은 존재하지 않는다. 하느님의 자비와 은총과 도움 없이 인간의 노력(선행이라거나, 이웃사랑이라거나)'''만'''으로 구원을 얻을 수는 없다. 죄있는 인간은 하느님앞에 한없이 겸손해야 하며, 스스로 약하고 모자람을 인정하고, 믿음과 교리를 반드시 받아들여 하느님뜻에 맞는 삶을 살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해야 한다. 상술했듯이 믿음과 교리를 따르는 삶, 그리고 사랑의 가르침 자체가 하느님의 자비, 은총이자 도움이다. 사랑을 실천한다는 것이 기독교의 가르침이라면서, 믿음과 구원을 등한시하는 그리스도인은 역시 예수와 기독교의 가르침에서 벗어난 것이다.
한 편, 기독교는 2000년이나 되는 긴 역사 동안 무수한 분파들이 갈라져 나옴에 따라 현재는 2만 개(...)나 되는 흠좀무한 수의 교파들[24] 이 있으며 이에 따라 각 교파의 교리나 성경 해석도 조금씩 상이한 면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요 교파에서 동일하게 믿고 있는 신학적 믿음은 다음과 같다.
- 하느님의 천지창조
- 구세주(메시아, 그리스도)로서의 예수 그리스도의 존재와 동정녀에게서의 출생
- 예수를 그리스도로 믿으면 천국의 거주민이 될 자격을 얻으며, 영생(영원한 삶)을 얻을 자격이 주어짐
-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 처형과 셋째 날의 부활
- 예수 그리스도의 승천과 재림(세상 마지막 때에 다시 올 것)의 약속
- 예수 그리스도 승천 및 성령강림 이후 사도들에 의해 설립된 교회의 존재 및 교회론적 교리[25]
- 성령의 존재와 성령을 통한 영적인 각종 은총의 존재
- 성부, 성자, 성령이 본질로서는 한분이시며 위격으로는 세분이시라는 삼위일체 교리
- 인간 영혼의 존재와 천국/지옥으로 대표되는 사후세계의 존재
- 마지막 때의 모든 인간의 부활과 예수 재림 후 최후의 심판에 따른 영원한 판결, 그리고 하느님 나라(천국)의 완성
반면 개신교에서는 이러한 교도권 중심의 성경 해석이 성경적으로 매우 잘못된 것이며 마태복음 28장 19~20절, 베드로 1서 1장 20~21절 등의 성경구절을 근거로, 성직자만이 아닌 일반 평신도 역시 성경을 독자적으로 해석하고 가르칠 수 있다고 보았다. 그리고 이는 오늘날의 개신교가 셀 수도 없이 어마어마한 숫자의 교파들로 갈라져 있는 원인, 수도 없이 많은 갖가지 이단들이 발생한 주요 원인이다.
또한 하느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라(서로 사랑하라는 아가페적)계명 역시 매우 중요하게 여기며, 이를 실현하기 위한 실천 교리상으로는 십계명을 두고 이를 공통적으로 지킨다.[27] '원수를 사랑하고 그를 위하여 기도하여라' 같은 비신자들에게도 유명한 원칙 역시 이웃사랑의 계명이 확장된 것이다. 또한 이를 따라 온 인류에 대한 공동체 의식, 즉, 공동선, 사회정의에 대한 열정과 인류애를 가지는 것도 중요하게 여긴다.
또한 성경해석과 교리에 대한 논쟁은 항상 이단논쟁을 수반해왔고 지금도 수반하고 있다. 때문에 전통적인 교파들, 특히 보편교회에선 기독교내에서 성직자가 아닌 일반신자의 자의적인 성경해석이나 교리해석은 금지되고 있는 편이다.
3.1. 주요 예식(성사)
기독교에서는 오랜 역사 전통과 성경 기록에 의거해 여러 예식들을 확립시켰으며 이것이 보이지 않는 하느님의 은총을 가시적으로 확인하는 수단이라고 본다. 주요한 예식들은 다음과 같다.
성사[28]
- 성찬예식(성만찬): 예수의 피와 살을 의미하는 포도주와 빵(떡)을 나누어 먹음으로서 구원을 확신하고 공동체적 동일감을 고양하는 예식이다. 예수가 자신의 피와 살을 먹어야 한다고 가르쳤을 때, 예수를 따르던 많은 유태인들이 예수를 배척하고 떠났듯이[31] , 성찬예식은 일반적인 비기독교도인들이 이해하기 쉽지 않은 예식이다.
가톨릭, 정교회, 오리엔트 정교회에서는 성체성사를 거행할 때 성찬 제병과 포도주가 사제의 축성으로 실제 그리스도의 몸과 피로 변한다는 성변화설을 주장한다. 자세한 것은 성체성사와 성만찬 문서를 참조할 것. 또한 타교파에서 받은 세례 등을 인정한다. 세례성사 참조.
가톨릭, 정교회와 성공회 및 오리엔트 정교회에서 인정하는 예식 [32]- 견진성사
- 고해성사
- 혼인성사
- 성품성사(신품성사) - 보편교회의 성직자를 양성하는 성사. 신자가 보편교회의 사제 및 수도자가 되기 위한 거룩한 소명을 받아 가지는 것을 '성소'(聖召 = 거룩한 소명)라고 부른다. 다만, 수도자는 성품성사를 받는 것이 아닌 자체적인 과정을 통해 입회하는 것이다. 따라서 성품성사를 받지 않은(=성직자가 아닌) 수도자도 있다. 수도자 생활을 하면서 추가로 신학과정을 공부한 뒤 성품성사도 받아서 성직자가 된 수도자는 수도 사제(수사 신부)[33] 라고 불린다.
- 병자성사 - 죽어가는 사람, 중병에 걸린 사람에게 교회의 이름으로 베푸는 성사. 축성된 성유를 바르고[34][35] 환자의 쾌유와 은총을 빈다. 원칙적으로 죽을 위험에 처한 사람에게 고해성사를 받고 나서 진행하는데, 죽어가는 사람이 진정으로 회개하고 마지막 고해를 한다면 이를 통해 죽기 전에 죄를 용서받을 수 있다. 그리고 최근에는 굳이 죽을 위험에 처한 사람이 일생에 한번 하는 성사가 아니라, 큰 수술 등을 앞두거나 병이 재발하거나 할 경우에 여러번 받는 경우도 있다.
3.2. 기도문
3.3. 종교관
기독교는 유일신을 믿는다. 즉, 자신들이 섬길 신은 오직 하나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따라서 원칙적으로 타 종교의 신앙을 인정하지 않는 배타성을 띠고 있다.[39]
'''기본적으로 기독교는 예수를 메시아로 믿고 구원의 주체로 믿는 데서부터 시작된 종교이며,''' 이후 시간이 흘러 서기 4세기 이후 여러번의 종교적인 논의 끝에 예수가 유대교의 야훼와 동일한 존재로 설파되었다. 즉, 삼위일체론을 정설로 채택한 주류 교단들은 예수와 성부, 그리고 성령의 세가지 페르소나가 야훼라는 하나의 본질 및 본성을 지닌 한 하나님으로 믿는다. 다만 예수의 경우 특이하게도 인간의 본질 및 본성도 지닌다. 자세한 것은 삼위일체론 참고.
일반적으로 예수를 '''그리스도로 믿으며''' '''예수를 통한 구원을 인정한다면''' 기독교로 분류되며, 예수를 그리스도로 인정하지 않고 야훼만을 신으로 섬기면 유대교 계통으로 분류한다. 반면 이슬람의 경우에는 예수를 유대 민족의 메시아(그리스도)로 인정하면서도, 예수의 신격이나 예수를 통한 구원을 인정하지 않고 무함마드 이전의 일반적인 예언자 중 하나로 본다는 특징이 있다.
삼위일체 교리상으로는 동일한 본질을 지닌 한 신이지만, 예수와 구약에서 묘사된 신의 성격이나 강조점은 사실상 차이가 많이 난다. 학문적인 논의에 의한 차이점은 다음과 같다. 우선, 구약의 신은 승리와 정의의 신으로서 전쟁에서 승리하고, 적을 파괴하고 불복종한 자들을 처벌하는 신이며 이적의 규모도 거의 범 지구적, 재해적인 규모다. 탈출기에서 '이스라엘은 나의 장자와 같다'라고 칭한 바와 같이 유대인의 민족신의 성격을 띠고 있다.[40]
반면에, 예수 그리스도는 평화와 희생의 신으로서 적을 용서하고 인류를 위해 자기자신을 희생하는 신이다. 이적의 규모도 국지적이며 평화적이다. 특히 예수 신앙은 서유럽(그리스와 로마)의 문화와 결합함으로서 팔레스타인의 범주에서 벗어나 범세계적인 신의 성격을 보인다. 이처럼 예수와 야훼의 성격상 차이점이 극명한 관계로 역사적으로 마르키온 등 몇몇 신학자들은 예수의 "아버지"가 야훼가 아니라는 주장도 했다가 초기 교회에 의해 이단으로 단죄된 적도 있다.[41]
그러나 절대 다수의 주류 기독교에서는 예수와 구약에서 묘사되던 신의 성향상 차이점은 인정하면서도, 그러한 주장은 받아들이지 않았으며 정설로도 인정되지 않는다. 또한 구약의 하나님이 전반적으로 예수보다 전투적이며 민족신에 가까운 모습 등으로 묘사된 것은 사실이라도, 후대로 갈 수록 구약의 하나님은 예수가 보여주던 모습과 비슷한 모습도 보여준다.[42] 이를테면 구약 중 시기적으로 비교적 후대의 책인 요나서에서는,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후려패던 아시리아 사람들을 구원하려고 예언자 요나에게 명령하는 내용이 나온다. 이는 탈출기에서 이집트가 참혹한 재앙을 맞는 것과 분명하게 대조된다. 그리고 이스라엘 후대의 예언서들에서도 일벌백계의 하나님이라기보다는 끝까지 회개를 기다리고 죄인들이라도 회개하여 구원받는 것을 바라는 하나님으로서의 면모가 더 많이 드러난다. 대표적으로 에제키엘서.
기독교의 세계관은 '''시작과 끝이 직선적인 세계관'''이다. 하느님이 천지를 창조하셨고 예수의 재림으로 세상이 종말을 맞는다고 믿는다.
즉, 예수와 성부, 성령이 천지를 창조한 주체이며, 전지전능하며 절대선의 위치에 서는 존재로 간주한다. 그리고 성령이 성부(또는 성부와 성자)에게서 나왔으므로 예수와 성령은 태초부터 성부와 함께하였으며 함께 천지를 창조하였다고 한다. [43]
성경의 예언에 따라 마지막 때에 예수 그리스도가 세상을 다스리러 다시 올 것(재림)을 믿으며, 이때 새 하늘과 새땅이 펼쳐지기에 앞서 요한계시록에 따라 세상의 악한 자들과의 전쟁과 예수가 주권자로 구원받은 사람들과 함께 세상을 다스리는 천년왕국이 이 지상에 이루어짐을 믿는데, 이 아마겟돈과 천년왕국설에 대해서는 교파에 따라서 해석이 다르며 영적으로 이미 예수가 세상의 주권자(즉 그리스도의 교회가 천년왕국)이며 문자적이고 가시적인, 앞으로 도래할 천년왕국은 없다고 보는 '''무천년왕국설''' 역시 아우구스티누스 이래로 교부 시대 기독교도들 및 가톨릭과 주요 개신교 신학자 등 대다수 주류 교파들의 의견이다. 그 후 최후의 심판에 의해 지금의 세계가 끝나고 이 땅과 하늘이 이상향인 하나님의 나라(천국)로 새롭게 변화될 것이라고 믿는 종말론적 역사관을 갖고 있다.
'''심판'''과 '''종말'''에 관한 기독교의 교리를 좀더 설명하자면, 사람이 일반적으로 죽고 나서 천국/지옥(또는 연옥) 등에 가게 되는, 즉 우리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심판은 신학적으로 '''사심판'''이라고 한다. 사심판에서는 지상에서 살면서 자신이 한 일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 교리 실천 여부 등에 따라 천국과 지옥(또는 연옥)으로 가 마지막 때까지 머무르게 된다. 반면 마지막 때에 재림한 예수 그리스도에 의해 벌어지는 최후의 심판은 '''공심판'''이라고 하는데, 이 때가 오면, 지금까지 죽은 사람들이 모두 부활하는 일이 일어난다. 천국/지옥(또는 연옥)에 가 있던 죽은 자들이 지상에서 부활한 육신을 얻게 되어 최종적이고 영원한 심판을 다시 받게 된다.[44] 그리고 최종적으로 구원받은 사람은 지상과 천국에 함께 도래한 주의 나라를 누리며 영생(=어떠한 폭력이나 고통도, 죄악도 없고 주와 함께하는 극도로 행복한 낙원의 영원한 삶)을 얻게 되는 것. 기독교의 사후에 대한 교리는 천국/기독교와 지옥(기독교)도 같이 참고하자.
앞에 설명했듯 기독교는 기본적으로 종말론적인 역사관과 교리를 가지고 있다. 성경에서 예언하는 마지막 때가 언제인지는 모른다는 것이 정통 교리[45] 이긴 하지만, '''마지막 때에 예수 그리스도가 분명히 재림할 것이라는 점'''과, 재림 이후 완전한 하나님 나라가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완전히 펼쳐지기 전까지는 세상의 환란과, 기독교도들에게도 고통이 가득찬 시기가 펼쳐질 것이라고 보는 점에서는 복음서와 요한묵시록의 서술을 따라 대부분 교파의 교리 견해가 일치한다. 다만 기독교에서 말하는 종말이 흔히 대중문화에서 묘사하는 것 처럼, 인류가 멸망하는 암울하고 절망적인 상황은 아니다. 이 부분에서는 오해가 많은데, 말세 항목을 참조하자.
3.4. 민족관
기독교의 전신인 유대교 시절에는 히브리 민족(유대인)을 중심으로 하는 선민사상과 민족주의를 가지고 있었지만, 구약시대의 예언들을 거치며 이방인과 유대인의 장벽이 허물어질 것이 예고되었고, 이어 예수 그리스도 이후의 신약 시대를 거치면서 민족성을 초월한 세계종교가 된 기독교는 유대인이든 비유대인이든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차별없는 존재라고 가르치며, 배타적인 민족주의나 신앙에 따른 인종 구분, 더 나아가 일체의 인종 차별을 거부하게 되었다.[46] 따라서 백인이거나, 아시아인이거나 흑인이거나 여타 소수민족들이거나 인종과 국가의 구분 없이 모두 기독교 신앙에 따라 신앙생활하고 구원을 받을 수 있다.
"너희가 다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의 아들이 되었으니 누구든지 그리스도와 합하기 위하여 세례를 받은 자는 그리스도로 옷 입었느니라 너희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유인이나 남자나 여자나 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이니라 너희가 그리스도의 것이면 곧 아브라함의 자손이요 약속대로 유업을 이을 자니라
위 구절을 보면, 유대인 중심 구원관이 예수 그리스도 이후 비유대인 이방인들에게로까지 확장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때문에 기독교에서는 예수를 그리스도로(그리고 대부분의 교파에서는 삼위일체 하나님으로) 받아들이고 믿으며[47] , 기독교인의 정체성을 가지고 세례를 받아 하나님에 대한 믿음을 가지게 된 사람은 구약 시대의 유대인과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자녀라고 불리며 구원받을 자격을 얻는다.- 성경 갈라디아서 3장 26절~29절.
3.5. 인간관
imago Dei 문서를 함께 참조하는게 좋다.
기독교에서는 인간의 육체는 죽으나, 영혼은 현세의 삶이 끝나면 천국 혹은 지옥에서 행복 또는 고통을 영원히 누린다고 믿는다. 현세의 삶은 하나님에 의해 철저히 평가되고 있으며, 예수를 그리스도로 영접하고 믿음을 통해 선행으로 올바른 삶을 살면 죽은 후 하나님의 나라에서 영원한 삶을 행복하게 살 수 있다고 생각한다.
성경의 기록을 바탕으로, 오래 전부터 믿어온 기독교의 인간관은 다음과 같다. 하지만 현재는 성경의 말씀을 글자그대로 사실이라고 보는 교파인가 융통성있게 해석하는 교파인가에 따라 창조와 기독교적 인간 정체성에 대한 의견차이가 다소 있다. 그러나 여전히 인간관의 핵심 이념과 정신은 교파들이 모두 공유한다.
- 인간은 하나님에게 순명해야 하며, 인간이 하나님을 넘어서려고 시도해서는 안 된다(창세기 11장).[50]
- 그러나 인간은 스스로 하나님이 될 순 없어도, 하나님의 말씀을 통하여 일치를 이루고 그 영원성에 참여할 수 있다. 즉 인간은 하느님과 결합할 수 있다.[51] 이를 천국이라고 한다.[52]
- 인간이 늙고 죽는 것은 최초의 인간들이 하나님의 명령을 어겨 원죄를 가졌기 때문이다.(창세기 3장) 참고로 이 원죄에 대해서 여러 논쟁이나 오해가 많은데, 기독교에서 이해하는 원죄는 그 자체로 단죄받을 죄라기보다는 본래 선한 인간의 본성을 덮고, 죄로 자꾸 기울게 하는 대물림되는 악한 영혼의 성향에 가깝다. 따라서 가톨릭 등 보편교회 신학에서는 인간은 원죄만 가지고 있다고 해서 지옥에 가지는 않는다고 본다.[53]
3.6. 징벌관과 구원관
대부분의 정통 교파 기독교는 원죄의 대물림을 인정한다. 기독교에서는 최초의 인간들이 창조주의 명령을 어긴 죄를 원죄라 부르는데, 이 원죄는 최초의 인간의 모든 자손에게 대물림된다. 하지만 예수가 인간을 대신해서 이미 죽었기 때문에, 이를 믿고, 예수를 그리스도로, 자신의 인격적인 구원자로 믿는 사람은 '하나님의 은총으로 말미암아'(모든 기독교 종파의 공통교리)[54] 원죄 및 자기 탓으로 지은 죄를 '참으로 용서받거나'(보편교회 신학), 죄인인 건 변함없으나 이에 대한 벌을 면제받은 의인이라고 인정(개신교 신학)받는다고 믿는다.(이신칭의 참조) 원죄 이외의 죄(즉 자기 탓으로 지은 죄악들)의 대물림은 정통 교파들에서는 대부분 인정하지 않는다.
여기서 원죄의 '대물림'이란 표현 때문에 "이 무슨 연좌제란 말이야!" 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을텐데, 위에서도 설명했듯이 기독교에서 원죄의 대물림 문제는 단순히 연좌제 정도가 아니라 '''종의 특성'''쪽에 가깝다. 인간이란 존재 자체가 '죄된 존재'로 유전적(?) 변이를 했다는 의미다. 그러니까, 타락 이전과 이후의 인간이 종 자체가 다르다고 보고 그 차이점을 원죄(타락한 인간의 속성)가 있느냐 없느냐로 판가름한다는 이야기. 원죄 교리를 처음 접하는 사람들을 위해 매우 알기 쉽게 비유를 들자면, 농부(그리스도)가 밤(인류)을 수확(구원)할 때는 만지면 해가 되는 밤송이 가시(원죄)를 까고 나서 먹거나 새로 심지만, 그렇게 까진 밤송이가 다시 밤나무가 되면 거기서 열리는 다른 밤송이(다음 세대의 인류)는 또다시 가시(원죄)를 가지고 있는 것과 같다고 이해하면 쉽다.
즉, 대다수 정통 교파 기독교에서는 모든 인간은 야훼가 처음 창조한 인간인 아담과 하와의 자손이므로 그들의 원죄[55] 를 물려받게 되며, 이 원죄로 인한 본죄[56] 까지 사람들이 저지르게 되면서 세상이 타락하였으며, 악인은 지옥에 간다고 믿는다. 하지만 성자인 예수 그리스도가 인간의 죄를 대신하여 십자가에 못박혀 희생당해 죽고 부활한 뒤, 승천했으므로 인간은 삼위일체인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그를 믿고 선하게 된 사람은 구원을 받아 천국에 갈 수 있다고 믿는다. 또 가톨릭에는 천국과 지옥 외에도 연옥에 대한 교리가 있다. 연옥 문서 참고. 사람의 인격의 기본이 되는 영혼이 있다고 믿으며, 이는 육체의 죽음과는 상관 없이 불멸한다고 믿는다. 또한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회나 여호와의 증인과 같이 영혼 불멸과 천국, 지옥을 믿지 않는 교파도 종종 존재한다.
다만, 정교회에서는 원죄라 부르지는 않고, '조상의 죄'라고 부른다.
기독교에서, 죄에서 자유롭게 되어, 하나님의 나라(천국/기독교)에 들어가는 것을 '구원'이라고 표현하며, 모든 정통 기독교 교파들에서 이 구원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희생을 통한 죄의 용서를 믿으며 원죄와 본죄를 용서하는 세례(침례)를 받고(보편교회는 특히 세례의 중요성을 강조함) 참된 신앙으로 예수의 가르침과 성경, 주님의 계명들을 지키는데 노력하고(자선과 이웃사랑 등) 미사/예배를 열심히 드리고 기도, 성체성사/성만찬[57] 등 신앙생활을 열심히 하며 인생에서 저지르는 여러 죄악들을 지속적으로 참회[58] 하며 살아가는 것으로 가능하다고 믿는다.[60][61] 죽어서 구원받은 사람은 일단 영혼의 상태로 천국에 가서 편안하고 즐거운 복락을 누리고, 장차 마지막 때에 예수 그리스도처럼 다시 영혼과 육신이 온전하게 합쳐져서 부활하게 된다. 그리고 그리스도의 재림과 최후의 심판을 통해 지상에도 하나님 나라(천국)가 도래할 때 부활의 새로운 몸[62] 을 입고 '영원한 생명'을 얻으며, 행복하고 이상적인 삶을 끝없이 누릴 것을 믿는다.
기독교의 천국관에 대해 설명하자면, 기독교의 천국은 일반적으로 요한계시록 21장에 나오는 '새 예루살렘'의 모습과 동일시된다. 또한 마지막 때가 와서 하나님 나라가 지상에 도래한다는 교리를 성경에서는 새 예루살렘이 새 하늘과 새로운 땅에 내려온다는 방식으로 설명하고 있다. 자세한 것은 천국/기독교를 참조.
3.7. 생활관
교리적으로 유대교 시절의 구약성서의 영향을 많이 받았기 때문에(십계명 등), 교파들에 상관없이 공통적으로 우상숭배나 미신 등에 배타적이며 유일신론에 입각해 다신교적 가치관을 배척하는 경향이 있다. 또 성윤리 또한 교파들을 가리지 않고 공통적으로 보수적인 편이라서, 가족주의를 중시하고 동성애에 대한 터부나 혼전순결, 성적 타락에 대한 반대 등이 교리에 들어가 있다. 또 이슬람과는 달리 많은 기독교 문화권 국가들은 일부일처제를 원칙으로 삼는다. 특히 가톨릭과 정교회의 경우는 혼인과 자녀의 양육을 초월자가 신자에게 부여한 일종의 '임무'로 해석하여, '''원칙적으로 이혼도 금지하고, 일부다처제를 유지할 경우 7성사 참여를 금지할 정도로 강경한 일부일처제를 지향'''한다. 축첩제나 일부다처제를 고수하는 신자는 가톨릭과 정교회에서는 원칙적으로 성사도 볼 수 없다. 공식적으로는 간음중인 상태나 다름없다고 보기 때문이다. 또 장로회 등 개신교 주요종파에서도 일부다처제를 반대하는 기조는 매우 강하며, 구한말 한국에 선교 온 선교사들도 축첩 상태를 유지하는 신자가 새로 입교할 경우 축첩을 포기하고 정실부인과의 결혼관계만을 유지하지 않는 이상 입교 및 세례주기를 거부하는 사례도 매우 많았다.
물론 이것도 지역에 따라 좀 달라서, 아프리카 일부 지역의 기독교는 일부다처제를 용인해 주는 경우도 있다.[63] 그러나 오해하면 안될 것이, 일부다처제를 예외적으로 용인해주는 일부 교파 및 국가도 있긴 있으나, '''대다수 기독교 교파에서는 일부일처제를 올바른 기독교적 관습으로 보고 일부다처제를 옳지 않은 것으로 보는 경우가 절대 다수'''다. 사실 성공회의 경우가 오히려 예외적인 케이스일 뿐이다. 위에 언급된 케냐에서도 가톨릭, 개신교를 가리지 않고 기독교계가 모두 나서 정부 주도의 일부다처제 법안에 공식적으로 반대하기도 하였으며(또한 기독교인이 혼인성사 등 교회에서 결혼을 원할 경우 무조건 법적으로 일부일처제를 지키는게 원칙), 일부일처제를 강력히 중시해서 새로 개종해 들어오는 일부다처 및 축첩에 익숙한 현지인들과 의견차이를 보이는 남아프리카 국가들의 가톨릭 선교 사례 등 아프리카의 기독교계도 일단 일부일처제를 우선적으로 원칙시하는 모습을 보이는 건 마찬가지다.
구약 성경을 공유하며 율법을 아직 지키는 유대교와 비교하면, 기독교는 구약 율법의 강제성이 신약성경 시대에 와서 의미가 사라졌다고 본다. 예수 그리스도 이후 십계명을 제외한 구약시대의 율법은 신학적 가치는 있지만 더이상 준수할 의미가 사라진, 그리스도의 희생으로 완성되어 끝난 문제라는 것. 신자들에게 있어 절대적으로 중요한 구원의 문제가 구약 시대에는 율법의 준수로 이뤄졌지만, 예수 그리스도 이후에는 더 이상 율법이 아닌 예수에 대한 '''믿음'''으로 이뤄진다고 보기 때문이다. 이는 믿음과 행위에 대한 해석의 차이는 있지만 모든 기독교 교파들이 공유하는 대단히 중요한 교리다.[64] 이 부분의 교리를 좀 더 정확히 설명하면, 구약 율법 중에서도 신약의 정신과 부합되는 '도덕법'은 여전히 대단히 중요히 여기며(대표적으로 이웃을 사랑하라는 법이나 주일-안식일 엄수, 십계명 등)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희생으로 의해 성취되었고 완성되었다고 보는 동물 제사나 복식 규정, 식생활 등의 의식 율법은 강제성과 의미가 더이상 사라졌다고 본다. 때문에 일반적인 주류 교파 기독교인이 구약 율법에 금지되어 있는 돼지고기, 갑각류 등을 먹거나 동물 제사를 더이상 드리지 않아도, 할례를 하지 않았어도, 이슬람이나 바하이처럼 예배 전에 복잡한 세정의식을 하지 않아도, 성 삼위 하나님에 대한 올바른 믿음과 기도하는 생활과 자신의 잘못을 회개하고 모든 죄악을 피하려는 올바른 양심을 가지고 산다면 구원받는데 교리적으로 문제가 없다. 같은 아브라함계 종교이면서 복잡한 율법 수행을 매우 강조하는 이슬람이나 유대교와 비교해 대단히 중요한 점.
