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성공

 


'''위(衛)나라 22,24대[1] 국군
성공
成公
'''
''''''
희(姬)
''''''
위(衛)
''''''
정(鄭)
'''아버지'''
위문공(衛文公) 희훼(姬燬), 희벽강(姬辟疆)
'''생몰 기간'''
음력
기원전 ???년 ~ 기원전 600년
'''재위 기간'''
음력
1차: 기원전 634년 ~ 기원전 632년
2차: 기원전 631년 ~ 기원전 600년
1. 소개
2. 생애
2.1. 재위 초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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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소개


중국 춘추시대 위(衛)나라의 22,24대 군주. 위문공의 아들. 위군 하의 형. 위목공의 아버지. 위성공 대에 수도를 초구였는데, 제구[2]로 천도했다.

2. 생애



2.1. 재위 초기


위성공 원년(기원전 634년) 가을, 아버지 위문공을 안장했다. 12월, 위성공은 거나라, 노나라와 화해를 주선했다. 12월 계해일, 위성공은 노희공, 거나라 군주와 도 땅에서 회맹했다. 이것은 위문공 대의 우호 관계를 재확인하기 위해서이다.
위성공 3년(기원전 632년), 진문공(晉文公)은 송(宋)나라를 구하기 위해 위나라에 길을 빌려달라고 했으나 위성공이 그 말을 씹었다. 진(晉)나라 군대는 남쪽 황하를 건너 우회하여 송나라를 구원했다. 진(晉)나라는 위(衛)나라를 칠 군대를 모집했다. 위나라의 대부들은 그것에 대비하라고 했으나 위성공은 그것을 무시했다. 대부 원훤은 위성공을 치니 위성공은 나라 밖으로 달아났다. 진문공이 위나라를 쳐서 차지한 땅을 송나라에 주었다. 이것은 진문공에게 위문공, 위성공 부자가 무례하고, 송나라를 구하는데 협조하지 않은 까닭이다. 위성공은 진(陳)나라로 망명했다. 대부 원훤은 위성공의 동생인 공자 하를 군주로 올렸다.
2년 뒤, 위성공은 주 왕실에 귀국할 것을 요청했다. 그리고 진문공을 알현했는데, 진문공은 위성공에 대한 한을 풀지 못해 위성공을 독살하려고 했다. 이때 위성공은 주 왕실에 뇌물을 바쳐 독을 약하게 해 죽음을 면했다. 이후 주양왕[3]이 진문공에게 위문공을 봐줄 것을 요청하니 진문공은 결국 위성공을 복귀 시켜주었다. 위성공은 귀국 후 대부 원훤을 죽이고 위후 하를 내 쫓았다. 위성공이 복위했다.
위성공 12년(기원전 623년), 위성공은 진(晉)나라에서 진양공(晉襄公)을 알현했다.
위성공 35년(기원전 600년), 위성공이 죽고 그 아들 공자 속이 뒤를 이으니 그가 바로 위목공이다.
[1] 망명하였다가 다시 복위하였다[2] 지금의 복양현, 즉 삼국지의 연주 동군 복양현.[3] 위성공과 이름자가 鄭으로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