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기노 타카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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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프로야구 선수.
NPB 퍼시픽 리그 치바 롯데 마린즈 소속 외야수 및 내야수.
'''퍼시픽 리그를 대표하는 준족이 될 수 있었으나 부상의 여파로 기대만큼 성장하지 못한 비운의 리드오프'''
대학시절 춘계대회 도루 신기록을 세우는 등 맹활약했으나 프로 진출 대신 사회인 야구에서 뛰게 되었고, 사회인 야구 시절에도 3번 타자로 좋은 활약을 펼치다가 2009년 드래프트 1순위로 치바 롯데에 입단하였다. 여담이지만 학창시절엔 내야수였던 것과 달리 사회인 야구에선 주로 외야수로 뛰었고 결국 외야수로 지명되었다. 이때 사회인 야구에서 3대 외야수 최대어로 꼽혔고, 마침 대학 외야수 팜이 박살이 났기 때문에 여러 구단에서 상위픽으로 꼽았다고 한다. 참고로 다른 최대어 둘은 키요타 이쿠히로와 쵸노 히사요시. 물론 쵸노는 무조건 요미우리 아니면 입단 안 한다고 했기에 다른 구단 입장에서는 그림의 떡이었고, 키요타는 예상과 달리 지명이 안 되다가 롯데에 하위픽인 4라운드로 지명됐다.[2]
데뷔 시즌부터 큰 기대를 받으며 25년 만이 되는 팀내 신인 외야수의 개막전 선발을 이루었고 이후 경이로운 페이스의 도루, 3할대의 타율을 기록하며 신인왕, 도루왕 경쟁에 뛰어들었으나 시즌 중반에 무릎 반월판을 다치면서 시즌아웃되었고 우승 반지도 끼지 못하게 되었다.[3] 2010 시즌이 끝난 뒤 함께 테이블 세터로 활약하던 주전 유격수 니시오카 츠요시가 해외진출을 하자 구단은 그를 유격수로 전향시켰다. 유격수로써 무난한 활약을 펼치나 싶었지만 2011년에도 무릎 통증이 문제가 되면서 시즌을 일찍 접어야 했다. 신인 시절의 세 차례 무릎 수술로 인해 오기노는 차세대 1번타자에서 애증의 노망주로 전략하고 말았다.
2012년에는 다시 외야수가 되었다. 빠른 복귀보다는 회복을 중점으로 시즌을 준비하였고 6월 중순 경에 1군에 복귀하였지만 부진하였다. 2013년에는 허리 통증으로 인해 개막전 엔트리에 들지 못했지만 2할대 중후반 타율에 26도루를 기록하며 부활의 기미를 보였다. 하지만 이후 3년간은 풀타임 주전으로 뛰지 못했다. 실력이 부족했다기 보다는 크고 작은 부상이 잦았기 때문이었다.[4] 유리몸이 되어버린 자신의 모습에 상실감을 느낀 오기노는 '''하다못해 부상이라도 제로였으면 좋겠다'''면서 4번이던 등번호를 0번[5] 으로 교체했다.[6]
2017년에는 시즌 초반 여타 팀 동료들과 마찬가지로 죽을 쑤면서 커리어 로우를 찍는가 싶더니 어느새 페이스를 되찾으며 타율 0.264에 5홈런 26도루를 기록했다.
'''FA로이드?'''
'''치바팬들이 기대했던 오기노로 돌아오는건가...했으나 다시 불의의 부상으로 발목잡히다'''
올 시즌이 끝나면 FA를 맞이하게 된다.
개막전에 1번 타자 중견수로 선발출장하여 5타수 2안타 1볼넷 1도루를 기록했다.
3월 31일 1번 타자 중견수로 선발출장하여 5타수 2안타 1도루를 기록했다.
4월 1일 1번 타자 중견수로 선발출장하여 5타수 2안타 1홈런 1타점을 기록했다. 팀은 위닝 시리즈를 가져갔다.
4월 3일 1번 타자 중견수로 선발출장하여 5타수 4안타 2타점 1도루로 맹활약하였다. 중간에 주루사로 찬물을 끼얹기는 했지만.
4월 4일 1번 타자 중견수로 선발출장하여 3타수 무안타를 기록했지만 그래도 타율은 .435를 유지하며 타율 2위를 기록중이다.
그 후로 계속해서 전 경기 1번 타자 중견수로 선발출장중.
4월 10일 3타수 무안타를 기록했다. 팀은 이겼지만 본인의 타율은 3할 4푼대까지 떨어졌다.
4월 11일 4타수 2안타 1타점으로 활약했다.
4월 12일 1번 타자 중견수로 선발출장해 4타수 1안타를 기록했다. 그리고 끝내기 병살을 쳤다(...)
점점 더 타율이 떨어지면서 타율 탑 5에서도 밀렸다.
4월 17일에 4타수 무안타를 기록했다. 또한 1사 3루에서 얕은 플라이를 치면서 타점도 내지 못했다.
