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가쿠

 

일본 인류무형문화유산
가가쿠
노가쿠
가부키
분라쿠
쿠미오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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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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쿄겐(狂言)[1]
1. 개요
2. 노(能)
2.1. 역사
2.2. 특징
2.2.1. 전체적인 특징
2.2.2. 극장과 무대
2.2.3. 하야시 음악
2.2.4. 상연 시 특징
2.2.5. 노멘(能面)
3. 쿄겐(狂言)
3.1. 역사
3.2. 특징
3.2.1. 전체적인 특징
3.2.2. 극장과 무대
3.2.3. 상연 시 특징
4. 대중문화에서의 노가쿠


1. 개요


'''노가쿠(能楽)'''는 14세기에 무대예술로 정립되어 현대까지 약 650년간 전승되어온 일본의 고전 연극이며, 현재까지 상연되는 무대 예술 중 가장 긴 역사를 가진 무대 예술이다. ''''노쿄겐(能狂言)'''', ''''사루가쿠(申楽)''''[2] 라고도 부르며, 가부키와 함께 일본의 고전예능을 대표한다. 크게 가면극인 '''노(能)'''와 만담극인 '''쿄겐(狂言)'''으로 나눠지며, 노의 등장 인물들은 가면[3]을 걸치고[4] 등장한다. 전통적으로 노가쿠의 상연은 5개의 노(能) 극과 극중 사이사이의 쿄겐(狂言)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이 구성을 '''고반다테(五番立)'''라고 부른다. 2001년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다.
노(能)의 예시 - 코카지(小鍛冶)[5]
쿄겐(狂言)의 예시 - 카키야마부시(柿山伏)[6]
간혹 노와 노가쿠를 혼용하는 경우가 많은데, 엄밀히 말해 노는 노가쿠의 한 요소이다. 따라서 노와 쿄겐을 한데 묶는 노가쿠라는 말이 가장 적절하다. 아래에서는 노와 쿄겐을 분리해 설명하겠다. 그러나 노와 쿄겐이 분리되어 있다는 뜻은 아니고, 이 둘은 서로 조화롭게 어울려 하나의 노가쿠라는 예술을 완성하는 요소이다.

2. 노(能)



2.1. 역사


노의 시작은 8세기경 나라시대에 중국에서 전래된, 현대의 서커스와 유사한 산가쿠(散楽)에서 유래한다. 散이란 원래 '쓸데없다', 또는 '잡다하다'의 뜻으로 높은 품격을 중시하는 궁중이나 신사에서 우아하게 행하는 아악(雅楽)에 비하여 천하고 대중적인 잡기라는 의미이다. 산가쿠는 11세기 헤이안 말기부터 가무나 흉내, 묘기 등의 익살스러움이 가미된 사루가쿠(猿楽)로 발전했다. 사루가쿠는 지역별로 약간의 차이가 있는 형태로 발달했는데, 그 중 가장 융성했던 형태는 야마토사루가쿠(大和猿楽)라는 형태의 사루가쿠였다. 야마토사루가쿠는 네 곳의 야마토자(大和座)라는 극단[7]이 공연하고 있었는데, 이 사루가쿠의 가무적인 측면을 유우자키자(結崎座) 극단 소속의 칸아미(観阿弥)와 제아미(世阿弥) 부자[8]가 익살스러움이나 유흥적인 요소를 빼고, 보다 세련되고 깊이 있게 다듬어 예술적 수준을 높여 완성시킨 것이 오늘날의 노이다. 이때 사루가쿠에서 분리된 익살스러운 요소들은 아래에서 설명할 "쿄겐"으로 분리되어, 현재까지도 노가쿠의 한 부분을 담당하고 있다. 참고로 칸아미와 제아미 부자의 유우자키자는 지금까지 명맥을 이어가고 있는데, 현재는 칸아미와 제아미의 이름 앞글자를 따 칸제류(観世流)라고 불린다. 이후 나머지 세 곳의 야마토자도 칸제 부자를 따라 노가쿠로 종목을 변경해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칸아미는 천재 희극 배우로, 애 딸린 아저씨였음에도 불구하고 위엄 있는 장수의 연기부터 갸냘픈 소녀의 연기까지 자유자재로 완벽하게 해내는 인물이었다. 그 아들 제아미는 굉장한 미소년이었다고 전해지며, 천재 극작가이자 연극 이론가였다. 실제로 제아미는 세계 최초의 연극 이론 책을 집필했으며, 현재 남아 있는 노가쿠 극 중 대다수는 제아미가 혼자 쓴 것들이다. 그 외에도 도아미(道阿弥), 조아미(増阿弥) 등이 큰 기여를 하였는데, 도아미는 야마토사루가쿠가 아닌 오오미사루가쿠(近江猿楽) 극단 출신으로, 노가쿠의 핵심으로 꼽히는, 부드러운 아름다움인 유현(幽玄)의 미를 정립해 제아미의 작품에 큰 영향을 끼쳤으며, 조아미는 조온나(増女), 후시키조(節木増) 등의 아름다운 노멘을 조각해낸 조각가이자 제아미에게 인정받을 만큼 실력이 출중한 배우였다.
칸아미와 제아미 부자는 당대 쇼군 아시카가 요시미츠로부터 절대적인 후원을 받으며[9] 노를 발전시켰다. 후대 쇼군 요시모치(義持)는 제아미에게 별 관심이 없었지만, 제아미는 이미 쌓아놓은 인맥을 활용, 상류층에게 적극적으로 어필하며 그들의 후원을 받아 풍족하게 살 수 있었다. 그러나 그 후대 요시노리(義教) 시대에는 오히려 박해를 받아, 제아미는 사도 섬으로 유배를 갔다가 요시노리가 죽은 후에야 교토로 돌아와 2년 후에 생을 마감했다. 중세 말 오닌의 난(応仁の乱)을 계기로 중앙 정부의 권위가 실추되어 상류층 위주였던 노의 흥행 반경이 지방으로 확장되어 넓어졌고, 16세기 전국시대오다 노부나가도요토미 히데요시 집권기에 노는 다시 한 번 전성기를 맞았다.
오다 노부나가 일가[10]는 노의 예술성에 주목해, 노를 귀족의 공식 예술로 인정하고 노를 전폭적으로 후원했다. 히데요시는 제아미의 후원자 아시카가 요시미츠에 비견될 만한 존재로 중세 말 노의 흐름에 새로운 활력소를 부여했고, 배우들을 자주 초청하여 공연을 즐기고 심지어 직접 콘파루류(金春流)에 입문해 노를 배우기도 할 정도로 각별한 노의 애호가였다.[11] 히데요시는 직접 자신을 찬양하는(...) 내용으로 극을 여러 편 집필하기도 했고, 또한 배우들에게 영지를 내려서 생활의 안정에 기여하였다.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집권한 이후에도 히데요시의 정책들은 대부분 그대로 시행되었기에 노는 계속 발전하였다. 이런 정책들이 배경이 되어 노가쿠는 사무라이 이상의 계급 전용 예술이 되어, 노가쿠 종사자들은 대를 이어 사무라이/다이묘 가문들을 섬기며 그들에게 녹봉을 받아 생활하는 방식이 계속되었다.
그러나 이와 같은 제2의 전성기 속에서도 새로운 노의 창작 흔적은 거의 찾아볼 수가 없는데, 제아미 이후의 노 관련 종사자들은 기존 작품들을 정해진 연기의 틀 속에서 법식을 벗어나지 않고 얼마나 잘 연기해 내느냐에 승부를 걸었기 때문이다. 노를 관람하다 보면 등장인물들의 모든 언행과 동작이 느리고 절제되었는데, 선대 배우의 몸짓과 언행 하나하나를 있는 그대로 정확히 따라하기 위해 속도가 느려졌다고 한다. 이는 서민들에게 주로 어필했고, 신기술과 새로운 창작 극을 계속해서 발전시킨 가부키조루리와 대비되는 부분이다.
그러나 이 때문에 결국 시간이 지나며 노는 사람들에게 따분하고 판에 박힌 공연으로 각인되었고, 실제로 일본에서 노에 대해 이야기를 하다 보면 한 번도 관람한 적이 없다는 반응이 반, 관람을 했고 신기하긴 한데 너무 지루해서 5분 만에 잠들었다는 반응이 반이다. 에도 막부가 몰락하고 메이지 유신이 시작된 이후로는 노가쿠의 부흥을 이끈 이 지나치게 고전적인 레퍼토리와 막부 체제에 완벽히 적응되어 있는 생활이 오히려 독이 되어 노가쿠 자체의 존망을 위태롭게 했는데, 에도 후반 개항하면서 들어오기 시작한 서구의 선진 문물이 메이지 유신 후에는 사회를 통째로 뒤흔들 정도로 쏟아져 들어와, 전통 예술인 노가쿠와 가부키 등이 설 자리가 급격히 줄어들었기 때문이다. 이때 서민의 예술을 표방하던 가부키는 발빠르게 새로운 문물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여 진화를 거듭하면서 현대 연극과 견주어도 꿀릴 게 없는 수준으로 급성장했지만[12], 모든 변화를 거부하고 무로마치 시대의 연출과 레퍼토리, 그리고 생활 방식까지 그대로 고집한 노가쿠는 이 과정에서 도태하게 되었다. 에도 막부의 몰락으로 막부제가 철폐된 뒤에도 상황 파악을 못하고 쇼군가를 섬기는 것을 고집하다가 경제적 제도적으로 큰 어려움에 봉착하게 된 것. 게다가 모든 힘을 잃은 구 귀족들을 대신해 버팀목이 되어줄 만한 서민들은 그 당시 크게 유행하기 시작한 신파극(新派劇), 많이 양보해도 변화를 모색하는 가부키에나 관심을 가질 뿐, 알아듣기 힘든 고어 대사를 사용하고 분위기도 지루한 노가쿠는 외면되고 만다.
결국 이 과정에서 유파 수곳이 없어져버렸고, 가장 역사가 깊은 유파로 알려졌던 콘파루류(金春流)는 극심한 재정난에 시달리다가 수백 년 동안 가보로 내려오던 노멘과 무대 의상을 비롯한 유물들을 외부에 팔아 생계를 근근히 이어나가야 할 정도로 몰락했다. 다행히 콘파루류에서 이 유물들을 산 부호들 대부분은 노가쿠 애호가들이었기에 구매한 유물 상당수를 콘파루 측에서 다시 사용할 수 있도록 허가해 주었지만, 그와는 별개로 콘파루류 자체의 규모도 엄청나게 쪼그라들어, 2018년 현재까지도 콘파루류는 당시의 상황에서 완전히 회복하지 못했다. 실제로 아무 노가쿠도(能楽堂)나 1년치 공연일정을 전부 찾아봐도 콘파루류의 공연은 1년에 한번 할까 말까 할 정도로 줄어들어버렸다. 한편 메이지 유신을 기해 급진 개혁을 시도한 배우들이 뜻을 모아 우메와카류(梅若流)가 설립되기도 했지만, 지나치게 과격하고 급진적인 개혁을 추구한 탓에 다른 노가쿠 종사자들에게도 따돌림을 당해 없어져 결국 흑역사가 되었다.
이러한 현상을 타파하기 위해 바야흐로 노에도 변화의 바람이 불어 새로운 극을 만들고 노가쿠 종사자들이 적극적으로 나서 노를 홍보하는 움직임도 생겨났다. 대표적으로 1996년에 창설된 노가쿠 종사자 5인으로 이루어진 그룹 "카미아소비(神遊)"[13]가 있었으며, 카미아소비의 멤버이기도 했던 칸제 요시마사(観世喜正) 같은 배우들은 외국에서 몰트 위스키의 탄생을 기념하는 노 공연을 하기도 하는 등, 퓨전 노가쿠와 어린이층 홍보를 적극적으로 한다. 심지어는 영어로 된 노도 여러 편 존재한다. 남북전쟁이나 히로시마·나가사키 원자폭탄 투하를 배경으로 하는 작품들이 있다. 현재는 공연은 물론, 후진 양성도 적극적으로 이루어지고 있어서 과거처럼 대를 이어 종사하는 전문 배우 외에도 국립노가쿠도(国立能楽堂)나 여러 개인 전문가들의 교습을 통해 프로, 아마추어 배우들도 양성되고 있어, 과거의 아는 사람만 아는 예술에서 누구나 교양이나 취미로서 배우고 관람할 수 있는 예술이 되고 있다.

