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원
1. 개요
대한민국의 통화이다. 긴급통화조치법에 따라 기존의 환을 대체하여 통용되어 오다가, 아예 한국은행법에 명문으로 규정되었다.
ISO 4217 국제표준화 화폐코드는 KRW이고, 약식 기호로는 ₩와 같이 나타낸다. 통념과는 달리 이 원(Won)에 대응하는 한자는 없는데, 처음 도입 당시 圓을 썼지만 몇 차례의 화폐개혁을 거치면서 공식 한자 표기를 없앴기 때문이다. 다만 중국에서는 元을, 대만에서는 圓을 '원'의 한자 표기로 사용하고 있으며, 동아시아 다른 나라의 통화와 구별하기 위하여 '韓'을 앞에 붙여 '韩元' 또는 '韓圓'이라고 표기한다.
보조단위로는 전(Jeon)이 있는데, 환율 계산 등에만 사용될 뿐 일반적으로는 쓰이지 않는다.
1.1. 단위 입력하기
한국어 윈도에서는 \\(U+005C, 역슬래시, reverse solidus)를 입력하면 반각 문자 ₩이 나오긴 하지만 다른 언어판 윈도나 다른 운영 체제에서는 그냥 역슬래시(\)로(일본어 윈도에서는 ¥으로) 나오므로 다른 방법으로 입력하는 것이 좋다. ₩(U+20A9)는 Alt + 8361(Num lock을 켜고 숫자 키패드로 입력)를 통해 입력할 수 있다. 전각 문자 ₩(U+FFE6)는 ㄹ + 한자 또는 Alt + 65510(역시 숫자 키패드로)로 입력할 수 있다.
마이크로소프트 한글 IME에서는 Alt + =으로 전각 모드로 전환한 후 \\ 키를 누르면 전각문자 ₩이 나온다.
이런 것조차도 문제가 될 수 있는 환경이 있으므로 공식 서한 등에서는 통화 코드인 KRW를 사용하는 편이다.
2. 역사와 종류
2.1. 1기
1950년 6월 12일 한국은행이 설립되면서 처음 만들어낸 시리즈이다. 당시 환율은 1달러=1800원. 하지만 2주만에 희대의 사건이 터지는 바람에... 시작부터가 순탄치 않았다. 전쟁 초반부터 예상치 못하게 급격히 밀리면서 급하게 피난을 가느라 겨우 금괴 1.1톤과 은괴 2.5톤만을 건지고 겨우 철수했고, 인민군이 서울을 함락한 직후 한국은행을 접수하고 나니 나머지 금괴 0.2톤과 은괴 16톤, 그리고 한국은행이 아직 미발행한 지폐 105억원어치가 있었던 것이다. 더구나 지폐를 발행하던 조선서적인쇄공사에서도 직원들이 장비를 다 방치하고 피란을 떠났기에 인민군은 105억원의 미발행권은 물론 앞으로도 무한히 조선은행권을 발행할 수 있게 되었다.#[1]
이걸 그대로 꿀꺽한 김일성은 남한 정부의 경제를 마비시킬 작정으로 미친 듯이 미발행권을 뿌리고 그걸로도 부족해 조선서적인쇄공사의 설비를 이용해 미친듯이 조선은행권을 발행하기 시작했다. 전시에 적군에 의해 아군의 화폐가 무참히 발권되는 상황이었으니 정부는 특단의 조치로 화폐 교체를 단행한다.
공식적 첫 은행권 출범은 1950년 7월 22일 발행된 '이승만 한복 1000원권'과 '광화문 100원권'. 기존의 '조선은행 원'과 같이 사용이 가능한 통화였다. 당시 천원권의 경우에는 지폐의 판 번호 1번부터 500번까지는 일본에서 인쇄했고 판 번호 501번 이후는 한국에서 인쇄했다. 그래서 일본인쇄권과 한국인쇄권은 품질이 다르다. 판 번호 500번까지 일본에서 인쇄된 이유는 기술력 문제가 아니라 전시의 급박한 상황 덕분이다. 물론 기술력도 일본이 한국보다 낫긴 했지만, 중요한건 상술했듯 적군에 의해 아군 지폐가 무자비하게 찍히고 있다는 거였고, 때문에 정부는 기존의 지폐를 무력화시키기 위해 최단시간 내에 새로운 도안을 만들고 대량인쇄를 해야 했는데, 상술했듯 인쇄설비는 다 서울에 두고 왔고 직원들은 한참 피란 중이라 어디있는지조차 확인이 안되었다.
때문에 6월 29일, 한국은행 구용서 총재는 도쿄지점에 전화를 걸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말고 일본 대장성을 통해 새 도안을 가진 100원권 및 1,000원권 지폐를 대량 인쇄, 그것도 보름 내로 해야 한다'''는 불가능에 가까운 임무를 주었다. 도쿄지점의 김진형 부총재는 지시를 받자마자 대장성대신 부리나케 GHQ를 찾아가 상황의 급박함을 읍소했고, 역시 상황의 심각함을 이해하고 있던 GHQ는 대장성에 최대한 빨리 새 도안을 내놓으라는 '''명령'''을 내렸다. 이에 대장성 인쇄청장 이지치 타츠오(伊地知辰夫)는 '''이럴 때 연합군에 최대한 협력하는 것이 일본이 살 길'''이라며 전 노동자들에게 '''무기한 철야특근 명령'''을 내렸다. 그렇게 신도안은 단 이틀만에 튀어나왔고, 약간의 수정을 거쳐 도안이 확정된 후 이번에는 다시 지폐 인쇄작업이 시작되었는데 GHQ 병력들이 인쇄소를 쳐들어가 노동자들에게 총을 겨누며 독촉할 지경이었고, 결국 7월 13일에 1차 인쇄분이 대한민국에 도착한다.#
그리고 1950년 6월 25일부터 1950년 7월 20일까지 피난자금으로 조선은행권의 긴급인출(자연인 1명당 10만 원)을 실행하고, 1950년 9월 15일부터 1950년 9월 22일까지 한국은행권의 긴급교환(자연인 1명당 10만 원)을 실행했다.
1952년 완전히 서울을 되찾았을 때 긴급히 조선은행권을 이승만&파고다공원 1000원권/500원권(국내생산인 두번째 시리즈)과 교체해주며 무마하려 했으나 이미 통화시스템이 망가질 대로 망가져버리는 바람에 유명무실했다. 결국 이승만 대통령은 1953년 2월 15일 긴급명령으로 화폐개혁을 시행하여 경제혼란을 수습하도록 지시하면서 막을 내렸다. 이때 환율은 1달러=6000원. 대한민국 환과의 교환비율은 100원 = 1환이었다. 한국은행의 경제통계에 따르면 도매물가지수는 1945년부터 1953년까지 약 1만 배만큼 폭등했다.
이 시기가 한국 역사상 마지막으로 당대 생존인물을 화폐도안에 올린 사례다. 환 시절에는 한창 집권기였으니 당연히 올라갔다.
2.2. 2기
대한민국 환을 화폐개혁으로 폐지하고 난 뒤의 1962년부터 발행된 "원" 단위의 모든 화폐는 '''지금도 쓸 수 있으며''', 공식적으로 한국은행 및 시중은행에서 현행권과 교환이 가능하다.
외국 시중은행이나 환전소에서 구형[2] , 현행 지폐 환전이 가능하지만 동남아에서는 현행권만 환전이 가능하다. "전(jeon)"은 안 된다. 다만, 사용시에는 액면가 그대로로만 사용할 수 있지만, 수집가 등에게 팔면 몇십배 내지는 몇천배, 몇만배까지도 받을 수 있어서 사용하는 게 손해라는 것이 문제.
