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이비드 캐머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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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영국의 정치인. '''영국 제75대 총리'''를 지냈다. 2010년 5월 11일, 약 13년만의 보수당 정권 교체에 성공함과 동시에 취임했고, 2016년 7월 13일, 브렉시트 국민투표의 가결에 대한 책임을 지고 사퇴할 때까지 재임했다. 여담으로 '''약 200년만에 최연소 영국 총리 취임 기록을 경신한 인물'''이기도 하다.[7]
2. 생애
1966년 10월 9일 런던 출생(만 58살). 윌리엄 4세의 후손으로, 엘리자베스 2세와는 먼 친척 사이다.[8] 종교는 잉글랜드 국교회(성공회). 참고로 캐머런 가문 자체는 스코틀랜드의 가문이다. 데이비드 캐머런은 이미 꽤나 먼 조상대부터 본가와 거리가 먼 분가 출신이었지만[9] 캐머런 가문 본가는 현재도 스코틀랜드의 유서 깊은 귀족 가문으로 존재한다.
학력을 봐도 이튼 스쿨 → 옥스퍼드대 PPE(정치학, 철학, 경제학 복합전공) 과정이라는 영국 최고의 엘리트 코스를 거쳤다.
역대 영국 총리들이 내각의 주요 보직(재무장관, 외무장관, 내무장관 등)을 거쳐 총리의 지위에 오른 것과 달리, 캐머런은 내각 주요 보직을 '''한 번도''' 거치지 않고 총리에 오른 이례적인 인물이다. [10] 그림자 내각[11] 으로 2005년 교육부 장관을 6개월 간 잠깐 치르고 바로 당수가 되었다. 이게 사실 더 치명적.[12] 당연히 그림자 내각 기간 동안 이름만 올려놓는 게 아니라 집권해서 정말 해단 부서의 장관직 수행을 대비해서 직무를 수행하는 것이기 때문에 그림자 내각 동안 해당 분야의 경험이 쌓이고 전문가가 되는 효과가 있다. 일단 해당 정당이 집권할 경우 해당 인물이 그 분야의 장관이 되는 것을 상정하기 때문에 해당 인물의 능력이 수권정당으로서의 능력으로 보이기 때문. 대통령제로 대통령이 주로 재야에 있던 전문가를 임명하는 형식인 우리나라와는 차이가 있어서 개념이 헷갈릴 수 있다.
캐머런의 경우 2001년에 하원의원으로 당선되었다가 2005년 영국 보수당 당수로 선출되었다. 당시 듣보잡 재선 의원에 불과했던 캐머런은 열정적인 출마 연설로 순식간에 유력 당수 후보로 떠올랐고, 결국 당선됨으로서 한 순간에 주요 정치인으로 등극한 것. 게다가 실질적으로 정치 입문 9년 만에 총리가 된 셈이니 정치인으로서는 쾌속 승진인 셈. 충공깽. 물론 그의 정당인으로서의 경력은 최소 20년 이상은 되었다는 걸 감안해야 한다.
데이비드 캐머런은 총리가 되기 직전인 2009년에 첫째 아들 이반 레지널드 이언 캐머런(Ivan Reginald Ian Cameron, 2002년생)이 오타하라 증후군(大田原症候群, Ohtahara syndrome)이라는 희귀병을 앓다가 세상을 뜨는 슬픔을 겪기도 하였다.
2.1. 13년만의 정권 교체
2010년 계속되는 세계금융위기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한 영국 노동당의 삽질을 발판으로 삼아 1997년 노동당에 정권을 내준 이후 13년 만에 집권에 성공. 하지만 어느 정당도 의회 의석의 과반수를 넘기지 못한 상황이라 결국 영국 보수당이 제1당임에도 불구하고 자유민주당과의 연정 협상을 통해 보수당-자유민주당 연정체제로 수상으로 재임 했었다. 이후 2015년 5월 영국 전역에서 치뤄진 총선에서 단독 과반을 확보해 영국 보수당 단독 내각의 총리로 짧게나마 재임하였다.
2.1.1. 긍정적 평가: 경제 정책
데이비드 캐머런은 처음부터 강력한 보수정책을 내걸고 당선되었다.[13] 당선된 이후 과감한 재정 감축을 단행했고, 공무원 임금을 동결하는 강수를 두었다. 이러한 정책은 많은 반발을 불러왔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캐머런 정부는 이러한 정책을 뚝심있게 밀어붙였다.
한 때는 IMF가 경고를 할 정도로 캐머런의 이러한 경제 행보는 위태로워 보였으나, # 참고기사 그 뒤에 IMF는 자신의 판단이 틀렸다는 것을 인정해야 했다.# 참고기사. 뚝심있는 자유주의 정책이 마침내 성공한 것이다.