2.2. 특징



2.2.1. 전체적인 특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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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부키가 서민을 대상으로 하여 생겨난 무대예술임에 반해, 노는 무사나 귀족들, 또는 신에게 바치는 것[14]을 염두에 두고 이루어진 무대 예술이다. 따라서 초현실적인 세계를 다루는 경우가 많으며 신이나 환상같은 존재가 다수 등장하여 몽환적인 분위기를 만들어내며 비극인 경우가 많다. 연기와 연출은 극도로 양식화되었고 노멘을 사용하는 경우[15] 희노애락의 감정을 오로지 노멘만으로 표현하는 연습을 하며, 그 이외에는 감정을 억제한, 느리고 차분한 연기가 중시된다. 이러한 양식화 현상에 의해 공연 역시 전용 극장인 노가쿠도(能楽堂)에서만 가능하다. 또한 옛 것을 중시하는 경향이 있어 연습과 훈련을 케이코(稽古)라고 부른다.[16] 배우를 업으로 삼는 가문이 존재해서, 대대로 가업을 이어서 내려오고 있다. 다만 가업을 이어 가는 것이 강제는 아니라고 한다. 재능이 부족하거나 적성에 맞지 않아서 배우의 길을 선택하지 않기도 한다[17]. 배우들을 비롯한 노가쿠 종사자들은 매우 어릴 때부터 케이코를 시작하는데, 보통 3세 이전부터 시작하며, 5세에서 7세 정도에 첫 공연을 한다. 이런 조기 교육과 강도 높은 케이코를 통해, 성인이 되어 있을 때엔 이미 웬만한 역을 맡을 수 있는 전업 배우가 된다.
노의 유파는 다음과 같다. 없어진 유파는 취소선으로 표시했다. 보면 알겠지만 앞서 말한 대로 메이지 유신 즈음 없어진 유파가 매우 많다.
'''시테'''
  • 칸제류(観世流)
노가쿠 성립 전에는 유우자키자(結崎座)라는 사루가쿠 극단이었다. 바로 앞에서 말한 칸아미와 제아미의 후계이다. 가장 유명하며, 노의 성립에 가장 많은 영향을 끼친 유파이다. 유파를 대표하는 노멘은 와카온나(若女). 교토에서 시작하였으나 현재는 도쿄에서 주로 활동 중이다.
  • 호쇼류(宝生流)
노가쿠 성립 전에는 토비자(外山座)라는 사루가쿠 극단이었다. 와키의 호쇼류와는 사실상 다른 유파이다. 다양한 음색으로 부르는 우아한 노래가 특징이기 때문에 노래의 호쇼(謡宝生)라는 이명이 있다. 유파를 대표하는 노멘은 후시키조(節木増). 칸제류의 와카온나와 비슷하게 생겼지만 미간의 콧잔등에 나무 옹이로 인해 생긴 점이 하나 있는 것이 특징이다. 칸제류와 마찬가지로 교토에서 시작하였다. 교토에서 시작한 칸제류와 호쇼류 두 곳을 묶어 카미가카리(上掛)라고 부르기도 한다.
  • 콘파루류(金春流)
노가쿠 성립 전에는 엔만이자(円満井座)라는 사루가쿠 극단이었다. 다섯 유파 중 가장 오래되었으며, 초대 선조가 무려 일본에서 신성시되고 있는 하타노 카와카츠(秦河勝)[18]이다. 역사가 오래된 만큼 소장하고 있는 유물들도 매우 오래되었는데, 무려 쇼토쿠 태자가 직접 깎았다고 전해지는 오키나 가면을 지금까지도 쓰고 있다[19]. 그러나 근대~현대에 접어들며 심각한 재정난을 겪어 유파의 규모가 과거의 역사에 무색하게 축소되었고, 귀중한 유물 대부분을 재정난으로 인해 외부에 판매했기 때문에 현재는 가장 활동이 적다. 이때 콘파루 가에서 팔려나간 노멘 등의 유물들은 현재는 도쿄 국립박물관에 전시 중이다. 유파를 대표하는 노멘은 코오모테(小面). 참고로 코츠즈미, 오오츠즈미를 연주하는 오오쿠라류(大倉流), 그리고 쿄겐의 유파인 오오쿠라류(大蔵流)와 조상이 같은 혈연 관계이다.
  • 콘고류(金剛流)
노가쿠 성립 전에는 사카도자(坂戸座)라는 사루가쿠 극단이었다. 간사이, 특히 교토 지방에서 주로 활동하는 유파로, 화려한 춤이 특징이기 때문에 춤의 콘고(舞金剛)라는 이명이 있다. 유파를 대표하는 노멘은 마고지로(孫次郎). 옛날 콘고류의 배우였던 콘고 마고지로(金剛孫次郎)가 자신의 요절한 부인의 얼굴을 본따 만든 노멘이다. 현대 일본에서 유일하게 노가쿠 배우와 노멘 조각가를 겸업한 우다카 미치시게(宇高通成, 1947-2020)가 이 유파 소속이었다.
  • 키타류(喜多流)
앞의 네 유파가 사루가쿠를 공연하다가 노가쿠로 갈아탄 것과 달리, 키타류는 노가쿠 성립 이후에 콘고류에서 떨어져나가 생긴 유파로, 역사는 가장 짧다. 그러나 현재 가장 왕성한 대외 활동을 보이는 유파 중 한 곳이다. 콘파루류와 동일한 코오모테(小面)를 주로 사용한다. 콘파루류, 콘고류, 키타류 세 곳의 유파는 나라에서 기원했으며, 이 세 곳을 묶어 시모가카리(下掛)라고 부르기도 한다.
1921년에 칸제류에서 떨어져나가 생겨난 유파. 메이지 유신 후 칸제 종가와 사이가 나빠진 우메와카(梅若) 가문과 칸제 테츠노죠(観世銕之丞) 가문[20]이 설립했다. 원래 우메와카 가문은 야마토사루가쿠와 조금 다른 오오미사루가쿠(近江猿楽)를 공연하던 가문의 후계인 탓에 원래부터 칸제 가문과 예풍에서 사소한 충돌들이 많았다. 그렇다고는 해도 워낙에 걸출한 배우들을 다량 배출하기도 했거니와, 상술하였듯이 노가쿠의 핵심인 아름다움에 대한 접근 자체가 오오미사루가쿠에서 비롯된 것이기 때문에 칸제 가문도 함부로 건드리지는 못했던 모양. 그러나 에도 막부가 몰락하고 일본 제국이 세워지자 칸제 가문은 다른 노가쿠 유파들과 함께 쇼군 가문을 보좌해 시즈오카로 피신했지만, 우메와카 가문과 칸제 테츠노죠 가문은 도쿄에 남아 새로운 체제 하에서 급진적인 개혁을 추진해 당대 사람들 사이에서 화제를 끌었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칸제 종가의 허락을 받지 않고 무단으로 제자를 양성해 칸제 가문의 역린을 건드린 그들은 결국 1921년에 칸제류에서 집단 파문되고, 이렇게 된 이상 새 유파를 설립한다는 원대한 계획을 수립, 추진해 우메와카류를 세웠다. 그러나 당주를 누구로 옹립할 것이냐를 두고 설립자들 사이에 암투가 벌어졌고, 관동 대지진으로 유파의 터전인 노가쿠도가 파괴되었으며, 다른 노가쿠 종사자들에게 지나치게 급진적인 예풍과 사실상 칸제 종가의 뒤통수를 친 행위 등이 문제시되어 와키, 하야시, 쿄겐의 모든 유파에게 보이콧을 당하는 삼중고에 빠져 여러 어려움을 겪었다. 결국 5대 칸제 테츠노죠가 가장 먼저 빠져나와 칸제류에 복귀했고, 상당수의 인원과 제자가 빠져나갔지만 핵심 인물이었던 54대 우메와카 로쿠로(梅若六郎)는 끝까지 우메와카류를 포기하지 못했다. 태평양 전쟁에서 일본 제국이 패망한 후에도 칸제류와 우메와카류의 갈등은 깊어만 가, GHQ도 개입해 중재를 시도했으나 실패하고 말았다. 결국 노가쿠 종사자들이 모여 전후 창설된 노가쿠 협회(能楽協会)의 중재 하에 1954년 다시 칸제류로 들어갔다. 이 복잡한 갈등은 칸바이 문제(観梅問題)라고 불리며 칸제류를 위시한 노가쿠 종사자들 사이에서는 언급 자체가 회피되는, 완벽한 흑역사가 되었다. 현재도 우메와카파는 칸제류 내에서 좀 따로 노는 경향이 강하며, 대본도 "우메와카"라고만 쓰여 있어 별도의 유파 표기가 없는 독자적인 것을 사용하고 예풍도 칸제 본가와는 사뭇 다르다.
'''와키'''
  • 호쇼류(宝生流)
시테를 양성하는 호쇼류와 구분하기 위해 시모가카리 호쇼류(下掛宝生流)라고 부르기도 한다.
  • 후쿠오우류(福王流)
  • 타카야스류(高安流)
두곳 다 메이지 유신의 혼란을 견디지 못하고 없어져버렸다.
대부분의 일본 전통 예술이 그러하듯이, 각 유파에는 대대로 내려오는 유파를 대표하는 종가 가문이 있고, 이 가문의 당주를 이에모토(家元)라고 부르며 유파의 장문인으로 대접한다. 또한, 원래 노 무대에는 가부키와 마찬가지로 남자 배우들만이 등장했지만, 1940년대를 기점으로 여성 배우들[21]도 참여하고 있으며, 그 수는 점차 증가하고 있다. 2009년의 통계 자료를 보면 일본 전국의 1400여 명의 노가쿠 배우 중 약 200명 정도가 여우들이라고 한다. 왜 시테 역을 맡는 유파가 많은가 하면, 그만큼 시테 역의 배우(시테카타라고 부른다)가 맡는 역할이 매우 많기 때문이다. 시테카타는 시테와 츠레 이외에도, 무대 도우미인 코켄[22]과 코러스인 지우타이도 맡아야 하기 때문에 수요가 많은 것은 당연한 일이다. 한 유파에 소속된 이후에는 다른 유파로 옮길 수 없다. 당연한 것이, 일가족 전체가 한 유파에 소속되어있기 때문에 유파를 옮기려면 사실상 가족과 의절해야 하기 때문이다. 현재는 유파를 옮기는 것에 대한 제약이 많이 없어졌지만, 유파마다 예풍이 많이 다르기 때문에 어차피 새로운 유파에 들어가도 적응이 힘들다.
각 역마다 유파가 존재하기 때문에, 한번 한 역할을 맡으면 영원히 그 역할만 하게 된다. 시테 배우가 와키 배역으로 등장하거나, 하야시(악사)가 자신이 맡은 악기 외에 다른 악기에 손을 대거나, 아예 배우가 되거나 하는 일은 전혀 없다. 케이코를 진행할 때도 현대의 연극처럼 다 같이 모여서 연습하는 것이 아니라, 시테는 시테, 와키는 와키, 하야시는 각 악기끼리 나뉘어 각자 집(또는 연습장)에서 연습하고, 이들이 실제로 한 곳에 모이는 것은 공연 당일뿐이다. 이러한 철저한 분업화가 이루어져 있기 때문에, 즉석에서 각 역에 종사하고 있는 사람들을 아무나 뽑아서 즉석에서 리허설 한번 거쳐 공연에 투입해도 완벽한 극이 된다. 사실상 무대 위의 인원들이 해당 조합으로 한 자리에 모이는 것은 그 공연 단 한번 뿐이기 때문에, 노가쿠의 공연을 흔히 일기일회(一期一会)라고 표현하기도 한다. 물론, 다른 역할에 대해 전혀 모르면 매우 곤란하니, 초기에는 필수적으로 다른 배역을 맡는 유파의 인물을 초빙해 케이코를 진행하기도 한다. 즉, 배역에 상관없이 모든 종사자들은 모든 역할에 대해 전문적인 지식과 이해가 있고 대개는 능력도 있으나, 자기가 맡은 역할만을 평생 이어나가는 것이다.
노 자체가 많은 준비가 필요하고 공연 시간도 상당히 길기 때문에, 여러 가지 바리에이션이 나와 있는데, 다음과 같다.
  • 우타이(謡)
노 특유의 느릿느릿한 노래만을 하는 공연. 말 그대로 기모노를 입은 배우들이 바닥에 앉아 노래를 한다.
  • 시마이(仕舞)
춤 공연. 기모노를 입은 배우 한명이 춤을 보이는 동안 다른 배우가 뒤에 앉아 노래를 부른다.
  • 마이바야시(舞囃子)
시마이 + 하야시 공연. 기모노를 입은 배우 한명이 춤을 선보이고, 다른 배우들은 지우타이 석에 앉아 노래를 부르며, 하야시가 하야시 석 바닥에 앉아 연주한다.
  • 잇쵸오(一調)
우타이 + 하야시 독주 공연. 기모노를 입은 배우가 노래함과 동시에 하야시 중 한 사람이 연주를 한다.
  • 노(能)
풀버전. 배우가 특유의 의상을 입고 노멘을 걸치는 것은 풀버전 뿐이다. 와키와 쿄겐 배우도 여기에만 등장한다.
이외에도 여러 바리에이션이 존재한다.

