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선징악

 


'''고사성어'''
'''勸'''
'''善'''
'''懲'''
'''惡'''
권할 권
착할 선
징계할 징
악할 악
1. 뜻
2. 대중문화에서
3. 현실과 동떨어진 이유
4. 관련 문서


1. 뜻


착한 것을 권하고(권선), 악한 것을 징벌(징악)한다.
수원시 권선구가 이 권선징악에서 유래했다. 그래서 한자로도 勸善區라고 쓴다.

2. 대중문화에서


현실 세계에서는 악당이 더욱 번성하는 수가 많고, 현대 소설에서는 그것이 리얼리티라는 이름으로 존중되어 왔다. 그러나 나는 오히려 그 뻔한 리얼리티가 싫었고, 그 무렵의 유행이던 '어둠과 악의 승리'라는 결말에 식상해 있었다.

악당은 수갑을 차라. 그런 단순하고도 정직한 느낌으로 지금 발표된 것과 같은 결말을 선택했다.

이문열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 개정판에서 추가된 작가의 말

착한 주인공은 행복한 결말을 맞이하고, 그에 맞서 나쁜 짓을 한 악당들은 벌을 받는다는 식의 이야기.
권선징악이란 개념은 선과 악의 개념을 해석하는 방법에 따라 경계가 애매해질 여지가 있다. 넓게 해석한다면 주인공이 막나가는 악당이 아닌 이상 거의 모든 해피엔딩이 권선징악에 해당한다고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작품에서 평범한 주인공이 노력해서 갈등을 해결한 뒤 잘 사는 평범한 해피엔딩으로 스토리를 마무리 지어버리면, 주인공처럼 노력하는 것이 선(善)을 행하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게 되어버리는 것이다. 덕분에 극단적으로 주인공을 악당으로 설정하거나, 주인공이 노력도 안하고 모든것을 얻거나, 혹은 주인공에 맞서는 측의 입장을 주인공 이상의 선(善)에 해당하게 만드는 경우를 제외하면 해피엔딩은 거의 모두 권선징악이라고 해석할 수 있다.
이야기의 양상이 복잡해질대로 복잡해졌고 평면적인 권선징악형 이야기가 외면 당하는 현대에서는 언뜻 권선징악이 유명무실해진 것처럼 보이지만, 시대가 변해도 사람은 사람인지라 권선징악 플롯도 잘만 구성하면 좋은 평가를 받을 수 있다. 악인을 관객의 편으로 삼으려 하면 '가해자 미화', '피해자 무시'라는 도덕적 문제가 생기고 반사회적이라는 비난을 받게 되며, 때문에 악인을 일방적으로 옹호하는 이야기는 거의 없다.
하지만 무조건 선을 제시하기만 해서는 이야기가 너무 단순해지기 때문에 문학이 발달하기 시작하면서 부터는 평면적인 이야기에서 더 나아가 아예 인물의 선악에 대한 패러다임을 재조명해 '당신이 정말 선한 자인가' 하는 물음을 인물에게 제시하기도 한다. 셰익스피어의 시대상만 보더라도 단편적인 권선징악보다는, 리처드 3세, 맥베스[1] 등의 작품들에서 나오듯 주인공들이 악인이거나 혹은 선인과 악인의 경계를 오고가는 인물들을 주역으로 삼는 이야기가 개발되어 인기를 얻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착했던 이가 타락하거나, 악한이 선의 편으로 돌아서는 등의 변주를 통해 이야기의 다양성과 복잡함, 사실성과 깊이를 확보한 것.
악인들만 등장하는 작품도 악인을 중점적으로 묘사하되 옹호하지는 않는다. 대신 현대의 이야기는 악인을 관객 편으로 끌어들이면서도 권선징악을 실현하기 위해 다양한 방법을 사용하는데, 악인이 악행을 하며 활보하다가 정의구현을 당하거나, 반대로 개과천선을 하더라도 결국엔 평생 죄책감에 시달리거나 스스로 희생하게 만들다던지, 더 심한 악인에게 죽음을 당해 속죄하는 식이다.