기업의 활동을 지원하기 위한 정책들도 돋보였다. '레드 테이프 첼린지'를 통해 과감한 규제 개혁을 펼쳤고, # 참고기사 스타트업 기업들에게 다양한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 참고기사
그리고 캐머런 정부는 마침내 영국/경제를 회생의 길로 이끌었다. # 참고기사 경제성장률은 다시 오르고, 다른 유럽 국가들이 세계금융위기의 여파에 신음하는 동안 영국은 아주 빠르게 금융위기의 늪에서 벗어났다. 유럽에서 영국 만큼 경제가 잘 나가는 나라는 없고, 그나마 근접한 국가도 독일 정도에 불과한 수준. 인구 구조도 프랑스 만큼이나 견실하기 때문에 장기적으로는 유럽 1위에 이르는 것도 가능할 것으로 평가된다. 경제성장률이 최선진국임에도 한국과 비슷하고 역사적으로 주요 선진국들의 경제적 쇠퇴기를 쉽게 벗어나곤 했던 미국까지 능가하는 것만 봐도 그렇다.
2015년에는 더 강력한 경제개혁안을 내놓았다. # 참고기사 오랜 영국병의 원인이었던 복지 비용을 추가 삭감하고, 법인세와 상속세를 내렸다. 다만 국내 각계각층의 반발을 감안하여 최저임금은 대폭 끌어올리는 등 워킹푸어 문제에도 신경쓴 게 특징이다. 자유주의를 추구하면서도 국민들의 생활을 궁핍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생산적 복지로 전환하겠다는 뜻.
2.1.2. 부정적 평가: 무모한 국민 투표 추진
자유민주당과 호주식 선호투표제 국민투표 실시를 협상해[14] 연정 체제로 집권하여 노동당에게 빼앗겼던 정권을 무려 13년 만에 빼앗아 왔으나, 대학 등록금 문제, 그리고 NHS(영국의 국가의료보험) 개혁 문제 등으로 초기의 기대와는 다르게 지지율은 줄고 있는 실정. 간질을 포함한 뇌성마비 중증장애인이었던 장남 이번이 2009년 2월 사망했기에 캐머런은 NHS를 지지했지만, 총리가 된 이후에 NHS 개혁을 시도했다가 여론의 반대에 부딪혔다.
초기에는 인기가 나쁘진 않았다. 토니 블레어나 존 F. 케네디를 연상시키는 젊은 지도자에, 드라마와 테니스를 즐기는 나름 서민적인 성품, 무엇보다 보수당임에도 마거릿 대처를 아주 제대로 씹어버리면서 "영국이 두 나라가 되었다. 부자와 빈자의 나라, 이건 반드시 막을 것"이라고 말하는 등의 모습을 보였다. 하지만 경제위기와 재정 건전화 속에서 결국 보수 성향을 버릴 리가 있나(...). 런던 폭동(riot)도 이 양반의 이런 정책 때문에 북부부터 들끓으며 무정부 상태가 된 게 런던까지 번진 것이다. 2011년 영국 폭동 참조.
게다가 앤 밀튼 교육부 차관이 일으킨 '우유 도둑' 논쟁으로 인하여 점점 민심이 이반하려는 조짐을 보이고 있다. [15]
2011년 4월, 부총리 닉 클레그가 "솔직히 나도 낙하산, 인맥 타기 등으로 사회 진출이나 인턴십에 관한 덕을 많이 보았다. 나 말고도 이런 사람 많을 거다. 하지만 그것은 잘못된 시스템이고, 우리는 잘못된 시스템으로 인해 덕을 보았다. 이제부터라도 제정신 차리고 적어도 공적기관의 인턴 선발은 공정하고 열린 과정이 되어야 된다고 생각한다"라고 밝혔다. (스펙이 취직의 제일 기준이 된 한국에서도 시의적절한 이야기일 수 있다!) 근데 얼마 후 캐머런 총리가..
이라는 개드립을 쳤다. 이게 보통 사람이었어도 시끄러운 발언인데, 문제는 아직 '''출신이나 집안에 의해 사회 진출의 한계가 그어지는 영국'''에서 '''명문가 출신의 현직 총리'''가[16][17] '''자기가 "빈부차, 계급차 없는 나라 만들겠다"고 말한 게 엊그제 같은데도''' 이런 발언을 한 탓에 파문이 일파만파.낙하산이 뭐가 나쁨? 나도 다 그랬고, 내 주위 그거 부탁하는 사람 많음. 현대 사회에서는 다 그러는 거 아님?(...)
