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도방
1. 개요
우도방(右道房)은 한반도에서 자생한 도교 수련법 중 하나로 백두산을 중심으로 그 오른쪽에 해당하는 지금의 함경도 지방을 중심으로 뻗어나간 수련법을 말한다. 예부터 右라는 글자는 단순히 '오른쪽'이란 뜻 외에도 '올바르다'는 의미를 갖고 있었다. 본래 '오른쪽'이란 말 자체가 '옳은 쪽'이 변형된 말이다. 옛날에는 오른쪽을 '바른쪽'이라고도 불렀다. 그러므로 우도방의 '우도(右道)'란 '올바른 도'를 말한다고 할 수 있겠다. 반대로 좌도방의 '좌도(左道)'는 '그릇된 도' 혹은 '환술' 등을 의미한다고 말할 수 있다.
고로 우도방에 속하는 도인들은 철저히 외부의 귀신이나 영혼과의 소통을 거부하고 부적을 사용하는 것도 배격한다. 오로지 수도자 본인의 심신을 수련하여 도를 깨닫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다시 말하면 자기 자신의 성력과 신념만으로 정신을 수련하는 방법으로서 호흡법은 우리 고유의 조식법을 근간으로 한다. 그러므로 수련을 하는데 어떤 준비물 같은 것은 없다.
인간의 생명줄인 호흡에 온갖 심력을 집중하여, 자기의 현재 생명이전의 근본자리를 거슬러 올라가 다시금 발견하고 그 참 생명의 뿌리로 돌아가는 과정이 바로 우도방에서 말하는 득도의 경지인 것이다. 우도방의 수련법은 다리를 포개고 단정히 앉아 눈을 아래로 내리깔고 입을 다물어 마음을 고요히 가라앉히는 정심의 자세로 출발하는 것이다. 그런 방법으로 정신력을 한 군데로 집중시켜 비상한 능력과 지혜를 얻고 득도하는 것이라 하겠다. 단전호흡이나 참선, 명상 등이 모두 우도방의 수련법에서 나온 것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것을 알면 왜 우도방이 '올바른 도방'을 뜻하는지 알 수 있을 것이다. 과거엔 주문을 읊거나 영적인 힘에 대해 운운하는 것은 모두 ''''요사스러운 것''''들로 간주했다. 그러나 우도방은 그러한 것들을 배격하고 오로지 개인의 정신 수련을 통해 득도하고자 함이니 그런 '요사스러운 것'들과는 거리가 멀다. 그렇기 때문에 '올바른 도', '참된 도'라는 뜻으로 '우도'라 불리게 되었던 것이다.
전우치(영화)에서는 주인공 전우치와 스승인 천관대사가 우도방에 속한다고 언급되어 있는데 특이하게 부적을 쓰고 있다. 그래서인지 전우치의 숙적으로 묘사된 화담 서경덕이 부적을 보고 한 대사가 이것이다.
앞서 말했듯이 부적을 쓰는 것은 우도방이 아니라 좌도방이다. 혹자는 고증오류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봉우 권태훈 옹에 따르면 우도방과 좌도방의 구분은 절대적인 것이 아니기에 우도방과 좌도방의 방식을 절충해 수련하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이를 중도방(中道房)이라 한다. 아마도 이 대사의 의미는 "지금 우도방은 부적을 쓰지 않는데 아직도 부적을 쓰는 우도방이 있구나."라고 보는 것이 옳다고 생각된다.'''"부적을 쓰는 우도방이 아직도?"'''
이후에 화담과 신선들이 전우치를 찾아왔을때, 천관대사에게 "수행이 목적인 우도방이 어찌하여 요사스런 술법을 제자한테 가르칩니까"라고 물었을 때 천관대사는 "가르친게 없습니다. 지(전우치)가 저절로 알았지"라고 답한 것으로 보아 전우치 제작진이 우도방과 좌도방의 개념 자체를 헷갈린 것으로 보기엔 다소 무리가 있다.
또 전우치와 천관대사가 우도방에 속한다는 것은 다른 의미가 숨어 있는데 앞서 말했듯이 우도방이란 '올바른 도', '참된 도'를 수련하는 도방이라 했다. 이 영화에서 전우치와 천관대사는 선역에 속하며 악역인 서화담을 징벌하는 입장에 있다. 선역인 전우치와 천관대사가 '참된 도'인 우도방에 있고 악역인 서화담이 '요사스러운 도'인 좌도방에 있다는 것은 곧 이 영화의 주제가 권선징악이라는 것을 상징적으로 나타내주는 것이라 할 수 있다.[1]
역사적으로는 화담 서경덕이 우도방 쪽의 사람으로 분류가 되고 전우치가 오히려 좌도방 쪽의 사람으로 분류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