4월 26일 5타수 2안타 1홈런 3타점으로 활약했고 팀도 이겼다.
4월 28일 3타수 1안타. 근데 그 1안타도 2루수의 실책성 플레이 덕분에 운 좋게 내야안타를 친 거라...[7]
점점 타율이 떨어지는 중.
5월 5일 1번 타자 중견수로 나왔지만 5타수 무안타로 처절하게 말리고 있다.
결국 내려갈 타율은 내려간다고 5월 14일 기준 타율 .255로 추락. 도루도 2주째 추가하지 못하고 있다.
5월 20일 기준으로 타율을 2할 7푼대까지 다시 끌어올렸다. 놀랍게도 팀내 2위이자 퍼시픽리그 20위 안의 기록. 얼핏 부진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준수한 테이블세터나 다름없다.
6월 3일 4타수 2안타 1타점으로 활약하며 타율을 3할까지 올렸다. 퍼시픽리그 타율 5위를 마크.
6월 16일 기준 타율 .301 기록.
6월 17일 결정적인 상황에서 도루자를 기록. 타이밍은 아슬아슬했는데 머리를 태그당하는 바람에(...) 슬라이딩을 잘 했으면 살 수 있는 순간이어서 매우 아쉬움을 주었다.
6월 23일 2타수 1안타를 기록하고 타율을 .308로 끌어올렸다. 현재 퍼시픽리그 타율 5위.
좋은 활약 덕에 올스타전 멤버로 선발되었다.
그런데 여기서 또 손가락 부상으로 2개월 재활 판정을 받는 바람에(...) 7월 10일 1군에서 말소. 대신 올라온 선수는 이시미네 쇼타.
말소 시기 성적은 78경기 타율 .287에 20도루. 어째 딱 20도루만 찍으면 이 꼴이...
참고로 시즌 100안타를 기록한 해가 한 해도 없었는데 올해 91안타를 치고 재활을 시작하게 되었다. 과연 시즌 막판 복귀 후에 100안타를 치게 될 지가 궁금...하나 재활이 더딘 건지 1군에 안 올라오고 있다. 아마 사실상 시즌아웃으로 보인다.
이구치의 쓸놈쓸 덕에 대주자로만 나오다가 4월 3일 1번타자 중견수로 첫 선발출장했다. 이날 2루타 하나를 쳤다.
4월 14일 2번 타자 중견수로 나와 2루타 하나를 치긴 했으나 1사 1,2루 득점권에서는 포수 플라이나 치면서 팀의 스윕패에 공헌했다.
시즌 초의 이구치의 1번타자 계획이 다 실패하면서 결국 대주자 전용에서 다시 주전 1번 중견수 자리를 되찾았다. 현재 3할대 후반의 고타율을 기록하면서 날아다니는 중.
4월 28일 기준 13경기 연속 안타를 기록하고 있다. 아직 본인의 실력이 죽지 않았음을 증명하고 있다.
4월 29일 1번 중견수로 나와 4타수 1안타를 기록했다. 14경기 연속 안타. 타율은 현재 .355로 좋다.
5월 1일 1번 중견수로 나와 4타수 무안타를 기록. 막판엔 라인드라이브 병살까지 나왔다. 연속안타가 14경기에서 끊겼다.
5월 8일 1번 타자 중견수로 나와5타수 1안타를 기록했다. 이날 기준 25경기 92타수 28안타 타율 .304에 1홈런 8타점 7도루를 기록하며 순항중.
꾸준히 1번타자 중견수로 나오면서 타율 2위까지 찍는 중.
6월 23일 1번 중견수로 나와 멀티히트를 쳤으나 멀티도루자로 팀의 혈을 다 끊어먹었다.
7월 1일 기준 타율 .336으로 1위를 차지하면서 타격왕 경쟁을 하면서 커리어하이를 찍을 기세다. 이 활약 덕분에 올스타전에도 뽑혔다.
올스타 브레이크 시기 기준 73경기 타율 .330에 6홈런 28타점 18도루 OPS .892로 순항중. 타율은 현재 1위이며 5안타만 더 치면 데뷔 첫 1시즌 100안타를 기록하게 된다.
7월에 결국 데뷔 최초의 시즌 100안타를 달성하였다. 아쉬운건 7월부터 타격 페이스가 떨어지면서 타율 1위를 모리 토모야에게 빼앗겼다.
만 34세의 적지 않은 나이임에도 시즌 내내 준수한 활약을 펼쳤으며 결국엔 규정타석 3할과 두자릿수 홈런[8] , 도루를 기록하였다. 자신이 괜히 1라운더 출신인게 아니라는 것과 부상만 아니었으면 리그 탑급의 리드오프가 될 수 있음을 거의 10년만에 증명한 셈이다.
FA를 드디어 획득했으나 결국 잔류했다.
그리고 생애 최초로 골든글러브까지 수상하면서 최고의 한 해를 보냈다.