그렇다면 기독교에서 매우 강조하는 교회(성당)에 소속되어 신앙생활을 할 것과 각종 성사, 미사, 전례, 예배 등은 무엇인가? 라는 물음이 있을 수 있는데, 이는 보편교회 신자들에게 있어서는 하나님이 인간에게 계시해준 '보편적인 구원의 길'이다. 즉 인간은 무엇이 옳고 그른지 판단하기도 어렵고 교회의 공적인 지도 없이는 자기주관이나 자기합리화를 통한 죄 등에 빠져 구원받기가 쉽지 않을 수 있으므로 이러한 교리와 성사들을 통해 가장 천국에 가기쉬운 보편적 구원의 길을 제시해 주는 것. 따라서 보편교회(가톨릭, 정교회, 오리엔트 정교회, 성공회)에서는 어떤 신자가 고의적으로 교회에 소속되지 않고도 개인적 신앙으로만 구원받을 수 있다는 식의 '무교회주의'를 배척하며, 어쩔 수 없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교회의 일원이 되어 주일미사 참례나 7성사 등의 교회 예식에도 함께해야 구원에 '''필수'''적이라고 교회법에 규정하고 있다. 반면 개신교는 정도의 차는 있지만 상대적으로 개인의 믿음을 더 중시하고 교회적 형식과 예식의 일원이 되는 것에 얽매이지 않는 경향이 있다.
때문에 상대적으로 생활에 있어서는(ex: 생활에 있어 자잘한 율법을 지켜야 하는가) 유대교나 이슬람보다 어느정도 자유로운 성향이 있다. 식생활에 있어서도 기독교에는 구약 관습을 여전히 중요시하는 재림교회나 여호와의 증인, 일부 독립 교회들이나 오리엔트 정교회 등 일부 종파 외에는 코셔 푸드나 할랄 푸드 같이 '신자들은 이것만 먹어야 한다' 식의 규정이 존재하지 않는 것도 특징[65]
예수 그리스도 후기 성도 교회는 술, 담배, 뜨거운 음료와 카페인을 금지하는 지혜의 말씀이라는 율법이 있지만, 성경에 기록된 율법이 아닌데다 주류 기독교에서는 이단으로 분류되기 때문에 논외로 친다.
이슬람만큼은 아니나 전반적으로 성차별이 존재한다. 그나마 점차 시대가 바뀌어 여성을 남성을 위한 도구로 취급하던 구약의 시대착오적인 율법은 대부분 무시되고 있지만, 여전히 디모데전서 2장을 위시한 여러 성경 구절을 이유로 여성의 사목을 제한하고 있다. 하와는 아담의 배필이 되기 위해 만들어진 존재고, 뱀의 유혹에 넘어갔기 때문에 여성은 (아이들을 제외한) 남성을 감히 가르치면 안 되며 주관해서도 안 된다는 것이다. 가톨릭과 정교회, 오리엔트 정교회에서는 여성을 성직자로 서품하지 않으며(수도자는 가능하나 수도사제는 될 수 없다), 개신교는 성공회가 여성 성직자와 수도사제를 허용하지만 교파에 따라 여성의 목회를 허용하지 않는 곳도 있다.
4. 분류
[image]
크게 '''서방교회'''와 '''동방교회'''로 나뉘며 서방교회에는 '''가톨릭'''과 '''개신교'''[66] , 동방교회에는 '''정교회'''와 '''동방 가톨릭'''[67] , '''오리엔트 정교회'''[68] 로 나뉜다. 이중 동서방 가톨릭과 정교회, 오리엔트 정교회, 성공회가 '''보편교회'''[69] 를 주장한다. 다만 일반적으로 '보편교회'를 칭할 때는 가톨릭과 정교회를 뜻하며, 또한 이 두 종파는 서로만을 양대 보편교회로서 인정하고 있다. 이외 카테고리에 들어가는 교파로 개신교, 그리스도의 교회, 그리스도아델피안[70] , 예수 그리스도 후기 성도 교회 등이 있는데 개신교, 그리스도의 교회 정도를 제외하면 현재의 주류 정통 기독교에서 교리적으로 한참 떨어진 교파들이다.
4.1. 주요 종파 목록
인구의 출처는 여기 # 참고.
- 제2차 니케아 공의회까지(1~7차 세계 공의회) 공인한 보편교회
- 마론파 - 약 330만 명. 레바논을 중심으로 한 초기 교회 공동체에서 유래.
- 칼데아 가톨릭 - 약 50만 명. 이라크에서 자생한 초기 교회 분파였으나 1553년 교황 수위권을 인정하고 가톨릭과의 일치를 천명하여 가톨릭 계보로 흡수되었다. 2014년 이 지역에 등장한 악마들로 인해 현재 그 본산이 위협받고 있는 상황.
- 정교회 - 2억 4000만명~3억여명. 러시아 정교회, 그리스 정교회 등 흔히 "나라이름 + 정교회"로 불리우지만 다 동일한 종파이다. 아래 있는 비 칼케돈파 오리엔트 정교회와 구분할 것.
- 가톨릭에서 유래한 교파
- 복고 가톨릭교회 - 약 11만 명. 19세기에 교황수위권을 부정하며 분리되어 생겨난 교파로 가톨릭교회라고 보기 어렵다. 다만 스스로 복고 '가톨릭'을 자칭하므로 개신교라고 보기에도 어정쩡하나 그 형태나 교리를 살펴보면 성공회와 유사하다. 실제로도 성공회와 완전히 상통관계를 맺고 있으며 WCC 회원이다.
- 카쿠레키리시탄 - 일본 막부시대 가톨릭을 멸절시키다시피 한 극심한 박해로 인해 의도치 않게 탄생한 신앙공동체(이것을 교파라고 보아야 할지는 견해가 갈린다). 사제 없이 신자들만 살아남아 250년 간 전승되는 동안 교리와 전례가 밀교와 비슷한 형태로 변형되고 토착화되었다. 개항 이후 가톨릭 선교사가 다시 들어오자 조상들이 가르친 그 신앙이 가톨릭이었다는 것을 확인한 대부분의 카쿠레키리시탄은 가톨릭으로 복귀하였으나 일부는 현재까지 조상의 가르침을 버릴 수 없다며 가톨릭으로의 복귀 및 일치를 거부하는 상황. 이들은 교회사는 물론 인류학적으로도 중요한 연구 대상이다.
- 비 칼케돈 교파
- 네스토리우스파(또는 경교)[75] - 50만 명 내외
- 아시리아 동방교회 - 신자는 40~50만 명 내외. 네스토리우스파 기독교 또는 경교의 이념을 계승하는 기독교 교파이다. 시리아 교회, 아시리아 정교회, 아시리아 사도교회, 동방 아시리아 교회라고도 불린다. 주로 이라크에 분포하고 있고, 대주교구는 이라크, 오스트레일리아, 뉴질랜드, 시리아, 인도, 러시아에 분포해 있고, 캐나다, 미국, 이란에는 주교구가 설치되어 있다.
- 오리엔트 정교회 - 8,600만 명
단성론 교회라고도 부른다. 네스토리우스파를 반대하던 성 치릴로에 가까웠던 성직자들이, 치릴로의 원 주장이었던 '말씀이 되신 (신적) 본성'이라는 말을 고수함에 따라 그리스도의 두 본성의 분리됨과 섞임이 없는 일치를 주장했던 칼케돈 공의회를 부정하였던데서 유래하였다. 이들은 예수 그리스도가 신성(神性)과 인성(人性) 2가지 성격을 지닌 하나의 연합된 본성을 가지고 있다고 주장하기때문에, 단성론이라는 말 자체를 멸칭처럼 생각하고 이를 거부한다.
- 콥트 정교회: 이집트의 주요 기독교 종파. 인구의 10%밖에 안 되는지라 소수파 중의 소수파인 것처럼 보이지만 이집트 인구 수만 거의 9천만이다. 실제로, 콥트 교회는 중동 기독교 중 가장 세력이 크다. 21세기 기준 추산 인구 1,550만 명. 이중 이집트에만 1000만명이 넘게 살고있다.
- 에티오피아 테와히도 정교회: 일명 에티오피아 정교회. 한때 콥트 정교회의 일원이었으나 분리되었다. 4,800만 명으로 오리엔트 정교회의 대부분을 차지한다.
- 시리아 정교회 - 660만 명. 2,100만이 조금 안 되는 시리아 지역 인구를 감안하면 엄청난 비율이다.
- 아르메니아 사도 교회 - 추산 800만 명. 아르메니아 내 다른 기독교 종파들까지 합치면 1,000만 명까지 간다.
개혁주의, 개혁교회, 간혹 복음주의 교회라고 한다. 복음주의라 불리는 이유는 다음과 같다. 가톨릭의 경우 믿음이 행동으로서 나타나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그 자체로는 자선과 선행, 봉사행위를 권장하는 좋은 의미다. 하지만 이것이 면벌부(정확히는 헌금을 통한 대사)를 구입하는 행위도 믿음을 증언하는 것으로 잘못 해석되는 근거가 되는 바람에 면벌부 파동이 일어나게 되고, 이에 종교개혁을 촉발시킨 마르틴 루터가 로마서 10장 9절에 근거해 복음 말씀대로 살고 믿는 것 자체로 의로움을 칭할 수 있다는 이신칭의론을 도입하게 된다. 그래서 "복음대로 산다"는 의미가 널리 쓰이게 되었다.
복음주의란 단어는 영국에서 감리회가 "복음주의 운동"을 시작한 게 기원. 미국에서 대략 1억, 브라질에서 5,000만 정도가 된다고 추정되며, 감리교단이 7,500만 명, 장 칼뱅의 가르침을 따르는 장로회를 비롯한 개혁주의 교단이 7,500만 명, 침례회 계열 종파들이 4,100만 명, 오순절주의[77] 계열 종파들이 2억 7천 900만 명,기타 복음주의를 표방하는 다른 교파(독립 교회)가 8,000만 명 정도 된다.
복음주의란 단어는 영국에서 감리회가 "복음주의 운동"을 시작한 게 기원. 미국에서 대략 1억, 브라질에서 5,000만 정도가 된다고 추정되며, 감리교단이 7,500만 명, 장 칼뱅의 가르침을 따르는 장로회를 비롯한 개혁주의 교단이 7,500만 명, 침례회 계열 종파들이 4,100만 명, 오순절주의[77] 계열 종파들이 2억 7천 900만 명,기타 복음주의를 표방하는 다른 교파(독립 교회)가 8,000만 명 정도 된다.
- 반삼위일체파/회복주의: 반삼위일체파와 회복주의 운동이 같은 것은 아니지만 두 조류를 따르는 교파가 겹치는 경우가 많다. 대표적인 것이 예수 그리스도 후기 성도 교회, 그리스도아델피안, 유니테리언 등이 있다. 이들은 대개 19세기 이후에 형성된 교파들이며, 보통 개신교의 일파로 보지는 않는다.
- 메시아주의 유대교: 약 26만 명. 유대교 중 특이하게도 예수를 메시아로 인정하는 분파이다. 코셔 푸드를 먹는 등 구약의 율법을 지키고 유대 민족이 하나님에 의해 선택된 민족이라고 생각하는 등 분명히 스스로의 정체성은 유대교이나, 정통 유대교로부터는 그저 기독교로 취급당하여 박해를 당한다.
- 역사적 종파: 대개 별개의 교파라기보다는 종교 내에서의 학설에 가까운 것이 많고 그렇기 때문에 가장 오랜 역사가 있는 만큼 분파 항목은 많지만 별은 붙이지 않은 것. 정통의 교리에 이의를 제기할 수는 있지만 끝까지 반대하면 고중세 시대에는 당연히 이단 취급을 받고 몰살되는 경우도 많았으며, 사실상 교리도 정통이라 보기에도 매우 멀다. 아래 항목의 대부분은 기독교 신학 체계에 흡수되거나, 아니면 분리되어서 잠깐 존속하다가 대개 사라진 종파들이다.
4.2. 세계의 국가, 지역별 기독교 분포
[image]
가톨릭교회는 명실상부한 기독교 최대의 종파다. 남유럽과 동유럽의 많은 국가들이 가톨릭을 믿고 있으며, 유럽에서는 개신교보다 가톨릭을 기독교의 원류로 더 쳐준다. 또한 스페인과 포르투갈의 정복전쟁에 힘입어 남아메리카에서도 강세를 보이고 있으며[78]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와 남태평양, 필리핀에서도 교세가 강하다. 단일종파로만 따지면 심지어 미국에서도 최대 종파이다.다만 주류는 아니고 히스패닉 계열의 꾸준한 증가로 최대종파가 된 것. 미국의 주류는 W.A.S.P로서 백인, 앵글로 색슨, 그리고 개신교도들이다. 미국 역사상 가톨릭 대통령은 딱 한 명뿐이었으며, 미국 건국 초기에는 가톨릭을 배척하는 법이 존재했으나 이후 폐기되었을 정도로 비주류였다. 현재도 미국 가톨릭의 상당수가 히스패닉계, 라틴계다. 주류 백인들이라고 생각한다면 심히 골룸하다. 기독교의 불모지 중동에는 마론파라고 가톨릭의 전례를 따르는 기독교 종파가 있으며 정교회 교회들 중에서 교황의 수위권 아래로 돌아온 종파도 있다.
러시아나 동유럽 상당수 국가들, 에티오피아(오리엔트 정교회)는 역사적이고 전통적인 정교회 국가였고,공산정권의 몰락 이후 신자수도 늘어나고 정치적 영향력도 회복하고 있는 추세다. 기독교의 본고장이라고 할 수 있는 중동 지역도 정교회가 강세다[79] . 대부분 20세기의 사회주의권이었던 러시아 및 동유럽의 주요종파였던 역사 때문에 아무래도 정교회는 구 공산국가에 많이 존재한다는 견해가 있는데 일단 대체적으로 사실이나, 예외적 사례로 그리스, 키프로스, 중동 정교회권같은 경우나, 해외로 망명한 반공 러시아인들의 정교회처럼 공산권 밖의 정교회도 어느정도 있었다.
중동에는 정교회 뿐만 아니라 비칼케돈파 정교회도 많이 있다. 콥트 정교회나 에티오피아 테와히도 정교회, 시리아 정교회 등이 있다.
개신교가 강세거나 늘어나는 지역은 북유럽과 영국, 남미[80] ,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 오스트레일리아, 뉴질랜드 등 정도다.[81] 한국이나 미국이 최대의 개신교 국가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겠지만 한국은 20%밖에 안되며 미국에서도 40% 대로 절반에 약간 못미친다. 뉴질랜드나 북유럽 같은 지역은 개신교가 다수를 차지하지만, 사실상 스칸디나비아 등 이들 지역 상당수에서는 기독교 문화가 우리나라 유교같이 문화나 관습, 연례행사 등으로만 자리잡혔을 뿐 사실상 주류 종교로서의 위력은 떨어지고 세속화된 명목상의 신자들이 대다수인 편이라서 제대로 된 개신교 국가라고 보기는 힘들다. 이렇게 전통적인 개신교 지역에서는 교세확장이 시원찮아진 반면, 중남미에서는 주류 가톨릭보다 훨씬 빨리 늘어나고 있으며,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에서의 신자 증가세는 폭발적이다. 중국에서도 공산당의 종교규제에도 불구하고 비밀교회 가정교회 방식의 포교로 개신교의 세가 급격히 증가하고 있는 추세다.[82]
그 외에도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나 제3세계에서는 20세기부터 서구 방식의 교파 구분을 거부하고 독자적인 신학이나 관습을 중시하는 토착민 중심의 '''독립교회'''나 교단들이 많이 생겼고 수적으로도 매우 큰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 단, 이들 아프리카의 기독교 독립교단들이 지닌 신학적인 문제점이 있는데, 기존의 아프리카인들이 가지던 조상신 신앙이나 정령숭배 등을 끊어버리지 않고 기독교와 융합해서 믿거나, 외적이고 물질적인 은사주의를 지나치게 신봉하는 등의 이단시비가 있는 종파들도 상당히 있다.[83] 그러나, 아프리카의 이런 혼합주의 이단들이 아프리카 기독교의 거의 전부라고 보는 것은 과장이 심한 견해이다. 공식적으로는 가톨릭, 주류 개신교 교단 인구들이 토착 독립교단들보다 훨씬 더 많으며 이러한 주류 교단들은 공식적으로 혼합주의, 정령신앙, 주술사상 등을 반대하고, 제대로 된 기독교신앙을 지닌 아프리카인들도 대단히 많다. 또 상당수 신자들이 아프리카 토착 가치관에 여전히 많은 영향을 받고 있다는 것은 사실이나, 넓게보면 이런 현상은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 지역[84] 의 기독교'만' 특이해서 생기는 것이 아니라, 사실 러시아 정교회의 초창기 정착과정이나 중남미 가톨릭의 초기 역사, 이슬람권의 '민속 이슬람' 현상 등 보편종교의 전파로 문화 변동이 일어났던 많은 토착 지역에서 일어났던 일이다.
기독교 전파 역사가 굉장히 오래되었고, 또 다른 세계종교들과 비교해도 전례없이 광범위하게 선교, 이주, 역사적 전파가 이루어졌던 특성때문에 일반인들이 흔히 "여기엔 기독교가 없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지역에 의외로 기독교가 퍼져있는 경우도 많다. 과거 중세에 네스토리우스파 기독교는 '''경교'''라는 이름으로 동아시아권인 중국까지 일찌감치 진출한 적도 있으며 대표적으로 중앙아시아권인 카자흐스탄 같은 지역은 전 국민의 4분의 1이상이 기독교(정교회) 신자이고, 불교권인 미얀마 북부나 히말라야 인근의 인도 북동부[85] , 그리고 남부[86] 등지에도 기독교 소수민족들과 기독교인들이 있으며, 태평양권의 많은 열대 도서국가들(유명한 필리핀을 제외하고도, 가까이는 티모르, 파푸아 지역 등부터 투발루나 피지, 키리바시, 괌, 사이판, 통가, 타히티, 사모아 등)에도 원주민 기독교 신자들이 대단히 많다.
5. 역사
5.1. 기원
유대교 중 시한부종말론과 메시아의 재림을 강력하게 믿었던 에쎄네파[87] , 기원 원년 부근에 태어난 예수 그리스도는 당시 유대 사회에서 소외받은 자들, 그리고 자신을 따르는 자들을 규합하여 기독교를 창시했다. 초기 기독교 신앙의 전파자들 중엔 예수 그리스도, 사도 베드로, 사도 바오로 등이 있다. 또한 313년 콘스탄티누스 황제의 기독교 공인 전까지는 영지주의 등의 여러 종파들이 존재했었다.
기독교의 시작은 로마 제국과 함께 하는데, 예수는 옥타비아누스(아우구스투스)~티베리우스 시대의 사람이었으며, 콘스탄티누스 황제가 정치적인 목적을 위해 기독교를 공인하고 나서 4세기 말 로마제국의 기득권을 쥐기 전까진 지도적 위치에 있지 않고 박해당하는 경우가 많았다. 기독교에 대한 박해는 예수 그리스도 당시~직후부터 유대교인들을 중심으로 수없이 있어왔지만, 로마제국 하에서 대대적인 박해를 처음 시작한 것은 네로 황제 때였는데, 그가 대화재의 책임을 기독교인들에게 돌렸던 이유는 그들의 종교적인 문제 때문이 아니라 기독교인들이 로마제국 사회에서 미움받는 존재이기 때문이었다.
초기 기독교가 로마제국에서 사이비로 취급된 것은 기독교가 로마 제국에 전파되던 당시, 기독교도는 사람의 피와 살을 먹는다는 속설이 있어 초기 기독교에 대한 반감의 한 원인이 되었기 때문인데 이것은 최후의 만찬 때의 "빵은 내 살, 포도주는 내 피."라고 한 예수 그리스도의 말이 비기독교도들 사이에서 오해를 산 것으로 여겨진다.[88] 신자들도 초대교회를 비롯해 로마 제국에서 국교로 지정되기 전까지는 비참했는데, 차별은 당연하고 툭하면 잡아다 십자가에 못박거나 원형경기장에 사자 밥으로 풀어 놓았다. 네로 황제의 방화사건 이후의 최대 피해자이기도 하고.
그리고 유일신교인 기독교는 다른 신을 섬길 수 없다는 이유로 신격화된 황제 숭배가 포함된 로마의 국가적 의례를 거부하였다. 이는 로마인에게 있어서 바로 반역으로 여겨졌다. 이로 인하여 64년부터 네로 황제부터 시작하여 기독교를 금지하기 이른다. 그리고 도미티아누스 황제 시절(서기 81년~96년)에도 황제가 자신을 신격화하는 경향이 심해서 역으로 이를 거부하는 기독교인들에 대한 박해가 극심했다.[89] 때문에 기독교 공인과 국교화 이전에는 신약성경 초기에 등장했던 일부 교회들은 행방이 묘연해지는 경우도 많았다. 물론 국교화 이후에 로마제국 전체가 기독교화되면서 모두 재건되긴 했지만.
또 다신교인 로마 제국에서 기독교가 신앙을 이유로 탄압받았던 다른 이유는, 기독교인들이 공공 의례를 거부하는 것과 동시에 그들의 생활습관이 유난히 미움을 받았기 때문이었다. 이들이 미움을 받는 이유는 로마인들이 매우 중시했던 수많은 축제나 스포츠 행사에 일절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기 때문. 로마는 1년에 3분의 1 가량이 축제로 도배를 할 정도로 많은 축제가 있었는데, 이는 국가적인 레벨이거나 혹은 지방적인 레벨의 축제들이었다. 그래서 많은 종교를 믿는 사람들 중 기독교인들만은 이런 축제들에 일절 모습을 나타내지 않았으며 그러한 태도는 다른 로마인들에게 '자기네가 뭐 그리 대단한가?' 라는 생각을 품게 했다.
그 이외에는 딱히 문제로 여겨지지 않았고, 기독교 자체를 국가의 문제로 여기는 생각은 적었다. 서기 110년 트라야누스 황제는 기독교들의 행방을 밝히지도 캐지도 말라는 명령을 내린다. 종교 조직으로서의 기독교는 탄압할 생각이 없다는 의미로, 공공연하게 로마의 국가적 의례를 거부하는 개인의 행동만을 문제로 삼은 것이다. 박해로 순교한 사람의 수는 정확히 알 수 없으나 어떤 역사학자는 박해되어 살해된 사람 수가 5천에서 6천명에 불과하다 주장하며,[90] 이 수치는 성 바르톨로메오 축일의 학살로 인한 피해규모보다 3배 적은 것이다. 원래 로마는 다신교이며, 기독교 이외에도 많은 종교가 공존했기 때문에 종교 자체보다는 '개인의 행동'을 문제로 삼았다. 공공연한 기독교인이라 해도 의례를 거부하지 않으면 별다른 문제는 없었다. 그러나 이를 거부할 경우 법적조치에 취해지게 되었는데, 기독교인의 대다수는 황제를 신으로 심기는 공공의례를 받아들일 리가 없으니.
그러나 이는 공식적인 측면일 뿐이었고, 실상은 고대 로마제국 이교도들 사이에서 기독교인은 굉장한 증오의 대상이었다. 2세기 중엽부터 기독교가 확실히 뿌리를 박는 시기인 5세기까지도(!)의 수많은 사료들은 가뭄, 지진, 기근이나 질병 등 사회에 안좋은 일이 있기만 하면 당대 비기독교인들의 증오의 타겟이 기독교인들에게로 향했다는 증거들이 넘치도록 많다. 여전히 로마의 신을 거부하는 기독교는 불법요소였으며, 기독교 초기 지도자들도 '''박해가 심해질수록 예수 재림과 최후의 심판날이 가까워질 것으로 보고''' 신앙을 위한 순교를 장려했다.
5.2. 발전
3세기의 위기라 불리는 로마 제국의 불안정 때문에 민중들의 종교적인 욕구는 늘어났고, 기독교 세력은 하층민들 중심으로 크게 팽창하였다.[91] 사실 이전까지 기독교는 1~2세기 로마에서 아주 소수 종교 집단에 불과했다고 역사학자들은 판단하고 있다. 연구에 따르면 서기 100년경, 제국 인구 6천만 중 기독교도들은 약 7000명~약 7500명 수준에 불과했다고 하며 이로부터 백년 후 세베루스 왕조 시대인 200년경에도 불과 20만 명에 불과했다고 한다. 그러나 세베루스 왕조가 붕괴하고 군인 황제 시대가 열린 250년경에는 순식간에 500만 명으로 늘었을 정도로 폭발적으로 신자 수가 증가한다. 디오클레티아누스 치세인 200년대 말에 기독교들은 600만 명으로 추산되며 이는 제국 인구의 10%에 달했다. 기독교를 로마 제국의 국교로 정한 테오도시우스 대제 시절인 4세기 말에 이르면 기독교인의 수는 3000만 명에 이르렀다고 한다. 제국 인구의 절반 이상이 기독교도가 된 셈이다. 학자들은 4세기 콘스탄티누스 대제가 개종하기 전까지 십 년마다 40%씩 교인 수가 증가했을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92] 지역적으로도 북서 아라비아, 페르시아만 연안과 크림 반도, 중앙 아시아, 켈트 지방까지 교세가 뻗어나간다. 이와 더불어 많은 황제들이 기독교에 대한 더욱 가혹한 탄압을 시도하였는데, 황제 중엔 셉티무스 세베루스(202년~211년), 막시미누스(235~238년), 발레리아누스(257년~260년)황제 등이 대표적으로 기독교회를 탄압하였다.
이들이 탄압한 이유는 기독교인들이 사회적인 단합을 망친다고 생각하였기 때문이었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기독교인들은 국가적인 행사등 에 일절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으며 로마인들이 3세기의 위기 때 신전에 가서 울고불고 했을 때도 역시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군인 황제들은 이들이 사회적인 단합을 해친다고 생각하였기 때문에 기독교인들을 탄압하고, 이로 인해 다른 로마인들이 단결하길 바랐다.
또 이 시기 페르시아에서는 조로아스터교가 국교로 부흥하면서 페르시아 지방의 기독교인에 대한 박해도 있었다. 특히 아르메니아 지역의 기독교인들은 페르시아 황실의 핍박으로 서기 230년과 287년 박해 때 3만 명이나 죽임당하는 등 고초가 심했다.
참고로 이 시기에 '''기독교도들이 로마군 복무를 거부'''했기 때문에 군인의 수가 감소하여서 서로마제국을 쇠퇴시킨 게르만족의 침입을 막아내지 못했다는 식의 주장을 하는 일부 사람들이 있는데(대표적으로 시오노 나나미 등) 이는 지나치게 과장된 해석이다. 기독교의 초기시대에는 평화주의에 따라 군복무를 거부하는 기독교인이 있긴 했지만 시대가 계속 흐르면서 군복무에 개의치 않는 많은 기독교인들이 로마군에 입대했고, 군대에서 뛰어난 지휘관으로 활약했던 기독교도들도 많았다.
