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체온증
1. 개요
低體溫症 (Hypothermia)
체온이 적정 수준 이하로 떨어질 때 나타나는 현상. 보통 35도 이하가 되면 저체온증이라고 한다.
체온이 떨어지면 신진대사가 저하되어 온몸이 덜덜 떨리고, 입술, 뺨 등 혈색이 드러나는 부위가 파랗게 되는 청색증이 나타나게 된다. 심한 경우 뇌로 가는 산소량이 줄어들면서 판단력이 흐려지고 잠이 오기 시작한다. 조난 영화 등을 보면 알 수 있듯, 이런 상황에 깜빡 잠들었다가는 높은 확률로 삼도천을 건너게 된다.
2. 증상
체력 및 정신력이 남아있는 동안은 인체는 근육을 움직여 어떻게든 체온을 높여보려 노력하는데 이게 바로 벌벌 떠는 현상이다. 이후에는 뇌간에서 신진대사 기능을 하나씩 꺼가면서 에너지를 보존하려고 분투하게 된다. 허나, 체력이 다하여 더 이상 움직일 기력이 없거나, 잠이 들거나 하여 정신줄을 놓아 버리면, 체력이 바닥나기도 전에 체온 조절 능력을 상실하여 요단강을 건너게 된다. 특히, 술을 먹고 잠들면 자율신경 능력이 저하되어 저체온증에 걸릴 확률이 더 높아진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큰 고통 없이 잠든 채로 죽는 것 정도?
저체온증이 오랫동안 지속되면 어느 순간부터 떨림이 사라지고, 추운데도 옷을 벗어버리려는 행동이 나타난다. Paradoxical undressing(이상 탈의)이라고 하며 원인은 아직 알려지지 않았지만 추위로 인해 뇌간이 망가져 이상명령을 내린다는 설과, 혈관을 수축시키고 있던 근육들이 완전히 지쳐 이완하면서 갑자기 혈류랑이 늘어나(=열이 방출됨) 더위를 느낀다는 설이 존재한다.[1] 이 지경까지 왔다면 환자에겐 이미 정상적인 판단력 따윈 없어진 뒤이다. 그리고 얼어죽기 직전에는 좁은 공간으로 비집고 들어가려는 Terminal burrowing이라는 본능적인 행동을 한다. 동면에 드는 동물에게서 나타나는 행동양상이고, 죽기 일보 직전인 인체에 뇌간이 내리는 최후통첩이다.
우리나라에도 저체온증 때문에 옷을 벗었다가 사망했다고 추정되는 사건이 보도되어 이슈가 된 적이 있다. 해당 기사에 따르면 2018년 4월에 실종신고된 40대 여성이 수영장 기계실에서 알몸으로 죽은 채 발견된 사건인데, 경찰은 신체에 외상 등 흔적이 없고 평소 간질을 앓았다는 근거를 바탕으로 저체온증으로 인해 무의식중에 옷을 벗었다가 사망했다고 추정했다. 이에 댓글 여론은 '추운데 왜 옷을 벗냐?' 하며 경찰의 무지와 태업 때문이라고 잘못된 비난을 했다. 해당 사건에 의학전문기자가 설명한 영상이 있다.