어느덧 팀내 최고참 외야수가 되었다. 이번 시즌 역시 많은 경기에 출장해 팀에 공헌하고 싶다는 입장을 밝혔으나 또 부상을 당했다(...). 그래도 어찌어찌 회복이 되었는지 2군 연습경기에는 정상적으로 출장했다. 코로나로 인해 시즌이 끝도 없이 미뤄지는 상황이라 개막전 합류는 충분히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개막전에 3번 좌익수로 나왔으나 한 경기만에 후쿠다 슈헤이가 부상을 당해서 다시 1번 중견수로 돌아왔다. 매년 1번 타자/중견수 자리를 타 선수에게 빼앗기는데 시즌이 개막하고 좀만 지나면 오기노가 주구장창 1번 중견수로 나오고 있다.
6월 23일 1번 타자 중견수로 나와 4타수 무안타 1타점을 기록했다. 타점은 끝내기 데드볼(...)로 낸 것.
그 후로 7월 초까지 7도루를 기록하면서 순항하고 있다. 그러나 7월 중순 12도루로 여유롭게 도루왕을 찍나 싶더니 바로 부상으로 1군에서 말소(...) 결국 8월 중순에야 2군 경기에 복귀하면서 또 한 달을 날렸다. 결국 올해마저도 사실상 부상으로 시즌을 꽤 날린 셈. 워낙 벌어둔 도루갯수가 많아서 도루 1위를 꽤 길게 유지했으나, 같은 팀의 대주자 전문 와다 코시로가 선발로 나온 3경기에서 5도루를 하면서 14도루로 도루 1위를 역전했고, 매년 도루왕 후보인 닛폰햄의 니시카와 하루키도 12도루까지 따라오면서 현재 공동 2위를 기록하고 있다. 빨리 복귀하지 못하면 결국 올해도 도루왕은 어려워 보인다.[9]
2군 경기에 복귀하고도 한 달 이상 어영부영하다가 9월 25일 겨우 1군 경기에 복귀했다. 사실상 부상때메 시즌의 절반을 날리면서 올해도 부상악령에 발목잡히고 말았다.
그리고 복귀하고 10일 남짓 지나 10월 6일 코로나 양성판정을 받았다(...). 부상에 이어서 질병까지..
'''타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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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트를 짧게 쥐고 어느 코스의 공이든 유연하게 반응하는 타격을 한다. 2011년 까지는 우완 투수에게 강한 면모를 보였으나 2013년부터 좌투수 상대 성적이 더 좋아졌다. 선구안도 좋은 편이다. 커리어하이라고 할 수 있는 2013년 시즌에는 볼넷이 삼진보다 많았을 정도.
똑딱이 이미지가 강한 선수지만 오카다 요시후미와 비교했을 때 상대적으로 펀치력은 있다는 평이 많았고, 실제로도 해마다 서너개씩은 담장을 넘기곤 했다. 2019년에는 10홈런을 기록하기도 했다.
'''주루''' - '''오기노의 진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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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적으로 야구 선수의 주력을 평할때 쓰는 50미터 기록은 6초가 안 되는 정도로 준족급 선수 치곤 그렇게 빠른 기록은 아니다..[10] 하지만 최고 속력까지 올라가는 가속력 하나만은 일본 최고다. 스카우트가 평하길 '20미터를 일직선으로 달린다면 일본에서 제일 빠를 것' 이라고. 우타자임에도 1루까지 도달하는데 걸리는 시간이 무려 '''3.5초!'''[11][12][13] 그런 주력을 살려서 우전안타에도 2루까지 가거나, 외야 플라이에도 1루에서 2루로 터치업하는 빈틈없는 주루를 한다. 통산 도루 성공률도 매우 좋은편이라 2010년에는 .893으로 양 리그 통합 1위를 차지한 적도 있다. [14][15] 참고로 통산 도루 성공률이 86.9%로 상당히 높고, 18시즌의 도루 성공률도 76.5%나 된다.[16] 다만 폭발적인 스피드에 비해 주루 중 무릎이 나가거나 근육이 파열된다거나 하는 부상을 많이 당했는데, 이를 방지하기 위해 전문 육상 코치와 함께 개인훈련을 하며 달리기 자세를 교정하고 주법을 연마하는 등의 노력을 하고 있다고 한다.
'''수비'''
내 외야 모두 소화할 수 있는 올라운드 플레이어이다. 본인은 우익수 수비를 가장 자신 있어 하지만 중견수로 출장할 때가 조금 더 많다. 빠른 발 덕분에 수비범위는 리그 최상급이며[17] 어깨도 좋은 편이지만 송구의 정확성이나 수비 기본기 면에서는 엉성한 모습도 종종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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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프로필
일본의 프로야구 선수.
NPB 퍼시픽 리그 치바 롯데 마린즈 소속 외야수 및 내야수.
