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다 덴노

 


[image]
'''시호'''
우다 덴노(宇多 天皇, 우다 천황)
''''''
사다미(定省)
'''능호'''
오우치야마능(大内山陵)
'''생몰'''
867년 6월 10일 ~ 931년 9월 3일
'''재위'''
887년 9월 17일 ~ 897년 8월 4일
'''연호'''
간표(寛平)[1]
'''황거'''
헤이안쿄(平安宮)
1. 개요
2. 그 외
3. 가계도


1. 개요


일본의 제59대 천황. 본래 부황 고코 덴노가 후지와라노 모토쓰네(藤原基経)에 의해 옹립되면서 자신의 후손에게 황위를 전하지 않겠다 하여, 884년 모든 황자녀들을 신적강하시킬 때 미나모토 씨()를 받고 미나모토노 사다미(源定省)가 되었으나 887년 부황이 위독해지면서 후계 구도가 불투명해지자 당시 조정의 실력자 후지와라노 모토쓰네에 의해 황적(皇籍)에 복귀하고 친왕 선하를 받는다.[2]
이후 아버지 고코 덴노가 사망하자 황위를 계승하였다. 당시는 후지와라 가문에 의한 섭관정치(셋칸정치)가 진행되던 시기였다.
우다 덴노는 즉위한 뒤 후지와라노 모토쓰네(藤原基経)를 관백에 임명하였으나[3] 문구를 문제삼은 모토쓰네에 의해 조서를 수정하기도 하였다.[4]
이후 모토쓰네가 사망하자 율령국가의 재편을 지향하며, 귀족 출신이 아닌 스가와라노 미치자네를 등용하여 천황 친정을 통해 섭관정치의 잘못된 것을 바로잡기 위해 노력하였으나 성과를 거두지 못한 채로 31세에 장남 아쓰기미 친왕에게 양위했다.
899년, 출가하여 자신을 '간표 법황(寛平法皇)'이라 칭하였다. 그리고 931년, 우다 덴노는 65세의 나이로 사망하였다.

2. 그 외


쿠로다(黒田)씨, 쿄고쿠(京極)씨, 아마고(尼子)씨, 롯카쿠(六角)씨를 포함한 '''우다 겐지(宇多源氏)''' 계통 여러 가문의 조상이다.

3. 가계도



[1] 그의 치세 전반을 간표의 치라고 한다.[2] 신적강하한 황족이 황적에 복귀 후 즉위한 유일한 사례.[3] 관백(関白)이라는 용어가 기록에 최초로 등장했다.[4] 아코(阿衡) 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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