2.2.2. 극장과 무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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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가쿠 전용 극장인 노가쿠도(能楽堂). 무대에는 항상 배경으로 소나무가 그려져 있는데, 이는 소나무를 신령스러운 존재로 여기던 옛 전통에서 비롯된 것으로, 무대 전체가 하나의 신성하고 환상적인 곳임을 암시한다. 이 소나무 그림 배경을 "거울 판"이라는 의미의 카가미이타(鏡板)라고 부르는데, 본디 신이 깃든 소나무를 앞에 두고 연기해야 하지만, (관객이 앉아있는 곳이니) 그게 불가능하므로 어쩔 수 없이 뒷배경에 소나무를 그려넣음으로서 마치 무대 앞에 있어야 할 가상의 소나무가 거울로 비친 모습을 표현한다는 의미이다. 무대는 일본산 편백나무(히노키)로만 지어지며, 못을 쓰지 않고 나무 사이의 맞물림만으로 짓기 때문에 필요에 따라 즉석에서 해체 후 재조립이 가능하다. 여기에서 유래해 누군가가 본인의 기량을 펼칠 기회를 얻는 것을 일본에서는 비유적으로 '히노키 무대에 서다'라고 표현하기도 한다.
무대 바로 앞의 객석이 가장 가격이 높고, 무대 옆 배우가 입퇴장하는 길[23] 옆의 객석이 그 다음이며, 상술한 두 객석 사이의 객석은 기둥이 시야를 방해하므로 가장 가격이 싸다. 왜 실내 극장인데 지붕과 기둥이 있냐 하면, 노가쿠도는 본래 야외 극장으로 시작했으며, 현재도 많은 곳이 야외 극장인데, 실내 극장과 야외 극장의 차이를 최소화하기 위해 실내에도 지붕을 짓는 것이 관례로 자리잡았기 때문이다. 또한, 기둥은 지붕을 지지하는 역할도 하지만, 노멘의 절망적인 시야 때문에 반봉사가 된 배우에게 무대의 경계를 알려주기 위한 목적 또한 겸한다. 실제로, 기둥이 없었으면 공연 도중 무대에서 떨어지는 배우의 모습을 관람할 수 있었을 것이다(...). 무대 아래에는 무대 위의 소리를 울려 증폭시키기 위해 작은 항아리를 여러개 묻어두었으며, 무대 주변의 자갈을 깔아놓은 부분은 사실 야외 무대 주변에 물을 채워놔 햇빛을 반사해 무대의 조명을 더했던 시절의 흔적이다. 무대 앞의 작은 나무계단은, 원래는 노가쿠를 감상한 귀족들이 극이 끝난 후 올라가 후원하는 배우에게 두둑한 선물을 하사하기 위한 것이었고, 현재는 물론 관객이 정말 올라가 배우에게 선물을 안겨주는 경우는 전혀 없지만 그냥 옛날부터 있었으니까(...) 그렇게 지어놓은 것이다. 하시가카리 맞은편(사진에서 소나무 그림 오른편, 대나무가 그려진 부분)에는 작은 쪽문인 키리도구치(切戸口)가 있으며 코켄과 지우타이는 반드시 이 쪽문으로만 입퇴장한다. 한편 과거에 사무라이와 다이묘들이 노를 배우던 때에는, 작고 낮은 쪽문을 통해 드나들게 되면 필연적으로 머리를 숙여야 하기 때문에 지체 높은 사무라이로서 이것이 거슬린다는 이유로 지우타이석 바로 옆에 좀 더 큰 문을 만들어 사용했지만, 현재는 사용하지 않는다.
노 무대는 현재도 일본에서 신성시되고 있기 때문에, 무대에 올라갈 일이 있을 때에는 배우 일반인 할 것 없이 반드시 흰색 타비[24]를 신어야 한다. 예외적으로 쿄겐 배우의 경우 맨발을 표현하기 위해 노란색 타비를 신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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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면의 보라색 옷이 시테이고, 오른쪽에 앉아있는 노란 옷이 와키이다. 시테 뒤에는 하야시카타 4명과 코켄 2명이 앉고, 와키의 오른쪽에는 지우타이카타가 앉는다. 지우타이카타는 일반적으로 8명이 앉는다.
무대 구성도 특이한데, 주 무대를 기점으로 해서 무대의 가장 뒷쪽에는 배우들이 특유의 나풀나풀한 옷[25]을 입는 것을 도와주고 간단한 소품 등을 건네주는 코켄(後見)[26]이 두세 명 앉는다. 이들은 시테 배우들이 맡으며, 그날의 무대의 구성이나 한 역만이 아닌 모든 배역을 관리해야 하는 무대 감독에 가깝기 때문에 무대에서 직접 춤추는 배우들보다 해당 상연 작품에 대해 더 잘 알고 있어야 한다. 따라서 일반적으로 경험 많은 배우들이 주로 맡는다.
코켄 앞, 무대 뒷쪽 중앙에는 북을 치고 피리를 부는 하야시카타(囃子方) 네 명이 앉는다. 하야시카타는 각자 크기가 다른 북, 즉 코츠즈미(小鼓)와 오오츠즈미(大鼓), 그리고 타이코(太鼓)[27]를 치는 사람 세 명과 피리를 부는 한 명이 앉는다. 타이코는 보통 귀신이나 신성한 존재 등이 등장할 때만 치기 때문에, 그러한 캐릭터가 등장하지 않는 극에서는 연주하지 않는데, 이 경우에는 세 명만 앉는다. 하야시카타는 악기를 연주하는 것 외에 추임새를 넣기도 하는데, 이를 카케고에(掛け声)[28]라고 한다. 하야시의 우두머리는 오오츠즈미 연주자가 맡는데, 오오츠즈미 특유의 높고 날카로운 소리와 그에 수반되는 연주자의 카케고에가 극의 흐름을 조절하는 데 필수적이기 때문이다. 다만, 그만큼 소리가 시끄럽고 오오츠즈미의 특성상 가죽의 소모가 심하기 때문에 공연에서는 오오츠즈미 대신 효시반(拍子版)이라는 나무 상자를 갖다놓고 하리오우기(張り扇)라는 가죽 부채로 두들김으로서 오오츠즈미를 대신한다. 참고로 노가쿠의 하야시는 일본의 전통 인형의 일종인 히나 인형에 큰 영향을 주어, 실제로 히나인형 전체 세트의 3단에 앉는 고닌바야시(五人囃子)와 구성이 동일하다. 왜 노에서는 네 명인데, 히나인형은 다섯 명인지 궁금해할 수도 있는데, 사실 히나인형의 고닌바야시의 가장 오른쪽의 인형은 노래를 부르는 사람, 즉 지우타이를 나타낸 것이므로 실제 구성은 완전히 동일하다.
무대 오른편에는 지우타이(地謡)가 네 명에서 여덟 명 사이로 앉는데, 이들은 내레이션이나 특정 대사의 소절을 합창하는 사람들이다. 이들 또한 시테 배우들이 맡는다. 뒷줄의 중앙에 앉은 사람이 지가시라(地頭)라고 하여 지우타이의 리더 역할을 한다. 노래를 부를 때에는 반드시 각자 지참하고 있는 흰색 접부채를 집어들고 노래를 시작하는데, 이것이 가부키와 나가우타(長唄) 등의 다른 일본 음악에도 영향을 끼쳐, 가부키나 나가우타 공연을 보면 노래를 부르는 사람이 노래를 부르기 직전에 무릎 앞에 놓아둔 접부채를 집어드는 것을 볼 수 있다.

2.2.3. 하야시 음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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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야시카타가 사용하는 악기. 상단 왼쪽부터 순서대로 코츠즈미(小鼓), 오오츠즈미(大鼓), 타이코(太鼓)[29]. 하단은 피리(笛)[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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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야시 중 타이코(칸제류)의 악보. ツークーツ 등으로 서로 연결되어 있는 것이 실제 타이코가 연주되는 박자이며 옆에 간간히 적혀있는 카타카나는 추임새인 카케고에[31]이다. 보다시피 하야시의 음악은 철저하게 8박자 시스템을 따르며, 카케고에는 단순히 웃기라고(...) 집어넣는 것이 아니고 지휘자가 없는 노 무대에서 자신이 어떤 박자의 어디쯤을 연주하고 있는지 다른 배역들에게 알리기 위한 장치이다. 각 극마다 연주되는 곡들이 정해져 있고, 이 짧은 연주곡[32]과 그 쇼오단을 이루는 각 리듬[33]에는 하나하나 이름이 붙어 있으며, 각 배역마다 전체 리듬 패턴의 구조가 짜여져 있어 하나의 리듬 소절이 각 연주의 어디에 들어갈 수 있는지가 마치 언어의 문법처럼 정해져 있는것이 특징이다. 예를 들어 사진의 츠케가시라(ツケ頭)의 경우 "머리"라는 이름답게 쇼오단의 맨 앞이나 새로운 단(段)[34]이 시작될 때에만 들어갈 수 있으며, 그 뒤에 사진의 오로시(ヲロシ)와 키자미(刻/キザミ), 또는 사진에 없는 타카키자미(高刻)나 히라키(ヒラキ) 등의 단의 "몸통"에 해당하는 소절들을 여러번 연주하다가 단이 끝날 때쯤에 갑자기 북면을 강하게 치기 시작해(上テ) 절정을 표시하며, 단의 맨 끝을 사진의 우치키리(打切) 또는 우치코미(打込) 등으로 마무리한다. 코츠즈미, 오오츠즈미와 피리도 마찬가지의 시스템으로 연주하기 때문에, 각 악기의 파트가 서로 맞물려있다. 이는 같은 악기 구성을 따르면서도 엄격한 8박자 시스템을 따르기보다는 샤미센의 연주에 맞춰 다소 자유로운 박자의 퍼커션처럼 연주되는 경우가 잦은 가부키와 나가우타(長唄)의 하야시 음악[35]과의 분명한 차이점이다.
하야시도, 노나 쿄겐처럼 유파가 여럿 존재한다. 악기마다 가르치는 유파가 다른데, 한 유파에서 많은 악기를 폭넓게 다루는 가부키와 비교되는 점이다. 악기별 유파는 다음과 같다.
'''피리(笛/能管)'''
  • 잇소오류(一噌流)
모리타류와 후지타류의 중간쯤 되는 강도로 연주하는 유파. 다소 구슬픈 듯한 멜로디가 특징이다. 잇소오류 연주자인 네기시 케이코(根岸啓子)의 연주 시범.
  • 모리타류(森田流)
부드러운 연주가 특색인 유파. 현재 남아있는 피리의 세 유파 중 가장 인원이 많다. 모리타류 연주자인 마츠다 히로유키(松田弘之)의 연주 시범.
  • 후지타류(藤田流)
모리타류와 정반대로 강하고 거친 연주가 특색인 유파. 후지타류의 당주였던 11대 후지타 로쿠로뵤우에(藤田六郎兵衛, 1953 - 2018)가 국립국악원을 방문해 공연을 가진 적이 있는데, 이때 공연 영상이 국립국악원 유튜브 채널에 올라와있다. 영상 후지타 로쿠로뵤우에는 2018년에 후사 없이 사망했기 때문에 현재 미래가 매우 불투명한 유파이기도 하다.
후계자의 요절로 없어졌다. 예풍은 모리타류에서 일부 계승되고 있지만, 실제로는 부분적으로 후지타류에 좀더 가까운 예풍이었던 것으로 확인되고 있다.
1892년 당주의 사망으로 없어졌고, 예풍은 잇소오류에서 일부 계승되고 있다.
'''코츠즈미(小鼓/鼓)'''
  • 칸제류(観世流)
첫 당주 이후로 역대 당주들이 대대로 칸제 신쿠로(観世新九郎)라는 이름을 사용하기 때문에 칸제 신쿠로류라고 부르기도 한다. 밧줄을 세게 쥐고 치는 높은 소리를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특징이 있다. 사용하는 시메오(締緒)[36]의 색은 노랑색.
  • 오오쿠라류(大倉流)
코츠즈미와 오오츠즈미를 전부 다루는 유파이다. 현 당주는 코츠즈미 연주자인 오오쿠라 겐지로(大倉源次郎). 2017년에 일본 인간국보 칭호를 받았다. 가장 역사가 긴 유파인 콘파루류와 같이 성장했기 때문인지 상당히 고전적이고 부드러운 느낌을 주는 연주가 특징이다. 가부키의 타나카류(田中流) 등의 주법에 영향을 주었다. 사용하는 시메오의 색은 초록색. 또한 전체적으로 줄(調べ) 자체를 느슨하게 묶는 편이며, 코지메(小締め・小〆)를 독자적인 것을 사용하는 것 또한 특징이다. 오오쿠라류 연주자인 타나베 쿄스케(田邊恭資)의 연주 시범.
  • 코오류(幸流)
가부키의 모치즈키류(望月流), 카타다류(堅田流) 등의 코츠즈미 주법에 많은 영향을 준 유파. 추임새가 강렬하고 독특한 것으로 유명하다. 오오쿠라류와는 정반대로 화려함이 적고 현대적인 느낌이 강한 연주가 특징이다. 사용하는 시메오의 색은 보라색. 코오류 연주자인 후루타 토모히데(古田知英)의 연주 시범.
  • 코오세이류(幸清流)
코오류에서 떨어져나간 유파이다. 첫 당주 이후로 역대 당주들이 대대로 코오 세이지로(幸清次郎)라는 이름을 이어 사용하는 것이 특징. 때문에 코오 세이지로류(幸清次郎流)라고도 불린다. 예풍도 코오류와 다소 흡사하지만 보다 화려함을 추구한 연주가 특징이다. 사용하는 시메오의 색은 갈색. 코오세이류 연주자인 모리사와 유우지(森澤勇司)의 악기 조립과 연주 시범.
'''오오츠즈미(大鼓/大皷/大皮)'''
  • 카도노류(葛野流)
가부키의 오오츠즈미(오오카와) 주법에 많은 영향을 준 유파. 실제로 가부키 연주자들이 오오츠즈미의 줄을 정리하는 법이 카도노류와 흡사하다. 현재는 가부키의 유파인 타나카류(田中流)와 혈연관계가 있다.
  • 타카야스류(高安流)
기백을 중시하고 북을 치기 반 박자 전에 속으로 넣는 기합인 코미(コミ)를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특징의 유파. 워낙 기백을 중시하다보니 남성적인 악기라는 인식이 강한 오오츠즈미의 유파 중에서도 독보적으로 마초적인 연주가 특징이다. 타카야스류 당주인 야스후쿠 미츠오(安福光雄)의 연주 시범.
  • 오오큐라류(大倉流)
본디 코츠즈미 쪽과는 따로 당주가 있었으나, 하필이면 마지막 당주인 오오쿠라 시치자에몬(大倉七左衛門)이 우메와카류에 참여해버리는 바람에 당주 본인이 유파에서 파문당했고, 이후 대가 끊겨 현재는 코츠즈미 쪽과 거의 하나의 유파로 합쳐진 상태. 오오쿠라류의 오오쿠라 쇼노스케(大倉正之助)가 출연한 국악방송 프로그램 참고. 특이하게도 오오츠즈미를 맨손으로 연주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 이시이류(石井流)
보통 2~3단계로 강약을 조절하는 다른 유파와 다르게 강약 조절을 매우 세심하게 하는 것이 특징이다. 심지어는 소리를 내지 않고 가죽을 손으로 한번 톡 만지는 것까지 하나의 박자로 취급한다. 이시이류 연주자인 타니구치 마사토시(谷口正壽)의 연주 시범.
  • 칸제류(観世流)
원래는 호쇼류라는 이름을 달고 와키 호쇼류와 같은 유파로 취급되었으나 1986년 칸제류로 개명했다. 사실 1683년 이전에는 칸제류라는 이름을 사용하다가 바꾼 것이기 때문에, 300년 만에 원래 이름으로 돌아온 셈. 모든 유파 중 가장 인원이 적어, 단 두 명 뿐이다.
에도 초기에 유파의 당주가 일찍 사망해버리는 바람에 차기 당주인 어린 아들만 남았고, 이 아들이 코츠즈미의 코오류(幸流) 밑에서 배우게 되는 바람에 유파의 특색도 옅어지고 거의 코오류 따까리(...) 수준으로 내려갔었다 한다. 실제로 유파 말기에는 그냥 이름도 코오류로 개명되었다. 그러나 메이지 유신 이후 없어졌다.
'''타이코(太鼓/締太鼓)'''
  • 칸제류(観世流)
직선적이고 간결한 움직임과 짧고 강렬한 추임새가 특징인 유파. 가부키의 유파 중 모치즈키류(望月流), 토오샤류(藤舎流) 등의 시메다이코 연주에 큰 영향을 주었다. 칸제류 연주자인 하야시 유이치로(林雄一郎)의 연주 시범.
  • 콘파루류(金春流)
칸제류와는 다르게 화려한 동작으로 연주하는 것이 특징이다. 전체적으로 부드러운 느낌이 강하며 칸제류에 비해 기본 토대가 되는 박자의 가짓수가 다양하다. 북채가 북면에 닿는 시간을 최소화해 보다 깔끔한 소리가 난다는 특징이 있다. 가부키의 유파 중 타나카류(田中流) 등의 시메다이코 연주에 큰 영향을 주었다. 역대 당주들이 대대로 콘파루 소오에몬(金春惣右衛門)이라는 이름을 사용한다. 콘파루류 연주자인 우에다 신야(上田慎也)의 연주 시범.
콘파루류와 혈연관계에 있던 유파. 어디까지나 가족관계만 그렇다는 것이고 실제 예풍은 전혀 달라, 오히려 칸제류와 가까웠다고 한다. 초대 이래로 당주들이 대대로 콘파루 마타에몬이라는 이름을 계승했으며, 초대 콘파루 마타에몬은 현재 타이코 연주에 사용되는 나무 받침대[37]를 발명한 것으로도 유명하다. 메이지 유신 무렵 없어진 것으로 보인다.

