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마츠 쇼이츠

 

도쿄 야쿠르트 스왈로즈 No.78
오마츠 쇼이츠(大松尚逸/Shoitsu Omatsu)
'''생년월일'''
1982년 6월 16일
'''출신지'''
이시카와현 카나자와시
'''포지션'''
1루수, 외야수
'''학력'''
카나자와고교-도카이대학
'''투타'''
좌투좌타
'''프로입단'''
2004년 NPB 드래프트 5라운드 지명
'''소속팀'''
치바 롯데 마린즈 (2005~2016)
도쿄 야쿠르트 스왈로즈 (2017~2018)
'''지도자'''
도쿄 야쿠르트 스왈로즈 2군 타격코치 (2020~)
'''등장곡'''
ATSUSHI - 願い
Avicii - The Nights
'''일본시리즈 우승 반지'''
'''2005'''
'''2010'''
1. 소개
2. 프로 시절
3. 연도별 성적
4. 플레이 스타일
5. 기타


1. 소개


도쿄 야쿠르트 스왈로즈의 2군 타격코치이자 전 야구선수. 원래는 치바 롯데 마린즈 출신으로 한때는 치바 롯데에 거의 없었던 20홈런 이상을 칠수 있는 좌타거포'''였'''다.

2. 프로 시절



2.1. 치바 롯데 마린즈 시절


2005년 입단한 후 2군에서 바로 홈런 3위를 찍으며 거포 유망주로 주목받았고, 2006년 4월 15일에 1번 타자 우익수로 선발출장하여 1군 데뷔홈런을 쳤다. 이 홈런은 '''역전 만루 홈런'''이었다. 2008년부터 주전 외야수 한 자리와 중심 타선의 한 자리를 맡으며 최고의 황금기를 보냈다. 특히 2008년에는 24홈런 91타점을 기록하며 커리어하이[1]를 찍었고, 2009년과 2010년에도 각각 19개와 16개의 홈런을 치면서 치바롯데의 중심타선을 도맡았다. 이시기에 김태균과 지바롯데에서 같이 뛰면서 한국 팬들에게도 얼굴을 알렸다. 2010시즌 중반까지는 김태균에 이은 5번타자로 주로 출장해서 김태균이 남긴 타점을 잘 쓸어먹기도 했지만 2번을 치던 오기노가 부상을 당하고, 올스타전 이후 김태균이 끝없는 부진에 빠지면서 본인도 페이스가 떨어져 8번까지 타순이 밀리기도 했다.
그러나 2011년부터 급격하게 하향세를 타면서[2] 홈런을 10개 이상 친 시즌도 없었고, 100경기 이상 뛴 해도 없었다. 2012년부턴 외야 수비력마저 떨어지면서 1루수로 전업했는데 장타력 역시 이전보다 떨어졌기 때문에 주로 백업 1루수/좌타 대타 위주로 나왔다. 2015년 시즌 이후 FA를 맞이했지만 선언하지 않고 1년 2520만엔에 연장 계약을 맺었다.
2016년 5월 29일 라쿠텐과의 2군 경기에서 주루 도중 아킬레스건 부상을 입는 바람에 1군에서 단 한 경기도 뛰지 못했다. 데뷔 시즌부터 1군을 밟았기 때문에 1군에서 한 경기도 못 뛴 시즌은 이 시즌이 처음이었다. 결국 시즌 후 전력 외 통고를 받고 방출. 구단에서는 2군 타격코치 자리를 제의했다.

2.2. 도쿄 야쿠르트 스왈로즈 시절


그러나 그는 현역 연장 의사를 밝혔고 2017년 2월. 도쿄 야쿠르트 스왈로즈의 입단 테스트에 합격하였다. 연봉은 800만 엔으로 전 해의 1/3도 되지 않았지만 그래도 현역 연장 의사가 절실했는지 그 조건을 수락하고 입단하였다.

2.2.1. 2017 시즌


이 해에는 94경기에 출장하면서 최근 7년 중 가장 많은 경기에 나왔지만, 주로 좌타 대타로 출장하였기 때문에 타수는 130타수밖에 되지 않았다. 타율도 .162로 부진했다. 그래도 3홈런 16타점을 기록하면서 뜬금포 정도는 기대해볼 수 있는 대타 요원으로 시즌을 마쳤다.

2.2.2. 2018 시즌


2군에서 올라오지 못하고 있다. 2군 성적은 78경기 41안타 3홈런 타율 .227로 2군에서도 부진한 성적을 거두었다.
결국 10월 2일 구단으로부터 방출되었다. 본인은 계속 현역 의지를 보이고 있지만, 2군에서도 통하지 못하는 성적으로 다른 팀에서 받아줄 수 있을지 의문이다. 파워히터가 가뜩이나 없는 이전 소속팀 롯데에서도 지금 리빌딩이 거의 되어가는 판이라 고참 선수를 받아주기는 어렵다고 회의적인 반응을 보였다.
결국 독립 리그 후쿠이 미라클 엘리펀츠로 갔다. 독립리그에서 1년 뛰고 은퇴.
후쿠우라 은퇴식 날 영상편지를 보냈다.
2020년부터 도쿄 야쿠르트 스왈로즈의 2군 타격코치를 맡는다.

