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반 개티스
1. 개요
미국 메이저 리그 베이스볼의 야구선수. 주 포지션은 포수/좌익수이다.
우울증으로 알코올과 마리화나에 찌든 야구계의 방랑자에서 청소부와 잡역부를 거치며 2013년 메이저리거로 화려하게 돌아온 인간 승리의 사나이.
유망주 시절 팜 내 최고로 평가받았던 엄청난 파워와 손목 스피드, 장작을 패듯 호쾌한 스윙(장갑 없이 맨손으로)이 장기이며, 포수로서 포구나 풋워크에 능숙하진 않지만 준수한 어깨와 좌익수를 볼 정도의 운동 능력을 갖고 있다.
2. 초창기
미국 텍사스주 포르니에서 성장한 개티스는 어린 시절부터 남다른 체격과 재능으로 무시무시한 파워히터로 이름을 날린 포수 유망주였다. 타고났던 손아귀의 악력과 어깨의 힘 덕분에 송구능력도 그야말로 어마어마해서, 함께 야구를 하던 친구들의 엄마도 개티스가 '''공을 너무 세게 던져서''' 같이 야구를 하지 말라고 말릴 정도였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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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살 때인 2002년 미국 대표팀 시절. 밑에 흑인꼬마가 2013년 브레이브스에서 같이 뛰게 된 저스틴 업튼이다. [1]
고교 졸업반이던 해에 개티스는 드래프트에서 지명을 받지 못해 프로행을 포기하고 라이스 대학과 텍사스 A&M 대학에 장학금 제시를 받았다. 개티스는 1루수 자리를 권유한 라이스 대학 대신 포수 자리를 보장한 텍사스 A&M 대학을 선택할 예정이었지만 A&M 대학의 입학 역시 포기하고 만다. 이유는 우울증을 앓고 있던[2] 개티스는 당시 실패를 할까 두려워 할 정도로 야구에 대한 과도한 압박감에 빠져있었고, 고교시절부터 술과 마리화나에 빠져 약물 검사에 걸릴 것을 두려워했기 때문. 결국 개티스는 만 19세에 야구와 한동안 작별을 하게 되었다.
3. 방황과 여행
한동안 실의에 빠져 자신이 만든 마음의 감옥 속에 갇혀있던 개티스는 어머니의 손에 이끌려 병원을 찾게 되었다. 30일 동안 약물 치료 프로그램을 통해 재활을 거쳤고, 이후 3달 동안 사회 복귀 프로그램을 받은 것.
이후 야구를 다시 하기로 마음먹은 개티스는 아는 코치의 소개로 오클라호마주에 있는 주니어 칼리지인 세미놀 주립대 야구팀에 입단하게 된다. 하지만 무릎부상을 입은 탓에 시즌을 제대로 소화하지 못했고 결국 부상으로 1년 반의 시간을 허비하면서 또 야구를 포기하게 되는 절망적인 상황에 놓였다.
야구를 떠난 개티스는 한동안 정신병동에 머무르며 힘든 시간을 보내게 된다. 약물문제는 없었지만 분노와 우울에 가득차며 자살충동에 휩싸이기도 했다고. 이 시기에 대학으로 돌아가 심리학 학위과정을 밟을 계획을 세우기도 했다고 한다.
하지만 개티스는 대학에 돌아가는 대신 여행을 선택했다.
야구를 완전히 내려놓은 채, 새로운 것을 찾기 위해 자신만의 여행을 시작하기로 한 것. 개티스가 처음 얻은 직업은 댈러스 중심가에서 발레파킹을 하는 일이었다. 이어 누나가 있는 콜로라도로 건너가서 피자가게의 점원, 엘도라산에 있는 리조트의 스키 리프트 관리자를 거쳐 고향인 텍사스로 돌아왔고, 텍사스에서 건물 청소부, 골프장 카트보이 등을 하기도 했으며 콜로라도, 유타, 뉴멕시코, 캘리포니아를 떠돌아다니면서 다양한 사람을 만나고 다양한 경험을 하며 시간을 보냈다. 이 시기에 야구를 잊기 위해 호스텔이나 모텔을 숙소로 머무르면서 닥치는 대로 일을 했고, 단 한 번도 야구장 근처나 배팅 연습장에 가지 않았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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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부 시절의 출입 카드. 에반 개티스 본인의 트위터 프로필 사진이다.
4년여간 방랑을 하는 동안 다양한 조언자와 심리 상담사를 만나면서 마음의 안정을 찾은 개티스가 다시 깨달은 사실이자 그의 마음속에 피어난 열망은 결국 야구가 다시 하고 싶다는 것이었다. 개티스는 훗날 방황하는 기간 동안 자신이 찾고 싶은 걸 찾았냐는 애틀랜타 지역지 기자의 질문에 이렇게 대답한다. '''"아무것도 찾지 못했죠. 하지만 더 이상 찾을 필요는 없을 거 같습니다."'''
4. 야구로 돌아오다
방황을 끝마친 개티스가 제일 먼저 한 일은 텍사스 주립대 지방캠퍼스(University of Texas of the Permian Basin )에서 투수로 뛰고 있던 이복형제 드류 켄드릭(Drew Kendrick)에게 연락을 하는 것이었고, 그는 다시 야구로 돌아오게 되었다.
UTPB에서 야구에 몰입하게 된 개티스는 매섭게 배트를 돌리기 시작했고, 야구를 오랜 기간 쉬었음에도 불구하고 이 시즌 0.403의 타율과 11개의 홈런을 날리면서 모두를 놀라게 했다. 또한 2010년 드래프트 23라운드에서 애틀랜타 브레이브스에 지명받으며 프로에 입단하는데도 성공했다.