2.2.4. 상연 시 특징


주인공을 시테(仕手/シテ)라고 하며, 고반다테의 5개의 극마다 각 시테가 순서대로 등장하는데, 그 차례는 다음과 같다. 가가쿠부터 내려오는 일본 전통 공연예술의 특징인 서, 파, 급(序、破、急)의 흐름을 그대로 따른다.
  • 와키노모노(脇能物)
노인으로 변장한 신(神)이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극도로 느린 연기와 단순한 줄거리가 특징. 기본적으로 노인이 등장했다가 극 후반에 자신의 진정한 정체를 드러내고 와키 배역의 축복을 비는 웅장하고 위엄있는 춤을 추는 구성으로 되어 있다. 치쿠부시마(竹生島), 타카사고(高砂) 등이 이 분류에 속한다. 나이가 많은 노인의 "노쇠함"이 아닌, "오래 살아 지혜롭고 생명력이 강함"이라는 점에 주목하는 노 특유의 정서를 십분 느낄 수 있다. 서(序)에 해당한다.
  • 슈라모노(修羅物)
아수라에 빠진 무사의 영혼이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전쟁터에서 사람을 죽이는 것이 본업이기에 죽어서 성불하지 못하고 아수라에서 고통받는 무사 캐릭터이며, 승려 등으로 등장하는 와키가 무사의 영혼의 구제를 위해 빌어주어 결국 무사가 성불하는 스토리로 되어 있다. 아츠모리(敦盛) 등이 이 분류에 속한다. 노가쿠의 주 관객층이 무사 일을 하던 사무라이 계급이었던 만큼, 슈라모노에 속하는 극들은 특히 사무라이들에게 교양과 더불어 불교적 가치관을 교육하려는 목적도 있기 때문에 불교적 세계관이 배경으로 되어 있다. 파(破)에 해당한다.
  • 카즈라모노(鬘物)
"가발(鬘)"이라는 이름답게 긴 머리의 여인이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여인의 아름답고 우아한 춤과 노래를 보여주는 극으로, 유현의 미가 가장 잘 표현되어 있는 극들의 집합이라는 말을 듣기도 한다. 와키노모노처럼 줄거리는 상당히 단순하고 실제로 줄거리보다 춤에 더 중점을 두는 구성으로 되어있는 것이 대부분이다. 잘 알려진 날개옷의 전설을 기반으로 한 하고로모(羽衣) 등이 이 분류에 속한다. 마찬가지로 파(破)에 해당한다.
  • 자츠노(雑能) / 쿠루이모노(狂物)
자츠노(雑能)는 다양한 시테가 등장하는 작품들이다. 총 94곡이 이 쪽으로 분류되어 가장 곡수가 많은 분류이기도 하다. 줄거리가 상대적으로 복잡하고 깊이있다. 제아미를 위시한 극작가들의 다양한 실험 정신이 돋보이는 곡들이 많은데, 흔히 노가쿠 하면 생각나는 초현실적인 캐릭터가 전혀 등장하지 않는 겐자이노(現在能, 하술)도 대부분 여기에 속한다. 공포물에 가까운 도조지(道成寺), 아오이노우에(葵上) 등과 겐자이노인 아타카(安宅)[38] 또한 이 분류에 속한다. 한편 아들을 잃어버린 슬픔에 실성한 여인이 등장하는 스미다가와(隅田川) 등의 비극적인 작품들 또한 여기에 속하며, 제정신이 아닌 사람이 시테로 등장하는 이런 작품들은 쿠루이모노(狂物)라고 부른다. 파(破)와 급(急)에 해당한다.
  • 오니모노(鬼物) / 텐구모노(天狗物) / 키리노(切能)
오니모노(鬼物)와 텐구모노(天狗物)는 이름답게 텐구오니 등 귀신이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급(急)에 해당하는 작품들답게 춤과 음악이 빠르고 격렬하며, 줄거리는 또다시 단순해진다. 의상 또한 가장 화려하며 고반다테의 마지막을 화려하게 장식한다. 쿠라마텐구(鞍馬天狗), 공포물인 쿠로즈카(黒塚)[39] 등이 이 분류에 속한다. 또한 키리노(切能)라고 하는, 오니나 텐구는 등장하지 않지만 마찬가지로 고반다테의 끝을 장식하는, 격렬한 사자춤으로 유명한 샥쿄(石橋/しゃっきょう)[40]와 모치즈키(望月) 등의 작품들 또한 여기에 속한다. 꼭 빠르고 격렬한 극들만 있는 것은 아니라서 오히려 느리고 여유로운 춤이 등장하는 쇼오죠오(猩々) 등도 키리노에 속하는데, 이쪽은 노 특유의 여운이 남는 결말로 끝난다.
주인공인 시테를 보조해주는 조연을 시테츠레(シテツレ/シテヅレ) 또는 줄여서 츠레(連/ツレ)라고 부르며, 시테와 츠레는 거의 항상 노멘을 걸치고 등장한다. 시테와 정반대인 역할을 맡는 사람을 와키(脇/ワキ)라고 하며, 와키를 보조해주는 조연은 와키츠레(ワキツレ/ワキヅレ)라고 부르고, 이 둘은 노멘을 걸치지 않는다[41]. 주로 시테는 귀신이나 신성한 존재 등인 경우가 많으며, 그 정반대인 와키는 살아 있는 사람인 경우가 많다. 와키는 귀신인 시테가 등장해 자신의 삶에 대해 넋두리를 늘어놓으면, 이를 들어주고 맞장구를 쳐주며, 시테가 자신의 마음을 표현하는 춤과 노래를 하도록 부추겨주는 역할을 하기 때문에, 시테가 춤을 시작하면 자리에 가만히 앉아 병풍이 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와키는 극의 시작에서 가장 먼저 대사를 하며 자기소개, 츠레의 소개와 극의 배경 줄거리를 말해주는 역할을 하고, 시테와 츠레와 대화를 하며 극의 줄거리를 진전시키는 역할을 하기 때문에, 줄거리 없이 시테의 춤 자랑 원맨쇼가 될 수 있는 노 공연이 "연극"으로서의 정체성을 가지게 하는, 존재감은 없지만 중요한 역할이라고 할 수 있다. 실제로 와키가 존재하지 않는 오키나(翁)의 경우에는 이렇다 할 줄거리를 찾을 수가 없다. 노에서 천황 등의 "가장 신성한 역"은 반드시 코카타(子方)라고 하는 아역배우가 맡는데, 배역을 가리지 않고 어린 아이에게 맡기는 것이 일반적이다. 하야시카타 등의 연기하지 않는 배역의 경우에도 어린 시절에는 코카타를 맡는 경우가 많다.
시테가 "주인공"의 취급이기는 하지만, 현대적인 관점에서 보는 주인공과는 차이가 있다는 점이 주의할 부분이다. 현대적, 서양적 관점에서 괴물과 맞서 싸우는 용사의 이야기에서는 용사가 주인공이지만, 노가쿠에서는 동일한 스토리라도 괴물이 시테이고 진 주인공인 용사는 와키가 된다. 간혹 한 극의 전반부와 후반부의 시테가 다른 인물인 경우가 있는데, 이 경우 전반부의 시테를 마에시테(前シテ)로 부르고 후반부의 시테를 노치시테(後シテ)라고 부른다. 배우는 동일 인물이 연기하기 때문에, 일반적으로 이러한 극의 경우 마에시테가 퇴장하고 상당한 시간이 흐른 후(=배우가 의상을 갈아입을 시간을 준 후) 노치시테가 등장하는 경우가 많다. 흔히 와키노모노 등지에서 극 전반에 노인으로 등장한 캐릭터가 후에 자신의 진정한 정체(신)를 드러내고 위엄 있는 연기를 펼칠 때 등이 여기에 해당한다.
시테와 츠레는 초현실적인 존재임을 표현하기 위해 노멘을 걸치지만, 하술할 겐자이노(現在能)의 경우에는 그러한 존재가 등장하지 않기 때문에 극의 등장 인물들이 몽땅 남자인 데다가 마침 역을 맡은 배우와 나이도 비슷하면 시테와 츠레도 노멘을 걸치지 않고 맨 얼굴로 등장하는 경우도 있다.
보통 극당 1시간 이상 걸리기 때문에, 고반다테를 전부 처음부터 끝까지 관람하면 굉장히 시간이 많이 걸린다. 해서 요즘은 고반다테를 모두 상연하는 경우는 드물고, 간소화 해 두 개의 노 극과 하나의 쿄겐 극만을 주로 상연한다. 새해 첫날이나 휴일 같은 때에는 아래에서 설명할 '오키나'를 첫 무대로 상연하기도 한다.
같은 나라의 무대 예술이지만 가부키와의 차이점이 많은 편인데, 가부키는 희극이 많고 유명한 회전 무대를 비롯한 화려한 무대 효과[42]와 음향 효과[43], 방정맞은 음악과 발랄한 춤을 주로 이용하지만 노는 화려한 무대 효과 등이 전무하며[44], 느리고 엄숙한 분위기의 연기와 춤, 그리고 소품의 간소화[45] 등이 특징이다[46]. 또 하나의 차이점으로는, 가부키의 여성 역을 맡은 배우(온나가타)는 여성적 발성을 하는 것에 비해, 노에서는 여성 역을 맡은 배우도 남성의 목소리를 그대로 사용한다는 점이 있다[47]. 또한, 노는 대부분의 대사, 특히 시테와 츠레의 대사가 노래로 되어 있는데, 대사를 요쿄쿠(謠曲)라 하며[48], 가부키의 그것보다 훨씬 간소한, 오직 3-4명만의 인원으로 이루어진 하야시의 악기 연주에 맞춰 대사와 동작이 이루어진다. 실제로는 노래라고는 해도, 고대의 동양의 노래들이 흔히 그렇듯이 느릿느릿하게 시조나 창을 읊는 듯한, 멜로디나 박자에 별로 신경을 쓰지 않아 보이는 점이 특징이다. 물론 실제로는 박자와 특히 멜로디에 매우 많은 공을 들이지만. 노가쿠 배우들이 괜히 걸음마를 떼자마자 훈련을 시작하는 것이 아니다. 대본은 우타이본(謡本)이라 부르고, 대사 옆에는 점과 기호를 찍어 박자와 멜로디를 표기하는데, 헨타이가나와 전용 약자를 많이 사용해 일반인은 읽기 대단히 어렵다.
오히려 유사성으로 따진다면 가부키보다는 고대 그리스의 연극과 의외로 유사성이 많다. 남성 배우들이 여성의 역할도 연기했다는 점, 가면을 착용한다는 점, 신에게 바치는 무대였고 주 내용이 비극이었다는 점, 느릿느릿한 창법과 춤 등을 이용했다는 점 등이 매우 유사하다. 비록 둘이 성립된 시기가 약 2000년 이상 차이가 나지만 노가 중국의 익살스러운 산가쿠에서 독자적으로 발전한 점을 고려해보면 일종의 수렴진화라고도 볼 수 있다.
상연 종목이 크게 겐자이노와 무겐노로 나뉘는데, 겐자이노(現在能)는 모든 등장인물들이 살아 있는 사람이란 설정으로, 현실 세계에서 일어난 일을 주제로서 다루는 반면, 무겐노(夢幻能)는 이미 죽은 사람의 망령(시테)이 지나가던 나그네나 스님 한 사람(와키)을 붙잡고는 자기 생전의 이야기를 늘어놓다가 사라지는 내용이다. 겐자이노는 현실의 이야기를 다루기 때문에 극중 시간이 항상 순차적으로 흘러가는데 반해, 무겐노의 경우는 극중 시간이 역행하기도 하고, 과거 회상을 보여주기도 하는 등, 현대의 플래시백과 비슷한 기법을 보여준다.
그 외에 그 어느 분류에도 들어가지 않는, 오키나(翁)라는 매우 특이한 공연이 있는데, 오키나는 다른 노 극들과 전혀 다른, 혼자만의 장르를 가지고 있는 공연으로, 노가쿠의 확립 이전, 사루가쿠 시절 때부터 전해 내려오는 전통 깊은 공연이다. 관객이 유흥거리로 감상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스토리와 대사가 있는 다른 극들과 성격이 많이 다른데, 오키나는 바로 앞에서 이야기한 '''신에게 바치는 무대'''이며, 연극이기 이전에 신토 제례 행사이기 때문이다. 때문에 공연에 줄거리가 없으며, 실제로 영상을 보다 보면 무대에 신령함을 상징하는 금줄을 걸어놓은 것을 볼 수 있다. 뿐만 아니라 무대의 구성과 전개 방식도 매우 다르다[49]. 오키나는 상연하기 며칠(주로 3*7=21일) 전부터 등장 배우들이 육식을 삼가고[50] 몸을 청결히 해야 하며[51], 배우와 하야시, 코켄, 지우타이를 포함한 모든 인물들은 격식 있는 복장을 갖춰야 하고[52], 신령한 존재를 맞이하는 행사이기 때문에 관객은 일단 공연이 시작하면 중간에 출입하지 못하고 끝날 때까지 계속 앉아 있어야 한다. 오키나의 각 배역에 대한 자세한 설명은 밑의 쿄겐 문단에서 서술한다.