덕분에 캐머런 본인은 물론이고 보수당까지 가루가 되도록 까이는 것은 물론이요, 지지자들까지 안티로 돌아서고 있다.[18] # 관련기사, # 참고기사. 그런데 엉겁결에 클레그 부총리는 "총리 때문에 불쌍하다"며 동정표를 받고 있다. 어...?[19]
유럽연합의 금융규제정책 도입 압박과 닉 클레그 부총리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자신의 정책을 버리지 않았다. 말이야 당당한 영국이라지만, 그것때문에 영국이 입은 손실도 상당하다. 하지만 또 영국은 금융 빼면 이미 앙금 빠진 단팥빵이라는 말도 일리가 있다. 말 그대로 진퇴양난의 딜레마. 이에 힘을 받은 당내 반EU파들이 주도한 2011년 10월 24일 유럽 연합 회원국 탈퇴를 위한 국민투표 실시 동의안 의회 투표가 주도되고, 보수당에서 찬성표 81표가 나와 캐머런의 어려움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20] 보수당 내부에는 “EU가 영국의 주권과 자율성을 위협한다”는 반EU정서가 뿌리 깊게 남아 있으며 이는 영국의 재정문제와 함께 비유로권 국가임에도 EU 재정위기로 인한 구제금융 지원을 해야 함에 따라 촉발된 것. 결국 당시 캐머런 및 자유민주당, 노동당과 손잡고 국민투표 실시안을 반대하는 수밖에 없었지만, 이 정국을 누가 만든 것이겠는가? #
클레그 부총리는 2010 G20 서울 정상회의로 한국을 방문했을 때는, 코엑스 회의장에 가기 전에 건너편에 있는 봉은사를 방문, 차를 마시고 세계 평화를 기원하는 의미로 종까지 치고 왔다고 한다.'#'
2012년 4월이 되자 그나마 40% 중반선을 유지하던 지지율도 30%로 급락했다. 아직 영국 노동당 당수가 지지율이 낮아 망정이지 노동당은 이미 40%의 지지를 받고 있다.[21] 그래서 지방선거에서 패배할 것이라는 예측이 많았는데 결과는 당연히 노동당에 밀려 2당으로 전락했다.[22]
스코틀랜드 독립운동에서 "2014년 9월 18일에 독립투표 시켜줄게"라고 합의했는데, 처음엔 스코틀랜드 내 독립 반대 여론이 압도적으로 높았지만[23] .... 투표일이 다가올수록 독립 찬성 여론이 빠르게 높아져서, 선거 직전까지 찬반 여론은 그야말로 혼돈의 카오스. 진짜로 스코틀랜드가 독립해 버릴지도 모르는 상황까지 오게 됐다! 영국 정치계에서는 "뭐하러 그 합의를 해줘서 이 사단을 냈냐?!"고 미친 듯이 까이고 있다.[24] 본인의 커리어에 치명적인 불똥이 떨어진 셈. 스코틀랜드 독립이 부결되어서 그나마 다행이지 만약 스코틀랜드가 독립해 버렸다면 '''정치적인 생명은 끝난 것이나 다름없었을 것이다.''' 게다가 스코틀랜드 자치권을 둘러싸고 투표가 끝난 직후부터 이곳 저곳에서 갈등과 잡음이 생기는 후폭풍을 돌파해야 하는 최악의 악재를 해결해야 하는 상황에 몰렸다.
2015년 7월에는 채널 터널로 밀입국자와 난민[25] 이 몰려들자 이들을 소위 벌레나 동물과 같은 집단에 쓰는 난민떼라는 말실수를 했다가 신나게 까였다.
2.2. 2015년 총선: 단독 과반 의석 확보
총선이 시작될 때까지만 해도 보수당은 노동당과 박빙의 접전을 벌여 재집권이 어려울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했다. 일각에서는 에드 밀리밴드가 차기 총리 후보로 거론되었었다. 하지만 투표 당일 BBC의 출구조사 결과 보수당이 316석을 차지할 것으로 예측되면서 재집권 가능성이 점쳐지기 시작했다.
한국시각 8일 기준으로 보수당이 321석을 차지한 상태로, 명목적 다수인 326석을 코앞에 두고 있는 상황이다. 단독 재집권 가능성까지 조심스럽게 제기되고 있는 상황. 보수당이 예상 외의 승전을 거둔 데에는 에드 밀리밴드의 공약이 급진적이어서 보수층의 결집을 자초했다는 의견이 대세다. 그리고 캐머런 정부는 경제 측면에서 커다란 실책을 한 상황도 아니다. 지금 상황으로 보면 캐머런의 재집권은 거의 확실시되는 상황이지만, 스코틀랜드 국민당의 선전이 복병으로 작용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었다.
결국 총선 결과 보수당이 331석으로 과반수를 넘겨 재집권하게 되었다. 이번에는 단독 집권을 해서 자민당을 제외하고 보수당만으로 내각이 구성되었는데 이는 1997년 이후 '''18년만에 처음이다'''.[26] 총선 전 영국의 기업가들은 보수당이 이기면 유럽연합 탈퇴 문제로 리스크를 져야 하고,[27] 노동당이 이기면 경제 자체에 리스크를 져야 한다[28][29] 며 푸념했는데 결국 둘 중에 유럽연합 리스크(기업인들의 관점에 따른다면)를 지게 됐다(...).