2.2.1. 지폐
2.2.1.1. 1차 (영제권)
1962년 6월 10일, 경제 개발 5개년 계획에 발맞춰 내놓았다. 조선 엔과 달리 한자를 전혀 사용하지 않게 되었다는 것.[3] 조선 엔 및 대한민국 환과 교환하는 비율은 1000엔=10환=1원이 된다. 이 조치 이후로 기존의 환을 전면 사용하지 못하도록 했으나, 사용량이 폭주하는 소액권 보급에 차질이 생김에 따라(이 당시엔 '''원화 동전'''이 아직 나오지 않았다.) 예외적으로 50환과 10환 동전의 통용을 1975년 3월 21일까지 허용하였다.[4][5] 한국은행에서는 "가"시리즈로 명명하였다. 예를들면 총석정 50원은 "가 50원권".
비공식 별칭은 영제(英製) 시리즈. 영국의 데라루(De La Rue)사에서 인쇄했기 때문에 이런 이름이 붙었다. 그래서 한글 글꼴이 지금의 시각으로 보면 상당히 어색해 보이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디자인부터 인쇄까지 죄다 영국에서 했으니. 몰론 감수는 한국은행이 했다. 종류는 1원부터 500원까지 6종이 발행되었는데, 1원 미만(옛 10환단위 미만)의 소액을 처리하기 위해 10전과 50전짜리 지폐[7] 를 추가로 도입하여 모두 8종이 되었다. 굉장히 아담하고 뭔가 성의없어 보이는 저액권과 기본적인 구성을 갖춘 고액권의 차이가 확연하게 드러나는 것이 특징. 한국은행권 중에선 가장 비싼 값으로 수집가들에게 거래되는 시리즈이며, 가장 비싼 것은 위에도 걸려있는 총석정 50원[8] 이다.
여담이지만 이 당시(60년대 중반) 물가는 쌀 1,100원/20kg가량, 쇠고기 1근 300원, 라면 1개 10원[9] , 서울에 집 한채 혹은 고급차 1대 70만원 가량이었다. 또한 일부 기록에 의하면 대통령 봉급이 78,000원이었다고.
2.2.1.2. 2차
- 2차와 3차에 속하는 지폐들의 정확한 등장 순서는 나 십원권(1962.09.) → 나 백원권(1962.11.) → 다 백원권(1965.08.) → 나 오백원권(1966.08.) → 나 오십원권(1969.03.) → 가 오천원권(1972.07.) → 가 만원권(1973.06.) → 다 오백원(1973.09.) → 가 천원권(1975.08.) → 나 오천원권(1977.06.) → 나 만원권(1979.06.) 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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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 1만원권은 5천원권과 동시에 내놓을 예정이었으나 1년 늦게 등장했다. 그리고 디자인도 당초엔 달라서 앞면에는 석굴암의 본존불상, 뒷면에는 불국사가 들어갈 예정이었다. 참고로 불국사의 경우에는 복원사업 완료 이전이라 지금과 모습이 좀 다르다.
원판이 완성되고 시제품[13] 을 찍어내 당시 대통령인 박정희의 재가를 받고 친필서명까지[14] 받아낸 다음 공표하였지만, 양대 종교단체 모두의 반발을 감안하지 않은 탓에 심한 반발로 무산되었다. 기독교계는 '불교만 편애한다'는 이유로, 불교계는 '신성한 불상을 세속의 상징인 돈에 올릴 수 없다'는 이유로 각각 반대했다. 결국 처음부터 다시 만드느라 1년 늦게 나왔다. 하지만 이미 주문한 용지까지 폐기할 자금 여유는 없었기 때문에 그냥 인쇄되었다. 덕분에 가 만원권 왼쪽 은화의 석굴암 본존불상이 살아남을 수 있었다.관련 기사.
참고로 1천원권의 경우는 원판화를 담당하던 작가가 갑작스럽게 별세하는 바람에 더 늦어져 내놓을 시기를 놓쳐버렸고, 나 오천원/만원이 나올 시기에야 그 모습을 드러냈다.
- 참고로 1993년 이전에는 갑을병정(甲乙丙丁)순으로 불렀다. 거기에 개정판이라면 개(改)를 붙여 개갑이라는 식이다.
2.2.1.3. 3차
묶기는 3차로 묶었으나, 2차 시리즈와 시기가 엇갈려 있다. 주로 1970년대를 주름잡던 주요 시리즈로 보면 된다. 전반적으로 기술의 발전으로 새롭게 내놓은 성격이 강하다. 경제규모의 팽창이 점진적으로 가속화되고 오일쇼크의 영향으로 물가상승률이 높은 수준을 기록하여 원화가치가 지속적으로 떨어지면서 50원(1972년 12월 1일), 100원(1970년 11월 30일)동전이 추가되며 서서히 지폐를 밀어냈다.
2.2.1.4. 4차 (구권)
1983년에 등장한 시리즈로, 화폐체계가 완전히 정착된 시기다. 이때부터 정확히 일반인들에게 익숙한 지폐 3+1종과 동전 5+1종[15] 체계가 되었다. 재질도 다른 것으로 바꾸었고[16] , 위조방지장치도 크게 강화되었다. 시각장애인 식별표식도 이때부터 달기 시작한 것.
구권이긴 하지만 여전히 기억하는 사람도 많고, 아주 간혹가다 시중에서 볼 수 있기도 하다. 특히 편의점 알바와 같이 돈을 많이 만지는 업종에 종사하고 있다면 심심찮게 볼 수 있다. 다만 엄연히 회수중에 있으므로 한국은행 본점이나 지역본부로 들어가게 되면 그대로 폐기된다.
이들 중 특히 오천원권은 보기가 힘든데, 77246 위폐 사건으로 오천원권 위폐가 창궐해 한국은행에서 빠르게 회수해서 폐기하고 있기 때문.
2.2.1.5. 5차 (현행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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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은 5만원권의 모습.
2006년 1월 2일에 위조비율이 가장 높았던 5천원권이 처음 교체되면서 데뷔하였다.
미국 달러처럼 고풍스러웠던 이전까지의 분위기와는 다르게 유로화처럼 밝고 시원시원해졌다. 독일 마르크화나 스위스 프랑화처럼 모더니즘 스타일로 디자인 방향이 전환되었다.[23] 굳이 따져본다면 시기는 스위스 프랑이 좀 더 빠르지만 유통된 적이 없고, 일련번호 배치 등의 레이아웃은 독일 마르크화에 더 가까운 편이다.
다만 신권을 막 접했던 시기의 국민들은 지폐의 밝고 선명해진 색상, 줄어든 장식성, 얇은 산세리프 글꼴, 비교적 작은 크기에 당황해하는 반응을 보였으며 비난 여론도 높았다. 당시 기준으로 봤을 때 돈이 돈답지 못하며 장난감 같아 촌스럽다는 것이 그 이유이다. 하지만 현대적인 디자인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높아지고, 2007년 1월 22일 1천/1만원권 등장, 2009년 6월 23일 5만원권 등장[24] 까지 거친 이후론 이러한 디자인도 어느정도 수긍하는 분위기이며 크기가 작아져 휴대가 편해진 점도 긍정적으로 받아들인다. 다만 여전히 글꼴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일부의 반응도 존재한다.