'''퍼시픽 리그를 대표하는 준족이 될 수 있었으나 부상의 여파로 기대만큼 성장하지 못한 비운의 리드오프'''
2. 커리어
대학시절 춘계대회 도루 신기록을 세우는 등 맹활약했으나 프로 진출 대신 사회인 야구에서 뛰게 되었고, 사회인 야구 시절에도 3번 타자로 좋은 활약을 펼치다가 2009년 드래프트 1순위로 치바 롯데에 입단하였다. 여담이지만 학창시절엔 내야수였던 것과 달리 사회인 야구에선 주로 외야수로 뛰었고 결국 외야수로 지명되었다. 이때 사회인 야구에서 3대 외야수 최대어로 꼽혔고, 마침 대학 외야수 팜이 박살이 났기 때문에 여러 구단에서 상위픽으로 꼽았다고 한다. 참고로 다른 최대어 둘은 키요타 이쿠히로와 쵸노 히사요시. 물론 쵸노는 무조건 요미우리 아니면 입단 안 한다고 했기에 다른 구단 입장에서는 그림의 떡이었고, 키요타는 예상과 달리 지명이 안 되다가 롯데에 하위픽인 4라운드로 지명됐다.[2]
데뷔 시즌부터 큰 기대를 받으며 25년 만이 되는 팀내 신인 외야수의 개막전 선발을 이루었고 이후 경이로운 페이스의 도루, 3할대의 타율을 기록하며 신인왕, 도루왕 경쟁에 뛰어들었으나 시즌 중반에 무릎 반월판을 다치면서 시즌아웃되었고 우승 반지도 끼지 못하게 되었다.[3] 2010 시즌이 끝난 뒤 함께 테이블 세터로 활약하던 주전 유격수 니시오카 츠요시가 해외진출을 하자 구단은 그를 유격수로 전향시켰다. 유격수로써 무난한 활약을 펼치나 싶었지만 2011년에도 무릎 통증이 문제가 되면서 시즌을 일찍 접어야 했다. 신인 시절의 세 차례 무릎 수술로 인해 오기노는 차세대 1번타자에서 애증의 노망주로 전략하고 말았다.
2012년에는 다시 외야수가 되었다. 빠른 복귀보다는 회복을 중점으로 시즌을 준비하였고 6월 중순 경에 1군에 복귀하였지만 부진하였다. 2013년에는 허리 통증으로 인해 개막전 엔트리에 들지 못했지만 2할대 중후반 타율에 26도루를 기록하며 부활의 기미를 보였다. 하지만 이후 3년간은 풀타임 주전으로 뛰지 못했다. 실력이 부족했다기 보다는 크고 작은 부상이 잦았기 때문이었다.[4] 유리몸이 되어버린 자신의 모습에 상실감을 느낀 오기노는 '''하다못해 부상이라도 제로였으면 좋겠다'''면서 4번이던 등번호를 0번[5] 으로 교체했다.[6]
2017년에는 시즌 초반 여타 팀 동료들과 마찬가지로 죽을 쑤면서 커리어 로우를 찍는가 싶더니 어느새 페이스를 되찾으며 타율 0.264에 5홈런 26도루를 기록했다.
2.1. 2018 시즌
'''FA로이드?'''
'''치바팬들이 기대했던 오기노로 돌아오는건가...했으나 다시 불의의 부상으로 발목잡히다'''
올 시즌이 끝나면 FA를 맞이하게 된다.
개막전에 1번 타자 중견수로 선발출장하여 5타수 2안타 1볼넷 1도루를 기록했다.
3월 31일 1번 타자 중견수로 선발출장하여 5타수 2안타 1도루를 기록했다.
4월 1일 1번 타자 중견수로 선발출장하여 5타수 2안타 1홈런 1타점을 기록했다. 팀은 위닝 시리즈를 가져갔다.
4월 3일 1번 타자 중견수로 선발출장하여 5타수 4안타 2타점 1도루로 맹활약하였다. 중간에 주루사로 찬물을 끼얹기는 했지만.
4월 4일 1번 타자 중견수로 선발출장하여 3타수 무안타를 기록했지만 그래도 타율은 .435를 유지하며 타율 2위를 기록중이다.
그 후로 계속해서 전 경기 1번 타자 중견수로 선발출장중.
4월 10일 3타수 무안타를 기록했다. 팀은 이겼지만 본인의 타율은 3할 4푼대까지 떨어졌다.
4월 11일 4타수 2안타 1타점으로 활약했다.
4월 12일 1번 타자 중견수로 선발출장해 4타수 1안타를 기록했다. 그리고 끝내기 병살을 쳤다(...)
점점 더 타율이 떨어지면서 타율 탑 5에서도 밀렸다.
4월 17일에 4타수 무안타를 기록했다. 또한 1사 3루에서 얕은 플라이를 치면서 타점도 내지 못했다.
4월 26일 5타수 2안타 1홈런 3타점으로 활약했고 팀도 이겼다.
