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동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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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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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의 前 축구선수. K리그 통산 득점 1위, 통산 도움 2위, 아시아 챔피언스리그 통산 득점 1위에 빛나는 명실상부 한국축구 레전드이다. 전북 현대 모터스에서 맹활약했던 그의 등번호 20번은 전북의 영구결번이다. 또한 일명 '대박이 아빠'로도 잘 알려져 있다.
비운의 축구선수로 항상 뽑히기도 했고 한국 축구팬들에게 가장 애증이 많은 선수 중 하나였다.[2]
1.1. 상세
K리그에서 MVP, 신인왕, 득점왕, 도움왕을 모두 석권하고 K리그 통산 최다 득점[3] 및 ACL 통산 최다 득점 기록을 보유한 레전드. 또한 대한민국 축구선수로는 유일하게 90년대, 00년대, 10년대, 20년대에 모두 리그에서 득점을 올린 기록도 가지고 있다.[4][5]
하지만 월드컵 본선에서는 안습한 행보를 보이며 월드컵과 인연이 없는 선수로 더 유명한데, 자국에서 열린 2002 한일월드컵에서 낙마, 절치부심 후 좋은 컨디션을 보였던 2006 독일 월드컵에서는 십자인대 부상으로 경기에 참여조차 못했고, 2010 남아공 월드컵에서는 23명 최종엔트리에 발탁되었지만, 우루과이와의 16강전에서 박지성이 찔러준 택배기사급 킬패스를 일명 '물회오리슛'으로 마무리 함으로서 우루과이에게 패하는 빌미를 제공했다. 이동국 본인은 '내가 그 때 자신있게 때렸어야 했는데...'라며 항상 아쉬워했다.
2남 1녀 중 막내. 과거에는 이승엽과 같은 라이온 킹이 별명이었으나, 미들즈브러에서 크게 삽을 푼 다음부터는 영국에서 품바라는 굴욕적인 별명을 지어주었다. 요새 국내에서는 품바라고는 하지 않지만 라이온 킹도 잘 쓰지 않는 편이다. 리동궈라고 부르는 사람은 간간이 있다.[6]
이동국 논쟁은 박주영, 정성룡의 국대 합류 건과 더불어 한국축구의 가장 큰 떡밥거리로 동빠와 동까가 만날 때마다 대규모의 키워가 벌어지며, 국가대표 발탁 그 자체도 찬반 여론이 들끓는 부분이다. 이 논쟁은 단순히 극단적인 반응을 보이는 커뮤니티 뿐만이 아니라 비교적 온순한 아이러브사커 경우에도 마찬가지로 계속 유지되고 있다. 국대 발탁 찬성론자의 경우에는 그만한 골 결정력을 가진 공격수가 아직도 나오지 않았고 클럽에서의 활약도 상당히 준수하기 때문에 뽑아야 하는 입장이고, 반대론자의 경우에는 뽑기에는 그의 나이가 너무 많다는 것이 문제라는 입장. 다만 반대론자의 경우 단순히 이동국의 안티만이 아니라 전북의 팬들도 어느 정도는 그의 차출을 반대하는 경우도 있는데, 최강희 감독처럼 국대에서 욕 먹고 오느니, 그냥 클럽에 집중하자는 의견이나 나이가 많으니 몸을 생각해 클럽에 집중하자는 의견을 내세워 국대 차출을 반대하기도 한다.
2. 클럽 경력
3. 국가대표 경력
4. 기록
4.1. 통산 기록
4.1.1. 클럽
4.1.2. 국가대표
2017년 9월 5일 기준이다.
4.2. 대회 기록
- 포항 스틸러스 (1998~2007)
- 아시안 클럽 챔피언십[8] : 1998
- 전북 현대 모터스 (2009~2020)
- K리그1: 2009, 2011, 2014, 2015, 2017, 2018, 2019, 2020[9]
- FA컵: 2020
- AFC 챔피언스 리그: 2016
-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
- AFC 아시안컵 3위: 2000, 2007
- 동아시아 축구 선수권 대회 준우승: 2010
- 대한민국 U-23 축구 국가대표팀
- 아시안 게임 동메달: 2002
4.3. 개인 수상
- AFC 아시안컵 득점왕: 2000
- AFC 아시안컵 역대 베스트 XI: 2019
- AFC 아시안 올스타: 2000
- AFC U-19 챔피언십 MVP: 1998
- AFC U-19 챔피언십 득점왕: 1998
- 동아시아 축구 선수권 대회 득점왕: 2010
- AFC 챔피언스 리그 MVP: 2011
- AFC 챔피언스 리그 득점왕: 2011
- K리그1 MVP: 2009, 2011, 2014, 2015
- K리그1 신인상: 1998
- K리그1 득점왕: 2009
- K리그1 도움왕: 2011
- K리그1 팬타스틱 플레이어: 2009, 2011, 2012, 2014, 2015
- K리그1 베스트 XI: 2009, 2011, 2012, 2014, 2015
- K리그1 올스타전 MVP: 1998, 2001, 2003, 2012
- K리그 공로상: 2020
- K리그 베스트 포토상: 2020
- KFA 올해의 골: 2004 (독일 전)
4.4. 개인 기록
4.4.1. 클럽
2020년 현재
- 228골, K리그 통산 득점 1위
- 77도움, K리그 통산 도움 2위
- 305포인트, K리그 통산 공격포인트 1위.
- 37골, ACL 통산 득점 1위
- 13골, FA컵 통산 득점 2위
4.4.2. 국가대표
2017년 7월 23일 현재
- 10골, 아시안컵 통산 득점 2위, 한국 선수로는 1위
- 33골, 대한민국 A매치 통산 득점 4위
- 105경기, 대한민국에서 13번째로 센추리 클럽 가입
- 전대륙 상대 A매치 득점자[10][11]
5. 플레이 스타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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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항 시절과 외국 진출 시절에 잠깐 투톱으로 뛰긴했지만, 거의 대부분의 커리어를 원톱으로 뛰었다.
가장 특징적으로 '''발리 깎던 노인'''이라는 별명에 맞게 발리슛으로 대표되는 뛰어난 슈팅 능력[12] 과 타고난 동물적 감각을 가지고 있다. 선수치고는 노장이 된 시점에서도 발목 힘과 슈팅력은 다른 어린 선수 이상의 것을 보여준 바 있다. 사실 발리슛이란 게 그저 떠있는 공을 갖다 맞추기만 하면 되는 것이 아니라 한 발로 중심을 잃지 않고 자세를 잡은 상태에서 다른 한 발만으로 정확한 임팩트를 가져가야 하기 때문에 상당한 하체 피지컬이 요구되는데, 젊었을 때부터 허벅지 하나가 웬만한 여자 허리 둘레 급이었던 이동국이기에 가능한 부분이기도 하다. 발리슛은 슛 중에서도 그 난이도가 매우 높아서 유럽 상위 리그 선수들도 경기중 발리 슛 찬스에서 헛발질을 하거나 제대로 임팩트하지 못해서 공이 민망하게 빗나가는 경우를 굉장히 많이 볼 수 있다. 특유의 슈팅 감각은 왼발, 오른발, 헤더 가리지 않으며 거기다 본인이 어떤 자세에 있고 어떤 공이 오더라도 원투 터치 이내에 위협적인 슛으로 연결할 수 있는 능력은 독보적인데 오프사이드를 뚫는 능력이나 등지고 있는 수비가 눈치채지 못한 사이에 쇄도하는 능력도 국내 선수로는 최상급이다. 젊은 시절에는 묻지마 강슈터의 기질이 간혹 보였으나, 나이를 먹으면서 개선되어 중거리 슛 등의 정확도도 상당히 높다. 이동국 하면 발리만 생각하는 사람이 많으나 중거리의 정확도와 슈팅센스는 정말 뛰어나다.
패싱력도 있는 편이여서 2011년에는 K리그 도움왕도 차지 했었다. 시야가 넓어 경기중 미드필더 존으로 내려와 공간을 찾아들어가는 동료에게 좋은 공을 연결하기도 하며, 짬이 안 되던 2002년 이전에는 그의 패싱 능력을 눈여겨 본 국내지도자들이 중앙 공격형 미드필더까지 내려서 사용하곤 하였다. 포항 스틸러스에 파리아스 감독이 있던 시절에도 종종 투톱 밑의 공격형 미드필더로 활용하곤 했었고 그 역할을 잘 수행해 냈었다.
