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선

 

1. 후한 말의 인물
1.1. 창작물에서
2. 고려의 인물
2.1. 창작물에서
3. 서진의 인물


1. 후한 말의 인물


王選
생몰년도 미상
215년에 조조를 위왕에 오르길 권한 신하 중 한 명으로 좨주를 지내고 있었다.

1.1. 창작물에서


소설 삼국지 조조전에서는 원상과의 전투 때 장수 휘하의 감군으로 종군했으며, 업성을 공격하는 와중에 왕선은 원상의 군대가 남쪽에서 공격해오고 있다는 것을 보고한다. 조조가 그냥 두라면서 장수가 버티고 있는 한 괜히 힘만 빼는 꼴이 될 것이라 하자 왕선은 지원군을 보내 막지 않을 것이냐고 물어보는데, 조조는 원상의 군대가 이미 군심이 흩어져 전투력이 약해진 상태라 공격해도 성공할 수 없다고 했다.
그러면서 조조가 가장 외각에 위치한 영채를 제외하고 나머지 병사들을 자신이 있는 곳으로 와 방어진을 치라고 하면서 밤에 심배를 치겠다고 하자 왕선은 너무 위험한 것 아니냐고 묻는데, 곽가가 주공이 시키면 시키는 대로 할 것이지 무슨 일이 많냐고 하자 물러난다.

2. 고려의 인물


王詵
생몰년도 미상
집정으로, 975년에 경종이 즉위하자 광종 때 참소를 당해 화를 입었던 사람의 자손들에게 복수하는 것을 건의해 복수법이 시행되었으며, 이로 인해 함부로 살육을 저지르는 바람에 다시 억울하다고 호소하는 사람이 생겨났다.
왕선은 복수한다는 핑계로 왕명을 빙자해 왕족인 천안부원낭군[1]과 진주낭군[2]을 살해하는 짓을 저질렀고, 이로 인해 놀란 경종에 의해 976년 11월에 지방으로 쫓겨나면서 결국 복수법은 폐지 수순을 밟는다. 유배 이후의 행적은 불명.
왕선이 권좌에서 쫓겨난 이후에는 본래 한 사람만 담당하던 집정이 좌집정, 우집정으로 나뉘어 집정들끼리 서로 견제하도록 조치했다.

2.1. 창작물에서


만화 맹꽁이 서당 고려편에서 복수법을 건의해서 시행하고 이로 인해 왕족까지는 죽는 일이 일어나 귀양가면서도 화내면서 후회없다고 말하는 것으로 나온다.

3. 서진의 인물


王宣
(? ~ 267년 이후)
조위서진의 여성. 사마소의 첩.
사마소와의 사이에서 낳은 자식은 불명이다. 사마소의 정실 왕원희가 겸허하게 아랫사람을 대하니 왕선 등 사마소의 비빈들이 질서가 있었다.
265년, 남편 사마소가 죽어 사마염이 계승했고, 267년, 사마소의 첩 이염#s-2, 왕선, 서염, 오숙, 조정 5명이 서진의 후궁 작호를 받았는데, 왕선이 받은 작호는 수용(修容)이었다.
진서에서는 기록이 없고 진기거주(晉起居注)에 기록이 있다.

태시 3년(267년), 사지절로 하여금 오관중랑장을 겸하게 하고, 종정승 사마회가 숭양원(사마소)의 첩을 배하여 이염을 수화로 삼고, 왕선을 수용으로 삼고, 서염을 수의로 삼고, 오숙을 첩여로 삼고, 조정을 충화로 삼았다.

泰始三年,使使持節兼五官中郎將宗正丞司馬恢拜崇陽園妾李琰為修華,王宣為修容,徐琰為修儀,吳淑為婕妤,趙延為充華。

태평어람 145권 인용 진기거주


[1] 사후에 효성태자로 추존됨.[2] 사후에 원녕태자로 추존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