등장 당시엔 (짧지만) 호경기였는데다 20여년만의 디자인 개혁과 맞물려 대중매체에서 고가 수집품에 관한 방송을 틀어줘서 잠시 일반인들 사이에 수집 재테크 바람이 불었다. 뭔가 그럴싸해 보이고 오래되어 보이는 것이 눈에 띄면 지식포털 등에 무작정 감정부터 해달라고 징징거리는건 기본, 심지어 '''판매'''한다는 글 올리고 설레발 치는 것은 몰론, 빠른 번호가 비싸게 팔린다는 뜬소문이 퍼져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한국은행 앞에 전날부터 진치고 기다리는 진풍경까지 벌여졌었다. 지금은 불경기가 이어지면서 확실히 가라앉은 상태. 여튼 일반인들에게 가치로서의 돈이 아닌 "화폐"라는 물건에 관한 관심을 크게 키워준 시리즈다.
5만원권 발행 당시에는 지하경제 활성화에 기여하는 거 아니냐는 우려가 많았는데, 2018년 현재 5만원권의 회수율은 60%를 돌파했다. 2014년 당시 20%라는 낮은 회수율에 비하면 크게 오른 것이다. 사실 대한민국 원화 정도면 이 문제가 별로 심각한 건 아니며 이전보다 살짝 심각해진 것일 뿐이다. 진짜 이 문제로 골치를 앓는 화폐가 바로 유로화인데 500유로권 지폐가 한화로 70만원 상당이니 이 문제로 인해 유럽연합에서마저 500유로권 지폐 사용을 자제하고 있으며 발행은 이미 중단되었다.
위조율이 높은 5천원권과 1만원권, 5만원권의 지폐에는 앞면에 홀로그램이 추가되었고[25] 보는 각도에 따라 한반도 지도와 태극무늬, 사괘가 나타난다. 또한 일련번호도 해외에서의 위조지폐 발견 시 수사를 원활하게 하기 위해 한글+숫자에서 로마자+숫자 조합으로 변경되었다. 특히 한반도 지도를 보면 울릉도와 함께 독도도 그려져 있는데 이 홀로그램은 국산이 아니라 일본 회사가 만들었다.12 국내에는 마땅한 홀로그램 기술이 없어서 외국 업체에 입찰 공도를 냈더니 일본 회사가 가장 싼 값을 불렀다고...
코로나19로 인해 경기 불확실성이 커지자 고액권인 5만원 보유가 급증해지면서 5만원권이 부족해지는 현상이 늘어나고 있다.#1#2 한은측에서도 5만원권 발주를 3배 늘렸다고 밝혔다.# 하지만 5만원권 부족현상은 계속되고 있다.# 또한, 한국은행은 5만원권에 대한 수요가 늘어날 것이라고 밝혔다.#
2020년 11월, 100원 주화, 5천원권 지폐, 1만원권 지폐, 5만원권 지폐의 도안이 바뀔 예정이라는 기사가 나왔다. 기존 지폐 도안인 표준영정을 그린 화가들의 친일 행적 논란으로 인해 표준영정이 해제되고 신규 표준영정이 제정되며 생긴 조치로, 100원 주화부터 우선적으로 바뀔 예정이라고 한다. 실제 교체에는 4~5년이 걸릴 것으로 예정된다. #
2.2.2. 동전
공식적으로는 여섯 종류이나, 현대에 들어서는 네 종류만 통용된다. 이런 의외성으로 토막퀴즈를 낼 때 자주 이용된다.
- 일원 주화, 오원 주화: 1966년부터 발행. 현재 시중에서는 사용되지 않고, 은행 간 1원 단위 차액거래로만 사용된다.
- 십원 주화: 1966년부터 발행. 현재 시중에 사용되는 최소 금액 주화이며 2006년부터 주화 재질과 디자인이 변경되어 1원주화의 느낌이 난다.
- 오십원 주화: 1972년부터 발행.
- 백원 주화: 1970년부터 발행.
- 오백원 주화: 1982년부터 발행. 주화 중 가장 늦게 등장했다. 주화 중 가장 큰 금액이다.
2.2.3. 수표
엄밀히 따지면 화폐가 아니라 '''유가증권#s-1'''이다. 다만 사실상 현금과 마찬가지로 쓰이며, 특히 은행에서 발행하는 자기앞수표는 사실상 화폐 취급된다. 그러나 해외에서의 국내 수표는 종류를 불문하고 환전이 불가능하다.
- 자기앞수표 - 발행인과 지급인이 동일한 수표. 한국에서는 주로 국책은행과 특수 은행을 포함한 제1금융권 시중은행 에서 발행한다. 물론, 제2금융권역에서 취급하는 곳들은 상호저축은행, 농·축협, 지역단위수협, 신협, MG새마을금고가 있다. 그리고,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산하기관인 우정사업본부#s-6.2에서도 마찬가지로 전국의 우체국 금융창구[26] 를 통해서 자기앞수표를 발행하고 있다. 그리고, 우체국 자기앞수표는 이론적으로 정부가 「우체국예금ㆍ보험에 관한 법률」 제4조(국가의 지급 책임)에 의거하여 지급보증을 서주고 있기에 민영화를 하지 않는 한 제일 안전하다고 할 수 있다. 수표와는 별개로 취급중인 우편환도 마찬가지.[27]
- 십만원권 수표 (연보라색)
- 오십만원권 수표 (초록색)
- 백만원권 수표 (진파랑색)
- 백지수표 - 약속어음과 당좌수표 모두 백지수표라고 부를 수 있다.
3. 기념화폐
3.1. 2,000원권 기념 지폐
4. 대한민국 원의 인지도
객관적으로 보았을 때 세계 3대 통화인 미국 달러, 유로, 일본 엔과 비교할 수 없으며, 영국 파운드 스털링 등 핵심 국가들의 화폐나 같은 동아시아의 금융 허브인 싱가포르 달러나 홍콩 달러와 비교해도 지명도가 낮다.
환율쪽에서도 환전받을 수 있는 나라 수가 적은 편이다. 미국 달러와 그에 도전하는 유로화[28] , 세계적으로 안전하다고 신뢰도가 높은 일본 엔화, 과거에 비해 명성을 잃었어도 추종자가 많은 영국 파운드 등 세계구급 화폐들과 비교해서 한참 아래이다. 달러는 미국 경제를 기반으로 한 점에서 더 이상의 설명이 무의미하고, 유로는 최근 남유럽의 막장 테크화 및 동유럽의 부실함으로 문제가 많긴 하지만 알프스 산맥 북쪽의 경제대국들(특히 독일)이 받쳐주고 있기에 무너질 가능성이 매우 낮으며, 일본 엔화는 잃어버린 20년으로 예전만한 명성은 줄어들었지만 여전히 안전하다고 신뢰가 높은 세계 3대 통화이자 전 세계 결제 무역량의 15%를 차지한다. 파운드도 금융 강국 영국의 의외로 견실한 경제구조와 영연방 국가들과의 연계에 미국과의 핵심 동맹 체계가 결합[29] 되었으며, 중국 위안도 중국의 경제 규모를 고려해 무시할 수 없다. 한국 원은 2019년 기준 세계 11위의 경제규모에도 불구하고, 수출 위주 경제로 국제 환경의 변화에 민감한 점, 북한 리스크로 인한 코리아디스카운트 등으로 인해 신뢰성이 상대적으로 낮다. 영국은 유로존은 아니지만 세계 금융결제의 상당액이 파운드로 이뤄졌다. 브렉시트 이후에는 그 위상이 떨어지는 듯하나 썩어도 준치라고 기축통화에 준하는 위상은 유지하고 있다.
한국 경제의 규모가 작은건 아니지만 기축,준기축 통화국들에 비해(미,중,일,유로권) 크지 않고 수출 위주라 불안정성이 있으며, 원화의 양 자체도 저 네개 화페에 비해 적다. 따라서 미국 달러를 제외한 나머지 통화에 대한 가치는 달러화를 통한 크로스체크, 즉 재정환율(arbitrage rate)로 결정하고 그에 따라 국제금융시장에서 한화는 그 동향을 신경 쓸 필요가 적으며 달러만 보면 가격이 바로 나와버린다. 그 때문인지 한국에서 공식적으로 다루는 외화는 오로지 미국 달러뿐이었고 그 외 통화는 메이저급이라도 미국 달러를 중재로 놓고 다뤄왔고, 2014년부터는 달러 없이 원-위안화간 직거래가 시작되었다.
