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어 플로리다 90편 추락사고

 


[image]
사고 9개월 전에 찍힌 사진
Air Florida Flight 90
'''항공사고 요약도'''
'''발생일'''
1982년 1월 13일
'''유형'''
조종사 과실, 날개 결빙
'''발생 위치'''
미국 워싱턴 D.C. 포토맥 강
<color=#373a3c> '''탑승인원'''
승객 : 74명
승무원 : 5명
<color=#373a3c> '''사망자'''
승객 : 70명
승무원 : 4명
'''지상 4명 포함 총 78명 사망'''
<color=#373a3c> '''생존자'''
승객 : 4명
승무원 : 1명
'''기종'''
보잉 737-222
'''항공사'''
에어 플로리다
'''기체 등록번호'''
N62AF
'''출발지'''
워싱턴 내셔널 공항
'''도착지'''
포트 로더데일 홀리우드 국제공항
1. 사고가 일어난 1월 13일 당시
2. 이륙, 그리고 추락
3. 구조
4. 생존자
5. 사고 이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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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사고가 일어난 1월 13일 당시


워싱턴 일대에 눈 폭풍이 몰아쳐 워싱턴 국제공항(현 로널드 레이건 워싱턴 국제공항)이 폐쇄되었다가 정오에 눈발이 약해지고 눈이 다소 녹으면서 제한적으로 다시 개방되었다. 마이애미 국제공항에서 출발해 탬파 국제공항을 경유하여 포트 로더데일 홀리우드 국제공항으로 향하는 에어 플로리다 90편 항공기가 오후 1시 45분에 워싱턴에 도착했다.
기장은 래리 헤턴(34세)로 2년전 기장으로 승진한 비행시간 8,300시간의 베테랑이었고, 부조종사는 로제 페디트로(31세)였다. 그러나 그들이 주로 에어플로리다 항공기를 운행한 플로리다 지역은 미국에서도 가장 따뜻한 지역으로 눈이 거의 오지 않기 때문에, 기장은 눈이 올때 이착륙을 해본 적이 8번 뿐이었고 부기장은 2번 뿐이어서 눈이 올 때의 위험성이나 안전수칙을 잘 알지 못했다.
공항이 잠시 폐쇄되었던 여파로 이착륙이 밀리면서 90편의 이륙은 1시간 45분 지연되었다. 그 동안 모노프로필렌글리콜과 물을 혼합해 분사하는 얼음 제거 작업이 수행됐으나 작업자들이 안전규정을 어기는 바람에 정상적으로 얼음이 제거되지 않았다. 피토관과 엔진 흡입구를 반드시 처리하도록 되어 있었으나 작업자들은 이를 지키지 않았고, 한 장비로 두 명의 다른 사람이 왼쪽 오른쪽 날개를 별도로 작업한데다 분사 노즐도 고장나 있어서 실질적으로 얼음을 제거하는 모노프로필렌글리콜의 함량이 작업자들이 선택한 것보다 훨씬 적게, 절반정도만 분사되었다.
게다가 게이트를 나설 때 비행기를 뒤로 밀어주는 토잉 트럭(푸시백 트랙터)이 얼음 위에서 미끄러져 게이트에서 벗어나지 못하자 조종사는 약 30~90초간 엔진을 역추진하며 게이트에서 벗어나려 했다. 그러나 이 때문에 날개 위에 눈과 얼음이 쌓이게 되었다. 이런 이유로 역추진은 눈이 올때 사용하지 말도록 이미 경고되어 있었으나 조종사는 이를 몰랐다. 얼마 후 스노우 체인을 장착한 토잉 트럭이 비행기를 후진시켜 게이트에서 벗어났으나 기상 상황으로 인해 비행기가 밀려있어 이후 택시 라인에서 49분간 더 대기했는데, 이 동안 다시 눈발이 거세지면서 날개에 더욱 많은 눈과 얼음이 쌓이게 된다. 조종사와 부조종사는 이 것을 확인했지만 눈의 위험성도 잘 몰랐고 비행기가 더 지연될까봐 두려웠기 때문에 그대로 이륙을 강행하기로 한다.[1] 황당하게도 바로 앞 순번으로 대기 중인 DC-9[2] 가까이 붙어서 제트엔진의 열로 얼음을 녹이려 했다. 얼핏 그럴싸 해도 절대로 금기시 되는 행동인데 조종사와 부조종사 둘다 이를 몰랐다. 실제로는 제트엔진의 강력한 바람에 주변의 눈이 전부 뒤 비행기로 날아오는데다 이미 쌓인 눈을 살짝 녹이기 때문에 잠시 후 곧 단단한 얼음층을 만들게 된다.

2. 이륙, 그리고 추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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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의 황당한 실수들에 이어서 조종사와 부조종사는 엔진 얼음제거 장치를 켜지 않았고, 이 것이 사고의 직접적인 원인이 되고 만다. 이륙전 점검에서 Engine anti-ice를 체크하도록 되어 있으나 '''당연하다는듯이 꺼져있다고 대답하고 그냥 넘어가 버렸다.'''

기장: 피토관 가열장치?

부기장: 켜짐

기장: 엔진 안티아이스?