게다가 친유럽적인 SNP(스코틀랜드 국민당)가 이번 총선에서 스코틀랜드에 할당된 전체 의석 59석 중 무려 56석을 차지한 상태라 유럽연합 탈퇴를 빌미로 독립을 재시도할 수도 있다고 위협하는 중.[30] 그래서 미국 언론들은 총선 직후 영국이 유럽연합도 탈퇴하고 스코틀랜드도 잃어서 캐머런이 리틀 잉글랜드[31] 의 건국의 아버지(...)[32] 가 되는 게 아니냐는 반응을 보이기도 했다.
'''결국 우려가 현실로 나타났다. 브렉시트 투표 이후, 영국은 전례 없는 분열 위기에 놓이게 되었다.'''
2.3. 브렉시트
2016년 6월 23일 브렉시트 국민투표에서 EU 탈퇴파가 승리하자 결과에 승복하며 8월 이내로 사임할 것임을 발표했다. # #Je pense surtout qu'il croyait qu'il allait le gagner(...)
그는 브렉시트 투표가 잔류로 끝날 것이라고 믿고 있었다고 봅니다.(후략) - 프랑수아 올랑드
캐머런이 이러한 승부수를 던진 이유는 당시의 여론조사가 '잔류'가 '탈퇴'보다 높게 나왔기 때문이다. 브렉시트 직전의 여론조사에서도 '잔류 52% vs 탈퇴 48%'라는 결과가 나왔다. 영국의 경우 샤이 보수(Shy Tory)가 자신들이 여론조사에서 잘 응하지 않는것을 감안해서 상황을 더 낙관적으로 봤다. 하지만, 그렇게 쳐도 고작 오차범위 내로 접전 중인 찬반양론이 뜨거운 주제였음에도 캐머런은 이러한 여론조사의 결과를 맹신하고 과감하게 국민투표를 제안했으나 결과는 자신의 예상한 것과 달랐다. 그리고 영국을 위기에 빠뜨렸다. 그런데 사실 여기서 벌어진 최고 오판은 청장년층이 잔류 지지측이고, 노년 및 기득권층이 탈퇴 지지측이었다는 거다. 즉, 간단히 말해 '''이 인간들이 생각한 진보와 보수 진영이 지지하는 안건이 정반대였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샤이 보수(= 탈퇴 지지)가 투표에 참여할 경우, 브렉시트 찬성율이 높아지면 높아졌지 낮아질 이유가 없던 것. 브렉시트란 이슈 자체가 기존의 보수, 진보 셈법이 아닌 도시와 낙후된 지방의 대결이었다. 결국 투표는 런던 VS 낙후된 지방의 대결로 펼쳐졌고 노동당 지지층 내에서도 미국의 힐 밸리처럼 망한 산업도시들은 브렉시트에 대한 지지가 높게 나타났던 것이다. 이러한 결과는 국가 지도자가 겉으로 볼 때 자기와 생각이 같은 국민들이 많아보인다는 이유만으로 자기 생각과 관련된 찬반 국민투표를 함부로 추진해서는 안 된다는 걸 여실히 보여주는 사례가 되었다.[33]
7월 12일, 마지막으로 의회 PMQ에 출석하여 "저도 한때는 미래였습니다.(I was the future once.)"라는 명언(?)[34] 을 남기고 총리직에서 물러났다. 원래 이 말은 지난 2005년 12월 보수당 당수로서 처음으로 의회 간담회에 나섰던 캐머런이 영국 학교들의 입학 정책 자율화 문제와 관련, 당시 영국 총리였던 토니 블레어를 향해 "그의 접근법은 구닥다리다. 나는 미래에 대해 이야기하고자 한다. 그(블레어)도 한때 미래이긴 했다(This approach is stuck in the past. And I want to talk about the future. He was the future once)"고 말했던 내용의 셀프 패러디.
2.4. 총리직 사임 이후
2016년 7월 13일 총리직 사퇴 후 두 달 동안 백벤쳐로서 두 달 정도 활동하다 동년 9월 12일 사임했다. 그 뒤 치매와 알츠하이머병와 관련된 비정부기구 수장을 맡으며 조용히 지내고 있다.