군인황제 시대가 끝난 후에 정권을 잡은 디오클레티아누스 황제 역시 전례없이 강경한 기독교 탄압을 시도하였다. 사실 전임 황제였던 데키우스나 발레리아누스 황제도 강도는 디오클레티아누스와 비슷했는데, 문제는 전임 두 황제는 일찍 비명횡사[93] 하는 바람에 탄압이 중단되었던 것. 반면 디오클레티아누스는 오래 살았으므로 오랫동안 강력한 탄압을 할 수 있었던 것이었다. 디오클레티아누스의 목적도 전임황제와 비슷하여 로마 사회의 단합 그리고 황제의 권위의 강화하기 위한 탄압이었다. 디로클레티아누스는 트라야누스처럼 "국가의례를 거부하는 기독교인 개인"만을 처벌하는 것이 아니라 "기독교 조직 자체"를 겨냥해서 파괴하려 하였다. 그 결과 기독교는 굉장히 큰 타격을 입었다. 하지만 디오클레티아누스는 중도에 퇴위하였고 그 결과 기독교 탄압도 애매하게 중단된다.
이어 즉위한 콘스탄티누스 1세는 313년, 밀라노 칙령을 반포하면서 드디어 사회, 정치적 요인으로 천주교를 로마 제국의 '''합법 종교로 공인'''한다. 그가 공인한 목적은 천주교의 유일신을 섬기게 하고 로마 황제를 그 유일신과 신도의 중간에 위치한 존재로 만들어 대중들에게 성인같은 위치로 공경받게끔 하기 위해서였다. 황제를 신적인 위치로 숭배하는 것은 당시엔 낯선 것이 아니었는데 이는 이집트의 파라오나 페르시아 제국의 황제(샤한샤)들을 보면 알 수 있다. 그러나 로마 황제는 정식 직함이 아니었고, 공식적으로는 공화국인 로마에서 특권을 부여받은 편법적인 존재였으므로 어느정도 신격화되긴 했지만 제국민들에게 신으로서 숭배받는 전통이 약했고 따라서 조금만 실책을 저지르면 즉시 암살당하고 내전이 발발하는 패턴이 계속되었다. 콘스탄티누스는 따라서 로마 황제를 아예 유일신인 하느님과 기독교 교회를 지키는 종교의 수호자로 만듦으로써 오리엔트에서 황제를 신으로 섬기는 것과 비슷한 효과를 내고자 한 것이었다.
사실 이러한 시도는 군인황제 시대 때의 아우렐리아누스가 최초로 시도하였었다. 그는 기독교의 신이 아닌 태양신을 내세우고자 하였다. 하지만 태양신보다는 기독교의 유일 신앙이 콘스탄티누스의 목적에 더 걸맞았는데, 그 이유는 기독교는 오랜 전통의 유대교와 사도 시대를 거치며 상당히 정교한 신학이론을 갖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또한 콘스탄티누스의 어머니가 기독교 신자였기 때문에 콘스탄티누스는 기독교에 대해 꽤나 친숙하였고 따라서 기독교야말로 그의 목적에 걸맞다고 생각했을 가능성이 높다. 사실 콘스탄티누스의 이 방식은 그의 예상을 뛰어넘을 정도의 대성공을 거두어 100년간 지속된 '황제 암살 → 내전 → 승자의 황제계승'의 패턴이 거짓말처럼 중단된다.
또 기독교를 공인한 경제적 이유로는 모라토리엄의 해결이 주 목적이었다는 견해가 지배적이 되어가고 있다. 즉, 콘스탄티누스는 결국 기독교를 공인했기 때문에 신전의 은닉금을 털 수 있었고 그 금으로 재무장한 군대와 경제를 안정시켰기 때문이다. 이때의 금화를 솔리두스라고 하며, 때문에 콘스탄티누스가 기독교를 공인했다는 것.[94] 참고로 콘스탄티누스는 죽을 때쯤 가서야 세례를 받았는데 그 이유는 자신이 저지른 모든 죄를 씻을 수 있고, 정적 살인 등의 죄를 지어야 하는 황제라는 점 때문이었다.[95] 실제로 이런 이유 때문에 콘스탄티누스의 시절엔 세례를 죽기 직전에 받는 경우가 많았다. 물론 현대에 저런 이유로 세례를 늦추는 건 말이 안되는 소리다.
[image]
서기 4세기~7세기 기독교의 확장.
그 후 기독교는 4세기 중반 율리아누스 황제 치하에서 그리스 로마 신앙을 부흥시키는 정책으로 인해 일시적으로 견제받기도 했으나 훗날 매우 독실한 기독교 신자였던 테오도시우스 1세가 기독교를 제국의 '''국교로 선포'''했다(391년).[96] 이로 인해 기독교는 피탄압종교에서 순식간에 지배종교로 변모한다.
이에 이전으로 돌아가고 싶지 않았던 기독교 교회와 종교지도층은 본격적으로 정치에 개입, 종교적 적대자들을 '이단'화하고 이들을 폭력적 수단으로 잔인하게 찍어누르기 시작했다. 이후 테오도시우스 시대에 아타나시우스파의 최종적 승리가 있기 전까지는 황제들의 성향에 따라 아타나시우스파[97] -아리우스파[98] 등이 서로 싸우며 번갈아가며 주도권을 잡거나 숙청을 당하는 등, 기독교 내부의 어지러운 권력투쟁의 시기들이 이어졌다. 그리고 앞서 말했듯, 독실한 이교 신자였던[99] 율리아누스 황제가 361년에 기독교의 입김을 정치에서 완전히 제거하려 했으나 사산조 페르시아에 대한 원정 중 전사하고 만다. 이에 대해 근위대 중 친기독교 세력이 암살했다는 주장도 있다.
아무튼 서로마 제국이 멸망한 뒤에도 기독교를 적극적으로 받아들인 서유럽의 많은 국가들과, 기독교 국가로 온전히 남아 있던 동로마 제국을 중심으로 기독교는 번성하였고, 프랑크족이 아타나시우스파의 세례를 받아들이고, 그 프랑크족이 프랑크 왕국을 세움으로써 안정되기 시작하였다. 이후로도 미선교지역에 대한 선교는 계속 이루어졌는데 스칸디나비아 지방이나 중부 유럽과 동부 유럽은 아직 기독교의 영향을 받지 않았기 때문에 리투아니아는 14세기까지 이교도 국가로 남아있었고, 스칸디나비아 북부의 사미족은 19세기에 와서 기독교로 개종하기에 이른다.
5.3. 분열
기독교의 분열의 기준을 좀 더 자세히 살펴보자면, 기독교의 공인 이후 삼위일체론을 중심으로 아리우스와 아타나시우스 간의 신학 논쟁으로 아리우스파가, 5세기에는 안티오키아의 네스토리우스와 알렉산드리아의 치릴로 간의 신학 논쟁으로 인해 네스토리우스파와 단성론파의 종파가 정통파에서 갈라져 나왔다. 단성론파는 엄밀히 말하면 합성론파인데, 단성론은 예수에게 신성만이 있다고 보았지만 치릴로는 신성과 인성이 육화해서 하나의 본성으로 합쳐졌다고 보는 것이다.
정통파 교회는 서로마의 멸망 후 중세 초에는 서로 협력하는 관계였으나, 신학적, 정치적, 문화적인 다양한 문제로 인해 로마와 콘스탄티노플, 양대 총대주교구를 중심으로 세력이 나뉘게 되었다. 7세기에 상대적으로 안정을 되찾은 후, 로마와 콘스탄티노플 교구는 자신의 우월성을 입증하려고 했다. 로마 교회는 이전부터 총대주교구들 중 첫 번째 지위를 가지고 있었으나, 서방에서의 교황권 강화를 계기로 삼아 로마 교황이 전체 기독교 교회를 지배한다고 천명했다. 그러나 동로마 황제가 비호하는 콘스탄티노플[100] 에서는 로마 교황이 단지 다섯 총대주교 중 1명이라고 반박하며 자신의 칭호에 전 기독교 세계의 총대주교를 덧붙였다.
신학적으로는 8세기 초 동로마 황제 레오 3세가 성상파괴령을 내리면서 양 교회의 사이가 더욱 벌어졌다. 당시의 교황 그레고리오 3세는 황제의 성상파괴령을 단호히 거부했으며, 동로마 제국에서 한 세기가 넘은 내전 끝에 843년 동방에서 성상이 재건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두 교회의 결합은 요원해 보였다. 정치적으로는 '포티우스 분열' 등의 사건이 발생했으며, 또한 동로마 제국이 내전에 시달리는 동안 로마 교황 레오 3세가 프랑크 왕국의 왕 카롤루스를 서방황제로 등극시킨 것은 두 교회 중심지의 골을 더욱 깊게 파는 결과가 되었다.
그리고 1054년, 양대 교회는 최종적으로 분리되었다. 이 사건을 교회의 대분열, 또는 동서 대분열이라고 한다. 대분열의 주요 쟁점은 필리오케 문제였다. 필리오케 문제란 즉 성령의 이중발현 문제이다. 이는 얼핏 간단해 보이지만 삼위일체의 위격 정립과 직결되는 중요한 문제였다. 초기 니케아-콘스탄티노폴리스 신앙고백에서는 성령이 성부 야훼에게서만 나온다고 고백했다. 그러나 서방교회의 톨레도 대주교구에서는 이렇게 되면 성자의 위격이 성부에 비해 뒤쳐진다고 생각하였고, 성령이 성자 예수에게서도 발현한다고 수정하였다. 동방 교회에서는 이를 두고 신성모독이라고 할 정도로 불쾌해 하였으며, 이전부터 소원했던 사이가 결국 돌이킬 수 없게 되어 1054년 로마 추기경들과 콘스탄티노플 총대주교가 서로를 파문하여 동서의 그리스도인이 분열되었다. 여기에 대해 가톨릭은 정교가 가톨릭으로부터, 정교는 가톨릭에 정교로부타 분열되었다고 인식하기는 하지만, 어떤 형태로든[101] 가톨릭과 정교가 분열 이전의 역사를 공유한다고 인식은 하고 있다.
가톨릭으로 대표되던 서방교회에서는 16세기에 면벌부 파동을 계기로 마르틴 루터의 종교개혁이 일어났다. 사실 이 정도의 '종파분열'은 그때까지도 드물지 않게 있어왔지만 가톨릭을 지지하는 세력의 무력으로 저지된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루터는 강력한 독일 제후들의 군사력을 등에 업고 있었고, 가톨릭 측은 이 신교를 쉽게 제압하지 못했다. 이 분열은 단순한 이단으로 숙청당하지 않고 지금까지 이어지는 대분단이 되었다. 이때 서방교회의 틀 안에서 하나를 이루던 교회는 가톨릭(천주교)과 개신교로 분리된다. 이 분열은 프로테스탄트 종교개혁(reformation)이라고 하여, 11세기의 동서 분열과는 용어에서부터 구분이 되는데, 상대적으로[102] 16세기 쪽의 경우 교의적인 차이가 두드러지기 때문이다.[103]
5.4. 근세 ~ 근대
서방 교회는 중세시대까지 전 유럽권에 강력한 장악력을 보이다 중세 이후 왕권강화로 인해 세력이 약화되기 시작했고 파벌의 분리와 종교개혁 등의 사건을 통해 세력이 분열, 분열에 이은 재이탈로, 사목자들은 사회에서 주도적인 세력을 상실하게 되었다.[104] 세력 약화에 대해서는 크게 두가지 견해로 나뉘는데 한 문화권을 장악하다 관습에만 영향력을 남기게 된 상황을 근거로 쇠락했다라는 평가를 하기도 하며 다른쪽으로는 비록 교회가 주도권을 상실했지만 이후 단일세력으로서의 최고급의 세력을 가지고 있기에 문명의 성장과 세계관 확장에 따른 상대적인 저하라고 평가한다. 기독교는 세력의 유지를 위하여 천여년의 시간에 걸쳐 과학과 세계관 확장에 탄압을 가했다고 여겨지지만 사실 중세와 르네상스 시기 과학과 문화의 발전에 가장 많은 후원을 한 것은 교회였다.[105]
또한 흑사병의 창궐로 유럽 전 인구의 30%가 죽음을 당하면서부터 하느님에 대한 굳건한 믿음이 흔들리기 시작하였고 또 성 베드로 대성당을 건축하기 위한 면벌부 판매를 정당화하는 과정에서 나온 교리 논쟁, 게다가 교황에게 상당량의 자금을 조달하라는 압력을 받은 유럽국가들의 왕과 제후들의 반발, 30년 전쟁 등으로 인해 가톨릭교 정치 세력은 눈에 띄게 쇠퇴한다. 또한 성 이레네오에 의해 정리된 가톨릭교 교리와 세계관이 발전하는 과학기술과 변화하는 시대를 따라잡지 못하다가 결국 계몽주의 시대가 되자 서구 사회의 주도적인 세력의 위치에서는 내려오게 되었다. 결국 가톨릭은 20세기 중반에 들어 제2차 바티칸 공의회를 열어 현대 사회의 변화를 인정하기에 이른다.
동방 교회는 동로마 제국의 멸망 이후 러시아, 불가리아, 세르비아, 조지아, 루마니아, 알바니아 등 각지의 독립 교회를 형성하여, 오늘날까지 이어지는 느슨한 연대 체제를 형성하였다. 동유럽과 그리스, 아나톨리아의 기독교인들은 오스만 제국의 이슬람 지배 아래에서 여러모로 차별당하면서도 끊임없는 믿음을 이어나갔으며, 근대 들어 오스만 제국이 시름시름 앓을 때 그리스 등의 동유럽 국가들이 정교회 신앙과 민족주의를 바탕으로 독립 국가를 세우는데 정신적으로 큰 역할을 했다. 그리고 이런 일련의 분위기 때문에 동유럽~서아시아 기독교인들은 오스만 제국의 무슬림들에 의해 민족주의적인 광기+종교적인 핍박이 더해진 아르메니아 대학살 같은 핍박의 주요 희생자들이 되기도 했다. 한편 러시아 정교회는 동로마 멸망 이후에도 러시아 제국의 주요종교로서 기독교 신앙의 요새라고 불릴 정도로 큰 세력을 가졌고, 러시아의 팽창과 강대한 국력에 힘입어 시베리아와 카자흐스탄 등의 중앙아시아와 유라시아 지역까지 기독교(정교회) 신앙이 널리 퍼지는데 큰 역할을 했다. 그러나 20세기 들어 1917년 이후 공산혁명으로 러시아 제국이 망하고 소비에트 연방 및 동구권 치하에서 혹독한 박해를 받아 위축되었으나 소련 몰락 이후 현대에는 착실히 재건되어 현대 러시아인들에게 중요한 종교로 남아있다.
또한 유럽의 상황과 별개로 기독교는 근세 이후 선교를 통해 유럽을 벗어나 남북아메리카 대륙, 호주,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 동남아시아 같은 세계 각지에 상당히 빠른 속도로 전파되기 시작하였다. 이 과정에서 타 지역의 고유문화나 토착신앙을 파괴하기도 한 흑역사가 있다. 제국주의 시대가 끝난 뒤 유럽의 세력이 전 세계 각 대륙에서 물러간 이후에도 조상격인 유대교에 비해 상대적으로 범민족적이고 포용적인 교리로 인해 도태되지 않았고 오히려 세계 각지의 현지 문화와 융합하거나 적응하여 현재까지 이르고 있다.
5.5. 현대
현재는 서구 사회에서는 특정한 종교로서의 의미도 있지만 서구에선 독실한 신자보다는 전반적으로 자연스럽게 배어있는 생활 배경, 문화적 종교 이미지가 더 강하다. 미국의 경우에는 초기부터 기독교인의 비중이 매우 높았기 때문에 국민들의 사고 기저에 기독교적 영향이 깊게 배어들어 있고 독실한 신자들도 나름 많다. 또 서양에서 세력이 많이 위축되었다고 해도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문화적, 배경적으로 기독교 신자인데다가, 미국같은 경우 기독교가 대선의 주요 논점중 하나로 거론되기도 하고, 아직 유럽에서의 영향력 역시 (유럽내 이슬람권과의 갈등이 주긴 하지만) 상당한 수준임이 사회적으론 드러난다.
또한 현대에 들어서도 의외로 많은 사람들이 아직도 기독교를 유럽이나 미국만의 주요 종교로 취급하거나 '서구에서 탄생한 서구만의 종교'라는 식의 고정관념을 가지고 있는데, 이는 마치 이슬람='아랍인들이나 믿는 종교'라는 인식만큼이나 잘못된 생각이다. 무슬림 중 아랍인보다 비아랍인이 훨씬 많은 것처럼 기독교인 역시 제3세계에 광범위하게 퍼져 있고, 서구의 종교인 만큼이나 아프리카와 남미의 종교, 아시아의 종교이기도 하다.(애초에 시작부터가 비서구인 팔레스타인에서 비롯된 종교이기도 하고...) 거기다 현대에는 서구 일부 지역에서의 기독교 교세는 세속화, 무신론자/비종교인 인구 증가와 출산율 감소 등의 영향으로 갈수록 줄어들고 위축되고 있다. 전통적으로 동유럽 국가는 공산주의의 영향으로 종교세가 다시 약해진 감이 있며 서유럽과 북유럽 국가들의 경우 오랜 경제적 풍요와 자유, 무신론 사상의 성장으로 기독교 교세가 매우 약하다. 특희 독일, 영국, 프랑스, 스위스, 베네룩스, 북유럽, 체코, 슬로바키아, 알바니아, 벨라루스 등지에서 이러한 현상이 심하다.[106] 다만 전통적 사회가 오래 유지된 남유럽 등지에서는 종교세가 매우 강하며 특히 이탈리아와 포르투갈의 경우 종교가 중요하다고 응답한 비율이 71.5%였다. 또한 개신교 국가의 색채가 강한 미국 역시 무신론자에 대한 인식이 매우 좋지 않고 앞에서의 종교의 중요성에 대한 응답이 65% 이상으로 나올 정도로 높다. 물론 지역별, 계층별로 차이가 다소 큰 면은 있어 대도시 지역(주로 대서양 벨트 등)으로 가면 굉장히 다른 모습이 펼쳐지기도 한다.
중국이나 동남아시아 등 아시아대륙과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 중남미, 태평양지역 등 제3세계 국가들의 기독교는 높은 인구증가율과 지속적인 선교의 영향으로 이미 신자 인구수와 교세도 서구 지역을 훨씬 능가할 정도로 커졌으며, 계속해서 성장하고 있는 추세여서, 가까운 미래에는 세계 기독교 인구의 상당수가 비서구 지역에 있을 것이라 한다.[107] 조사 결과에 의하면[108] 2050년에는 29억 2천만명이 되는 세계 기독교 인구 중 무려 74%가 중남미, 아프리카와 아시아 기독교인이 될 것이라고 한다. 특히 기독교가 지배적인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는 40%를 차지하여 중남미와 함께 미래 기독교의 핵심 지역이 될 것으로 보인다. 20세기 초만 해도 대부분을 차지했던 유럽의 비중은 고작 15.6%, 북미까지 합쳐도 25%만을 차지하게 될 것이라고 한다. 사실상 20세기 중반 이후에는 기독교 인구 성장의 대부분이 이러한 비서구권 국가들과 남반구, 제3세계의 기독교 인구 증가 때문이다.
세계적으로도 가톨릭과 개신교는 별로 가까운 사이가 아니었으나 20세기 말부터 교황청 내에 교회합일을 위한 기구가 신설되면서[109] , 유럽루터회와 영국성공회를 비롯한 메이져급 개신교와의 일치운동이 일어나고 있다. 루터회와는 교회에서 구원은 '''"하나님의 은총으로 가능하다"'''라는 합의문을 채택했으며, 성공회와는 캔터베리대교구와의 끊임없는 대화를 시도중이다.[110] 한편 가톨릭과 정교회는 분열로부터 1000년 가까이 지난 현대에 이르러서 양측을 교회 공동체로 인정하고 받아들였다[111] .
현대에 와서 '에큐메니컬 운동'이라는 이름으로 각 교파의 일치와 합일을 이루려는 노력이 진행되고 있다. 이 운동의 대표적인 단체가 세계교회협의회. 로마 가톨릭 교회는 세계교회협의회(World Council of Churches)에 공식적으로 가입하지는 않았지만 많은 부분에서 협력하고 있다.
6. 이단
7. 서양철학과의 관계
성 베드로 다미아노
본래 유대교는 셈족 계통의 사상을 토대로 하고 있었으나 헬레니즘 제국에 의해서 그리스 사상이 유입되었고, 이스라엘 왕국 멸망 이후 지중해 곳곳에 흩어져있던 유대인 공동체가[113] 외부 사상과 끊임없이 교류하면서 그리스 철학을 받아들이게 된다. 기독교는 유대교에서 갈라져나온 이후, 철학의 수용을 더욱 적극적으로 하였고 여기에 결정적인 쐐기를 박은 자가 '아다만티우스'라는[114] 별명을 가진 오리게네스이다. 그는 그리스 철학에 쓰이던 알레고리 개념을 성경 해석에 도입하는 등 그리스 철학 전반을 기독교의 전통에 흡수하여, '신학'이라는 하나의 학문으로 승화시켰다.[115] 이후 교부들은 플라톤 사상, 스토아 사상 등을 적극 수용했고, 훗날의 스콜라 철학자들은 아리스토텔레스 사상을 수용했다.fidem, si poteris, rationemque conjunge
할 수 있는 한, 신앙을 이성과 결합시키십시오
성 보에티우스[112]
이후 근대에 접어들어 계몽주의 시대가 도래하면서, 기독교는 반지성, 반이성으로 해석되어 철학자들에게 다굴을 당하게 된다. 물론 이신론자들처럼 대외적으로는 기독교 간판을 건 철학자들도 있었지만, 어디까지나 간판만 그러하였으니 아무튼 이 시기에 철학과의 관계는 기독교 입장에서 거의 흑역사라 보면 된다.
그러나 현대에 접어들면서, 아이러니하게도 프리드리히 니체가 이성에 대해 '비이성적으로' 집착하는 근대철학을 디스하고 하이데거가 피니쉬 어택을 날리면서[116] 계몽주의 철학이 종언을 맞이했다. 또한 하이데거의 제자이자 20세기 가장 위대한 가톨릭 신학자로 통하는 카를 라너가, 스승인 하이데거의 사상을 새로운 신학의 집사로 부려먹은 이후 현대철학과 지속적인 영향을 주고 받는 중이다. 그리고, 저명한 문학평론가이자 프랑스 아카데미 정회원이기도 한 르네 지라르가 자신의 모방 이론을 이용, 적극적으로 기독교를 변호하면서 다른 학자들에게도 많은 영향을 주고 있다.
여기까지 읽었으면 대강 알 수 있겠지만, 좋든 싫든간에 기독교는 아무리 짧게 잡아도 오리게네스 이후부터는 서양철학과 뗄레야 뗄 수 없는 관계라고 할 수 있다. 불교가 인도 및 중국 철학과의 관계가 밀접하듯, 기독교는 서양 철학과 떼어놓고 볼 수 없다. 서양 철학 역시도 천부인권, 평등 등의 많은 개념을 기독교에서 수용했다.[117] 또한 스콜라 철학 최강의 떡밥 중 하나인 보편논쟁은[118] 오늘날의 유물론, 관념론, 전체주의, 개인주의, 민족주의, 인권 등까지 연결되는 희대의 논쟁이기도 하다.[119] 이러한 면모 때문에 토마스 아퀴나스는 철학은 신학의 시녀다라고 표현하기도 했다.[120] 이 표현이 철학도 입장에서 언짢을 수 있다면, 현대인들은 '철학과 신학은 부부이다'라고 변형해서 읽어도 무방할 것이다.
8. 대한민국
한국 최대의 종교다. 2015년 통계청 조사에 따르면 개신교(약 19.7%), 불교(약 15.5%), 천주교(약 7.9%)가 있다. 기독교를 개신교 천주교로 나누어 수치를 비교해 볼 때 한국에서 가장 많은 사람이 믿는 종교는 개신교이며, 그 다음은 불교, 그 다음이 천주교 순이다. 이 중 기독교인 개신교와 천주교의 수치를 합치면 한국의 기독교 인구는 27.6% 나 되어 명실상부 한국 최대 종교이며, 2위인 불교의 수치보다 훨씬 높다.[121] (인구수로 나타내면 2017년 통계청 기준, 개신교 968만 명, 천주교 389만 명, 도합 1360만 명 정도이다.)
8.1. 역사
한반도에 최초로 전래된 기독교는 신라에 일명 경교라고도 불리는 네스토리우스파 기독교가 전래되었다는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당시는 장보고와 신라방으로 알려져 있듯 황해를 넘나드는 한중 교역이 활발했는데 당나라와 신라의 밀접한 관계를 감안하면 당나라 조정의 지지를 오랫동안 받았단 경교가 한반도까지 넘어올 가능성은 충분히 있기 때문.
그 증거격 유물로 1956년 경상북도 경주시에서 출토된 석제 십자가와 마리아를 닮은 관음상 유물이 출토되기도 했는데,[122] 이것을 경교 유물로 추정하기도 하며 현재 숭실대학교 기독교박물관에서 소장, 전시하고 있다. 이 때문에 기독교의 한국 전래를 훗날 개신교와 가톨릭이 전래된 조선시대가 아니라 1천 년 앞서 통일신라로 끌어올려 소급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그러나 이들은 뚜렷한 전래 기록조차 남지 못했고 기독교 계통으로 추정되는 유물만 일부 남긴 채 고려시대 이전에 소멸한 것으로 추정된다.
시간이 지나 고려 말엽에도 다시 경교가 유입된 적이 있다. 몽골의 고려정벌 이후로 에르케운(也里可溫)[123] 들이 고려로 들어와 경교가 유입되었는데 대표적으로 정동행성의 평장정사 기와르기스(闊里吉思)[124] 가 대표적이다. 하지만 당시엔 에르케운 사제들이 삭발을 하고 목탁을 두드리고 향을 지필 만큼 경교가 상당부분 불교화된 터라, 딱히 불교와 구분이 안되고 되려 불교와 동화되었고. 따라서 고려 사람들을 복음화시키거나 특별한 공동체를 이루기에는 무의미한 수준이었다.[125]
뚜렷하게 역사기록으로 알 수 있는 최초의 한국인 천주교 신자는 임진왜란 때 납치됐던 조선인 피랍자들이 이미 기독교가 전파돼 있던 일본에서 개종한 것이다. 나무위키에 문서가 있는 인물로 오타 쥬리아가 있다.
위의 두 사례는 결국 훗날의 한국 기독교 성립에 영향을 주지 못했기 때문에 조선 후기 서학 전래(17세기) 등을 통해 조선 내에 자생적 천주교 신자들이 생기기 시작하고, 뒤이어 본격적으로 가톨릭 대목구가 설정되고 선교사들이 입국을 시작한 18세기 후반 이후부터를 유의미한 한국 기독교 역사의 시작으로 간주하는 편이다.(교황 그레고리오 16세에 의해 조선대목구가 설치된 것이 1831년) 초기 가톨릭은 제사 금지라는, 당시 조선의 성리학과 크게 충돌하는 교리 때문에 큰 박해를 여러 차례 받았다. 조선의 천주교 박해 문서 참조. 그러나 신자는 차츰 늘어갔고 19세기 후반 열강과 통상수교가 시작된 이후 종교의 자유를 인정받았다.