지명을 받을 당시에 그의 몸무게는 무려 122kg이나 나갔지만 바로 다음 스프링캠프에서 각고의 웨이트를 거치며 살을 빼서 돌아왔고, 그 결과 2011년 싱글A에서 22홈런, 2012년 더블A에서 18홈런, 윈터리그에서 무려 16홈런을 때려내는 발군의 장타력을 선보이며 현지인으로부터 '''흰 곰(El Oso Blanco)'''이라는 별명을 받기에 이른다.
이렇 듯 거포의 자질을 유감없이 보여준 개티스를 브레이브스는 2013 스프링캠프에 초청선수 자격으로 불러들이지 않을 수 없었고, 개티스는 시범경기 동안 타율 0.368 6홈런의 맹타를 휘두른다. 캠프 당시 일화로 투수들이 미리 구종을 알려주고 던지는 라이브배팅에서 브레이브스의 필승조인 에릭 오플래허티가 개티스에게 공을 던졌는데 그 공을 까마득하게 멀리 날려보냈다고 한다. 그래서 그 다음에는 장난으로 포심을 던진다고 해놓고 커터를 던졌는데 그 공 역시 날려보냈다고 한다(...) 오플래허티 외에도 크레이그 킴브럴과 훌리오 테헤란에게도 홈런을 때려냈다고.
마침 주전포수 브라이언 맥캔의 부상도 있었기에 브레이브스는 맹타를 휘두른 개티스를 마이너리그로 내려보내지 않고 메이저리그 개막전 로스터에 합류시키게 되었다.
4월 3일, 터너 필드에서 열린 필라델피아 필리스전에서 메이저리그 데뷔를 하게 된 개티스는 '''애틀랜타 지역방송이 아버지와 새어머니를 인터뷰하던 중'''에 로이 할러데이를 상대로 첫 홈런포를 가동하면서 극적으로 자신의 등장을 알렸다.[3]
그후에도 이 홈런이 우연이 아니라는 듯, 스티븐 스트라스버그를 상대로 홈런을 뽑아내기도 하고, 피츠버그 파이어리츠전에선 대타 역전 홈런을 작렬시키는 등 정확성은 낮지만 무지막지한 장타능력으로 놀라운 활약을 이어가면서 4월 한달동안 .250의 타율, 6개의 홈런, 16개의 타점, .566의 장타율로 셸비 밀러와 류현진등을 제치고 내셔널리그 4월의 신인으로 선정되었다. 5월에도 이달의 신인으로 선정되었다.
하지만 주전 포수 맥캔이 돌아온 5월부터 입지가 곤란해졌는데, 맥캔이 복귀한 이후엔 좌익수로 출장했지만 그마저도 주전 우익수 제이슨 헤이워드가 부상으로 돌아와 완전히 자리가 없어지면서 벤치로 밀려나게 되었다. 과거 재로드 살탈라마키아에 이어 또다시 애틀랜타 프런트를 고심하게 만들었다. 6월부턴 부상과 부진으로 침체기에 빠지며 사실상 신인왕 경쟁에서 밀려났다. 그래도 결정적인 순간마다 결승포를 때려내며 브레이브스의 승리를 이끌었다는 건 무시할 수 없는 공로. 시즌 최종 성적은 105경기 .243 .291 .480 21홈런 65타점 OPS .771
그리고 2년차에는 소포모어 징크스를 날려버리면서 전반기까지 .290 .342 .558 16홈런 39타점을 기록중에 있다. 그러나 후반기에 페이스가 조금 떨어지는 모습을 보여주면서 .263 .317 .493 22홈런 52타점으로 시즌을 마무리하고 말았다. 여담으로 3루타를 11개나 기록하며 내셔널 리그 3루타 부문 공동 3위에 올랐다. 발이 빠른 것과는 거리가 먼 선수고, 그에 걸맞게 도루도 매우 적다는 점에서 어떤 의미로는 변태스탯...
그리고 2014 시즌 후에 휴스턴 애스트로스로 트레이드되었다. 이 당시 반대급부는 투수 유망주 마이크 폴티뉴비치.[4]
2015 시즌에는 0.246 0.285 0.463 27홈런 88타점을 기록하며 홈런, 타점 커리어 하이 시즌을 보냈다. 아메리칸 리그 소속인 휴스턴으로 트레이드되었기 때문에 시즌의 대부분을 지명타자로 출전하게 되었다.
2017시즌 휴스턴이 우승하면서 월드 시리즈 반지를 획득한다.
5. 은퇴
현 오클랜드 어슬래틱스의 선발투수 마이크 파이어스가 폭로한 휴스턴 애스트로스의 대규모 사인훔치기에 대해서 파이어스 얼굴이 그려진 머그컵에 내부고발자는 다칠 것이다 라는 문구가 담긴 사진을 올리며 마이크 파이어스를 비난했지만 역으로 욕을 먹었고 결국 라디오에서 나의 커리어는 끝났다며 은퇴를 선언했다.
6. 연도별 기록
7. 이모저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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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호르헤 포사다, 블라디미르 게레로, 모이세스 알루처럼 장갑을 끼지 않고 맨손 타격을 한다. 방망이에서 느끼는 감각을 좋아하기 때문에 야구를 하는 동안 단 한번도 장갑을 껴본 적이 없다고. 여기에다 특유의 투수를 때려잡을 듯한 어수룩한 오픈 스탠스 타격폼이 더해지니 타석에선 그야말로 야수의 느낌이 난다.
- 2015년 초에는 야구 교실을 한다고 했다!
8. 관련 문서
* 야구 관련 인물(ML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