2.2.5. 노멘(能面)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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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키노모노(脇能物)에 쓰이는 오토코멘(男面)의 하나인 코죠(小尉). 할아버지를 연기할 때 주로 쓰이는 노멘들인 죠케이(尉系) 중 가장 자주 쓰이는 가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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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라모노(修羅物)에 쓰이는 신레이멘(神霊面)의 하나인 타카(鷹). 의 신을 연기할 때 쓰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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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즈라모노(鬘物)에 쓰이는 온나멘(女面)의 하나인 '조온나(増女)'. 무녀나 선녀, 여신처럼 신비한 여인을 연기할 때 쓰이는 가면이다.[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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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츠노(雑能)에 쓰이는, 온나멘과 더불어 가장 유명한 한냐(般若). 원한을 품은 여자 귀신을 연기할 때 쓰이는 가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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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니모노(鬼物)에 쓰이는 키진멘(鬼神面)의 하나인 코베시미(小べし見). 입이 다물어져 있는 것이 특징이다. 이 가면을 착용한 배역은 대사가 없다는 것을 유추해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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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키나에만 쓰이는 오키나멘(翁面)의 하나인 하쿠시키조(白式尉). 가장 역사가 깊은 가면 중 하나이며 노멘과는 다소 다른 카테고리로 분류된다.
노 전용 가면은 일반적으로 노멘(能面)이라 불리며[54], 그 종류도 매우 다양하고 각 노멘이 맡는 역할도 매우 다양하다. 수많은 노멘 중 카즈라모노에 쓰이는 여인 가면[55]한냐 가면이 가장 유명하다. 이 온나멘은 당시로서는 유행하던 기법으로 화장을 한 미인상을 표현한 것이었다. 당대 일본의 미인의 기준은 모 대학 교수의 말을 빌리자면 "얼굴은 하얗게, 이빨은 검게, 이마는 좁게"라고 표현할 수 있는데, 얼굴은 분을 칠해 최대한 하얗게 하고, 이빨은 철분이 포함된 특수 염료로 검게 칠하고, 가르마를 타서 훤히 보이는 이마가 좁아 보이도록 원래의 눈썹을 뽑고 이마 윗쪽에 새로 검댕을 발라 눈썹처럼 보이게 한, 현대인의 입장에서 보면 심히 기괴해 보이는 얼굴이었다. 온나멘을 보고 그 기묘한 생김새와 기괴한 화장법에 놀라게 되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그래서인지 일본산 공포 게임이나 괴담집 커버 등등 각종 호러 매체에서 사악한 귀신의 매개체로 사용되는 일도 빈번한 편.[56] 한때 일본 트위터상에서 유행했던 난폭운전 대책 중 하나가 자동차 뒷유리 또는 뒷좌석 헤드레스트에 노멘을 달아 놓는 것이었다고.[57] 이런[58]식으로[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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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연기자는 감정을 억제한 연기를 펼쳐야 하기 때문에, 모든 감정표현을 노멘으로 하게 된다. 아무런 표정도 없는 노멘에서 이게 어떻게 가능한지 궁금한 사람도 있을 텐데, 바로 노멘의 기울어진 각도를 통해 기쁨, 무표정, 슬픔, 두려움 등을 표현한다. 노멘을 착용한 상태에서 고개를 위로 치켜올리면 노멘이 무대의 빛을 받아 환해지면서 기분이 좋은 듯한 분위기를 내며, 반대로 고개를 아래로 숙이면 노멘에 그림자가 드리워지면서 슬픔이나 분노 등을 표현하는 방식이다.[60] 노멘을 잘 보면 얼굴 양 쪽의 표정이 미세하게 다른데, 이것 또한 배우의 정교한 움직임으로 여러 가지 감정으로 승화시킨다. 이외에도 배우들의 연기는 극도로 정형화되어 있는데, 예를 들어 노멘의 눈 부분을 손으로 가리는 것은 슬픔에 겨워 통곡하는 것을 표현하는 식이다. 그래서 노멘을 아무런 표정이 없으면서도 천의 얼굴을 담았다고 표현하기도 한다.
노멘은 이외에도 여러 특징이 있는데, 일단 재질은 일본산 편백나무(히노키)만 쓰이며, 온나멘의 흰 분칠은 조개껍질을 갈아 만든 안료로 칠한다. 장인이 손으로 하나하나 만드는 물건이다 보니 제작에 시간이 오래 걸리고 따라서 가격이 매우 비싸다. 노멘의 안쪽, 즉 배우의 얼굴이 닿는 부분은 촛불로 그을린 후 밀랍이나 옻 등을 바른다. 이 안쪽에는 제작자의 서명과, 각 노멘의 특징 등이 쓰여 있으며, 배우의 얼굴에서 흐르는 땀을 효과적으로 모아 앞면에 땀이 묻지 않게 하기 위해 깊은 골이 여러 개 파여있는 경우도 있다. 또한, 이 안쪽의 턱 부분은 깊게 파여 있는데, 이는 배우의 목소리를 증폭시켜 입구멍으로 내보내는, 일종의 울림통 역할을 한다. 따라서 배우가 이 부분에 정확하게 대고 대사를 읊지 않으면 관객들에게 배우의 목소리가 제대로 들리지 않을 수 있다. 노멘은 원칙적으로 16세 이상의 시테 배우만이 착용할 수 있으며, 와키 배우나 악사인 하야시카타 등은 착용이 금지된다. 착용 시에는 반드시 고개를 숙임으로서 예를 표해야 하는데, 가면 자체에게 하는 인사라기보다는 가면을 처음 조각한 사람과 대대로 해당 노멘을 착용해 온 자신의 조상들에게 예를 표하는 것에 가깝다. 상당히 엄격하게 대를 이어 가보로 관리되고 있고 대다수는 실제로 지정문화재이기 때문에, 단순한 복제품이 아닌, 실제 배우들이 착용하고 연기하는 노멘의 경우 일반인은 만지지도 못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얼핏 보면 단순히 사람의 얼굴을 묘사해놓은 것처럼 보이지만, 자세히 보면 각도에 따라 표정이 바뀌게 여러 장치를 해 놓은 것이 보인다. 특히 옆에서 봤을 때 이 장치들이 두드러지는데, 눈은 항상 아래쪽으로 비스듬하게 깎아 놓았고, 아랫입술이 윗입술보다 조금 튀어나오게 깎여 있다. 그렇기 때문에 배우가 고개를 숙이면, 눈을 감고 입을 다문 것 같아보이게 돼, 슬픈 얼굴을 부각시키게 되며, 고개를 들면 눈을 크게 뜨고 입을 벌려 웃는 것처럼 보이게 된다. 노멘이 연기자의 얼굴보다 작은 것도, 연기자가 대사를 읊을 때 턱이 움직이는 모습을 그대로 보이게 해 말하고 있다는 느낌을 더욱 직접적으로 주기 위함이다. 한냐 등의 경우에는 특이하게도 가면의 왼쪽과 오른쪽이 서로 다르게 그림자가 지는데, 무대에 등장할 때는 (배우 기준에서)오른쪽 얼굴이 보이기 때문에 깊은 분노와 고뇌를 표현하기 위해 그림자가 더 짙게 드리운 반면, 갈등이 해소되고 배우가 퇴장할 때 보이는 왼쪽 얼굴의 경우 그림자가 덜 지고 보다 평화로운 표정이 묘사되어 있다.