그렇다고 무시할 수만 없는 게, 정치-경제-군사적 순위가 열 손가락에 들어가기 때문에 자칫 한국에 문제가 생길경우 외국인 투자자들도 왕창 손해본다. 예를 들어 연평도 해전 때 해외 증시를 급락시킨 걸 보면 알 수 있다. 그 외에도 한국은행이 원론적으로 외환보유고를 달러에만 집중하지 않고 다양화하겠다고 발표했을 때도 일시적이지만 국제금융시장에 큰 충격이 가서 이성태 전 한은 총재가 위의 발언을 한 다음날 바로 원론적인 선에서 말한 것이지 즉각적으로 정책으로 옮기겠단 뜻은 아니었다고 해명 아닌 해명을 한 적도 있다.경제규모가 나름 상당하기 때문에 한국에 아주아주 큰 충격이 오면 국제금융시장에 영향을 끼칠 수는 있으나 그 정도의 큰 충격은 쉽게 찾아오지 않을 것이다.
'''북한'''과 '''중국'''의 존재가 의외로 크다. 그나마 북한은 고난의 행군 이후로 전면전 수행 능력을 상실한 데다 미국의 존재 때문에 그렇게 심각한 리스크는 아니지만[30] 문제는 중국. 지정학적으로 한반도는 중국에게 있어 심장을 노리는 단검이나 다름없기에 공격이건 방어건 언제든 견제하려 들 수밖에 없는 곳이다. 물론 한반도에서 미중간 전쟁이 일어나면 미국 달러등 4대 화폐도 그 가치가 크게 떨어지겠으나 승패와 무관하게 적어도 몇 년 간은 휴지조각 신세가 될 원화나 위안과는 다르다.
북한에서는 인기가 없는 편. 사실상 휴지조각인 북한 원에 비하면 한국 원은 가치는 높지만 어차피 바로바로 환전해서 사용이 가능한[31] 위안이나 미국 달러, 유로에 비하면 인기가 적으며, 중국 위안이나 달러와는 달리 한국 원은 남한과 교역이 거의 없는 수준이라 진짜 쓸 곳이 없고, 들고 있다 걸리면 요덕행 편도티켓이 되어 북한에서는 크게 인기가 없다. 실제로도 북한에서 한국 원화를 잔뜩 쌓고 있다면 단 하나의 경우밖에 없다. '''지금 당장 탈북하는 경우.'''
국제 외환시장에서 2010년 기준으로 1.5%정도의 가치를 차지한다. 액수가 상대적으로 적다 보니 여러가지의 방법으로 원화에 대한 정부의 개입이 많으며, 이것이 정치적 이유를 띠게 되는 경우 욕을 많이 먹기도 한다. 대한민국/환율 문서 참조. 중국이나 일본에서는 거의 모든 은행이 한국 원을 취급하지만, 수수료가 비싼 편이다. 또 외국에서 원화를 취급하는 은행이나 환전소는 많지 않고, 대부분 상당한 환전수수료를 감당해야 한다.[32] 그래서 대부분의 한국인 여행자들은 일본 여행을 할 때 한국에서 미리 바꾸면 적은 수수료로 환전할 수 있지만 돈이 다 떨어지거나 미처 환전하지 못하고 일본에 도착해서 환전하게 되면 눈물이 앞을 가로막는다. 반대로 일본 여행자들은 자국에서 미리 환전하면 수수료가 비싸므로 엔을 한국으로 가져와서 환전한다. 한편 한국에서 환전수수료가 비싼 나라 돈은(또한 그 나라에서도 한국 원 수수료가 비싸다면) 시중은행에서 해당국 화폐로 직접 환전하기보다는 명동 등지의 사설 환전소를 찾아가거나, 은행에서 환전수수료가 매우 낮은 미국 달러로 환전하여 현지에서 미국 달러를 현지 화폐로 다시 환전하는 이중환전을 하고 있다. 말하자면 범세계적인 완전한 경화(Hard Currency)급은 안되더라도 역내(域內)에서는 어느 정도 힘 있는 화폐 정도는 된다는 뜻이다. 한국어가 메이저 언어의 말석이자 마이너 언어의 선두주자인 것과 비슷한 위상인 듯.
통화선물시장이나 외환거래를 제공하는 국내 은행의 경우 G8(미국 달러, 유로, 일본 엔, 영국 파운드, 스위스 프랑, 스웨덴 크로나, 호주 달러, 뉴질랜드 달러)통화에 홍콩달러를 유럽식으로 표기한다. 선물시장에서는 미 달러, 유로, 엔화 거래만 유럽식 호가로 표기하며 일본이나 다른 통화의 FX마진을 취급하는 외국계 회사의 경우 엔, 홍콩 달러 등 역내 통화에 대해서는 미국식 호가로 표기하여 거래 편의를 제공한다.(예: 100원/엔= 8.9421엔)
외국계 FX마진 회사를 빼면 나마지 회사나 은행에서는 유럽식으로 계산되는데, 한 예로 스위스 1프랑 미화 환산가가 1.0314이고 미국 달러화에 대한 원화 환율이 1038.45원 일때 스위스 프랑에 대한 원화에 대한 가치계산은 이렇게 된다.
1.0314(스위스 프랑에 대한 미국 달러 환산가)×1038.45(미국달러에 대한 원화 환율) = 1071.06(소수점 두번째 자리 올림 적용)이다.
무역결제에서 전세계 사용량은 약 2%로 세계 12위 규모다.#
5. 액면 대비 가치
이탈리아가 자국 화폐를 리라에서 유로로 전환한 이래 OECD 국가 중에선 액면 대비 가치가 가장 낮은 화폐이다. 즉 1원, 1달러, 1유로 등등 OECD 국가의 화폐 액수를 1씩 놓고 비교하였을 때 1원이 가치가 가장 낮다.
한국 시장에서 십원 미만의 액수는 사실상 소멸된 상태이며, 오십원 미만의 액수도 조세행정이나 회계상 필요에 의해 전산으로만 관리될 뿐이고 시중에서 현금으로 통용되는 경우는 봉투 값이나 거스름돈 정도에 불과하다. 때문에 한국 시장 상품의 소매가격은 기본적으로 백의 자리 이상부터 시작한다.
이처럼 화폐의 액면가가 불필요하게 높아지는 현상은 아프리카나 동남아시아 어디에 있는 빈국을 제외한 선진국에서는 찾아보기가 어려운 사례이다. OECD를 넘어서 전 세계로 범위를 확대했을 때 원화보다 단위가치가 낮은 화폐는 약 20여 종에 불과하다. 모두 개발도상국 및 후진국의 화폐이다.[33]
이러한 점 때문에 한국 경제가 자칫 서방세계의 시각에서 개발도상국의 이미지로 비추어질 수도 있다는 우려도 실제 존재한다. 서구권 사업자들 사이에서는 '한국에서 밀리언(백만)을 벌어도 아무것도 아니다.'라는 비아냥이 나오기도 하며, 일본에서 한국의 5000원이 일본 500엔 주화의 가치에 불과하다는 사실에 놀라는 경우도 더러 존재한다. 다만, 이건 500엔 가치가 큰거다. 500엔 주화 문서 참조.