2019년 9월 13일 오후 5시 (한국 시간 14일 오전 2시), 더 타임즈에서 캐머런 전 총리를 인터뷰한 기사를 냈다. 자서전 내기 전에 인터뷰를 한건데 그동안 정치 이슈에 대해 말을 삼갔던 것과 달리 보수당 원로 21명의 출당 조치를 비판하고 브렉시트 국민투표에 대해 매일 생각한다고 밝혔다 인터뷰 기사 £. 또한 "미안하다. 내가 실패했다"라며 브렉시트의 불확실성에 대해 아직도 걱정한다는 점을 밝혔다. 후임자인 보리스 존슨 총리에 대해선 런던 시장으로서의 행적은 칭찬했지만 2011년 영국 폭동 당시 코브라 회의[35] 에 늦었던 점 등을 지적하며 총리로서는 자질은 의심한다고 밝혔다 후속 기사 1 £. 이외에도 도미닉 커밍스 총리 특별 정치 고문[36][37] 과 마이클 고브[38] 국무조정실장 등을 비판했다.
스코틀랜드 독립 투표 당시에 여왕에게 도움을 청하려고 했다.#
3. 논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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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4월 어느 한 중산층 가정을 방문했을 때 어설픈 서민 코스프레를 시전하다 역풍을 맞았다. 핫도그를 포크와 나이프로 썰어서 먹은 것이다. 이로 인해 "캐머런은 우리(서민)와는 다른 사람(귀족)"이라고 각인되었다.[39]
- 2015년 9월 들어 '캐머런이 상류층 마약 클럽에 출입한 적 있다'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기사 정확히는 옥스퍼드 재학 시절 피어스 개버스턴 클럽(Piers Gaveston Club)[40] 에 가입했다는 것인데, 이곳의 신고식은 자신의 음경을 돼지머리 입 속에 집어 넣는 것이었다. 이에 따라 캐머런의 별명은 Pig Fxcker가 되었으며, 그의 자질에 대한 논란이 확산 중이다. 해시태그로 '#piggate'가 나온 걸 보면 말 다했다. 이 의혹을 제기한 사람은 영국 보수당의 전직 회계 책임자인데 이에 대해 캐머런은 좋은 자리에 앉혀 주지 않아서 복수하는 것이다라고 반응했다.
- 2016년 4월 4일에 파나마 페이퍼즈 사건으로 인하여 그의 아버지가 서류상 회사인 페이퍼 컴퍼니에 돈세탁을 했다는 의혹이 증폭되고 있다. 파나마 페이퍼즈가 처음 공개됐을 당시, 캐머런 총리와 보수당은 이러한 의혹을 전면 부정했으나, 파나마 페이퍼의 세부 정보가 더더욱 공개 되기 시작하면서, 첫날부터 완전히 정직하게 말을 못했다는 이유로 여론의 질타를 받고 있는 중이다. 이에 따라 "아이슬란드 총리처럼 사퇴하라"는 소리가 계속 나왔고 결국 브렉시트 투표 이후 사퇴하였다.
4. 여담
- 정계에 복귀하지 않는 한 인생의 주요 이력이 40대에 다 끝났다고 할 수 있다.[41]
- 총리 퇴임 후인 2017년 7월 한국의 한 언론사가 캐머런을 콘퍼런스에 초청했기 때문에 방한하여 4일에 문재인 대통령과 청와대에서 접견했다.[42] 캐머런이 트위터에서 이 사실을 알리며 접견 사진을 올리자 영국 네티즌들 사이에서는 한바탕 소동이 벌어졌다. 너무나 자연스럽게 마치 현직 총리가 외국 정상과 회담하는 듯한 모습을 연출했기 때문. 영국 네티즌들은 "아직도 캐머런이 총리였나?" "이거 평행우주인가?"(...) 등등의 당혹스러운 반응을 보였다.
- 2019년 2월 21일 온라인 매체인 JOE.co.uk[43] 에서 캐머런을 조롱하는 Shotgone이라는 매드무비를 공개해 SNS에서 화제가 되었다. 캐머런이 프랑스 휴양 도시인 니스에서 보내온 메시지라며 그의 발언을 짜깁기해서 노래로 만든 것인데, 캐머런 집권기의 브렉시트 국민투표 실시, 스코틀랜드 독립 가능성 증가,[44] 긴축 재정 시행 등을 다양하게 비꼬고 있으며, 논란이 된 돼지 게이트(pig gate) 관련 드립도 빠지지 않았다. 패러디의 소스가 된 영상은 George Ezra가 부른 Shotgun의 가사 버전 뮤직 비디오이다.[45]
- 정치적으로는 중도온건파 성향으로 꼽힌다.[46]
5. 선거 이력
6. 관련 문서
