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드 데이비
1. 개요
영국의 정치인. 자유민주당의 당수를 역임했다.
2. 생애
노팅엄셔 맨스필드에서 태어나 수학했다. 아버지는 에드가 4살일때 사망했고, 어머니가 15살일때 사망했기 때문에 에드 데이비는 외조부모 밑에서 자랐다. 외조부의 집안이 유복해 사립고등학교를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하고 옥스퍼드 대학교의 경제학, 철학, 정치학을 학사로 졸업했다. 이후 런던 대학교의 경제학부를 석사 과정으로 졸업했다. 대학교를 졸업한 직후 자유민주당의 경제 정책에 긴밀히 관여하였고 1992년에는 중앙은행 독립에도 영향을 미쳤다. 1993년부터 1997년까지는 통계 컨설팅 회사에서 근무했다.
1997년 총선에서 킹스턴&서비턴 선거구에 자유민주당 소속으로 출마, 보수당 후보를 불과 56표차로 꺾고 당선되어 서민원 의원으로서의 커리어를 시작했다. 2003년 동성애 합법화를 주도한 서민원중 한명이었고 런던 시의회의 설립을 주장하기도 했다.
2012년 크리스 헨 장관이 사임하자 그 뒤를 이어 에너지 기후변화부 장관으로 재직했다. 에드 데이비 장관은 녹색 성장 그룹을 조성하며 한국과 중국 등으로부터 에너지를 수입하고 러시아에 대한 가스 의존도를 낮추는 정책을 추구했다. 또 소규모 기업의 에너지 산업 진출에 대한 규제를 철폐하고 원자력 발전소를 건설하는 등의 보수적인 행보도 보였다. 그러나 2013년에는 난로를 피우는 대신 점퍼를 입으라는 정책을 발표했는데 이때 점퍼 회사에게 돈을 받은 것이 아니냐는 '점퍼게이트'의혹을 받아 이미지가 실추되었고, 2015년 총선에서 5선 도선에 실패하고 낙선하는 굴욕을 당했다.
그러나 2017년 총선에서는 보수당 후보를 4천여표 가량 앞서면서 의석 탈환에 성공했다. 2017년 닉 클레그 당수의 후임으로 유력하게 거론되었으나 결과적으로 당수가 되지는 못했다. 2019년 총선에서는 보수당 후보를 20% 가까운 표차로 누르면서 6선에 성공했다. 2019년 총선의 결과에 책임지고 조 스윈슨 대표가 사임하자 그 후임으로 거론되었다. 자유민주당 당수 결선투표 결과 라일라 모란 의원을 큰 표차로 꺾고 당수로 선출되었다.
3. 소속 정당
4. 선거 이력
5. 여담
- 대학교에 다닐때 학비를 벌기 위해 도축 공장에서 일한적도 있다고 한다.
- 1995년 런던 지하철의 클래펌 정션(Clapham Junction)역에서 선로에 떨어진 여성을 구해 용맹상을 수여 받았다.
- 2016년 정치, 경제 부분의 공로를 인정받아 기사 작위를 수여받았다.
- 영어외에 스페인어, 프랑스어, 독일어를 구사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