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연완

 

1. 작중행적
2. 실제 역사
3. 기타


''' 후궁여의전의 등장인물 '''
[image]
'''이름'''
''' 위연완[1] 魏嬿婉 '''
'''배우'''
이순
'''거주지'''
영수궁
'''품계'''
궁녀 → 위관여자 → 위답응 → 위상재 → 영(令)귀인[2] → 영빈 → 영비 → 위답응[3] → 영귀인 → 영빈 → 영비 → 영귀비 → 영황귀비 → 영의황귀비(令懿皇貴妃) → 효의순황후(孝儀純皇后)
'''가족'''
남편 건륭제 애신각라 홍력, 자녀 14황자 영로, 15황자 영염(훗날 가경제), 16황자(조졸),
17황자 영린, 7황녀 고륜화정공주 경완, 9황녀 화석화각공주 경운

1. 작중행적


'''후궁여의전 후반부 최종보스'''
의복을 관리하는 사집고의 궁녀로 시위인 릉운철과 좋아하는 사이였고 운철이 여의에게 받은 돈으로 아가소에 배치해 주었다. 그러나 홍력이 여의와 약간 닮은 외모 때문에 눈길을 주자, 그 광경을 목격한 해란이 순비 소록균에게 제2의 아약이 나타났다고 이야기하여 화방으로 쫓겨났다. 화방에서 고생하던 연완은 자신이 버린 운철에게 결국 도움을 요청하고, 운철은 연완을 여의에게 소개시켜준다.
한편 여의는 황후에게 꽃을 배달하는 연완보다 앞서 황후의 궁으로 찾아가 모란꽃으로 황후를 도발한다.[4] 정궁을 상징하는 황모란 무늬의 옷을 입은 까닭에 황후가 노여워하는데, 그 직후 하필 연완이 황모란을 배달하여 황후의 분노를 자극했다. 와중에 사정을 모르는 연완은 여의를 옹호하다가 그녀를 괴롭히려는 황후에 의해 옥연의 시녀가 되었다.
옥연은 연완의 여의를 닮은 외모를 보고 앵아라는 이름을 붙여준 뒤 계상궁으로 데려가 괴롭힌다. 향로를 받쳐 들고 벌을 서게 하고, 자신의 발을 씻게 한 뒤 그 물을 끼얹고 벌을 세우고, 계상궁 궁인들에게 누구나 앵아를 가르칠 수 있다고 하여 궂은 일은 모두 도맡게 하는 등 연완은 이 시기 엄청난 고생을 한다. 그러던 중 그 모습을 본 홍력이 연완에게 이름을 돌려준 후 그녀를 자신의 궁녀로 삼았다. 연완 또한 홍력이 자신에게 관심이 있는 것을 알고 여의 밑에 머물겠다고 하거나 출궁을 청하는 대신 황제를 모시고 싶다는 의견을 피력했다.
이후 원하는 대로 후궁 중 하나가 되었으나 출신이 낮고 교양이 없어 다른 후궁들과 자신을 비교하며 열등감을 느낀다. 몇 년이 지났는데도 회임이 안 되자 릉운철을 유혹하여 아이를 가지려고도 하였다. 이 계획은 운철이 아이가 생기면 날 죽이려고 할 게 아니냐며 넘어가지 않아 실패한다. 어머니는 아들밖에 모르고 딸은 돈 바치는 기계 정도로 취급하며 빨리 회임해야 한다고 하는 등 친정은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 상황.
처음에는 여의에게 호의적이었으나 여의 일파의 배척에 결국 마음이 돌아선다. 청매죽마의 정을 중시하는 여의는 연완이 출세를 위해 운철을 버린 것을 좋게 보지 않았고, 자신에게 빌붙으려는 연완을 경멸했다. 능력이 모자라 창피를 당하고 여의와 닮았다는 이유만으로 비교당하자 차츰 여의와 해란을 적대하게 된다.