4월 28일 3타수 1안타. 근데 그 1안타도 2루수의 실책성 플레이 덕분에 운 좋게 내야안타를 친 거라...[7]
점점 타율이 떨어지는 중.
5월 5일 1번 타자 중견수로 나왔지만 5타수 무안타로 처절하게 말리고 있다.
결국 내려갈 타율은 내려간다고 5월 14일 기준 타율 .255로 추락. 도루도 2주째 추가하지 못하고 있다.
5월 20일 기준으로 타율을 2할 7푼대까지 다시 끌어올렸다. 놀랍게도 팀내 2위이자 퍼시픽리그 20위 안의 기록. 얼핏 부진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준수한 테이블세터나 다름없다.
6월 3일 4타수 2안타 1타점으로 활약하며 타율을 3할까지 올렸다. 퍼시픽리그 타율 5위를 마크.
6월 16일 기준 타율 .301 기록.
6월 17일 결정적인 상황에서 도루자를 기록. 타이밍은 아슬아슬했는데 머리를 태그당하는 바람에(...) 슬라이딩을 잘 했으면 살 수 있는 순간이어서 매우 아쉬움을 주었다.
6월 23일 2타수 1안타를 기록하고 타율을 .308로 끌어올렸다. 현재 퍼시픽리그 타율 5위.
좋은 활약 덕에 올스타전 멤버로 선발되었다.
그런데 여기서 또 손가락 부상으로 2개월 재활 판정을 받는 바람에(...) 7월 10일 1군에서 말소. 대신 올라온 선수는 이시미네 쇼타.
말소 시기 성적은 78경기 타율 .287에 20도루. 어째 딱 20도루만 찍으면 이 꼴이...
참고로 시즌 100안타를 기록한 해가 한 해도 없었는데 올해 91안타를 치고 재활을 시작하게 되었다. 과연 시즌 막판 복귀 후에 100안타를 치게 될 지가 궁금...하나 재활이 더딘 건지 1군에 안 올라오고 있다. 아마 사실상 시즌아웃으로 보인다.
2.2. 2019 시즌
이구치의 쓸놈쓸 덕에 대주자로만 나오다가 4월 3일 1번타자 중견수로 첫 선발출장했다. 이날 2루타 하나를 쳤다.
4월 14일 2번 타자 중견수로 나와 2루타 하나를 치긴 했으나 1사 1,2루 득점권에서는 포수 플라이나 치면서 팀의 스윕패에 공헌했다.
시즌 초의 이구치의 1번타자 계획이 다 실패하면서 결국 대주자 전용에서 다시 주전 1번 중견수 자리를 되찾았다. 현재 3할대 후반의 고타율을 기록하면서 날아다니는 중.
4월 28일 기준 13경기 연속 안타를 기록하고 있다. 아직 본인의 실력이 죽지 않았음을 증명하고 있다.
4월 29일 1번 중견수로 나와 4타수 1안타를 기록했다. 14경기 연속 안타. 타율은 현재 .355로 좋다.
5월 1일 1번 중견수로 나와 4타수 무안타를 기록. 막판엔 라인드라이브 병살까지 나왔다. 연속안타가 14경기에서 끊겼다.
5월 8일 1번 타자 중견수로 나와5타수 1안타를 기록했다. 이날 기준 25경기 92타수 28안타 타율 .304에 1홈런 8타점 7도루를 기록하며 순항중.
꾸준히 1번타자 중견수로 나오면서 타율 2위까지 찍는 중.
6월 23일 1번 중견수로 나와 멀티히트를 쳤으나 멀티도루자로 팀의 혈을 다 끊어먹었다.
7월 1일 기준 타율 .336으로 1위를 차지하면서 타격왕 경쟁을 하면서 커리어하이를 찍을 기세다. 이 활약 덕분에 올스타전에도 뽑혔다.
올스타 브레이크 시기 기준 73경기 타율 .330에 6홈런 28타점 18도루 OPS .892로 순항중. 타율은 현재 1위이며 5안타만 더 치면 데뷔 첫 1시즌 100안타를 기록하게 된다.
7월에 결국 데뷔 최초의 시즌 100안타를 달성하였다. 아쉬운건 7월부터 타격 페이스가 떨어지면서 타율 1위를 모리 토모야에게 빼앗겼다.
만 34세의 적지 않은 나이임에도 시즌 내내 준수한 활약을 펼쳤으며 결국엔 규정타석 3할과 두자릿수 홈런[8] , 도루를 기록하였다. 자신이 괜히 1라운더 출신인게 아니라는 것과 부상만 아니었으면 리그 탑급의 리드오프가 될 수 있음을 거의 10년만에 증명한 셈이다.
FA를 드디어 획득했으나 결국 잔류했다.
그리고 생애 최초로 골든글러브까지 수상하면서 최고의 한 해를 보냈다.
