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주사
운주사 전경.출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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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전라남도 화순군 도암면 대초리 천불산(千佛山)에 있는 절. 현재는 대한불교조계종 제21교구 본사인 송광사(松廣寺)의 말사이다. 雲住寺. 運舟寺라고도 한다. 도선대사가 창건하였다는 설과 운주(雲住)가 세웠다는 설, 마고(麻姑)할미가 세웠다는 설이 전하지만 도선창건설이 가장 유명하다. 현대에야 조계종 소속 사찰이 되었으나, 우리나라에서 운주사 같은 절은 달리 전례가 없으므로 특이하기로 유명하다.
1984년부터 1991년까지 전남대학교 박물관이 발굴조사 4번, 학술조사 2번을 실시했지만, 정확한 창건연대와 배경, 창건 주체 등 구체적인 확증을 찾지 못하여 오늘날에도 여전히 제대로 밝혀진 사실이 없는 신비로운 절이다.
2017년 3월 13일 ‘화순 운주사 석불석탑군’이란 이름으로 천불천탑이 유네스코 세계유산 잠정목록에 최종 등재됐다.#
2. 상세
2.1. 천불천탑
운주사에서 유명한 것은 천불천탑. 즉 불상 1천 좌와 탑 1천 기이다. 천불천탑이 생긴 유래를 설명하는 도선대사의 전설이 전한다. 도선은 한반도를 배 한 척의 형상으로 보고, 호남에는 영남보다 산이 적어 배가 한쪽으로 기울 것을 염려했다. 배의 균형을 맞추고자 법력을 이용해 하룻밤새에 천불천탑을 쌓았다고 전한다. 한편으로는 천계의 석공들을 하룻동안 일한다는 조건으로 일을 시켰는데, 도선대사가 법력으로 일봉암에 해가 뜨지 않게 묶어서 하루가 아니라 며칠을 부려먹었으나, 도선대사의 제자가 일하기 싫어 닭 우는 소리를 내자 석공들이 와불을 세우기 전에 하늘나라로 돌아갔다는 설화도 있다.
절 이름 중 운주사(運舟寺)란 이름은 이같이 풍수상 움직이는 배 모양을 한 땅이라는 데서 비롯되었다. 출토 유물과 기록을 보면 고려 초에 세워졌고 조선 초까지도 절이 계속 존속했을 것으로 보이는데 불행히도 임진왜란과 정유재란을 거치면서 법당을 비롯하여 천불천탑도 크게 훼손되어 폐사가 되었으나, 18세기에 자우(自優) 스님이 절을 재건하였다. 이후 1918년경에 신도들에게 시주받아 중건되어 현재에 이른다. 단, 천불천탑만은 복구되지 못했는데 1942년까지는 석불 213좌와 석탑 30기가 있었다고 하나 현재에는 석불 90여좌, 석탑 21기만이 쓸쓸히 남았으며 이마저도 모두가 온전한 형태인 것은 아니다. 1980년 6월에 절 주변 일원이 사적 제312호로, 9층석탑(보물 제798호), 석조불감(보물 제797호), 원형 다층석탑(보물 제798호) 등이 보물로 지정되었다.
천불천탑의 양식과 배치를 두고 여러 가지 해석들이 나왔지만 마땅히 이렇다할 정설은 없다. 이름 없는 민중들이 하나둘씩 축조한 곳이라서 처음부터 양식과 배치구조를 판단한다는 것 자체가 무의미하다는 주장도 있다.
2.2. 와불
여기저기에 수 없이 세워진 천불천탑 말고도, 절 뒷산으로 올라가면 땅에 누운 거대한 와불(臥佛), 즉 누워 있는 거대한 불상이 눈에 띈다. 와불이 한 쌍이라 부부와불이라고도 부른다. 이는 도선대사가 천계의 석공들을 불러 천불천탑을 하룻밤 사이에 다 세우려 하였으나 그들이 일찍 돌아가는 바람에 미처 다 세우지 못했다는 전설이 전한다.
현존하는 이 절의 석탑과 석불은 기존의 다른 불교미술과 조각수법이 완전히 다르다는 공통점이 있다. 이 모두 이름 없는 석공들이 오랜 세월에 걸쳐 만들었을 가능성이 크다. 석탑 및 불상의 배치도 또한 마찬가지로 특별한 의도로 계획되었다기보다는[1] 오랜 세월 만들다가 우연히 그렇게 되었을 뿐인 듯하다.
