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영담

 

魚泳潭
1532년 ~ 1594년 4월 9일[1]
1. 개요
2. 생애
3. 창작물에서


1. 개요


조선시대의 인물로, 임진왜란 당시의 무관이다. 본관은 함종(咸從). 자(字)는 경유(景游)이다.

2. 생애


어영담은 1532년 내금위(內禁衛) 적순부위(迪順副尉) 행충무위부사맹(行忠武衛副司猛) 어심(魚深)의 아들로 태어났다. 고향이 어디인지는 불명이나 경상도 함안군에 거주했다고 한다.
그는 무예에 능하고 담력과 지략이 뛰어나 일찍이 여도만호(呂島萬戶)에 특채되었고, 1564년(명종 19) 식년시 무과에서 병과 제3인(전체 제11인)으로 급제했다.# 진해 등 여러 진관(鎭管)의 막료(幕僚)로 있으면서 해로(海路)를 익혔다.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광양(光陽)현감으로서 이순신(李舜臣)의 휘하에서 수로 향도(水路嚮導)로 활약, 옥포 해전합포 해전·당항포 해전·율포 해전 등에서 조선 수군이 승리하는 데 공을 세웠다. 1594년 전염병에 걸려 한산 통제영에서 세상을 떠났다.
'''인물평에 있어서 엄격하고 깐깐하기로 유명한[2] 이순신 장군이 대단히 높이 평가한 인물'''이다. 이순신은 조정에 올린 장계에 어영담에 대해 "경상, 전라 두 지역의 변장으로 임명되어 물길의 형세를 잘 알고 계책이 뛰어난 사람"이라고 평하며 "호남의 한 고을이 이제까지 보전된 데는 이 사람이 한몫하였습니다"라고 그의 능력과 공적을 매우 높이 샀으며, 어영담이 전염병으로 사망한 날인 1594년 4월 초9일 일기에는 "이 애통함을 어찌 말로 다할 수 있으랴!"라고 비통한 심정을 드러내기도 했다. 정운과 더불어 이순신이 가장 신뢰하고 아꼈던 부관 중 한 명이었던 셈. 어찌 보면 이순신을 다룬 창작물에서 이순신의 '군사참모' 포지션으로 각색하기에 가장 적합한 인물인 셈이다.

3. 창작물에서


드라마 불멸의 이순신에서는 김진태가 연기했다. 실제 역사에서와 같이 물길을 대단히 잘 아는 것이 가장 큰 특징인 캐릭터로 나오며, 대사 중에서도 물길에 대한 것이 가장 많다. 작중에서는 여도 만호 직을 맡았다가 사직하여 어부가 된 상태에서 처음 등장하는데, 떠돌이 어부들인 포작들을 전임 전라 좌수사가 왜구로 몰아서 목을 베도록 했던 데 항의했다가 파직된 것[3]. 이후 이순신이 삼고초려해서 데려오게 되지만, 1594년에 전염병에 걸려 한산도 진중에서 세상을 떠났다.
실제 역사와는 달리 양녀인 '어진'이 전라 좌수영의 의녀로 등장하여 활약하기도 하는데, 이 역을 맡았던 배우 김영임은 2007년에 유방암으로 세상을 떠났다.

[1] 난중일기 근거.[2] 충무공의 인물평은 감정을 가진 사람의 평이 맞나 싶을 정도로 객관성을 가지기 위해 노력했다. 물론 공도 사람이다보니 감정의 개입이 전혀 없디고 볼 수는 없으나 그런걸 감안해도 정말 객관적인 시각으로 바라본 인물 평을 난중일기에 남겼고 그 엄격한 잣대는 비단 남에게만 적용된 것이 아니라 자신에게도 마찮가지였다.(심지어 자신에게는 자학에 가까울 정도로 더 엄하게)[3] 설정상 김완이 이 때 어영담의 휘하 권관이었는데, 좌수사의 명에 따라 포작들을 처형했던 바 있다. 이순신의 임관(任官) 요청을 처음에 거절한 것도 이 때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