반면 의도적으로 극단적인 선과 극단적인 악을 나눠 권선징악을 표현하려고 하면 그것은 그것대로 작위적인 작품이 된다. 권선징악이란 플롯 자체가 대체적으로 선과 악을 단순화시켜 구분하기 때문에 복잡한 현실을 대변하기 어려운데, 사람은 천사도 악마도 아니니 절대선이나 절대악이라는 인물상은 실제로는 불가능... 그렇기에 작위적일 수밖에 없다.
기본적으로 사회를 유지하기 위한 질서을 권장하는 인류의 관습이 있기 때문에 동화나 고전설화, 민담 등에서는 많은 이야기가 권선징악 형태를 띄고 있다. 콩쥐팥쥐라든가 흥부전 등이 대표적인 사례. 이런 의도적인 권선징악의 경우는 어린아이들을 대상으로 쓰는 동화에서 많이 쓸 수밖에 없다. 어린아이들에게 복잡한 내용을 전달해봤자 이해하기 어려울 수 있기 때문에, 내용을 단순화하고 어린이 교육에 크게 지장이 안 갈 내용을 쓰려고 하면 권선징악의 주제가 많이 다루어진다.
동화 이외에 의도적으로 권선징악을 메인 플롯으로서 많이 사용하는 곳은 '''정치선전물이다.''' 주로 국가단위 등의 단체에서 자신들의 정의를 주입시키고자 쓴다. 애초에 전쟁이란 건 대체적으로 '이념싸움'이기 때문에 양극화시킨 것을 아무런 고증이나 해설도 없이 선악으로 구분시켜 단순화시키기 쉬운 것. 쉽게 말해 자신들을 절대선, 상대를 절대악으로 표현하고 '착한 우리편'이 나쁜 적을 물리쳤다는 이야기.[2] 다만 이 경우엔 진정한 의미의 권선징악이 아니다. 선과 악의 정의를 국가단위의 단체의 입맛에 맞게 변질시켜버리기 때문. 극우 미디어물이 대표적이다.
영화, 특히 복잡한 내용을 담기 어려운 많은 수의 액션영화의 기본 플롯도 권선징악이다. 다이 하드 시리즈와 같이 경찰이 영화에서 주인공으로 많이 등장하는 이유도 대부분 경찰은 정의의 편이라는 인식 때문이다.
현대 창작물에서 히어로물, 협객물이 꾸준하게 나오는 이유는 아직도 권선징악에 대한 많은 수요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불의와 혼란이 판치는 세상에 영웅이나 협객이 등장하여 악당을 심판하고 어려운 사람을 돕는 상황에서 느끼는 카타르시스는 결코 무시할 수 없다. 반대로 무조건 선을 행사하기에는 현실은 오히려 악과 부조리가 승리하기 쉬운 부조리한 상황이 많기 때문에 기왕 차라리 영웅보다는 악당이 낫다는 이유로 권선징악적 창작물을 싫어하고 피카레스크를 좋아하는 사람도 있다. 특히나 현대의 창작물들은 사회가 점차 복잡해짐에 따라 인간 개인의 가치관으로는 선과 악을 구분하는게 힘들어지고 있어 피카레스크나 사회 비판적인 내용을 담는 작품들이 갈수록 늘어나고 있다.
세력간, 혹은 개인간의 대결을 다룬 창작물 대부분은 권선징악을 기본 베이스로 해서 정의가 악을 이기는 구도로 시나리오를 짜는게 전통이지만 대한민국의 영화 주유소 습격사건같은 경우에는 오히려 악이 선을 이기는 권악징선으로 내용이 흘러간다. 물론 이러한 권악징선 스토리는 일반적으로 다소 모험적이거나 아이러니를 통한 감독이 개인의 메시지를 담고 있는 경우가 많다.
권선징악이 무조건 좋은 게 아니라는 주장이 있는데 바로 언더도그마라 한다. 이는 선/악을 권력의 강도 등의 배타적 판단으로 가르는 걸 경계해야 한다는 주장. 또한 "사회적 비판을 해결과제 제시도 없이 그저 덮어놓기만 할 뿐이며, 정작 장애인, 어린이 등 사회적 약자들의 입장과 처지를 왜곡한다"는 비판 등을 받고 있는 인스피레이션 포르노 또한 기본적으로 권선징악 클리셰을 결부하기도 하는데, 이것 또한 권선징악이 '양날의 검'이란 걸 보여준다.