드리블 센스는 빈말로도 그렇게 좋은 편은 아니다. 나이가 들고 경험과 노련함이 더해지면서 좋아지기는 했으나, 이번엔 신체능력이 전반적으로 떨어지면서 결과적으로 플러스 마이너스 제로가 된 것. 젊은 나이일 때엔 우당탕탕 식의 치고 달리기도 종종 보여줬었으나, 나이가 들고 나서는 노련미를 활용해서 간단한 바디페인트로 슈팅각을 열거나 동료에게 연결하는 식의 플레이를 선호하였다. 활동력의 부족 역시 지적받는데, 이 자료를 보면 활동량이 적다고는 할 수 없다. 최근 국가대표 경기나 리그에서의 모습을 보면 활동량 부족에 대한 지적은 이미 지나간 얘기라 할 수 있다.[13]
'''또한 심리적 압박에는 결코 강한 편이 아니다.''' 심리적 압박에 강하다는 것도 축구선수의 엄연한 실력[14] 중 하나임을 감안[15] 하면 가장 중요한 대회에서 결정적인 찬스를 놓친 것은 완벽한 국가대표 칭호를 듣지 못하는 중요한 이유일 수 있다. 움직임 자체는 그래도 비교적 멀쩡하게 가져가는 편인데, 슈팅이나 패스의 정확도 같은 부분에서 문제가 있다. 그것도 유명한 우루과이전 카페베네 슛처럼 판단 자체는 괜찮았고 차기도 적당히 찼는데 들어가기에는 아주 조금 모자란 그런 슛이 나오고는 한다. K리그 챔피언 결정전 때도 신나게 골대를 맞추다가 리드를 잡으니 그제야 득점을 터트린다던가 하는 등... 어렸을 때는 오히려 국대 해결사였는데 비난을 이길 정도까진 아니었던 듯하다. 이런 면은 클럽에서도 어느 정도 적용이 돼서 유망주 시절 갔다 온 브레멘은 그렇다 쳐도 미들즈브러에서 실패한 원인 중 하나가 계속 실수가 나오면서 자신감이 더 떨어지고, 그러다 보니 비판을 받고 동료들에게 신뢰를 받지 못해 더 자신감이 떨어지는 악순환이 크게 작용했고, 성남에서도 이동국의 영입을 탐탁치 않게 여겼던 김학범 감독 밑에서 영 좋지 못한 모습을 보여주었다. 어쩌면 중동이나 중국 등 아시아의 큰손들의 영입 제한을 뿌리친 것도 스스로 이런 면을 깨달아서 그런 걸 수도 있다.
젊었을 때는 피지컬을 활용하며 우당탕탕 부딪히는 플레이를 했지만 선수 말년 기준으로서는 스피드나 템포를 상당히 늦추는 스타일로 변화했다. 셰도우 스트라이커 비슷하게 변한 본인의 기질과 더불어 나이와 부상 탓이 크다.
비단 세계 무대에서의 얘기뿐만이 아니라, 이동국은 어린 시절부터 몸을 쓰면서 상대와 부딪히고 아군에게 공간을 가져다주는 플레이를 하기보다는 오히려 조금 내려간 자리에서 공간을 보거나 패스를 넣어주는 플레이를 더 좋아했다. 어린 시절에는 한국에서도 몸으로 부딪히고 열어주는 플레이는 별로 시도하지 않았다.[16] 박주영과 비교할 때 이런 점이 가장 큰 약점이라고 할 수 있다.
또한 이동국에 대한 저평가에는 톱 외에는 거의 쓰기가 힘들다는 좁은 활용폭도 있다. 몸빵은 좋지만 스피드가 많이 떨어지고[17] , 전북 시절엔 간혹 세컨톱으로 뛰기도 했지만 말 그대로 잠깐 임시변통으로 뛰는 정도였다. 톱으로 뛴다면 원톱, 투톱을 가리지 않고 뛰어난 활약을 보이지만 원톱에서는 양 측면에 크랙형 선수가 있어야 장점이 극대화되는 타입이기도 하다. 전북이 대대로 양 날개 쪽에 최고급 외국인을 데려와 놓는 것은 이동국 혹은 김신욱을 살리기 위한 전술이기도 하다.
5.1. 대표팀 공격수들과의 호흡
이동국이 한참 대표팀 붙박이이던 초창기 시절 대세는 투톱이었고 이동국도 소속팀에서나 국대에서나 주로 투톱으로 뛰었으며 이후 원톱으로 더 긴 세월을 뛰었다.
전술한 바와 같이 이동국의 플레이 특성상 적성 포지션은 '''처진 공격수'''지만 국제 대회에 데려갈만한 공격수 가운데 몸빵이 되고 짬이 쌓인 지금은 사실 원톱 전문이고 투톱도 가능함으로 보는 게 맞을 것이다.
황선홍 은퇴 이후 대표팀의 스트라이커를 꼽아보자면 제일 먼저 안정환이 있다.[18] 이 시기는 코엘류와 본프레레 등으로 대표되는 한국 축구의 혼란기였다. 또한 안정환 역시 최전방 바로 밑에 위치시켜야 진가가 나오는 공격수이다 보니 계속 동선이 겹처서 안정환-이동국 투톱은 본프레레 시절 잠깐 시험해보고 금방 폐기해버렸다. 사실 이 때는 대표팀 상황 자체가 공격수에게 잘 보급해주지 못하는 개판이라서... [19]
연령별 대표팀에서 많이 뛰었는데 서로가 몸싸움이 되며 센스도 좋았기에 서로를 잘 이용하였고, 이 투톱의 활약덕에 대한민국은 1998년 AFC U-19 축구 선수권 대회에서 우승한다. 다만 이 때를 제외하면 공식적인 경기에서 서로 투톱을 서본 적이 거의 없기에 진정한 꿈의 투톱이다. 현재도 김은중과는 매우 친한 사이로 지내고 있으며 이마발이란 1979년생/1998년 청소년 대표 모임에선 이 둘이 항상 투톱을 본다.
박주영이 어린 시절에는 몇 경기 같이 뛰지 않았지만, 그럭저럭 맞는 듯했다. 당시 박주영은 몸빵이 전혀 되지 않는 전형적인 날카로운 움직임을 장기로 삼는 처진 공격수였고, 전방에서 몸빵으로 비벼줄 수 있는 이동국과 적당히 잘 맞았다. 최강희호에서는 박주영과 이동국 투톱이 줄곧 선보이고 있으나, 역시나 효과는 전무하다. 유럽진출 이후 박주영의 스타일이 확연히 달라져서 쉐도우 스트라이커로 뛰기도 애매해졌다. 거꾸로 이동국이 사이드로 빠지며 주변 선수와의 연계를 중시하는 선수로 바뀌어 이동국이 오히려 쉐도우 스트라이커에 적합해졌다.[20] 이렇게 애매해진 상황 때문에 둘이 같이 경기를 뛸 때마다 한쪽이 침묵하거나 동반으로 침묵하는 모습만 보이고 있다. 특히 2013년 2월 6일 벌어진 크로아티아와 평가전에서는 그간 나쁜 여론을 인식한듯 지나치게 상대를 배려하는 플레이로 일관하며 각자 장점마저 내다버린 최악의 결과를 빚었다. 박주영은 지나치게 아래로 처져서 플레이를 하면서 공격에 가담할 기회 자체가 대폭 줄어버렸고, 이동국은 2선 공격수에게 패스 하느라 바빠 변변한 슛도 못날렸다(...). 이날 경기가 끝난 뒤 최강희 감독도 두명을 조합하는 것에 대해 실패했다고 인정했으며 박주영-이동국 투톱은 국대에서 더 이상 시도되지 않았다.
다소 아쉬운 모습을 보여주었다. 이동국의 오프사이드 라인 깨기, 패스 배급은 이근호의 활동량과 승부욕, 저돌적 돌파를 살리기에 부족한 점이 있었으며, 이근호도 울산에서 김신욱과 콤비를 맞출 때 보다 활동 반경이 좁아지고 파괴력이 떨어지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김신욱과는 선발 출장보다는 경기 중후반에 함께하는 편인데 김신욱이 완급 조절과 좌우 연계에 능하고 헤딩 싸움도 가세해 줄 수 있다. 다만 이 경우 다른 공격진이 속도와 활동량으로 측면을 파괴해주지 않으면 답답한 상황이 전개될 수 있다. 동시에 선발 출전했었던 이란전의 경우에도 둘 다 할 만큼은 했는데 좋지는 않았다. 김신욱은 헤딩 경합을 했고 이동국은 내려가거나 내주거나. 전술 자체가 1선이 이렇게 내주면 2선에서 해결해 주는 식이었는데 잘 되지 않았다.
이청용과는 같이 뛸 기회가 많지는 않았으나 그저그런 모습을 보여줬다. 박지성은 은퇴하고 박주영이 나락으로 떨어지면서 공격 파트너들이 이청용의 움직임에 맞춰서 볼을 보급해주는 공격수가 필요해졌는데, 여기서 이동국이 좋은 모습을보여주지 못했다.
