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각경대소석의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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圓覺經大疏釋義鈔. 고려 전기, 1090년에 대각국사(大覺國師) 의천(義天, 1055∼1101)이 저술한 불경. 훗날 조선의 제7대왕인 세조가 1462년에 복원한 책이 1권 남아있다. 현재 세조조에 복원된 다른 불경들과 함께 순천 송광사 소조 사천왕상 복장유물이란 명칭으로 대한민국 보물 제1468호로 지정되어 있다. 현재 송광사에 소장되어 있다.
고려 선종 7년인 1090년에 의천이 저술한 불경으로, 교장(敎藏) 수록본이다. 당시 대각국사(大覺國師) 의천(義天, 1055∼1101)은 국가의 대규모 지원을 받아 우리나라의 초조대장경을 토대로 하여 송, 요, 왜, 거란 등 동아시아 각국들의 불경까지 모두 모으고 이를 통해 총 1,010종 4,740권에 달하는 고려속장경(高麗續藏經), 즉 교장(敎藏)을 평생에 걸쳐 제작하게 된다. 이는 당대 기준으로 우리나라를 넘어 가히 세계적인 문화기록유산이라 할만한 것이었다.
그러나 이러한 교장은 몽골의 침입 시기에 대부분이 불타 사라지게 된다. 이후 400여년 후인 1462년에 조선 세조가 간경도감을 통해 교장본 원각경대소석의초를 복원하였다.
2018년 4월에 한국서지학회에서 1400년대에 조선 세조가 복원하여 현대에 남긴 중수본 약 50여종, 후인본 약 40여종의 고려 불경 중 원각경대소석의초를 비롯한 약 14종의 불경들은 고려 목판을 직접 이용하여 복원하였다는 사실을 밝혀내었다.KBS : "세조 때 간행한 불교서적 '교장', 고려 목판으로 찍었다"
특히 원각경대소석의초는 서체가 다른 문장 두 줄이 교대로 찍혀있는 모습을 보이는데 연구 결과 이는 한쪽이 원래 고려교장 제작 당시(1000년대)의 목판, 다른 쪽은 소실된 부분을 조선 세조가(1400년대) 복원한 것임이 확인되었다.
당시 세조가 소실되었던 고려 목판을 직접 구하러 다니고 망실된 부분을 복원한 흔적이 분명히 확인됨에 따라 의천의 교장과 조선 간경도감본 고려불경 간의 관계가 더욱 명확해졌으며, 이에 따라 연구자들은 세조가 복원한 약 100여종의 고려불경들이 비록 후대에 인출한 판본들이지만 사실상 1090년에 만들어져 완전 소실된 고려전기 원각본과 동일한 형태 및 문화재적 가치를 가지고 있다고 보아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무엇보다 완전 소실됐던 문화재를 400여년이 지난 후에 복원한 것들인데 제대로 복원한 것이 맞는지 확신할 수 없다던 기존의 여론이 무너지고 세조 재위 당시 한국의 불경 복원기술 및 복원과정에 대한 신뢰도가 엄청나게 높아진 만큼 향후 세조가 만든 간경도감본 불경들의 문화재적 가치가 연대학적으로도 매우 중요시될 것으로 예상된다.
1. 개요
圓覺經大疏釋義鈔. 고려 전기, 1090년에 대각국사(大覺國師) 의천(義天, 1055∼1101)이 저술한 불경. 훗날 조선의 제7대왕인 세조가 1462년에 복원한 책이 1권 남아있다. 현재 세조조에 복원된 다른 불경들과 함께 순천 송광사 소조 사천왕상 복장유물이란 명칭으로 대한민국 보물 제1468호로 지정되어 있다. 현재 송광사에 소장되어 있다.
2. 내용
고려 선종 7년인 1090년에 의천이 저술한 불경으로, 교장(敎藏) 수록본이다. 당시 대각국사(大覺國師) 의천(義天, 1055∼1101)은 국가의 대규모 지원을 받아 우리나라의 초조대장경을 토대로 하여 송, 요, 왜, 거란 등 동아시아 각국들의 불경까지 모두 모으고 이를 통해 총 1,010종 4,740권에 달하는 고려속장경(高麗續藏經), 즉 교장(敎藏)을 평생에 걸쳐 제작하게 된다. 이는 당대 기준으로 우리나라를 넘어 가히 세계적인 문화기록유산이라 할만한 것이었다.
그러나 이러한 교장은 몽골의 침입 시기에 대부분이 불타 사라지게 된다. 이후 400여년 후인 1462년에 조선 세조가 간경도감을 통해 교장본 원각경대소석의초를 복원하였다.
3. 고려목판 인출본 확인
2018년 4월에 한국서지학회에서 1400년대에 조선 세조가 복원하여 현대에 남긴 중수본 약 50여종, 후인본 약 40여종의 고려 불경 중 원각경대소석의초를 비롯한 약 14종의 불경들은 고려 목판을 직접 이용하여 복원하였다는 사실을 밝혀내었다.KBS : "세조 때 간행한 불교서적 '교장', 고려 목판으로 찍었다"
특히 원각경대소석의초는 서체가 다른 문장 두 줄이 교대로 찍혀있는 모습을 보이는데 연구 결과 이는 한쪽이 원래 고려교장 제작 당시(1000년대)의 목판, 다른 쪽은 소실된 부분을 조선 세조가(1400년대) 복원한 것임이 확인되었다.
당시 세조가 소실되었던 고려 목판을 직접 구하러 다니고 망실된 부분을 복원한 흔적이 분명히 확인됨에 따라 의천의 교장과 조선 간경도감본 고려불경 간의 관계가 더욱 명확해졌으며, 이에 따라 연구자들은 세조가 복원한 약 100여종의 고려불경들이 비록 후대에 인출한 판본들이지만 사실상 1090년에 만들어져 완전 소실된 고려전기 원각본과 동일한 형태 및 문화재적 가치를 가지고 있다고 보아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무엇보다 완전 소실됐던 문화재를 400여년이 지난 후에 복원한 것들인데 제대로 복원한 것이 맞는지 확신할 수 없다던 기존의 여론이 무너지고 세조 재위 당시 한국의 불경 복원기술 및 복원과정에 대한 신뢰도가 엄청나게 높아진 만큼 향후 세조가 만든 간경도감본 불경들의 문화재적 가치가 연대학적으로도 매우 중요시될 것으로 예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