개신교나 정교회의 경우는 역사가 더 짧아서 19세기 후반 열강과 통상수교가 개시된 뒤에야 본격적인 선교가 시작된다(아펜젤러, 언더우드, 알렌, 메리 스크랜튼 여사 등 네임드 선교사들이 본격적으로 조선에 입국한 시기가 1884년~1886년 이후이고, 셰콥프스키 신부에 의한 러시아 정교회 선교가 시작된 시기는 아관파천을 전후한 1900년경). 유의미한 기독교 전파의 역사는 길게 잡아야 250년 정도 밖에 되지 않는 것으로만 봐도 현대와 비교하면 한국 내 기독교는 짧은 시간 내에 크게 성장했으며, 이를 서구권에서는 눈독들여 바라보고 연구하기까지 한다.
전래 이후의 역사는 개신교/대한민국, 가톨릭/대한민국, 정교회#s-5 개별 문서 참조.
8.2. 명칭의 문제
한국에서는 기독교라는 명칭이 개신교만을 가리키는 명칭으로 오용되는 경우가 많다. 비신자들이 '기독교와 천주교는 다르다'라고 오해하는 사람이 아주 많은 것은 당연하고, 천주교 개신교를 가리지 않고 신자들 중에도 그렇게 잘못 아는 사람이 부지기수.
2번의 명칭 단락에서 언급했듯 '기독교' 라는 단어는 그리스도의 한자 음역인 기리사독(基利斯督)에서 유래한 것으로, 본 문서 제일 위의 틀에서도 보이듯 가톨릭, 개신교, 정교회 등 여러 종파를 아우르는 말이다.
단순히 일반인들의 오해 뿐만 아니라, 군대에서도 아예 공식적인 종교 분류에서 '기독교'와 '천주교'로 구분하고 있다. 이는 대한민국 국군의 주특기를 보면 확인할 수 있다. 군대의 용어 문제를 가볍게 볼 수만도 없는 것이, 군대가 대부분의 한국 남성들을 대상으로하는 재교육의 장이 되기도 한다는 것이다.[126][127][128]
이렇게 된 이유는 한국에선 가톨릭보다 늦게 들어왔는데도 개신교가 기독교적 아이텐티티를 선점해 놓았기 때문. 선교 초기부터 주류 양반계층에게 밉보였던 천주교와 달리, 개신교는 서양식 의술 등을 가져오면서 왕실이나 주류 양반 계층에 인정받았기 때문에 비교적 거부감이 덜한 편이었다. 심지어 어떤 유학자는 개종하면서 개신교를 "위군위민(爲君爲民)의 종교"라고 극찬하기까지 했었다. 즉 오늘날과는 반대로, 구한말엔 가톨릭이 어그로를 먹고 개신교의 이미지가 굉장히 좋았다. 또한 해방 이후 미국의 영향도 컸다.
이렇게 된 이유는 가톨릭이 한국에 상당히 특이하게 전파되었기 때문이다. 조선 실학자들이 청나라에서 실학 책을 들여오는 과정에서 가톨릭 관련 책이 들어왔고, 실학자들이 이걸 연구하는 과정에서 이게 학문이 아니고 종교라는 것을 알게 되어 신앙을 가진 것이 한국 가톨릭의 기원이다. 선교사를 통해 들어온 것이 아닌데다 기득권층이 개혁의 필요성을 느끼던 때가 아니라서 조정에서는 사이비 종교 취급을 했고, 개화기가 올 때까지 여러 번의 박해를 받아야 했다. 또한 여전히 개신교가 적극적으로 길거리에서 포교 활동을 하고 있으며 숫자도 약간 많은 편인 관계로 개신교가 기독교라는 이름을 선점한 상황은 쉽게 개선이 안되고 있다.
8.2.1. 한국 가톨릭의 입장
가톨릭은 이 문제에 대해서 '''공식적으로''' "기독교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모든 종교를 말하며 천주교와 개신교 외 기타 종파를 포함해서 부르는 명칭으로 써야 한다"는 입장을 견지하고 있으며, 정부나 언론 등 공식 기관에서 기독교라는 명칭을 오용하는 것을 수정하기를 지속적으로 요청하고 있다. 때문에 신자들도 현재 한국에서 기독교라는 단어가 오용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는 경우가 꽤 많다. 민감하게 반응하는 사람도 있고.
하지만 기독교라는 명칭이 일반 사회에서는 개신교에게 강하게 선점 당하고 있다는 현실이 쉽게 바뀌고 있진 않아서, 실제 생활이나 교인들 사이에서는 여러가지 타협을 하고 있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이를테면 예수에 대한 믿음을 가지고 있는 종교 자체를 지칭할 때는 '그리스도교'를 사용한다던가, 기독교인 대신에 '크리스천' 혹은 '그리스도인'이라는 단어를 쓴다던가. 가톨릭 계열 단체에서도 개신교를 기독교라 지칭하는 사례가 심심찮게 보이기도 한다.
참고로 교회라는 명칭도 가톨릭의 이론적 교리 상으로는 개신교를 부르는 말이 아니라 가톨릭 조직 + 정교회 조직만을 말하는 것. 교리서나 미사 통상문, 가톨릭 서적을 보면 교회라는 단어는 가톨릭을 말하는 것을 볼 수 있으며, 원칙적으로는 개신교는 교회 자체가 아니다. 이 점은 교회론 항목을 참조하자. 심지어 교리에 대해 보수적인 일부 신자는 개신교를 교회나 개신교, 기독교라고 조차 부르지 않고 가톨릭에서 분열해 나간 교인들이라는 의미의 '열교'라고 부르기도 하며, 20세기 초반까지만에도 이게 가톨릭의 공식 입장이었다. 물론 이건 어디까지나 원칙이랑 이론 상의 이야기고, 현대 가톨릭은 개신교랑 화해하자는 입장인데다가 현실적 회화 상으로는 신자는 물론 신부들도 가톨릭은 성당, 개신교는 교회라고 부르는 경우가 잦다(...).
2010년대 이후에 들어서는 천주교의 영향력이 강해져서 그런지 TV, 신문 등 언론 혹은 정부의 공식적 통계조사에서는 기독교라는 표현이 개신교라는 표현으로 점점 대체되어가는 추세이긴 한데... 아직 한참 멀었다. [129]
8.2.2. 개신교의 입장
개신교 쪽에서는 '기독교'라는 단어가 개신교만을 가리키는 경향을 당연한게 생각하는 편. 사람들은 '기독교'라고 하면 당연히 개신교만을 가리키는 말이라고 생각하는 경우가 아주 많고, 개신교라는 단어는 아예 모르는 사람도 부지기수.
개신교 교파 전체를 아울러 말할 때 아직도 '기독교'나 '한국교회'라는 표현을 좋아하며 연합 단체 대부분은 '기독교'라는 명칭을 앞에 달고 있다. 각 종파의 정식 이름에도 '개신교'라는 단어를 넣는 경우는 거의 없으며, 대부분 '기독교' 또는 '예수교'를 앞에 둔다. 예를 들면 기독교대한감리회, 한국기독교장로회, 대한예수교장로회... 이런 식이다.
거의 모든 개신교 종파는 "천주교는 그릇된 믿음이어서 개혁된 기독교인 개신교가 참된 믿음"이라는 것이 공식적 입장이기 때문에 기독교라는 명칭을 선점해낸 현재 상황을 그닥 양보하고 싶어하지 않아한다. 종파에 따라서 표현하는 수위나 정도가 다를 뿐 개신교 측에서는 천주교가 틀린 믿음이라는 건 모두 같은 입장. 애초에 탄생 자체가 천주교에 대한 반발이었기 때문에. 오히려 개신교 신자들 입장에서는 굳이 가톨릭과 개신교를 구분해야 하는 경우가 아닌 이상 굳이 '기독교'라는 명칭을 쓰지 말아야 할 이유도 없다.
반대로 이러한 입장 상의 이유로 의도적으로 개신교라 언급되는 것 자체를 싫어한다. 해외에서도 Protestant라고 말하는 걸 싫어하는 경우가 있다. Protestant라는 단어 자체가 '가톨릭에 대들어서 떨어져 나간 종파'(Protest가 항의, 시위라는 뜻이다.)라는 뉘앙스가 있다 보니...
그리고 사실 가톨릭은 '천주교'라는 표현을 굉장히 자주 써 왔고,[130] 개신교계에서 기독교라는 표현을 쓰는 빈도가 더 많았기 때문에 이러한 인식이 생긴 것이기 때문에 딱히 기이한 현상이라고 보기는 좀 힘들다. 일단 '기독교'라는 명칭을 더 즐겨 사용한 건 개신교측이기 때문에.
8.3. '하느님'과 '하나님' 논란
한국에는 가톨릭 / 정교회 / 개신교의 각 교파들이 각각 다른 루트로 들어와서 상호간에 이렇다할 교류가 없었기 때문에 쓰는 용어에 약간의 차이가 있다. 현 한국 가톨릭 / 한국정교회 / 대한성공회는 신명(神名)으로 하느님을 쓰고, 대한성공회를 제외한 개신교는 하나님을 사용한다.
본디 한국 가톨릭에서는 지금처럼 하느님이 아닌 천주라는 신명만 사용하였다. 마테오 리치 신부의 천주실의에서 '천주'라는 용어를 처음으로 사용했는데, 동양의 경천신앙과 기독교의 신에 대한 신앙이 본질적으로 같은것이라 생각한 마테오 리치 신부가 천(天)에다가 인격신이라는 의미를 확실하게 하기 위해 주(主)를 붙인 것이다. 나아가 마태오 리치 신부는 상제 역시 본질적으로 같은 존재라 주장하기도 했다. 물론 마태오 리치 신부의 이 해석도 가톨릭 내에서 논란이 많았고, 교황의 칙서로 '천'이라는 신명과 '상제'라는 신명은 금지되고 오직 천주만이 허락되었다.
따라서 천주의 개념도 예수회 선교사들이 외래어를 직역하기 보단 동양적 세계관에 어울릴만한 대체어를 찾은것에 가깝다.[131] 그리하여 한문본으로 유학자에게 들어온 조선에 들어온 초기에 가톨릭 서적에는 하느님, 하나님이라 적지 않고 천주라고 적어놨었다.
'''그리고 개신교는 처음에는 오히려 하느님이라는 신명을 썼다.''' 장로회 목사 존 로스가 최초로 한글 성경인《예수성교 누가복음전서》의 1882년 본에서 하느님이라는 단어를 쓴다. 이 역시 천주라는 단어와 마찬가지로 동아시아의 경천사상이 기독교의 신과 같다고 본 해석에서 유래했지만, 중국을 거쳐 전파된 가톨릭과 달리 한국에 직접 선교하는 특성 상 한국인에게 더 쉬운 이름을 선택한 것. 그러던것이 1887년의 판본에서는 맞춤법을 전체적으로 수정하면서 하나님으로 바뀌게 된다. 1887년 당시에는 아직 서울말을 중심으로 통일된 표준어가 없어서 오히려 현대 표준어와 다르게 된 것.
구체적으로 '하ㄴ .님'은 17세기 편지글에서 '하ㄴ(모음은 아래아)님'으로 처음 나타난다. 이 형태는 북한 평안도 방언으로[132] '하날(모음은 아래아)+-님'의 결합에서 'ㄴ' 앞의 'ㄹ'이 탈락된 결과이다. 물론 이 글에서 '하나(모음은 아래아)님'의 의미는 일반적인 의미의 '하늘에 계신 신'을 가리키는 것이다. 편지글이 아닌 문헌자료에서는 18세기까지 나타나지 않는다. 19세기에는 '하날(모음은 아래아)님'으로부터 '한우님'에 이르기까지 여러 형태가 나타나는데, '하ㄴ님'은 원래의 구성인 '하날(모음은 아래아)+-님'을 의식하여 적은 것이며, '한우님'은 '하느님'의 모음이 전용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하느님'은 그 원래 구성인 '하날(모음은 아래아)님'에서 현재의 '하느님'에 이르기까지 의미상의 큰 변화를 입지는 않았다. 출처: 21세기 세종계획 누리집, 한민족 언어 정보, 국어 어휘의 역사 즉, 흔히 말해지는 '하나님은 1 (하나) + 님이라 유일신이란 뜻이다'라는 주장은 사실이 아니다.
그리고 세월이 흘러 가톨릭이 개신교와 화해하는 방향으로 선회하여 1960년대 공동번역성서에서는 기존에 쓰던 신명인 천주를 포기하고 개신교의 신명을 수용하되, 표준어에 어긋나는 하나님 대신 원 형태가 보다 잘 살려져 있는 하느님을 쓰기로 개신교측(?)과 합의한다. 그러나 공동번역성서 번역에 참여한 문익환 목사의 교파는 상대적으로 개신교에서 교세가 마이너한 한국기독교장로회였고 이들은 한국 개신교 전체를 대변한다 보기 어려우며, 예수교 장로회를 비롯한 대다수의 개신교는 여전히 하나님이란 신명을 고집하고 공동번역성서의 사용률도 저조하다.
다만 대한성공회는 공동번역성서를 사용하기 때문에 개신교 교단임에도 '하느님'이라는 발음을 사용하며, 한국 정교회에서는 아직 독자적 한국번역판이 나온적이 없기에 에큐메니컬 운동의 결실인 공동번역성서에 따라서 '하느님'을 표준 발음으로 한다. 또한 공동번역성서를 내놓은 장본 교단인 한국기독교장로회 역시 공동번역성서를 많이 쓰는 편.[133]
한편 이슬람에서는 기독교의 신=이슬람의 신으로 보므로, 한국 이슬람교에서는 알라의 한국어 번역을 '하나님'이라고 못박아 통일해버렸다. 또한 하나님이란 단어가 1(하나) + 님이라는 민간어원설도 그대로 수용하여 설명하고 있다(...). 이슬람교는 삼위일체론이나 예수의 신성도 부정하는 유일신론을 가지고 있으니 저 민간어원설이 더 구미에 맞은 모양.
결론적으로 언어의 사회성을 고려하여 생각해 본다면 이제 하나님이란 말은 맞춤법에 어긋난 비어(非語)라기 보다는 보편화되어 있는 새 말에 가깝다 보는게 바람직하다. 동시에 하느님과 어원적으로 같으며 같은 의미라는 사실 역시 잊거나 왜곡하는 것 역시 바람직하지 않다. 국립국어원의 표준대사전에서는 '하느님을 개신교에서 이르는 말'로 되어 있다.
[134]
8.4. 정치적 성향
처음 조선에 기독교가 전파될 때야 당연히 천주교든 개신교든 진보를 넘어 급진적인 사상이었겠지만 개화가 이루어지고 대한민국이 현대로 접어들면서 대체로 개신교는 보수적이고 천주교는 진보적인 정치적 성향을 보여왔다.[135]
2008년 대한민국의 광우병 촛불집회에서 가톨릭 사제 모임인 정의구현사제단이 시국미사를 집전했으나, 대체로 보수적인 신자가 주류를 이루는 가톨릭에서는 가시적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그 뒤, 당시 서울대교구장이던 정진석 니콜라오 추기경이 정의구현사제단의 수장인 전종훈 시몬 신부에게 안식년을 명령함으로써 부정적인 입장을 소극적으로 드러냈다. 이는 성직자의 사회참여에 대한 우려의 여지를 반영한 것으로 보이는데, 실제 가톨릭 신자들 중에서도 '그럼 용산미사에 참석하지 않으면 저는 신부님의 사목을 받는 신자가 아닙니까'와 같은 의문이 잇따랐고 신자들 간 분쟁의 시발점이 되었기 때문이다. 전체적으로는 가톨릭 역시 과거에 비해 점차 보수화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기사 참조. 다만 종교의 보수화를 '부자를 위한 종교'라고 해석하는 등 편파적인 면이 있으므로 걸러서 읽는게 좋다. 허나, 전반적으로 가톨릭이 보수화 되는 것은 사실은 사실로, 실은 2000년대 초반부터 시작하여 논쟁이 비롯된 것으로 볼 수 있다. 사실 가톨릭이 중산층의 종교로 변모하면서 빈자 등의 사회적 약자들을 위한 사회구원보다는 개인구원에 치중하게 되는 경향으로 흘러가고 있다는 것을 가톨릭 내 정치적 진보파가 비판, 염려하고 있다는 식으로 이해하는 것이 정확하다. 가톨릭의 경우는 그 내부에 진보와 보수가 섞여 있는 경우가 있으며, 때문에 사실상 종교단체 자체가 진보냐 보수냐를 따지기는 힘이 들다. 단지 추기경 및 지역교단 주류세력이 어떤 계열인지를 따져서 보수냐 진보냐를 따지는 경우가 많다.
개신교는 한국의 개신교계의 역사적 특성상 교파가 굉장히 많고, 교파마다 정치적 시각이 엇갈리는 상황이다. 또 각 개별교회가 별도의 자립성을 가지기 때문에 사실상 개신교 전체를 망라하는 정치적 입장이 있을 수도 없다. 그러나 교회에 영향을 큰 영향을 끼치는 대형 교회와 주요 교파들은 보수적인 성격을 보이는 경우가 많다. 이 경우 사실상 보수라고 봐야 하는 경우. 이유인즉 그 대형교회 주요 교파들의 신자 수 비중은 대부분을 넘어서게 된다.[136]
그러나 단순히 주류 교단의 정치적 성향이 보수이며, 대형교회 목사들이 보수적인 성향이라고 해서 주류 기독교 신자들이 보수적인 성향이라고 생각하는건 매우 곤란하다. 일단 기독교 우파항목을 참조하면 알겠지만, 한국에서는 개인의 종교적인 스탠스가 정치적 성향으로 연결되는 경향이 거의 없다시피 하며, 한국의 개신교 신자들 역시 한국 평균 정치 성향과 딱히 구별되는 모습을 보이진 않는다. 또한 신학적으로 보수=정치적으로도 보수 라고 생각하는 것 역시 곤란하다. 아무리 보수 교단에 속한 목사라도 개인의 정치적 성향은 진보적일 수 있으며, 그 반대 경우도 얼마든지 가능하다.[137] 또, 목회자의 정치적 성향과 교인 개개인의 정치적 성향이 반드시 같으란 법도 없다. 사실 이건 미국이나 다른 개신교권 국가에서도 마찬가지인 소리[138] . 예를 들어 조지 워커 부시 전 미국 대통령은 신학적으로 '메인라인'에 속하는 진보 교단인 감리회 신자이나 본인의 정치적 성향은 보수적이다.
요컨대, 한국에서 개신교 주류 교단이나 대형 교회 목사들의 정치적 성향이 대체로 보수적인 편인것은 맞으나, 이런 교단에 속한 교회를 다니는 신자들의 개개인의 정치적 성향은 목회자나 교단의 정치적 성향과는 거의 무관하다시피 하다.
그런데, 한국의 개신교가 기독교 종파중 교세가 상대적으로 더 크고, '기독교'라는 명칭을 가톨릭보다 자주 사용하며, 가톨릭에서는 '천주교'라는 명칭을 혼용하는 관계로, 가톨릭은 다른 종파인지 알면서도 기독교에는 포함되는지 헷갈리게 한다. 전세계에선 각 지역의 주류 종파를 기독교로 알아주며, 대표적으로 아랍권에선 기독교 하면 정교회를 더 먼저 생각한다. 단성론 기독교가 이슬람에 영향을 크게 준 점과 같이 오스만 제국에선 정교회와 공존하였고 아랍 토속 기독교인 시리아 정교회같이 정교회에 더 친근하게 가깝기 때문. 그래서 아랍에서 대대로 남은 기독교라면 거의 정교회다. 더불어 아랍권의 무슬림들에겐 가톨릭은 옛날 십자군 전쟁이나 제국주의 시절 침략자의 이미지로, 개신교는 미국과 이스라엘의 한패인 종교로 여기기에 그나마 정교회가 가장 낫다는 인식이 자리잡고 있다.
반면 미국의 경우는 이 대립이 상당히 애매한 편. 남부 침례회측은 대부분 보수이며, 바이블벨트 지역의 교단들은 보수이다. 반면 동북부 지역의 경우는 진보(리버럴)교단이 많은 것이 사실. 이 경우 진보교단은 인디언과 원주민 박해에 대해 사과를 하고, 팔레스타인 사태에 대해 이스라엘을 깐다. 즉, 보수교단과는 정 반대이며, 이쪽에서는 아예 교회에서 성교육을 하자고 주장하는 예도 있다. 반면 그 보수교단은 교진추를 보는 듯한 갑갑함을 비롯하여 정치적으로도 팍스 아메리카나를 주장하고, 이스라엘을 지원하는 등의 형태로 여러모로 정반대 성향을 띄고 있다.
8.5. 기복신앙
대체로 한국의 개신교에서는, 믿는 사람은 구원받아 천국에 갈 뿐 아니라 현실에서도 하는 일이 성공하고 하나님으로부터 복을 받을 거라는 기복신앙의 측면이 다른 나라에 비해 엄청나게 강한 편이다.
물론 다른 종교와 마찬가지로 하나님 믿는다해서 잘 사는 건 아니고 못 사는 것도 아니다. '언제나 주님과 함께 있으니 어려워도 행복, 잘 살아도 행복이다!' 라고 생각하는게 보통 바람직한 기독교인의 마인드. 당장 성경을 펼쳐놓고 욥기만 읽어도, '신앙=세속적인 부'라는 식은 절대로 성립하지 않는다. 예레미야서에는 오히려 하나님 말씀대로 살아 고통받는 선지자의 고뇌를 볼수있다[139]
사실 성경은 기독교를 믿음으로써 오는 핍박을 비중있게 다루고 있다.[140] 개신교 내부에서도 꽤나 다방면에서 이러한 것을 비판하는 소리가 높아지고 있는데, 탈성장주의를 외치는 교단이나 목사들의 숫자는 결코 적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워낙에 기복적인 면을 강조하는 교회들이 초대형 교회들이라 이렇다 할 성과는 내지 못하고 있다.
(어디까지나 신학적인 견해로서의) 자유주의, 보수주의를 넘어 한국의 정식 신학교에서 저런 기복적인 주장을 지지하는 곳은 손에 꼽을 정도이다.
다만 상기되었다시피, 구약에서는 기복적인 면모가 강하기도 하고 외국에서도 일반 평신도들은 기복신앙적인 면을 자주 보인다는 점은 기억하자. 기복신앙을 이단으로 보는 것은 교리를 깊게 파고들어 엄밀히 따지는 경우라는 것. 게다가 엄밀히 말해 주님께 무엇인가를 요구하고 바라고 요청하는 행위 자체는 아무 문제가 없다. 주님은 우리의 '아버지' 이지 옆집 '아저씨' 가 아니기 때문이다. 다만 우리나라의 경우는, 일반 신자가 아니라 주류 목사나 교단이 대놓고 해대니 문제가 되는 것이다. 그것도 잘 나간다는 대형교회 지도자들이.
기복신앙은 사실 기독교 뿐 아니라 우리 나라 종교들이 가지고 있는 공통적인 특성이다. 불교만 봐도 세계적으로 기복적 특색이 강한 것이 우리 나라 불교이다. 이러한 기복신앙이 부패를 조장하긴 하지만 오히려 종교전쟁 같은 극단적인 대형사고는 줄어든다는 견해도 있다. 기복신앙 항목을 참고.
천주교의 경우에는 기복신앙을 교리적으로 잘못된 것으로 본다. 기복신앙은 "내가 하느님을 섬기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이 나를 위해 봉사하도록 요구하는 것"이 되기 때문이다. #출처.
8.6. 자원봉사
국내 자선-봉사 단체의 상당수가 기독교 계열로 국내 자선-봉사 활동에서 큰 역할을 차지하고 있다.
기독교 신자들은 봉사를 하며 선교를 함께 하는 경우가 많다. 일부에서는 봉사의 의도가 순수성이 없다며 비난한다. 하지만 세금을 내거나 기부를 하는 등의 행위는 뭐라 하는 경우가 적은 편이다. 그러나 이에 대해서도 비판이 없는 것은 아니다. 타인의 종교적 믿음에 어찌 보면 반 강제적일 수도 있는 영향력을 행사하기 위한[141] 자원봉사는 그 행위의 목적 자체가 폭력성을 띠고 있다는 지적도 있다.[142] 심지어 기독교의 봉사 활동이 신도들의 돈을 빼앗아 하는 것이라고 비난하기도 하는데 이는 신도들의 노력과 재능과 시간을 교회를 위해서 기부할 것을 강제하기 때문이다.[143] 개신교들은 돈을 내는 이유가 이웃을 돕기위한 기독교의 가르침을 실천하려는 것인데 일부 한국의 교회에서는 이 돈을 이웃이 아닌 교회"만"을 돕기 위해서 사용하는 것이 이러한 비난을 더욱도 강하게 하는제 일조하고 있다.
기독교의 자원봉사 참여율은 22% 정도로 적지 않다. 문제는 이러한 소위 '자원봉사'가 전직 모 대통령의 경우와 같이 "본인이 다니는 교회의 주차장 계도..."와 같이 실로 흠좀무 한 부분까지 모두 '자원봉사'로 친다는것. 실제로 만인을위한 자원봉사의 비율은 상당히 낮다고한다. 비종교적인 봉사 단체와 비교할 경우 세금 혜택을 오히려 더 적게 받는다고 할 수 있는 편이며 (위쪽에 서술한바와 같이 본인이 다니는 교회자체의 이익을 위한 활동도 '자원봉사'라고 규정되는 바가 많아서이다), 비종교적 봉사 단체에 직간접적으로 스폰싱을 하는 교회와 기독교 단체 또한 있다.. 이 항목을 보는 위키러들은 봉사활동의 실천이 이루어져 사회에 기여하는 바를 생각하자. 봉사 활동은 사람들을 위한 일이다.
8.7. 교민사회에서의 역할
외국(특히 미국)에서는 한국에서의 재외국민이나, 유학생 등이 단합하고 모이게 하는 커뮤니티 역할도 한다. 그 때문에 신자가 아닌 사람도 외국에 나가서는 한인교회나 한인 성당에 나가는 경우가 매우 흔하다.
8.8. 교파의 분화와 이단
세계적으로는 가톨릭이 절대적 강세지만, 한국에서는 개신교의 영향력이 큰 만큼 한국에서 만나는 기독교는 높은 확률로 개신교에 연관된 경우가 많다.[144]
문제는 다수인 개신교 교파 중에 이단이나 사이비 종교로 여겨지는 교파가 많고, 이단여부는 차치하더라도 기타 민폐가 개신교 그룹에서 많이 발생하며, 한국에선 개신교를 기독교라 말하는 게 보통이라 그 민폐를 접하는 일반인들에겐 당최 그들이 '''어느 교파인지 알기 힘들기에''' 기독교를 싸잡아 비판한다는 것이다.
특히 이단들이 신자를 모으기 위해서 간판에다가 '대한예수교''장로회'''라고 적어 놓는 경우가 많아서, 비종교인의 입장에선 작정하고 조사하지 않는 이상 이단 여부를 알기가 힘들다. 심지어 그 교회 다니는 신자들도 알기 힘들다.