2.3. 2020 시즌
어느덧 팀내 최고참 외야수가 되었다. 이번 시즌 역시 많은 경기에 출장해 팀에 공헌하고 싶다는 입장을 밝혔으나 또 부상을 당했다(...). 그래도 어찌어찌 회복이 되었는지 2군 연습경기에는 정상적으로 출장했다. 코로나로 인해 시즌이 끝도 없이 미뤄지는 상황이라 개막전 합류는 충분히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개막전에 3번 좌익수로 나왔으나 한 경기만에 후쿠다 슈헤이가 부상을 당해서 다시 1번 중견수로 돌아왔다. 매년 1번 타자/중견수 자리를 타 선수에게 빼앗기는데 시즌이 개막하고 좀만 지나면 오기노가 주구장창 1번 중견수로 나오고 있다.
6월 23일 1번 타자 중견수로 나와 4타수 무안타 1타점을 기록했다. 타점은 끝내기 데드볼(...)로 낸 것.
그 후로 7월 초까지 7도루를 기록하면서 순항하고 있다. 그러나 7월 중순 12도루로 여유롭게 도루왕을 찍나 싶더니 바로 부상으로 1군에서 말소(...) 결국 8월 중순에야 2군 경기에 복귀하면서 또 한 달을 날렸다. 결국 올해마저도 사실상 부상으로 시즌을 꽤 날린 셈. 워낙 벌어둔 도루갯수가 많아서 도루 1위를 꽤 길게 유지했으나, 같은 팀의 대주자 전문 와다 코시로가 선발로 나온 3경기에서 5도루를 하면서 14도루로 도루 1위를 역전했고, 매년 도루왕 후보인 닛폰햄의 니시카와 하루키도 12도루까지 따라오면서 현재 공동 2위를 기록하고 있다. 빨리 복귀하지 못하면 결국 올해도 도루왕은 어려워 보인다.[9]
2군 경기에 복귀하고도 한 달 이상 어영부영하다가 9월 25일 겨우 1군 경기에 복귀했다. 사실상 부상때메 시즌의 절반을 날리면서 올해도 부상악령에 발목잡히고 말았다.
그리고 복귀하고 10일 남짓 지나 10월 6일 코로나 양성판정을 받았다(...). 부상에 이어서 질병까지..
3. 플레이 스타일
'''타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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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트를 짧게 쥐고 어느 코스의 공이든 유연하게 반응하는 타격을 한다. 2011년 까지는 우완 투수에게 강한 면모를 보였으나 2013년부터 좌투수 상대 성적이 더 좋아졌다. 선구안도 좋은 편이다. 커리어하이라고 할 수 있는 2013년 시즌에는 볼넷이 삼진보다 많았을 정도.
똑딱이 이미지가 강한 선수지만 오카다 요시후미와 비교했을 때 상대적으로 펀치력은 있다는 평이 많았고, 실제로도 해마다 서너개씩은 담장을 넘기곤 했다. 2019년에는 10홈런을 기록하기도 했다.
'''주루''' - '''오기노의 진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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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적으로 야구 선수의 주력을 평할때 쓰는 50미터 기록은 6초가 안 되는 정도로 준족급 선수 치곤 그렇게 빠른 기록은 아니다..[10] 하지만 최고 속력까지 올라가는 가속력 하나만은 일본 최고다. 스카우트가 평하길 '20미터를 일직선으로 달린다면 일본에서 제일 빠를 것' 이라고. 우타자임에도 1루까지 도달하는데 걸리는 시간이 무려 '''3.5초!'''[11][12][13] 그런 주력을 살려서 우전안타에도 2루까지 가거나, 외야 플라이에도 1루에서 2루로 터치업하는 빈틈없는 주루를 한다. 통산 도루 성공률도 매우 좋은편이라 2010년에는 .893으로 양 리그 통합 1위를 차지한 적도 있다. [14][15] 참고로 통산 도루 성공률이 86.9%로 상당히 높고, 18시즌의 도루 성공률도 76.5%나 된다.[16] 다만 폭발적인 스피드에 비해 주루 중 무릎이 나가거나 근육이 파열된다거나 하는 부상을 많이 당했는데, 이를 방지하기 위해 전문 육상 코치와 함께 개인훈련을 하며 달리기 자세를 교정하고 주법을 연마하는 등의 노력을 하고 있다고 한다.
'''수비'''
내 외야 모두 소화할 수 있는 올라운드 플레이어이다. 본인은 우익수 수비를 가장 자신 있어 하지만 중견수로 출장할 때가 조금 더 많다. 빠른 발 덕분에 수비범위는 리그 최상급이며[17] 어깨도 좋은 편이지만 송구의 정확성이나 수비 기본기 면에서는 엉성한 모습도 종종 보인다.
4. 연도별 성적
5. 이모저모
- 가족은 조부, 부, 모 , 형, 누나, 여동생, 본인까지 7명인 대가족이다.
- 2014년 10월 결혼했다.
- 2014년 시즌까지 같은 팀의 오기노 타다히로가 있어서 유니폼네임이 T.OGINO 였다. [18]
- 2010년 입단 동기인 기요타 이쿠히로와 사이가 좋다고 한다.