3. 쿄겐(狂言)



3.1. 역사


쿄겐은 노와 거의 비슷한 시기에 정립되었고, 그 당시까지 유행하던 사루가쿠의 가무적인 측면에 신성함과 높은 예술적 수준을 추가해 만든 노와 달리, 사루가쿠의 익살스러운 측면을 강조해 만들어진 것이 특징이다. 쿄겐은 후에 등장할 가부키의 정립에 매우 큰 영향을 끼쳤는데, 가장 원시적인 형태의 가부키인 온나카부키(여성 배우가 등장)가 풍기문란을 조장한다는 이유로 막부에 의해 금지당하자, 야로카부키(남성 배우가 등장)가 등장할 때 온나가부키의 색정적인 요소를 배제하고, 쿄겐의 익살과 희극적인 요소를 많이 따왔기 때문이다. 아예 쿄겐에서 스토리를 따온 극들도 많은데, 코믹한 진행으로 유명한 미가와리 자젠(身代座禅)의 경우 쿄겐 하나고(花子)의 스토리를 그대로 차용해왔다. 늙고 사나운 마누라 몰래 젊고 탱탱한 여자를 만나기 위해 꾀를 부리다 결국 들켜 경을 치는 공처가 남편의 이야기. 이와는 별개로 노처럼 춤을 강조한 극도 많은 편인데, 이런 극들은 상연 시간이 짧고 페이스가 보다 빠르다는 것을 제외하면 노와 큰 차이가 없다.

3.2. 특징



3.2.1. 전체적인 특징


"미친 소리"로 번역될 수 있는 그 이름에서 파악할 수 있다시피, 만담을 풍부하게 사용하는 희극이다. 엄숙하고 진지한 노와 달리 우스꽝스럽기 때문에 노보다 격이 떨어진다고 생각될 수 있지만, 쿄겐 또한 노와 더불어 650년간 이어져 오면서 하나의 예술로 승화한, 격식 높은 전통극이다. 당연히 케이코 또한 노 못지않게 빡세게 진행되는데, 쿄겐 배우들이 주로 쓰는 단어인 "소모소모" 한 단어 연습하는 데에만 한 달을 보낸다고 한다(...). 이 영상에서 쿄겐 배우 노무라 타이치로(野村太一郎)[61]가 쿄겐을 소개하며 자신의 케이코 영상을 공개하는데, 보면 알겠지만 굉장히 엄격히 진행된다. 지도해주는 사람은 그의 할아버지인 인간국보 노무라 만(野村萬). 보오시바리(棒縛)라는 쿄겐 극 또한 짤막하게 감상할 수 있다.
극의 진행을 위해 노는 최소 시테 1명, 와키 1명에 하야시와 코켄, 지우타이까지 따라붙어야 해 요구되는 인원이 매우 많지만 쿄겐은 그러한 제한이 없는 것도 특징. 하야시도, 코켄도, 지우타이도 없는 무대 위에 시테와 아도 단 두 명만 등장해서 극을 진행하는 경우도 많다. 반면에 노처럼 하야시와 지우타이가 따라붙는 공연도 있는 만큼 무대의 구성이 아주 다양한 편이다.
쿄겐의 등장 인물들은 대체적으로 정형화되어 있어 그 특징을 파악하기 쉽다. 주로 바보 같은 높으신 분[62]과, 그를 놀리는 하인이 등장한다는 점에서 한국탈춤과 비슷한 요소를 갖추고 있다. 다만 서민층이 관람하는 탈춤과 달리, 쿄겐은 어디까지나 노와 함께 귀족층이 관람하는 예술이기 때문에, 이런 경우 뺀질대던 하인은 반드시 마지막에 주인에게 참교육을 당하고 꽁지 빠지게 도망가며 극이 마무리된다.
이외에도 몸개그풍자가 많이 녹아들어 있어 현대 관점에서 보면 따분하고 재미없는 노와 달리 현대인의 시각에도 재미있다. 또한, 노가 꿋꿋이(...) 고어(古語)를 사용[63]하는 것과 달리, 쿄겐은 상대적으로[64] 현대적인 어체를 사용해, 노보다 알아듣기 쉽다. 특히 노의 경우, 배우가 요쿄쿠를 읊을 때 바이브레이션을 넣고, 창을 읊듯이 느릿느릿하게 끌면서 대사를 읊으며, 그 대사가 노멘에 가려 웅얼거리기 때문에 고어를 알아도 미리 준비된 대본이 없으면 제대로 알아듣기 힘든 것에 비해 쿄겐은 배우가 가부키처럼 과장되긴 했지만 상대적으로 평범한 구어체에 가까운 말을 구사하기 때문에 확실히 알아듣기 쉽다.
춤이 메인이 되는 쿄겐의 경우, 대사가 거의 없으며 처음부터 끝까지 격렬한 춤이 등장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일반적으로 쿄겐에는 음악이 등장하지 않기에 하야시카타도 무대에 오르지 않으나, 춤을 추는 경우 하야시카타도 무대에 올라 연주를 한다. 특이한 점은 쿄겐에서 하야시가 연주할 시에는 코츠즈미와 오오츠즈미 주자가 노처럼 의자에 앉아 정면을 보고 연주하지 않고 대신 바닥에 앉아 서로를 마주보고 연주한다는 점이다.
현대의 연기와 전혀 달라 현대극 연기가 힘든 노 배우들과 달리, 쿄겐 배우들은 가부키처럼 사실적인 연기를 중시하기에, 상대적으로 영화계 등의 진출이 수월한 편이다. 노무라 만사이가 좋은 사례.
원래 세 곳의 유파가 존재했지만, 현재는 두 곳만 살아남았다.
  • 오오쿠라류(大蔵流)
도쿄칸사이 지방에서 주로 활동하며, 격조를 중시하고 다소 고전적이지만 정해진 만큼은 자유로운 예풍을 지니고 있다.
  • 이즈미류(和泉流)
도쿄나고야 지방에서 주로 활동하며, 현대적이고 부드러운 예풍을 지니고 있다. 노무라 만사이가 이즈미류 소속이다. 오오쿠라류와 비교해보면 연기나 발성이 다소 깔끔하다는 느낌이 강하다.
한때 도쿠가와 가문의 전속 쿄겐 공연을 담당할 정도로 위상이 높았으나, 후계자의 부재로 메이지 유신 이후 타이쇼 무렵 없어졌다. 이후 사기류의 예풍과 작품들은 곳곳에 흩어졌으며, 아직도 미약하게나마 계승이 되고 있다.

3.2.2. 극장과 무대


극장은 노에도 쓰이는 노가쿠도(能楽堂)에서 노와 함께 이루어진다. 다만, 노처럼 배우가 정해진 장소에서만 앉아 있는 것이 아니라, 무대 곳곳을 돌아다니며 익살스러움을 더한다. 노처럼, 등장 배우들이 발뒤꿈치를 들지 않고 미끄러지듯이 걷는 것이 특징인데, 이는 노가쿠도의 나무 무대는 발소리가 울리기 쉽기 때문이다. 다만, 노에서 등장인물들이 항상 느릿느릿하게 걷는 것과 달리, 쿄겐의 등장인물들은 걷는 속도가 매우 다양한데, 그렇기 때문에 노의 비현실적이고 몽환적인 분위기 대신, 철저히 현실적인 분위기에 일조한다. 심지어는 아예 옆으로 데굴데굴 굴러서 등장하는 배역도 간혹 존재한다(...).
노에서 등장인물을 포함한 무대 위의 모든 인원은 반드시 흰색 타비(足袋)를 신어야 하지만, 쿄겐의 경우 이례적으로 맨발을 표현하기 위해 노란색 타비를 신는 경우도 있다. 이외에도 시테가 물구나무를 선다거나, 긴 하시가카리를 멀리뛰기로 한번에 점프한다거나 하는 격렬한 움직임 또한 많은 편이다.

3.2.3. 상연 시 특징


주인공을 시테(シテ)라고 부르는 것은 노와 같다. 그러나 주인공의 상대 역은 와키가 아닌, 아도(アド)라고 불린다. 여러 등장인물이 동일한 성격을 띄고 등장하는 경우도 있는데, 이때 이 등장인물 무리를 타치슈(立衆)라 하고, 그 우두머리를 타치가시라(立頭)라고 한다. 또한, 시테와 와키가 서로 철저히 분리된 배역으로서 서로 다른 유파에서 따로따로 교육받는 노와 다르게, 쿄겐은 한 배우가 경우에 따라 시테도 하고 아도도 하는 등, 연기의 폭이 더 넓다는 것 또한 특징이다.
노와 마찬가지로 어떤 시테가 등장하냐에 따라 여러 분류로 나뉘는데, 대략 다음과 같다. 출처
  • 와키쿄겐(脇狂言)
노의 와키노모노에 해당하는 쿄겐. 노와 마찬가지로 신이 인간계에 강림해 축복을 내리는 내용을 담고 있으나 시종일관 엄숙하고 근엄한 노와는 다르게 다소 친근하고 유쾌한 신이 등장한다. 다이코쿠텐(大黒天)이나 에비스 등 민간에 친숙하고 웃는 얼굴로 주로 그려지는 신들이 등장한다.
  • 다이묘쿄겐(大名狂言)
다이묘가 시테로 등장하는 쿄겐. 물론 여기서 등장하는 다이묘는 탈춤과 마찬가지로 어딘가 좀 모자란 인물이다. 이를 놀리고 장난을 자꾸 치는 하인이 등장하는데, 하인 이름은 보통 타로카쟈(太郎冠者)로 고정되어 있다.
  • 쇼묘쿄겐(小名狂言)
다이묘가 시테로 등장하는 다이묘쿄겐과 정반대로 하인 타로카쟈가 시테이자 타치가시라로 등장하는 쿄겐. 일반적으로 장남의 이름으로 흔히 붙는 타로(太郎)라는 이름답게 타로카쟈는 하인의 우두머리이고, 같이 등장하는 하인들(타치슈)은 지로카쟈(次郎冠者) 등으로 이름이 붙는다. 주인인 다이묘는 정상인이고, 타로카쟈를 위시한 하인들이 주인 말을 듣기 싫어 뺀질거리거나 꾀를 자꾸 부리다가 결국 분노한 주인에게 한 대 얻어맏고 사과하면서 도망가는 극들이 대부분이다. 유명한 보오시바리(棒縛)가 쇼묘쿄겐에 속한다.
  • 무코쿄겐(聟狂言)
처가를 방문하는 사위(聟)가 시테로 등장하는 쿄겐. 장인 앞에서 인사를 드리고 정식으로 사위로 대접받길 원하지만, 상황들과 운이 더럽게 안 따라주어 결국 일을 망치고 마는 새신랑의 이야기를 다룬 극들이라 할 수 있다.
  • 온나쿄겐(女狂言)
여인이 시테로 등장하는 쿄겐. 여인이라지만 그 분위기는 노의 카즈라모노와 전혀 다르다. 노에서 여인의 우아한 아름다움을 보여주는 데에 치중했다면, 여기서는 거꾸로 앙칼진 여자나 못생긴 여자를 등장시켜 웃음을 유발한다. 가발과 온나멘을 착용하는 노와 달리 쿄겐의 여성 역 배우는 긴 흰 천을 머리에 감아 긴 머리를 형상화한 것 외에는 별다른 분장을 하지 않는다는 점도 특징. 다만 추녀 캐릭터는 예외적으로 노멘 코오모테(小面)가 고도비만에 걸린 것 같은, 대단히 우스꽝스럽게 생긴 여인 가면을 착용하기도 한다. 상술한 하나고(花子)가 온나쿄겐에 속한다.
  • 오니쿄겐(鬼狂言)
오니 등의 요괴가 시테로 등장하는 쿄겐. 물론 쿄겐답게 여기서 등장하는 오니도 어딘가 나사가 빠져 있다(...). 인간 여자를 보고 홀딱 반해 자신의 보물을 털리기도 하고, 망자를 지옥으로 안내해야 하는 염라대왕은 망자에게 속아넘어가 대신 극락정토로 데려다 주는 등 행동이 대단히 안습하기 그지없다.
  • 야마부시쿄겐(山伏狂言)
슈겐도의 승려인 야마부시(山伏)가 시테로 등장하는 쿄겐. 본디 후지산을 성지로 삼고 수행을 닦아 인간 영혼의 성불을 도와야 하는 야마부시이지만 쿄겐에서는 기대를 저버리지 않고 하는 일마다 죽을 쑨다. 자신의 법력에 대해 호언장담하며 뭔가 대단히 그럴싸한 주문을 외우는데 그것이 결국 듣지 않거나 아예 거꾸로 들어서 공개적으로 망신을 당하는 등의 이야기가 전개된다.
  • 슛케쿄겐(出家狂言)
출가한 승려가 시테로 등장하는 쿄겐. 한국의 탈춤과 마찬가지로 당대의 부패하고 무능한 승려들을 풍자하는 성격이 강하다. 대표적으로 슈론(宗論)이라는 작품이 있는데, 서로 다른 두 종파에 속하는 승려가 서로 자신의 종파의 가르침이 옳다고 싸우다가 결국 말이 꼬여 엉겁결에 상대방이 옳고 내가 틀리다는 내용으로 끝을 맺어버리는 내용이다. 이 슈론은 후에 각색을 거쳐 가부키 렌지시(連獅子)에 단막극으로 삽입되기도 한다.
  • 자토쿄겐(座頭狂言)
맹인 캐릭터가 시테로 등장하는 쿄겐. 눈이 보이지 않아 겪는 온갖 수난들을 몸개그로 표현하는 것이 특징이다. 장애를 노골적으로 웃음거리로 삼는 성격이 강하기 때문에 현대에 가장 논란이 되는 분류이기도 하다.
  • 자츠쿄겐(雑狂言)
노의 자츠노와 마찬가지로 다양한 시테가 등장하는 쿄겐. 이야기 또한 다채롭고 변화무쌍해 서로 다른 방법으로 관객을 웃긴다.
고반다테의 5개의 노 극 사이사이에 쿄겐이 들어가는데, 이는 비극적이고 엄숙한 노의 분위기를 환기하고, 고반다테의 각 극의 스토리를 이어주는 역할을 하기 때문에 노가쿠의 흐름에 필수적이다. 현재는 위에서도 말했듯이, 고반다테를 전부 상연하지 않고, 노 극을 단 두 극만 상연하고, 그 사이의 쿄겐은 달랑 하나밖에 없기 때문에 그 존재감이 많이 희석되었다. 극당 1시간 정도 걸리는 노와 달리, 10분 가량의 짧은 공연시간이 특징이며, 느릿느릿하고 절제된 노와 달리 웃기고 빠른 스토리 진행이 특징이다. 또한, 가무적인 측면이 강조되는 노와 달리 대사가 강조되며, 노처럼 가면을 착용하는 경우도 있지만 그 빈도는 노에 비해 훨씬 낮으며, "쿄겐멘(狂言面)"이라고 불리는 가면도 과장되고 익살스러운 얼굴을 하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주로 동물 가면이나, 풍요나 복의 신, 또는 웃는 낯의 사람 가면을 많이 쓰는 편이다. 특이하게도 만 16세 이전까지 노멘 착용이 금지된 노와 달리, 쿄겐 배우들은 일반적으로 아역으로 새끼 원숭이의 얼굴을 묘사한 가면을 착용하고 우츠보자루(靭猿)라는 극을 가장 먼저 맡는다. 이는 우츠보자루라는 극 특성상 쿄겐의 교습에 필수적인 온갖 흉내와 리듬감 등이 알기 쉽게 녹아있기 때문에 입문용으로 제격이기 때문이다.
노와 쿄겐은 분리되어 있지 않고, 하나의 노가쿠를 이루고 있다고 설명했는데, 자세히 설명하자면 이렇다. 쿄겐은 노 극 사이사이마다 상연되는 게 일반적[65]이지만, 경우에 따라 노 도중에 상연되기도 하고[66], 아예 쿄겐 배우가 노의 극중 인물로서 등장하기도 한다. 이럴 때 쿄겐 배우는 주로 와키를 따르는 하인 등의 역할로 등장하며, 극 밖의 스토리를 전하거나, 또는 지금까지 일어난 일을 짤막하게 설명하는 역할을 주로 맡는다. 노를 관람하다 보면 모든 배역들에는 정해진 무대 위의 자리가 있는데, 간혹 혼자 하시가카리에 정좌하고 앉아 자신의 차례를 조용히 기다리는 배우가 눈에 띌 때가 있다. 이 사람이 바로 쿄겐 배우이다. 극이 길어져 관객들이 스토리의 일부를 이해하지 못하거나, 앞의 내용을 잊어버렸거나, 혹은 그냥 따분해졌을 때 쯤 적절하게 등장하여 분위기를 환기하고 지금까지 일어났던 이야기를 요약해 전하는 역할을 맡는다. 즉, 노에서 시테가 주인공, 와키가 주인공의 말상대, 츠레가 조연이면 쿄겐은 광대인 것. 본 문서의 개요에서도 소개된 링크의 노 코카지(小鍛冶)에서도 31분 20초부터 나카이리라이죠(中入来序)가 연주되며 시테와 와키가 느릿느릿하게 퇴장한 후, 34분 10초부터 음악이 보다 빠른 박자의 쿄겐라이죠(狂言来序)로 바뀌며 다소 코믹하게 생긴 쿄겐멘을 걸친 쿄겐 배우가 동네 하급신의 역할로 등장해 여태까지의 상황을 설명하고 앞으로 일어날 일을 소개하는 아이쿄겐을 피로한다.