이렇게 많은 갈래로 분화되며 '어디까지가 구원이 있는 교파고 어디부터가 이단인가'에 대해서는 누구도 확답을 내리지 않고 있다. 심지어는 목사의 머릿수만큼 교파가 있다고 하기도 한다. 과거에 이단으로 규정되었다가 현재는 주류처럼 인정받고 자리잡은 교파도 있으며, 유대교나 불교, 이슬람같은 타종교까지도 인정[145] 해주는 곳이 있는가 하면,[146] 그렇지 않은 곳이 아직은 훨씬 많다. 또한 같은 기독교 내에서조차 타 교파에 대한 입장은 다양하게 나뉘는 편이다.
사실 지금은 비교적 원만한 사이인 가톨릭, 정교회, 주류 개신교만 하더라도 역사적으로는 서로 '''너 파문''', '''너 이단'''을 외치던 사이였다. 하지만 현재에 원만한 관계를 가지고 있다고 해서 서로의 교리를 모두 인정하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도 명심하자. 물론 이것은 비신자 입장에서는 오해하기 쉬우나 기독교인 사이에 이단이든 사이비든 자기 입장에선 '''틀린''' 것이다.[147] 다만 대부분의 이단들이 교리나 각종 추태를 부리고 있는 것을 볼 때, 과연 아니 땐 굴뚝에 연기가 날리가 없다.
이 본문을 보면 알겠지만 기독교도 이슬람만큼이나 이단에 상당히 반감을 가지는 편이다. 교리상으로 생각해보면 이단들은 지옥행 초고속열차표를 끊어주는 셈이니 당연히 배척의 대상일 수 밖에 없다. 물론 현재 와서는 기독교는 그러한 공격성의 정도가 많이 낮아졌다. 헌법으로 종교의 자유를 보장하는 국가가 많아진 현대에 와서 마음에 안든다고 옛날처럼 냅다 물리적으로 적대시 할 수 없기도 하고... 다만 여전히 멀리하고 경계하는 태도는 버리지 않고 있으며, 이는 어찌보면 당연하다. 당장 성경에만 봐도 거짓 예언자나 이단들을 경계하라는 교리가 아주 많다. 누가 참이고 거짓인지 분간이 힘들 정도로 분열된건 함정이지만.
하지만 일반인이 기독교 분파를 구별하지 못한다고 비난하는 것은 옳지 않다. 일반인 입장에선 그저 똑같은 신을 믿는 사람들로 보이고 그걸 구별하기위해서 딱히 노력해야할 이유가 없다.
9. 비판
상세한 내용은 개독교 문서를 참조.
9.1. 성차별 문제
지금은 여자도 장로가 될 수 있도록 교리법안이 수정되었으나 불과 2005년까지만 해도 여자는 장로가 되는 것이 절대 불가능하고 권사까지밖에 올라갈 수가 없었다.[148] 또한 지금도 대부분의 여자 교인들은 권사까지만 올라가는 것이 일반적이고 장로나 목사는 거의 보기 드물다. 간혹 보이는 여자 목사들 또한 찬양목사로 불리는 '집회 인도자'의 역할이 보통이다.
더 심각한 것은 일반적인 여성 개신교도들이 대부분 이러한 자신들의 대우에 자연스럽게 순응한다는 것이다. 애초에 성경 구절 자체가 현대 사회에 그대로 적용할 경우 얄짤없이 성차별 문제를 일으킬 수 있는데, 근본주의적 목사들이 그걸 고려하고 성경 구절을 놓고 설교할 리가 없다.
이러다 보니 성경을 문자 그대로 해석하면서 그리스도-교회, 남성-여성을 머리-지체(몸)에 비유하며 '질서' 가 있어야 할 것을 강조하는 이들에 의해(신약의 바울/바오로 서간 참조) 여성 개신교도 스스로가 그러한 교회 분위기에 자연스럽게 순응하는 경향을 보이게 되었다.
여담으로, 이러한 근본주의 계통의 사람들은 최근 영어 역본에서 정치적 올바름이 적용되는 것을 매우 부정적으로 보는 경향이 있다. 예를 들어, 일반적인 한 사람을 가리킬때, a man 대신에 a person으로 바꾸고, 그 대명사를 his 대신에 his or her 또는 their라는 식으로 바꾸는 식. 따라서 이들은 정치적 올바름이 적용된 NRSV, CEB, TNIV, 2011년판 NIV 성경 등을 거부하고, 정치적 올바름이 적용되지 않은 KJV, NASB, NKJV, ESV, 1984년판 NIV 성경 등을 찾는다.
가톨릭이나 정교회쪽은 더 심각한 문제가 있는데, 그나마 찾아보면 여성 목사가 있는 개신교 쪽과 달리 이쪽은 아예 교리상 여자는 사제가 될 수 없다. 오히려 이쪽은 사도전승과 영성체라는 핵심 교리와 연관 되어있기 때문에 단순히 쇄신을 목적으로 수정할 수는 없는 경향이 있다. 쉽게 표현하면 12사도중 한 명이 사실은 여성이었다(...) 같은 충격적인 사실이 확인되어야 바꿀 수 있는 상황이다.
9.2. 예수팔이
기독교는 공통적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영접하면 구원을 얻는다고 하지만 여기서 발생하는 논란이 존재한다. 바로, 예수를 열심히 믿는데 행실은 영 좋지 않은 사람은 천국에 가고 예수가 누군지 모르는데 행실은 훌륭한 사람은 지옥에 떨어진다는 이상한 논리가 발생하기 때문이다. 실제로도, 에어장이 천국에 갔는지 지옥에 갔는지 기독교 신자들에게 물어보면 답변을 못하는 사람들이 많다.
당장 임진왜란에 저런 부류가 둘 다 나오는데 이순신은 애초에 조선에 기독교가 널리 전파되지 않았던 시절인지라 예수가 누군지 모르다가 죽었지만 그의 인품은 공과 사의 구별이 극에 달하고 원리원칙을 고집하며 부하들을 존중해서 부하들에게 작전에 대한 의견을 적극적으로 논하게 하는 등 언청나게 훌륭한 인물인 반면 고니시 유키나가는 비록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명령이라고는 하나, 조선에 침략해서 죄 없는 정발, 송상현, 윤흥신 등의 지방관과 그 휘하의 병력 및 백성들을 학살했다.그런데 단지 예수의 이름을 부르짖었느냐의 여부만 갖고 판단하면 저렇게 훌륭한 이순신은 지옥에 떨어진 거고 조선 사람들을 학살하 고니시 유키나가는 천국에 갔다는 말이 된다.
진짜 극단적인 사례가 현대사에 하나 있는데 그가 바로 '''차지철'''이다. 오죽했으면 디시위키에 조차 예수님을 믿는 마귀사탄이라는 표현까지 나올 정도로, 독실한 개신교 신도지만 행실은 개차반으로 박정희의 간신배였다. 부마항쟁이 일어나자 차지철은 부산과 마산을 탱크로 밀어버리자고 했는데 이 때문에 김재규와 논쟁을 벌이기도 했다.
물론, 이에 대한 해답은 성경에서 관련 구절이 나오므로 문제는 없다.
'''"나더러 주님, 주님 하고 부른다고 다 하늘나라에 들어 가는 것이 아니다.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을 실천하는 사람이라야 들어 간다. (마태오 복음서 7장 21절)"'''
10. 각종 오해와 통념들
- 문자적으로 예수만 믿으면 어떤 잘못된 생각이나 삶을 살았건간에 천국에 갈 수 있다.
- 본 문서의 교리 항목에서도 설명하고 있듯이, 기본적으로 기독교의 가르침에서 예수를 그리스도로 믿기만 한다고 본인이 무슨 짓을 하건간에 구원받을 수 있다고 보는 것은 기독교 교리상으로도 매우 큰 잘못 중 하나다. 이런 잘못된 인식은 예수와 기독교의 가르침을 진지하게 받아들인다기보다 오히려 자기 삶에 있어서 예수를 죄책감을 면피하려는 도구 내지는 수단으로 삼는 그릇된 생각에서 나온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진정 예수를 믿는다고 말하는 사람은 그 교리와 가르침을 받아들이려는 노력, 그리고 자신의 회개에 필요한 삶의 태도변화, 신앙에 뒤따르는 여러가지 고난이나 어려움(이를 그리스도를 뒤따라 십자가를 진다는 비유적 표현을 쓰기도 한다) 등을 반드시 따르겠다는 각오, 실천 등이 뒷받침되어야만 제대로 예수를 믿는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 기독교는 개신교만을 말하는 단어이다.
- 전혀 그렇지 않으나, 많은 사람들이 오해하고 있다. 기독교는 그리스도교를 한자로 바꾼것으로 음차하면 기리사독교(基利斯督敎)이고 이 기리사독교를 줄여 기독교(基督敎)가 된 것이다. 이상하게 이것이 미국과 한국에서만 와전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잘 안 고쳐지는 이유는 개신교 측에서는 자기들을 기독교라고 부르는데 천주교는 천주교라고 자칭하는 것이 크며 군대에서도 개신교를 기독교라고 부르며 각인시키는 것도 크게 작용한다. 한국에서 군대는 거의 모든 남성들에게 재교육의 장이 되기 때문이다. 기독교에는 꽤 많은 갈래들이 있다. 기독교는 크게 가톨릭, 정교회, 개신교 등으로 갈라져있으며, 개신교 안에 또 수많은 교파들이 존재한다.
- 기독교는 중세시대에 유럽이 쇠퇴하게 된 원인이다.
- 일단 기독교가 중세 이전 로마제국 문명을 쇠퇴시킨 원인이라는 주장부터가 상당히 억지인 면이 있으며 주류 역사학계에서 부정되고 있다. 무엇보다 중세가 진짜 암흑기였다는 인식이나 표현 자체가 부정되고 있는 추세이다. 자세한 것은 중세 항목 참조.
- 기독교는 현대사회에서 가장 강력한 기득권을 가지고 있는 종교이며, 지금 이 순간에도 수많은 선량한 타 종교들을 탄압하고 괴롭히고 있다.
- 국내나 특정국가들의 기독교인들이 행하는 몇몇 깽판을 가지고 세계적인 수준에까지 일반화하는 대표적 오류이다. 사실 많은 사람들이 의외로 잘 모르는(심지어 몇몇 사람들은 의도적으로 무시하려고 하는 사실)은, 현대사회에서 기독교가 사회 주류 종교로 자리잡은 문화권이나 국가들의 상당수는 타 종교권이 주가 된 문화권에 비해 상대적으로 타종교의 신앙의 자유나 전반적인 종교의 자유 수준이 높다는 것이다. 이는 세속화 정도가 심한 서구권이든 그렇지 않은 중남미나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든 전반적인 추세는 비슷하다. 종교의 자유 항목의 종교자유 지도등을 참고해도 종교의 자유가 '그나마' 괜찮은 수준인 지역의 상당수는 기독교 문화권 국가들이 차지하고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또한 종교 박해에 대해서 팩트를 따진다면, 전세계적으로 볼 때 가장 심각한 수준으로 박해를 당하고 있는 종교는 기독교다. 한 예로 영국 의회의 조사 결과, 지금 이 순간에도 세계적으로 매 11분마다 1명의 기독교인이 비기독교인에 의한 (대부분이 무슬림의 기독교 탄압) 종교박해로 인해 목숨을 잃고 있다고 고발하기도 했다. # 이와 관련하여 기독교공포증, 반기독교 항목도 함께 참고.
- 성경은 전부 엄숙하고 경건하며 지루한 내용이며, 말투가 딱딱하다.
- 이러한 분위기를 내는 것은 아마도 개신교의 개역한글판, 개역개정판 특유의 번역상의 문제 때문일 수 있다. 공동번역성서, 새번역성경, 현대인의 성경, 쉬운성경 등과 같이 현대인을 위한 역본들이 지금도 활발히 출판되고 있으므로 이쪽을 보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
- 내용적인 측면에서는 엄숙한 것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것도 있다. 일례로 욥기는 해당 항목에도 나오지만 등장인물들이 오늘날의 키보드 워리어(…)들이나 할 법한 키배를 하는 모습이 적나라하게 그려진다. 마찬가지로 예수의 성전 정화에도 거침없는 표현들이 담긴 만만치 않은 설전들도 나온다. 또 다른 예로, 창세기에는 질외사정을 했다가 천벌받아서 죽은(…) "오난" 이라는 사람의 이야기도 나온다. 이름이 낯익다고 생각된다면 빙고. 자위행위를 의미하는 단어 "오나니" 가 여기서 왔다는 말이 있다. 무엇보다 신의 말씀을 꼭 진지하게만 전해야 하는가?
- 성경의 예언자들은 전부 미래를 예측하고 맞출 수 있다고 선전하고 다닌 사람들이었다. 짧게 말해, 이스라엘 점쟁이다..
- 오늘날 "예언" 이라고 불리는 활동은 그 의미가 과거보다 축소되었다. 성경에서 흔히 이야기되는 예언자들은 미래에 대한 이야기까지 포함해서 전반적으로 "야훼[149] 가 하고 싶은 말을 받아서 사람들에게 대신 외쳐 주는 사람" 에 더 가까웠다. 예언자 문서에도 나오지만 심지어 여호와조차 종종 세태를 비판하고 타락한 이스라엘 민족을 고발하는 예언을 시키는 경우가 많았다. 따지고 보면 비단 기독교 전통뿐만 아니라 수많은 제3세계의 샤먼이나 주술사들 역시 미래에 대한 이야기를 하기보다는 신의 의중을 이야기하는 경우가 더 많았다. 물론 신의 초월성 때문에 신이 앞으로 이렇게 할 것이다! 의 이야기가 꽤 많이 나왔을 뿐.
- 적그리스도라는 단어는 요한묵시록/요한계시록에 나온다.
- 도리어 그쪽에는 단 한 단어도 나오지 않으며, 요한의 첫째 편지/요한1서와 요한의 둘째 편지/요한2서에만 나온다. 다만 적그리스도를 상징하는 존재가 요한묵시록에 나오는 것은 사실이다.
- 요한묵시록/요한계시록은 세계의 종말을 예고하며 사람들을 겁주고 두려움에 떨게 해서 교회에 나오게 하려는 책이다.
- 요한묵시록/요한계시록은 독자를 겁주려는 책이 아니라, 박해받으며 고난받고 있는 "사회적 약자" 였던 각지의 기독교도들에게 최후의 승리와 영광을 약속하며 위로하는 희망적 메시지를 전달하는 책이다.
- 예수는 긴 머리와 짧은 수염을 가잔 잘생긴 백인 청년이었으며 호리호리한 체형에 흰 피부를 갖고 있었다.
- 일단, 당시 팔레스타인 지역의 유대인 풍속은 남자가 장발을 하지 않았다. 당연히 당시 풍속에 따라 단발이었을 것이 확실하다. 그리고 현대의 유대인 중에서 백인 계통이 주류가 된 것은 수천년간 이방 지역에서 혼혈을 겪을 수밖에 없었던 특수한 상황때문에 더 이상 유대인의 분류가 혈통에 있지 않기 때문이다. 당연히 당시 유대인들은 같은 셈족 계통인 현대 팔레스타인과 레바논 계통 원주민들과 외모가 유사했다. 예수 역시 거기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 외모를 하고 있었을 것이 확실하다.
- 오늘날 알려진 미청년 이미지의 예수는 유럽권 화가들이 자기 문화권의 신자들에게 익숙한 유럽인처럼 생긴 예수의 초상화를 그렸기 때문이다. 미켈란젤로만 해도 시스티나 성당 벽화에서 묘사되는 예수의 모습을 마치 그리스 로마 신화의 아폴론과 유사하게 그려놨다[150] . 마찬가지로 국내에도 조선시대를 배경으로 한 성경 삽화들이 꽤 있으며, 아프리카 지역의 신자들은 예수를 흔한 흑인들처럼 묘사하는 경우가 많다. 그리고 체자레 보르자의 모습에서 따왔다는 주장도 있는데 이건 확실한 오류. 그 전부터 예수는 지금처럼 묘사되었다[151] .
- 당장 성경의 《이사야》 53장에서부터 예수의 모습을 묘사하면서 "하찮아 보이고, 무기력해 보이며, 흠모할 만한 아무런 매력이 없다" 고 표현하는 대목이 있다. 그리고 사실 이 대목은 구약과 신약을 연결하는 엄청나게 중요한 신학적 가교의 역할을 담당한다.
- 이와 관련해서는 예수의 성전 정화 항목도 함께 참고.
- 예수의 옆에서 회개한 강도는 오른편에 매달렸다.
- 훗날 성 디스마(St. Dismas)라고 알려진 이 사람이 과연 오른편에 매달렸는지는 어디에도 확실한 근거가 없다. 이에 대해서 ‘오른쪽을 긍정적으로, 왼쪽을 부정적으로’ 취급하는 일반적인 인식 때문이었을 것이라는 설이 있다.
- 아브라함계 종교는 모두 진화론을 부정한다.
- 가톨릭은 진화론이 창세기와, 더 나아가서 가톨릭의 교리와도 모순되지 않는다고 보며, 진화론에 반대하지 않는다. 자세한 내용은 진화론과 요한 바오로 2세 항목을 참조. 오히려 진화론에 있어 가장 적극적인 입장을 표명하는 쪽이 가톨릭이고, 개신교의 경우도 성공회나 여타 진보-중도 성향의 교단들처럼 진화론에 반대하지 않는 종파들이 존재한다. 이를테면 미국에서는 바이오로고스와 같은 웹 페이지를 통해 점차적으로 유신론적 진화론의 입장을 갖춘 개신교인들이 나타나는 추세이다. 단지 개신교의 경우 수많은 종파들의 집합이고 그렇기에 통일된 의견이라는게 있을 수 없을 뿐이다. 다만 한국의 주류 교단들은 진화론에 대하여 회의적인 게 현실이다.
- 기독교 계통은 인류의 역사가 6000년이라고 생각한다.
- 믿음있는 기독교인이라면 창조설을 믿고 타 종교를 배척하고 지구가 6000년이라고 믿으며, 동성애자를 싫어 해야 한다고 말한다. 아니면 믿음이 없는 것이다.
- 흔히 반기독교측에서 많이 써먹는 소리인데 자신들이 공격할 때 상대가 유신론적 진화론자이거나 행실이 훌륭한 기독교인인 경우 이런 궤변으로 공격하기도 한다. 결론부터 말하면 이런 주장은 (기독교를 싫어하는) 자신들이 공격하기 좋은 기독교인들의 모습을 만들어 내기 위해서 하는 소리이거나 정말 종교에 무지해서 하는 소리다. 위의 항목에서도 서술 했듯이 진화론 문제는 가톨릭은 이미 공인한 상태이고 개신교측에서도 보수측을 제외한 경우에서는 받아들여지고 있고 한국의 개신교가 신학적으로 워낙 보수적인 종파가 많아서 그렇지, 전체적으로 보면 지구가 6000년이라는 소리는 오히려 보수적인 기독교인들도 잘 안 믿는다. 기독교인들도 다 아프면 병원가서 치료받고 이를 합당한 처사로 본다. 많은 기독교인이나 기독교 재단에서도 의료/병원사업에 노력을 쏟는 경우가 많다. 애초에 기독교를 떠나 정상적인 종교이라면 어딜 가던지 아프면 병원가서 치료받고 기도도 같이 받으라고 하지 기도만 하라고는 하지 않는다. 성경에서도 병 치료와 기도는 별개라고 말하고 있음으로 의학적 치료를 배척하는 태도는 믿음 있는 행동이 아니다. 타 종교와 동성애자들과의 관계에서는, 그들의 타종교적 신념이나 동성애 행실 등을 교리적으로 용납할 수 없는 것이 주류 기독교 종파들의 보편적 믿음임은 확실하지만, 이건 신앙신념 및 사상/종교의 자유 안에 드는 범위이고, 타종교인이나 성소수자 등에 대한 물리적인 폭력행사같은 배척은 기독교적이지 못한 태도로 광범위하게 받아들여진다. '죄는 미워하되 사람은 미워하지 말라'는 말처럼 동성애는 배척하지만 동성애자 개개인에 대해서는 인간적인 배려는 잃지 말자는 주장의 기독교 교파와 신자들도 많다.
- 서양인들이 문어 등의 두족류를 안먹는 이유는, 기독교의 교리적 이유 때문이다.
- 레위기에 두족류를 먹지 말라고 되어있는건 사실이나, 레위기의 음식 관련 규정은 현대 기독교 신자들에게 문자 그대로의 율법으로 통용되지 않는다. 이는 정말 극단적으로 구약의 율법을 중시하는 일부 종파를 제외하면, 대부분의 기독교 종파들의 공통된 사항이다. 대부분의 주류 종파의 경우 예수 그리스도에 의해 구약의 음식 관련 규정이 폐지되었다고 본다. 레위기 때문에 두족류를 먹어서 안된다면, 레위기에 똑같이 금지되어있는 돼지고기도 먹어선 안 된다(...) 서양인들이 두족류를 안 먹는 건 교리적 이유 때문이 아니라, 그냥 문화적으로 징그럽고 혐오스럽다고 여겨서 그런거다.[152] 심지어 이는 같은 유럽이라도 지역마다 다르다. 좋은 반례로, 에스파냐의 갈리시아[153] ] 지방에는 전통 방식의 문어 요리가 있으며, 이 레시피는 이베리아 전역에 ‘Pulpo gallego’(갈리시아식 문어 요리)라는 이름으로 알려져있다.
- 야훼는 성부만을 가리키는 말이다.
- 야훼는 주(Dominus)에 대응되는 말이지, 성부에 대응되는 말이 아니다. 즉 예수 역시도 야훼이다. 다만 잘못 사용된다고 보기까진 무리라고 할 수도 있는 것이 성부를 지칭할 때 야훼라고 하는 것 역시 논리적으로 따지면 틀린 것이 아니다. 야훼의 위격 중 하나인 성부를 야훼라고 부르는 게 잘못되었다는 주장은 엄밀히 따져서 양태론으로 오해받을 수도 있다. 이는 마치 하나님의 세 위격을 하나님이 그저 다른 형태로 자신을 드러내는 것이기 때문에 절대 성부를 지칭할 땐 야훼라고 지칭하면 안 되고 성부 성자 성령을 같이 지칭할 때만 야훼라는 용어를 써야 한다는 엉터리 주장으로 이해될 소지가 다분하다. 야훼가 성부만 지칭하는 명칭이라는 주장은 당연히 틀린 것이라고 봐도 된다. 그러나 대부분의 기독교적인 서술에서는 성부를 편의상 야훼라고 할 뿐이다. 그 어디에도 예수가 야훼가 아니라는 서술은 찾기 힘들다. 물론 성자와 성부를 구분지어 말할 때 예수와 야훼로 구분짓는 건 틀린 게 맞고 따로 성부라고 지칭하는 게 맞지만 성부의 아들 성자를 지칭할 때 편의상 하나님의 외아들 예수라고 하는 경우는 수도 없이 많다. 또한 성부를 야훼라고 부르는 것이 틀렸다는 주장은 성경으로도 논박이 가능하다. 신약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의 위격인 성부를 지칭할 때 그대로 야훼에 대응되는 '하느님/하나님'(야훼/엘로힘)이라는 호칭이 사용되는 경우가 많다.