손흥민과의 기회는 무척 적었으나 한준희는 이제까지 써 본 적이 없는 조합인데 의외로 이동국이 받고 뿌리면 손흥민이 달리는 그림으로 괜찮은 조합이 될 가능성이 보인다고 평가했었다. 그리고 홍명보가 사퇴한 이후 처음으로 소집된 베네수엘라전에서 처음으로 호흡을 맞췄으며 괜찮은 움직임을 보여줬다. 실제로 슈틸리케호에서 이 조합은 손흥민한테 폐를 끼친다는 얼치기 팬들의 비난과는 달리 중앙에서 받으며 수비를 끌어당기고 측면으로 뿌려주는 이동국과 그 공을 측면에서 받으며 속도를 붙이는 손흥민으로 상당히 좋은 모습을 보였다. 실제로 이후 이동국이 없는 손흥민은 고립되며 무득점 행진을 이어가다 상대의 체력이 다 떨어지고 나서야 생긴 공간에서 골을 넣는 등 둘은 잘 맞는 편이다.
6. 사건, 사고
6.1. 부친의 병역비리 청탁
이동국의 부친이 1998년에 병무청 직원에게 뇌물을 전달하는 수법으로 아들의 병역비리를 청탁해 적발된 바 있다. 기사 이동국의 부친 이남기는 병역법 위반으로 불구속 기소되었고, 최종적으로 2천만원의 벌금형을 판결 받았다. 이동국 부친의 병역비리 사실을 밝혀낸 사람은 대선후보 이회창 아들의 병역비리 문제를 최초 제기하였던 김대업이었다. 관련기사
그의 증언에 따르면 이동국의 부친은 아주 적극적으로 아들의 병역면제를 위해 비리, 불법, 청탁행위를 저질렀고 심지어 병역비리계의 대부였던 박노항과도 접촉을 시도했다고 한다. 상당히 악질적인 방법으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아들의 병역비리를 청탁했기에 초범에 전과가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2천만이라는 거금의 벌금형까지 선고받은 것. 이동국 본인은 병역비리 사건에 연루가 없다고 주장하였으나 특별한 상해나 질병이 없었음에도 몇차례나 부친의 병역비리 행각에 재검으로 화답했다는 점에서 의혹을 떨치기만은 어렵다.
이후 2002 한일 월드컵 대표팀 선발에서 최종 탈락한 이동국은 2002 부산 아시안 게임 축구 대표팀에 선발되는데, 당시 논란이 매우 거셌다. 무엇보다 병역비리에 연루된 선수를 대표팀 선수로 선발하여 병역 특례 기회를 준다는 것은 말이 될 수 없다는 분위기가 팽배했다. 박주영이 2012년 런던 올림픽 축구 국가대표팀에 선발되었을 때의 분위기와 비슷한데, 꼼수에 가까웠던 박주영과는 달리 이동국은 엄연히 실형을 선고받은 범죄와 연루되었기에 실제 법무부나 병무청의 분위기는 몹시도 험악했다. 하지만 이번에도 홈에서 열리는 아시안 게임 축구 대표팀의 금메달을 위해서는 이동국이 꼭 필요하다는 축구계의 탄원이 이어졌고, 결국 병역 특례를 받을 수 있는 기회는 주되, 실패한다면 곧장 군에 입대해야 한다는 절충안이 마련되었다.[21] 하지만 한국은 4강에서 이란과 승부차기 끝에 패하여 금메달 획득은 실패로 끝났고, 병역비리에 연루된데다 병역 특례 기회까지 날려버린 이동국은 더 이상 입대를 미룰 수 없는 상황에 봉착하여 군에 입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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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걸개는 사실 이동국의 병역비리를 알고도 덮으며 그를 국가대표 선수로 선발하려 했던 대한축구협회의 무책임한 태도와, 병역범죄에 연루되었음에도 병역 특례를 노리고 국가대표에 합류한 이동국의 뻔뻔함에 분노한 축구팬의 항의 퍼포먼스였다. 실제 이 두 사람은 해당 걸개를 걸기 전 PC통신 하이텔에 병역비리에 연루된 이동국은 대표팀 자격이 없는 선수였고, 그런 뻔뻔한 이가 결국 실패해 군입대하게 된 것은 정의로운 결과라며 항의 퍼포먼스를 펼치겠다고 공지했었다. 십 수년 전 당시에도 이동국의 병역비리 행각에 분노한 축구팬들이 꽤 있었다.
하지만 죄에 비해 가벼운 처벌인지 적당한 처벌인지는 관점에 따라 다르다. 16년 후 장현수가 봉사활동 서류 조작 사건으로 국가대표 자격 영구박탈이라는 중징계를 받았는데 확실히 이에 비하면 가히 솜방망이 처벌이라고 할 수 있다. 병역비리[22] 를 저지르고도 병역특례를 받을 기회를 받은 건 물론이요 국가대표 자격 박탈은 커녕 정지마저 당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것을 축구계의 제 식구 감싸기와 2002년의 분위기 때문이라고 말하기에는, 2년 후인 2004년에 많이 적발되었던 다른 스포츠 선수들이나 연예인들의 병역 비리에서도 당시 대중들의 반응이 요즘 정도로 격하지 않았으며 이 사건과 비슷했다는 점에서 아니라고 말할 수 있다. 당시 대중들은 병역비리에 연루되었어도 병역을 다 이행했다면 죄값을 치른 것으로 간주하는 분위기가 대세였다. 병역대상자가 많아서 이유 없이 면제가 나오는 제도도 있었으니만큼 거의 모든 남성을 징병하는 요즘처럼 병역에 민감하지 않았다. 축구계의 제식구 감싸기나 2002년의 분위기 때문이라고 하기에는 그 후에 벌어졌던 다른 병역비리 사건과 비교해 볼 때 그렇게 말하기는 쉽지 않다.[23]
6.2. 2007 아시안컵 기간 숙소 무단이탈 및 룸살롱 출입
인도네시아에서 있었던 2007 아시안컵 축구대회 도중, 동료 국가대표 선수인 이운재, 김상식, 우성용과 함께 자정 즈음 국가대표팀 숙소를 무단이탈해 룸살롱에서 새벽까지 술을 마신 사실이 들통나 사회적 파문을 일으켰다. 실제 언론사 뉴시스의 현지 취재에 따르면 선수들은 룸살롱에서 접대부들과 함께 폭탄주를 마시고 2차까지 나가 새벽까지 춤추고 노래하며 함께 시간을 보낸 것으로 확인되었다. 해당 업소는 인도네시아 자카르타에서 한국인들을 상대로 하는 유흥 업소로 널리 알려진 곳이었는데, 이동국 등을 접대한 현지 접대부들은 선수들을 직접 지목하며 한국 언론과 인터뷰를 진행한 사진까지 공개하였다. 이에 인도네시아 교민들은 선수들의 부적절한 행동에 커다란 실망감과 분노감을 드러냈다.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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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건이 널리 알려진 직후 이운재, 김상식, 우성용 등 음주파문에 연루된 선수들은 사죄 기자회견을 열었다. 그러나 이동국은 당시 영국에 체류하고 있다는 이유로 기자회견에 불참하였으며 서면 사과로 이를 대신하였다. 이동국은 국내로 복귀한 뒤 오랜시간 공석에서든 사석에서든 당시 룸살롱 출입사건에 대해 침묵하였고, 몇년 뒤 발간한 자신의 자서전에 자신은 룸살롱에 출입한 것이 아니라 지인이 운영하는 일반 술집에 출입한 것이며, 맥주 한 잔 마신 것이 큰 잘못이 되었다며 항변하였고, 심지어 당시 미들즈브러에서 함께 뛰었던 동료들의 입을 빌려 자신의 행동을 비판한 대중들까지 싸잡아 비난하는 뉘앙스로 적시해 많은 비판을 받았다. 대한축구협회 또한 선수들의 성매매는 없었다는 자체 조사결과를 내놓았다.
뉴시스의 해당 취재에서도 접대부가 2차에서 성매매는 하지 않았으며 주로 한국인끼리 이야기를 했다고 증언했다.
뉴시스 기사도 좀 자극적으로 써놨는데, 얼핏 읽으면 4인의 축구선수가 두 차례 유흥에 나선 것으로 착각할 수 있도록 쓰여져 있다. 이운재가 지인들과 새벽 5시까지 술을 먹었고, 그 다음 차례에 해당 4인방과 인도네시아 한인들이 새벽 3시까지 술을 먹었다고 한다. 다른 매체에서도 흐름은 비슷하다. 이동국이나 다른 선수의 증언이 신빙성이 부족하다고 말하기엔 가장 자극적으로 취재했던 뉴시스의 취재에서조차 접대부들이 술, 이야기, 노래에 대해 말했지 성적인 것에 대해서는 증언하지 않았다.