그래서 1000:1 리디노미네이션(화폐개혁) 주장이 꾸준히 나오고 있고, 여기에 대한 당위성이 위에서 충분히 서술되어 있지만 인플레이션 우려가 너무 큰데 비해 리디노미네이션을 하기에는 너무 애매한 액면이라 당분간 할 일은 없을 것으로 보인다. UN이나 IMF, OECD 등의 권고가 있다거나, 아니면 국민의 결정적인 요구가 있지 않는 한 계속 이 상태가 유지될 것이다. 관련 논문에서도 굳이 할 필요가 없다는 결론이 절대 다수를 차지한다. 다만 문재인 정부가 들어서고 2019년부터 다시 얘기가 나오고 있는데, 일단 논의 정도만 하는 중이다. 한국은행 총재 이주열 또한 리디노미네이션을 검토한 적도 추진할 계획도 없다며 선을 그었다. 2020년 10월 23일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종합국정감사에 참석한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는 리디노미네이션과 고액권 신규 발행 계획이 전혀 없다고 선을 그었다.#
간단히 말해 화폐의 가치는 그대로 유지하면서 숫자의 크기, 즉 화폐단위만 변경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1000원의 기본 가치를 유지하면서 1000을 1로 바꾸어 1원으로 변경하는 것.
최근 리디노미네이션에 대한 조사에 반응은 반대가 52.6%, 찬성이 32%로 반대가 압도적으로 많았는데, 그 이유가 '갑작스러운 화폐단위 변경으로 인한 혼란'이 제일 많았다. 그리고 대한민국은 현금 없는 사회에 이미 진입하여 고액이든 소액이든 결제를 할 때에는 현금이 거의 필요 없고, 외국인이 대한민국 국외에서 발행한 비자카드, 마스터카드의 한국 사용도 대부분 문제 없어(설사 DCC가 적용될지라도)[34] 리디노미네이션이 필요 없다는 의견도 있다. 그래도 전문가의 의견 상으로는 리디노미네이션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있다.
대한민국 원화의 액면가에 1000을 나누면 미국 달러나 스위스 프랑, 유로와 가치가 매우 비슷해지기 때문에, 2010년대 들어 국내 일부 관광지나 번화가의 식당이나 카페에서는 메뉴판에 0 세 개를 떼고 대신 k를 붙이는 경우를 볼 수 있다. (예: 아메리카노 3,000원 → 3.0k, 비빔밥 6,500원 → 6.5k) 그리고 대부분은 여기서 k조차 안 붙인다. (예: 아메리카노 3,000원 → 3.0[35][36] ) 또 그 이전부터 쓰인 줄임법으로 큰 액수를 말할 때 '만' 단위를 생략하는 경우가 있다. 10만, 혹은 100만이 넘어가는 큰 금액을 이야기할 때 '만 원' 부분을 떼어버리는 것. 그래서 '''억 단위 이상을 표기할 때는 다음과 같이 잘못된 표기로 쓰는 경우가 너무 많다.''' 주로 부동산 거래 시 축약해 부른다. (예: 마이너스 통장으로 5백만 원 받았다. → 마통 5백 받았다. / 이 아파트는 매매가가 3억 2천만 원입니다. → 3억 2천입니다. )
6. 기타
- 한국에서도 계산의 편의성 등을 위해 구미권 선진국에서 흔히 사용되는 2 단위 화폐를 도입하자는 논의가 있기는 하지만 금방 도입되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동북아시아에서만 해도 너무 급하게 도입했다가 실패한 사례가 둘씩이나 있기 때문이다. 2000년 일본에서 2천엔권 지폐가 발행되었을 때 터졌던 문제가 재현될 수 있다. 대만도 2단위 화폐[37] 를 애써 만들었으나 시중에 원활하게 유통되지 않고 있다. 동북아시아에서는 그나마 몽골, 북한, 홍콩에서 2단위 화폐가 활발하게 쓰이고 있다. 마카오와 중국은 각각 20파타카와 20위안권 지폐만 실생활에 정착했고 나머지는 사장되었다. 일단은 기념 화폐 목적의 이천원권 지폐가 나오기로 결정되었다. 한국 역사상 2단위 지폐가 아주 없었던 것은 아니다. 조선 말기와 대한제국 시기에 2단위 화폐가 통용된 적이 있었으며 미국 달러화의 쿼터(25센트)와 비슷한 두돈 오푼(2錢5分) 백동화도 통용된 적 있다.
- 유통용 기념 화폐[38] 를 단 한차례도 만든 적이 없다. 심지어 동북아시아에서는 유일하게 발행 경험이 없다. 2단위 화폐는 논의라도 했었으나, 통용 기념 화폐는 논의조차 없었다.
- 한 해 5억 장 정도의 화폐가 손상 등의 이유로 폐기되고 이로 인한 교체비용이 매해 500억 이상 든다.
- 영어가 공용어가 아닌 나라임에도 발권은행명을 영어로도 표기한 화폐이다. 이는 영어가 공용어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자국 화폐에 영어를 표기한 전세계 유일의 국가다. 예를 들면 한국은 "Bank of Korea"라고 영어로 표기했지만, 일본은 "Nippon Ginko", 중국은 "Zhongguo Renmin Yinhang" 등 모두 현지어의 로마자 표기이다. 같은 방식으로 한국은행을 표기하면 "Hangugeunhaeng"[39] 이 되어야 한다. 한국에서 아직까지 영어가 공식적으로 외국어의 지위에 있음을 생각하면 매우 이례적인 일이다.
- 4차까지는 뒷면의 영문 표기가 THE BANK OF KOREA였지만 5차부터는 BANK OF KOREA로 바뀌었다. 이로 인해 영문 표기가 틀렸다는 의견이 많았는데, 사실 중앙은행을 지칭할 때 관례적으로 the를 빼는 경우가 많다. Bank of Japan이나 Bank of England가 대표적인 예이다. 그 밖에 인도, 뉴질랜드, 이스라엘도 the를 뺀다. 출처
- 위조지폐 방지 홀로그램과 띠의 위치, 지폐의 왼쪽에 존재하는 공백의 면적 등이 각 권종개체마다 살짝 다르다. 고액권으로 갈수록 이 현상이 두드러지는데 1천원권은 5장당 2장, 5만원권은 20장당 2장 정도 완벽하게 동일한 지폐가 나온다. 이렇게 발행되는 이유는, 홀로그램 및 은선(隱線)의 위치가 다른 경유는 고의로 그러는 것으로, 무언가를 덧씌우고 삽입한 이상 두께가 달라지기 때문에 다발(100매)이나 관봉(1000매)으로 묶음 포장시 부풀어오르면서 끝이 휘거나 손상되는 것을 방지함과 동시에 쌓아올리기도 용이하기 때문이다. 공백의 위치(면적)가 달라지는 것은 단순한 인쇄 및 절단 기술력 부족인 것이 대부분이나, 똑같은 모양으로 복제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한 고의책이기도 하며, 한국은행 현행권의 경우는 후자에 가깝다.
- 한국 이외에 한국인이 유독 많이 찾는 몇몇 관광지에서 통용되기도 한다. 예를 들면 중국 장가계가 있다. 한국어 위키백과의 대한민국 원 문서를 보면 문서 상단에 일본, 짐바브웨, 미얀마가 비공식 사용국이라고 표기되어 있었으나 지금은 지웠다.
