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십원 주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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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2년 나온 첫 번째 50원 주화
(가 오십원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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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3년 나온 두 번째 50원 주화
(나 오십원화)
1. 개요
2. 기타


1. 개요


대한민국 원에 포함된 동전 중 하나. 실생활에서 백원 주화오백원 주화 다음으로 많이 보이기는 하지만 2010년대에 들어서는 존재감이 거의 사라져 가는 것을 느낄 수 있는 동전.(심지어 십원 주화보다도!) 대중교통 이용시에도 전반적인 물가인상으로 100원 단위 요금체계가 흔히 쓰여서 구간요금 등을 50원 단위로 칼같이 받지 않는 이상 잘 쓰이지 않았는데, 2012년 2월 이래로 서울특별시 시내버스지하철 운임이 150원 인상되며 현금 기준 1150원이 되어서 존재감을 좀 얻게 되었다.
이마저도 교통카드 이용 비중이 높아지고 환승할인을 받기 위해서는 교통카드가 필수라서 선불형 교통카드의 잔액이 갑자기 모자라거나 하지 않는 이상 현금승차 자체가 거의 없기 때문에 흔히 쓰이지는 않는다. 교통카드 이용률이 떨어지는 지방 소도시나 농어촌 혹은 전북 부안 등의 사례처럼 버스 파업으로 인해 임시로 운행한 관광버스의 요금이 하필 50원 단위인데 임시 버스라 교통카드 이용도 불가능할 때 일시적으로 50원짜리가 많이 굴러다니기도 한다.
또한 대학 복사실에서 한 장 인쇄 및 복사비용이 보통 50원이다. 한 때의 천냥김밥처럼 물가인상의 영향을 잘 받지 않는 편인데, 아무래도 10원 단위로 올리면 계산하기도 복잡하고 갑자기 2배인 100원으로 올리기도 좀 그래서 그런듯 싶다. 실제로 모 대학교는 도서관 등에서 쓰이는 인건비도 안 드는 자동출력시스템의 인쇄비가 50원에서 60원으로 인상된지 5년이 넘었지만 직원이 손수 출력물 갖다주고 돈 받아야하는 복사실의 출력요금은 아직 50원이다. 하지만 교문 밖이나 대학로를 나가는 순간 출력비가 100원이 되는 마법(?)을 경험할 수 있다.
또 휴대폰이 대중화되기 전에 공중전화 요금이 3~40원 할 때는 이 50원 짜리를 가지고 다니다가 통화를 하곤 하였다.
1983년 버전 기준 구리 70%, 아연 18%, 니켈 12%의 양백(양은) 소재를 사용하고 있으며, 도안은 이삭, 지름은 21.60mm, 무게는 4.16g. 일본 5엔짜리 동전하고는 벼 이삭으로 도안이 같다. 이는 1968년 식량농업기구(FAO)에서 식량작물을 소재로 한 동전을 발행할 것을 각국에 권고하여 이에 따른 것일뿐, 일본 동전을 표절한 것은 아니다.[1] 아마도 대부분 국가들이 식량작물 소재 동전을 단년도로만 발행한데 비해 한국은 현재까지도 벼 이삭도안을 사용하기 때문에 이런 말이 돌은 듯. 50원 주화 이상의 주화에는 옆면에 홈이 패여있다.
참고로, 크기가 구 십원 주화보다 작다. 원래대로라면 십원 주화보다 크게 만들고 백원 주화보다 작게 만들어야 하나, 오십원 주화보다 첫 발행이 앞선 백원 주화가 십원 주화보다 아주 조금만 크게 만들어졌기 때문에 십원 주화와 백원 주화의 중간 크기로 만들면 백원 주화와 색깔 뿐만 아니라 크기까지 비슷해서 혼동하기 쉬워진다는 이유로 어쩔 수 없이 십원 주화보다 작게 만들었다고 한다. 단 2006년부터 통용되고 있는 십원 주화는 오십원 주화보다 더 작아졌다.
또 다른 이유로는 일원, 오원, 십원 주화는 저액주화(민면형 테두리)로, 오십원, 백원, 오백원 주화는 고액주화(톱니형 테두리)로 이원화되어있기에 십원 주화와 오십원 주화의 크기를 연속으로 만들 이유가 없어, 그 결과 오십원이 더 작게 만들어졌다고 한다.

2. 기타


1980~1989년에는 오락실 오락 1회 요금의 동전으로 많이 사용되었다.
미국의 니켈(5센트) 동전의 크기가 50원과 비슷해서[2] 시중에서 섞여다니는 경우가 종종 있다. 잔돈으로 5센트를 받거나 은행에서 포장한 50원짜리 롤에도 섞여들어가서 잊을만하면 심심찮게 마주하기도 한다. 다만, 이쪽은 액면가가 별 차이가 없어서 큰 이슈거리는 되지 않는 듯하다.
50원짜리 동전이 귀한 연도는 최초발행년도인 1972년과 발행량이 최저인 1977년, 2014년으로 각각 6,000,000개와 1,000,000개다. 그리고 1985년과 1993년, 2018년 50원 주화도 발행량이 각각 4,000,000개와 5,000,000개, 6,000,000개로 귀한 연도에 해당하지만 앞의 연도보다는 시세가 낮은 편이다. 준특년 주화는 10,000,000개 발행된 1980년과 2013년, 15,000,000개 발행된 1978년과 1999년이지만 오십원 발행량이 전체적으로 적은 편이라 거의 액면이라고 보면 된다.
특이하게도 1981년에 발행한 5, 10, 100원 주화가 각 100,000개인데 비하여[3], 1981년 50원 주화는 25,000,000개로 상당히 많이 발행되었는데, 1981년초부터 서울 시내 중심가를 제외하고는 전자오락실의 1회 전자오락 요금이 100원에서 50원으로 인하 된 영향을 받은 이유도 있다고 하는데, 상당히 많은 수량의 1981년 발행 50원주화가 전자오락실에서 사용이 되었다.
1999년부터 주화 50개씩 묶어서 한국은행 롤 종이에 포장이 되어 롤로 출시되고 있는데, 1999~2001년 롤은 10만원 이상, 2014년 롤은 40만원이 넘는 위엄을 자랑한다.
원래 일본의 50엔 주화처럼 구멍을 뚫어서 발행할 예정이었다고 한다. 하지만, 당시 조폐공사의 기술력이 부족해서 실현되진 못했다.
50원

[1] 일본 5엔이 훨씬 먼저 나왔고 디자인 관점에서 보면 벼 도안은 표절이 맞다. 물론 당시에는 저작권 개념은 없을 때였지만. 우연히 비슷한 디자인이 되었다고 보기에는 너무 비슷하며, 디자인 할 때엔 가까운 나라 동전도 조사하고 그 디자인은 피해야 하는 것이 정상이다. 그런데 1원, 100원 동전도 1엔, 100엔 짜리와 재질과 디자인이 비슷하다. 당시는 자국민 해외 여행도 금지이고 일본 문물은 들어오지 못할 때라서 그렇게 한 듯.[2] 약 0.4mm정도 차이가 나는데, 5센트쪽이 작다.[3] 1원의 발행량도 20,000,000개라서 나름 준수한 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