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세재
1. 개요
고려의 문인. 자는 덕전(德全), 사시는 현정선생(玄靜先生). 익양부녹사 오인정의 세 아들 중 막내이다.
2. 생애
본관은 고창. 어려서부터 육경을 직접 필사해 읽으며 매일 주역을 암송했다. 1151년(의종 5) 진사로 선발되는데, 파한집에서 여러 차례 시험을 봐도 합격하지 못했다고 한 것을 보면 진사시에서 빈번히 떨어진 것으로 보인다. 고려사 오세재 열전에 따르면 명종 때 결국 급제한다.
이인로가 오세재를 세 번이나 천거했으나 관직을 얻지는 못했다. 장가도 세 번을 갔으나 처를 버리거나 떠나버려서 결국 자식을 갖지는 못했다. 집안이 가난한데 늙어서까지 관직을 얻지 못하니 변변찮은 땅도 없이 경주를 떠돌다가 50세에 객사한다. 30년 어린 이규보와 나이를 잊고 친하게 지냈는데, 이규보는 오세재가 죽은 뒤 현정선생(玄靜先生)이라는 시호를 사적으로 바친다. 죽림고회에서는 오세재의 죽음으로 빈자리가 생기자 이규보에게 대신할 것을 제안하나, 이규보는 '칠현(죽림고회)이 무슨 조정 관작이라고 빈자리를 보충하냐'고 받으면서 모두가 크게 웃는다.
3. 문장
南蘇三郡俗, 東撫一州民 남쪽으로는 세 군이 풍속을 되살리고, 동쪽으로는 한 주의 백성을 어루만졌네
오세재가 한문준에게 보낸 시, 고려사 권99, 한문준 열전.
이 부(賦)를 들은 송나라 사람은 우리 나라에서 이런 시를 짓는 사람은 반드시 벼슬을 내린다며, 일부러 어려운 운을 넣어 지은 부일 것이라고 했다.北嶺巉巉石, 旁人號㦸巖 북쪽 고개의 높고 높은 바위, 사람들은 극암이라 부르네
逈椿乘鶴晉, 高刺上天咸 학을 타 진을 친 듯 판이하고 신기하며, 하늘에 오른 함[1]
을 찌를듯 높네揉柄電爲火, 洗鋒霜是鹽 휜 자루는 번갯불처럼 번쩍이고, 다듬은 칼날은 소금처럼 희니
何當作兵器, 敗楚亦亡凡 무엇하러 병기를 만들었나, 초(楚)를 패망하게 하고 범(凡) 또한 망하게 하려는가
북악의 극암(北岳戟巖), 보한집 권상.
보한집에서 기발하고 절묘한 것이 아니라 다른 곳에서 영감을 받은 시구를 설명할 때 초당시의 시격을 몰래 훔친 것이라고 언급된다.丘壑孤忠赤, 才名兩鬢華 언덕과 골짜기에 고독한 충정이 붉고, 재주와 명성에 귀밑머리 하얗게 셌네
자서(自敍), 보한집 권하.
4. 평가
비록 관직에 오르지 못하고 객사했으나 문장만큼은 뛰어났다는 평가가 대부분이다. 파한집에서 오세재의 문장은 오세재가 가난하고 실패한 삶을 살았다고 해서 버릴 만한 것이 아니라고 평했다. 파한집을 보충한 보한집에서는 세 형제 중 오세재의 문장이 가장 뛰어났으며, 평생 지은 시가 산을 쌓을 정도였는데 모두 흩어져 전하지 않음을 슬퍼했다. 기암거사 순지, 문순공 이규보 등이 오세재에게 지어준 시를 인용하며 한 시대의 영웅들에 의해 칭찬받고 사랑받는 인물이었다고 평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