3. 원인
눈 오는 날, 칼바람이 부는 날 같이 몹시 추울 때 걸리는게 보통이지만, 가랑비에 옷 젖는다고 별 다른 보온 대책없이 계속 체온을 빼앗기다 보면, 그다지 춥지 않은 곳에서도 저체온증에 걸릴 수 있다. 보통 보온대책이 미비한 등산객이 야영 또는 노숙을 하거나, 물에 젖은 경우 등에 나타난다. 1970-80년대 서울 근교 북한산에서 고산도 겨울도 아닌데 젊은 등산객들이 단체로 사망한 일이 있었는데, 평상복을 입고 가볍게 등산 갔다가 악천후로 고립된 상태에서 비를 맞고 바람에 노출되어 저체온증으로 죽은 것이다. 이는 등산 중 꽤 자주 발생하는 사고이다. 우의나 방수 되는 등산복, 하다못해 몸을 덮을 큰 비닐이라도 있었으면 죽지는 않았을 것이다. 비 오는 날 열리는 자전거 경기나 마라톤 대회에서도 몸에서 충분히 열을 낼 만큼 달려주지 못하는 초보자 중에서 가끔 저체온증으로 후송되는 사람이 나온다. 2009년 7월 중순경 일본에서 발생한 토무라우시산 조난 사고도 비바람이 몰아치는 상황에서 일정을 강행했다가[2] 한여름임에도 불구하고 8명이나 되는 인원이 저체온증으로 목숨을 잃은 사례이다. 또한 당시 등산 참가자들은 일반인임에도 등산 경력이 어느 정도 있었지만 사고가 발생했던 2009년 당시는 저체온증에 대한 인식이 전무해서 그 위험성이 대중에게 잘 알려지지 않았다는 점도 참사의 한 원인으로 거론된다.
특히 물은 체온을 빼앗기 때문에 상온에서도 저체온증에 걸릴 때가 있다. 단순한 예로 몸의 물기를 잘 닦지 않고 목욕탕에서 나왔을 때를 들 수 있다. 수영장 등에서 보이는 응급조치 표지판이나 체온 데우라고 있는 사우나 같은 것이 그래서 존재하는 것. 이 때문에 불가피하게 강을 헤엄쳐서 건너거나 할 경우에는 옷이 물에 젖지 않게끔 하거나,[3] 옷 입은 채로 들어갈 수밖에 없다면 물에서 나오자마자 옷을 벗고 몸의 물기를 잘 말린 뒤 다른 옷으로 갈아입거나, 불을 피워 젖은 옷을 말려 입어야 저체온증을 피할 수 있다.
이 외에도 산에서 죽는 경우 실족사를 제외하면 대부분이 저체온증이고, 물가에서도 구명조끼를 입고 있다든지 헤엄을 잘 쳐서 운 좋게 즉시 익사는 피했다 하더라도 제때 구조받지 못하면 표류 중 저체온증으로 죽을 수 있다. 영화 타이타닉의 주인공 잭 도슨(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도 침몰에 휘말려 뱃조각에 매달렸지만 결국 저체온증으로 죽고 말았다. 실제로 타이타닉 침몰 때 승객들의 사망 원인 중 저체온증이 가장 큰 비중을 차지했다. 빙산이 떠다니는 겨울 바다는 수온이 섭씨 5도가 채 되지 않기 때문에, 조난자가 20분 이상 목숨을 부지할 확률은 제로에 수렴한다. 영화에도 구명조끼를 입은 채 둥둥 떠 있는 수많은 시신들이 나온다. 의외로 사막에서도 저체온증으로 사상자가 발생한다. 사막은 일교차가 매우 커서 해가 진 뒤에는 섭씨 0도에 가깝게 기온이 떨어지기 쉽다. 이 때문에 한낮의 더위만 생각하고 방한 대책을 세우지 않았다가 저체온증에 걸리는 것.
케빈 베이컨이 주연한 영화 리버 와일드는 계곡 래프팅을 소재로 한 스릴러물인데, 차가운 계곡에서 계속 물을 맞으며 너무 오래 고무보트를 타면 저체온증 때문에 아무리 체력이 좋고 보트 모는 기술이 좋아도 사망한다는 대사가 나온다.
4. 조치
체온이 낮아서 생기는 현상이기 때문에 체온을 정상 체온으로 복구만 시켜줘도 증상은 호전된다. 마른 옷을 입히고[4] 따뜻한 곳으로 옮기거나, 난로같은 것으로 온도를 올려주거나, 아직 의식이 남아있다면 따뜻한 음료를 마시는 것도 큰 도움이 된다. 단 여름철에 물에 오래 들어가 있었던 정도의 저체온증이라면 쉽고 빠르게 회복할 수 있지만, 한겨울이나 극지방, 고산지대같은 한랭지대에서 저체온증이 발생한다면 높은 확률로 동상과 뇌손상이 동반될 수 있다.