4. 대중문화에서의 노가쿠


- 하타노 코코로: 노멘이 요괴가 된 멘레이키. 자주 노가쿠 공연을 한다. 콘파루류의 선조 하타노 카와카츠(秦河勝)의 가면이 변한 존재라는 설정이지만, 사실상 하타노 카와카츠 본인의 모에화이다.
- 마타라 오키나: 노가쿠를 포함한 여러 가지를 관장하는 신. 이름은 앞에 서술한 오키나(翁)에서 온 것. 모티브는 마타라신(= 하타노 카와카츠).
  • 이누야샤에서 사혼의 구슬이 박힌 나무로 만들어진 노멘이 등장하였다. 구슬 조각을 얻기 위해 카고메를 습격해왔으나 이누야샤에게 처치당해 소멸한다.
  • 괴이증후군 1탄의 챕터 4 마지막 보스로 노멘 중 하나인 온나멘이 최종 보스로 등장한다.
  • D.Gray-man의 에피소드 <노인과 밤의 공허한 아리아> 는 노가쿠에서 스토리를 따 왔다고 한다.
  • 츠구모모의 등장 신인 쿠쿠리히메는 전투 시 노멘을 착용하고 전투에 임한다. 평소에는 코오모테(小面)를 착용하며, 어떤 노멘을 쓰냐에 따라 성질이 크게 바뀐다. 위의 하타노 코코로가 떠오르는 대목.
  • 그림자복도에서는 어둠의 배회자라는 귀신들이 노멘을 착용하고 있다.
  • 일본 록밴드 FACT의 멤버들은 공개적인 활동(PV 포함)에서 얼굴을 무언가로 가리기로 유명한데, 자주 쓰이는 아이템이 노멘이다.
  • 수리검전대 닌닌저의 악의 조직, 키바오니 군단 간부들의 얼굴 디자인은 노멘에서 따왔다.[67]
  • 침략! 오징어 소녀에서 등장하는 슈퍼히어로인 노멘 라이더는 노멘 코오모테(小面)를 착용하고 나온다. 애니메이션에서는 나오지 않지만 원작에서 나오는 노멘 라이더의 스승 역할은 오키나멘 하쿠시키조(白式尉)를 착용하며, 아이자와 치즈루가 폭주하는 오징어 소녀를 제압하기 위해 히어로 쇼에 난입했을 때는 한냐를 착용했다.
  • 쾌감 프레이즈의 주인공 락밴드 류시펠의 멤버인 유키(토도 유키후미)가 노가쿠를 하는 집안의 후계자였다.
  • 곡성(영화)에서 외지인이 모아둔 소품 중 노멘이 있다.
  • 철권 6 시리즈의 스테이지 중에서도 Noh Theater이라고 노가쿠 극장을 배경으로 한 맵이 존재한다.
  • C.M.B. 박물관 사건목록 4화에서 노멘에 얽힌 살인사건을 다뤘는데, 노 무대의 뒷배경인 카가미이타(鏡板)가 트릭으로 등장한다.
  • 고스트 스위퍼에서 중요 국가 문화재로 지정된 온나멘이 눈물을 흘려서 의뢰가 들어가는데, 알고 보니 가면에 숨은 영혼이 축제 때 본 우주형사 매트맨 가면에게 상사병을 앓고 있었던 것. 그 소원을 들어주기 위해 루나장호동이 각각 가면을 쓰고 하루 데이트를 한다.
  • 게임 Readyyy!에서 SP!CA의 쿠루미자와 타쿠미 역을 맡은 성우 칸제 노리아키는 칸제 가문 출신으로, 어린 시절 노가쿠 배우였다. 현재는 그만둔 듯. 여기서 자기소개와 함께 츠루카메(鶴亀)의 한 소절을 읇는 것을 들을 수 있다.