11. 관련 문서
- 기독교공포증
- 기독교 미술
- 가톨릭
- 정교회
- 오리엔트 정교회
- 성공회
- 개신교
- 성가대
- 성유
- 성경
- 복음서
- 복음주의
- 십일조 - 헌금
- 십자가 - 십자가형
- 악의 문제
- 종말론 - 휴거, 최후의 심판
- 예정설 - 장 칼뱅, 막스 베버, 자본주의
- 익투스
- 반기독교
- 형이상학
- 스콜라 철학
- 십자군 전쟁 - 성전기사단
- 아가페 - 플라톤, 사랑
- 금욕, 금식
[1] '''전세계 1위'''[2] 2020년 기준 출처[3] 출처[4] 전 세계가 통용하는 역법은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일을 기준으로 하는 서력기원 이며, 미국 + 유럽연합 구성원의 과반수 이상이 기독교 신자들로 이루어져 있다.[5] 일단 가톨릭에서는 제2차 바티칸 공의회에서 이슬람을 아브라함 계통의 종교로 인정했다. 그러나 세간의 인식과는 달리 이 자체만으로 가톨릭측에서이 이슬람에도 구원이 있다고 인정한다는 뜻이 아니다. 가톨릭 입장에선 이슬람교 역시 기존의 유대교와 마찬가지로 예수에 대한 올바른 교리가 없는(즉 구원이 불확실한) '불완전한 아브라함계 종교'로 간주한다는 뜻이다.[6] 주의할 점은 성부=성자=성령이 아니며 성부=하느님, 성자=하느님, 성령=하느님이고 하느님은 한 분이라고 보아야 삼위일체가 된다는 것이다.[7] 물론 세세하게는 그 말고도 차이점들이 아주 많다.[8] 당시, 혹은 일제강점기 이전 ~ 초반부를 다룬 시기의 소설들에도 "'야소'를 믿는답시고..."라는 식의 표기가 종종 보인다.[9] 모든 개신교가 다 이런 주장을 펴는 것은 아니라서, 가톨릭과 우호적인 관계를 추구하는 개신교 교파도 있으며, 김수환 추기경 별세 당시에도 수많은 개신교계 인사들이 조문을 하기도 했다. 즉 천주교에 대한 스탠스는 교파마다, 또는 각 예배당마다 케바케가 심하지만 기독교의 한 종파로 인정해주더라도 역사적인 문제가 있기 때문에 호의적이지는 않다.[10] 개신교와 천주교 이외에도 정교회 등 다른 종파가 있다.[11] 비신자인 일반인 기준. 흔히 군대에서 이렇게 부른다.[12] 실제로는 천주교에서도 '교회'라는 말을 쓰는 등 현실과 차이가 있지만, 비신자 대중들에게는 대강 이렇게 인식되고 있다.[13] 'christ'를 '기독'이라고 번역하면 어색해지는 경우는 매우 많다. 예를 들어 '크리스찬'(christian)이란 단어도 일반적으로 '그리스도인'으로 번역하지, '기독인'으로 번역하지는 않는다. 굳이 '기독'을 넣자면 '기독교인'이나 '기독교 신자' 정도로 '기독교'라는 어휘를 이용해 조어(造語)하게 된다. 현실적으로 '기독'이라는 어휘를 쓰면, 예수 그리스도만을 순수하게 떠올리기 보다는 종교로서의 기독교'의 색채가 어떻게든 묻어난다는 문제가 있는 것이다. 일례로, 수많은 신앙의 선조들이 순교하며 남겼던 마지막 말이었던 'I am a christian.'을 번역한다고 할 때, '저는 그리스도인입니다.'와 '저는 기독교인입니다.' / '저는 기독교 신자입니다.'를 비교해보면 그 차이가 잘 드러난다. 'Christ Cathedral'을 번역해도 '그리스도 대성당'으로 하지, '기독 대성당'이라는 단어는 어색해하는 것도 마찬가지. 이런 활용의 연장선에서 보면, 'christianity'도 '기독교'보다 아예 '그리스도교'를 쓰는 게 더 낫다고 생각할 수 있다.[14] 기독교에서 말하는 죄는 세 가지가 있다. 첫째로 아담과 이브가 선악과를 먹은 첫 죄(또는 '첫 불순종'이라고도 부른다) = 조상에게서 물려받은 원죄, 둘째로 그로 인해 인류에게 생겨난 죄로 향하는 본성(=타고난 본성으로서의 원죄), 셋째로 죄로 향하는 본성으로 인해 개인이 삶에서 저지르는 죄(=본죄).[15] 여기에 대해서, 일부 사람들은 "선악과를 따먹기 전엔 죄(선악)에 대한 개념이 없었으니 선악과를 따먹은것이 죄라는것은 죄의 개념에 속하고, 죄의 개념이 없으면 선악과를 따먹지 말라는 하느님의 말씀을 어기는것도 선도 아니고 악도 아니니 죄의 개념이 없었다는 것과 충돌되니 모순 아닌가"이라는 주장을 하기도 하는데, 이는 기독교적인 죄와 선악의 개념을 잘 몰라서 생기는 오해이다. 첫 인간인 아담과 이브가 선악과를 먹는 죄를 범하기 이전에도 죄(하느님의 명령에 대한 불순종)와 선악의 개념은 있었다. 기독교 교리에 따르면 시대를 초월하여 하느님은 모든 선의 근원이므로 언제 어디서든 하느님의 계획과 명령에 순종하는 것이 선이고, 이에 순종하지 않고 명령을 어기는 것이 악이다. 기독교에서 이야기하는 '죄가 들어왔다'는 표현은, 이전에는 죄라는 관념 자체가 없었는데 선악과 사건 이후에 생겨났다는 뜻이 아니라, '''죄라는 관념은 있었으나 다만 인간에 의해 저질러지지 않고 있었을 뿐'''이라는 것을 설명하는 것이다.[16] 또한 원죄 때문에 지옥으로 떨어지는가?에 관한 해석은 가톨릭, 정교회, 개신교가 각각 다르다. 가톨릭에서는 사람이 원죄 그 자체만으로 지옥에 가는것은 아니지만, 사람이 삶에서 짓는 죄 때문에, 비 신자가 하느님의 은총 없이 큰 죄를 짓지 않고 평생 사는 것은 불가능할 정도로 어렵다고 본다. 또 정교회에서도 사람이 원죄만으로도 지옥에 떨어진다고 믿지 않는다. 개신교에서는 사람이 원죄만으로 지옥에 떨어진다고 믿는다. 자세한 내용은 원죄 항목 참조.[17] 왜 영원한 지옥벌을 받냐면, 본질상 하느님은 그 선도, 권위도 무한하다는 무한성과 절대성을 지니고 있는 존재인데, 하느님의 중대한 명령을 직접적으로, 고의적으로 무시하거나 불순종하거나 어기는 죄를 짓게 된다면(=대죄를 짓게 된다면) 그 무한한 선과 절대적인 권위를 침해한 댓가도 무한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인간의 영혼은 영원불멸하기는 하지만 하느님과 달리 그 본질상 능력이 한계를 지닌 존재이기에, 형벌의 양적 무한함을 감당할 수 없다. 또한 현세에서의 죄에 치우치는 약한 상태에서 감당할 수도 없다. 따라서 지옥 형벌의 '사후 기간'이라도 무한하여야 한다는 당위성이 생겨나게 되는 것이다. 물론 회개를 통해 하느님에게 용서받았거나, 자기 탓 없이 계명의 중대함을 모르고 어긴 경우는 죄를 용서받았으므로 영원한 지옥형벌을 당하지 않아도 된다.[18] 소수 신학자들이 영혼절멸설 혹은 만유화해설을 주장하기는 한다[19] 예수 그리스도가 세상에 인간으로 내려온 이유는, 앞서도 설명했듯 일반적인 인간이 죄를 지음으로서 하느님의 완전하고 무한한 선과 권위를 침해한 죄를 용서받아야 하는데, 이는 불완전한 존재인 인간 영혼의 행위나 노력으로는 불가능할 수밖에 없다. 불완전한 것으로 완전한 것을 메꿀 수는 없기 때문. 구약 시대의 각종 희생예물이나 제사 등의 방법으로도 희생제물이나 희생을 봉헌하는 주체가 불완전하고 죄에 물든 인간이므로 일단 하느님이 한동안 속죄제사로 인정해 주기는 했지만 본질적으로는 불완전한 속죄일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결국에는 하느님 자신이 스스로 제물이 되어 인류를 위해 대신 속죄하는 방법을 쓴 것이다(이를 인류의 죄를 '대속'하였다고 표현한다) 그 '''하느님 자신의 속죄 제사'''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형희생이며, 이로서 인류의 죄에 대한 완전한 속죄가 이루어졌다.[20] 여기서 진정한 믿음이란 무엇인가에 관하여서도 교파간의 해석이 갈린다. 개신교에서는 믿음을 진심으로 고백하기만 하면 천국에 갈 수 있다고 말하는 편이며(예수님 십자가 옆에 메달렸던 죄인의 예를 들어), 가톨릭/정교회 등에서는 믿겠다는 마음만으로는 부족하므로, 교리를 잘 이해하기 위한 교육을 충분히 받음으로써 바른 믿음을 갖추고, 그 교리를 삶을 통해 잘 실천함으로써 죄의 길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가르친다.[21] 2차 바티칸 공의회 이전에 쓰이던 가톨릭의 교리문답서(천주교요리문답)의 제 1번 항목은 이 기독교의 핵심 교리를 잘 설명해주고 있다. "사람이 무엇을 위하여 세상에 나왔는가? 사람은 천주(하느님)를 알아 공경하고, 자기 영혼을 구하기 위하여(=천국에 가기 위하여) 세상에 나왔습니다."[22] 교부 시대에 대표적 이단 사상 중 하나인 '''행위구원론'''을 주장하던 펠라기우스의 제자들이 신앙의 첫 과정은 은총 없이 인간의 마음대로 시작할 수 있다는 반(Semi)펠라기우스주의를 내세웠던 적이 있는데, 이는 행위구원론과 마찬가지로 이단으로 단죄되었다. 가톨릭도, 개신교도, 정교회도 모두 믿으려는 동기, 신앙의 시작 역시 하느님의 은총(도움)없이는 불가능하다고 고백한다.[23]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이로써 모든 사람이 너희가 내 제자인 줄 알리라" - 요한복음 13장 34-35절
나더러 주여 주여 하고 부른다고 다 하늘 나라에 들어가는 것이 아니다.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을 실천하는 사람이라야 들어간다. 그 날에는 많은 사람이 나를 보고 '주님, 주님! 우리가 주님의 이름으로 예언을 하고, 주님의 이름으로 마귀를 쫓아내고, 또 주님의 이름으로 많은 기적을 행하지 않았습니까?' 하고 말할 것이다. 그러나 그 때에 나는 분명히 그들에게 '악한 일을 일삼는 자들아, 나에게서 물러가거라. 나는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한다.' 하고 말할 것이다. - 마태오 복음서 7:21~23
그러면 그 의인들이 이렇게 말할 것이다. ‘주님, 저희가 언제 주님께서 굶주리신 것을 보고 먹을 것을 드렸고, 목마르신 것을 보고 마실 것을 드렸습니까? 언제 주님께서 나그네 되신 것을 보고 따뜻이 맞아들였고, 헐벗으신 것을 보고 입을 것을 드렸습니까? 언제 주님께서 병드시거나 감옥에 계신 것을 보고 찾아가 뵈었습니까?’ 그러면 임금이 대답할 것이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가 내 형제들인 이 가장 작은 이들 가운데 한 사람에게 해 준 것이 바로 나에게 해 준 것이다.’ 그때에 임금은 왼쪽에 있는 자들에게도 이렇게 말할 것이다. ‘저주받은 자들아, 나에게서 떠나 악마와 그 부하들을 위하여 준비된 영원한 불 속으로 들어가라. 너희는 내가 굶주렸을 때에 먹을 것을 주지 않았고, 내가 목말랐을 때에 마실 것을 주지 않았으며, 내가 나그네였을 때에 따뜻이 맞아들이지 않았다. 또 내가 헐벗었을 때에 입을 것을 주지 않았고, 내가 병들었을 때와 감옥에 있을 때에 돌보아 주지 않았다.’ 그러면 그들도 이렇게 말할 것이다. ‘주님, 저희가 언제 주님께서 굶주리시거나 목마르시거나 나그네 되신 것을 보고, 또 헐벗으시거나 병드시거나 감옥에 계신 것을 보고 시중들지 않았다는 말씀입니까?’ 그때에 임금이 대답할 것이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가 이 가장 작은 이들 가운데 한 사람에게 해 주지 않은 것이 바로 나에게 해 주지 않은 것이다.’ 이렇게 하여 그들은 영원한 벌을 받는 곳으로 가고 의인들은 영원한 생명을 누리는 곳으로 갈 것이다.” 마태오 복음서 25:37~46[24] 주로 중앙집권체제가 없는 개신교파 내에서 많은 종파분열이 일어난 탓이 크다.[25] 가톨릭, 정교회, 오리엔트 정교회, 성공회에서는 이 '교회'를 제도적 성직체계와 가시적 위계질서를 갖춘 사도전승을 받은 교회이자 구원을 위해서는 교회에 소속되어 신앙생활에 도움을 받아야 한다고 보지만(무교회주의 배척), 대다수 개신교 및 독립교회에서는 이를 부정하는 편이다.[26] 교회가 사도로부터 전해진 보편교회인가 아닌가[27] 신학자들은 십계명의 초반부는 하느님을 공경하는 법, 중후반부는 이웃사랑에 대한 법으로 구분하여 해석한다.[28] 천주교와 정교회, 개신교 모두가 성사로 인정하는 예식[29] 몇몇 개신교파에선 세례가 아닌 침례만이 정당하다고 주장하고 있기도 하지만, 보편교회는 물론이고 개신교 내에서도 대다수 교파에서는 이마에 물을 붓는 일반적인 세례의 유효성을 인정한다.[30] 이전 문서의 서술에서는 초대 교회에서 예수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었다고 기술되어있으나, 공관복음서와 디다케 등 초대교회의 문헌은 분명히 삼위일체의 이름으로 세례를 줄 것을 명시했기에 오류이다.[31] 요한 복음서 6장 52절 - 59절[32] 성공회의 경우 성사에 준하는 준성사, 또는 성사적 예식으로 규정하기도 한다.[33] 수도자 출신 사제도 신분만 수도자일 뿐 일반 사제와 마찬가지의 성직자이므로, 주교도 될 수 있고 교황도 될 수 있다. 역사를 보면 가톨릭의 역대 교황 중에도 수도사제 출신들이 상당히 있는 편.[34] 여러분 가운데 앓는 사람이 있습니까? 그런 사람은 교회의 원로들을 부르십시오. 원로들은 그를 위하여 기도하고 주님의 이름으로 그에게 기름(성유)를 바르십시오. 그러면 주님의 이름으로 기도가 그 아픈 사람을 구원하고 주님께서는 그를 일으켜 주실 것입니다. 또 그가 죄를 지었으면 용서를 받을 것입니다(성경 야고보서 5장 14~15절).[35] 참고로, 가톨릭은 해당 성경구절의 '원로'의 해석에 대하여, 이를 성직자(주교와 신부)로 계속 이해해왔으며 트리엔트 공의회를 통해 교리상으로 공식화했다. 따라서 가톨릭(그리고 정교회, 오리엔트 정교회도)에서는 일반 평신도의 병자성사 집전은 (비상시 누구나 집전가능한 세례성사를 제외한 나머지 다섯 성사와 마찬가지로) 금지되고 성직자에게 유보되어 있다.[36] 반면에 개혁주의 개신교에서는 나머지 5성사를 비성경적인 예식이라 하여 배척한다.[37] 성공회에서 가톨릭식 전통이 남아있는 것은 성공회가 가톨릭에 우호적이어서라기보다는 종교개혁 전 (고대 및 중세에) 가톨릭을 통해 내려온 기독교 전통을 소중히 해서라고 보는 게 맞다. 성공회는 가톨릭 뿐 아리나 정교회를 통해 내려온 기독교 전통들도 소중히 여겨 성공회 자신의 전례와 신앙에 도입하기도 한다. 예를 들어, 성공회에서 묵주를 사용해서 드리는 기도(묵주기도)는 가톨릭 전통이 아니라 정교회 전통을 따른다.[38] 가톨릭에서도 하느님의 사랑을 훼손한 점을 가슴 아파하는 개인의 절실한 회개(상등통회)만으로 죄 자체는 고해성사 없이도 용서받을 수 있다고 보지만, 중요한 차이점은 가톨릭 신자가 이렇게 절실히 회개를 했더라도 정말 죽기 직전 상황이거나 도저히 성당에 갈 수 없거나 하는 일이 있지 않는 이상 그 회개의 '''마지막 단계'''로서 교회와도 화해하고, 용서받았다는 확인을 받는 고해성사를 '''반드시 해야 한다고''' 가르친다.[39] 다만, 이러한 배타성이 다른 문화권과의 갈등을 낳으므로 교회가 탄생한 서기 1세기부터 기독교인들은 이 문제를 고민하였다. 명나라에서 예수회가 선교할때 중국의 문화에 대하여 진지하게 검토하고 '동아시아식 제사는 기독교의 교리와 충돌하지 않는다'고 해석한게 그 예이다. 현대 기독교 역시도 이러한 배타성을 지양하고자 하는 노력이 일부 교파에서 시도되고 있으며, 비록 다른 종교의 신이나 초월자들을 인정하지는 못하더라도 그 종교의 구성원들과 다른 문화권의 사람들에게는 매너와 존중을 가지고 선교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40] 물론 예수 본인 말로는 '''나는 아브라함을 보았다'''고 하며, 신학에서는 '''야훼의 세 위격이 동시에 일한다'''는 것을 보아 '''구약이 성부의 독무대는 아니다.''' 명확히 구분할 수는 없지만, 분명히 성자와 성령의 행위도 존재한다. 세 위격이 동시에 나온 경우 역시 존재하는데 아브라함의 앞에 세 위격이 인간의 형상을 입고 나타났었다.[41] 반면 신약은 성삼위 야훼 중심이 아닌 성자 예수 중심으로 보여주기 때문에 예수가 세례 받은 이후로는 성부와 성령이 예수의 언급으로나 등장하지 직접 등장해서 뭔가의 행위를 보이지는 않는다.[42] 야훼 본인 말로는 너희가 무지하고 미숙하여 그런 강경책을 쓸 수 밖에 없었다고한다. 당시는 지금과는 달리 여자나 아이는 말하는 짐승 취급하며 적의 남자들은 죄다 죽이고 여자나 아이는 포로로 잡아가는게 당연했으므로, 야훼의 입장에선 원시적이고 무지한 인간의 문화에 맞출 수 밖에 없었다는 것. 당장에 신이 미래의 윤리를 들고와서 이게 너희 인간들이 최종적으로 결정한 윤리니 이걸 따르라.라고 하면 따를 사람이 몇이나될까. 그렇게 잘 대해줬어도 수십, 수백번 뒷통수를 맞았는데 지금의 윤리를 적용하여 다스리려 했다면 '''지금의 유일신교는 존재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자세한건 야훼(비판) 항목 참조.[43] 1.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라 2. 그가 태초에 하나님과 함께 계셨고 3. 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니 하나도 그가 없이는 된 것이 없느니라 (요 1:1~3)[44] '그러면 공심판 이전에는 영혼만 있는가?'라는 질문이 있을 수 있는데, 여기에 대해서는 명확한 정설이 없다. 다만 기독교에서는 영과 육을 이분법적으로 분리하는 것을 반대하고 특히 인간의 육체 역시도 인격(페르소나)을 이루는 한 요소라고 본다. 따라서 영혼만 달랑 존재한다고 말하지는 않는다. 구체적으로는 임시 육체(?)를 가진다고 생각하든, 육체 비스무리한 그 무언가를 가진다고 생각하든 정해진 설은 없지만(...).[45] 즉 다시말해 종말과 천국에 대한 기독교인의 소망은 당연한 것이나, 시기에 대해선 성경에 주(심지어 예수 스스로가 같은 주님이라도 '''그 때는 아들도, 성령도 모르고 오로지 아버지만 아신다'''고한다.)를 제외한 그 누구도 모른다고 못박아놨다는 점. 때문에 "언제언제 '''정확한 그 시간에''' 재림과 세계종말이 올거에요~" 라고 주장하는 '시한부 종말론'은 모두 이단으로 봐도 무방하다.[46] 따라서 기독교 교리에 따르면, 과거 레콘키스타 이후 스페인에서의 아랍계, 유대계 그리스도인들을 추방해버렸던 흑역사라던지 유럽에서의 유대인 박해, 또는 신대륙에서의 흑인-원주민 차별 등의 역사적 악행들은 기독교의 원래 가르침에서 매우 어긋난 행위이다.[47] 개신교 용어로는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 한다고 표현한다.[48] 근대에는 천부인권과도 연관지어진 교리이다.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이므로, 현대 신학에선 인간 존엄성에 대한 모독은 간접적으로는 신성모독과도 연결된다고 해석한다. 그러나 자연에 대하여 인간이 정복자적 입장을 취하여 부작용을 낳았다는 환경주의자들의 비판이 있기도 하다. 하지만 기독교의 전반적인 세계관과 창세기의 문맥을 고려하자면 창 1:28절의 문화명령에 따른 인류가 모든 생물을 정복하라는 말은 자연과 함께 더불어 상생하라는 의미로 해석된다.[49] 해석에 따라서, 아담은 하와가 창조됨으로써 비로소 남자가 되었다는 견해도 있다.[50] 바벨탑 에피소드의 핵심 주제이기도 하며, 인간의 언어가 갈라진 이유를 바벨탑 이야기로 설명했다. 물론 과학적, 역사학적 의미로써 바벨탑 이야기를 하는건 아니다.[51] 당연하지만 이 교리는 하나님과 인간의 영혼이 물리적인 '합체'가 됨을 말하는 건 아니다. '하나님과 결합을 이룬다'라고 표현함은, 하느님의 구원으로 인해 하나님과 함께 천국에서 영원한 생명과 기쁨을 누릴 수 있는 자격에 올라섬을 말한다.[52] 참조[53] 인간이 지옥에 가는 신학적 이유는, 원죄 자체 때문이 아니라 원죄를 극복하지 않고 '자기 의지'로 하나님을 거슬러 불신 및 죄를 짓기 때문이다.[54] 여기서도, 인간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의롭게 되고 구원받는 은총은 오로지 하나님에게서만 온다고 보는 견해는 공통적이지만, 가톨릭에선 여기에 더해 인간이 '주어진 자유의지로 은총에 협력하는 자세'가 구원에 필요하다고 보는 반면, 개신교에서는 모든 믿음과 행위 및 구원 전부가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총이라고 보는 차이점이 존재한다.[55] 앞에서도 설명했지만, '원죄'란 말을 쓰기는 하지만 원죄 그 자체로는 사람을 구원받지 못하게 하는 '죄'인건 아니다. 자세한 것은 원죄 항목 참조.[56] 인간이 자신의 자유의지로 지은 여러 죄[57] 요한 복음서 6장 50절~58절 참고.[58] 보편교회인 가톨릭, 정교회 등에서는 이 과정에 고해성사가 들어간다.[59] 일단 7성사라는 개념 자체를 인정하지 않는다.[60] 다만 대다수의 개신교 종파들에서는 세례와 성찬[59] 이 교리상으로 구원의 필수 조건이 아니다. 이에 따르면 세례는 믿음을 확인받는 예식이고 '''믿음'''자체가 구원의 조건이다. 이는 구원의 과정에서 세례성사를 매우 중요하게 여기는 가톨릭과의 큰 차이로 볼 수 있다.[61]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착각하는 게 신약에선 믿음을 강조한 것뿐이지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이라는 사실을 잘 모른다. 하지만 천국은 인간이 어떤 업적을 이루어서 자격이 주어지는 것이 아닌 바로 진정한 사랑을 알고 실천함으로써 신(사랑의 속성을 지님)께 의롭다 칭함을 받아 주어진다는 사실을 잊어선 안된다.[62] 마르코 복음서 12장 18-27절, 루카 복음서 20장 27-40절, 코린토 1서 15장 35-54절[63] 케냐와 탄자니아, 우간다, 잠비아, 남아프리카 공화국같은 나라들이 대표적으로, 대부분 일부다처제가 기독교인들 사이에서도 토착문화로서 인정 내지 관습적으로 용인되고있다. 성공회 주교회의에서 일부다처제는 아프리카의 전통 문화라서 어쩔 수 없다 라면서 사실상 용인해주기도 할 정도.[64] 심지어 구약 율법을 대단히 강조하는 재림교회나 에티오피아 정교회도, 그리고 심지어 신약성경을 받아들인 기독교의 유대교적 분파라고 할 수 있는 메시아주의 유대교파에서도 율법보다 믿음이 구원받는데 필수라는 점은 인정하고 있다.[65] 단 금식에 대한 교리는 일부 남아 있는데, 초대 교회에서는 월요일과 목요일에 금식을 하던 유대교 관습을 조금 변형시켜 수요일과 금요일에 금식을 하는 전통이 있었으며, 지금도 그 초대 교회 그 자체인 가톨릭과 정교회 그리고 초대교회에서 거의 바뀐게 많지 않은 성공회에는 특정 일자(정교회에서는 매주 수요일과 금요일과 대사순절과 기타 축일이나 축일 준비 기간 동안 고기류 생선류 유제품류 기름류 가금란류 주류를 금하고, 가톨릭에서는 매주 금요일에 고기류를 그리고 사순시기의 특정 일자에 하루 한끼를 안 먹는 금식을 한다. 성공회는 성공회기도서에 언급된 '재일'에 육식을 금하거나 금식을 한다.)의 금식 규정이 있다.(이 정도 규정이 지금은 많이 완화된 편이고, 옛날엔 의무금식일이 연중에도 매우 자주 있었다.)콥트 교회나 에티오피아 정교회 등 오리엔트 정교회에서는 오랫동안 같이 살았던 무슬림들의 영향도 있고 역사가 오랜 교회 전통의 영향도 있고 해서 금식일이 매우 많다.[66] 종교 개혁 이후 출현한 주요 개신교 3교파는 성공회, 루터교회, 칼뱅주의(사실상 장로회)이며, 이들 역시 시간이 흐르며 내부에서 교파가 다양하게 갈라진다.[67] 동방 전례를 따르면서 교황의 수위권을 인정하는 가톨릭이다.[68] 칼케돈 공의회(제4차 세계 공의회) 때 동의하지 않은 기독교 종파이다.[69] 사도로부터 이어지는 교회, 전례를 중시하는 교회를 뜻한다.[70] 초기의 은둔적이고 사도적이던 교회로 돌아가자는 운동. 성경을 매우 중시하나 삼위일체를 부정한다.[71] 본래 정교회나 오리엔트 정교회 등에서 출발했으나 교황의 수위권을 받아들인 교파들이다. 그래서 전례는 로마 전례가 아닌 동방 기독교 전례를 따른다.[72] 서방교회가 분열될 때 가톨릭과 갈라졌으므로 개신교로 분류되고 많은 특성을 개신교와 공유하지만, 교리적, 전례적으로 보면 가톨릭과의 공통점도 상당히 많다.[73] 통계에 따라서 다르지만, 모든 통계에서 적어도 전체 그리스도인의 과반수는 넘는 것으로 조사된다.[74] 이는 잘못된 표헌이다. 로마 교회만을 지칭하는 단어가 될 수 있고, 동방 가톨릭 교회를 부정하는 단어가 될 수도 있다.[75] 네스토리우스파는 이미 칼케돈 공의회 이전 에페소 공의회(제3차 세계 공의회)에서 이단으로 규정되었다. 단, 제4차 세계 공의회인 칼케돈 공의회에서 예수의 신성(神性)을 강조한 단성론 교회와 더불어 확실히 이단으로 낙인찍혀 파문된 것일 뿐.[76] 출처[77] 20세기 시작과 함께 등장한 신생 교파로, 성령의 은사들을 중요시하고 활동적이고 열성적인 신앙을 중시하는 특징을 가진다. 덕분에 개발도상국과 남반구 국가들에서 폭발적인 성장을 이끌고 있다고. 