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시아문

 

'''고사성어'''
'''如'''
'''是'''
'''我'''
'''聞'''
같을 여
바를 시
나 아
들을 문
여시아문(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1. 개요
2. 해석
3. 기타


1. 개요


팔리어로는 '''evam me suttam''', 산스크리트어로는 '''evam mayā śrutam'''이며, 티베트어로는 '''Hdi skad bdag gis thos pa'''[1]이다. 직역하면 “이와 같이 나에게 들렸다.”는 의미이다. 내 의지로 들은 것이 아니라, 부처가 말한 대로 나에게 들린 것을 그대로 여기에 전한다는 의미가 포함되어 있다. '''아문여시'''('''我聞如是'''), '''문여시'''('''聞如是''')라고도 한다.
영어로는 '''Thus I have heard'''로 번역되며, 한국어로 번역될 때는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이러히 내 들었노라.'''", ''''이와 같이 나는 들었노라'''', "'''나는 이와 같이 들었다.'''" 등으로 번역된다. 좀 더 의역해서 "'''나 아난은 이렇게 보고들은 것을 나의 사견은 전혀 없이 그대로 전하는 것이다.'''"라고 번역하기도 한다. 아미타경언해 등 15세기의 언역 불전에는 "如是我聞ᅀᆞᄫᅩ니"[2]라고 훈토를 달고, "이 ᄀᆞᆮ호ᄆᆞᆯ 내 듣ᄌᆞᄫᅩ니"[3]로 번역해 놓았다.
여시아문의 '여시'는 ‘이와 같이’ '아문'은 ‘내가 들었노라(내게 들려주셨다)’의 뜻이며 아난 자신이 석가모니 부처님으로부터 전해 들은 교법을 그대로 믿고, 순종하여 기록한다는 뜻이며, 이러한 법은 부처님이 말씀하신 것이므로 그대로 믿고 의심하지 않는다는 뜻이 담겨 있다.
불교 경전에서는 육성취라 하여, 대부분의 경전에 ‘여시아문’ 외에도 일정한 체제에 따라 기재하도록 하고 있는데, 그 체제는 크게 여섯 가지로 나눌 수 있고, 그 여섯 가지는 다음과 같다.

如是我聞, 一時佛在某處[4]

, 與大比丘衆某某[5]俱.

번역하면

나는 이렇게 들었다. 어느 때에 부처님께서 ○○에 계시며 큰 비구 □□ 등도 함께 계셨는데...

여기서 여시(如是)는 신성취(信成就), '이와 같이 '라는 뜻으로 ''''이와 같음''''(모든 경의 법체),
아문(我聞)은 문성취(聞成就) 즉 ''''나(아난)에게 들려 주셨다''''는 것(전달자),
일시(一時)는 시성취(時成就) 즉 그 불경의 법어가 나오게 된 '''시기''',
불(佛)은 주성취(主成就), 즉 불경의 법어를 '''설법하는 주체''' 즉 석가모니 부처를 말하며,
재모처(在某處)는 처성취(處成就), 즉 법어의 설법이 이루어졌던 '''장소''',
여대비구중모모구(與大比丘衆某某俱)는 중성취(衆成就) 즉 그때 아난과 '''함께 설법을 들었던 비구 및 보살들의 수와 이름'''이 들어간다.[6]
예를 들어

(한역 원문) 如是我聞 一時 佛在舍衛國 祇樹給孤獨園 與大比丘衆 千二百五十人俱

(음독) 여시아문 일시 불재사위국 기수급고독원 여대비구중 천이백오십인구

(해석)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어느 때에 부처님께서는 사위국(슈라바스티)의 기수급고독원에서 큰 비구 무리 1,250인과 함께 계셨다.

-

금강경

이런 식으로.
이 여섯 가지가 합쳐져서 석가모니 부처님의 설법이 성립되기 때문에 육성취라 부른다. 이는 석가모니 부처님이 열반에 들 즈음에 아난이 직접 석가모니에게 “여래 멸후에 법장(法藏)을 결집 편찬할 때 첫머리에 무슨 말을 두어야 되겠습니까?”라고 물었을 때, 석가모니가 모든 불경의 첫머리에 “여시아문(如是我聞) 일시불(一時佛) 재모방모처(在某方某處) 위제사중(爲諸四衆) 이설시경(而說是經)이라 하라”고 대답하였다고 전한다.# 일종의 '''불교 버전의 육하원칙''' 이라고 할 수 있다.
조선 이덕무청장관전서에는 석가모니 부처가 입적한 후에 아난다가 사부대중을 모아 경전을 결집(結集)하면서 자리에 올라가 맨 처음으로 ‘여시아문(如是我聞)’이라는 네 글자를 소리내어 불렀을 때, 그 자리에 모여 있던 대중은 모두 "바로 어제까지 부처님을 뵈었는데 오늘은 '나는 이렇게 들었다'고 말하고 있구나. 정말 부처님께서는 이제 열반에 드셨고 우리 곁에 계시지 않는단 말이냐?"라고 큰 소리로 통곡하였다고 한다.