- 2015년부터 2017년까지 치바롯데 꽃미남 투표에서 3년 연속 1위를 차지했다. 덕분에 2018년에는 명예의 전당에 오른 것으로 취급하여 그에게 투표가 불가능하다(...)
- 선술했듯 엄청난 유리몸이다. 매년 크고작은 부상 때문에 2군에서 시즌을 날려먹으며, 그나마 유일하게 세 자릿수 안타를 치고 풀 시즌 완주를 한 2019년에도 10일 가량 경미한 부상으로 2군에 가서 전 경기 개근은 하지 못했다. 2020년에도 부상으로 2개월을 날려먹으면서 2010년대 일본 최고의 스피드스타 자리도 닛폰햄의 니시카와 하루키에게 내줘야했고, 현재 와다 코시로[19] 라는 유망주가 치고 올라오면서 팀내 최고 스피드스타 자리도 뺴앗기게 생겼다. 그나마 복귀를 하니까 이번에는 10일만에 코로나 양성판정까지..
- 사토자키 토모야가 최근 26년간 드래프트 3라운더 이내 상위픽들만 분석했을 때 현역 롯데 선수들 중에서는 가장 좋은 평가를 받았다. 유일하게 SS랭크를 받은 선수.
[1] '''ラララ…駆け抜けろホームまで荻野貴司 打て荻野 タ カ シ!(앞질러 가라 홈까지 오기노 타카시 쳐라 오기노 타 카 시!).''' 준족 이미지를 잘 살린 곡이라 평이 꽤 좋다. https://www.youtube.com/watch?v=MdIWh88gAgg [2] NPB는 KBO랑 달리 일반적으로 신인드래프트에서 4-8명 정도밖에 지명을 안 한다. 근데 이 해에 롯데는 드래프트에서 4명, 육성선수 드래프트에서 1명을 뽑았으니 사실상 최하위픽만 겨우 면한 셈.[3] 입단 동기이자 그보다 한참 늦은 순번으로 지명된 키요타 이쿠히로가 일본시리즈에서 맹활약하며 우승 반지를 꼈고, 만년 백업요원인 미나미 류스케, 코베 타쿠미도 일본시리즈 엔트리에 들어가서 반지를 얻은 걸 생각하면 이 부상이 매우 뼈아팠다.[4] 그런 와중에도 빠른 발 덕분에 해마다 두자릿 수 도루를 기록하기는 했다.[5] 공교롭게도 후술할 팀 선배 투수인 오기노 타다히로의 등번호였다.[6] 이 유리몸이 진짜 뼈아팠던게 오기노와 동갑이었고 같은 대졸사회인 출신에 같은 발 빠른 똑딱이 중견수였던 오시마 요헤이라는 선수가 있었다. 이 선수는 그 키요타 이쿠히로보다도 기대치가 낮아서 5라운드로 주니치 드래곤즈에 지명되었는데, 오기노와 다르게 부상이 거의 없던 선수라서(9년 연속 규정타석 돌파) 누적기록은 오시마가 훨씬 우위다. 거기다가 오시마는 발만 빠르지 주루센스가 그렇게 좋지는 않아서 도루성공률도 통산 71.3%로 낮은 등 '''건강한 오기노'''와 비교하면 오기노에게 확실히 밀리는 선수인데(컨택과 장타력 OPS 등은 크게 차이가 안 나지만 주루면에서 오기노가 압도적인 우위다. 오기노의 도루성공률은 84.3%. 한참 높다.) 정작 오시마는 도루왕 경험이 있고 오기노는 없다(...). 참고로 도루왕을 기록한 시즌에서 오시마는 32도루 17도루자로 도루성공률 65%를 찍었다. 이 정도의 도루성공률이면 그냥 자기 도루왕 따려고 시도만 엄청 한 거지 오히려 팀에는 -라는 것이 정설. 실제로 시도횟수 자체가 1위였다. 그러나 그런 것보다는 타이틀홀더를 한 번 더 따는게 기억에 더 오래 남는 곳이 프로야구인만큼 오기노에게는 유리몸이 정말 뼈아픈 것. 거기다가 오시마의 경우는 통산 1588안타라서 2년 정도만 주전을 유지해도 명구회 도전도 가능한 상태다. 오기노는 당연히 불가(...).[7] 1루수가 송구를 받을 때 베이스에서 한 걸음 나와서 송구를 받아야 할 정도로 악송구를 했다.[8] 여담으로 10홈런 중 5개가 1회 선두타자 홈런이다.[9] 결과적으로, 그 해의 도루왕은 호크스의 대주자였다가 주전 도약에 성공한 슈토 우쿄가 차지했다.[10] 라고 하는데 50m 기록이 5.6초라고 스카우팅 리포트에 나와 있다. 그리고 1루 도달 시간뿐만 아니라 50m 기록도 오카다 요시후미가 은퇴하면서 팀내 1위다.