3. 현실과 동떨어진 이유


현실에서는 권선징악을 실천하려는 사람은 있지만 정작 좋은 일을 해도 개인은 불행해지고 주변에서 그다지 보상받지 못하거나 되려 비난받는 케이스가 부지기수. 도와주고 누명쓰기 같이 본인의 의도 자체는 의로운 행동이라 할지언정 정작 본인이 구해준 피해자가 자신을 비난하거나 심하면 아예 본인을 가해자로 지목하며 덤터기를 씌우기도 한다. 반대로 자신의 사리사욕을 위해 어떠한 부정한 행위라고 기꺼히 하고 말겠다는 이기적인 생각이 더 흔하다. 심지어 정의구현을 한다고 알려진 경찰/검사 같은 공무원들도 뇌물/인맥 등의 이유로 범죄자들을 묵인하는 경우도 많다. 피고의 형량 역시 피고의 재산과 권력의 정도에 반비례한다. 이렇다보니 권선징악 그 자체를 현실에선 실현 불가능한 판타지로 취급하는 사람이 수두룩하다. 다시 말하자면, 어차피 '''권력, 돈, 힘, 우월한 혈연 중 어느 하나라도 가진 자들만이 인정받는 사회'''에서 그런 거 없이 너무 착하게 살면 오히려 그 사회에서 배척되거나 차별당할 수 있다는 게 오늘날 사회의 현실이다.
의로운 사람이 보상을 받거나 악인은 처벌받는 게 불가능한 일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그게 일상적으로 흔하게 일어나는 일도 아니다. 여러 제도와 법률을 도입하면서 부터 사람 하나하나의 행동을 선한 의도인가, 악한 의도인가로 단순히 해석하기엔 현대 사회는 지나치게 복잡해졌으며, 범죄자에게 피해를 당하거나 위험에 처한 타인을 보고 대부분의 사람들이 보이는 반응은 "저 사람 불쌍하네"라 생각하며 방관하지, 거기에 끼어들어서 나서는 사람은 거의 없다. 함부로 나서다가 자신이 위험해질 수도 있고.
반대로 의인에게 호의나 도움을 받은 사람이 처음에는 감사하다는 말을 내뱉지만 그것이 반복되면 호의가 권리인 것 마냥 당연시 여기며 도리어 의인을 비난하거나 윽박지를 수 있다. 어쩌다 도움을 받은 것을 넘어 지속적으로 헌신하고 도와준 사람에게 진심으로 감사하고 은혜로 보답하는 사람은 전체 중 극소수의 대인배, 성자들 뿐이다.
세상은 넓고, 생각보다 이기적인 사람들은 많다. 사람은 남보다는 자기를 우선시하고 사욕을 위해 얼마든지 변할 수 있다. 원래는 선량하던 사람이 어느날 대박을 쳐서 큰 돈이 굴러 들어오거나 권력에 취하면 악인으로 전향하는 모습을 볼 수도 있다. 즉, 달콤한 이익을 맛본다면 그 어떠한 악행이라도 이득을 보장한다는 한 끝없이 저지른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어려운 사람을 돕고 공공의 안위에 헌신하는 걸 거의 안하는 이유는 생각 이상으로 선행이 자신에게 주는 이득이 없어서다.
악인을 처벌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증거를 잘 모아 악행을 저지른 사람을 고발해서 그 악행이 낱낱이 밝혀지고 해당 악인이 법의 심판을 받으면 다행이지만 그렇다고 그게 마냥 간단히 풀릴 문제도 아니다. 가진 게 많은 힘있는 악인이 자신의 권력과 재력을 이용해 죄를 무마하거나 감형을 노리는 건 얼마든지 있는 일이다. 세상은 근본적으로 힘의 논리가 절대적인데, 만약 당신이 자신보다 강자인 악인을 고발한다고 해서 솜방망이 처벌로 유야무야 넘어가버린다면 과연 그게 권선징악이라 할 수 있을 지 의문이다.[3]거기다가 사회의 유력자들은 본인이 쌓은 수많은 기반 때문에 어지간한 수준의 악행으로는 몰락하기 어렵다.
더구나, 권선징악이 극단적으로 치닫으면 결국 본래의 의미가 사라지고 대신 "어차피 인류는 신용과 존재의 가치조차 없는 악의 편이므로 모두다 멸망되어야 한다"는 위험한 논리에 사로잡히게 된다. 더불어 지구상에 오로지 순진무구할 정도의 착한 사람(선인)[4]만이 존재된다면 이 역시 인류의 역사는 오래 못 가 끝장날 것이다. 즉, 악이 존재하니까 인류가 건재하는 것이며 선은 그저 악이 정한 길에 따라가거나 일부나마 제어할 뿐 악 자체을 멸하지는 못한다.[5] 그리고 지금까지의 '선'이 특정 시기 혹은 특정 상황에서 한순간에 '악'으로 변질될 가능성을 감안하면 더더욱...
물론 사회 관습적인 관점에서 권선징악을 무조건 냉소적으로만 봐서도 안 된다는 반론이 있다. '선'이란 사회체제와 질서 유지에 도움을 주기 때문에 존중받는 것이고 반대로 '악'이란 지장을 주기 때문에 배척받는 것이며, 그렇기에 당장 악행을 저지른 사람이 당장의 이익을 볼 수는 있다하나 그 악에 대한 징벌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아서 오히려 악인과 악행을 동경하는 권악징선이 만연한 사회나 체제는 장기적으로 보면 혁명이나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 상태에 빠져 결국 붕괴를 맞이하게 되므로 사회는 단순한 감성팔이가 아닌 실익 즉, 지속 가능한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 '''외형적으로나마''' 점점 권선징악을 추구하는 방향으로 발전하게 된 것이기 때문이다.[6]이에 대해선 권악징선 문서 참고.