한국에서는 여의도 순복음교회가 오순절주의 신학을 따르고 있다.[78] 하지만 가톨릭이 절대다수였던 과거와 달리 많은 남미 국가에서 복음주의 개신교가 크게 성장해 가톨릭만이 남미의 절대적인 종파라는 인식은 옛말이 되었다. 물론 여전히 남미에서 가장 큰 교세와 영향력이 막대한 종파다.[79] 이들이야 어차피 서방교회에 큰 반감을 가진 사람들이라서 무슬림 이웃들도 역사적으로 악연이 많은 가톨릭이나 미국의 주류인 개신교보다는 정교회를 그나마 선호하는 편이라고 한다.[80] 개신교가 강세인 지역이 아닌 늘어나는 지역이다.[81] 많은 국가들이 루터회나 성공회를 믿고있다.[82] 최근 중국 개신교 인구가 적게는 1억2천에서 많게는 1억5천까지 있다고 한다.[83] 대표적으로 남아공 등에 많은 시온 크리스티안 교회, 콩고 지역에서 세력이 큰 킴방기즘 기독교나 알라두라 사도교회 같은 토착 독립교회에서 이런 문제나 혼합주의 내지는 이단시비가 많다.[84] 북아프리카나 에티오피아는 초대교회~교부 시대부터 기독교 신앙이 자라잡았을 정도로 역사가 오래되었으나,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와 중부 아프리카, 서아프리카에 본격적으로 광범위한 기독교화가 시작된 것은 제국주의 시기 이후이다. 그나마도 이때는 대다수가 이슬람과 토착 신앙을 믿었지 막 진출한 기독교가 이 지역의 보편적인 종교로서 자리잡지는 못했었다. 기독교가 사하라 이남 주민 상당수~대다수의 종교로 널리 자리잡은 시기는 제국주의 시기가 끝난 20세기 중반 이후부터다. 즉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의 기독교화는 생각보다 역사가 짧은 편.[85] 나갈랜드, 메갈라야 주 등[86] 이쪽(시로 말랑카라, 시로 말라바르 기독교)은 아예 초대교회 직후 시기부터 기독교 선교가 이루어졌다.[87] 구약 시대 유대교의 신비주의 종파중 하나. 하나님과의 보다 완전한 일치를 추구하여 사해 주변에 종교적 공동체를 만들고 장로의 지도하에 공동생활을 하였다. 재산은 공유였고, 예배와 독서와 공동식사를 중요한 행사로 삼았다. 이들은 1세기 말 경에는 소멸했지만 이들의 신앙과 생활 양식은 기독교에 큰 영향을 주었다. 세례자 요한이 이 종파의 일원이었다는 설도 있다.[88] 조금더 정확히 말하자면, 가톨릭과 정교회의 교리상으론 이 말이 진짜다. 외형상으로는 빵과 포도주이지만, 실체는 예수 그리스도의 살과 피로 변화했다고 믿기 때문이다(성변화). 물론 로마인들이 오해하던 그런 의미는 아니지만.[89] 참고로 기독교 신약성경의 마지막 권인 요한묵시록이 이 시기에 집필되었다고 한다.[90] Frend, W. H. C. (2014). Martyrdom and persecution in the early church: A study of conflict from the Maccabees to Donatus. Wipf and Stock Publishers.[91] 상류층까지 기독교가 널리 퍼지게 된것은 콘스탄티누스 1세 이후의 일이다.[92] 송혜경, 《사탄, 악마가 된 고발자》 207-210쪽 참고.[93] 데키우스 황제는 고트족과 싸우다 전사하였고 발레리아누스는 사산조 페르시아와 싸우다 포로로 잡힌다.[94] 물론 그렇다고 100% 순수하게 정치적 이유만으로 이용했다고 보기엔 어렵고, 아무리 낮춰잡아도 모친의 영향으로 기독교에 대한 호감과 미미한 믿음 정도는 있었다고 여겨진다. 종합적으로 보자면, 모친 따라 어릴때부터 성당에 익숙하고 가끔 미사에도 나오지만, 딱히 열심하지도 않고 가끔씩은 점집도 가보는 널널한 믿음(?)을 가진 동네 아저씨 정도로 보면 얼추 맞을 것이다.[95] 가톨릭 신학에서는 세례가 죄를 씻어 준다고 고백한다. 그리고 세례 이후 죄를 지었다면 뉘우치고 고해성사를 봐야한다.[96] 그 이전에 아르메니아가 서기 301년에 먼저 국교로 선포하였다고도 한다.[97] 성부, 성자, 성령을 모두 하나의 존재임을 인정하는 종파.[98] 아타나시우스파의 교리를 부정. 즉 삼위일체를 부정하는 종파. 현재 기독교의 주류가 된 아타나시우스파에 의해 이단으로 규정되었다.[99] 특히 유피테르를 믿었다.[100] 물론 로마 황제와 콘스탄티노플 총대주교가 항상 같은 편이었던 것은 아니고, 로마 황제가 콘스탄티노플 총대주교를 견제하기 위해 로마 교황을 끌어오는 경우도 있었다.[101] 가톨릭 우위의 역사관이든 정교 우위의 역사관이든[102] 물론 동서 분열에서도 필리오케 논쟁이라는 신학적 논쟁은 있었지만 루터의 경우와 비교할 때 상대적으로.[103] 다만 개혁(reform)이라는 말에서 '진보' 혹은 '미래'를 떠올리는 현대인의 관념과는 달리, 루터가 지향한 것은 '원래의 그리스도교'이지 어떤 신생 교리가 아니었고, 바라본 것은 과거이지 미래가 아니었다. 마찬가지로 칼뱅도, 가톨릭도 전에는 없던 어떤 새로운 것을 만들 의도가 없었고, 지향한 것은 '발견'이지 '발명'이 아니었다. 종교개혁을 '진보의 개신교 vs 보수의 가톨릭' 혹은 '원천을 찾는 개신교 vs 새로운 교리를 만드는 가톨릭'으로 파악해선 안된다는 말이다.[104] 그러나 종교로서의 그리스도교는 20세기 중반까지만 하더라도 서양인의 사고를 주도했다.[105] 조금 의외일수도 있지만, 독실한 가톨릭교인들의 입장에서는 과학이 발전한다고 해서 종교가 흔들린다고 생각하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가톨릭교의 교리는 자명한 진리이니 과학이 발전하면 하느님의 섭리를 좀 더 잘 이해하게 될 것이라 여겼던 것이다. 그러나 현실은(...)[106] 물론 해당 나라들의 기독교계들에서도 자국들의 이런 현상에 위기의식을 느끼고 자기들의 교세를 지키고자 나름대로 고군분투하고 그게 적지않은 효과를 거둬 흥하는 교파들도 있으나, 그래도 예전에 비하면 교회의 사회적 영향력이 약화된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107] 현대에 들어 기독교 자체도 세속화가 많이 진행이 되었으며, 현재 세계에서 발전된 축에 속하는 나라들 중 상당수가 기독교신자가 많은 국가라는 점이 현대에 들어 기독교가 세계화되는데 많은 영향을 준 듯 보인다. 웬지 그 종교를 믿으면 본인도 복을받고 부유해 질 수 있다는 느낌도 들것이고...[108] 미국의 2015 Pew reserch,《세계종교 미래 보고서》[109] 이것이 교회합일을 교황청 주도의 합일로 우려하는 시각도 있다. 이런 우려는 비단 개신교도들 뿐만 아니라 한 때 '''왕 위에 군림했던 군주와 마찬가지였던 교황의 파워'''가 현대사회에서 이런 활동으로 다시 이루어지는것이 '''민주정치를 위협'''할 수도 있다고 본다. 일례로 대항해시대 포르투갈과 에스파냐(스페인)이 영토문제로 다툰 것을 '''교황의 권위로 세상을 반으로 나눠서 한 쪽은 이쪽, 반대쪽은 저쪽 이런 식으로 분배 해 버린 것이나, 그것을 따라 복종 한 사례'''와 비슷한 일이 적지 않았다. 또 기존 정부의 통제가 강한 공산권에서도 이런 흐름을 못마땅하게 여긴다. 정교회의 경우 독립교회 구조로 구성되지만, 가톨릭은 모두가 알다시피, 교황의 교도권 하에 조직되기에...[110] 루터교회와 성공회는 다른 개신교 교파들에 비하면 교리나 전례면에서 가톨릭과 유사한 점이 많다. 이는 종교개혁 당시 교회의 전통들 가운데 성경에 언급되지 않은 것은 모두 폐기한 개혁교회/장로교회나 침례교회와는 달리, 루터교회와 성공회는 성경과 충돌하지 않는 전통은 그대로 놔두었기 때문이다.[111] 이 둘이 '교회 조직'으로 인정하는 것은 그 자신과 상대방밖에 없다.[112] 요셉 피퍼, 중세 스콜라 철학 -신앙과 이성 사이의 조화와 갈등-, 김진태 옮김, 서울 가톨릭대학교 출판부, 2003, p50[113] 한국 천주교 주교회의의 주석성경에 의하면, BC 2세기경이 되면 알렉산드리아의 유대인 공동체가 팔레스티나 전체 인구보다 더 많았다.[114] 아다만티움을 변형시킨 별명이다. 우리말로 번역할때는 '강철인간', '강철의 철학자', '강철의 신학자' 등으로도 옮긴다.[115] 이 때문에 오리게네스를 최초의 신학자로 보는 견해도 강하다. 이를테면 가톨릭출판사에서 나온 서적인 <신학사>가 그러하다.[116] 물론 니체의 경우는 디스 대상에 종교 또한 포함되어 있다.[117] 물론 미국 독립선언서를 쓴 토마스 제퍼슨의 사례처럼, 근대의 평등사상은 상당 수 이신론적 가치에 영향을 받았다. 그러나 이러한 개념의 근본에서는 결국 기독교의 영향을 부정하기 어렵다. 이 시기 이신론자 중 상당수는 자기가 그리스도인이라고 주장하기도 했고.[118] '보편'이라는게 진짜로 실재하는 것인지, 혹은 그렇게 이름 붙여졌을 뿐인지의 논쟁이다. 전자의 관점을 극단적으로 수용할 경우 전체주의 등으로 변질될 수 있는 문제점이 존재한다. 또한 후자의 관점을 극단적으로 수용할 경우, 인권이라는게 인간이라면 보편적으로 주어지는 어떤 권리가 아니라, 능력에 따라 얻는 권리로 바뀌는 폐단이 있다. 이 관점에 의하면 '인간'이라는 개념 역시도 단지 사람들이 편의상 그렇게 이름 붙인 것일 뿐이며, '보편적인 인간'이라는건 비실재하는 개념이기 때문이다. 때문에 당연히 상식적으로 중도론이 나오게 되고, 신학에서도 철학에서도 중도론을 밀고 있다. 물론 그 중도라는게 도대체 어느 지점을 말하는 것인지에 대해서는 이견들이 여전히 존재한다.[119] 20세기 중반에 전체주의 때문에 대전쟁이 발생한 것을 생각해보면, 결코 실제 생활과 동떨어진 논쟁이 아니다.[120] 토마스 아퀴나스의 표현을 빌리자면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라는 유능한 집사를 고용한 셈이다[121] 물론 개신교와 천주교에 모두 신자로 등록된 이들이 존재하지만, 이를 모두 고려하더라도 이 수치는 상당히 높은 수치이다.[122] 세계 어디든 기독교가 처음으로 전래될 때는 원래 있던 유물과 비슷한 형태로 만들어진다. 예를 들면 아프리카에서는 예수가 백인이 아닌 흑인으로, 중남미에서는 아메리카 원주민으로 그려지는 식이다. 즉 해당 유물이 한국 최초의 '아기예수를 품은 마리아상'이라면 다른 불상과 닮은 것이 이상한 일은 아니다.[123] '복음을 믿는 사람'이라는 뜻의 몽골어.[124] 그레고리우스의 몽골식 발음.[125] 《한권으로 읽는 한국 기독교의 역사》 역사 류대영. 2019. 18-19p[126] 이전 버전에는 간부나 사병들의 종교 명칭에 대한 오해로 설명되어 있었으나 그보다 더 중요한 건 대한민국 국군에서 공식적으로 기독교와 천주교로 구분지어 부르고 있다는 것이다. 가톨릭 신자들 입장에선 껄끄러울 수도 있지만 당장은 인식 개선 가지고 되는 문제가 아니다.[127] 여담으로 개신교도 딱히 군대에서 종교활동이 제대로 되는 건 아니다. 군목이 대부분 장로회 소속이기 때문에 장로회가 아닌 경우(감리회, 구세군, 루터회, 성공회 등) 다른 종파의 교회에서 예배를 해야하는 불상사가 생길 가능성이 크다. 정교회는 아예 존재 자체를 모르는 사람이 대다수다. 실제로 어떤 병사는 대대로 성공회를 믿어오던 집안 출신인데, 성공회도 개신교라며 진중 성당이 아닌 진중 교회로 다녔다고 한다.[128] 성공회나 루터회는 교회일치에 매우 적극적인 교파여서, 상황에 맞추어 다른 교파 예배에 적응하는 것에 크게 불만을 갖지 않는다. 물론 자기 교파의 방식대로 예배드리는 것을 제일 원하는 것은 당연하다.[129] 이건 다른 문제보다, 국방부가 종교를 기독교, 천주교, 불교로 나누기 때문이다. 병역검사를 해보았다면 인적사항 중 종교란 선택지가 기독교, 천주교, 불교, 여호와의 증인, 원불교, 기타로 나뉘는 것을 알 수 있다.[130] 예를 들어 마테오 리치의 천주실의 라던가[131] 마테오 리치 신부는 언어에 천재적 재능이 있어서 사서삼경을 서양식으로 번역하고, 동양 고전을 천주교 세계관에 따라 주석을 달기도 했다. 그러나 이것들이 한때 중국 문인들의 관심을 끌긴 했으나 너무 많은 허점이 있어서 받아들이진 않았다. 물론 현재 문헌고증학적으론 마테오 리치의 동양 고전해석은 별 근거는 없다.[132] 개신교가 한국에 처음 들어왔을 당시에는 평안도 쪽에 신자가 많았으며, 평안도 방언으로는 '하늘'을 '하날'이라고 한다.[133] 단상에서 성경 말씀을 낭독할 때 주로 쓰인다.[134] 영미권으로 부터 들어온 장로회(스코틀랜드), 감리회(잉글랜드), 성공회(잉글랜드) 등의 교파라면 크게 문제될 건 없지만, 굳이 신의 이름을 영어로 불러야 할 이유가 있는 건 아니다. 사실 천주교 입장에선 이 드립도 라틴어인 DEUS 로 하자고 태클 걸 수 있다. 루터교회에서 Gott(고트)라 하자고 할 수도 있고...[135] 명동성당은 민주화운동의 상징적인 공간이다. 대한성공회 서울주교좌성당과 한국기독교장로회(약칭 '''기장''') 향린교회도 민주화 역사에 중요한 장소들이지만, 이들 교파의 세가 개신교 내에서 너무 작다.[136] 실제로 교회수별 신자 수를 나눠 보면 실은 70~80명씩 배분되는 정원이 생겨야 하지만, 문제는 그게 아니고 메가처치들이 10만 20만씩을 먹고 있다는 것이고 이 메가처치들은 거의 보수라는 점이 문제. 즉, 교회수가 많아도 신자 머리수를 봐도 보수교단에 소속된 신자가 대부분일 것이라는 점은 계산상 어쩔수 없다.[137] 예를 들어 예장합동, 침례회 같은 신학적으로 보수적인 교단에도 얼마든지 진보적인 목사들이나 신자들이 존재하며, 신학적으로 진보적인 감리회나 성공회에도 정치적으로 보수적인 신자들은 얼마든지 존재한다[138] 단 미국의 경우 신학적으로 보수적인 경우 정치적으로도 보수적인 경우가 꽤나 많다[139] 가끔 기독교 믿는 나라들이 아닌 나라보다 더 잘산다거나 가톨릭 믿는 나라는 가난하다거나 미국이 기독교 믿어서 잘산다거나 하는 이상한 소리를 해대는 신자들이 있다. 이는 신앙적인 면에서 생각해보더라도 신앙의 본질을 흐리는 주장들이다. [140] 참고할 만한 건, 예수 그리스도와 12사도 등 신약이 될수록 믿음에도 불구하고 현실의 복을 받기는커녕 가난하고 박해받는 생활을 하다 간 사람들이 많으며, 제명에 죽은 사람은 사도 요한 하나뿐, 나머지는 전부 순교했다. 베드로처럼 십자가에 거꾸로 죽은 사람부터 맞아 죽은 사람까지 순교 방법도 제각각. 사도 요한도 인생을 곱게 보내지 못했고, 토마스 같은 경우는 인도까지 가서 순교했다. 신자들도 초대교회를 비롯해 로마 제국에서 국교로 지정되기 전까지는 비참했는데, 차별은 당연하고 툭하면 잡아다 원형경기장에 사자밥으로 풀어 놓았다. 네로 황제의 방화사건의 최대 피해자이기도 하고.[141] 어려운 사람들은 도움을 얻으면 뭔가 갚아야 할 것 같은 심정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142] 이것은 세금 감면을 목적으로 한 기부행위와는 다른 차원의 비판이다. 세금 감면을 목적으로 한 기부행위는 타인의 행위 양태에 영향을 미치고자 하는 의도는 그다지 없을 것이기 때문.[143] 그러나 웬만한 교회에서는 자비로 선교하며 교회의 예산을 사용할 시 동의를 구한다.[144] 물론 한국에서든 세계적으로든 가장 신자수가 많은 종파는 가톨릭이지만, 개신교 전체를 하나로 묶을 경우 한국·미국 같은 특정 지역에선 개신교의 세력이 더 강하다. 개신교 자체는 절대로 단일 종파가 아니지만, '기독교'라는 이름으로 천주교 빼고 자기들끼리 하나의 종교임을 강조하며 여러 분야에서 잘 뭉쳐있고 대외적으로 종교계의 큰 목소리를 낼 때는 '기독교', '한국교회'등의 명칭을 고수하며 종파들끼리 교류도 많다. [145] 종교다원주의를 인정한다는 뜻이 아니다. 기독교의 교리를 절대적으로 고수하되 종교 간의 화해와 화합을 위해 서로 호의와 협력을 표하는 수준으로 그치는 교단들이 대다수이다.[146] 단, 종교적으로 명확한 입장표명인지 친목적 인사치레인지는 분명하지 않다.[147] 이단 종파들이 항상 언급하는 순복음교회 같은 경우야 특이한 경우고, 사실 순복음교회는 이단적 설교들의 잘못을 인정하고 취소함으로 정통 반열에 오른 것이다. 거기다 아직도 순복음교회에 대한 비판은 많은 편이다. 신사도 운동과 연계되어 있다든지(...).[148] 지금도 일부 교단에서는 불가능하다.[149] 하느님/하나님 포괄[150] 예수의 모습을 아폴론과 비슷하게 그린 건, 기독교가 공인된 지 얼마 안 된 통일 로마 제국 말기부터의 이야기다. 근데 미켈란젤로는 그 로마 제국이 멸망한 지 100년도 채 안됐을 시절의 사람이고, 이 시기의 사람들은 로마 제국에서건 나머지 유럽 지역에서건 이미 현대인들에게 익히 알려진 모습으로 예수를 묘사하고 있었다.[151] 참고로 예수의 모습을 우리가 아는 모습으로 처음 묘사한 곳은 다름아닌 중동이었다.[152] 터키 등 몇몇 세속적인 이슬람 국가들의 경우 술은 잘먹으면서 돼지고기는 못먹는 사람들이 많은데, 비슷하게 문화적으로 혐오적인 음식이라는 관념이 박혀서 그렇다.[153] 유서깊은 성지 순례길의 종착지로 유명하다.
나더러 주여 주여 하고 부른다고 다 하늘 나라에 들어가는 것이 아니다.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을 실천하는 사람이라야 들어간다. 그 날에는 많은 사람이 나를 보고 '주님, 주님! 우리가 주님의 이름으로 예언을 하고, 주님의 이름으로 마귀를 쫓아내고, 또 주님의 이름으로 많은 기적을 행하지 않았습니까?' 하고 말할 것이다. 그러나 그 때에 나는 분명히 그들에게 '악한 일을 일삼는 자들아, 나에게서 물러가거라. 나는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한다.' 하고 말할 것이다. - 마태오 복음서 7:21~23
그러면 그 의인들이 이렇게 말할 것이다. ‘주님, 저희가 언제 주님께서 굶주리신 것을 보고 먹을 것을 드렸고, 목마르신 것을 보고 마실 것을 드렸습니까? 언제 주님께서 나그네 되신 것을 보고 따뜻이 맞아들였고, 헐벗으신 것을 보고 입을 것을 드렸습니까? 언제 주님께서 병드시거나 감옥에 계신 것을 보고 찾아가 뵈었습니까?’ 그러면 임금이 대답할 것이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가 내 형제들인 이 가장 작은 이들 가운데 한 사람에게 해 준 것이 바로 나에게 해 준 것이다.’ 그때에 임금은 왼쪽에 있는 자들에게도 이렇게 말할 것이다. ‘저주받은 자들아, 나에게서 떠나 악마와 그 부하들을 위하여 준비된 영원한 불 속으로 들어가라. 너희는 내가 굶주렸을 때에 먹을 것을 주지 않았고, 내가 목말랐을 때에 마실 것을 주지 않았으며, 내가 나그네였을 때에 따뜻이 맞아들이지 않았다. 또 내가 헐벗었을 때에 입을 것을 주지 않았고, 내가 병들었을 때와 감옥에 있을 때에 돌보아 주지 않았다.’ 그러면 그들도 이렇게 말할 것이다. ‘주님, 저희가 언제 주님께서 굶주리시거나 목마르시거나 나그네 되신 것을 보고, 또 헐벗으시거나 병드시거나 감옥에 계신 것을 보고 시중들지 않았다는 말씀입니까?’ 그때에 임금이 대답할 것이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가 이 가장 작은 이들 가운데 한 사람에게 해 주지 않은 것이 바로 나에게 해 주지 않은 것이다.’ 이렇게 하여 그들은 영원한 벌을 받는 곳으로 가고 의인들은 영원한 생명을 누리는 곳으로 갈 것이다.” 마태오 복음서 25:37~46[24] 주로 중앙집권체제가 없는 개신교파 내에서 많은 종파분열이 일어난 탓이 크다.[25] 가톨릭, 정교회, 오리엔트 정교회, 성공회에서는 이 '교회'를 제도적 성직체계와 가시적 위계질서를 갖춘 사도전승을 받은 교회이자 구원을 위해서는 교회에 소속되어 신앙생활에 도움을 받아야 한다고 보지만(무교회주의 배척), 대다수 개신교 및 독립교회에서는 이를 부정하는 편이다.[26] 교회가 사도로부터 전해진 보편교회인가 아닌가[27] 신학자들은 십계명의 초반부는 하느님을 공경하는 법, 중후반부는 이웃사랑에 대한 법으로 구분하여 해석한다.[28] 천주교와 정교회, 개신교 모두가 성사로 인정하는 예식[29] 몇몇 개신교파에선 세례가 아닌 침례만이 정당하다고 주장하고 있기도 하지만, 보편교회는 물론이고 개신교 내에서도 대다수 교파에서는 이마에 물을 붓는 일반적인 세례의 유효성을 인정한다.[30] 이전 문서의 서술에서는 초대 교회에서 예수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었다고 기술되어있으나, 공관복음서와 디다케 등 초대교회의 문헌은 분명히 삼위일체의 이름으로 세례를 줄 것을 명시했기에 오류이다.[31] 요한 복음서 6장 52절 - 59절[32] 성공회의 경우 성사에 준하는 준성사, 또는 성사적 예식으로 규정하기도 한다.[33] 수도자 출신 사제도 신분만 수도자일 뿐 일반 사제와 마찬가지의 성직자이므로, 주교도 될 수 있고 교황도 될 수 있다. 역사를 보면 가톨릭의 역대 교황 중에도 수도사제 출신들이 상당히 있는 편.[34] 여러분 가운데 앓는 사람이 있습니까? 그런 사람은 교회의 원로들을 부르십시오. 원로들은 그를 위하여 기도하고 주님의 이름으로 그에게 기름(성유)를 바르십시오. 그러면 주님의 이름으로 기도가 그 아픈 사람을 구원하고 주님께서는 그를 일으켜 주실 것입니다. 또 그가 죄를 지었으면 용서를 받을 것입니다(성경 야고보서 5장 14~15절).[35] 참고로, 가톨릭은 해당 성경구절의 '원로'의 해석에 대하여, 이를 성직자(주교와 신부)로 계속 이해해왔으며 트리엔트 공의회를 통해 교리상으로 공식화했다. 따라서 가톨릭(그리고 정교회, 오리엔트 정교회도)에서는 일반 평신도의 병자성사 집전은 (비상시 누구나 집전가능한 세례성사를 제외한 나머지 다섯 성사와 마찬가지로) 금지되고 성직자에게 유보되어 있다.[36] 반면에 개혁주의 개신교에서는 나머지 5성사를 비성경적인 예식이라 하여 배척한다.[37] 성공회에서 가톨릭식 전통이 남아있는 것은 성공회가 가톨릭에 우호적이어서라기보다는 종교개혁 전 (고대 및 중세에) 가톨릭을 통해 내려온 기독교 전통을 소중히 해서라고 보는 게 맞다. 성공회는 가톨릭 뿐 아리나 정교회를 통해 내려온 기독교 전통들도 소중히 여겨 성공회 자신의 전례와 신앙에 도입하기도 한다. 예를 들어, 성공회에서 묵주를 사용해서 드리는 기도(묵주기도)는 가톨릭 전통이 아니라 정교회 전통을 따른다.[38] 가톨릭에서도 하느님의 사랑을 훼손한 점을 가슴 아파하는 개인의 절실한 회개(상등통회)만으로 죄 자체는 고해성사 없이도 용서받을 수 있다고 보지만, 중요한 차이점은 가톨릭 신자가 이렇게 절실히 회개를 했더라도 정말 죽기 직전 상황이거나 도저히 성당에 갈 수 없거나 하는 일이 있지 않는 이상 그 회개의 '''마지막 단계'''로서 교회와도 화해하고, 용서받았다는 확인을 받는 고해성사를 '''반드시 해야 한다고''' 가르친다.[39] 다만, 이러한 배타성이 다른 문화권과의 갈등을 낳으므로 교회가 탄생한 서기 1세기부터 기독교인들은 이 문제를 고민하였다. 명나라에서 예수회가 선교할때 중국의 문화에 대하여 진지하게 검토하고 '동아시아식 제사는 기독교의 교리와 충돌하지 않는다'고 해석한게 그 예이다. 현대 기독교 역시도 이러한 배타성을 지양하고자 하는 노력이 일부 교파에서 시도되고 있으며, 비록 다른 종교의 신이나 초월자들을 인정하지는 못하더라도 그 종교의 구성원들과 다른 문화권의 사람들에게는 매너와 존중을 가지고 선교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40] 물론 예수 본인 말로는 '''나는 아브라함을 보았다'''고 하며, 신학에서는 '''야훼의 세 위격이 동시에 일한다'''는 것을 보아 '''구약이 성부의 독무대는 아니다.''' 명확히 구분할 수는 없지만, 분명히 성자와 성령의 행위도 존재한다. 세 위격이 동시에 나온 경우 역시 존재하는데 아브라함의 앞에 세 위격이 인간의 형상을 입고 나타났었다.[41] 반면 신약은 성삼위 야훼 중심이 아닌 성자 예수 중심으로 보여주기 때문에 예수가 세례 받은 이후로는 성부와 성령이 예수의 언급으로나 등장하지 직접 등장해서 뭔가의 행위를 보이지는 않는다.[42] 야훼 본인 말로는 너희가 무지하고 미숙하여 그런 강경책을 쓸 수 밖에 없었다고한다. 당시는 지금과는 달리 여자나 아이는 말하는 짐승 취급하며 적의 남자들은 죄다 죽이고 여자나 아이는 포로로 잡아가는게 당연했으므로, 야훼의 입장에선 원시적이고 무지한 인간의 문화에 맞출 수 밖에 없었다는 것. 당장에 신이 미래의 윤리를 들고와서 이게 너희 인간들이 최종적으로 결정한 윤리니 이걸 따르라.라고 하면 따를 사람이 몇이나될까. 그렇게 잘 대해줬어도 수십, 수백번 뒷통수를 맞았는데 지금의 윤리를 적용하여 다스리려 했다면 '''지금의 유일신교는 존재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자세한건 야훼(비판) 항목 참조.[43] 1.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라 2. 그가 태초에 하나님과 함께 계셨고 3. 