옥연이 여의를 모함한 죄로 연금당하자 자신을 학대한 김옥연에게 복수하기 위해 9황자 영성을 죽게 만들고 릉운철이 눈치 채자 이게 다 여의를 위해서이며 우리는 죽마고우니 봐달라고 한다.[5] 릉운철은 결국 말하지 않았지만 홍력과 늘 붙어있자 불안하여 그에게 누명을 씌워 죽이려는 악행을 저지른다.[6] 회임을 하고 싶어 몰래 태의원에 홍력이 서비 의환에게 준 임신약과 똑같은 것을 지어 달라고 하나 회임은 계속 되지 않았고, 그 와중에 의환과 여의가 아이를 가지자 아이를 가지지 못하는 자신의 고통을 그녀들에게도 알게 해주고 싶어 산파를 매수해 아이는 그대로 두고 자궁에 손을 써 다시는 회임하지 못도록 지시했다.[7] 악행은 계속되어 의환의 음식에 신장을 약화시키는 약을 넣어 탈모증에 걸리게 한다. 의환이 아파 여의가 태의 강여빈을 보내자 역참을 매수하여 치료를 지연시켰고, 영모가 죽은 후엔 의환에게 임신약이 사실은 난임약임을 까발려 자살하게 만들었다. 태후가 연완이 의환 모자를 해친 사실을 눈치 채고 심문하자 연완은 이미 태후가 모든 걸 알고 있기에 악행을 고한다, 그러나 의환이 죽을 지 몰랐다고 변명하였고, 태후의 수족이 되겠다고 함으로써 죄를 덮었다.
이후 생일 때 홍력이 술에 취해 젊은 시절의 여의를 닮았다고 하고 자신은 영비라고 부르면서 여의는 이름을 부르는 것 때문에 여의에 대한 질투가 폭발한다. 김옥연의 개와 비슷한 개를 구해와 어화원에 풀어놔 5황녀 경시를 다치게 하여[8] 죽게 했다. 그로 인해 임신 중이었던 대미약이 충격으로 조산하고, 그 죄는 옥연이 뒤집어 쓴다. 그렇게 옥연은 리타이어....여의와 해란이 정황상 옥연의 짓이 아니라고 판단하자 해란의 조카를 매수해 해란에게 누명을 씌우려 했으나 실패, 이를 자신의 어머니에게 뒤집어 씌운다. 어머니가 사사당한 충격으로 조산하여 7황녀 화정공주 경완을 낳았으나 영빈 파림씨가 대신 양육한다. 여의를 싫어하는 화경공주와 동맹을 맺어 총애를 회복하고 14황자 영로, 9황녀 화각공주 경운을 낳았으나 임신환약[9]의 부작용으로 점점 노화되고 있다.
후궁이 된 이후에도 옛 연인 능운철에 대한 미련을 놓지 못한다. 능운철이 여의를 짝사랑하자 이를 질투하고, 건륭이 이 일을 알고 능운철을 거세한 후 얼마 뒤 죽이자 동요했다.
전형적인 본인의 욕망에 의해 자멸하는 케이스. 유비 가리엽특 해란이 완빈 진완인, 영귀비 파림씨, 용비 화탁씨 등을 움직여 폭주하는 연완이 황후가 되어선 안 된다고 모략하여 서서히 그녀를 홍력과 멀어지게 만들고, 이후 여의의 소생이었던 경시의 죽음, 대미약의 조산 등 여러 가지 혐의가 여의 사후 해란의 활약에 의해 들통나며, 결국 홍력에 의해 강제로 독을 마시고 치료약을 마시고 다시 독을 마시는 온갖 고통을 당하다가 마지막화에선 확인사살로 독약을 마시고 죽고 만다. '''하지만 사후 그녀의 아들인 15황자 영염이 황제로 즉위한다는 이상한 줄거리를 갖고 있다.'''
드라마에서는 이순이 위연완을 연기한다. 역사 상 패자인 주인공을 지나치게 보정하려다 연완의 캐릭터가 망가졌다. 건륭은 연완을 총애하지 않으나 아이는 낳게 해주겠다는 궤변을 늘어놓고, 연완은 그 제안을 받아들여 아이를 줄줄이 낳지만 대부분 다른 후궁한테 빼앗기거나 태후한테 빼앗긴다. 황귀비가 되고도 가세가 약해 영비 파림씨를 위시한 명문 출신 후궁들에게 무시당하고 자식들에게도 경멸 받는 설정. 건륭조차 위연완을 비천하게 여긴다. 실제 역사에서 영의황귀비가 파림씨와 친밀해 17황자 영린의 양육을 맡겼고, 건륭제에게 많은 특혜를 받으며 사후 추존 황후까지 된 것을 보면 황당한 설정이다. 또 영의황귀비는 명문가는 아니었지만 귀인으로 입궁하였고, 여러 가지 기록들을 볼 때 계황후와도 사이가 나쁘지 않았던 듯하다.