부기장: '''꺼짐'''

에어 플로리다 90편은 오랜 대기 끝에 오후 3시 59분 32초에 드디어 포트 로더데일 할리우드 국제공항으로 출발을 위해 엔진 출력을 높인다. 하지만 날개에 엄청나게 쌓였던 눈이 앞서 말한 DC-9의 제트엔진 열에 녹았다가 얼어붙으면서 엔진압력비(EPR) 센서가 잘못된 값을 나타내는 상태였고, 엔진의 추력이 정상적으로 제어되지 않고 있었다. 당시 공항의 온도와 고도에서는 이륙 추력이 2.04 EPR 이었어야 하고 조종사도 2.04로 지정했고 계기에도 2.04로 나타났지만, 센서의 문제 때문에 실제 추력은 1.70 EPR에 불과했다. 이륙 중 부기장은 추력이 약하다는 것을 느끼고 기장에게 계속해서 말하지만 기장은 이를 묵살하고 이륙을 계속 진행했다.
오후 4시 00분 31초에 비행기가 안전이륙속도(V2)를 넘기자 기장은 스틱을 당겨 비행기를 공중에 띄운다. 그러나 비행기는 당연하게도 추력부족으로 뜨지 못하고 정확히 1분후인 4시 01분 31초에 지상에 다시 충돌한다. 비행기를 공중에 띄운 시점도 이미 평균적인 활주거리보다 800미터나 더 지난 지점이었다.
당시 조종실 녹음본

16:00:45

기장: Forward, forward, easy. We only want five hundred. (앞으로, 앞으로, 제발. 우린 500피트면 돼.)

기장: Come on forward... forward! Just barely climb. (어서, 앞으로... 앞으로! 조금만 더 올라가면 돼..)

기장: Stalling, we are falling! (실속한다, 떨어지고 있어!)

부기장: Larry, we are going down. Larry? (래리 기장님, 저희 추락하고 있습니다. 기장님?)

기장: '''I know-! (나도 알아-!)'''

16:01:31

'''충돌, 음성 기록 끝'''

조종석에서는 문제가 발생했단 걸 알았으나 제대로 대처하지 못했고, 평상시와는 뭔가 상황이 다르단 걸 눈치챈 몇몇 승객은 충격방지자세를 취했다. 이런 상태에서 비행기는 포토맥 강 위를 날아가다가 14번가 거리의 다리에 뒷부분이 충돌한다. 충돌로 30m 가량의 가드레일이 날아가고 다리 위에 있던 차량 일곱대와 부딪히며 탑승자 4명이 사망했다. 뒷부분이 충돌한 비행기는 앞으로 고꾸라지면서 얼어붙은 포토맥 강으로 추락했다.

3. 구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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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행기에 물이 차오르는 상황에서 몇몇 승객들이 비행기 밖으로 빠져나갔다. 하지만 밖은 섭씨 1도의 얼어붙은 강이어서 빨리 구조되지 않으면 저체온증으로 사망할 위기에 처했다. 생존자들은 모두 덜 가라앉은 꼬리부분에 매달렸다. 오후 4시 6분, 2.5km 거리의 경찰 헬기팀에 출동 명령이 떨어지고 16분이 지나서야 도착해 생존자들을 구조하기 시작했지만 이미 기내에 있던 73명의 승객이 목숨을 잃은 뒤였다.
구경꾼 200여명이 모인 가운데 헬기로 생존자 4명을 구조했고, 남은 1명을 재빨리 구조해야 하는 상황에서 구경꾼 중 미국 의회예산처(CBO)에서 일하던 공무원인 레니 스쿠트닉(Lenny Skutnik)이 직접 강물에 뛰어들어 마지막 생존자를 구조했다. 그렇게 5명을 구조하는데 성공했으나 안타깝게도 마지막으로 목격됐던 생존자인 알랜드 D. 윌리엄스(Arland D. Williams Jr)는 꼬리 부분에서 발견된 것을 마지막으로 시야에서 사라졌고, 결국 숨진 채 발견되었다. 게다가 생존자 및 목격자들의 증언에 따르면, 알랜드 윌리엄스는 다른 생존자들의 구조를 위해 헬리콥터의 줄을 붙잡으려 애쓰고 구조 순서를 양보했다고 하여 더욱 안타까움을 샀다.

4. 생존자


http://media.gettyimages.com/photos/air-florida-flight-90-crash-survivors-joseph-stiley-patricia-felch-picture-id75923434
사진 왼쪽부터 조셉 스타일리(Joseph Stiley), 페트리샤 펠치(Patricia Felch), 로저 올리언(Roger Olian), 버트 헤밀턴(Bert Hamilton)

5. 사고 이후


이 사고로 인해 에어 플로리다는 급격히 재정난에 빠져들었고, 사고 발생 2년 만에 파산했다.
구조되지 못한 채 숨진 윌리엄스를 추모하는 의미에서 사고가 났던 다리는 1983년에 알랜드 D. 윌리엄스 주니어 메모리얼 브리지(Arland D. Williams Jr. Memorial Bridge)로 이름이 바뀌었고, 그의 고향 일리노이 주에는 그의 이름을 딴 초등학교가 생겼다. 가수 사라 히크맨이 그를 기리는 노래를 작곡하기도 했다.
인명 구조와 관련된 어떤 교육을 받지 않았음에도 기꺼이 포토맥 강에 뛰어들어 생존자 1명을 구조한 레니 스쿠트닉은 이후 로널드 레이건 미합중국 대통령에게 미합중국 해안경비대 훈장인 인명구조장 장(Gold Lifesaving Medal)을 받았다. 이 훈장 수훈자들 중 유명인으로 바로 아래 등급인 장을 받은 미합중국 해군원수 체스터 니미츠 제독이 있다.

[1] 지연되면 그 대가는 '''감봉'''이다. 비판하는 것을 무조건 옹호하는 태도는 바람직하지 않다.[2] 뉴욕 에어의 DC-9으로 해당 항공사는 1987년, 컨티넨탈 항공에 합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