[1] 해당 사진 속 교겐은 보오시바리(捧縛)라는 제목으로 주인이 집을 비운 사이 하인들이 술을 훔쳐먹다 걸려서 벌로 묶여서 갇혀있는 판에도 어떻게든 술을 마시고 싶어서 별의별 몸개그를 벌인다는 내용이다. 이미지 좌측에 있는 배우는 그 유명한 이즈미류(和泉流) 쿄겐 배우 노무라 만사이다.[2] 사루가쿠의 경우 원래는 후술하겠지만 猿楽이라 불렸다가 칸아미, 제아미 부자가 노의 기틀을 완성하면서 이전의 비하적 의미가 강한 이름에서 원숭이(猿)와 의미도 같으면서 12지와 연관지어 좋은 의미를 가졌고, 또 (신에게 제사 등을) 펼친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는 글자인 申자로 바뀌었다. 메이지 유신까지 사루가쿠라는 이름이 쓰였으며, 그 이후에 노가쿠라는 이름이 붙으며 노가쿠라고 정식으로 부르게 되었다. [3] 노멘(能面)이라고 부른다.[4] 노멘은 "쓰는(被る)" 것이 아니라 "걸치는(掛ける)" 것이다. 실제로 크기도 매우 작아 노멘을 착용해도 배우의 턱과 주변 얼굴은 그대로 보인다.[5] 여우신(시테)의 도움을 받아 명검을 완성해내는 대장장이(와키)의 이야기이다. 나가우타(長唄)로도 편곡된 바 있다. 영상은 스탠포드 대학 측에서 콘고류(金剛流)의 허락을 받고 정식으로 녹화한 것으로, 영상의 각 부분에 자세한 설명과 주석이 붙어있어 극의 이해에 큰 도움이 된다.[6] 슈겐도의 수행자 야마부시를 풍자한 야마부시쿄겐(山伏狂言)에 속하는 작품. 야마부시(시테)가 길을 걷다 배가 고파 감나무에 달린 감을 서리해 먹는데, 마침 감나무 주인(아도)이 돌아오는 바람에 주인에게 들키지 않기 위해 온갖 동물 소리의 성대모사를 포함한 눈물겨운 노력(...)을 한다는 이야기이다. 오오쿠라류(大蔵流)의 공연이다.[7] 현재의 코츠즈미, 오오츠즈미의 오오쿠라류(大倉流)와 쿄겐의 오오쿠라류(大蔵流)의 원형이 된 오오쿠라자(大蔵座)라는 다섯 번째 야마토자가 원래 있었지만, 칸아미 시절에는 이미 없어져 있었다. 현재는 미야기현의 지역 공연에서 사루가쿠 오오쿠라자의 예풍이 계승되고 있다.[8] 당시 제아미의 나이는 '''12살'''에 불과했다고 한다.[9] 아시카가 요시미츠가 공연을 하는 어린 제아미를 보고 '''첫눈에 반했다'''고 한다. [10] 노부나가의 장남 오다 노부타다는 노가쿠 덕후(...)가 되어, 마치 현대의 오타쿠들이 굿즈를 모으듯이 노 관련 수집품을 잔뜩 모으다가 아버지에게 몰수당한 적도 있었다.[11] 도쿠가와 이에야스, 마에다 토시이에등 당대의 쟁쟁한 무사들이 직접 배우가 되어 무대에 오른 일화도 있다.[12] 이렇게 받아들였음에도 가부키 역시 신파극(新派劇)에 밀려 큰 위기에 봉착한 것은 마찬가지였으나, 메이지 천황이 직접 가부키를 관람하고부터는 격조 자체가 높아져 간신히 안정기에 접어들 수 있었다. 그럼에도 현대에도 가부키를 보다 졸았다, 재미없다는 얘기가 나올 정도니 가부키의 고충 또한 만만치 않음을 알 수 있다.[13] 2016년 20주년 공연을 마치고 해산.[14] 하술할 '오키나(翁)'가 대표적인 신에게 바치는 노가쿠 공연이다.[15] 현세의 남성을 연기할 때는 노멘을 사용하지 않아도 노멘을 사용한 것으로 간주한다. 또한 배역에 따라 노멘을 사용하지 않는 역할도 있다. 아래 참고[16] 이 말이 다른 분야로도 퍼져서, 연극이나 뮤지컬, 가부키 같은 무대 공연이나 스포츠 같은 경우에도 케이코가 훈련이라는 뜻으로 사용되기도 한다.[17] 일단 후계를 잇기로 자신의 의지로 정하면 당연하지만 반강제적으로 케이코를 해야 한다. 케이코를 시작하면 집안의 어엿한 후계자로 대접받아, 집의 가장인 아버지 바로 다음의 서열로 대접받는다(시테 배우 칸제 요시마사(観世喜正) 인터뷰). 또한 케이코를 하지 않으면 불이익이 있는데, 어떤 경우에는 그날의 케이코를 마치지 않으면 저녁밥을 주지 않고 계속 케이코를 시킨 경우도 있었다(오오츠즈미 연주자 카키하라 히로카즈(柿原弘和) 인터뷰). 물론 이렇게 해도 적성에 맞지 않으면 그냥 다른 길을 가게 된다. 어디까지나 본인의 적성과 흥미가 가장 중요한 예술이기 때문이다. [18] 도래인 출신으로, 노가쿠 전체 유파에서 신적인 존재로 추앙되고 있는 인물이다. 칸제류 또한 그의 후계를 자처하고 있다. 콘파루류에서는 하다노 코오카츠(はだ の こうかつ)라는 발음으로 부른다.[19] 해당 오키나 가면의 모사품을 제작하는 영상.[20] 에도 시대 중반에 칸제 종가에서 떨어져나간 가문. 이 가문에서 메이지 무렵 칸제 요시유키(観世喜之) 가문이 다시 떨어져나갔다. 당시 가문 당주였던 5대 칸제 테츠노죠가 우메와카 가문의 사위였기 때문에 우메와카류 설립에 참여했다.[21] 당연하겠지만 노가쿠 배우들의 딸인 경우가 대부분이다.[22] 아래에서 서술하듯이, 시테에게 신변상 문제가 생기면 코켄이 시테 대신 투입된다.[23] 하시가카리(橋掛り)라고 한다. 하술할 무겐노(夢幻能)에서는 하시가카리가 이승저승 사이를 잇는 통로 역할을 할 때가 많다.[24] 足袋, 엄지발가락이 갈라진 일본 전통 버선[25] "노쇼조쿠(能装束)"라고 부른다. 원래는 극중 인물들이 종사하는 직업의 사람들이 실제로 입는 옷을 입었지만, 세월이 지나며 16세기부터는 노가쿠 전용 의상이 발달하며 이를 입게 되었다. 노멘과 마찬가지로, 선대 배우에게서 물려받는 물건으로, 수백 년 된 의상도 아직 많이 남아있다. 최대 20kg까지 나갈 수 있을 만큼 굉장히 복잡하고 무겁기 때문에 혼자서 입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에 가까우며, 배우가 어두운 종 소품 내부에서 혼자 의상과 가면을 갈아입고 등장해야 하는 작품인 도조지(道成寺)가 가장 빡센 작품으로 평가받는 이유가 바로 이것이다. 참고로 얇고 하늘하늘한 소재로 되어 있고 금박이나 보석 장식 등이 되어있기 때문에 세탁은 불가능하다. 다시 말해 '''수백 년 동안 한 번도 세탁을 안 한 옷들이다'''. 대신 일 년에 한 번 정도는 꺼내 바람 잘 통하는 곳에 펴놓고 통풍시켜 관리한다. 현재는 배우들이 직접 하는 대신 이 기간 동안 박물관에 맡겨버리는 경우도 잦은데, 배우들은 손이 덜 가서 편하고 박물관은 관리도 해줄 겸 맡아놓은 옷들로 노가쿠 특별전(...)을 열 수 있으니 서로 이득 보는 장사다. [26] 시테에게 무슨 일이 생길 경우 시테의 대타로 참여하기도 한다.[27] 큰 북. 유일하게 맨손으로 연주하지 않고 북채로 연주한다.[28] 가부키의 카케고에와는 다르다. 자세한 사항은 가부키 항목 참고.[29] 노가쿠와 가부키에 주로 쓰이는 작은 타이코이다. 이것 말고도 여러 종류의 타이코를 다루는 가부키에서는 시메다이코(締太鼓)라고 부른다.[30] 노가쿠 전용의 특수한 횡적(橫笛)으로, 노가쿠에서는 피리를 이것밖에 쓰지 않으니 그냥 피리라고 부르지만, 노가쿠 외의 가부키 등에서는 "노 피리"라는 뜻의 노칸(能管)이라고 부른다. 속이 급격히 좁아지는 매우 특이한 구조로 되어있어 음색이 왜곡되어 높고 째지는 소리가 난다. 특이한 구조 탓에 음정도 맞지 않지만, 멜로디를 담당하는 악기가 노칸 하나뿐인데다가 노래도 노칸에 맞춰 부르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전혀 문제가 없다.[31] 사진의 "하(ハ)"는 실제로는 "호"라고 발음하고, 마찬가지로 "야(ヤ)" 또한 "요"로, "에-이(エーイ)"는 "예이-" 라고 발음한다.[32] 연주곡이나 짧은 노래 등을 전부 통틀어 쇼오단(小段)이라고 하며, 극 하나를 한 권의 책으로 비유하자면 하나의 문단에 해당한다. 츄노마이(中之舞), 하노마이(破之舞), 하야후에(早笛), 대부분을 코츠즈미 혼자서 연주하는 란뵤시(乱拍子) 등이 있다.[33] 기본적으로 8박자 단위로 이루어져 있으며, 8박자를 1 쿠사리(鎖)라는 단위로 센다. 책으로 비유하자면 하나의 단어에 해당한다.[34] 쇼오단 연주곡의 한 구절. 한 쇼오단은 여러 개의 단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단마다 이를테면 카미마이(神舞)라는 연주곡의 세번째 단(三段目) 하는 식으로 이름이 붙어있다. 책으로 비유하자면 하나의 문장에 해당한다.[35] 이러한 가부키 특유의 연주 시스템을 치리카라 박자(チリカラ拍子)라고 부르며, 노가쿠의 8박자 시스템을 모방해 연주할 때는 톳땅 박자(トッタン拍子)라고 불러 구분한다.[36] 케쇼시라베(化粧調)라고도 한다. 본래 건조한 겨울에 연주하기 전에 조립 완료된 츠즈미를 묶어 가죽을 살짝 늘려서 연주하기 쉽도록 하는 줄이었지만 현재는 그냥 장식이다.[37] 발명자의 이름을 따 마타에몬대(又右衛門台)라고도 부른다. 이전까지는 유파를 막론하고 타이코를 손으로 들어주는 별도의 조수(太鼓持ち)가 있었다고 한다.[38] 유명한 가부키 극인 칸진쵸(勧進帳)의 기반이 된 작품.[39] 칸제류에서는 아다치가하라(安達原)라는 제목으로 불린다.[40] 가부키 렌지시(連獅子), 카가미지시(鏡獅子) 등의 기반이 된 작품.[41] 노멘을 걸치지 않는 대신, 노멘처럼 뻣뻣한 무표정을 지은 채로 연기한다. 이를 히타멘(直面)이라고 칭한다.[42] 가부키의 무대 효과는 진화를 거듭해, 회전 무대, 무너지는 집, 천장에서 내리는 눈싸락 등 디지털 기술의 도움을 받지 않는 선에서 최대한의 효과가 들어가 있다.[43] 가부키는 샤미센과 여러 북, 특수 장비를 동원해 눈이 내리는 소리, 물이 흐르는 소리, 바람이 부는 소리 등을 효과음으로 재현한다.[44] 심지어는 조명도 아무런 효과가 없다. 이처럼 화려한 무대 효과가 없기 때문에 관객은 배우의 몸짓과 대사, 그리고 지우타이카타의 내레이션 만으로 극중 장면을 상상해야 한다. 심지어는 병에 걸린 사람이 등장해야 하는 작품에서 사람은 등장하지 않고 병자가 입고 있을 옷만 바닥에 깔아놓는 경우도 있다. 바로 아오이노우에(葵上)라는 작품이다.[45] 부채가 가장 흔히 쓰이는 소품이며, 이외에는 소품이 거의 쓰이지 않는다. 간혹 최상단의 사진처럼 간단한 문 등의 소품이 쓰이지만, 그마저도 상당히 간소화되어 있어 가부키의 그것을 기대하면 실망할 수 있다. 이런 대형 소품은 츠쿠리모노(作り物)라 하고, 이름대로 즉석에서 만들어 공연에 투입하고 공연 후에는 즉석에서 해체한다.[46] 하나의 예외로는, 도조지(道成寺)에 쓰이는, 배우가 안에 숨어 다른 캐릭터로 변신하는 데 쓰이는 거대한 종 소품이 있다. 보다시피 굉장히 거대하고 무겁기 때문에, 종을 내리는 타이밍과 각도를 잘못 맞추면 그대로 배우를 저세상으로 보내기 충분하기 때문에, 종을 다루는 사람은 코켄 중 가장 경험 많고 노련한 사람이 맡는다.[47] 가부키의 온나가타는 최대한 여성스러워 보이기 위해 일부러 무릎을 오므리고 종종걸음으로 걷는 등 여성의 행동거지를 따라하지만, 노는 딱히 그런 행동을 하지 않는다는 것도 하나의 차이점이다. 의상인 노쇼조쿠가 워낙 복잡하고 펄럭임이 심해 어차피 종종걸음으로 걸어봤자 별로 눈에 띄지도 않을 것이며, 그렇게 걸었다간 나무로 된 무대 때문에 발자국 소리가 방정맞게 울리기만 할 것이다.[48] 이 때문에 서양에서는 노를 초보적인 뮤지컬의 일종으로 분류한다.[49] 일반적인 하야시의 배치와 달리, 오키나에서는 코츠즈미 연주자가 세 명이 앉는다. 또한, 등장 인물들은 무대 위에서, 관객들이 보는 앞에서 노멘을 착용한다. 말하자면 오키나에서 노멘을 착용하는 행위는 신(神)이 빙의하는 것을 상징한다고 할 수 있다.[50] 더불어 가죽 제품을 착용해서도 안 된다.[51] 오키나 공연 시작 전에 술을 한 잔 나눠 마시고, 생쌀과 소금을 입에 넣고 몸에 소금을 뿌린 뒤, 부싯돌을 튀겨 잡귀를 쫒아내는 의식을 진행한다. 이를 신지(神事)라고 한다. 특히 오키나 역을 맡은 배우는 이 기간 동안 밥을 먹을 때도 다른 가족과 떨어져 혼자 살면서, 여자 접촉을 일절 금하고 밥도 따로 조리해 먹어야 한다. 이를 벳카(別火)라고 한다.[52] 일반 노가쿠 공연 때도 기모노 정도는 갖춰 입지만, 오키나 상연 시에는 무대 관계자 전원이 사무라이들이 쓰던 삼각형 모자를 쓰고 있어야 한다.[53] 다른 온나멘들은 대개 정면에서 보면 약간의 미소가 어려 있는 데 반해, 이 조온나는 아무런 표정이 없는 것으로 유명하다. 어린 소녀가 아닌, 원숙한 여인의 얼굴을 표현하는 노멘이다.[54] 단, 업계 내에서는 노멘이라는 명칭보다는, 옛 일본어로 얼굴을 뜻하는 오모테(面)라는 명칭을 더 많이 쓴다. 말 그대로 단순한 가면이 아니고, 제 2의 얼굴인 셈.[55] 온나멘(女面)이라고 불리고, 생긴 것은 비슷하지만 그 종류는 어린 여자아이 역의 '코히메'부터 늙은 할머니 역의 '우바'까지 매우 다양하다.[56] 일례로 2017년 2월에 출시된 인왕이란 게임에 노멘중 하나인 한냐를 쓴 '귀녀'가 등장한다.[57] 정확히는 뒷좌석 헤드레스트를 빼고 그 자리에 나무젓가락 같은 것을 꽂아서 노멘을 헤드레스트 대신 달아놓은 것. 여기에 한술 더 떠서 뒷유리에 붙이면 평상시에는 아무 것도 보이지 않다가 상향등 불빛을 쬐면 노멘이 나타나게 되어 있는 차량 스티커도 있었다고 한다.[58] 보는 사람에 따라 섬뜩한 느낌을 받을 수 있으니 클릭시 유의바람.[59] 두번째 링크의 경우 브레이크와 연동시켜서 브레이크를 밟으면 노멘의 눈이 붉게 빛나도록 만들었다고 한다. 트윗 작성자의 지인이 말하기를 밤에 뒤따라 달리다가 신호대기 중에 가까이 갔는데 갑자기 시퍼런 얼굴이 나타나는 바람에 놀라서 죽는 줄 알았다고(...).[60] 한국의 하회별신굿 탈놀이에서 사용되는 가면도 비슷하게 고개를 숙이면 성을 낸 것처럼 보이고 젖히면 웃는 것처럼 보이게 조각되었다는 지적이 존재한다.[61] 노무라 만사이의 조카뻘이다. [62] 지배층인 토노사마(殿様)나 다이묘(大名)가 주로 등장한다.[63] 예를 들어, 노의 등장인물들은 대사를 대부분 사극체 "~하옵니다"이나 "~하나이다"로 번역될 수 있는 "~소-로-(~候)"로 끝낸다.[64] 어디까지나 상대적으로이다. 쿄겐도 보다 근대의 어체이긴 하지만 현재에는 사용되지 않는 "~고자루(~ござる)"를 사용한다.[65] 이런 극을 혼쿄겐(本狂言)이라 부른다.[66] 이런 경우를 아이쿄겐(間狂言)이라 부른다. 배역 이름은 간단히 "아이(アイ)"라고 표기된다.[67] 이자요이 큐에몬 제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