3. 연도별 성적


역대기록
년도
소속팀
경기수
타수
타율
안타
2루타
3루타
홈런
타점
도루
사사구
출루율
장타율
2005
치바 롯데 마린즈
3
7
.143
1
0
0
0
0
0
1
.250
.143
2006
74
180
.217
39
7
0
8
31
1
12
.266
.389
2007
77
213
.300
64
14
0
5
22
1
15
.343
.437
2008
134
447
.262
117
30
2
24
91
1
37
.316
.499
2009
139
494
.269
133
28
1
19
79
0
51
.334
.445
2010
142
534
.260
139
24
2
16
68
0
65
.339
.403
2011
64
183
.213
39
6
0
2
16
0
15
.270
.279
2012
89
258
.198
51
9
0
5
22
0
11
.228
.291
2013
35
77
.260
20
5
0
0
8
0
5
.305
.325
2014
36
82
.183
15
7
0
2
9
0
8
.256
.341
2015
18
49
.224
11
3
0
0
5
0
3
.264
.286
2016
1군 기록 없음
년도
소속팀
경기수
타수
타율
안타
2루타
3루타
홈런
타점
도루
사사구
출루율
장타율
2017
야쿠르트 스왈로즈
94
130
.162
21
3
0
3
16
0
13
.238
.254
'''NPB 통산(12시즌)'''
905
2654
.245
650
136
5
84
367
3
236
.304
.395

4. 플레이 스타일


촉망받는 거포 유망주 답게 2010년까지만 해도 전형적인 좌타거포 슬러거'''였'''다. 장타력이 떨어진 지금도 뜬금포 정도는 기대할 수 있는 장타력을 가진 대타 요원이다.
수비력이 생각보다는 나쁘지 않았다. 신인 시절에는 중견수도 볼 수 있었으니. 하지만 현재는 외야 수비가 떨어진다는 평가를 받고 1루수로 완전히 전업한 상태.
또한 만루에서 굉장히 강하다. 통산 만루 타율이 .571이며, 데뷔 홈런도 만루 홈런이고 2008년에는 만루 홈런을 3개나 쳤다. 그래서 별명이 만루의 사나이이다. 통산 만루홈런은 6개. 이범호가 통산 홈런 312개 중 16개를 만루홈런으로 쳤고[3], 오마츠는 통산 홈런 84개 중 6개를 만루홈런으로 쳤으니[4] 홈런 대비 만루홈런 비율은 오마츠가 더 높다.

5. 기타


  • 치바 롯데 마린즈 상대로만 홈런을 치면 전 구단 상대로 홈런을 치게 된다고 한다. 이 기록 보유자는 통산 32명으로 생각보다 희귀하다.[5] 문제는 오마츠가 치바롯데를 떠난지 고작 2년차인데다가 대타 요원이라 기회도 많이 못 받는지라... 실제로 2018년 시즌 내내 1군에 올라오지 못했고 교류전도 끝났기 때문에... 거기다가 2018 시즌 이후 방출당하면서 결국 실패했다.
  • 치바롯데에 정말 드문 토종 슬러거였다.[6] 오마츠 이후로 치바롯데의 일본인 슬러거 명맥은 한동안 끊겼다가 이노우에 세이야가 2018년에 20홈런 가까이 치면서 부활한다.[7]
  • 후쿠우라 카즈야가 친동생처럼 챙겨줬다고 한다. 그래서 오마츠가 롯데에서 방출당할 때 후쿠우라가 오마츠의 등장곡을 잠깐 썼고, 오마츠도 야쿠르트에 갔을 때 후쿠우라의 등장곡을 썼다.
  • 김성근과 인연이 있다. 신인 시절 치바 롯데에 있을 때 김성근에게 특타 지도를 받은적이 있다고. 그래서 2009년에 김성근의 생일축하를 위해 김성근을 만나러 고치에 가기도 했다. 은퇴할 때 인터뷰에서도 김성근의 지도를 언급한 걸 보면 김성근의 한국에서의 수많은 논란과는 상관없이 선수 본인은 김성근을 그럭저럭 긍정적으로 보는 듯.
[1] 이 24홈런은 현재까지도 마이니치-다이마이-롯데 프랜차이즈 사상 일본인 좌타자로서는 최다홈런 기록이다.(...) 똑딱이 구단의 비애...[2] 공교롭게도 공인구 교체가 된 해이다. 아마 공인구 교체의 후폭풍을 직격탄으로 맞은 듯.[3] 홈런의 5%가 만루.[4] 홈런의 7.1%가 만루.[5] 일본프로야구는 양대리그라서 한 팀에만 쭉 있는 프랜차이즈 스타들은 이 기록을 달성하기 매우 어렵다. [6] 사실 입단 당시에는 마츠나카 노부히코 수준까지 기대치가 있었다고 한다. 기대치에 비해서는 실패했다고 보는 게 맞다.[7] 사부로와 후쿠우라 카즈야도 20홈런을 친 적은 있었으나 이 둘은 슬러거라기보다는 중장거리포 스타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