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나흐다
1. 개요
'''엔나흐다'''는 튀니지 혁명 이후 튀니지의 정치를 이끌고 있는 온건 이슬람주의 혹은 이슬람 민주주의 성향의 정당이며, 현재 연립정부를 주도하고 있는 정당이다.
당명인 '엔나흐다'는 아랍어로 ''''부흥''''을 뜻하는데, ''''부흥당''''이라고 번역하는 곳도 있고[2] , ''''르네상스 운동당''''이라고 번역하는 곳도 있다.[3]
2. 성향과 역사
현재 모습을 보면 믿기지 않겠지만 이 정당은 본래 사이드 아불 알라 마우두디[4] 와 이집트의 민주화를 물거품으로 만드는데 큰 공헌을 한 '''이슬람 극단주의''' 단체인 '''무슬림 형제단'''의 영향을 받은 '''이슬람주의자''' 라치드 간누치에 의해 1981년 창당됐다.[5]
라치드 간누치가 엔나흐다를 창당한 이래 현재까지 대표직을 맡고 있다. 간누치는 벤 알리 정권 시절인 1989년 총선에서 엔나흐다를 이끌어[6] 제1야당으로 만들었지만 위기를 느낀 벤 알리에 의해 극단주의 단체라는 혐의로 모든 활동이 불법화되고 본인도 추방당하면서 22년간의 망명생활을 하게된다.
처음에는 이슬람 극단주의 단체들의 영향을 받아 만든 정당이었지만 탄압을 당하면서 엔나흐다는 다른 이슬람권의 '''원조 극단주의 단체들에 비해서는 매우 온건한 성향'''으로 변모한다.[7]
그리고 튀니지 혁명의 영향으로 2011년 3월 1일, 엔나흐다는 다시 합법화되어 정치활동을 재개한다. 간누치도 망명지에서 귀국해 제헌의회 총선거를 이끌었고, '''엔나흐다는 89석을 획득해 제1당의 지위에 올랐다.'''
그러나 신헌법 제정은 지지부진했고 이슬람 극단주의자들이 샤리아를 헌법에 추가하자는 주장을 하자 엔나흐다 역시 의심의 눈초리를 받기 시작한다. 2013년 2월과 7월에 세속주의 정치인 두 명이 암살되는 사건도 일어나는 바람에 엔나흐다는 입지가 위축되었다.
'''결국 엔나흐다는 버티지 못하고 튀니지 공화국 신헌법에 이슬람 원리주의나 샤리아는 절대로 안 넣겠다는 선언을 한다.'''
이후 이슬람을 국교로 지정하면서도 세속주의와 양성 평등[8] 의 가치를 담은 민주적인 신헌법이 2014년에 제정됐고, '''같은해 총선에서 엔나흐다는 세속주의 정당 니다 투니스[9] 에 밀려 제2당으로 전락한다.'''[10]
그래도 과반 이상을 차지한 정당이 없었기 때문에 엔나흐다는 '''니다 투니스와 연정'''을 통해 연립정권으로나마 권력을 유지할 수 있었다. 그리고 2016년부터 엔나흐다는 '''정교분리'''를 지향하기 시작함으로써 당의 성향을 더욱 온건하게 만들기 시작했다.
2018년에는 혁명 이후 처음으로 튀니지에서 지방선거가 실시됐다. '''이 때 엔나흐다는 전체 350개 지자체 중 131곳에서 승리했다. 덤으로 수도 튀니스에서 수아드 압데라힘을 시장으로 당선시켜 튀니스 최초의 여성 시장이라는 기록도 세웠다.'''[11] 덕분에 엔나흐다가 가졌던 보수적인 이미지도 개선할 수 있었다. 정작 세속주의를 지향하던 니다 투니스에서는 여성의 정치참여에 반대하는 발언이 나와 논란이 됐다는게 아이러니.
그리고 2019년 총선에서 엔나흐다는 '''17석을 더 잃어 52석이 됐지만 다시 1당의 지위에 오른다.''' 그리고 이전의 니다 투니스가 그랬던 것처럼 엔나흐다 역시 '''세속주의 정당들과의 연정'''을 구성한다.
3. 근황
정작 연정을 주도하는 정당임에도 과반수에 못 미치는 의석 탓에 자당 소속 총리를 배출하지 못 했다가 2020년 7월, 총리에 대한 불신임안을 제출하자마자 총리가 사임해서 다시 자당 소속의 총리를 배출할 가능성이 생겼었다.
그러나 사이에드 대통령이 무소속의 히셈 메시시 내무장관을 신임 총리로 지명하면서 엔나흐다의 총리 배출은 이번에도 무위로 돌아갔다.
그런데 저 총리 사임 건이 악재로 작용하는 것으로 보인다. 파크파크 전 총리를 흔든 것이 정부에 대한 영향력을 지키려고 벌인 일이라는 인식을 유권자들에게 주는 바람에 지지율이 떨어진 것이다. 여기에 2013년처럼 이슬람주의 정당이라는 점 때문에 또 이미지가 안 좋아져서 다른 이슬람주의 정당들의 지지율까지 같이 하락한 것은 덤이다.#
여기에 또 하나의 악재가 닥쳤다. 당대표이자 국회의장인 라치드 간누치에 대해 '''연립정부를 구성하는 정당들까지 가세해 불신임 투표를 실시하기로 한 것.''' 간누치와 엔나흐다가 정치적 불안을 조장했다는 것이 이유인데, 불신임안이 통과되기 위해서는 전체 217명 중 109명의 찬성표가 필요하다.# 설령 불신임안이 부결되더라도 엔나흐다로서는 빨리 정부를 구성하려면 연립정부 구성 정당들을 다시 회유해야된다는 문제가 생겼다.
천만다행으로 간누치에 대한 불신임은 실패했다. 이제 남은 것은 엔나흐다가 기존의 연정 대상들을 어떻게 달래주느냐에 달려있을 것으로 보인다.#
[1] Hizbu Ḥarakatu n-Nahḍah[2] 외교부에서 만든《2018년 튀니지 개황》은 이 당의 이름을 '부흥당'이라고 번역했다.[3] 후자의 경우 영어, 불어, 독어 등 여러 언어판의 위키백과에서 원어 명칭인 엔나흐다를 문서 제목으로 했으면서도 본문에서 엔나흐다의 다른 이름으로 르네상스를 제시한 것을 볼 수 있다. 참고로 스페인어판 위키백과는 아예 ''''르네상스당''''이라고 직역을 했다.[4] 파키스탄의 이슬람 원리주의를 창시한 인물이다.[5] 간누치는 지금에 와서는 현실주의 노선으로 방향을 틀었지만 부르기바, 벤 알리 독재정권 당시에는 이란 혁명 직후의 이란처럼 이슬람 종교지도자가 국가 원수가 되는 '''이슬람 공화국'''을 세워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했다.[6] 참고로 벤 알리는 엔나흐다 후보들이 출마하는 것을 금지했지만 무소속으로 출마하는 것까지는 막지 않았다.[7] 당대표인 간누치도 독일 슈피겔과의 인터뷰에서 "샤리아를 도입, 실시할 생각은 없고 지금 당장 중요한 것은 민주주의와 자유"라고 언급한 바 있다.[8] '''모든 선거에서 남녀 동수 공천을 의무화했다.'''[9] '튀니지의 외침'이라는 뜻.[10] 무려 20석을 잃었다.[11] 여담으로 사진을 보면 알겠지만 이슬람주의 정당 소속임에도 베일도 안 쓰고 정장 차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