2. 실제 역사


[image]
자세한건 효의순황후 항목 참조.
내관령 청태의 딸로 정황기 포의 출신 궁녀였다가 건륭 10년(1745년)에 위귀인이 되었다.
동년 11월 17일 영빈(令嬪)이 되었고, 14년(1749년) 4월 5일에 영비로 진급했다.
입궁한지 10년이 넘도록 자녀가 없다가 건륭 21년(1756년) 7월 15일에 드디어 첫아이인 7황녀 고륜화정공주를 낳았다. 연이어 건륭 22년(1757년)에 14황자 영로를, 건륭 23년(1758년)에는 9황녀 화석화각공주를 낳고 24년(1759년) 12월 18일에 영귀비에 책봉되었다.
건륭 25년(1760년) 10월 6일 훗날의 가경제인 15황자 영염을 낳고 27년(1762년)에 16황자를 낳았다.
건륭 30년(1765년) 계황후가 폐위된 후 6월 11일에 영황귀비가 되어 육궁을 총괄하였다. 31년(1766년)에 17황자 경희친왕 영린을 낳았고, 40년(1775년) 1월 29일 49세로 사망한 후 영의황귀비(令懿皇貴妃)로 추존되었다. 건륭 60년(1795년) 가경제가 태자로 봉해지면서 효의순황후(孝儀純皇后)로 추존되었다.
1928년 건륭제의 유릉이 도굴당했는데 유릉 안에는 효현순황후와 효의순황후 그리고 숙가, 철민, 혜현 세명의 황귀비가 합장 되어 있었고 그 중 효의순황후만은 죽은 지 153년이 지난 후였음에도 시체가 부패하지 않은 상태였다고 한다.
드라마에서는 여주인공인 여의를 아름답게 보정하기 위해 반대로 위연완을 총애도 못 받는 악역으로 묘사하지만, 실제 역사에서의 영황귀비는 청나라 역사에서 드물게 엄청나게 빠른 속도로 비까지 승진할 정도로 건륭제의 사랑을 한몸에 받은 후궁이다. 여의의 모티브인 계황후의 유폐 이후 후궁의 최고봉인 황귀비로까지 승급되어 내명부를 통솔하며 사실상 황후의 대우를 받았다. '''결정적으로 그녀의 아들 영염이 황태자로 책봉되어 훗날 가경제로 즉위하면서 황후로 추존된다.'''
비록 사후의 추봉이긴 하나 한족 포의 집안 출신으론 유일하게 후궁에서 황후까지 오른 인물이다. 부군인 건륭제가 직접 대기[10]를 2번이나 시켜줬고 황후로 추봉했으며 영황귀비 집안의 빚도 직접 처남인 부찰 부항[11]을 시켜 탕감해주었다고 한다. 건륭 13년 효현순황후, 숙가황귀비, 순혜황귀비의 사후 가장 총애받는 여인이었으며 건륭의 남순여행의 최다 동반자이기도 했다.
야사에서는 건륭제가 남순여행을 기획하며 영귀비를 영황귀비로 올리려했다는 이야기가 있다. 청나라 황실에서는 황후가 존재할 때는 따로 황귀비를 두지 않고 황후 사후에 황후를 대신할 사람으로 비나 귀비를 황귀비로 올려 추후 황후로 책봉하거나, 그 후궁을 황후로 정식 책봉하지 않아도 부황후격으로 황귀비에 책봉해 내명부를 관리하라고 명하는 게 보통이였다. 만약 이 야사가 실제라면 계황후가 멀쩡히 황후로 있는 상황에서 건륭제가 영귀비를 황귀비로 책봉할려고 했다는 건 꽤나 이례적인 일이였고, 이후 계황후가 건륭제에게 난동을 부리고 머리카락을 잘랐다는 이야기도 얼추 맥락이 맞아떨어진다. 영황귀비 때까지는 육궁을 다스리는 권한이 후궁에게 있었으나 영황귀비 사후 육궁을 다스리는 권한을 황제인 건륭제가 스스로 행했다는 이야기가 있는 것으로 볼 때, 건륭제는 계황후 일로 인해 추후 황후를 만들지 않기로 다짐한 것 같다.