2. 해석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란 자신에 의해 일어난 상태를 인정하지 않고, 앞의 청문(聽聞)을 설명하고, ‘이것은 내가 네 가지 담대함[四無畏]과 열 가지 힘[十力]를 갖추고, 우왕(牛王)[7]

의 지위에 있고, 사자후를 하며,[8] 일체 존재의 최상자, 법의 자재자, 법왕, 법주, 법의 섬, 법의 귀의처, 정법의 최상전법자이고 정각자인 저 세존의 면전에서 직접 들은 것이다. 여기에서 의미 또는 법 또는 형식에 대해서 의문이나 의심을 해서는 안된다’라고 모든 천신과 인간이 이 법에 대한 불신(不信)을 소멸시키고, 믿음의 성취를 일으키고 있다. 그 때문에 이렇게 말했다.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라고 고타마의 제자는 말하면서 가르침에 대한 불신을 없애고 믿음을 키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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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가 니까야, 범망경(梵網經) 주석서, DN-a, I, 29

불법의 대해는 믿음으로 들어갈 수 있고, 지혜로 건널 수 있다. “이와 같이”의 의미는 바로 믿음이다. 만약 사람의 마음에 깨끗한 믿음이 있다면, 이 사람은 불법에 들어갈 수 있다. 만약 믿음이 없다면, 이 사람은 불법에 들어갈 수 없다. 믿지 않는 자는 “이 일은 이와 같지 않다”고 말하는데 이것이 믿지 않는 모습이다. 믿는 자는 말한다. “이 일은 이와 같다.” 비유하면 소가죽이 부드럽지 않을 때는 구부리지 못하는 것처럼, 믿음이 없는 사람도 이와 같다. 비유하면 소가죽이 이미 부드럽다면, 쓰임에 따라 만들 수 있는 것처럼, 믿음이 있는 사람도 또한 이와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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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지도론(大智度論) T.25, 62하~63상. “모든 불경은 어찌하여 처음에 “이와 같이”라는 말을 하는가?란 질문에 답하여.

초기불교의 경전은 붓다의 열반 후, 제1차 경전 결집에서 마하가섭이 주도하여 정리되었다. 석가모니가 깨달음을 얻고 25년째 되는 해부터 석가모니의 시자(侍子)로써 석가모니의 설법 내용을 가장 많이 기억하고 있었던 제자 아난다[9]가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라는 말로 서두를 떼며 불경을 암송하였고, 당시 결집에 모인 5백 명의 참가자와 함께 이를 합동으로 통째 암송해서 전했다. 이때 '여시아문'은 아난다가 듣고 붓다가 말한 것을 증명하는 표현으로 경전의 첫 머리에 제시되었고, 석가모니 부처님의 가르침을 온전히 전한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으며, 동시에 당시 모인 5백 명의 비구 가운데 단 한 사람이라도 "'''석가모니께서는 그렇게 말씀하시지 않으셨다!'''"라고 하는 부분이 있으면 그 부분은 결집에서 뺐다고 한다.

3. 기타


  • 작곡가 원일이 진행하는 라디오 프로그램 제목이 원일의 여시아문이다.# 일본에도 동명의 라디오 프로그램이 존재하는데 간토 이외 지역에 송출되며 일련정종 소속이라고 한다.
  • 한국에는 여시아문이라는 이름의 동명의 출판사가 존재하며, 불교 관련 서적들을 출간하고 있다.
  • 불교 언론인 불교신문에 동명의 칼럼란이 존재한다.
  • 2019년 여시아문이라는 제목의 불교 관련 종합 문화지도 창간되었다.#
  • 일본의 소설가 다자이 오사무는 '여시아문'이라는 제목의 연재 평론을 신쇼사의 잡지 『신쇼』(新潮) 1948년 3월부터 연재하였는데, 이 평론은 당시 "기성 문단에 대한 선전포고"라고까지 불렸으며, 이 연재평론을 통해 다자이 오사무는 자신의 소설에 대한 시가 나오야의 혹평에 대해 반박하기도 하였다. 다만 '여시아문'은 다자이 오사무가 자살함으로써 미완으로 끝났으며, 그의 사후 단행본으로 출간되었다. 한국에는 도서출판b에서 출판한 다자이 오사무 전집 제10권에 실렸다.

[1] 이와 같이(Hdi skad)/내가(bdag gis)/들었다(thos pa).[2] 如是我聞하사옵시니. [3] 이 같음을 내 듣잡오니(듣자오니).[4] 여기서 모처는 불경에서 때로는 기수급고독원, 죽림정사, 영축산 등 수시로 바뀐다.[5] 여기서 모모에는 석가모니 부처가 해당 경전의 법어를 설법하였을 때 설법하는 자리에 있었던 석가모니의 제자 및 보살들의 이름이 들어 간다.[6] 단 비구 및 보살들의 세세한 이름은 경전에 따라 생략될 때도 있다.[7] 인중우왕(人中牛王)의 줄임말로 소의 몸집과 빛깔이 다른 소보다 훨씬 훌륭한 것, 즉 석가모니 부처를 가리킨다. 숫타니파타의 유명한 구절인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라는 구절과 통한다.# [8] 성경에서와 마찬가지로 사자는 석가모니 부처와 그 설법이 지니는 위엄을 은유하는 상징물로 쓰인다.[9] 아난다는 석가모니 부처님의 십대제자 가운데서도 다문제일(多聞第一)이라 일컬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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