상단 문단이 사실관계에 대해 오해를 불러일으키도록 편집되었던 것이, 룸살롱에 이어 2차까지 나갔다고 하면 누구나 성행위를 연상하기 마련이며 실제로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들도 적지 않았으며 상단 문단도 그런 뉘앙스로 편집되어 있었다. 그러나 여러 기사에서도 2차를 나가서 현지 한인들과 얘기하고 노래하고 술을 먹었다고 하지, 성행위에 관해서 언급한 기사는 없다. 접대부들이 성행위에 관해서는 증언하지 않았다. 해당 룸살롱이 성매매를 전문적으로 하는 것이 널리 알려진 업소인지는 최소한 현재 네이버에서 검색 가능한 뉴시스 기사에서도 나오지 않으며, 여타 매체에서도 나오지 않는다.[24] 인터넷에 올리지 않았거나 지워졌거나, 해당 편집자만이 아는 소스가 있는 게 아니라면 2차후 성관계까지를 암시하는 트릭이 들어간 편집이라고 할 수 있다.
2020년 은퇴 후 이동국의 아내인 이수진씨가 이 사건에 대해 억울하다는 내용의 인터뷰를 하기도 했다. 기사
종합적으로 보자면 성매매를 하지 않았다고 해도 국가대표 자격으로 간 해외에서 숙소를 무단이탈하여 음주를 즐겼다는 점, 사후에라도 제대로 된 해명이 없다는 점에선 어디까지나 비판에 자유로울 수 없다는게 K리그 팬들의 중론.
6.3. 전북 현대 모터스 심판매수 사건 옹호 발언 논란
전북 현대 모터스 심판매수 사건을 옹호하는 발언을 하여 논란이 있었다.'''승점삭감은 우리를 흔들지 못 한다.'''
7. 예능 출연
7.1. KBS 슈퍼맨이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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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남매, 겹쌍둥이 아빠. 7월 26일에 예고편 형식으로 나왔고, 8월 2일 방영분부터 정식 합류하였으며, 합류와 동시에 역대 출연자 중 최다 자녀 기록을 갈아치웠다. 그런데 아빠 나이는 한때는 출연자들 중 가장 어렸었다. 가장 연장자인 이범수(1969년생)과 이동국은 10살 차이였으나 80년생인 인교진이 들어오면서 더 이상 막내는 아니게 되었다가 이범수와 인교진이 하차하였고, 2살 연상인 샘 해밍턴이 새롭게 들어오고, 1살 연하인 고지용과 8살 아래인 후배 축구선수 박주호가 들어옴으로 본인 또한 하차하기 전까지 차연장자 아빠가 된 상황.
자녀들 이름/년생
첫째 쌍둥이 이재시 (2007)
첫째 쌍둥이 이재아 (2007)
둘째 쌍둥이 이설아 (2013)
둘째 쌍둥이 이수아 (2013)
막내 아들 이시안(대박이) (2014)
방송은 송도 집/전주 집[25] 을 번갈아가며 촬영했다.
7.1.1. 2015년
당초 합류 기사가 떴을 땐 이동국이 현역 축구선수라는 점과 룸살롱 출입 사건 등 육아와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이미지, 삼둥이 하차를 대비하기 위한 합류일 거라는 추측으로 반응은 다소 회의적이였으며, 첫 방송 이후로도 이동국의 다소 어설픈 모습과 아이들이 너무 많아 산만하다는 이유로 크게 호응을 얻지는 못하는듯 했다.
사실 초반에 반응이 별로였을 수밖에 없는 게 처음으로 정식으로 나온 2015년 8월 2일 방송분에서는 이동국이 잠에서 깨 아이들 아침밥을 해주는 거 말고는 별 내용도 없었으며 갑자기 아이들이 우르르 나왔다가 거의 밥만 먹고 끝나버렸다. 두 번째 출연분인 2015년 8월 9일 방송분에선 둘째 딸 재아의 테니스장을 방문했는데 이 과정에서 재아를 훈육하는 장면이 나왔으며 딸을 생각하는 모습은 보기 좋았지만 육아 프로와는 다소 맞지 않는 장면이었다.
그러나 회차가 거듭될수록 점점 반응이 온 케이스로 최근 들어서는 이동국의 투입은 신의 한 수라는 반응이 있을 만큼 상당히 호응적. 기사 이동국 가족의 인기 상승 요인으로는 막내아들 대박이[26][27] 의 공이 상당히 큰데 귀여운 외모와 순둥한 아기로서 주목을 끌었다. 또한 대박이와는 전혀 상반된 이미지의 '비글자매'[28] 로 불리는 설아, 수아 쌍둥이의 다소 장난스럽지만 귀여운 모습들이 예능적인 재미를 이끌어 주고 있으며, 여기에 첫째 쌍둥이 재시, 재아의 초등학생 2학년 답지 않은 어른스러운 모습과 동생들을 아끼고 챙기는 모습이 시청자들에게 훈훈한 느낌을 더해주고 있다.
그렇지만 슈퍼맨이 돌아왔다의 취지상 아이들 못지않게 아빠의 역할이 중요한데 이동국의 아빠로서의 모습은 우려와는 다르게 굉장히 긍정적이라서 의외라는 평이 많다. 대표적으로 설아, 수아가 대박이 분유를 몰래 먹다가 침대 위에 엎지른다든지 방문에 로션을 덕지 덕지 발라 어지럽혀도 인상 한번 쓰지 않고 웃으며 뒤처리 했던 모습이 방송을 나간 뒤 '생긴 것과 다르게 의외의 모습이다'라는 반응이 많았다.
이동국의 육아 실력 또한 회차가 거듭될수록 반전적인 모습을 보였는데 아이들이 낮잠을 못 자자 짐볼을 이용해 재운 다든지 대박이의 옹알이 하나하나에 응답해주는 모습, 사고가 발생했을 때도 전혀 동요하지 않고 침착하게 대처하는 과정에서 평소에도 육아에 신경을 써왔다는 모습을 많이 보여줬다. 또 하나 의외인 점이 아들 대박이에게 가지는 관심의 양이다. 딸 4명, 아들 1명. 그것도 첫 출연당시 대박이가 돌도 아직 안 지났기에 아들에게 너무 집중하다 혹여나 딸들에게 소홀한 모습을 보이지 않을까 하는 우려도 있었지만 오히려 설아, 수아를 신경 쓰다가 대박이를 보행기에 혼자 둔다든지 이유식을 늦게 주는 모습이 종종 나왔다. 이 과정에서 '대박이에게 좀 더 신경을 써야 하지 않나?'[29] 라는 말도 있었지만 '아들과 딸 사이의 차별을 전혀 두지 않는다'는 점에서 긍정적인 의견이 더 많은 편이다.
'자상한 아빠다', '성격이 순한 거 같다'라는 긍정적인 의견과 더불어 '너무 아이들을 혼내지 않는 거 아니냐?' 하는 부정적인 반응도 다소 있는 편이다. 대표적으로 2015년 9월 20일 방송분에서 설아, 수아가 아빠가 옷을 고르는 사이 아직 구매하지도 않은 장난감을 몰래 뜯었는데 이 과정에서 이동국은 설아, 수아에게 주인 아주머니께 사과하라고 시키긴 했지만 아이들을 혼내거나 훈육하는 장면은 나오지 않았다. 그렇지만 손님들도 있는 가게에서 아이들을 혼내는 것 또한 민폐이고 훈육하는 장면은 방송상 충분히 편집될 수 있는 상황이라 크게 문제시되지는 않았다. 인터뷰에서 "평소에 아이들과 떨어져 지내다 보니 화내기보단 최대한 재밌게 놀아주고 싶고 아이들이 사고를 쳐도 부모의 몫이라고 생각한다."라고 밝힌 바 있다.