[1] 총리 본인에 대한 경칭.[2] 졸업 직후 1년가랑 갭 이어를 하였는데 이 때 홍콩과 소련을 방문하였다.[3] PPE (철학•정치•경제학부) / M.A. (-1988년)[4] 1971년생(만 54세)[5] 제8대 준남작 레지널드 셰퍼드의 딸. 서맨사의 어머니는 서맨사 캐머런을 낳은 이후 이혼한 뒤 제 4대 애스터 자작과 재혼해 살고있다.[6] 사우스 이스트 잉글랜드 서북부에 있고 주변 지역구 역시 보수당 강세가 두드러지는 시골지역이다. 해당 지역에 속하진 않으나 옥스퍼드 대학교와 가깝다.[7] 기존 기록은 42세 취임 기록을 가지고 있던, 로버트 뱅크스 젱킨슨이다. 나폴레옹 전쟁 당시 패전하여 요절한 총리였다고. 관련 기사[8] 사생아의 후손이기에 왕위 계승권은 없다. 과거 동아시아에서는 서자도 계승 가능성이 있었지만, 서양에서는 원칙적으로 일부일처제였기 때문에 서자는 사생아로 취급됐다. 참고로 엘리자베스 2세는 윌리엄 4세의 조카인 빅토리아 여왕의 후손이다.[9] 18대 로치엘(Lochiel, 캐머런 가 당주의 칭호) 존 캐머런(John Cameron)의 후손이며 그의 고조부는 영국을 비롯한 서양 열강이 청나라에 세력을 뻗칠 당시 홍콩 상하이 은행(Hong Kong and Shanghai Bank) 런던 지부장을 역임했던 유언 캐머런(Sir Ewen Cameron, 1841-1908)이다.[10] 이건 토니 블레어도 그렇다. 영국/정치가 1980년대 이래 영국 보수당 장기집권 18년, 영국 노동당 장기집권 13년으로 이루어졌기 때문에 지난 정권에서 각료를 지낸 인물은 보통 옛날 사람이 되고 만다(...)[11] Shadow Cabinet. 의원 내각제 국가에서 제1야당이 정권을 잡을 경우를 대비한 예비 내각.[12] 예를 들어 토니 블레어도 집권 이전 10년 가까이 섀도 캐비닛의 에너지부, 노동부, 내무부(Home Office) 장관을 맡았다.[13] 그가 한 말 중에 '''"빚으로 하는 복지는 지속 불가능하다"'''는 말이 있다.[14] 이 투표는 결국 2011년 5월 6일 국민투표 끝에 69%의 반대로 부결되었다. # 사실 보수당이나 노동당이 이미 당론을 반대로 정한지라 31%의 찬성이면 자민당 자체의 지지율보다 높은 결과긴 했다.[15] 원래 우유 도둑 논쟁은 그저 해프닝에 지나지 않을 소소한 사건이었으나 보수당 내각의 데이빗 월레츠 교육부장관이 BBC에 출연하여 정말로 우유 급식 끊을 거냐는 질문에 그것도 방법 중 하나다라는 어그로끌기 딱 좋은 답변을 총리각하가 반대하신다는 데도 해버려서 전국적인 비난을 면치 못하게 되었다. 이 논쟁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라 '철의 여인' 마거릿 대처 수상이 교육부 장관으로 재직하던 당시 12세 이하 어린이의 무상 우유 급식을 철폐하면서 촉발됐다가 무지막지한 역풍을 쳐맞고 법안 취소한 뒤 대처 인생 내내 후회했던 현대 영국 보수당 최악의 흑역사 중 하나다.[16] 캐머런은 최상류층 명문가 사람이다. 한국으로 따지면 이재용급, 초등학생인 나이에 미국 석유 재벌가 친구의 생일파티를 간다고 친구의 전용기를 타고 미국으로 날아가 생일파티에 참가한 사람이 서민이라 말하기엔 거리가 몇 광년쯤 멀다.[17] 또 집안 자체가 캠벨(Campbell), 맥도날드(MacDonald) 등의 가문과 더불어 스코틀랜드의 최고급 귀족 집안 출신이기 때문에, 이러한 귀족 집안의 정치판 들어와 9년만에 총리가 된 도련님이 그러한 발언을 하면 발끈하지 않을 서민들이 어디 있을까. 이 캐머런 총리의 발언은 아직까지도 이어지고 있는 영국 귀족(피어리지) 사회 내에서 기득권 및 재산 유지에 대해 매우 인색하고 서민들을 은근히 무시하는 태도가 만연해 있음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라 볼 수 있다. [18] 캐머런이 가난한 집안이었어도 저런 말을 해도 개드립이라고 까일 마당에, 최상류층 귀족에다가 부잣집 자제 출신이 저딴 말을 해댔으니 최악의 상황이였다.[19] 여하간 전반적인 경향성으로 따지면 한때 가디언지가 지지할 정도로 진보적인 평가를 받으며 총선 전엔 정당 지지율 1위까지 하던 자민당은 이젠 캐머런 짝퉁, 가짜 진보 평가나 받으며 바닥을 기는 신세다. 연정의 대가인 셈. 안습.[20] 투표는 찬성 111표 대 반대 483표로 부결되었다.[21] 영국 노동당의 당수 에드 밀리밴드는 '총리 못 되는 남자'로 개그 캐릭터화 되었다. [22] 그나마 보리스 존슨이 켄 리빙스턴을 꺾고 런던 시장직을 수성해서 체면치레.