6.1. 등재된 인물들에 대한 논란
백원 주화의 이순신과 만원권 지폐의 세종대왕에 대해서는 별로 이견이 없지만[40] , '이황, 이이, 신사임당이 과연 화폐에 등록이 될 만한 사람들인가?'하는 의문을 가진 사람이 많다. 나름대로 해당 분야의 위인이라는 점에는 공감해도,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얼굴이라는 위치에는 걸맞지 않다는 정도의 지적이다. 먼저 천원권과 오천원권에 등장하는 이황과 이이에 대해 말하자면 두 인물은 모두 유교 철학자다. 조선이면 몰라도 현대 대한민국에서 유교는 문화양식의 근간 중 하나이기는 하지만 더이상 국가체제의 근간이 되는 이념도 아니고, 과거 경쟁 상대였던 불교나 기독교가 지금도 상당수 국민들의 주요 사상인 것과 달리 유교는 종교학적[41] 으로는 그 세력을 거의 잃어버린 상태로, 역사학을 연구하는 경우가 아닌 한 더 이상 깊게 다뤄지는 학문이 아니다. 그런 점에서 현대에는 큰 의미를 가지지 못하는 유학자를 한 사람도 아닌 여러 명 넣을 필요가 있는가라는 의문이 들 수 있다.
그리고 100원 주화부터 5만원권 지폐까지의 화폐 모델 면면을 보자면 전원이 조선시대 초중반, 200여년 정도의 역사에 국한되는 인물들 뿐이다.[42] 명목 4000년, 실질 2000여년이 넘는다고 알려진[43] 한국의 긴 역사가 무색하게 지폐 도안의 인물이 조선 초기라는 근세시대 일부에 편중되어 있는 것이다. 우선 고대사[44] 나 중세사[45] , 조선 후기 인물[46] 은 단 한 번도 화폐에 실리지 못했으며[47] , 근현대 이후부터 대한민국이 수립되기까지 많은 업적을 이룩한 인물이 적지 않음에도[48] 과거 독재자로서 들어갔던 이승만을 제외하면 근현대의 한국인이 화폐에 들어간 적이 없는 점은 많은 지적을 받는 부분이다. 한국과 마찬가지로 긴 역사를 가진 중국/대만, 일본과, 같은 아시아권인 동남아시아도 대체로 근현대의 인물이 화폐 도안으로 채택되고 있다.
일본 엔이나 미국 달러에는 각각 근대 개화기에 큰 역할을 한 위인들이나 대통령제와 미국 헌법의 기초를 세운 위인들이 주로 들어가 있는 반면[49] , 현대 대한민국 헌법의 정체성인 독립운동과 민주주의, 그리고 경제체제인 자본주의와 관련된 대한민국의 위인은 한 명도 들어가지 않고 있다.[50][51][52]
비정치적인 인물들을 꼽을 수도 있고 실제로 이 분야의 인물들이 지폐에 등재되는 경우도 매우 많다. 하지만 한국 근현대사에서 단순히 그 분야의 업적만으로 세계적인 명성을 쌓은 수학, 과학 등 자연과학 분야의 인물이나 문학, 예술계의 인물이 잘 발굴되지 않고 국가적으로 홍보하는 것도 적어서 비정치적인 위인 꼽기가 정말 어렵다는 문제가 있다. 먼 과거로 시간을 돌려 자연과학이나 예술 문학계에 세계사적으로 업적을 남긴 사람은 자세히 찾아보면 적지 않게 위인전에 실릴만하게 있지만 대중적 인지도가 적다는 것이 문제이며, 국내에서라도 큰 흔적을 남긴 사람은 그에 대한 당대 기록이 크게 부실하다. 조선시대 이전까지는 상공문화에 대한 경시와 유교 통념상 어떤 위인이든 정치적인 것에서 떨어져 있지 않을 수가 없다. 이름 남긴 사람 치고 정치와 안 엮인 사람이 없기 때문인데, 일례로 장영실은 벼슬에서 쫓겨난 이후로는 행방조차 알 수가 없는 지경이다. 즉, 이름을 남길 정도의 위인들은 뭐가 되었든 정치에 이름을 새기지 않으면 거의 어려웠다.
비교적 최근에 신사임당이 추가되기 전까지는 모두 이(李)씨라는 점도 지적 대상이었는데, 그래서인지 이씨여야만 화폐 인물이 될 수 있다는 웃긴 도시전설은 인터넷 시대 이전부터 오랫동안 믿어지기도 했다. 우스개로 50원 동전에도 이씨(이삭)가 들어간다고 한다. 그리고 첫 번째 예외가 된 신사임당조차도 따지고 보면 오천원 이이의 어머니이자 이씨 집안 며느리. 정부 수립 후 초기에는 이승만 초대 대통령의 초상이 지폐에 들어가기도 했는데 이승만 역시도 전주 이씨다.
5만원권 발행 결정 이후, '5만원권에는 여성인물이 들어갔으면 좋겠다'는 이유로 신사임당이 추가되었으나 '신사임당에게 무슨 역사적 업적이 있냐'는 이유로 '차라리 허난설헌 또는 유관순 등이 더 낫다'는 의견이 '''현재까지도''' 나오고 있다. 물론 허난설헌은 '허균에 의해 과대평가되었다'는 이야기도 있고, 유관순 또한 3.1운동과 관련되어 '너무 유관순에 대해서만 기억한다'는 소수 의견도 있다. 하지만 상징성을 감안하면 저 둘 또한 무리한 선정은 아니다. 또 일부에서는 거상 김만덕이 적절하다는 의견도 있다. 돈을 다루는 상인이라는 직업에 종사한 사람이라는 점, 뛰어난 인품으로 노블리스 오블리주를 실천한 사람이라는 점, 남존여비 사상이 팽배한 전근대 사회에서 스스로의 힘으로 자수성가한 여성이라는 점 등의 상징성이 화폐의 도안으로 사용되기에 매우 적절한 인물이라는 것이다.
근현대 경제인으로는 유일한 박사도 거론될 만 하다. "좋은 상품 생산을 통한 국가에의 봉사, 성실한 납세, 일자리 창출, 기업이윤의 사회환원"을 내세운 기업가로서 한국에서 두 번 다시 보기 힘든 모범적인 행보를 보여준 인물이다. 국민 건강을 위해 제약업을 선택했고, 독립운동가 출신에 독재정권과도 연이 없어 논란이 적고, 대한상공회의소 초대회장[53] 이라는 상징성도 있다. 유한양행이 아직 영업중이긴 하나 지금은 창업주 일족과는 전혀 무관계한 상태다.[54] 한국 최초로 종업원 지주제를 시행하고 가족 경영 대신 전문경영인 제도를 선택했으며 전 재산 사회 환원을 실천한 기업인이다. 기술자를 양성하기 위해 학교를 세우는 등 교육사업에도 힘썼다.[55]
또, 동화약품을 창업하고 소화제 활명수를 만든 민강 선생도 거론될 만하며, 문학인으로는 윤동주, 한용운, 김소월 시인, 김유정, 염상섭, 현진건 소설가도 거론될 만하다.
대중적으로 지폐 도안에 들어가면 좋겠다고 여겨지는 독립운동가들의 경우 학계의 입장과 좌우의 정치색에 따라 입장이 갈려 양분되기 때문에 논란이 많아진다. 논란이든 뭐든 국민투표로 정하면 학계나 정치계의 논란을 잠재우긴 하겠지만. 이미지 중복이라는 명분을 가지게 할만한 이황이나 이이가 빠지고 다른 이미지의 인물을 넣을만도 하겠지만, '''문제는 비용이다.''' 우선 화폐 제조에 필요한 도안을 새로 만드는 것부터가 일인데다가 화폐를 회수하고 새로운 화폐에 대한 지침 및 홍보에 관한 돈도 많이 들어간다. 그러니 굳이 그렇게 돈을 들이면서까지 정부가 인물을 바꿀 가능성은 디노미네이션을 해서 처음부터 갈아엎어야 하는 상황이 벌어지지 않는 이상 거의 없다.