방송을 보면 이동국이 아이들을 굉장히 좋아하고 같이 놀아주는 것에 능숙하다는 걸 알 수 있는데 사실 과거 이동국 부인의 말에 의하면 아이를 가지기 전까진 어린아이들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고 한다. 이러한 사실은 2006년 11월 이동국이 깜짝 출연했던 KBS '날아라 슛돌이'에서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이날 FC슛돌이 팀은 포항 스틸러스 유소년팀과 경기를 하기 위해 방문했고 당시 포항 스틸러스의 간판 스타였던 이동국이 포항 유소년팀의 일일 코치로 나선 것. 그렇지만 이동국은 방송 내내 아이들에게 제대로 말을 걸지도 못하고 어색한 웃음을 짓기만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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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사실 때문에 이동국의 부인 역시 이동국이 과연 좋은 아빠가 될 수 있을지 많이 걱정스러웠다고 한다. 그렇지만 실제로 재시, 재아가 태어난 뒤 180도 변한 모습을 보였고 육아 관련 도서를 직접 구매해서 읽을 만큼 육아에 열정적이었다고 한다. 더군다나 첫째 아이들이 태어난 해인 2007년은 이동국 축구 인생의 최대 암흑기인 미들즈브러 시절인 때. 이때 육체적, 정신적으로 많이 지쳐있었던 이동국[30] 은 아이들에게 많이 의지하였고 아빠로서 책임감을 더욱 가졌다고 한다.[31]
현역 선수가 시즌 중에 예능을 고정 출연하는 것에 대해 비판이 있는 편이다. 그날의 컨디션에 따라 경기가 안 풀리는 날도 있을 수 있지만 이동국의 경우 부진한 모습을 조금만 보이면 ‘방송 탓’이라는 비난을 피하기가 어려운 게 현 상황이기 때문이다. 이에 구단 관계자의 말에 따르면 슈퍼맨 출연 이후 더욱 트레이닝과 자기관리에 몰두하고 있다는 후문. 사실 슈퍼맨 출연 전과 후의 경기력 차이가 거의 없기에 팬들 사이에서는 '이쯤 되면 이동국의 경기력을 방송과 연계하지 말자'라는 의견이 대다수이다. 그리고 실제로 2015시즌에도 13골로 득점 랭킹 4위에 오르면서 좋은 성적을 보이고있다.
2015년 10월 11일 방송분에서 송일국과의 대화 중 "이전에 일반 사람들이 이름은 알지만 얼굴은 잘 모른다. 거의 모르는 분들이 많았다", "프로선수 생활 18년보다 방송 1~2주 나가고 더 많은 사람들이 알아보는 것 같다"라는 말을 하는 등 인지도 측면에서도 득을 많이 보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근데 역대 '슈퍼맨이 돌아왔다'의 출연자들을 보면 사실 이동국의 인지도는 최상위급에 속하고 정말 축구에 관심 없는 사람들 도 많이들 아는 이동국을 대부분의 사람들이 모른다는 것은 사실상 말이 안 되기에 다소 예의상으로 했던 말이 아니었나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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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국이 대박이를 부를 때 "대바그아~"라는 특유의 어투가 있는데 이게 슈돌 팬들이나 전북 팬들 사이에선 어째 유행어처럼 되어버려 이동국 관련 기사나 글에서 '대박아~'라고 적힌 댓글들을 자주 볼 수 있다. 임팩트가 생각보다 컸던지 최근 팬사인회나 시민들을 만나는 자리에서 가장 많이 듣는 말이 "대박아~한 번 해주세요"라고. 그 때문인지 최근 들어서는 방송에서 부르는 횟수가 조금 줄어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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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 12일 FC서울과의 '현대오일뱅크 K리그 클래식 2015' 30라운드에서 선제골을 성공시킨 뒤 '슈퍼맨' 세리머니를 보였는데 이 세리머니는 한국 프로 축구 연맹이 뽑은 9월의 세리머니로 뽑히기도 했다. 세리머니 장면은 '슈퍼맨이 돌아왔다' 2015년 9월 20일 방송분에도 잠깐 나온다. 이동국이 k리그를 대표하는 선수이기에 방송에서 k리그와 전북현대에 대해서 꽤 자주 언급하는 편.
재밌는 점이라면 '슈퍼맨이 돌아왔다'의 다른 출연자들과 의외의 접점이 많다. 송일국과는 같은 송도에 살고[32] , 이휘재와는 14년 올스타전에서 만났으며 이 장면은 14년 8월 17일 방송분에서 나온다. 또한 엄태웅과는 과거 1박 2일 '절친들과 함께한 혹한기 실전캠프' 특집에서 만난 적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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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구계에선 안티가 많은 선수지만 신기하게도 포털 반응을 보면 '이동국 다시 봤다.' '생긴 거랑 딴판이네' '자상하다' '아빠인데도 아직 설렌다' 등등 슈퍼맨이 돌아왔다 출연진 중에서는 호감도가 높은 편이다. 이전에 출연했던 힐링캠프나 1박 2일도 반응이 괜찮았던 걸 보면 생각보다 방송이 잘 맞는 듯하다.
7.1.2. 2016년 이후
2016년 삼둥이 하차 이후로는 사실상 아들 이시안이 슈돌 시청률을 캐리하는 신세가 되었다. 그러나 2018년 중순부터는 샘 해밍턴의 아들 둘 '''윌리엄과 벤틀리'''와 후배인 박주호의 딸 '''나은'''이가 캐리하고 있다.
한국 예능이 동남아에 인기가 많다 보니 이동국과 대박이의 동남아 인기도 많이 높아졌다고 한다. 애초에 이동국은 동남아시아에서 축구에 조금이라도 관심있는 사람이라면 모르는 사람이 거의 없을 정도의 스타플레이어인데 최근엔 젊은 층과 여성층에도 이름을 톡톡히 알리게 된 것.
아들이 축구하는 걸 반대하는 안정환과는 다르게 막내아들인 시안이가 축구를 하길 바라는 모습을 보인다.[33]
재밌는 점이 있다면 슈퍼맨 촬영팀이 전북경기를 촬영하러 전주에 오는 날에는 이동국의 골이 터지지 않는다. 16년 8월 21일 방송분을 포함하여 총 4번의 홈경기 촬영이 있었으나 아직 골을 넣은 적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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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그램에서 이동국 가족의 인기가 많다보니 시청자 이탈 방지를 위해 다른 가족의 방송 중간에 미리 자막으로 예고를 한다. 도끼, 이정재 등의 게스트들이 나올 때 다른 가족들도 자막 예고를 하기도 하지만 매주 빠짐없이 나오는 건 이동국 가족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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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FC 챔피언스리그 결승 1차전 전주 경기에서 알 아인 원정 서포터가 대박이 팻말을 들고 온 걸로 화제가 되었다.
여기서의 활약으로 2016 KBS 연예대상에서 최우수상을 수상한다.
그 뒤로 2017, 2018년까지 꾸준히 계속해서 출연했으나, 아이들이 점점 자라며 비중이 줄다가 2019년 10월 6일 방송을 끝으로 출연을 종료했다. 이동국의 말에 따르면, 점차 아이들이 방송을 의식하고 가식적인 행동을 하게 될 것을 우려하고, 이것이 정서에도 좋지 않을 것 같아서 촬영을 종료하기로 결정한 것이라 한다.
출연 종료 직전에 날아라 슛돌이와 슈퍼맨이 돌아왔다를 합쳐서 '''슛돌이가 돌아왔다'''를 잠깐 진행했고 이후, 2020년 1월 7일 날아라 슛돌이 - 뉴 비기닝에 임시 감독으로 출연하며, 4회에 한 번 더 등장했다.
7.2. 기타 예능
SBS 런닝맨에 2016년 1월 24일 방영분에서 출연했는데 이때 유재석이 '''아니. 옆 방송국 프로그램 이 시간에 무슨 일로!?'''(27분 53초)라면서 웃음을 선사했다. 그리고 자막에 짤막하게 '''대박 아빠'''도 덧붙여져 있었다.
JTBC 아는 형님에 2019년 12월 21일에 아들 이시안 군과 출연하였다.
SBS 집사부일체에 2020년 11월 22일, 29일 방영분에 사부로서 출연했다.
SBS 나의 판타집에 게스트로 출연했다. 테니스 선수인 딸 때문에 테니스 코트와 잔디가 딸린 집을 선택했다.
2020년 1월 케이블 채널 E채널 <맘편한카페> 에 출연했다. 인천 송도에 있는 국제학교인 CMIS에 다니고 있던 오남매가 코로나 19 판데믹으로 등교할 수 없게 되자 모두 학교를 자퇴하고 홈스쿨링을 하고 있는 모습이 공개되었다.
뭉쳐야 찬다에 게스트로 한번 나왔다.
뭉쳐야 쏜다 고정 출연이 확정 되었다.
8. 여담
- 본래의 한자 이름은 李東國[34] 이었는데, 2007년에 동녘 동(東)을 같을 동(同)으로 바꿨다. 음을 그냥 내버려 두고 한자만 개명하는 경우는 사주팔자에 의해서 개명하는 경우가 많다. 실제로 이동국의 한자 이름은 작명사주상 최악의 획인 26획[35] 이며, 결정적으로 이동국의 형 역시 東자를 쓰고 있어 집안에 東자를 쓰는 사람이 두 명 있으면 안 좋다는 점도 한 몫 했다. 그 때문에 계속 국가대표에 뽑히지 못했다고 판단해서 개명한 것으로 보인다.[36] 同은 東보다 2획이 적어서 총 24획이 되는데, 극강의 획은 아니지만 그래도 좋은 획수로 본다.