[23] 시기와 자료에 따라 다르지만 낮아도 6:4, 높으면 8:2 정도였다.[24] 보수당이야 자당 총리의 바보짓에 경악을 하며 큰 비난을 했고, 야당인 노동당조차 스코틀랜드가 워낙 노동당의 텃밭인지라 만일에라도 독립하면 지지 기반의 대부분을 잃어버리는 상황이라서 정말 미친 듯이 깠다.[25] 전원 밀입국자라고도, 난민이라고도 하기 뭐한 것이 불법체류가 목적인 사람과 진짜 난민이 뒤섞여 있다.[26] 앞서 말했듯이 1997년 총선에서 토니 블레어가 이끄는 노동당이 압승을 거두면서 대처, 메이저로 이어진 보수당 장기 집권 시대가 끝났다. 보수당이 정권에 복귀한 건 2010년이지만 이때는 자유민주당과 연립정부를 구성했었으므로 보수당만의 단독 정부 수립은 18년 만에 처음 있는 일이다.[27] 영국이 만약에 EU를 탈퇴하게 되면 유럽 단일시장에서 배제될 수 있는 데다가, EU의 정책에 영국의 입장을 반영할 길이 막히게 된다.[28] 당시 노동당 대표인 에드 밀리밴드가 당내 좌파 라인이라 토니 블레어 시절의 소위 신노동당(뉴 레이버) 시절보다 더 좌파적인 경제 정책을 추진했다. 그래서 기업의 우려가 컸다. 그래서 기업인들은 노동당의 경제 정책 중 보수당보다 나은 건 EU 탈퇴 리스크가 없다는 것 하나뿐이라는 반응을 보였다.[29] 이건 영국 주간지 이코노미스트의 2015년 5월 2일자 커버스토리였다. 당시 표지[30] 물론 주민투표가 가까운 시일 내에 재실시되기는 쉽지 않다. 주민투표가 실시된 지 오래되지 않았다는 명분이 있는 데다가, 2014년에 예상과 달리 독립 직전까지 갔었던 기억 때문에 향후의 영국 총리들이 스코틀랜드의 독립을 묻는 주민투표 실시를 받아주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캐머런도 더 이상의 주민투표를 실시하지 않을 것임을 분명히 한 상태이고.[31] 영국 국호에 들어가 있는 '그레이트 브리튼'을 비튼 표현이다. 물론 스코틀랜드(약 530만 인구)가 독립해도 웨일스(약 300만 인구)와 북아일랜드(약 185만 인구)가 영국에 남아 있지만 잉글랜드(약 5,300만 인구)가 영국 국내에서 차지하는 상대적 비중이 압도적으로 커져 버린다(스코틀랜드가 빠진 영국 인구의 약 92%가 잉글랜드 거주자). 따라서 과장을 보태면 스코틀랜드가 없는 영국은 사실상 잉글랜드나 마찬가지라고 할 수 있다.[32] 이 표현은 당연히 미국 건국의 아버지를 비튼 것이다.[33] 국민투표가 아닌 대한민국 국회의원 선거의 사례이긴 하지만 대한민국 제20대 국회의원 선거 또한 당시 대한민국 대통령이었던 박근혜의 콘크리트 지지층이 본격적으로 붕괴되기 전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당시 여당이었던 새누리당이 참패한 바 있다. 겉으로 볼 때 현 국가 지도자(여당)와 생각이 같은 국민들이 그렇지 않은 국민들보다 더 많아보인다고 해서 무조건 그 국가 지도자(여당)에게 유리한 상황이 될 거라고 생각해서는 안 되는 셈이다.[34] 원래 PMQ는 신랄하게 서로를 몰아붙이고 말다툼을 벌이는 것으로 유명하지만, 이 날만큼은 마지막 자리였던 만큼 전반적으로 여유와 유머가 넘쳐났다.[35] 비상시에 총리, 재무부장관, 내무부장관, 외무부장관, 법무부장관과 같은 국가안보회의 회원들과 런던시장 등 주요한 인사들이 참여하는 비상회의이다.[36] Special Political Advisor to the Prime Minister[37] 브렉시트 국민투표 당시 탈퇴파를 주도한 브레인로서 이전엔 마이클 고브 당시 교육장관의 고문이었다. 채널 4에서 커밍스를 주인공으로한 TV 영화를 만들었다.[38] 캐머런 내각에서 교육장관과 법무장관을 지내고 테레사 메이 내각에선 환경장관을 지냈다[39] 비슷하게 도널드 트럼프가 서민 코스프레 한답시고 KFC 치킨을 먹었는데, 전용기를 탄 채 포크와 나이프로 치킨을 썰어먹는 모습을 보여줘서 신나게 까였다(...). [40] 에드워드 2세의 총신의 이름을 땄다. 말이 좋아 총신이지 사실상 애인에 가까운 존재였는데, 그 악명높은 벌링턴 클럽보다도 향락적이고 퇴폐적인 분위기다보니 개버스턴의 이름을 따온 것. 참고로 여기서 언급한 벌링턴 클럽은 2010년 초연한 연극 Posh와, 2015년 영화 더 라이엇 클럽의 모티브가 된다.[41] 1997년 총선 때 스태퍼드(Stafford)에서 보수당 후보로 출마, 낙선.