[11] 마이크 트라웃이 우타자인데 1루까지 3.97초 만에 뛴다면서 엄청난 스피드라고 칭찬받으며, 이 기록이 메이저리그식 20-80 평가에 의하면 80점이다. 오기노의 스타트는 메이저리그에서도 최상급이라는 수준. 참고로 우타자는 좌타자보다 1루까지 0.2초 가량 더 걸린다![12] 스카우팅 리포트는 3.5초라고 하는데 퍼시픽리그TV에서 오기노가 내야안타를 쳤을 때 1루까지의 기록을 측정한 영상을 보면 '''3.3초(!)'''까지도 기록했다![13] 1루까지의 도달 속도만 놓고보면, 퍼시픽리그 전체에서 우타자 중에서는 물론이거니와 좌타자까지 포함시켜도 오기노를 능가하는 선수가 몇 없다. 타팀의 준족들을 보자면 주력 하나로 1할 치고도 프리미어 12 국가대표까지 승선한 소프트뱅크의 슈토 우쿄가 3.7~3.8초, 2015년과 2019년에 두 번 도루왕을 차지한 세이부의 카네코 유지(스위치히터라 좌타석 기준)와 2010년과 2011년에 두 번 도루왕을 차지한 현재 소프트뱅크 코치인 혼다 유이치가 3.6~3.7초, 2012년 도루왕을 차지한 야구해설가 히지리사와 료와 메이저리그까지 진출한 아키야마 쇼고가 3.5~3.6초, 2015년 도루왕을 차지한 닛폰햄의 나카시마 타쿠야가 3.5초, 현재 퍼시픽리그 최고의 5툴 플레이어 야나기타 유키가 3.4~3.5초, 2014년, 2017년, 2018년 3번이나 도루왕을 차지했고 통산 도루성공률 1위를 기록하고 있는 니시카와 하루키는 3.1~3.2초를 마크하고 있다. 그런데 이들은 전부 좌타자들이다. 스위치히터인 카네코도 저 기록은 좌타석 기준. 오기노가 최대 3.3초까지 기록했다는 것은 좌타자였으면 NPB 통산 도루성공률 1위 기록을 갖고있는 니시카와 하루키와 거의 동급이라는 셈.[14] 반면 오기노와 함께 테이블 세터로 활약했던 니시오카 츠요시나 오카다 요시후미, 하야사카 케이스케(이쪽은 2009년을 제외하면 테이블 세터보다는 대주자 요원이었지만)는 순수주력은 오기노보다 빨랐지만 주루센스가 그에 못미친 탓에 적지않은 도루실패를 기록하였다.[15] 참고로 오카다의 1루까지 뛰는 시간은 3.4~3.5초이다. 니시오카의 경우는 초반 가속력 보다는 최고속도가 빠른 스타일이다보니 1루까지 뛰는 시간은 3.54~3.9초 정도로 살짝 느린 편.[16] 팀내 다른 선수들의 도루 성공률을 보자면 오카다 요시후미는 73.7%, 이시미네 쇼타는 73.6%, 카쿠나카 카츠야는 73.1%, 키요타 이쿠히로는 68.6%, 카토 쇼헤이는 67.6%, 나카무라 쇼고는 64.7%, 네모토 슌이치는 '''59.3%''', 스즈키 다이치는 '''56.1%''' 를 기록했다. 여담으로 한때 같은 팀에서 뛰었던 니시오카 츠요시는 70.3%, 대주자 요원으로 활동하다가 은퇴한 하야사카 케이스케는 68.4%를 기록.[17] 그러나 2019년 UZR에서는 수비범위가 -를 찍으며(오시마 요헤이 다음으로 안 좋았다.) 송구와 실책 쪽에서는 +를 찍고도 종합은 -로 끝났다.웃긴 건 그래놓고 골든글러브 수상.[18] 오기노 타다히로가 선배라서 그냥 OGINO를 먹었기 때문. 오기노 타다히로는 14 시즌 이후 방출당했다. 입단 직후 3년간 마무리도 하면서 필승조로 활약했지만 2010년부터 부상으로 사이버투수가 된 상태였다. 아이러니하게도 인터뷰에 의하면 2014년 시즌이 끝날 즈음에 재활이 완료되었다고. 그래서 히타치 제작소에 입사해서 2년간 실업야구를 하다가 완전히 은퇴하고 현재는 스포츠 메디컬 회사를 차려 투수들의 부상을 줄이는 방법을 연구하고 아마야구를 돌아다니면서 지도하고 있다.[19] 시즌 두 달간 대주자로만 나오면서 9도루를 기록했고, 선발로 3경기에 출전하면서 3경기 5도루(1경기는 그나마 0도루라 2경기에서 5도루 했다.)를 기록하며 14도루로 8월 20일 기준 도루 1위를 차지하고 있는 선수. 참고로 도루자는 그 동안 겨우 1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