- 2005년에 1997 미스코리아 하와이 미 이수진과 결혼했다. 2007년에는 쌍둥이 자매를 득녀. 참고로 2010년 결혼한 은지원의 前 부인이 이동국 부인의 언니인지라 은지원은 동서지간이 되었다. 1박 2일에 출연했을 때 자막으로 나오기도 했다. 그러나, 은지원이 2012년 경 이혼을 하면서 지금은 남남사이. 2013년 또 쌍둥이 자매를 득녀하며 4자매의 아버지가 됐다. 그리고 힐링캠프 녹화분에서 최근 아내가 또 임신해서 자녀를 다섯 둔 아버지가 될 예정이라고 밝혔고, 2014년 11월에 득남하게 되었다. 그런데 아내가 자식 욕심이 많은 편이다(...).
- 스티브 유와 친분이 있는 것 같다.[37] 그런데 스티브 유가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이동국과 찍은 사진을 올린 적이 있는데 이동국을 “정자왕”[38] 이라며 직설적으로 표현해 논란이 되었다.#
- 1998 FIFA 월드컵 프랑스가 끝난지 1~2년 정도 후 당대의 인기가수였던 김현정과 열애설이 퍼지기도 했다.[39][40]
- 2016년 7월 19일에 김병지가 은퇴 선언을 하면서 1998 FIFA 월드컵 프랑스에 출전한 대한민국 선수 중 현역으로 활동한 최후의 선수가 되었다. 또한 대한민국에서 최연소로 월드컵 경기에 출전해본 기록이 있는 선수이다.(만 19세 1개월 22일). 2017년을 마치고 현영민이 은퇴를 선언하면서 02 월드컵 멤버가 모두 은퇴를 한 가운데, 그보다도 더 빠른 98 멤버 현역이라는 경이로운 기록을 세웠다. 그리고 그가 2020 시즌을 끝으로 은퇴하면서 1998년 월드컵에 참가해 본 현역 선수는 이탈리아의 잔루이지 부폰, 일본의 오노 신지와 이토 테루요시, 사우디아라비아의 후세인 압둘가니 등 단 4명만 남게 되었다.
- 한상균의 사진으로 인해 가장 많이 웃음거리가 된 사람.
- MD5 배틀에서는 최약의 이름 중 하나.
- 1999년에 마약 퇴치 홍보대사로 활동한 바 있다.
- 포항 팬들에게는 애증의 존재. 까임은 받아도 자기 새끼라고 열심히 실드를 쳐줬지만 미들즈브러에서 실패하고 K리그 복귀할 때 자신들이 제시한 연봉보다 더 낮은 금액에 성남으로 가버려서 까로 돌아선 팬들이 많다. 이 웹툰을 참고하면 당시 반응을 더욱 잘 알 수 있다. 포항에서 먼저 계약을 제시했기 때문에 이동국이 사인을 했으면 포항에 왔을 것이나 선수 본인이 거부하고 더 낮은 몸값으로 다른 팀과 계약을 맺었다. 윗 문서부터 계속 강조했지만 성남이 포항보다 더 적은 연봉을 제시했다. 차라리 성남이 더 많은 연봉을 줘서 떠난 것이면 대다수의 포항 팬들이 이해라도 했을 것이다. 이 때문에 이동국 포항 시절부터의 포항 팬들은 이동국을 싫어하는 경우가 많다. 구단에서 호의로 이적료 없이 영국에 보내줬고 더 많은 연봉을 제시했음에도 불구하고 다른 팀과 계약을 했으므로 사실상 구단에서는 섭섭하게 해 준 게 없는데도 불구하고 이적료 없이 다른 팀으로 이적한 셈이기 때문이다. 그것도 더 적은 연봉으로...그리고 국대 혹사 때문이기는 한데 사실상 포항에서는 기여한 게 없다. 우승이나 개인수상 관련해서는 포항에서 신인왕을 수상한게 전부이다. 심지어 포항 소속으로는 득점 랭킹 상위권에도 들어간 적이 없다. 괜히 국대 나가서 다치고 오고 이랬기 때문에 어떻게 보면 리그 팀에서는 연봉을 받으면서 국대 소속으로 뛰는 격이었고, 이에 포항은 이동국 대신에 실력도 경기 감각도 애매한 비주전을 지속적으로 돌려야 하기 때문에 짜증나는 존재였다. 이 시기 국대 선수를 보유한 클럽이 다 그랬지만 이동국의 국대혹사는 독보적이기 때문에 더욱.[41]
- 반면 성남 팬들에게는 증밖에 없는 존재이다. 08년 여름에 우승권 경쟁을 하던 성남이 야심차게 꺼낸 카드지만, 그 카드 때문에 성남은 완벽히 붕괴하였고, 김학범 감독마저도 사퇴하게 만들었다.
- 2013년에는 성남과의 경기에서 성남에 부상자가 발생해 공을 걷어낸 후 이동국이 성남 쪽으로 공을 돌려주려 했는데[42] 너무 킥이 정확하게 들어가서(...) 골키퍼가 잡지 못해 졸지에 골이 들어가 버렸다. 이 때문에 잠시 분위기가 험악해졌으나 전북의 최은성이 자책골을 넣어주면서 훈훈하게 마무리.
- 전북 팬들에게는 이장님 다음으로 가장 사랑받는 존재이다. 조재진이 전북에도 스타가 올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한 선수라면 이동국은 전북에서 부활하고 현재까지 리그에서 손꼽히는 강호로 만든 장본인이기 때문이다. 최진철 전 전북 선수 이후로 선수로선 가장 큰 지지를 받고 있는 선수인지라, 국대가서 멘탈 깨어지는 꼴을 보느니 차라리 국대로 보내지 말자, 나 국대 안 볼래 같은 입장을 보이는 팬들도 있다. 물론 반대로 최강희 감독이랑 이동국 때문에 국대를 본다는 팬들도 있었다. 어쨌든 현재 국대와 그 국대(만 보는)빠들을 향한 전북 팬들의 증오에 최강희 감독과 함께 엄청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 수원의 곽희주에게 약한 모습을 보인다. 한번은 곽희주vs이동국 스페셜 영상이 나온적도 있다. 곽희주 뿐 아니라, 경기내내 일대일로 들러붙고, 돌아서지 못하게 파울불기 직전의 아슬아슬한 수비를 펼치는 유형과의 매칭에 상대적으로 약한데 심리적 견제에 약한 특유의 유리멘탈과 맞물린 것으로 보인다.[43] K리그 경기를 보면, 대부분의 팀들이 전북과 붙을 때 이동국을 이런 방식으로 마크를 시키곤 한다. 문제는 전북은 리그 수위권의 기량을 가진 선수들이 많이 포진한 팀이기 때문에 이동국을 수비수 한 명이 전담하다보면 공간이 나고 그 공간을 누군가가 파고 들어 골을 넣는다는 점이다.
- 1998 월드컵 이후 한동안 한국 축구의 희망이자 아이콘으로 인식되어 미디어에 간접적으로 등장하는 일이 많았다. 스피드왕 번개에서는 박찬호와 투톱을 이루고(...) 2009 로스트 메모리즈에선 일장기를 달고 일본 대표로 나오는 모습이 나온다.
- 2013년 2월 말 이동국의 이야기는 책으로 만들어졌다. 세상 그 어떤 것도 나를 흔들 수 없다
- 피파 온라인 3에서도 능력치가 좋은 편이다. 아무래도 K리그의 대표 스트라이커인 것을 배려한 듯하다. 한국선수 중에는 전설급 선수들을 제외하면 골 결정력이 최고수준이며, 몸싸움, 발리 슛 등의 능력치도 수준급. 장신 버프를 받아 헤더능력도 좋고, 위치 선정까지 나쁘지 않다. 때문에 타겟형 스트라이커로서는 상당히 좋다. 오버롤은 70전후라서 아주 높은 수준은 아닌데, 주요 능력치가 좋다보니 한국 국적 케미를 쓰는 유저들에게 상당히 애용받는다. 하지만 발이 느리고, 개인기가 좋은 편은 아니기에 전천후형이나 크랙형으로 사용하기에는 무리가 있다.
- 트위터 이용이 활발한 편은 아니지만 가끔씩 글이 올라오며, 자폭성 개그를 즐기는 듯하다(...). 대표적인 것들을 열거하자면 다음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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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4년 6월 25일 한국전쟁의 의미를 잊지 말자는 글을 올렸는데 반성하는 의미라면서 자기 입대 사진을 올렸다(...).
- 독일과 브라질의 4강 경기 후 독일 승리에 걸었다가 만원을 딴 사실을 올렸는데, 해쉬태그에 "불법베팅", "만원벌기", "점쟁이동국"이 있다(...).
- 2017년 당시 오랜만에 대표팀에 발탁되면서 한 인터뷰에 따르면 40살이 되어서도 몸 상태가 좋으면 계속 뛰면서 골을 넣고 싶다며 포부를 밝혔다. 그리고 센츄리 클럽 가입 기념으로 두골을 폭격했다. 그리고 한국나이 40이 되는 2018시즌에도 재계약을 하고는 아챔부터 리그 개막전까지 연속골[44] 을 넣으며 그 포부를 이뤘다.