2001년 옥스퍼드 근처 위트니(Witney)에서 보수당 후보로 출마, 당선.
2005년 12월 6일 당수 경선에서 승리, 38세의 젊은 나이에 보수당 당수 취임.
2010년 5월 11일 총리 취임. 43세.
2015년 5월 7일 총리 재선, 48세.
2016년 6월 23일 총리 사임 발표, 49세.
2016년 7월 13일 총리 퇴임, 49세.[42] 이 시기 버락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도 방한하여 3일 청와대를 방문해 문재인 대통령과 접견한 바 있다.[43] 아일랜드 매체 JOE.ie의 영국판이다. JOE는 영국과 아일랜드의 젊은 남성을 주요 독자로 둔 매체이다. 맥시멈 미디어(Maximum Media)라는 기업이 소유하고 있다. 참고로 이 회사는 아일랜드 여성 독자를 겨냥한 Her.ie와 HerFamily.ie라는 매체도 거느리고 있다.[44] 캐머런이 스코틀랜드 독립 주민투표 실시를 동의하는 바람에 진짜 독립할 뻔했고, 브렉시트 국민투표로 인해 EU 탈퇴에 반발하는 스코틀랜드인들의 독립 열망에 다시 기름을 부는 셈이나 마찬가지이다. 만약 브렉시트 국민투표를 먼저 실시하고 스코틀랜드 독립 주민투표를 그 다음에 실시했으면 스코틀랜드가 진짜로 독립하게 됐을 거라는 주장도 있다.[45] 이 매체는 2주 전에도 보수당 브렉시트 강경파 모임인 유럽연구그룹(ERG)의 의장 제이컵 리스모그(Jacob Rees-Mogg)를 조롱하는 Jacob Rees-Mogg's message for the Common People 매드무비를 공개해 SNS에서 공전의 대히트를 친 바 있다. 이 패러디의 소스가 된 영상은 Pulp의 Common People 뮤직 비디오이다.[46] 자유보수주의자로 보여지지만, 보수자유주의자로 칭해질 때도 있다.[47] 2016.9.12 사퇴 (브렉시트 국민투표 결과로 정계은퇴)
2001년 옥스퍼드 근처 위트니(Witney)에서 보수당 후보로 출마, 당선.
2005년 12월 6일 당수 경선에서 승리, 38세의 젊은 나이에 보수당 당수 취임.
2010년 5월 11일 총리 취임. 43세.
2015년 5월 7일 총리 재선, 48세.
2016년 6월 23일 총리 사임 발표, 49세.
2016년 7월 13일 총리 퇴임, 49세.[42] 이 시기 버락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도 방한하여 3일 청와대를 방문해 문재인 대통령과 접견한 바 있다.[43] 아일랜드 매체 JOE.ie의 영국판이다. JOE는 영국과 아일랜드의 젊은 남성을 주요 독자로 둔 매체이다. 맥시멈 미디어(Maximum Media)라는 기업이 소유하고 있다. 참고로 이 회사는 아일랜드 여성 독자를 겨냥한 Her.ie와 HerFamily.ie라는 매체도 거느리고 있다.[44] 캐머런이 스코틀랜드 독립 주민투표 실시를 동의하는 바람에 진짜 독립할 뻔했고, 브렉시트 국민투표로 인해 EU 탈퇴에 반발하는 스코틀랜드인들의 독립 열망에 다시 기름을 부는 셈이나 마찬가지이다. 만약 브렉시트 국민투표를 먼저 실시하고 스코틀랜드 독립 주민투표를 그 다음에 실시했으면 스코틀랜드가 진짜로 독립하게 됐을 거라는 주장도 있다.[45] 이 매체는 2주 전에도 보수당 브렉시트 강경파 모임인 유럽연구그룹(ERG)의 의장 제이컵 리스모그(Jacob Rees-Mogg)를 조롱하는 Jacob Rees-Mogg's message for the Common People 매드무비를 공개해 SNS에서 공전의 대히트를 친 바 있다. 이 패러디의 소스가 된 영상은 Pulp의 Common People 뮤직 비디오이다.[46] 자유보수주의자로 보여지지만, 보수자유주의자로 칭해질 때도 있다.[47] 2016.9.12 사퇴 (브렉시트 국민투표 결과로 정계은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