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토 슈트라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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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7~1974
1. 개요
2. 생애
3. 같이보기


1. 개요


독일의 정치인. 나치당원으로, 그레고어 슈트라서의 동생이다.

2. 생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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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생 오토는 형 그레고어 슈트라서와 함께 나치당 내 좌파를 대표하는 인물이었다. 그러나 1928년 형과 상의 없이 당내에서 사회주의를 규합하여 히틀러에게 공개적으로 우편향된 당내 질서 개편을 요구했고, 히틀러가 비밀리에 만나 갈등을 봉합하려 언론특보직을 제의하나, 히틀러와의 비밀대화를 공개하여 히틀러에게 바가지로 욕을 퍼먹었고 당내 배신자로 찍혔다. 결국 유대인식 사고방식에 물든 지식인 판정을 받았고 중앙당에서 축출되기 전 탈당한다.
그는 탈당할 때 나치당내 사회주의 세력이 자신에게 합류하리라고 장담했다. 그러나 겨우 20명밖에 합류하지 않았고, 친형읜 그레고어 슈트라서도 히틀러 지지를 공개 천명하자 오토 슈트라서의 사건은 찻잔 속의 태풍으로 끝난다.
일부 매체에서 그레고어 슈트라서를 개념인 취급하는 내용은 사실 그레고어 슈트라서가 아니라 오토 슈트라서가 일으킨 당내 반란내용을 잘못 알았거나 왜곡해서 전달한 것으로 그레고어 슈트라서는 오토의 돌발 행동에 매우 화를 냈고 히틀러에게 변함없는 충성을 맹세했다. 오토는 형을 포함한 타 나치당원들과는 다르게 인종주의적 성향은 상대적으로 약했었고 반동세력 융커자본가들을 엿먹이기 위해서는 유대인(!)들과 손을 잡는것도 괜찮다고 생각했다.#1 또한 그는 하켄크로이츠가 아닌 검과 망치를 심볼로 애용했으며 경례구호도 하일 히틀러가 아닌 하일 도이칠란트를 사용했다.#2[1]
오토는 히틀러가 집권한 후 오스트리아체코슬로바키아로 도피하여 장검의 밤 때 살아남았고, 이후 외국을 떠돌아 다니다가 2차대전 중에는 캐나다에 머물렀가. 전후 1955년에 귀국이 허용되어 독일에서 독일사회연합이라는 정당을 창당했지만 별다른 주목을 받지 못하는 군소정당에 그친지라 정치인으로써 성공하지 못했다. (1974년 사망) 자신이 나치 주류세력에게 밉보였던 경험을 담은 《히틀러와 나(Hitler und Ich)》라는 책을 쓰기도 했다.
네오 나치들 사이에서는 슈트라서주의가 아직 남아있다고 한다. 네오슈트라서리즘은 자주관리 민족주의(Autonome Nationalismus)나 민족 볼셰비즘(...)으로도 불리는데 기존의 네오나치즘과 비교했을 때 반자본주의 성향을 강조하는 것이 특징이며 하켄크로이츠나 켈트 십자가보다는 검과 망치를 상징으로 자주 쓴다.

3. 같이보기



[1] 초기 좌파성향을 드러냈던 괴벨스도 베를린 관구장 시절 '''빌어처먹게 고귀하신 귀족 나으리, 비곗덩어리 자유주의자, 증권시장 하이에나, 돈 자루 독재 금권정치인'''들은 나치가 정권을 잡으면 유대인들과 같이''''머리통이 모래 위를 구르게 될 것''' 이라고 선동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