- 독일과 영국 무대에서 실패를 겪고 돌아왔지만, 몸값 때문에 K리그보다 못한 리그에 가지는 않았다. K리그와 A매치에서의 활약 덕분에 왕서방네와 기름쟁이들의 열렬한 러브콜을 받았지만, 생까고 K리그를 묵묵히 수호하고 있다. 위에 언급된 힐링캠프에서도 관련 부분을 언급했는데, 그 쪽에서 제시한 급료가 말 그대로 빌딩이 왔다갔다하는 수준이라서 매우 고민이 많이 되었다고.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중동이나 중국으로 이적하는 선수들이 이동국에 비해 상도덕이 없다거나 한 것은 결코 아니다. 프로스포츠에서 선수들의 직업으로서의 수명은 다른 직업들보다 짧고, 지도자로서의 자리 또한 한정되어 있어 선수 생활 이후를 생각하기 쉽지 않다. 짧은 선수 생활에서 벌 수 있을 만큼 벌어두는 것이 선수 입장에서는 당연한 것. 돈이 모든 것을 좌우하는 프로스포츠에서 종사자들에게 돈을 뛰어넘는 가치를 강요하는 것은 일견 아름다워 보일지 모르나 현실적으로 쉽지 않고 그 이후에 벌어질 일도 마냥 아름답지만은 않다. 어디까지나 이동국이 은퇴 후 진로가 어둡지 않고 돈이 크게 아쉽지 않은 리그 탑 플레이어라서 가능했던 일이다.
- 2014년 9월 4일 베네수엘라와의 평가전을 앞둔 전날 부천종합운동장에서 훈련을 마치고 나오는중 사진을 찍어달라는 어린팬 엄마의 요청에 아이들에게 드루와를 시전했다.
- 등번호는 항상 20번을 고수한다. 그 이유는 자신의 자서전에서 밝히길, 자신이 포항에서 뛰던 시절 20번을 달던 선배를 존경해서라고 한다. 실제로 홍명보가 국가대표를 은퇴하자 공석이 된 20번을 이동국이 바로 이어받았으며, 이동국이 나이가 너무 많아져 국대 차출이 불안해지자 '제 2의 홍명보'라는 평가를 받고 있었던 홍정호가 잠시 이어받았다.
- 2016 KBS 연예대상에서 버라이어티 부문 최우수상을 수상했다.
- 동년배 다른 선수들에 비해 SNS를 꾸준히 하는 편이다. 이유는 SNS 또한 팬서비스의 한 종류로 생각한다고 하기 때문...
- 동국대학교와는 이름이 같다는 것 말고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데도 불구하고 종종 엮이곤 하는데, 공교롭게도 개명 전 이름이 동국대학교의 한자 이름과 정확하게 일치하는 東國이었고, 동국대학교가 대한불교 조계종 종단 대학인데, 이동국 본인 역시 불교 신자 집안 출신이라는 점에서 묘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그리고 이동국은 경상북도 경주시에 있는 위덕대학교 출신인데, 동국대학교와 마찬가지로 위덕대학교 역시 불교 종단 대학이다. 단, 이쪽은 동국대학교를 운영하는 대한불교 조계종 종단 대학이 아닌 대한불교진각종 종단 대학이다.
- 국내 스포츠선수 중 3번째로 많은 인스타그램 팔로워수를 보유하고 있다.[45]
- 본인의 마이너 갤러리가 있다. 이동국 마이너 갤러리#
- 사건사고에 대해서는 시대상이 맞아떨어진 케이스다. 병역비리 역시 현재는 국가대표 제명 수준의 중징계감이지만 당시에는 군대를 갔다오면 완수한 것으로 쳤다. 룸살롱 역시 2020년대 기준으로 환원하면 중징계를 받을 것이라는 예측도 있다. 병역 비리와 대회 출전 문제에는 박주영도 어느 정도 걸리는 등 이를 용인해주는 사회적 분위기에서 막차나 막차에서 두 번째 차 정도를 탄 느낌이다. 슈퍼맨이 돌아왔다 등에 출연하면서 애들 잘 보는 가정적인 이미지로 이미지 세탁이 된 것도 저런 구설수들에서 그럭저럭 잘 넘어간 또 하나의 이유이긴 하다. 그래도 한편으로 변명을 해주자면 이미지 세탁이란 것도 세탁이 될 만한 좋은 모습들을 보여줘야 그나마 가능하다는 것 정도. 10년 넘는 기간 동안 큰 사고 없이 경기장 내외나 기타 방송에서 좋은 이미지를 유지했던 게 도움이 된 건 사실이니 어쨌던 본인이 잘 한 게 없지는 않다. 그런 측면에서 개과천선 비슷한 걸로 판단할지 아니면 이미지 세탁인지는 판단하는 사람마다 다를 일...
> 일단 뭐 오늘이 마지막일 것 같은데 그동안 고생 많았고, 마지막 가는 길에 큰 선물 또 해줘가지고 너무 감사하고, 형한테는 첫 (FA컵) 타이틀이기 때문에 더 값진 것 같고, 끝까지 너희들이 운동장에서 뛰는 모습 보니까 울컥하더라고. 고맙고 우리가 어떻게 되든 항상 만날 수 있고 언제든 다시 만나니까 끝이 아니고 건강하게 잘 있다가 또 연락하면서 보자 너무나 고생 많았고, 고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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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11.08 전북 현대 모터스 FA컵 우승 후 마지막 라커룸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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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11.08 전북 현대 모터스 FA컵 우승 후 마지막 라커룸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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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 역대 A매치 득점 공동 4위[2] 비슷한 사례로 박주영이 있다. 두 명 모두 한국 축구 정통 스트라이커의 계보를 이을 재능으로 평가받았지만 이동국은 혹사와 부상, 박주영은 아스날에서의 몰락으로 기대만큼 대성하지 못했다.[3] 548출장 228골 77도움 [4] 전세계적으로 즐라탄 이브라히모비치와 엠레 벨로조글루, 로케 산타 크루즈만 가지고 있는 희귀한 기록이다.[5] 90년대 포항에서 데뷔해 첫 성인무대 골을 넣은 뒤 2000년대 대한민국 대표팀의 주포로 활약했고, 유럽무대를 경험했으며, 2010년대 전북에 입단해 전북 왕조의 개막을 알리며 K리그 최고의 공격수가 되었고, 2020년 자신의 마지막 현역 시즌에서 시즌 개막골을 넣는 등 은퇴할때까지 교체와 선발을 오가면서 활약했다.[6] 중국 축구팬들이 중국을 상대로 할 때 활약한 그를 중국식 발음으로 부르던 것이 한국에서 놀림거리로 된 경우다. 근데 시간이 흐르면서 '''빠도 까도 다들 동궈'''라고 부른다. 이승엽의 오푼, 홍진호의 콩과 같은 케이스. 심지어 축구계 후배들도 동궈형으로 부른다. [image][7] 2011년을 끝으로 K리그 리그컵이 폐지되었다.[8] AFC 챔피언스리그의 전신[9] 총 8회 우승으로 K리그 역대 개인 최다 우승[10] 2014년 베네수엘라를 상대로 골을 기록하면서 황선홍, 박주영에 이어 3번째로 전대륙 상대로 득점한 선수가 되었다. 박주영의 경우 호주가 OFC에서 AFC로 소속을 바꾼뒤 득점 했기 때문에 논란의 여지가 있을 수 있다. 이동국의 경우 호주가 OFC 시절에 득점했다. 어찌보면 황선홍에 이어 2번째 전대륙 상대 득점자다. 2017년 손흥민이 콜롬비아를 상대로 득점하면서 역대 4번째 전대륙 상대 득점자가 되었고 현재까지 황선홍, 이동국, 박주영, 손흥민 등 4명의 선수만이 이 기록을 갖고 있다. 전대륙 상대 득점 기록이 힘든 이유 중 하나가 오세아니아 국가를 상대로 득점하기가 어려워서다. 대륙도 다른데다 전체적인 실력도 떨어져 국제대회에도 만나기 힘들기 때문에 A매치에서 맞붙을 일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 더구나 호주가 OFC에서 AFC로 소속을 바꾸면서 호주를 상대로한 득점은 논란이 있을 수 있다. 