민간설화에 와불이 일어나면 미륵이 도래하고 새로운 세상이 열린다는 이야기가 있다. 퇴마록에서도 이것을 소재로 한 에피소드가 등장한다. 하지만 실제로는 암반에 새겼기 때문에 일어날 수 없다(...). 9.0짜리 지진 같은 강력한 지각변동이 일어난다면 이 와불도 일어날 수 있을 텐데, 그 정도 재해라면 세상이 수십 번 뒤집히고도 남을 것이다.(...)
지질/암석학 교수의 설명에 따르면 이 일대의 암석은 화강암같이 단단한 게 아니라 경도가 약한 응회암 종류라서, 와불을 세웠다가는 무게를 견디지 못하고 부서지기 때문이라고 한다. 실제로 와불 외에도 벽에 간신히 기대고 서있는 불상도 많은데, 다 풍화작용을 이기지 못하고 닳고 닳았기 때문이라고 한다.
3. 교통편
화순교통의 218번이나 318번 중 '''중장터'''[2] , 행산혹은 우치리 까지 운행하는 노선 계통이 주차장 앞을 경유한다. 218번은 배차가 자주있는 편이지만 화순 읍내와 능주까지 돌아온다는게 단점이고, 318번은 도곡온천으로 빠르게 오지만 배차가 적은게 흠이다. 218번 대초리 등광리행도 운주사 앞은 지나가나 주차장 정류장은 안 지나간다.
그리고 금호고속에서 운영하는 '''남도한바퀴'''라는 관광 코스 중 한 곳에 포함된다. 시즌마다 코스가 바뀌니 홈페이지를 참고하는 게 좋다.
2019년들어서는 화순군에서 자체적으로 운영하는 적벽 투어 중 서부 코스에도 포함된다. 역시 자세한 건 홈페이지 참조.
4. 바깥고리
5. 사적 제312호
도선국사가 하룻밤 사이에 천불천탑을 세웠다는 전설을 간직하고 있는 운주사는 나지막한 야산 분지에 있는 고려시대의 절터이다.
절을 처음 지은 연대는 정확히 알지 못하나, 고려 중기에서 말기까지 매우 번창했던 사찰로 보이며, 15세기 후반에 다시 크게 지어졌다가 정유재란으로 폐찰되었다. 운주사(雲住寺)는 ‘구름이 머무는 곳’이라는 뜻을 지니고 있는데, ‘배를 움직인다’는 뜻의 운주사(運舟寺)로 불리기도 한다.
현재 돌부처 70구와 석탑 18기만이 남아 있으나, 조선 초기까지는 천 여 구의 불상과 탑이 있었던 것으로 여겨진다. 산과 들에 흩어져 있는 70여 구의 돌부처들은, 수 십 ㎝에서 10m 이상의 거대한 돌부처까지 그 크기가 매우 다양하다. 평면적이면서 토속적인 생김새에 어색하고 균형이 잡히지 않은 신체 구조는 고려시대 지방적인 특색을 잘 보여주고 있다.
석탑 또한 그 모양이나 무늬의 표현방식이 매우 독특하여, 3층·5층·7층 등 층수도 다양하다. 둥근 공모양의 원형탑이나 호떡 모양의 돌을 올려놓은 듯한 원판형탑 등 특이한 모양의 탑도 있다. 또한 탑의 표면에 ‘X’, ‘◇’, ‘川’과 같은 기하학 무늬들이 새겨 있어 특이하다.
운주사에는 누운 부처(와불)가 있어 유명하다. 도선이 천불천탑을 하룻밤에 세울 때 맨 마지막으로 와불을 일으켜 세우려고 했는데, 공사에 싫증난 동자승이 닭이 울었다고 거짓말을 하여 불상을 세우지 못하였다는 전설이 전해진다.
운주사는 특이한 돌부처와 석탑이 모두 한 절 안에 있다는 점에서 천불천탑에 대한 독특한 신앙을 보여주는 좋은 예로서 우리나라 미술사와 불교사 연구에 중요한 곳이다.
※(화순운주사지일원 → 화순 운주사지)으로 명칭변경 되었습니다.(2011.07.28 고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