4. 관련 문서


  • 고사성어
  • 도시전설
  • 사필귀정
  • 인과응보
  • 클리셰
  • 정의
  • 권악징선[7]
  • 인간비판[8]
  • 현실은 시궁창 - 인터넷 짤빵이지만 지독하리만큼 들어맞는다.
[1] 다만 이 작품들은 전부 끝이 '''파멸'''이다.[2] 북한이 단순 플롯을 이용하여 자국을 절대선, 외세를 절대악으로 나누는 식으로 주체사상을 선전하는 것이 대표적이다.[3] 심지어 피해자가 사회적 약자이고 가해자가 강자인 경우는 더더욱 심한데, 피해자 입장에서는 그에 대항할만한 뒷배경이나 인맥 등이 있지 않는, 말 그대로 가진 게 없는 이상 (피고가 법조계 인맥을 동원했던 뭐를 했던 간에)솜방망이 판결이 나오는건 양반이요, 심하면 아예 무죄 판결이 나온다 해도 별 뾰족한 수가 없다. 사법불신이 괜히 존재하는 게 아닌 셈. 하다못해 집행유예나 벌금형 정도로 끝나면 유력자 대상 소송에서 정말 천운이 따른 셈이다. 적어도 유죄라는 의미이고 법원에서도 피고의 죄를 인정했다는 뜻이다.[4] 이는 대개 '성별, 연령과 관계없이 지능이 아기나 유아 수준인 데다가 악행은 커녕 그저 아무것도 할 줄 모르는 사람'을 의미한다. 이는 진정 착한 사람의 모습이긴 하나, 동시에 타인들 입장에선 그저 사회에서 낙오된 자들로 보일 뿐이다. 어차피 '순진무구'와 '무재무능'은 종이 한 장 차이이니까...[5] 그 이유는 정당한 악(필요악)은 오히려 인류의 감정과 행위을 제어하고 올바른 길로 인도하는데 도움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6] 다만, 만인의 투쟁의 수단이 또다른 악일 수도 있음을 감안할 필요가 있다. 애초에 현실에서의 선악 구분은 사실상 무의미에 가깝다. 최소한의 양심이 있는냐 없는냐의 차이만 있을 뿐...[7] 이 문서가 과도한 이상주의에 대한 경계라면 권악징선 문서는 현실의 부조리를 비꼬는 블랙 코미디다. 단어 자체는 원래는 없던 말.[8] 극단적인 권선징악의 경우 대개 여기에 해당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