이러한 논란 없이 전대륙 상대 득점 가능성이 가장 높은 선수는 이재성이다. 국가대표 데뷔한지 얼마 안돼 뉴질랜드를 상대로 골을 기록했기 때문이고 현재까지 5대륙(오세아니아 - 뉴질랜드, 아시아 - 미얀마, 유럽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 북중미&카리브 - 코스타리카, 남미 - 콜롬비아)을 상대로 득점했다.[11] 이게 얼마나 기록하기 힘든 것이냐고 하면 지금 세계 6대륙 득점에 성공한 선수가 크리스티아누 호날두, 치차리토, 호나우두, 호마리우, 오카자키 신지, 팀 케이힐 등 몇 안 되는 편이다. 즉 유명한 선수들도 보유하지 못하는 이러한 기록을 지녔다는 자체가 꽤 의미있다 볼 수 있다.[12] 국대에서는 기대치가 높았던 만큼 욕도 많이 먹었지만 그 와중에도 발리슛만큼은 칭찬을 받았다. 전북이 리그 강호라는 것을 감안해보아도 리그 내에서 슈팅당 골 비율이 가장 높은 순위권에 랭크되어 있었다는 건 대단한 것이다. 이동국이 개발이라면 리그 내 모든 용병들도 개발, 아시아에서 개발이 강을 메울 것이다. 다른 능력이 지적받아도 순수 결정력만큼은 절대 나쁘지 않다.[13] 이제 와서는 활동량이 적다고 까는 사람은 그냥 국대조차 제대로 안 보는 사람으로 취급해도 될 정도다. 전체적으로 어린 시절 묻지마 강슈터 기질과 그 둔해 보이는 움직임이 이런 편견에 기여한 바가 크다. 사실 이동국은 원래부터 활동량이 약점인 선수는 절대 아니었는데, 흔히 '받아먹기'식으로 연명하는 선수들도 골을 넣는 그 장면에만 보이기 때문에 잘 보이지 않는 것이지 페널티 에어리어 근처에서 위치를 선정하기 위해 상대 수비수들 사이의 빈 공간을 헤집고 다니기 위해 끊임없이 움직여야 하고 오프사이드 라인을 무너뜨리기 위해서도 라인 근처에서 수시로 움직여야 한다. 활동량이 적은 스타일이라면 위치 선정으로 연명하는 게 거의 불가능하기 때문. 이동국이 적극적으로 수비에 가담하는 타입의 공격수는 원래 아니었지만 이런 점 때문에 활동량이 적다는 편견이 생긴 것이지, 사실 활동량이 단점이라고 보긴 어렵다.[14] 히딩크가 이동국을 심리적 압박 때문에 쫓아냈다고는 말한 적이 없으며, 사실 이동국도 초년에는 심리적 압박에 강한 선수였다.[15] 이에 반해 좋은 의미와 나쁜 의미 모든 쪽으로 심리적 압박에 강한 선수가 박주영이나 기성용이다. 2000년대 들어 가장 완벽한 국대 칭호를 듣는 박지성은 클럽 업적과 국대 업적이 고루 좋은 편.[16] 이런 것은 오히려 동갑내기이자 청소년대표 파트너였던 김은중이 더 잘했다.[17] 워낙 선수 생활을 오래하고 부상이 많아서 느리다고 하는 것이다. 육상부 출신인 것도 있고 부상이나 나이를 빼고 본다면 원래는 꽤 빠른 편이었다.[18] 사실 황선홍 이후 한국의 전통적인 대형공격수는 최용수였다. 실제로 황선홍 은퇴 이후 최용수가 원톱으로 나서기도 했고...그러나 2002년 월드컵 미국전 실수로 인해서 이미지가 안 좋았고 나이도 많았던지라 설기현과 조재진에 밀려났다.[19] 하지만 둘의 부조화와 별개로 사적으로는 절친 사이다. 이동국의 "아유 진짜!"도 둘이 거리낌 없이 지내다보니 나온 말이고(안정환이 이동국을 "국동아!"라면서 친근하게 부르는 모습도 앞에 나왔다.) 안정환도 이것에 대해 유머거리로 언급할 정도. 2020년에 뭉쳐야 찬다에 같이 출연해서 우정을 과시하기도 했다. 참고로 안정환은 1976년생이고 이동국은 1979년생이라 안정환이 3살 형인데도 저렇게 투정을 부릴 수 있다는 것부터 격 없이 지낸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대표팀이 히딩크의 영향으로 선후배 관계나나 나이 차이에 개의치않고 지내게 된 것도 있겠지만.[20] 그래서 이동국-박주영 투톱의 롤을 바꾸자는 의견도 좀 있었다.[21] 일반적으로 어떻게든 병역비리에 연루된 자는 절대로 어떤 사유로든 군 입대를 연장할 수 없다. 기회를 받았다는 것만으로도 당시 이동국은 원칙에 어긋나는 엄청난 특혜를 받았다고 보면 된다.[22] 그 중에서도 가장 악질로 분류되는 청탁이다.[23] 97년에 대선을 치른 이회창인데, 이회창 전이라고 98년의 범죄와 연관시키는 것은 아예 맞지 않는 증언이다.[24] 설령 그러한 업체였다고 해도, 1시 반에 업소를 나가서 인도네시아 현지 한인의 집에 축구 선수들과 현지 한인들 여러 명이 몰려간 이후 3시에 파했다고 한다면 상단의 문단이 암시하는 것과 같은 성행위는 있기 어려운 흐름이다.[25] 현재 이동국만 주로 전주에서 지내고 나머지 가족들은 송도에서 지낸다. 이동국이 전북에서 축구를 함에도 불구하고 나머지 가족들이 송도로 이사간 이유는 둘째 딸 재아가 초등부 테니스 선수인데 송도에 이동국의 친구가 테니스장을 운영하기 때문.[26] 대박이는 태명이고 본명은 이시안. 태명이 대박이인 이유는 이동국이 다섯째를 가졌다고 주위에 말하니 다들 반응이 '대박'이라고 해서 대박이라고 지었다고 한다.[27] 그 덕분에 대박이 전용 노래가 빅뱅 대성의 '''대박이야'''이다.[28] 활달하고 가끔씩 사고를 쳐서 비글자매라는 별명이 생겼지만 사실 방송에서의 모습을 보면 그렇게 유별나지도 않다.[29] 이동국 자신도 대박이에게 많은 관심을 못 주는게 미안한지 방송에서 대박이에게 미안해하는 모습이 종종 나왔다.[30] 힐링캠프에서 이동국 스스로가 밝히길 지친 마음에 촛불을 바라보며 '너 여기 왜 온 거니?'라고 혼잣말을 하곤 했다고 한다.[31] 그래서 그런지 방송이나 인터뷰에서 자주 "첫째 아이들과는 추억이 많았다. 안 해본 것이 없을 정도다."라고 자주 언급한다.[32] 이 때문에 15년 10월 11일/18일 방송분에서 두 가족의 합방이 이루어졌다. [33] 이동국은 비교적 안정된 환경에서 엘리트 코스(포항 스틸러스의 유스 과정을 그대로 거쳤다.)를 밟으며 성장한 반면 안정환은 축구를 배우던 어린 시절 엄청 고생하며 살았다. 특히 심각한 생활고를 겪는 환경에서 선배들과 지도자들에게 맞아가면서 축구를 했기 때문에 아들에게는 그 고생을 물려주고 싶지 않아서 축구를 반대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게다가 본인도 현역 시절 엄청 고생을 했었으니...[34] 이름 때문에 많이 엮이는 그 대학교의 한자 이름도 바로 저것이다. 東國이라는 이름은 예전부터 동쪽의 나라라는 뜻으로, 이 한반도를 지칭할 때 흔히 쓰던 이름이었기 때문이다.[35] 李 7획+東 8획+國 11획 합 26획[36] 음은 그대로 두고 한자만 바꾸는 개명은 어지간해선 잘 받아준다.[37] 어찌됐건 이동국도 한때 병역비리에 연루됐다는 점을 보면 묘하다.[38] 이동국이 자기보다 아이를 많이 낳았다는 뜻.[39] 다만, 이동국이나 김현정이나 그 당시의 살인적인 스케쥴을 감안한다면 실제로 만나서 얼굴은 본 적이 있을지 미지수다.[40] 1998 FIFA 월드컵 프랑스 직후 지상파 주말 한 예능프로에 같이 출연하여 당시 자신의 홈 구장이던 포항스틸야드에서 PK 대결을 하여 골을 허용해준 적이 있는데 처음 얼굴을 봤을 때가 이때였을 가능성이 높다.[41] 그래서 S급이 아니라 애매하게 국대에 뽑힐 듯 말 듯한 A급 중 최상위 선수와 리그 씹는 용병을 보유한 성남이 잘 나가던 시기였다.[42] 모르는 사람이 있을 수도 있겠지만 이건 축구에서의 불문율이다. 안 그러면 대차게 까인다.[43] 2005년쯔음에 곽희주가 조절을 못해 뒷다리를 걷어차이자 멘탈이 나간 이동국이 곽희주를 때리기 일보 직전까지 갔었다.[44] 3경기 4골[45] 2020년 9월 8일 기준 53.4만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