독립운동가들이 들어갈 경우 일본과의 문제가 생길 수 있지만 사실 김구가 10만원권 도안에 들어갈뻔했던것을 생각하면 어른의 사정이 개입되어서가 큰듯하다. 사실 다른 국가의 화폐도안 인물을 봐도 독립운동가가 들어가는 사례가 한둘이 아니기도 하다. 과학자들도, 장영실은 표준 영정이 없고, 우장춘은 반은 일본인인데다 아버지가 을미사변과 관련이 있으며, 석주명도 서울 수복 직후 경찰에게 살해된 정황이 명확하지 않아 우익들의 반발을 살 수 있다. 혹시 노벨상을 받는 과학자가 나온다면 그때는 이견이 없겠지만 이도 해당 인물이 사망한 후에나 논할 수 있을 문제이다.
아직 발행되지는 않았지만 이미 2007년에 5만원권의 신사임당과 함께 차기 나올 10만원권은 각종 여론조사에서의 압도적인 지지로 백범 김구로 도안이 확정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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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액권 예상 도안 출처
여담이지만 세종대왕급 구축함 3척에 위의 인물이거나 관련된 이의 이름이 들어간다. 만원의 세종대왕 본인은 더 말할 것도 없고, 5천원의 율곡 이이, 서애 류성룡인데 잘 알려져있다시피 류성룡은 100원 이순신의 절친이자 이순신을 전라좌수사로 만든 일등공신이다. 이이는 심지어 이순신의 먼 친척이며 세종대왕을 제외하면 이순신과 류성룡과 이이 3명이 같은 시기를 산 셈이고 나란히 후손들의 화폐와 해군 군함에 이름이 올라간 것.
1960년대 100환 지폐에는 조폐공사 여직원과 그 아들을 모델로 썼다. 대한민국 환 문서 참조.
평창 동계 올림픽 기념 2,000원권 지폐는 1948년도 올림픽의 한국 스피드 스케이팅 선수들이다.
평창 동계 올림픽 기념 주화(동전) 중 하나가 미국의 피겨 스케이팅 선수 그레이시 골드의 2014년 소치 동계 올림픽 경기 장면으로 만든 것이라는 논란이 일고있다.[56] 네티즌들의 의견은 사진을 직접 갖다 쓰지 않았을 뿐 트레이싱으로 보인다는 의견이 대다수다.
6.2. 특별인출권 편입 가능성?
2015년 12월 1일 블룸버그 통신에 따르면 '자유롭게 사용가능'이라는 조건을 충족하는 통화들이 SDR 통화바스켓에 포함될 수 있다고 밝혔다.
이날 공개된 지난달 11월 13일 국제통화기금 자체 보고서에 따르면 중국 위안 외에도 IMF 기준을 충족하는 통화들이 있다. 보고서는 "자유롭게 사용가능한 통화로 결론 내릴 수 있는 잠재력을 갖춘 통화들이 더 있다"고 밝혔는데 블룸버그에서는 한국 원화가 편입 후보 1순위, 그 다음으로는 싱가포르 달러, 캐나다 달러이라고 한다.[57]
국내 인터넷에 떠도는 이야기이나 미국 월가에서는 블룸버그가 말한 통화에 추가 후보로 스위스 프랑, 호주 달러가 있다고 한다.
하지만 생각지 못한 통화[58] 가 편입될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긴장끈을 늦춰서는 안된다.
[1] 링크된 글 내용 중 오류들(예를들면 목포까지 갔다가 대전으로 돌아갔다든가)이 있고 기고자 개인의 주관도 섞여 있음을 주의.[2] 구형이라도 환전이 불가능한 시리즈가 있다.[3] 조선 엔은 圓이라는 한자 표기가 있었으나 1962년의 원화부터 폐지했다. 그래서 일본에서 남한의 원화 단위를 표기할 때는 그냥 'ウォン'이라고 쓴다. 한자로 쓰면 '円'이 돼서 엔화와 혼동된다는 이유도 있고. 다만, 한자를 쓸 수밖에 없는 중국어권에선 '韓圓(韩圆)'이라고 쓴다. 홍콩에서는 대한제국 원, 대한민국 환 시절에 쓰던 圜이라는 한자를 살려 쓰고 있다.[4] 주화의 통용에 관한 임시조치법[5] 50환=5원, 10환=1원[6] 한국은행권 유일하게 실물이 북한에 있는 도안이다.[7] 잔존수량이 많아 지금도 구매하기는 어렵지 않다. 무려 관봉단위로도 팔고 두 장 세트로 비싸야 2천원이면 가능하다. 웬만하면 1000원이면 팔고 있다. 회현지하상가 기준으로.[8] 미사용 기준 60~100만원대. 사용제라도 어지간한 걸레가 아닌 이상 10만원 넘게는 쳐준다.[9] 이 때 인스턴트 라면이 처음 나왔다.[10] 뒷면 하단 오른쪽에 발행 년도가 적혀있으면 수집가들 사이에서 고가로 거래된다.[11] 공식적으론 "파고다공원"이나, 흔히 팔각정으로 더 알려져 있다.[12] 반은 농담이지만, 자존심이 어느정도 작용한 것은 사실이다. 유출되는 외화도 절약할 겸.[13] 정식 용어로는 시쇄(試刷)권이라고 한다.[14] 이 실물은 한국은행 본관 옆 화폐금융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다.[15] 500원 주화가 비교적 뒤늦은 1982년에 등장한 탓에 지폐와의 공존기간이 있었다.[16] 다만 초창기에는 지폐재질과 잉크의 화학적 상성이 워낙 옳지 못해서... X냄새가 코를 찌를 정도로 진동하는 바람에 "X돈"이라는 오명이 붙었다. 하지만 금방 문제를 인지하고 교체해 단순한 해프닝 수준으로 마무리되었다. 그래서 문제의 해당 지폐들은 희소성으로 인해 고가에 거래된다고 한다.[17] 그냥 판대기처럼 보이지만, 서예할 때 쓰는 그 벼루다. 도안의 실물은 바로 오죽헌에 전시되어 있는 율곡 선생이 쓰시던 벼루.[18] 2002년 개정판[19] 다 오천원은 "가가 0000000 가" 순이나 라 오천원은 "0000000 가가가" 순이다.[20] 1994년 개정판부터는 이 물시계 밑바닥에 "한국은행"이라 깨알같이 쓰여 있다. 이를 미세문자라고 한다.[21] 1994년 개정판[22] 2000년 개정판[23] 사실 시기적으로 봤을 때 대한민국 현행권과 비슷한 스타일의 스위스 프랑이나 독일 마르크화는 10년 이상 빠르게 나온 디자인이었고 특히 한국 화폐가 바뀔 당시의 스위스 현행권은 그보다 한층 더 파격적인 스타일이었다. 다만 이건 스위스나 네덜란드 같은 나라가 빠르게 변하는 것이었고 당시 유로 및 비슷한 디자인의 영국 파운드 등의 변화 시기를 생각하면 한국도 적당한 시기에 늦지 않게 변화했다고 할 수 있다.[24] 이걸로 화폐 인물군이 조선시대를 벗어나지 못함(1백-충무공이순신, 1천-퇴계이황, 5천-율곡이이, 1만-세종대왕)은 물론, 유명인 모자가 나란히 지폐에 들어가게 되었다. 신사임당은 왕도 제치고 최고액 화폐에 등장하였다.[25] 5천원권은 원형, 1만원권은 정사각형, 5만원권은 띠형[26] 별정우체국, 군사우체국 포함.[27] 단, 우편환 만큼은 수표와는 달리 반드시 우체국 금융창구를 방문해야 현금으로 교환받을수가 있으니 유의할 것.