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이쇼 황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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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英照皇后 / 영조황후
1835년 1월 11일[1] ~ 1897년 1월 11일 (62세)
고메이 덴노의 정실로, 일본의 황후였던 인물이다. 또한 메이지 덴노의 양어머니이기도 하다.
2. 친정 가문
후지와라 가문의 주류 혈통을 이은 후손이자, 고셋케 중의 하나인 쿠죠 가문의 딸로 태어났다. 이름은 아사코(夙子)이고, 이 이름 외에 노리키미(基君)로도 불렸다. 아버지는 에도 시대 말기의 공경으로, 좌대신 등을 지낸 쿠죠 가문의 29대 당주인 쿠죠 히사타다(九条 尚忠)이며, 어머니는 스가야마(菅山) 씨이다.
히사타다의 장남은 쿠죠 미치타카(九条 道孝) 공작이고, 이 미치타카의 4녀가 바로 다이쇼 덴노의 정실 부인인 데이메이 황후이다. 즉, 에이쇼 황후는 데이메이 황후의 시할머니이자 고모인 것이다.
3. 생애
12살이 되던 해인 1845년 9월 14일에 3살 연상인 황태자 오사히토 친왕의 비(妃)가 되었고, 결혼한 지 이듬 해인 1846년에 남편인 오사히토 친왕이 고메이 덴노로 즉위하면서 황후가 되었다.
1850년에 제1황녀 요리코(順子) 내친왕과 1858년에 후키노미야(富貴宮) 내친왕을 낳았지만 모두 아기 때 죽었고, 1860년에 칙령에 의해 측실의 소생인 사치노미야 무쓰히토 친왕을 양자로 맞이했다.
32세이던 해에 고메이 덴노가 갑작스럽게 사망하고, 양자인 무쓰히토 친왕이 메이지 덴노로 즉위한 후인 1868년 3월 18일에 황태후가 되었다. 도쿄로 천도한 이후, 1872년에 아카사카 이궁(赤坂離宮)으로 거처를 옮겼고, 2년 뒤인 1874년에 또 아카사카 어용지로 어소를 옮겼다.
이후 1897년(메이지 30년) 1월 11일에 62세의 일기로 사망하였으며, 사망 후 '''에이쇼 황태후(英照皇太后)'''라는 추호를 받았다.
4. 기타
고메이 덴노의 영향인지 노(能)를 좋아했다고 하며, 이 때문에 1878년 아오야마 고쇼에 노의 무대가 세워졌다. 그리고 1881년에 탄생한 일본 최초의 노가쿠 전용 극장(能楽堂)인 시바노가쿠도(芝能楽堂)도 황태후에게 감상을 제공하는 것이 설립 목적의 하나였을 정도이다.
또한, 황태후는 당대 노의 명인(名人)으로 이름을 떨쳤던 우메카와 미노루(梅若 実)와 호쇼 쿠로(宝生 九郎)에게 같은 곡을 공연하게 하여 그 재주의 차이를 즐겼다고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