3. 기타


안릉용과 비교되나 연완의 행보가 너무나 노답스럽기 때문에 안릉용이 재평가 되는 분위기다(...) 황후와 닮아 총애받는 후궁으로 황후와 대립하는 포지션상 견환과 가장 유사하다는 의견도 있다.
황제의 딸영비와는 정반대인 인물.
포스가 너무나 막강하기에 여의가 페이크 주인공이고 연완이 진주인공화 되는 거 아닌가 하는 걱정도 나온다.
특기는 곤곡.
작가가 인터뷰에서 연완은 황제에게 죽을 것이라고 밝혔다.
드라마에서는 후반부가 조금 각색되어 여의가 죽기 전에 연완의 악행이 까발려지고[12] 태후에 의해 연완이 죽인 이들의 이름이 적힌 깃발들[13]에게 절을 하며 사죄하게 하고, 황제에 의해 죽을때까지 독약과 해독제를 번갈아 먹게 되는 벌을 받는다.[14]
같은 배경인 드라마 연희공략에 모티브가 같은 인물이 나온다. 여기서는 악역인 연완과 다르게 주인공. 그러나 연희공략에서도 다른 의미로 혁신적인 또라이같은 모습이 나온다. 자세한 사항은 위영락 참조.
[1] 야심만만하고 구밀복검이라는 말이 어울리는 성격이며 '''작중 최강, 최고, 최악, 최흉의 또라이다.''' 외모가 오라나랍 여의와 약간 닮았다.[2] 드라마에서는 불 영(炩)자를 쓴다.[3] 경시의 죽음을 해란에게 덮어씌웠다는 것이 들통난 후[4] 건륭이 보친왕 시절에 복진을 뽑을 때 당시 희비였던 태후는 부찰 랑화를 복진으로 준비했으나 건륭은 이를 무시하고 오라나랍 여의를 적복진(정실부인)으로 뽑으려 했으나 황실 일가의 반대로 결국 랑화를 적복진으로 선택했다. 이 일로 인해 랑화는 황후가 된 현재까지도 여의를 싫어하고 있었다. 여의는 황후가 은밀한 암투로 자신의 난임을 유도하고 누명을 씌워 냉궁에 보냈기에 황후와 다툰다.[5] 이 때 자신은 여의보다 젊으니 더 총애받을 것이고 여의를 넘어설 수 있다고 말한다.[6] 운철은 알고 있지만 눈감아주었다.[7] 다만 여의는 결국 안했다.[8] 원작에선 광견변으로 죽은 것이지만 드라마에선 여의의 딸 화의공주 경시는 태어날때부터 선천적 심장병을 앓아왔다.[9] 제노에게 부탁하여 받았다.[10] 청나라 만주족의 팔기가문에 속하는 기(旗)를 변경시켜주는 것을 의미한다. 영황귀비는 한족 출신이었기에 이는 매우 큰 특혜였다.[11] 건륭제의 첫 황후 효현순황후의 남동생.[12] 황제는 병으로 계속 누워 있고, 태후가 내정된 황위 계승자가 없다며 걱정하는 것을 듣고 가짜 조서를 작성해 숨기려고 했다. 하지만 황제+태후+여의+해란이 짜고 파놓은 함정이었고, 일전에 죽이려다 실패한 측근 시녀 춘선 등의 증언으로 모든 행적이 밝혀졌다.[13] 여의가 수놓은 것을 태후가 들고왔다.[14] 빨리 죽지 않고 오히려 고통스럽게 하도록 하기 위해서인데, 황제 앞에서 강제로 독약을 먹을 당시 "폐하의 궁 안에 이렇게나 많은 후궁들이 있는데 그 중 폐하께 진심인 이가 몇이나 될 것 같습니까? 그래, (폐하에 의해 금족령을 당한) 익곤궁 마마가 계시지요."하고 비웃어서인 것 같다. 어차피 독약도 먹었으니 이제 죽겠다 싶어 막나간듯(...).