[28] 더군다나 전유럽 공식 화폐인지라 유럽이 모두 망해야만 화폐 가치가 사라지는데 독일, 프랑스, 스웨덴, 네덜란드 등 경제가 엄청 탄탄한 나라들이 꽤 포진해있기 때문에 되려 미국 달러 이상이라는 평가도 있다.[29] 일각에서 일본이나 이스라엘 등을 거론하는데 미국에게 있어서 반드시 지켜야 하는 핵심동맹국은 영국, 캐나다, 호주, 뉴질랜드 4개국 뿐이다(5개의 눈). 나머지는 필요하면 언제든 버릴 수 있으며 실제로 미국은 지정학적인 상황에 따라 이스라엘조차 외면한 적, 아니 이스라엘을 완전히 갈아버리려고 한 적도 있다.[30] 선제타격이 성공할 경우 한국 측 민간인 피해가 거의 없을 것이라는 계산도 나오고 있다.[31] 평양에선 외화로 돈을 받는 가게들이나 식당들이 꽤 있다고 한다.[32] 다만 동남아 국가의 '''일부''' 사설환전소에서는 원화 수수료를 낮게 매겨서, 그런 환전소의 존재를 아는 한국 여행자들은 원화를 가져가서 환전하기도 한다.[33] 이란 리알, 베트남 동, 인도네시아 루피아, 기니 프랑, 라오스 킵, 북한 원, 우즈베키스탄 숨, 시에라리온 레온, 파라과이 과라니, 캄보디아 리엘, 베네수엘라 볼리바르, 콜롬비아 페소, 몽골 투그릭, 탄자니아 실링, 레바논 파운드, 콩고민주공화국 프랑, 미얀마 짯, 이라크 디나르 등이다.[34] 다만 시외버스 예매만큼은 해외발행 비자, 마스터카드로 결제를 할 수 없다.[35] 다만 한국에서는 전통적으로 네 자리마다 끊기 때문에 문맥에 따라 3.0이 3만 원을 의미할 수도 있다. 뒤에 언급한 줄임법과도 관련이 있다. 간혹 3,0처럼 콤마로 표시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 경우는 대부분 천 단위라고 보면 된다.[36] 하지만 메뉴판에 이런 식으로 표기하기 시작하자 잘 모르는 단기 관광 외국인들은 메뉴판을 보고 미국 달러로 오해하기도 한다. 예전에는 노인들도 이러한 표기를 보고 미국 달러로 오해하기도 하였으나 최근에는 단기 관광 외국인이 아니면 오해할 일이 거의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37] 20달러 동전과 200, 2000달러 지폐를 도입하였다.[38] 흔히 알고있는 기념 화폐와는 달리 시중에서 널리 쓰일 목적으로 만드는 이벤트성 화폐이다. 예를 들어 2018년에 백원 주화와 동일한 재질과 크기의 소전에 세종대왕을 새겨 즉위 600주년 백원짜리 기념주화를 만드는 것이다. 일반 백원 주화와 디자인 빼고 동일한 스펙이라 시중에서 사용해도 상관없다. 기계에 투입해도 똑같이 백원으로 인식할 것이다. 외국에서는 유럽 연합의 2유로나 미국의 25센트(쿼터) 주화로 만든 통용 기념 화폐가 유명하다.[39] Hanguk eunhaeng이 아니다. ‘한국은행’은 『표준 국어 대사전』에 한 단어로 등재되어 있기 때문. 물론 한국은행이 Hanguk Eunhaeng으로 정해버릴 수도 있지만 이렇게 된다면 ‘국어의 로마자 표기법’에 따른 표기에선 빗나가게 된다. 또한 일반적으로 이런 사항은 국립국어원에 자문을 한다.[40] 소수의 의견이긴 하지만 이 경우도 전근대 이전의 위인들이고 현대 대한민국을 상징한다고 보기에는 힘들다는 의견도 존재한다. 하지만 광화문대로에 나란히 두 사람이 위치해 있는 것에서 알 수 있듯이 둘은 한민족을 대표하는 위인이라고 볼 수 있는데, 세계적으로 지폐에 등재되는 인물은 이러한 민족적 대표성을 띠는 인물들도 다수 등재되는 편이다.[41] 근현대사에 대해서 한국종교문화연구소의 연구를 바탕으로 했기에 종교학적이라고 언급했다.[42] 대한민국 원에 있는 인물들 5명 중 가장 먼저 태어난 인물은 1397년에 태어난 세종대왕이고 마지막에 사망한 인물은 이순신 장군으로 1598년에 전사했다. 심지어 세종대왕을 제외하면 전부 16세기 인물들이다. 편중이 심해도 지나치게 심한 셈.[43] 단군신화에 따르면 4000년이 넘지만 당연히 시기적으로 불명확하다. 물론 위만조선이 있기에 아무리 적어도 기원전 3세기부터는 역사시대라 할 수 있지만.[44] 대표적 위인으로는 단군, 광개토대왕 등.[45] 대표적 위인으로는 장보고, 왕건 등.[46] 대표적 위인으로는 정약용 등.[47] 일본의 경우 고대사 인물인 쇼토쿠 태자를 화폐 도안으로 오랫동안 사용했다.[48] 일단 대표적 위인들만 나열해도, 김구, 안중근부터, 윤봉길, 안창호, 여운형, 김홍일, 유일한 등 최소 5명 넘게 튀어나온다.[49] 미국 달러는 설령 인물들이 편중되어 있어도 한국보다는 문제가 덜한 게 미국의 역사는 근대 이후부터라서 짧기 때문이다.[50] 산업화와 자수성가의 상징 정주영, 반도체 산업의 선각자로 거론되는 이병철, 평생 국가와 사회에 대한 헌신에 힘쓴 유일한 등. 단 앞의 두 명은 비판도 많다.[51] 다만 반론도 존재하는데, 위인이나 존경할 만한 사람에 대한 평가는 그 당대에는 내리기 힘든 감이 있고, 정부 수립 이후 아직 한 세기도 지나지 않았으니 지폐에 올라갈 정도의 상징성 깊은 인물을 현대인물로 선정하기엔 어려움이 있다. 인물에 대한 역사적 평가는 시대에 따라 크게 차이가 나기 마련이다. 현재 존경을 받는 이가 미래에 부정적인 평가를 받을 수도 있고 반대로 현재 부정적인 평가를 받는 이가 시간이 지나며 재평가되어 위인으로 추대되는 것도 가능하다. 건국 이래 역사가 짧은 한국으로써는 수십년의 시간이 더 지나야만 비로소 근현대 인물의 화폐모델 선정에 대해 이견이 없어질 것이다.[52] 실제로 일본에서는 이토 히로부미가 화폐에 올라온 적도 있었다. 우리가 잘 아는 그 이토 히로부미. 즉, 근현대의 인물로 채택한다면 이런 시비에 휘말릴 가능성이 높아진다.[53] 다만 이때는 민간단체였다.[54] 지금의 유한양행에 유일한 박사의 일가가 입사지원서를 내면 서류전형조차도 통과하지 못하고 광탈이며, 역대 대표이사들은 평사원으로 입사해서 30년 넘는 세월동안 수많은 경쟁을 뚫고 올라간 사람들이다.[55] 디시위키에서도 지금의 한국은 유교가 아니라 자본주의가 주인 사회니까 이런 인물이야말로 지폐에 어울린다고 피력했다. 이 밖에 디시위키에서 지폐의 인물로 지명한 사례로는 안창호가 있다.[56] 한국은행 “평창 기념주화, 특정 선수 표현한 것 아냐” 2017-03-14[57] 관련기사: https://www.fnnews.com/news/201512021737533074[58] 예: 뉴질랜드 달러, 러시아 루블, 브라질 헤알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