5. 기타
수면을 제대로 취하지 못하거나 또는 과다하게 수면할 경우에도 체감온도만으로도 저체온증을 느낄 수 있다.
수술 후 마취에서 깨어난 환자에게도 흔히 저체온증이 나타난다. 전신마취를 받은 환자들은 기관지에 삽입한 인공호흡기 탓에 폐에서 증발하는 수분량이 많아 수술시간에 따라 수분손실이 많고, 이 때문에 체온이 떨어진다. 개복 수술의 경우에도 마찬가지. 전신마취가 아니더라도 수술 중 출혈 등 문제로 체내 보유 수분이 줄어들면 이러한 현상이 일어난다. 당연히 의료진이 즉각 보온조치를 취해주므로 오래 가진 않는 편이다. 대충 수술실에서 병실로 돌아갈 때까지, 사람에 따라 다르지만 약 1시간 이상 지속된다고 보면 된다.
선풍기 사망설의 원인이 저체온증이라는 말이 있는데, 선풍기로는 술을 마신 상태라도 저체온증으로 사망할 정도까지 체온을 낮출 수 없다. 전력소비가 적은 선풍기로 체온을 8도 이상 낮출 수 있게 만든 사람이 있다면 떼돈을 벌었을 것이다. 만약 선풍기로 저체온증에 걸려 죽는 날씨라면 최소 체온을 6~7도는 떨어뜨리는 날씨, 당연히 한겨울, 그것도 혹한일 테니 어차피 선풍기를 켜지 않아도 저체온증 걸려 죽고, 최소한 추위로 인해 영구적인 기능장애가 발생할 것이다. 무엇보다 술에 심하게 꼴은 게 아닌 이상 자다가 체온이 떨어지면 저절로 깬다.
이 외에 체온조절 능력이 떨어지는 어린 동물들이 이것으로 죽는 일도 흔하다. 학교 앞 병아리 사와서 하룻밤을 못 넘기는 게, 병 걸리거나 한 게 아니라 다름 아닌 저체온증이다. 신생아도 체온을 조절하는 능력이 떨어진다. 괜히 강보에 싸는 게 아니다.
위기탈출 넘버원 31회(2006년 3월 4일 방송분)에서 등산 도중 저체온증 발생 시 대처법을 소개했다.
뜀박질을 한다, 옷을 벗고 땀을 식힌다, 술을 마신다, 바람을 쐰다, 산 위쪽으로 올라간다는 오히려 저체온증을 악화시킬 수 있기 때문에 절대 금지이며
온 몸의 땀을 닦고 마른 옷으로 갈아입어야 한다. 또한 의식이 있다면 따뜻한 음료를 마시게 한다.
[1] 온도는 절대치가 아니라 상대적이다. 비슷하게 체험하자면 한겨울 차가워진 손으로 30도 정도의 미온수에 손을 넣어보자 매우 뜨겁게 느껴질 것이다. 가령 이게 속에서 자신의 혈류 때문에 이루어 진다고 하자. 옷을 다 벗고 발광하는것이 이상하지 않을 것이다.[2] 등산 일정 일부를 취소하기는 했으나 그 외의 종주 코스 자체는 완전히 취소하지 않았다.[3] 방수백 등에 넣거나, 아주 가까우면 강 건너로 던진다. 비닐 봉지에 넣고 질긴 끈으로 단단히 묶은 후에, 구명대 대신 옷 봉지를 잡고 헤엄쳐 건너는 편이 현명하다. 부력을 주고자 PET 병을 같이 묶으면 더 좋다.[4] 이때 환자가 꽉 끼는 옷을 입고 있다면 혈액순환을 방해하여 동상의 위험이 있고, 피부에 달라붙은 옷이 외부의 찬 기운을 빨리 전달해서 체온을 쉽게 빼앗아 저체온증을 가속화시키므로 헐렁한 옷으로 갈아입히는 것이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