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니 하나도 그가 없이는 된 것이 없느니라 (요 1:1~3)[44] '그러면 공심판 이전에는 영혼만 있는가?'라는 질문이 있을 수 있는데, 여기에 대해서는 명확한 정설이 없다. 다만 기독교에서는 영과 육을 이분법적으로 분리하는 것을 반대하고 특히 인간의 육체 역시도 인격(페르소나)을 이루는 한 요소라고 본다. 따라서 영혼만 달랑 존재한다고 말하지는 않는다. 구체적으로는 임시 육체(?)를 가진다고 생각하든, 육체 비스무리한 그 무언가를 가진다고 생각하든 정해진 설은 없지만(...).[45] 즉 다시말해 종말과 천국에 대한 기독교인의 소망은 당연한 것이나, 시기에 대해선 성경에 주(심지어 예수 스스로가 같은 주님이라도 '''그 때는 아들도, 성령도 모르고 오로지 아버지만 아신다'''고한다.)를 제외한 그 누구도 모른다고 못박아놨다는 점. 때문에 "언제언제 '''정확한 그 시간에''' 재림과 세계종말이 올거에요~" 라고 주장하는 '시한부 종말론'은 모두 이단으로 봐도 무방하다.[46] 따라서 기독교 교리에 따르면, 과거 레콘키스타 이후 스페인에서의 아랍계, 유대계 그리스도인들을 추방해버렸던 흑역사라던지 유럽에서의 유대인 박해, 또는 신대륙에서의 흑인-원주민 차별 등의 역사적 악행들은 기독교의 원래 가르침에서 매우 어긋난 행위이다.[47] 개신교 용어로는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 한다고 표현한다.[48] 근대에는 천부인권과도 연관지어진 교리이다.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이므로, 현대 신학에선 인간 존엄성에 대한 모독은 간접적으로는 신성모독과도 연결된다고 해석한다. 그러나 자연에 대하여 인간이 정복자적 입장을 취하여 부작용을 낳았다는 환경주의자들의 비판이 있기도 하다. 하지만 기독교의 전반적인 세계관과 창세기의 문맥을 고려하자면 창 1:28절의 문화명령에 따른 인류가 모든 생물을 정복하라는 말은 자연과 함께 더불어 상생하라는 의미로 해석된다.[49] 해석에 따라서, 아담은 하와가 창조됨으로써 비로소 남자가 되었다는 견해도 있다.[50] 바벨탑 에피소드의 핵심 주제이기도 하며, 인간의 언어가 갈라진 이유를 바벨탑 이야기로 설명했다. 물론 과학적, 역사학적 의미로써 바벨탑 이야기를 하는건 아니다.[51] 당연하지만 이 교리는 하나님과 인간의 영혼이 물리적인 '합체'가 됨을 말하는 건 아니다. '하나님과 결합을 이룬다'라고 표현함은, 하느님의 구원으로 인해 하나님과 함께 천국에서 영원한 생명과 기쁨을 누릴 수 있는 자격에 올라섬을 말한다.[52] 참조[53] 인간이 지옥에 가는 신학적 이유는, 원죄 자체 때문이 아니라 원죄를 극복하지 않고 '자기 의지'로 하나님을 거슬러 불신 및 죄를 짓기 때문이다.[54] 여기서도, 인간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의롭게 되고 구원받는 은총은 오로지 하나님에게서만 온다고 보는 견해는 공통적이지만, 가톨릭에선 여기에 더해 인간이 '주어진 자유의지로 은총에 협력하는 자세'가 구원에 필요하다고 보는 반면, 개신교에서는 모든 믿음과 행위 및 구원 전부가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총이라고 보는 차이점이 존재한다.[55] 앞에서도 설명했지만, '원죄'란 말을 쓰기는 하지만 원죄 그 자체로는 사람을 구원받지 못하게 하는 '죄'인건 아니다. 자세한 것은 원죄 항목 참조.[56] 인간이 자신의 자유의지로 지은 여러 죄[57] 요한 복음서 6장 50절~58절 참고.[58] 보편교회인 가톨릭, 정교회 등에서는 이 과정에 고해성사가 들어간다.[59] 일단 7성사라는 개념 자체를 인정하지 않는다.[60] 다만 대다수의 개신교 종파들에서는 세례와 성찬[59] 이 교리상으로 구원의 필수 조건이 아니다. 이에 따르면 세례는 믿음을 확인받는 예식이고 '''믿음'''자체가 구원의 조건이다. 이는 구원의 과정에서 세례성사를 매우 중요하게 여기는 가톨릭과의 큰 차이로 볼 수 있다.[61]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착각하는 게 신약에선 믿음을 강조한 것뿐이지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이라는 사실을 잘 모른다. 하지만 천국은 인간이 어떤 업적을 이루어서 자격이 주어지는 것이 아닌 바로 진정한 사랑을 알고 실천함으로써 신(사랑의 속성을 지님)께 의롭다 칭함을 받아 주어진다는 사실을 잊어선 안된다.[62] 마르코 복음서 12장 18-27절, 루카 복음서 20장 27-40절, 코린토 1서 15장 35-54절[63] 케냐와 탄자니아, 우간다, 잠비아, 남아프리카 공화국같은 나라들이 대표적으로, 대부분 일부다처제가 기독교인들 사이에서도 토착문화로서 인정 내지 관습적으로 용인되고있다. 성공회 주교회의에서 일부다처제는 아프리카의 전통 문화라서 어쩔 수 없다 라면서 사실상 용인해주기도 할 정도.[64] 심지어 구약 율법을 대단히 강조하는 재림교회나 에티오피아 정교회도, 그리고 심지어 신약성경을 받아들인 기독교의 유대교적 분파라고 할 수 있는 메시아주의 유대교파에서도 율법보다 믿음이 구원받는데 필수라는 점은 인정하고 있다.[65] 단 금식에 대한 교리는 일부 남아 있는데, 초대 교회에서는 월요일과 목요일에 금식을 하던 유대교 관습을 조금 변형시켜 수요일과 금요일에 금식을 하는 전통이 있었으며, 지금도 그 초대 교회 그 자체인 가톨릭과 정교회 그리고 초대교회에서 거의 바뀐게 많지 않은 성공회에는 특정 일자(정교회에서는 매주 수요일과 금요일과 대사순절과 기타 축일이나 축일 준비 기간 동안 고기류 생선류 유제품류 기름류 가금란류 주류를 금하고, 가톨릭에서는 매주 금요일에 고기류를 그리고 사순시기의 특정 일자에 하루 한끼를 안 먹는 금식을 한다. 성공회는 성공회기도서에 언급된 '재일'에 육식을 금하거나 금식을 한다.)의 금식 규정이 있다.(이 정도 규정이 지금은 많이 완화된 편이고, 옛날엔 의무금식일이 연중에도 매우 자주 있었다.)콥트 교회나 에티오피아 정교회 등 오리엔트 정교회에서는 오랫동안 같이 살았던 무슬림들의 영향도 있고 역사가 오랜 교회 전통의 영향도 있고 해서 금식일이 매우 많다.[66] 종교 개혁 이후 출현한 주요 개신교 3교파는 성공회, 루터교회, 칼뱅주의(사실상 장로회)이며, 이들 역시 시간이 흐르며 내부에서 교파가 다양하게 갈라진다.[67] 동방 전례를 따르면서 교황의 수위권을 인정하는 가톨릭이다.[68] 칼케돈 공의회(제4차 세계 공의회) 때 동의하지 않은 기독교 종파이다.[69] 사도로부터 이어지는 교회, 전례를 중시하는 교회를 뜻한다.[70] 초기의 은둔적이고 사도적이던 교회로 돌아가자는 운동. 성경을 매우 중시하나 삼위일체를 부정한다.[71] 본래 정교회나 오리엔트 정교회 등에서 출발했으나 교황의 수위권을 받아들인 교파들이다. 그래서 전례는 로마 전례가 아닌 동방 기독교 전례를 따른다.[72] 서방교회가 분열될 때 가톨릭과 갈라졌으므로 개신교로 분류되고 많은 특성을 개신교와 공유하지만, 교리적, 전례적으로 보면 가톨릭과의 공통점도 상당히 많다.[73] 통계에 따라서 다르지만, 모든 통계에서 적어도 전체 그리스도인의 과반수는 넘는 것으로 조사된다.[74] 이는 잘못된 표헌이다. 로마 교회만을 지칭하는 단어가 될 수 있고, 동방 가톨릭 교회를 부정하는 단어가 될 수도 있다.[75] 네스토리우스파는 이미 칼케돈 공의회 이전 에페소 공의회(제3차 세계 공의회)에서 이단으로 규정되었다. 단, 제4차 세계 공의회인 칼케돈 공의회에서 예수의 신성(神性)을 강조한 단성론 교회와 더불어 확실히 이단으로 낙인찍혀 파문된 것일 뿐.[76] 출처[77] 20세기 시작과 함께 등장한 신생 교파로, 성령의 은사들을 중요시하고 활동적이고 열성적인 신앙을 중시하는 특징을 가진다. 덕분에 개발도상국과 남반구 국가들에서 폭발적인 성장을 이끌고 있다고. 한국에서는 여의도 순복음교회가 오순절주의 신학을 따르고 있다.[78] 하지만 가톨릭이 절대다수였던 과거와 달리 많은 남미 국가에서 복음주의 개신교가 크게 성장해 가톨릭만이 남미의 절대적인 종파라는 인식은 옛말이 되었다. 물론 여전히 남미에서 가장 큰 교세와 영향력이 막대한 종파다.[79] 이들이야 어차피 서방교회에 큰 반감을 가진 사람들이라서 무슬림 이웃들도 역사적으로 악연이 많은 가톨릭이나 미국의 주류인 개신교보다는 정교회를 그나마 선호하는 편이라고 한다.[80] 개신교가 강세인 지역이 아닌 늘어나는 지역이다.[81] 많은 국가들이 루터회나 성공회를 믿고있다.[82] 최근 중국 개신교 인구가 적게는 1억2천에서 많게는 1억5천까지 있다고 한다.[83] 대표적으로 남아공 등에 많은 시온 크리스티안 교회, 콩고 지역에서 세력이 큰 킴방기즘 기독교나 알라두라 사도교회 같은 토착 독립교회에서 이런 문제나 혼합주의 내지는 이단시비가 많다.[84] 북아프리카나 에티오피아는 초대교회~교부 시대부터 기독교 신앙이 자라잡았을 정도로 역사가 오래되었으나,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와 중부 아프리카, 서아프리카에 본격적으로 광범위한 기독교화가 시작된 것은 제국주의 시기 이후이다. 그나마도 이때는 대다수가 이슬람과 토착 신앙을 믿었지 막 진출한 기독교가 이 지역의 보편적인 종교로서 자리잡지는 못했었다. 기독교가 사하라 이남 주민 상당수~대다수의 종교로 널리 자리잡은 시기는 제국주의 시기가 끝난 20세기 중반 이후부터다. 즉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의 기독교화는 생각보다 역사가 짧은 편.[85] 나갈랜드, 메갈라야 주 등[86] 이쪽(시로 말랑카라, 시로 말라바르 기독교)은 아예 초대교회 직후 시기부터 기독교 선교가 이루어졌다.[87] 구약 시대 유대교의 신비주의 종파중 하나. 하나님과의 보다 완전한 일치를 추구하여 사해 주변에 종교적 공동체를 만들고 장로의 지도하에 공동생활을 하였다. 재산은 공유였고, 예배와 독서와 공동식사를 중요한 행사로 삼았다. 이들은 1세기 말 경에는 소멸했지만 이들의 신앙과 생활 양식은 기독교에 큰 영향을 주었다. 세례자 요한이 이 종파의 일원이었다는 설도 있다.[88] 조금더 정확히 말하자면, 가톨릭과 정교회의 교리상으론 이 말이 진짜다. 외형상으로는 빵과 포도주이지만, 실체는 예수 그리스도의 살과 피로 변화했다고 믿기 때문이다(성변화). 물론 로마인들이 오해하던 그런 의미는 아니지만.[89] 참고로 기독교 신약성경의 마지막 권인 요한묵시록이 이 시기에 집필되었다고 한다.[90] Frend, W. H. C. (2014). Martyrdom and persecution in the early church: A study of conflict from the Maccabees to Donatus. Wipf and Stock Publishers.[91] 상류층까지 기독교가 널리 퍼지게 된것은 콘스탄티누스 1세 이후의 일이다.[92] 송혜경, 《사탄, 악마가 된 고발자》 207-210쪽 참고.[93] 데키우스 황제는 고트족과 싸우다 전사하였고 발레리아누스는 사산조 페르시아와 싸우다 포로로 잡힌다.[94] 물론 그렇다고 100% 순수하게 정치적 이유만으로 이용했다고 보기엔 어렵고, 아무리 낮춰잡아도 모친의 영향으로 기독교에 대한 호감과 미미한 믿음 정도는 있었다고 여겨진다. 종합적으로 보자면, 모친 따라 어릴때부터 성당에 익숙하고 가끔 미사에도 나오지만, 딱히 열심하지도 않고 가끔씩은 점집도 가보는 널널한 믿음(?)을 가진 동네 아저씨 정도로 보면 얼추 맞을 것이다.[95] 가톨릭 신학에서는 세례가 죄를 씻어 준다고 고백한다. 그리고 세례 이후 죄를 지었다면 뉘우치고 고해성사를 봐야한다.[96] 그 이전에 아르메니아가 서기 301년에 먼저 국교로 선포하였다고도 한다.[97] 성부, 성자, 성령을 모두 하나의 존재임을 인정하는 종파.[98] 아타나시우스파의 교리를 부정. 즉 삼위일체를 부정하는 종파. 현재 기독교의 주류가 된 아타나시우스파에 의해 이단으로 규정되었다.[99] 특히 유피테르를 믿었다.[100] 물론 로마 황제와 콘스탄티노플 총대주교가 항상 같은 편이었던 것은 아니고, 로마 황제가 콘스탄티노플 총대주교를 견제하기 위해 로마 교황을 끌어오는 경우도 있었다.[101] 가톨릭 우위의 역사관이든 정교 우위의 역사관이든[102] 물론 동서 분열에서도 필리오케 논쟁이라는 신학적 논쟁은 있었지만 루터의 경우와 비교할 때 상대적으로.[103] 다만 개혁(reform)이라는 말에서 '진보' 혹은 '미래'를 떠올리는 현대인의 관념과는 달리, 루터가 지향한 것은 '원래의 그리스도교'이지 어떤 신생 교리가 아니었고, 바라본 것은 과거이지 미래가 아니었다. 마찬가지로 칼뱅도, 가톨릭도 전에는 없던 어떤 새로운 것을 만들 의도가 없었고, 지향한 것은 '발견'이지 '발명'이 아니었다. 종교개혁을 '진보의 개신교 vs 보수의 가톨릭' 혹은 '원천을 찾는 개신교 vs 새로운 교리를 만드는 가톨릭'으로 파악해선 안된다는 말이다.[104] 그러나 종교로서의 그리스도교는 20세기 중반까지만 하더라도 서양인의 사고를 주도했다.[105] 조금 의외일수도 있지만, 독실한 가톨릭교인들의 입장에서는 과학이 발전한다고 해서 종교가 흔들린다고 생각하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가톨릭교의 교리는 자명한 진리이니 과학이 발전하면 하느님의 섭리를 좀 더 잘 이해하게 될 것이라 여겼던 것이다. 그러나 현실은(...)[106] 물론 해당 나라들의 기독교계들에서도 자국들의 이런 현상에 위기의식을 느끼고 자기들의 교세를 지키고자 나름대로 고군분투하고 그게 적지않은 효과를 거둬 흥하는 교파들도 있으나, 그래도 예전에 비하면 교회의 사회적 영향력이 약화된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107] 현대에 들어 기독교 자체도 세속화가 많이 진행이 되었으며, 현재 세계에서 발전된 축에 속하는 나라들 중 상당수가 기독교신자가 많은 국가라는 점이 현대에 들어 기독교가 세계화되는데 많은 영향을 준 듯 보인다. 웬지 그 종교를 믿으면 본인도 복을받고 부유해 질 수 있다는 느낌도 들것이고...[108] 미국의 2015 Pew reserch,《세계종교 미래 보고서》[109] 이것이 교회합일을 교황청 주도의 합일로 우려하는 시각도 있다. 이런 우려는 비단 개신교도들 뿐만 아니라 한 때 '''왕 위에 군림했던 군주와 마찬가지였던 교황의 파워'''가 현대사회에서 이런 활동으로 다시 이루어지는것이 '''민주정치를 위협'''할 수도 있다고 본다. 일례로 대항해시대 포르투갈과 에스파냐(스페인)이 영토문제로 다툰 것을 '''교황의 권위로 세상을 반으로 나눠서 한 쪽은 이쪽, 반대쪽은 저쪽 이런 식으로 분배 해 버린 것이나, 그것을 따라 복종 한 사례'''와 비슷한 일이 적지 않았다. 또 기존 정부의 통제가 강한 공산권에서도 이런 흐름을 못마땅하게 여긴다. 정교회의 경우 독립교회 구조로 구성되지만, 가톨릭은 모두가 알다시피, 교황의 교도권 하에 조직되기에...[110] 루터교회와 성공회는 다른 개신교 교파들에 비하면 교리나 전례면에서 가톨릭과 유사한 점이 많다. 이는 종교개혁 당시 교회의 전통들 가운데 성경에 언급되지 않은 것은 모두 폐기한 개혁교회/장로교회나 침례교회와는 달리, 루터교회와 성공회는 성경과 충돌하지 않는 전통은 그대로 놔두었기 때문이다.[111] 이 둘이 '교회 조직'으로 인정하는 것은 그 자신과 상대방밖에 없다.[112] 요셉 피퍼, 중세 스콜라 철학 -신앙과 이성 사이의 조화와 갈등-, 김진태 옮김, 서울 가톨릭대학교 출판부, 2003, p50[113] 한국 천주교 주교회의의 주석성경에 의하면, BC 2세기경이 되면 알렉산드리아의 유대인 공동체가 팔레스티나 전체 인구보다 더 많았다.[114] 아다만티움을 변형시킨 별명이다. 우리말로 번역할때는 '강철인간', '강철의 철학자', '강철의 신학자' 등으로도 옮긴다.[115] 이 때문에 오리게네스를 최초의 신학자로 보는 견해도 강하다. 이를테면 가톨릭출판사에서 나온 서적인 <신학사>가 그러하다.[116] 물론 니체의 경우는 디스 대상에 종교 또한 포함되어 있다.[117] 물론 미국 독립선언서를 쓴 토마스 제퍼슨의 사례처럼, 근대의 평등사상은 상당 수 이신론적 가치에 영향을 받았다. 그러나 이러한 개념의 근본에서는 결국 기독교의 영향을 부정하기 어렵다. 이 시기 이신론자 중 상당수는 자기가 그리스도인이라고 주장하기도 했고.[118] '보편'이라는게 진짜로 실재하는 것인지, 혹은 그렇게 이름 붙여졌을 뿐인지의 논쟁이다. 전자의 관점을 극단적으로 수용할 경우 전체주의 등으로 변질될 수 있는 문제점이 존재한다. 또한 후자의 관점을 극단적으로 수용할 경우, 인권이라는게 인간이라면 보편적으로 주어지는 어떤 권리가 아니라, 능력에 따라 얻는 권리로 바뀌는 폐단이 있다. 이 관점에 의하면 '인간'이라는 개념 역시도 단지 사람들이 편의상 그렇게 이름 붙인 것일 뿐이며, '보편적인 인간'이라는건 비실재하는 개념이기 때문이다. 때문에 당연히 상식적으로 중도론이 나오게 되고, 신학에서도 철학에서도 중도론을 밀고 있다. 물론 그 중도라는게 도대체 어느 지점을 말하는 것인지에 대해서는 이견들이 여전히 존재한다.[119] 20세기 중반에 전체주의 때문에 대전쟁이 발생한 것을 생각해보면, 결코 실제 생활과 동떨어진 논쟁이 아니다.[120] 토마스 아퀴나스의 표현을 빌리자면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라는 유능한 집사를 고용한 셈이다[121] 물론 개신교와 천주교에 모두 신자로 등록된 이들이 존재하지만, 이를 모두 고려하더라도 이 수치는 상당히 높은 수치이다.[122] 세계 어디든 기독교가 처음으로 전래될 때는 원래 있던 유물과 비슷한 형태로 만들어진다. 예를 들면 아프리카에서는 예수가 백인이 아닌 흑인으로, 중남미에서는 아메리카 원주민으로 그려지는 식이다. 즉 해당 유물이 한국 최초의 '아기예수를 품은 마리아상'이라면 다른 불상과 닮은 것이 이상한 일은 아니다.[123] '복음을 믿는 사람'이라는 뜻의 몽골어.[124] 그레고리우스의 몽골식 발음.[125] 《한권으로 읽는 한국 기독교의 역사》 역사 류대영. 2019. 18-19p[126] 이전 버전에는 간부나 사병들의 종교 명칭에 대한 오해로 설명되어 있었으나 그보다 더 중요한 건 대한민국 국군에서 공식적으로 기독교와 천주교로 구분지어 부르고 있다는 것이다. 가톨릭 신자들 입장에선 껄끄러울 수도 있지만 당장은 인식 개선 가지고 되는 문제가 아니다.[127] 여담으로 개신교도 딱히 군대에서 종교활동이 제대로 되는 건 아니다. 군목이 대부분 장로회 소속이기 때문에 장로회가 아닌 경우(감리회, 구세군, 루터회, 성공회 등) 다른 종파의 교회에서 예배를 해야하는 불상사가 생길 가능성이 크다. 정교회는 아예 존재 자체를 모르는 사람이 대다수다. 실제로 어떤 병사는 대대로 성공회를 믿어오던 집안 출신인데, 성공회도 개신교라며 진중 성당이 아닌 진중 교회로 다녔다고 한다.[128] 성공회나 루터회는 교회일치에 매우 적극적인 교파여서, 상황에 맞추어 다른 교파 예배에 적응하는 것에 크게 불만을 갖지 않는다. 물론 자기 교파의 방식대로 예배드리는 것을 제일 원하는 것은 당연하다.[129] 이건 다른 문제보다, 국방부가 종교를 기독교, 천주교, 불교로 나누기 때문이다. 병역검사를 해보았다면 인적사항 중 종교란 선택지가 기독교, 천주교, 불교, 여호와의 증인, 원불교, 기타로 나뉘는 것을 알 수 있다.[130] 예를 들어 마테오 리치의 천주실의 라던가[131] 마테오 리치 신부는 언어에 천재적 재능이 있어서 사서삼경을 서양식으로 번역하고, 동양 고전을 천주교 세계관에 따라 주석을 달기도 했다. 그러나 이것들이 한때 중국 문인들의 관심을 끌긴 했으나 너무 많은 허점이 있어서 받아들이진 않았다. 물론 현재 문헌고증학적으론 마테오 리치의 동양 고전해석은 별 근거는 없다.[132] 개신교가 한국에 처음 들어왔을 당시에는 평안도 쪽에 신자가 많았으며, 평안도 방언으로는 '하늘'을 '하날'이라고 한다.[133] 단상에서 성경 말씀을 낭독할 때 주로 쓰인다.[134] 영미권으로 부터 들어온 장로회(스코틀랜드), 감리회(잉글랜드), 성공회(잉글랜드) 등의 교파라면 크게 문제될 건 없지만, 굳이 신의 이름을 영어로 불러야 할 이유가 있는 건 아니다. 사실 천주교 입장에선 이 드립도 라틴어인 DEUS 로 하자고 태클 걸 수 있다. 루터교회에서 Gott(고트)라 하자고 할 수도 있고...[135] 명동성당은 민주화운동의 상징적인 공간이다. 대한성공회 서울주교좌성당과 한국기독교장로회(약칭 '''기장''') 향린교회도 민주화 역사에 중요한 장소들이지만, 이들 교파의 세가 개신교 내에서 너무 작다.[136] 실제로 교회수별 신자 수를 나눠 보면 실은 70~80명씩 배분되는 정원이 생겨야 하지만, 문제는 그게 아니고 메가처치들이 10만 20만씩을 먹고 있다는 것이고 이 메가처치들은 거의 보수라는 점이 문제. 즉, 교회수가 많아도 신자 머리수를 봐도 보수교단에 소속된 신자가 대부분일 것이라는 점은 계산상 어쩔수 없다.[137] 예를 들어 예장합동, 침례회 같은 신학적으로 보수적인 교단에도 얼마든지 진보적인 목사들이나 신자들이 존재하며, 신학적으로 진보적인 감리회나 성공회에도 정치적으로 보수적인 신자들은 얼마든지 존재한다[138] 단 미국의 경우 신학적으로 보수적인 경우 정치적으로도 보수적인 경우가 꽤나 많다[139] 가끔 기독교 믿는 나라들이 아닌 나라보다 더 잘산다거나 가톨릭 믿는 나라는 가난하다거나 미국이 기독교 믿어서 잘산다거나 하는 이상한 소리를 해대는 신자들이 있다. 이는 신앙적인 면에서 생각해보더라도 신앙의 본질을 흐리는 주장들이다. [140] 참고할 만한 건, 예수 그리스도와 12사도 등 신약이 될수록 믿음에도 불구하고 현실의 복을 받기는커녕 가난하고 박해받는 생활을 하다 간 사람들이 많으며, 제명에 죽은 사람은 사도 요한 하나뿐, 나머지는 전부 순교했다. 베드로처럼 십자가에 거꾸로 죽은 사람부터 맞아 죽은 사람까지 순교 방법도 제각각. 사도 요한도 인생을 곱게 보내지 못했고, 토마스 같은 경우는 인도까지 가서 순교했다. 신자들도 초대교회를 비롯해 로마 제국에서 국교로 지정되기 전까지는 비참했는데, 차별은 당연하고 툭하면 잡아다 원형경기장에 사자밥으로 풀어 놓았다. 네로 황제의 방화사건의 최대 피해자이기도 하고.[141] 어려운 사람들은 도움을 얻으면 뭔가 갚아야 할 것 같은 심정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142] 이것은 세금 감면을 목적으로 한 기부행위와는 다른 차원의 비판이다. 세금 감면을 목적으로 한 기부행위는 타인의 행위 양태에 영향을 미치고자 하는 의도는 그다지 없을 것이기 때문.[143] 그러나 웬만한 교회에서는 자비로 선교하며 교회의 예산을 사용할 시 동의를 구한다.[144] 물론 한국에서든 세계적으로든 가장 신자수가 많은 종파는 가톨릭이지만, 개신교 전체를 하나로 묶을 경우 한국·미국 같은 특정 지역에선 개신교의 세력이 더 강하다. 개신교 자체는 절대로 단일 종파가 아니지만, '기독교'라는 이름으로 천주교 빼고 자기들끼리 하나의 종교임을 강조하며 여러 분야에서 잘 뭉쳐있고 대외적으로 종교계의 큰 목소리를 낼 때는 '기독교', '한국교회'등의 명칭을 고수하며 종파들끼리 교류도 많다. [145] 종교다원주의를 인정한다는 뜻이 아니다. 기독교의 교리를 절대적으로 고수하되 종교 간의 화해와 화합을 위해 서로 호의와 협력을 표하는 수준으로 그치는 교단들이 대다수이다.[146] 단, 종교적으로 명확한 입장표명인지 친목적 인사치레인지는 분명하지 않다.[147] 이단 종파들이 항상 언급하는 순복음교회 같은 경우야 특이한 경우고, 사실 순복음교회는 이단적 설교들의 잘못을 인정하고 취소함으로 정통 반열에 오른 것이다. 거기다 아직도 순복음교회에 대한 비판은 많은 편이다. 신사도 운동과 연계되어 있다든지(...).[148] 지금도 일부 교단에서는 불가능하다.[149] 하느님/하나님 포괄[150] 예수의 모습을 아폴론과 비슷하게 그린 건, 기독교가 공인된 지 얼마 안 된 통일 로마 제국 말기부터의 이야기다. 근데 미켈란젤로는 그 로마 제국이 멸망한 지 100년도 채 안됐을 시절의 사람이고, 이 시기의 사람들은 로마 제국에서건 나머지 유럽 지역에서건 이미 현대인들에게 익히 알려진 모습으로 예수를 묘사하고 있었다.[151] 참고로 예수의 모습을 우리가 아는 모습으로 처음 묘사한 곳은 다름아닌 중동이었다.[152] 터키 등 몇몇 세속적인 이슬람 국가들의 경우 술은 잘먹으면서 돼지고기는 못먹는 사람들이 많은데, 비슷하게 문화적으로 혐오적인 음식이라는 관념이 박혀서 그렇다.[153] 유서깊은 성지 순례길의 종착지로 유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