움베르토 1세

 



'''움베르토 1세'''
'''Umberto I '''

[image]
'''이름'''
이탈리아어: Umberto I[1]
'''출생'''
1844년 3월 14일, 샤르데냐 왕국 토리노
'''사망'''
1900년 7월 29일(만 56세), 이탈리아 왕국 몬차
'''신장'''
178cm[2]
'''재위기간'''
1878년 1월 9일 ~ 1900년 7월 29일
'''종교'''
로마 가톨릭
1. 소개
2. 생애
2.1. 이탈리아의 동아프리카 침략
3. 그 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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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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움베르토 1세는 이탈리아 왕국의 국왕으로, 비토리오 에마누엘레 2세와 마리아 아델라이데의 장남으로 출생했다. 스페인의 국왕을 잠시 역임한 아마데오 1세는 움베르토 1세의 동생이다.

2. 생애



2.1. 이탈리아의 동아프리카 침략


그 당시 스페인, 포르투갈라틴계 국가들은 온갖 혁명에 시달려야 했는데[3] 이탈리아도 예외는 아니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이탈리아는 아프리카에 식민지를 건설하고자 하였다.
1882년[4] 에티오피아 제국으로부터 에리트리아 지역을, 1889년에는 영국이 지배하던, 영국령 소말릴란드를 침략하여 영국령 소말릴란드의 남부 지역을 얻게 된다. 그러나 ...

2.2. 제1차 이탈리아-에티오피아 전쟁 패배와 암살


1895년 이탈리아는 동아프리카에서 식민지를 더 얻기 위해 에티오피아와 전쟁을 일으키게 된다. 그러나 아도와 전투에서 대패하고, 영국의 반격으로 이탈리아령 소말릴란드의 일부도 잃게 된다. 결국 제1차 이탈리아-에티오피아 전쟁에서 패전하고 이탈리아의 아프리카 원정은 실패로 끝났다.
이후 1900년 7월 29일, 움베르토 1세는 무정부주의자 가에타노 브레시에게 암살당했으며 왕위는 외아들인 비토리오 에마누엘레 3세에게 넘어갔다.

3. 그 외


왕비는 사보이의 마르가레타로 피자 마르게리타의 어원이 된 왕비다. 결혼해서 비토리오 에마누엘레 3세를 두었으며 그 이외의 자녀는 없다.
자신과 외모, 생년월일까지 똑같은 도플갱어를 발견했다는 전설이 전해진다. 왕의 도플갱어였던 남자는 레스토랑의 주인이었고, 왕 즉위일과 레스토랑 개업일이 일치하며, 아내와 아들의 이름이 왕세자비와 왕세자의 이름과 각각 일치했고, 같은날 입대하여 군생활때 2개의 훈장을 받고 같은날에 전역했으며, 왕이 암살당한 날 그도 총기사고로 사망했다고 한다. 서프라이즈에서도 백인 연기자들을 통해 재현했지만 여기서는 그 레스토랑 주인이 죽을때, 움베르토 1세는 무사했다고 결말을 보여줬다.
[1] 풀네임은 Umberto Rainerio Carlo Emanuele Giovanni Maria Ferdinando Eugenio di Savoia[2] 출처[3] 독일 등도 당시 혁명의 영향을 받기는 했으나, (1차대전 전까지는) 왕정 자체가 위태롭지는 않았다. [4] 완전히는 1890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